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이어주는 기록과 공유_ 경춘선 숲길과 서울생활사박물관
221114. 송혜영
1. 부모님과 함께_11월 9일
친정부모님이 상경하시는 날이다. 오후 2시49분에 도착해야 할 열차가 아산에서 한참이나 정차상태라고 연락이 왔다. 전날 영등포에서 무궁화호가 탈선했는데 그 영향으로 KTX도 연착이 되고 있다는 거다. 서울역에는 우리처럼 마중나온 사람과 오지 못한 기차로 출발이 늦어졌거나 취소된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한참을 기다려 기차 타신지 5시간 만에야 상봉할 수 있었다. 너무 고생하셨다고, 열차는 왜 오늘같은 날 서냐며 애꿎은 열차를 나무라는데 아빠가 한 말씀하신다. "그래도 12열차보다는 낫다. 괜찮다. 잘 왔다." 그래서 내 불평도 쏙 들어갔다. (12열차는 1980년대까지 부산에서 서울까지 운행한 열차로 저녁에 출발해 다음날 새벽에 도착했다 한다.)
저녁에 잘 쉬시고 다음날 북한산 산행으로 아주 만족스러우신 우리 아버지. 수요일은 어디로 모실까 하다가 서울생활사박물관과 구화랑대역으로 정했다. 아빠는 박물관을 좋아하셔서 보는데 시간이 좀 걸리신다. 엄마는 몸이 불편하기도 해서 3층 까페에 함께 앉아 아빠를 기다렸다. 평일의 박물관 까페는 널찍하고 여유롭고 쾌적하다. 엄마는 초코라떼를, 나는 생강차를 먹으며 까페 인테리어가 어떻느니부터 시작하여 한 달 전 주워들은 이야기를 옮긴다. 여기 주위에 경춘선이 지나가는데 민가와 가깝다느니 이런 이야기 말이다. 그러다가 어제 등반 후 피곤해서 뻗으신 아빠가 당신에게 짜증을 냈다는 엄마께 아빠가 잘못하셨네요~ 맞장구도 쳐 드린다.
점심은 공릉동 국수골목 S멸치국수에서 해결한다. 여기는 김밥이 맛나지. 김밥과 국물의 조합이 짱! 국수면은 지난번보다 약간 퍼져서 별로인 것 같은데 국물은 언제나 좋다. 아까 초코라떼가 맛있다며 큰 컵 한 잔을 들이키신 엄마는 배부르다며 그저 앉아계셨고 아빠는 내가 다 못 먹은 국수까지 거의 곱배기의 양을 드셨으니 산책은 필수지. 구화랑대역(노원불빛정원) 주차장을 찍으면 육사 주차장으로 안내한다. 주차장에서 정원까지 데크길을 지나는데 플라타너스 단풍에 가을가을 한 것이 딱 포토존이다. 아빠엄마 걸어가는 뒷 모습 한 컷. 안 되겠다 잠시 돌아서시라 해서 한 컷, 확대해서 또 한 컷. 언젠가라도 보면 위로와 미소가 지어질 것 같은 기분 좋은 순간이다.
50여미터 걸으면 바로 구화랑대역과 증기기관차가 나온다. 이 곳은 노원 불빛 정원으로 유명하다. 시대별 기차와 전차가 전시되어 있고 철로 주변을 걸으며 사진을 찍기 좋게 계절별 들꽃들도 심어 놓았다. 밤이면 이쁜 조명으로 볼거리를 더한다. 안내도 할 겸, 아빠 앞에서 증기기관차 소개를 시작하다 바로 깨갱했다. 아빠는 중고등학생 시절 6년을 그 기관차를 타고 다니셨다는 것 아닌가! 어릴 적 사시던 창원에는 미카보다 성능이 좀 떨어지는 '터우'란 기차였다는데 역을 출발할 때 치익~치익~ 포옥~ 포옥~ 힘찬 소리를 냈단다.
무더운 여름에는 객차 안이 아니라 지붕 없는 화차에 올라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갈 수 있었는데, 기차가 터널을 지날 때면 기차연기가 가득했다. 그러면 교복의 옷깃을 세워 마스크처럼 코를 막았다고. 통학하는 6년 동안 기차가 한 번 결행이 되는 때가 있었는데, 하얀 손수건을 흔드는 동네 아저씨의 뒤를 따라 캄캄한 터널의 선로를 따라 걸었다. 잘못해서 벽에 옷깃이라도 스치면 새까만 숯검정이 묻었는데 기차의 증기에 찌든 검정이라 잘 지워지지도 않아 애를 먹었다 한다.
기온도 적당한 것이 늦가을 즐기기에 딱 좋은데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다 되어간다. 나도 아빠의 마음도 급해져 인증샷 몇 컷 찍고, 공원의 남은 곳은 성큼성큼 둘러본 뒤 차에 올랐다.
2. 딸들과 함께_10월 15일
여기 불빛정원은 한 달 전 아이들과 찾았던 곳이다. 난데없이 '서울생활 문화탐방-경춘선숲길' 참여 여부를 묻는 문자가 왔길래 신청했더랬다. 아마도 지난 9월 청소년 도슨트가 박물관 각 층을 소개해주는 프로그램을 신청한 이후 서울생활사박물관에 내 기록이 남아서일 게다.
딱 4년 전에 가을 열린 음악회를 한다 하여 이 곳에 왔는데, 자신을 '행복을 찍는 사진사'라며 사진을 찍어 즉석으로 인화해 주는 아저씨가 계셨다. 누구에게 후원을 받거나 기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이웃의 행복한 순간을 남겨주고 싶은 기쁨에 이 일을 한다던 그 감동은 사진 넉 장과 함께 사진첩에 고이 모셔 두었다. 그런데 반갑게도 가족끼리 첫번째 미션이 사진 찍기이다. 배경을 골라 그 앞에 서면 사진을 찍어주겠다 하신다. 가로세로 6cm 남짓 되려나? 무궁화호 앞에 선 우리 셋은 자그마하여 표정은 보이지조차 않는다. 그러나 브이한 손가락 위의 얼굴에는 미소와 설레임이 깃들어 있음이 충분히 전해진다.
공원에는 여러 기차와 전차들이 전시되어 있는데 미국에서 들여 왔다는 조선시대의 전차를 보며 선생님이 퀴즈를 낸다. "1번은 차장 바로 옆 입석과 미니 좌석이 함께 있는 공간, 2번은 전차 가운데 실내에 마주보고 앉는 의자가 놓여진 공간, 그리고 3번은 확 트이고 서서 가는 공간. 자, 몇 번이 가장 비싼 자리였을까요?" 누가 정답을 맞췄을까? 엄마다. 엄마는 안락한 실내에 앉아 가는 게 좋다. 두 따님은 똑같이 틀렸다. 3번이란다. 맑은 공기 쐬며 기분 좋게 갈 수 있는 곳이 가장 비쌀 거란다. 그래 맞네. 엄마가 맞는데, 틀린 것 같은 기분은 왜지? 아무튼 그 때는 같은 전차를 타고 어느 공간에 가느냐에 따라 요금이 달랐고 신분과 상관없이 돈만 있으면 중인도 여성도 가운데 칸을 이용할 수 있었다 한다.
이제 공원을 벗어나 숲길을 걷는다. 여기서부터 서울 생활사박물관까지 1.8km 정도 구간은 전체 6km 정도 되는 경춘선 숲길의 일부이다. 화랑대역을 지나는 기차가 70년동안 편리한 교통수단이자 낭만 담은 청춘열차로 달리다 2010년 폐선이 된 이후, 철로를 치우고 도로를 넓힐지 아니면 공원으로 조성할지 고민을 하였고 그 결과 2018년에 숲길로 탄생하였다 한다. 어떤 곳은 침목과 사이 돌을 살려 철로를 그대로 두었고 대부분의 구간은 군데군데 의자나 바닥재로 침목을 활용한 정도, 일반 산책로와 같았다. 수줍은 듯 잎이 막 물들어가는 양 옆의 가로수는 기차가 지날 때든 사람들이 다닐 때든 든든히 지키겠다는 느낌이다. 공원을 조성할 때 심은 나무도 있지만 기차가 처음 다닐 때즈음 심은 나무들은 그 수령만큼이나 꽤 키가 커서 운치를 더하고 있다.
걷다가 두어 번 멈춰서서 가족 미션을 해야 한다. 먼저 '경춘선'으로 삼행시 짓기
경. 경치가 좋은 가을에
춘. 춘천으로
선. 선생님, 친구들과 소풍을 가요
서은이의 삼행시다.
발 크기로 기차 레일 폭을 재어보는 미션도 있다. 나는 다섯번하고도 반 길이, 첫째는 일곱번, 둘째는 여덟번 발끝을 대어 재야 레일 너비가 나온다.
지나며 보니 정말 철로가 곡선인 지점도 있고 민가와 너무 붙었다. 기차가 천천히 가다 보니 소음과 먼지도 심하고 창으로 집 안도 들여다 보여 주변 주민들의 불편으로 인한 민원이 많았다는데 이해가 되었다.
드디어 박물관이다. 오늘의 프로그램은 박물관 내부를 관람한 후, 교육실에 모여 조사 결과 보고서나 그림 일기 두 개 중 하나를 작성하는 것으로 끝난다. 서은이는 1층- 한국전쟁 당시 한강을 건너 피난하는 모습, 그리고 전쟁 이후 집은 적고 사람들은 많을 때 짚과 판자로 만든 집 앞에 어린이가 서 있는 사진이 충격적이었나 보다. 엄마, 여기서 어떻게 살아? 한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우리 나라에서 불과 70여년 전 사진이다.
시대별 웨딩드레스 디자인의 변한 모습을 전시해 놓은 코너에서는 빠지지 않고 사진도 찍었다. 네 벌 중 둘 다 선택한 드레스는 70년대 유행 스타일이다. 목파임이 적고 소매를 길게, 노출을 최소화한 단정하고 수수한 드레스이다. 아마 머리 위 은빛 왕관이 선택에 한 몫을 했을 듯. 공간이 바뀌자 어떻게 알고 둘은 아날로그 오락기로 쪼르르 달려가 쭈그리고 앉았고 간만의 차이로 주도권을 못 잡은 둘째는 바닥에 그려진 땅따먹기를 하며 순서를 기다린다.
벽면에는 박물관 조성 당시 모았을 실제 시민들의 세월의 흔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를테면, 결혼식 사진, 출생신고서, 출생 후 병원에서 산모에게 주는 아기 물품 가방과 배넷저고리, 오래된 가계부, 시대별 교과서, 마루인형과 장난감들- 4,50년이 넘은 이런 물건들이 어떻게 깨끗하게 보존되어 있다가 빛을 보게 되었는지 신기하다. 작은 모니터에서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작은 화면 속의 한 시민이 자신의 출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출산이라면 나도 할 말 많은데~
내가 너무도 자연스레 살면서 이용하는 물건들과 문화도 몇십년, 몇백년이 지나면 이렇게 유리창 안에 전시되어 후손들에게 한 시대를 알릴 가치가 있게 되겠지? 나의 학창시절, 결혼과 신혼여행, 놀잇감 등 모든 것들이 자료가 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누리는 일상이 약간은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기 박물관이 별 게 있나? 몇 십 년 전 살았던 모습을 모아서, 분류하고 전시해 놓은 것 아닌가. 이리 생각하니 박물관 문턱이 낮아진 듯 만만하게 보였다.
3. 3대가 함께
4박 5일 딸네 집에 머무신 부모님은 그저께 내려가셨다. 이번에는 KTX열차가 제 할 일을 잘 해냈나 보다. 예상한 시간에 집에 도착했다며 연락을 주셨다. 그리고 맞이한 오늘, 예배 후 아이들과 교회에서 7분 거리인 서울생활사박물관에 다시 가 보았다. 평일에는 체험학습 온 초등학생들로 공간이 채워진다면 주말에는 가족단위 관람객이 주를 이룬다. 기분 탓인가 다른 박물관보다 연세드신 분들의 두런거리는 소리가 더 크게, 자주 들리는 것 같다. 80년대 제주도 신혼여행 사진을 보며 "저 때는 다 돌하르방 코를 만지며 아들낳기를 바랬었지." 말씀하시는 소리도 들린다.
다시 들으니 아이들에게 "라떼는~"하며 이야기 건네는 부모들의 소리도 만만찮게 들린다. 저 삼양라면 말이야. 저게 엄마 어렸을 적엔 50원 했었어. 저 콩나물 시루같은 (콩나물 시루같다는 표현도 아이들에겐 설명해 줘야 안다) 교실 보이지? 엄마 때는 80명까지는 아니었어도 사람이 많아서 2부제를 했어. 그래서 오후에 수업하고 올 때도 있었단다. 이 책상 앉아 봐. 여기 가운데 금이 보이지? 금을 긋고 짝이랑 투닥거리면 선생님은 그러셨어. 우리나라가 반으로 분단된 것도 서러운데 너희도 금을 긋냐면서 야단치셨지. 겨울이면 난로를 땠고 그 위에 항상 보리차가 든 주전자가 흰 김을 내뿜고 있었단다. 쉬는 시간 몰래 오징어를 구워먹을 때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러고보면 워크북에 적혀 있던 그 말이 딱 맞다.
"바로 '서울생활사박물관' 이에요. 서울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기억하고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에요. 가족과 함께 도란도란 추억 이야기 나누러 서울생활사박물관으로 가볼까요? (지방러 입장에서는 '서울'이란 말을 빼니 더 공감된다)"
그리고 이 문구도 좋다.
"2018년, 공원으로 조성된 옛 경춘선 구간은 걷기 좋은 숲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옛 서울 북부지방법원이 떠난 자리에 서울생활사박물관이 2019년 개관하였습니다. 이렇게 도시의 공간은 기능과 역할을 달리 하며 변해갑니다. (중략) 철길과 숲길을 걸으며 서울의 시간과 공간의 변화를 느껴 보세요."
변해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라는 말이 왠지 위로가 된다. 변하고 없어진다고 하찮은 것이 아니다. 아빠의 어린 시절, 살아온 이야기, 내가 살아가는 이야기, 그리고 서은가은이가 살아왔고 살아갈 이야기는 조금씩 교집합을 이루며 다르게 변해가지만 한 가지 변함 없는 분명한 사실은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는 것이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이 모여 시대상이 된다. 너와 내가 함께 있는 이 시공간에서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이렇게 하고 싶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서은, 가은까지 3대가 함께 오는 것으로. 도란도란 같이 관람을 하고 3층 박물관 까페에 앉아 이 때만은 궁색하지 않은 "라떼는" 이야기로 꽃피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