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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수사 결과를 보고 국민께서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이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는 제가 먼저 특검을 하자고 주장하겠다." 5월 9일 윤 대통령은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자리에서 소위 채 상병 특검을 받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민주당을 비롯해 줄기차게 특검을 외쳐온 야당은 격하게 반발했다. 이들은 지난 11일에도 거리로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민주당 새 원내대표가 된 박찬대의 말을 들어보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채 상병 특검에 찬성하는 국민이 57%로, 그럴 필요 없다는 국민(29%)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많았으니, "채 상병 특검은 국민의 요구"라는 박찬대의 말이 맞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든다. 저 조사에 응한 국민은 채 상병 특검의 속내를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혹시 해당 특검이 진짜로 채 상병 죽음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닐까?
먼저 채 상병 특검이 통과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 채 상병 사건은 2023년 7월 폭우로 피해가 컸던 경북 내성천에서 실종자 수색작전을 펴던 해병대원 채수근이 급류에 휘말려 사망한 일을 지칭한다. 사고 이후 정부는 예를 다해 채 상병의 죽음을 애도했다. 아들의 시신 앞에서 "이거 살인 아닌가요?"라며 절규하던 채 상병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은 감사편지를 정부에 보냈다. "전 국민의 관심과 위로 덕분에 장례를 잘 치를 수 있었습니다. 수근이가 국가유공자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도록 조치해주신 관계 당국 여러분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민주당은 채 상병 사건에 별 관심이 없었다. 예컨대 순직 사흘 후 있었던 영결식장에 국민의힘은 당대표를 비롯해 여러 인사가 참석했지만, 민주당에선 오영환 의원을 제외하곤 한 명도 오지 않았다. 그랬던 민주당이 채 상병 사건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수사단장의 항명이 있었던 직후부터였다. 민주당이 새로 개정한 법에 따르면 군에서 사망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경찰에 이첩하게 되어 있는데, 박정훈 당시 수사단장은 ‘국방부 장관이 사단장을 이첩 대상에서 빼라고 한 것은 대통령실의 외압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민주당은 2023년 9월 5일, 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안보실 관계자들을 공수처에 고발한다. 이들이 직권을 남용해 수사를 방해했다는 것. 황당한 점은 다음이다. 공수처는 민주당이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의 방해를 무릅쓰고 만들었던 조직. 가뜩이나 하는 일도 없어 세금만 축낸다는 비난을 들었던만큼 간만의 일거리가 반가울 만도 하다.
그렇다면 공수처의 수사를 지켜보는 게 맞지만, 민주당은 바로 그 다음날, 최고회의에서 특검을 발의하기로 결정하고, 9월 7일 결국 특검법을 발의한다. 10월 6일, 재적의원 5분의 3인 180석 이상의 찬성으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올려진 채 상병 특검은 숙려기간인 180일이 경과한 올 4월 2일부터 본회의 통과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민주당은 지난 5월 2일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본희의에서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켰고, 윤 대통령을 향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 것을 외치고 있다.
채 상병은 동료 해병대원 110여 명이 보는 앞에서 급류에 휘말렸다. 당시 지휘부가 구명조끼 등 안전장치를 착용시키지 않은 채 물에 들어가게 한 것은 분명 잘못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급류에 휘말렸다’는 사망원인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이 발의한 특검법도 사망원인을 규명하기보다는 수사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나를 알기 위한 것이고, 이를 통해 그들이 노리는 최종 목표는 대통령 망신주기다. 특검을 통해 대통령실을 압수수색하는 것은 필수 코스.
사정이 이렇다면 국민의힘 의원들이라도 특검의 진짜 목적을 알려줄 필요가 있지만, 국민의힘 몇몇 의원들은 오히려 민주당에 부화뇌동하는 중이다. 늘 삐딱했던 김웅은 본회의에서 찬성표를 던졌고, 안철수는 "저도 자식 둔 아버지다. 재표결시 찬성할 것"이라고 한다.
그밖에 조경태와 이번에 당선된 김재섭과 한지아까지 특검법에 찬성 의사를 밝히고 있으니, 조만간 민주당이 지휘하는 대통령 망신주기의 1막이 열릴지도 모른다. 1막이라고 표현한 것은 2막, 3막, 4막도 줄줄이 대기 중이라는 뜻. 어쩌겠는가. 이게 다 총선에서 진 업보일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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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단국대 교수·기생충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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