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蒸溜)란 액체를 가열하여 기체로 만들었다가 그것을 냉각시켜 다시 액체로 만드는 일 또는 여러 성분이
섞인 혼합 용액을 가열하여,끓는 점의 차이에 따라 각 성분을 분리하는 일을 말한다. 화학에 속하는 전문용어
로 일반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지만 술을 만드는 공장이나 원유를 정제하는 공장에서 주로 쓰이고 있다. 양조장
에서는 안동소주를 비롯해서 스코트랜드에서 만드는 위스키가 대표적이다. 또 정유공장에서는 중동이나 인니
그외 지역에서 들여오는 원유를 정제하여 고급유인 항공유,경유 등을 뽑고 마지막으로 선박에서 주로 사용하는
벙커C유를 뽑아내고 나면 아스팔트에 까는 피치가 남는다.
이 증류법은 배에서도 쓰이고 있다. 선원들이 먹고 마시는 음용수(Drinking water)는 항구에서 청수를 적재하지
만 일반 잡용수는 증류법을 이용한 조수기(Fresh water generator)로 만든다. 예전에 대형선에 많았던 스팀터빈
선에서는 보일러가 청수를 많이 사용하므로 대형 조수기가 2대씩이나 있었고 1대의 용량이 30톤씩이나 되었다.
그런데 스팀으로 바닷물을 가열했으므로 비용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주기가 디젤선인 경우에는 주기관 냉각수를
이용하기 때문에 비용이 오히려 절약되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대기압하에서 물은 100도(C)에서 끓지만 기압을 점차 낮추면 낮은 온도에서도 끓는다. 조수기
내의 기압을 진공펌프를 이용하여 -690~700mmHg정도로 낮추면 40도(C)에서 바닷물이 끓는다. 기화한 수증기
를 모아서 해수로 냉각하면 청수가 된다. 조수기로 만들어 내는 용량이 선원들이 하루 사용하는 10톤정도이다.
그런데 이 증류법이 AI에도 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코틀랜드 전통 증류소에서는 여전히 구리로 만든
거대한 단식 증류기(pot still)를 활용해 ‘기다림의 미학’으로 몰트위스키를 빚어내고 있는 반면 21세기 인공지능
(AI)시대에 또 다른 의미의 증류가 반갑지 않은 단어로 떠올랐다.
AI 증류는 원래 대형 모델의 지식을 소형 모델에 압축·전수하는 기법이다. 스승 모델이 내놓은 답변을 제자 모델이
반복 학습하는 방식으로 짧은 시간에 적은 자원으로 높은 성능을 낼 수 있게 돕는다. 회사 내에서 자체적으로 활용
하면 효율을 높이는 정당한 기술이지만, 다른 회사의 기술을 베끼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고 한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최근 중국 기업이 자국 AI 기술을 훔치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난
했다.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은 “주로 중국에 기반을 둔 해외 세력이 미국 최첨단 AI 시스템을 대상으로 ‘산업적
규모의 증류’를 벌인다는 정보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AI 모델 클로드로 유명한 미국 앤스로픽은 딥시크 ·문샷 AI·
미니맥스 등 중국 3개사를 자사 모델 증류 혐의로 지목하기도 했다. 오픈AI도 딥시크가 자사 챗GPT 답변을 학습에
썼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AI 회사가 증류 기법을 쓰는 데는 구조적 이유도 있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
(GPU) 확보가 막힌 상황에서 증류는 상대적으로 적은 자원과 비용으로 경쟁력 있는 모델을 만드는 수단이기 때문
이다. 하드웨어 봉쇄를 소프트웨어 꼼수로 뚫고 있는 것이다.기술 패권 경쟁은 이제 ‘데이터 주권’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AI 불법 증류는 미·중 간 갈등을 넘어 글로벌 이슈가 될 것이다. 정당한 대가 없이 남의 기술을 복제해가는
행태는 당연히 허용될 수 없다. 공들여 발효하고, 솥을 씻고, 불을 지피는 과정 없이 잘 끓여 놓은 원액만 쏙 훔쳐 가는
격이다. '사흘 굶어 담 뛰어 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지만 물건이 아닌 기술을 훔치는 것도 엄연한 도둑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