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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천상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요한계시록 7:1-17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https://www.youtube.com/watch?v=hAGDXtXMbHA
유명한 신학자이신 한철하 박사님에게는 아들이 한 명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아들이 서울대학교를 졸업하고 목사님이 되기 위해 신학대학원에 들어가 공부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교회 청년회에서 수련회로 제주도에 함께 갔다가 물에 빠져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그렇게 되니 한박사님이 크게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계시면 어찌 하나뿐인 내 아들이 물에 빠져 죽도록 그냥 두시나? 어찌 이런 일이 있나? 더구나 목사가 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아들인데…’ 그런데 장례식을 하러 제주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갑자기 마음에 평안이 오더니 천국에서 희희낙락하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들이 제주도 앞바다에 빠져 비참하게 끝난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행복하게 있다는 확신이 왔습니다. “오, 주여! 그렇군요. 내 아들이 바다 속에 있지 않고 천국에 있군요. 그래, 내 아들은 천국에 있다. 슬픔을 이기고 장례식을 잘 마치자. 아들 몫까지 내가 더 잘해야 되겠다.” 할렐루야!
우리의 소망은 천국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확신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에 대하여 과도하게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들을 먼저 보내고 이 땅에서 다시 볼 수 없는 슬픔은 있습니다만 과도하게 슬퍼하지 않는 것은 천국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에 가서 무슨 일을 할까요? 아무도 천국에 가보지 않아서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진리만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천국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게 될까요?
①안식을 누립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자는 죽어서 음부에 떨어져서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부자가 보니 자기 집 앞에서 자기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로 배를 채우려 했던 거지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민족의 혈통적인 조상이며,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믿음의 조상입니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있다는 것은 안식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4장에 보면 안식에 관하여 말씀합니다. 거기서 말하는 안식은 안식일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후에 누림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거기서 말하는 안식은 영원한 안식입니다. 히 4:10을 보겠습니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안식은 천국안식입니다.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 일을 쉬심과 같이 자기의 일을 쉽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안식은 완전한 안식입니다. 새털 같은 짐도 없는 완전한 안식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은 종종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휴가를 떠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나면 완전한 안식을 누릴 수 있을까요? 휴가지에서도 여전히 근심과 걱정이 있습니다. 솔직히 이 세상에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먼지만한 짐도 없는 안식은 없습니다. 그런 안식은 천국에서 누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고양이들이 많습니다. 좀 속상한 것은 길고양이들이 더 많은데 그놈들이 우리 고양이들을 밀어내고 있습니다. 먹이를 주면 우리 고양이들이 길고양이들 눈치를 보고 먹지 못하고 밀려납니다. 우리 고양이는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고등어와 검둥이만 남았습니다. 이놈들은 어릴 때 목양실에서 생활을 해봐서 그런지 목양실을 사모합니다. 특히 고등어는 목양실을 엄청 사모합니다. 문을 열어주면 쏜살같이 들어옵니다. 목양실에 들어오면 적들의 위협이 없습니다. 그러니 평안한가 봅니다. 제가 만져주면 기분이 좋아가지고 “그르렁 그르렁”거립니다. 제가 보니까 고등어는 목양실에서는 어떤 위협도 느끼지 않고 편안한 상태에서 안정감을 누립니다. 목양실이 고등어에게는 안식의 장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죽는 날까지 예수님을 붙잡고 살다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먼지 하나의 무게도 없는 안식을 누리기를 축원합니다.
②위로를 받습니다. 눅 16:25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아브라함이 음부에서 고통당하는 부자에게 한 말입니다. 나사로는 천국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이 세상은 고해(苦海)와 같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세상은 괴로움이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지만 괴로움의 바다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아픔이 있습니다. 믿음 때문에 받는 핍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고통, 정신적인 고통, 육체적인 고통, 물질적인 고통 등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고통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고통이 끝나지 않습니다.
욥 5:7을 보세요.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 가는 것 같으니라”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습니다.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인생에 고생이 있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받았던 고통에 대하여 위로를 받게 됩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 사람이 줄 수 없는 위로, 이 세상에서 어떤 보상으로도 받을 수 없었던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특히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받았던 고통,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받았던 고통에 대하여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③예배를 드립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우리는 천국에서 하나님 보좌 앞과 천국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여기서 섬긴다는 말은 헬라어로 ‘λατρεύω’(라트류오)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종교적인 의미로는 제의적(祭儀的) 용법을 가리킵니다. 구약식으로 말하면 제사이고 신약식으로 말하면 예배입니다.
어떤 사람은 ‘헐~ 예배라고, 그것도 밤낮으로 예배한다고..., 난 천국에 안 가야겠다. 이 세상에서 예배드리는 것도 지겨운데 천국에서 밤낮없이 영원토록 예배한다면 난 천국에 가고 싶지 않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예배의 감격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드리다가 황홀경을 경험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예배를 드리다가 하나님의 임재가 강력하면 전기가 온 몸을 강타하듯이 온 몸에 전율이 흐릅니다. 눈물이 나는데 감격의 눈물, 기쁨의 눈물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가치 있는 것하고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런 예배가 주는 감격을 경험해봐야 합니다.
다윗은 법궤가 들어올 때 하나님의 임재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너무나 감격스러워서 왕의 체통도 잊고 속옷이 드러나는데도 부끄러움을 모르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예배의 감격에 빠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거하지만 간혹 영원한 천국의 맛을 봅니다. 간혹... 그 맛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고 죄 가운데 있는데도 너무나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천국에 가면 육신으로부터 자유롭고 죄가 털끝만큼도 없는 상태, 완전히 의로운 상태입니다. 그러니 천국의 예배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입니다.
본문에 보면 장로들과 천사를 제외하고 천국에서 예배하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4-8절에 보니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십사만 사천입니다. 9절에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입니다. 저는 앞의 십사만사천은 유대인 중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이라고 봅니다. 신천지에서 말하는 대한민국에서 신천지를 믿는 십사만사천이 아닙니다. 뒤의 능히 셀 수 없는 무리는 9절에서 밝힌 대로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 즉 열방에서 구원받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15절에 보면 그들은 천상의 예배자들입니다. 15-17절에 보면 천상의 예배자들이 받는 은혜가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주님이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말입니다. 16절에 보면 그들은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합니다. 철저한 하나님의 보호를 말하는 것입니다. 17절에 보면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입니다. 이 말은 완전한 안식과 위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천상의 예배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자격을 갖추고 죽어서 혹은 주님 재림하실 때 들림 받아서 천상의 예배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면 천상의 예배자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1. 인침 받은 자들입니다.
1절에 보면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서 있습니다. 그들은 환난의 바람을 붙잡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은 아직 대환난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이 네 천사가 환난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이 불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2-3절에 보면 요한이 보니까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동쪽에서 올라옵니다. 그가 와서 환난의 바람을 붙잡고 있는 네 천사에게 큰 소리로 외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들을 해하지 말라” 인치는 기록은 여기에 없지만 3절과 4절 사이에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을 칩니다. 그 인침 받은 사람의 수가 유대인 중에서 십사만사천이고 열방 가운데서는 셀 수 없는 무리인 것입니다. 여기서 인침 받은 사람들이 천상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침 받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엡 1:13에 보면 답이 나옵니다. 인침 받은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성령으로 인치시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정리하면 인침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입니다. 엡 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인침 받은 사람은 복음을 믿는 사람입니다. 인침 받은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인침 받은 사람은 성령의 내주가 있는 사람입니다. 인침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을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인침 받은 사람인가? 뭘로 확인할까요? 나는 복음을 믿는가? 나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는가? 나는 성령님이 내주하는 사람인가? 이 질문에 아멘이 된다면 인침 받은 사람입니다.
인침 받은 사람 중에 믿음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고, 천국에 대한 확신이 흔들리고, 하나님의 자녀인 확신이 흔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 안에 거하며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흔들림을 붙잡아주시고 믿음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2. 흰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9-10절에 보면 사도 요한이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구원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13-14절을 보면 장로 중 하나가 사도 요한에게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라고 질문합니다. 요한은 그 장로에게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그 장로가 사도 요한에게 흰옷 입은 자들이 누구인지 가르쳐줍니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7대 복이 나옵니다. ①1:3에 보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②14:13에 보니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③16:15에 보니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④19:9에 보니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⑤20:6에 보니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⑥22:7에 보니 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⑦22:14에 보니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7가지 복 중에 마지막이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옷을 빠는 자들인데, 그렇다면 자기 두루마기를 어떻게 빨까요? 14절에 보니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의지하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혀주십니다. 그 옷이 흰옷입니다. 그런데 흰옷을 입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러면 흰옷에 더러운 때가 묻습니다. 이런 경우에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고 자기 죄를 자백하면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이 더러워진 옷을 희개 해주는 것입니다.
요일 1:7입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피로 깨끗하게 하는 방법은 죄를 자백하는 것입니다. 요일 1:9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누구에게 천상의 예배자의 자격이 주어집니까? 예수님을 믿으므로 의의 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죄 때문에 그 옷이 더러워지면 예수님의 피를 의지하고 하나님께 자기 죄를 자백하여 계속해서 흰옷을 입은 사람입니다.
3. 환난을 이긴 자들입니다.
13~14절에 보니 장로 중 하나가 사도요한에게 질문했습니다.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사도 요한이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라고 하니 그가 대답했습니다.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은 큰 환난이 있기 전에 나온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큰 환난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그 환난이 보통 환난이 아닙니다. 큰 환난입니다.
여기서 큰 환난은 종말론적인 입장에서 봐야 합니다. 마지막 시대 주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이 세상에는 큰 환난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환난이 오기 전에 휴거 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잘못된 시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마 24:3입니다.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제자들의 질문은 2중구조입니다. 먼저는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질 때에 관한 질문입니다. 또 하나는 주의 임하심 즉 세상 종말에 관한 질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태복음 24장을 2중 렌즈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예루살렘의 멸망과 세상 종말을 볼줄 알아야 합니다.
마 24:29을 보겠습니다.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환난 후에 일어날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 엄청난 자연재해가 발생합니다. 해가 어두워집니다. 달이 빛을 내지 못합니다.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집니다.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립니다. 마 24:30입니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환난 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이 세상에 오십니다. 땅의 모든 족속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중 강림입니다. 분명히 환난 후에 오시는 것입니다. 마 24:31입니다.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공중에 강림하신 주님이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십니다. 천사들이 와서 주님이 택하신 자들을 사방에서 모읍니다. 이때 믿음의 사람들이 들림 받습니다. 휴거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휴거된 사람들은 휴거가 일어나기 전에 큰 환난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큰 환난 가운데서 나온 자들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대환난은 있습니다. 흔히 7년 대환난이라고 하는데, 믿는 우리에게는 7년을 꽉 채우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환난의 날을 줄여주실 것입니다. 마 24:22입니다.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여기도 보면 그 날들을 감해주시는데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택하신 자들도 큰 환난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큰 환난을 이깁시다. 그래서 천상의 예배자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큰 환난의 날을 만나지 않고 천국에 갈 수 있다면 좋겠으나, 요즘 되어지는 일들을 보면 우리 시대에 큰 환난이 있을 수도 있다는 혹신이 듭니다. 세상은 코로나로 인하여 통제 사회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되는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요한계시록 13장의 시대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큰 환난을 생각하면 사실 좀 두렵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택하신 자들을 보호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성경을 보면 항상 환난의 때에 하나님은 피난처를 예비해주셨습니다.
대홍수 때에는 노아의 방주가 피난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때는 산이 피난처였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는 라합의 집이 피난처였습니다. 야곱 시대에 큰 흉년이 있을 때에는 애굽이 피난처였습니다. 유다가 멸망할 때는 바벨론이 피난처였습니다.
계 12:6입니다.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거기서 천이백육십 일 동안 그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 여기 여자는 교회를 말합니다. 1,260일은 7년 대환난에서 후 3년 반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실제적으로는 3년 반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기간입니다. 마 24장에서 주님이 약속하신 것처럼 환난의 날을 감해주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곳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큰 환난의 날에 하나님의 보호가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환난을 통과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에게도 환난의 날은 고난의 날이라는 말입니다. 그날이 그리스도인에게도 고난의 날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날을 이기기 위하여 영적인 근육을 키워야 합니다.
주님이 잡히시고 십자가를 지실 때를 생각해보겠습니다. 눅 22:31~32입니다.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주님께서 베드로를 위하여 기도해주셨습니다. 그 기도 때문에 베드로는 회개하고 주님에게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깨어서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주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던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큰 환난의 날에 주님의 보호가 있지만 우리는 환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큰 환난을 이겨야 영원한 천국에서 흰옷을 입고 종려가지를 흔들며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큰 환난의 날을 대비해야 합니다. 그 날에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 지금 영적인 근육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지금 회개하고 지금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날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존 에프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한 후 첫 번째로 모신 손님이 빌리 그레함 목사님이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빌리 그레함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이 세계의 역사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습니까?” 그때 빌리 목사님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역사는 예수님의 재림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구름 타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천년 왕국이 있게 될 것이고 그 후에 불신자들은 지옥에 들어가고 믿는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예배하는 자리에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천상의 예배자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천상에서 예배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1. 인침 받은 자들입니다.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성령으로 인침 받은 사람들이 천상의 예배자가 됩니다.
2. 흰옷을 입은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의의 옷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죄를 범하나 어린 양의 피로 자기의 옷을 빠는 자들입니다.
3. 환난을 이긴 자들입니다. 믿는 사람들도 큰 환난을 통과합니다. 그때 주님의 보호가 있지만 그럼에도 당하는 환난이 있습니다. 그 날을 위하여 지금 영적인 힘을 키워야 합니다. 제가 늘 말하지만 서울대학교에 들어가려면 평상시 공부를 잘하고 있어야 합니다. 며칠 벼락치기로 서울대학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영적인 근육을 키우십시오. 예배로, 기도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종의 삶으로 영적인 뼈대를 튼튼하게 만들기 바랍니다.
성경을 들고 믿음의 고백을 하겠습니다. “나는 영원한 천국을 믿습니다. 나는 천국이 소망입니다. 나는 천상의 예배자가 되겠습니다. 나는 믿음으로 성령의 인침을 받았습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었습니다. 나는 어린 양의 피로 날마다 옷을 빨겠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인도 큰 환난을 통과해야 함을 믿습니다. 나는 영적인 근육을 키워서 큰 환난을 이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