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2.火. 맑음
외출外出.
월요일 외출은 참 드문 일이기는 하지만 미리 예정豫定하고 있었던 일이기 때문에 아침에 몇 가지 일을 간단히 정리해놓고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선...다. 집...을 나...선...다. ..나...선...다... ...선...다아...
집에서 지하철 정류장이 있는 잠실 종합운동장역까지나 신천역까지는 걸어서 15분가량 떨어져 있어서 어느 쪽으로 가도 상관은 없지만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방향을 선택한다. 우리 집과 종합운동장역과 신천역을 꼭지점으로 해서 선을 이어주면 이등변삼각형이 된다는 이야기다. 모든 평면도형 중 삼각형三角形과 원圓은 가장 기본이 되는 도형인데 나는 어떤 사물이나 상황, 사람들의 이야기도 삼각형이나 원 같은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정리할 수는 없을까를 가끔 그리고 곰곰이 생각을 해본다. 잠실 종합운동장으로 가는 길은 조용하고 한적해서 짧은 시간 동안이나마 산책을 즐기며 생각을 이리저리 돌돌 굴려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반면에 신천역까지 가는 길은 소란하고 번잡하지만 볼거리와 들을 거리가 많기에 눈과 귀가 쉴 새가 없어서 머릿속에 고여 있는 생각의 공기를 환기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구태여 어느 쪽으로 갈까를 생각하지 않아도 몸과 가슴이 원하는 곳으로 몸이 방향을 잡아주게 된다.
아, 그리고 예전에는 41번 좌석버스가 있어서 강북 시내로 나다닐 때 참 편리했었는데 왜 그 노선이 폐지되어버렸는지 모르겠다. 올림픽 공원 부근에서 출발을 한 41번 버스는 강남역과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 한강다리를 건너고 을지로와 종로2가를 거쳐 광화문과 남대문, 서울역을 스친 뒤 한국은행을 끼고 돌아서 다시 터널을 지나 한강다리를 되 건넌 뒤 고속버스터미널을 거쳐 올림픽 공원 부근 종점까지 돌아오는, 서울 시내를 찌그러진 타원형으로 운행하는 순환식循環式 노선의 버스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몇백 원인가 버스비를 내고 41번 버스에 비스듬히 누워 앉아 두 시간 남짓 서울 시내 구경을 하고 다닐 때도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지하철은 아무리타고 다녀도 그런 창밖의 풍경을 느끼는 재미는 아무래도 덜하다.
지하철이 9호선까지 있고, 그 외에도 경의선, 중앙선, 분당선, 경춘선 등이 있지만 노선이 타원형을 이루는 순환형 노선은 2호선이 유일하다. 노선路線이 거대한 타원형橢圓形을 이루다보니 자연 서울 시내 여기저기 걸치는 데가 많게 되고 그런 이유로 해서 어디를 가든지 편리하다는 말씀인데, 여기까지 듣고서는 참지 못하고 이런 젠장 4호선도 편리하다 뭐. 라든가 이런이런 지하철이 서울에만 있나 부산에도 있따아. 라고 말을 하실지 모르겠으나 그저 내 생각이 그렇다는 말씀이다. 또 삼각형과 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있으면 내 몸은 서울 시내를 타원형으로 한 바퀴 뱅 돌고 있겠지만 내 머릿속도 노선을 따라 한 바퀴 뱅 도는 기분이 든다.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는 것, 순환 노선은 인생의 행로와 너무도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그래서 지하철 2호선에 서 있거나 앉아 있게 되면 늘 뭔가를 곱씹어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내 인생길을 잘 밟아가고 있는 것인가? 시작이 끝이고, 도착점이 출발점이란 걸 잊지는 않고 있는가? 인생의 크기란 객차客車의 크기가 아니라 노선路線의 크기라는 걸 잘 알고는 있는가? 등등을 말이다.
‘평면 위의 두 정점에서의 거리의 합이 일정한 점의 자취를 타원이라 하고, 이 때 두 정점을 타원의 초점이라 한다.’
위에 쓰여 있는 타원의 설명대로 한다면 원의 중점은 한 개인 것에 반해 타원의 초점은 당연히 두 개가 된다. 초점이 한 개냐 두 개냐가 원과 타원을 가르는 중요한 성질인데 여기에서도 타원은 인생의 노선과 흡사하다는 것을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인생을 이루어가는 중심에 내가 있고, 그것을 바라보며 성찰하는 또 하나의 중심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타원이 갖고 있는 두 초점의 성질은 인생의 모범 답안 같은 것이라고 생각을 해 볼 수 있다. 모든 것이 하나의 점으로 집중되는 완전한 원보다는 이루어가는 점과 성찰省察하는 점으로 균형均衡을 이루고 있는 타원이야말로 인생人生의 노선도路線圖로는 훨씬 진화된 모습이라는 것은 그것을 읽어내는 안목만 있다면 머릿속을 깨쳐내는 눈 시원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지하철 2호선은 탈 때마다 여러 가지 배움과 교훈을 나에게 넌지시 건네준다.
만남會同.
교대역에서 3호선으로 바꾸어 탄 뒤 안국동역에서 내려 출입구 계단을 오르는데 어디선가 구수한 빵 굽는 냄새가 흘러나온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온다는 이야기도 되겠지만 어떤 때의 후각嗅覺은 시각視覺이나 청각聽覺보다 더 오랜 옛 기억을 상기想起시켜주기도 한다. 꽤 오래 전에는 아이스크림 장사 분들이 얼음과자를 나무통에 넣어 지고 다니면서 아이스 께~끼 아이스 께~끼 하고 외치며 돌아다녔고, 빵 장사 분들은 쇼빵이요~ 쇼~빵 사세요~~ 하고 외치면서 빵을 담은 통을 들고 돌아다녔다. 쇼빵이란 다름 아닌 식빵의 일본식 발음인데 그때는 아이스 께끼 만큼이나 쇼빵이 얼마나 맛이 있었던지 쇼빵 소리가 들려오면 우리 집 대문 틈새로 입을 딱 갖다 대고 쇼빵아~ 쇼빵아~ 하고 불러놓은 뒤에 엄마에게 달려가고는 했었다. 아직 따끈한 온기가 남아도는 말랑거리는 쇼빵을 손가락으로 한 점씩 뜯어 먹으면 그 구수한 냄새에 혀보다 먼저 코가 취해버렸다. 음식은 먼저 눈으로 먹고, 코로 먹고, 혀로 먹는다는 말이 과히 틀린 말이 아닌데, 거기에 더해 음식을 손으로 집어먹는 인도나 중동 일부 사람들은 음식을 오감五感을 동원해서 먹는 예술 그 자체라는 말도 과히 그른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후각으로 전해오는 그 구수한 냄새보다 한 걸음 빨리 손끝에 전해오는 말랑거리는 촉감에서 나는 이미 쇼빵에 취해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15,6년年이란 시간은 한 순간이다. 큰 아이 선빈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고, 둘째 수빈이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을 때 아이들 손을 잡고 아내와 함께 우리 가족이 처음으로 참가하고 만났던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함께 여행을 했고, 답사를 다녔고, 모임을 가졌던 근래 이야기까지를 하다보면 두어 시간은 금세 지나가는 모양이다.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그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가깝고 친밀해지면 오밀조밀한 정情도 한 겹 두 겹 쌓이게 마련이지만 이런저런 속사정도 하나둘 알아가게 되면서 대개는 더 좋은 경우가 많지만 조금은 안타까운 경우도 생겨나기 마련이다. 원래 세상사나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 부족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이어서 인데, 그런 줄 알면서도 내게 친밀한 주변에서의 일들은 항상 가슴 뭉근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앞선다.
구경.
회상廻想과 더불어 공유하고 있는 예쁜 추억에 근거한 대화는 좋은 사람과 함께 할 때면 흐뭇한 마음이 배가倍加가 된다. 그렇게 한참을 즐겁게 보내다 자리에서 일어난다. 풍문여고 옆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덕성여고 정문을 지나가면 여기는 소격동이다. 그리고 정덕 도서관까지 이리저리 옛 기억을 따라 회상에 젖어 걷다가 사간동을 지나 큰길로 나서면 바로 국립민속박물관이 보인다. 예전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었고 지금은 국립민속박물관인 이곳도 추억거리가 참 많은 장소이다. 몇 년 만에 들어가 보니 내부 구조나 전시물들이 완전히 바뀌어 있다. 전시된 유물을 따라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옮기다보면 결국 그 걸음은 차츰 집으로 향하는 걸음으로 이어지게 된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또또 한 발..자..국.. 또 또 한 발..자..국...
(- 어느 하루. -)
첫댓글 인생의 크기란 객차客車의 크기가 아니라 노선路線의 크기라는 걸 잘 알고는 있는가?
처음 알았습니다.
내 객차가 작다고, 허접하다고 투덜거렸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 작고 허접한 객차가 어느 길을 따라 얼마만큼 달렸냐이군요.
인생이 순환선과 흡사하다고 했는데....
그럼, 어디까지 가서 순환되어 오는 것입니까? 그 변환점은 어디쯤인가요?
또, 그 길이의 단위는 하루씩입까? 1년씩입니까? 10년씩입니까?
아니면 자식이 졸업하고 입학하는 시점입니까?
아니면 새 집을 사고, 적금을 하나씩 탔을때입니까?
에잇! 어디서 순환이 되든 일단 "노선의 크기"라도 길게 늘려 보렵니다. 내일부터 열심히 밟아 보렵니다.
언제 어디서든 깊은 사유가 가능하신 긴울림님의 글에서 저도 인생열차에서 탈선하지 않고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는지 반성하고 다짐하게 됩니다.
긴울림님의 하루에 과거 현재 미래가 다같이 공존하면서 가고 있는 느낌도 드네요. 긴울림님 감사합니다. *^^*
그쵸? 그쵸?
저는 당장 지금만 생각하고 살아도 빼먹은 것있고, 안 한것 있고, 잘못한 것 있고 그런데....
긴울림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총망라 해서 지내는 것 같아요.
뇌가 세 부분일까요? 좌뇌, 중뇌, 우뇌 *^^*
" 어디선가 구수한 빵 굽는 냄새가 흘러나온다" 갑자기 빵이 너무 먹고 싶어졌습니다 ㅎㅎ
그러고 보니 또 먹어 줘야 할 시간이군요.
일단 먹고 나서 생각 해보겠습니다.ㅎㅎ
푸하하하하
어찌 그렇게 순진천진한 얼굴로.....
농담 아니라는 것 아는데....
이런 말 하믄 혼나는데....
맨재기님 너무 귀여워요~~ 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