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컥, 겁이 났다.
망팔을 지척에 둔 나이에 ‘겁’이라니, 어쩐지 우습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다.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겁이
없어진다고들 한다. 잃을 것도, 더 바랄 것도 줄어들기 때문일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요즘 들어 자꾸
겁이 난다.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렇다면 이 겁이라는 것이, 아직 내 삶이 완전히 닳아
없어지지 않았다는 증거쯤은 될까.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남의 일 같지도 않다. 냉장고 앞에 서서 “내가 여기 왜 왔지?” 하고 중얼거린다거
나, 창문을 열러 갔다가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는 이야기들. 웃으며 넘기지만, 그 웃음 뒤에는 어딘가 불편한
기색이 묻어 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어제 일이 그랬다.
집사람이 노인복지관에서 스마트폰 강의를 듣는다며 나가면서, 밥솥에 쌀을 앉혀 놓았으니 점심때 가스레인지
에 불만 켜면 된다고 일러주고 갔다.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서재에 앉아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12시 20분. 슬슬 밥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주방으로 가서 불을 켜고는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
왔다.
그때였다. 거의 움직임이 없던 주식 차트의 캔들이 슬며시 고개를 들더니, 이내 힘을 받기 시작했다.
“어? 이것 봐라.”
나도 모르게 몸이 앞으로 기울어졌다. 눈에 불을 켜고 화면을 들여다보는 사이, 시간은 쏜살같이 달아났다.
‘아차!’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의자에서 튀어 오르듯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갔다. 이미 늦었다. 탄 냄새가 거실
가득 퍼져 있었다. 불은 여전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급히 가스를 끄고 한참 뒤에 솥뚜껑을 열었다. 다행히 밥은
바닥만 까맣게 눌어붙어 있었지만, 그 검은 자국이 괜히 마음속까지 번지는 것 같았다.
이 정도야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실수라고 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게 끝이 아니라는 데 있다.
같은 날 오후였다. 산책을 다녀와 책상에 앉으려는데 안경이 보이지 않았다. 요즘은 안경 없이는 작은 글자를 읽을
수 없다. 그렇다고 밖에 나갈 때마다 쓰고 다니자니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 그래서 늘 벗어두고 다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서재를 뒤지고, 거실을 훑고, 침실까지 샅샅이 살폈지만 안경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방금 전까지 쓰고 있었던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스치는 생각.
이게 단순한 건망증일까, 아니면… 그 다음을 쉽게 이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서랍 깊숙이 넣어 두었던 ‘예비 안경’을 꺼냈다.
그 안경은 특별한 사연을 가지고 있다. 마산에 살던 시절, 우리 집에 잠시 머물렀던 한 형님이 계셨다. 왜정시대
일본에서 살다가 해방 후 돌아왔지만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분이다. 얼마 머물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셨고,
세월이 흘러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안경을 아버지께 남겼다. 아버지도 일찍 세상을 떠나셨으니, 그 안경은 자연스럽게
내 것이 되었다.
나이로 따지면 여든은 훌쩍 넘었을 그 안경을 조심스레 써보았다.
묘하게도 글자가 또렷이 보였다. 내 눈에 꼭 맞춘 것도 아닐 텐데, 세월을 건너온 렌즈가 지금의 나를 또렷하게 붙잡아
주는 느낌이었다.
나는 잠시 웃었다.
이 오래된 안경 덕분에 당장의 불편은 모면했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개운치 않았다. 밥을 태우고, 안경을 잃어버리
고, 해야 할 일을 잊어버리는 나날들. 이것이 단순한 노쇠의 징후인지, 아니면 더 깊은 어둠의 입구인지 알 수 없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 모든 일들 앞에서 내가 ‘겁이 난다’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 겁이 나를 붙들고 있는 마지막 끈일지도 모른다. 불을 켜놓은 채 잊어버리지 않게 하고, 사라진 안경을 끝내
찾으려 애쓰게 하고, 내 삶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만드는 힘. 겁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게
될지 모르지만, 그 대신 아무것도 지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이 어설픈 건망증과 함께,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살아간다.
아직은, 겁이 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