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처세술이나 자기계발서를 찾는 이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책이 이 책들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시대를 읽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가 그런 류의
책이 추구하는 것이라면, 요즘 시중에 나와 있는 책들은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에 나오는 에피소드의
한 토막을 뻥튀기한 것이라 보는 것이 적당한 표현이라 할 정도로 그 관점이 단편적입니다.
예를 들어 디오도어 루빈이 쓴 <절망이 아닌 선택>이라는 책은 결국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나의 기대수준을 낮춰라' 는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동어반복하고 있습니다.
책에서 저자는 '행복'이라는 말과 '나'라는 말의 구조를 해체하고 그것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위한
저자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데 대부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들이 조화롭게, 혹은
그 중에 하나가 지배하는 시대에서 각자 원하건 원하지 않건 헤쳐모여 하며
살고 있는 것이 지금, 여기의 우리라면, 그러한 관점들이 문자화되어 이야기로 집대성되어 있는
것이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는 중국의 역사에서
주나라 건국 이후,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시기에서부터 진(秦), 한, 위-촉-오, 진(晉)나라에 해당합니다.
그 역사를 바탕으로 써내려간 이야기가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입니다.
그 중 삼국지는 워낙 유명한 책이라 읽어보지 않았더라도
주인공들의 이름을 한 번씩은 들어봤으리라 생각합니다. 유비, 조조, 손권, 제갈공명, 사마중달 등등.
초한지의 항우, 유방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장기라는 놀이가 생겨날 정도로 유명하기도 하죠.
열국지 역시 수많은 고사성어를 만들어낸 책이라 읽다보면 어디서 들어보았던 이야기들이 나옵니다.
결초보은, 오월동주, 와신상담, 순망치한, 경국지색, 토사구팽 등의 고사성어의 배경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고사성어의 대부분이 열국지, 초한지, 삼국지에 나옵니다.
그 중 열국지에 가장 많이 나오고, 초한지, 삼국지의 순으로 나옵니다.
읽으면서 고사성어를 하나씩 알아가는 소소한 재미가 있고, 그 배경을 알아가다보면 감동과 씁쓸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고사성어를 알아가는 지적인 만족과 더불어 각기 다른 인물들이 풀어내는 삶의 지혜를 배우기도 합니다.
이야기들이 던져주는 의미의 스펙트럼이 다양한 지라, 언제,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야기는 웃음을 주기도 하고, 씁쓸한 삶의 비애, 가슴 뭉클한 감동을 던져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릴 적에 보았던 삼국지는 등장인물들의 무용(武勇)과 탁월한 전술운용에 먼저 눈이 갔다면,
나이가 들면서 보는 삼국지는 점점 인물의 심리와 정세를 바라보는 눈, 그들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모습,
인간사의 흥망성쇠와 그 덧없음에 눈이 가게 됩니다.
시중에 여러 작가들에 의해 조금씩은 서로 다른 시각으로 엮어진 책들이 많습니다.
제 나름의 기준으로 골라 읽었던 책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열국지(列國志)
개인적으로 삼국지와 초한지보다 열국지를 탐독하기를 권합니다.
책의 밀도가 삼국지와 초한지보다 빽빽한 것도 있지만, 다양한 관점에서 시대를 읽을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합니다.
보는 관점에 따라 삼국지와 초한지보다 집중도와 재미가 조금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읽다보면 삼국지와 초한지보다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는 시야를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좌지우지하는 지금의 세계정세를 소진과 장의의 종획책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거의 정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진이라는 초강대국이 다른 여러 제후국을 흡수, 통합해나가는 과정부터,
다른 여러나라들이 살아남기 위해 강구하는 대책들이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과 유럽연합을 위시한 블록화한 국가연합들이
살아남기위해 짜내는 그것과 흡사합니다.
위의 사진에 나와있는 것은 유재주씨의 평역으로 엮어진 책입니다. 저자 자신이 단순히 번역수준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직접 춘추전국 시대의 문헌을 연구 조사하여 우리의 정서에 알맞도록 재구성한 것이어서 그들의 역사를 잘 모르는
우리가 보기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졌습니다. 작가가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해가며 정성을 들여 썼는 지는
직접 읽어보면 알게됩니다.
이외에도 만화가 고우영씨가 그린 <만화열국지>와 솔출판사에서 나온 풍몽룡 저, 김구용 역의 <동주 열국지>가
알려져 있습니다.
<평설 열국지> 유재주 저. 김영사. 전12권
1-1. 전국책(戰國策)
열국지의 브레인이라 할 수 있는 책사들의 이야기를 모은 편집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설가 조성기씨가 쓴 새롭게 읽는 전국책
두 권(술책편,평정편 두 권-실제 권당 700페이지 넘어서 분량만으로 따지면 두 권이라 하기는 애매합니다.)짜리를
읽었습니다. 열국지를 읽고, 하나의 맥을 짚어내고 싶은 욕심에서 선택했는데, 기대만큼 만족스럽지는 않습니다.
저자 자신의 소설적인 상상력을 기반으로 펼쳐낸 이야기들이 많아 유재주씨의 평설열국지에
비해 조악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문 연재를 했던 탓인지, 순전히 저자의 상상력에 의존했을 법한
성애의 묘사는 이걸 읽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갈등하게 할 정도로 불필요한 부분들이 끼어 있습니다.
다만, 책사들의 술책에 소설적 상상력을 보탠 이야기로 읽고 싶은 분들은 읽어보는 것도 괜찮겠습니다만,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전국책은 수많은 CEO들이 추천하는 책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저자의 편집본이 시중에 나와 있습니다.
2. 초한지(楚漢志)
소설다운 재미를 흠뻑 느낄 수 있는 책입니다.
열국지의 시대인 춘추전국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이 죽은 후 한나라가 건국되기까지의 혼란기가 배경입니다.
확연하게 대비되는 초패왕 항우와 한고조 유방이 주인공이며,
책을 덮을 때까지 이 둘의 대비는 읽는 이로 하여금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합니다.
한신, 장량 등의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도 항우와 유방 못지 않은 비중을 가집니다.
열국지에 비해 등장인물이 줄어든 만큼, 등장인물에 대한 좀 더 세부적인 묘사가 가능해진 덕분이죠.
그 중의 한 토막.
토사구팽, 원래 토사구팽은 열국지에 등장하는 월나라 재상 범려가 처음 한 말입니다만 그 말은 유방의 한신에 대한
처분을 두고 회자되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한신이라는 인물을 높이 평가하고 좋아합니다만, 그 결말은 참 안타깝습니다.
2008년에 이문열씨에 의해 초한지가 새롭게 옷을 입었는데, 개인적으로 저자에 대해 실망한 부분이 많아
읽을까 말까 생각중입니다. 그의 시각이 어떻게 반영되어있을 지 대략 파악이 되는 탓도 있겠지만,
그의 행보가 별로 마음에 닿지 않아서 그런 것이 더 큽니다.
초한지에서도 유재주씨는 유려한 글솜씨를 보여줍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참 공부 많이 하는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초한지> 유재주 저. 랜덤하우스코리아. 전5권
위로부터 이문열삼국지, 장정일삼국지, 황석영삼국지
3. 삼국지(三國志)
너무나 유명한 책이라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으리라 생각됩니다.
다만 저자에 따라 책이 시사하는 바는 달라집니다. 읽는 이의 취향에 따라 선택하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어느 것이 더 잘 쓰여졌다고 하기는 애매합니다.
황석영의 삼국지가 촉한정통론에 입각해 유비쪽 진영의 충의에 무게중심을 두었다면,
이문열의 삼국지는 이문열 자신의 시각에 입각해 난세의 간웅 조조에 무게중심을 두었습니다.
장정일의 삼국지는 장정일 자신의 시각에 의해 새롭게 쓰여진 듯한 느낌을 줍니다. 1권 보고 덮었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소설적 재미는 이문열의 삼국지가, 인간적인 끈끈함과 시대의 패러다임에 대한 고찰은 황석영이,
현대적인 묘사는 장정일의 삼국지가 가지는 나름의 특색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외에도 삼국지는 무수한 저자들의 손에 의해 소설, 평전, 에세이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재창조되었습니다.
골라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문열, 황석영, 장정일 삼국지 각 10권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은 초한지입니다.
가장 많이 읽은 것은 삼국지이고, 가장 무릎을 많이 치게 만들었던 것이 열국지입니다.
읽은 순서는 삼국지, 초한지, 열국지 입니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책은 열국지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같은 책이라도 읽어내는 것은 달라진다는 것을 느낍니다.
20대에 거의 매년 통과의례처럼 읽었던 삼국지가 세상을 바라보는 현실적인 시각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시절 20대에 삼국지가 아닌 열국지를 집어들었다면 다 읽어내지도 못하고 덮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 의미를 캐내는 것은 어디까지나 읽는 이의 몫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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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야 다 썼네그랴.. 분량을 줄인다고, 줄인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져버렸네...
첫댓글 제가 원하던 글이네요 막연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확실한 답이 되었네여
조상기 작가의 전국책 검색하다가 여기까지 와서 카페 가입도 하게 되었습니다.
유재주 작가의 열국지/ 초한지 찾아서 읽어봐야겠습니다.
유용한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