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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254) - 조선통신사 옛길 일본기행(2)
5.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가 돋보이는 도모노우라
4월 26일, 아침에 일어나 호텔 옥상에 있는 노천탕에 올라가니 아직 이른 시간이라 문이 잠겨 있다. 작은 도시에서 가장 높은 10층 건물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항구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아침 식시시간에 재일동포 박효자씨가 다가와 신문에 사진이 크게 나왔다고 알려준다. 전날 시모카마가리에서 신문기자가 취재에 나섰는데 일본 중부신문에 조선통신사 일행의 동정과 함께 송도원주변을 걷는 김중석 씨와 우리 내외의 모습이 크게 클로즈업된 것이다. 신문을 펼치며 아내에게 농담을 건넸다. 일본에서 두 번이나 신문화면에 등장하는 스타가 되었다고.
오전 9시에 도모노우라의 명소 탐방에 나섰다. 작은 골목에 들어서니 일본개화기의 영웅 사카모도 료마(板本 龍馬)가 기거했다는 옛 모습 그대로의 주택, 누나무라라는 오랜 사원, 조선통신사의 숙소로도 사용된 규모가 큰 사찰들,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전통가옥, 에도시대 초기부터 양조하기 시작한 약술 보명주(保命酒, 시음해보니 애주가가 이니어도 술맛이 좋다.)의 고장, 조선통신사의 행렬도를 포함한 민속자료가 풍부한 후쿠야마시 도모노우라 역사민속자료관, 세토내해의 중심항구였던 선창가, 조선통신사 일행이 가장 아름다운 경승지라고 찬탄한 복선사 대조루 등 볼거리가 많다.
4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 안내를 맡은 고령의 전문가는 그 사이에 돌아가고 그가 살던 집을 가리키는 젊은 안내인이 두 시간 남짓 짧은 시간에 역사와 전통이 깃든 작은 포구의 여러 정황을 충실하게 설명한다. 개략적인 것은 그의 설명을 통해, 어떤 것은 직관과 안목을 통해 두 번째 이곳을 찾은 느낌은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거점으로 거론될 만큼 볼거리가 풍성한 명소라 여겨진다. 역사민속자료관의 안내 자료는 도모노우라를 이렇게 설명한다.
'세토내해에서 손꼽히는 항구도시 도모노우라는 밀물과 순풍을 기다리며 번영을 누려온 바다와 관련된 역사가 많이 남아있다. 중세의 도모노우라는 항구로서의 요충지였을 뿐만 아니라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서, 근대에 들어서는 전국의 상선이 항구를 드나드는 활발한 상업도시였다. 에도막부 말기에는 사카모도 료마와 산조 사네토미를 비롯한 명사들이 큰 발자취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 또한 조선통신사를 비롯한 수많은 문인묵객이 이 지역을 방문하여 도모노우라의 풍경을 절찬하였다.'
조선통신사들이 묵었던 복선사 대조루는 사절단 일행이 '일동제일형승(日東第一形勝, 대마도에서 도쿄에 이르는 구간 중 가장 경치가 아름답다는 뜻)이라 찬탄한 경관도 아름답거니와 서울에서 도쿄에 이르는 통신사 일행의 순로와 서예작품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선인들이 스쳐간 옛 정취를 살피기에 알맞은 곳이기도 하다. 대조루(對潮樓)라는 현판 글씨도 통신사 홍계희의 아들이었던 홍경해(洪景海)가 쓴 것이다. 2011년에는 이곳에서 1711년의 조선통신사 재현행렬이 열리기도 하였다. 전날 지난 시모카마가리에서는 금년 10월에 재현행사가 열리고.
탐방을 마치고 호텔에 돌아오니 이 근처에 사는 재일동포 강정춘(여러 차례 조선통신사 걷기행사에 참가하였고 작년에는 서울-목포-부산 걷기에도 함께하였다.)씨가 승용차에 손수 담근 김치와 잡채, 부치게, 딸기 등을 한 아름 싣고 와서 일행을 반긴다. 다가와 작년에 걸으면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눈 것을 감사하기도.
호텔 3층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고 오후 1시에 오카야마(崗山)현 비전(備前)시해상공원의 숙소, 오카야마이코이노무라로 향하였다.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3시, 조일(朝日)이 뽑은 일본 백승(百勝)에 든다는 명승지의 경관이 이름에 걸맞게 아름답다. 전망이 수려한 욕탕에서 몸을 씼고 방에서 쉬려하니 엔도 단장이 문을 두드린다. 아내와 함께 인터뷰에 응하여야 한다며. 로비에서 아사히신문 비전지국장인 아베 기자와 조선통신사 걷기행사에 참여한 경위와 일본탐사의 소감을 피력하는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에 이어 실명기사까지 등장하려는가.
저녁 6시부터 8시까지의 저녁식사는 다음날 오사카에서 헤어지는 일행들의 송별회를 겸한 환송만찬이다. 서울에서 오사카까지 함께한 나카무라 다다시, 이시카와 스스무, 다카하시 기야시, 이나가키 유키, 칸 요우코 씨와 부산에서 합류한 엄영옥, 배문숙 님, 대마도에서 합류한 재일동포 이연옥 씨와 후지사와 마리 씨, 후쿠오카에서 합류한 시마무라 씨 내외, 83세의 오카다 씨, 엔도 단장의 아사히신문 선배 등이 오사카에서 작별한다. 함께한 시간의 즐거움과 석별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정겨운 시간이다. 피날레는 고향의 봄, 만남, 후루사토, 아리랑 합창으로 장식하고. 이어서 한국 팀이 별도로 한 자리에 모여 그간의 행로와 앞으로의 대응 등에 관한 토론시간을 가지며 유익한 대화를 나누는 등 하루 일정이 충실하고 빠듯하다. 잘 가세요, 잘 걸으세요, 모두들 파이팅.
6. 조선통신사 자료가 많은 우시마도의 감동 스토리
4월 27일, 아름다운 섬 사이로 떠오르는 오카야마이코이노무라의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오전 8시에 숙소를 출발하여 '일본의 에게해 - 아름다운 창'이라 불리는 우시마도로 향하였다. 30여분을 달려 우시마도 항구의 해유문화관에 도착하니 토요일인데도 직원들이 일찍 나와 멀리 찾아온 손님들을 반긴다. 문화관 안에 통신사들이 입었던 관복이 진열대에 전시되고 있는데 사무실에서 별도의 관복을 꺼내서 입으라고 건네준다. 정사, 부사, 종사관, 학예관, 무녀의 복식 등을 입고 기념촬영을 한 후 전문가의 안내로 문화관의 조선통신사 자료들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통신사 일행이 묵은 숙소로 알려진 오랜 사찰 본련사, 물이 귀한 항구에서 통신사들을 위해 별도로 판 우물, 통신사 일행이 오사카 방향으로 배를 타고 가는 해로 등을 돌아보니 12시가 가깝다.
4년 전에도 안내를 맡은 세토우치시 교육위원회의 와카마스 다카시(若松 擧史) 씨는 두 시간 가량 자료실의 그림과 자료, 통신사가 묵었던 500년 된 사찰 본련사(本蓮寺)의 역사와 문화, 500여 명의 사절단이 묵은 민가와 우물 터(1694년에 오카야마번이 외교시설로 판 우물로 수량이 풍부하고 수질이 좋았다고 함), 간만(干滿)의 차가 큰 바다의 조수와 수많은 배들이 정박한 해역들을 일일이 안내하며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하여 주었다.
그의 해설가운데는 통신사들이 입고 온 명주옷을 만져보며 당시 거친 배 옷을 입던 일본인들이 감탄하였다는 것, 조선통신사 일행 500명 등의 숙소를 마련하느라 주민들이 몇 달간 집을 비우고 다른 곳으로 옮긴 이야기, 통신사들과 함께 온 악사들의 연주와 춤사위에 열광하고 마상에서 휘호를 써 주는 글씨, 품격 있는 병풍그림 등 문인, 화가, 민간 차원의 교류가 이루어진 점, 우시마의 접대는 호화롭고 성실하였다는 것들이 들어 있다. 자료실에는 송원대사(사명당)의 연표가 붙어 있는데 그의 출생지인 밀양시와 우시마도시가 자매결연을 맺은 사실도 새로 알게 되었다.
가이유문화관의 팜프렛에는 조선통신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적혀 있다.
‘일본의 에게 해- 우시마도는 ’아름다운 창‘으로 칭송되어져, 고대 만요(萬葉, 일본설화를 모은 萬葉集이 있다.)의 시대로부터 바람과 조수를 맞이하는 항구도시로 번창하였으며 특히 에도(江戶)시대에는 조선통신사가 기항하여 당시의 역사적 유적도 많이 남아 있다. 쇄국정책의 에도시대에 일본과 조선의 양국에는 성의와 신뢰의 교섭관계가 구축되어 에도막부(江戶幕府)는 10여회에 걸친 조선통신사의 일본방문을 대환영했다. 이 자료실은 친선우호의 사절인 조선통신사의 일본 전역에 있는 귀중한 자료가 다수 전시되어 있다. 또 그 선단은 우시마도에도 기항하여 당시의 모습과 문화의 유산은 지금도 우시마도에 살아남아 있다.’
우시마도의 재방문은 나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4년 전에 이곳을 찾았을 때 들은 히가시하라 가즈오(東源 太郞) 가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내가 쓴 책, '여행에서 배우는 삶과 문화'에 수록하였는데 그 주인공인 히가시하라 씨에게 그 책을 직접 전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다. 현지에 와서 그에게 연락이 되는지 확인하니 출타하여 만나기 어렵다는 전갈이어서 관계자에게 책을 전해주도록 당부하였는데 탐방을 마칠 즈음 히가시하라 씨가 나타났다. 곧바로 일행들 앞에서 그때 적은 부분을 읽어주며 책을 증정하였다. 4년 전에 기록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곳에서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나에게는 더 큰 충격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것은 우시마도에서 대대로 살아 온 유지 히가시하라 가즈오(東源 太郞) 씨의 안내로 그의 가문에서 400여 년 간 제(祭)를 지내며 정중하게 모신다는 조선여인의 사연이다. 내용인즉 임진왜란 때 끌려와 표류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여인을 발견한 그의 선조가 집으로 데려와 극진히 간병하다가 끝내 목숨을 잃게 되니 그녀를 정성껏 묻어주고 지금까지 해마다 음력 9월 15일에는 그 후손들이 제사를 지내주고 있다는 조선장대명신(朝鮮場大明神, 그녀가 죽은 후 그의 조상이 꿈속에서 귀한 분이니 잘 모시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함)의 무덤을 둘러보며 이역만리 낯선 곳에 묻힌 이름 없는 여인의 안타까운 사연과 수백 년간 정성껏 그녀를 보살핀 히가시하라 가즈오 가문의 갸륵한 마음씨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우리를 감동케 하였다.'
우시마도 탐방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니 낮 12시, 차 안에서 도시락을 들며 오늘의 목적지인 오사카성으로 향하였다. 전국토의 8할이 산으로 이루어졌다는 일본의 진면목을 대마도에서 오사카에 이르는 여정을 통하여 실감하게 된다. 수많은 터널과 산을 지나서 오사카시내로 들어서니 광활한 평원이 펼쳐지고 화려한 고층건물과 거미줄처럼 연결된 도시고속도로, 잘 가꾸어진 공원 등이 일본제2의 도시다운 품격을 드러낸다.
오후 2시 40분, 오사카의 명소인 오사카성에 당도하였다. 오사카에서 여정을 마치는 분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눈 후 오사카 성을 돌아보았다. 8층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아름답고 2014년에 도요도미 히데요시파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자웅을 겨룬 오사카결전 400주년 행사가 열린다는 깃발이 눈길을 끈다. 한 시간여 성안에 머물다 숙소(시내 중심부에 있는 도요코 인)에 이르니 이혜미자, 조신자 씨 등 재일동포들이 미리 와서 일행들을 반긴다. 여장을 풀고 택시로 이동하여 한국인이 경영하는 한국식당에서 생맥주와 막걸리를 곁들여 푸짐한 저녁을 들었다. 매일 풍성한 음식을 대하니 모두들 체중이 늘었다며 즐거운 비명이다.
식사 후 일부는 걸어서, 일부는 택시를 타고 숙소로 향하는데 같은 차를 탄 재일동포 이광길 씨가 오사카의 번화가를 들러 가자고 제안한다. 그의 안내로 신시바시, 도톤보리 등 오사카의 최번화가를 둘러보고 숙소에 돌아오니 저녁 8시 반이 넘었다. 여러 차례 오사카를 찾았으나 도톤보리와 신사이바시를 돌아보기는 처음, 다코 야키(동그란 도너스 모양인데 속에 낙지가 들어있다)라는 이름난 음식을 만드는 가게도 둘러보고 젊은이들의 데이트코스이기도 한 신시바시 다리를 붐비는 인파 속에 섞여 걷는 것도 묘미가 있다. 오늘로 차량 이동의 순례코스를 마치고 내일부터 오사카~도쿄간 도보장정이 시작된다. 새로운 기분으로 힘차게 걷자.
7. 하천 따라 걸은 오사카~히라카타의 아름다운 길
4월 28일. 오사카는 맑고 화창한 날씨다. 아침 7시 15분에 호텔을 나서 오사카 시청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시청은 숙소에서 10여분 거리의 가까운 곳이다. 시청에서 출발행사를 갖는데 1일코스로 참여하는 일행이 30명 넘게 합류한다. 8시에 간단한 출발행사를 갖고 스트레칭을 한 후 8시 15분에 60여명의 일행이 줄을 지어 시청을 출발하였다. 오늘의 걷기행로는 오사카에서 히라카타까지 28km.
출발지점에서부터 잘 정비된 하천으로 들어선다. 교토까지 이어지는 요도가와 하천이다. 얼마 가지 않은 곳에 엤날 중국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도진간기(唐人雁木)라는 지점이 나오고 이어서 조선통신사가 교토까지 가는 뱃전이 나타난다. 강변길이 아름답고 운치가 있어서 걷기에 쾌적하다. 한참을 걸어가니 살림살이가 널려 있는 천막들이 나타난다. 집 없는 이들이 사는 천막촌이란다. 하천 길 따라 화폐를 주조하는 조폐공장이 있고 백제인의 도래를 알려주는 기념비도 보인다. 한때는 홍수피해가 극심하였는데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정비한 이후로는 안전하다는 하타나카 가주이치 코스리더의 설명이다.
휴일을 맞아 강변에는 많은 이들이 몰려나와 야구, 축구, 게이트볼, 테니스, 자전거타기 등 여흥을 즐기는데 세 시간쯤 걸어서 점심장소로 택한 모리구치(守口)강변공원에는 어린이축제가 한창이다. 마침 12시에는 민족음악순서로 한국 어린이들이 사물놀이공연을 펼치는 시간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10여명의 어린이들이 노래에 맞춰 신명나게 북과 장구, 꽹가리를 두들긴다. 공연이 끝난 후 엔도단장과 선상규회장이 다가가 격려를 해주며 페넌트를 건넨다. 때에 맞춰 조선통신사 우정걷기를 축하하는 이벤트가 된 것을 감사하며.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고 12시 반에 오후 걷기에 나섰다. 나이든 이들이 앞장서서 씩씩하게 잘 걷는데 갑자기 졸음이 쏟아져 30여 분 간 힘들게 따라가며 혹시나 사고를 당할까 겁이 나기도. 군대행렬 중 졸면서 걷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실제상황이 도니 위험한 일이다.
중간에 한 번 휴식을 갖고 오후 3시에 강변길을 벗어나서 히라카타역 쪽으로 들어선다. 히라카타는 예전에 오사카와 교토의 중간지점에 있는 숙박지로 옛 모습을 갖춘 숙박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동네전체가 숙박시설지다. 가는 길에 있는 시립히라카타숙박자료관에 들러 19세기에 지은 건물내부를 둘러보고 강변의 배에 머무는 손님에게 배를 이용하여 식사를 제공한 유물도 살펴보았다.
역 앞의 공원에서 오늘의 걷기행사를 마무리하며 1일 참가자들에게는 한글로 제작한 참가증을 수여하였다. 일본인들이 한국어로 된 증서를 좋아한다고. 같이 걸은 일행 중에는 70대에 한국어를 배운다는 동호인(이-츠카, 배낭에 '같이 걸어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도 있어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기도. 손으로 만든 한국지도에 주요도시를 한글로 적어놓았는데 내가 사는 광주도 한글로 표기되어 있어서 사는 곳을 일러주니 쉽게 이해한다. 한국여자가 일본 여자보다 미인이라고 말하기에 한국에서는 남남북녀(南男北女, 남쪽의 남자와 북쪽의 여자가 멋있다.)라고 평하여 북쪽의 여인들이 더 미인이라고 말하니 일본에서는 교토, 니이가다, 아키다 여인들이 미인이라고 알려준다.
오후 4시에 숙소에 여장을 풀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호텔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식당가에서 맥주를 곁들
여 여러 가지 구은 음식을 들고 나니 아직 메뉴코스가 끝나지 않았는데도 배가 부르다. 모처럼 28km를 걸으니 약간 피로한데 할 일이 남아 있다. 매일 기록하는 글쓰기, 방이 비좁아 로비에 나와 기록을 끝내니 저녁 9시가 넘었다. 푹 쉬고 내일 걷기에 대비하자.
* 5월 11일에 히라카타시에서 백제사적(百濟事跡)을 조명하는 행사가 열린다. 숙소에서 15분 거리에 백제왕신사가 있어서 선상규회장과 김중석씨가 그곳을 다녀왔다. 아내와 나는 6년 전에 한국문화가 일본에 전해진 경로를 탐방하는 행사에 참여하여 더 자세한 것을 살핀 적이 있다.
8. 역사와 문화도시, 교토에 입성하다
4월 29일, 오래만에 약간 더운 날씨다. 아침 8시에 전날 마지막도착지였던 히라카타의 전철역에서 출발행사를 가졌다. 일본에서는 매일 간단한 출발식을 치르는데 대표로 다음과 같이 인사말을 했다. '오늘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 히라가다에서 교토까지 여러분과 함께 걷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행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정규 멤버 외에 1일 참가자가 16명이다. 대부분 전날 걸었던 이들인데 그중에는 오사카에서 한 시간거리인 히메지에서 온 나카우치 가오리와 나카우치 미노리 모녀, 할아버지와 함께온 중학생, 재일동포 조신자, 강복자 씨 등도 들어 있다.
8시 15분에 공원을 출발하여 전날처럼 요도가와 강변을 따라 걸어가는데 강둑의 샛노란 유채꽃이 눈길을 끌고 둑 아래 경작지에는 보랏빛 자운영이 한창이다. 반대편 강변공원에는 잘 가꾸어진 골프코스에서는 동호인들이 망중한을 즐기고. 전날 대화를 나눈 이-츠카 씨가 골프를 치느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세 시간쯤 걸으니 요도가와 하천이 끝나고 교토관내로 들어선다. 낮 12시, 교토로 이어지는 옛길을 지나 조선통신사 일행이 배를 타고 와서 말과 가마로 갈아타고 에도로 향하였다는 요도성에 이르니 뱃전에 조선통신사라고 쓴 깃발을 단 작은 모형배가 정박해 있다. 나카무라 스스무 일본걷기 팀의 간사가 모형배의 깃발 아래에 걷기행사의 페넌트를 꽂는다.
요도성에서 나오니 교토경마장 앞을 지난다. 주차공간이 과천의 경마장보다 훨씬 넓어보인다. 경마, 경정, 파친코, 마작 등 사행산업이 성황을 이루는 일본사회의 또다른 면모가 엿보인다.
세 시간 넘게 걸어 12시 45분에 큰길가의 카페 조이(JOY)라는 경양식지에서 각기 식성에 맞춰 점심을 들고 1시 40분에 오후걷기에 나섰다. 강변을 따라 걷던 때와 달리 교통신호에 자주 행진이 막혀 진행속도가 전날보다 느리다. 역사와 문화의 전통이 깃든 도시를 찬찬이 둘러보며 네 시간여 만인 오후 5시 30분에 경판3조역(京坂三條驛) 앞 가모가와 천변의 목적지에 도착하였다. 도중에 아이스케이크를 먹으며 잠시 쉬기도 하였는데 아내를 비롯한 여러 명이 휴식 때마다 발을 주무르며 힘든 표정이다.
전날에 이어 1일 참가자들에게 참가증을 수여하고 현지의 독지가가 사온 캔 맥주를 하나씩 들며 목을 축인 후 6시 넘어 대절버스를 타고 도심에서 떨어진 숙소로 향하였다. 이틀간 묵을 숙소는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유스호스텔, 여장을 풀고 숙소의 식당에서 특별메뉴로 주문한 저녁을 들고 나니 9시가 가깝다. 내일은 문화탐방 휴식일, 이틀간의 강행군으로 피곤한 몸도 풀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자.
* 행사를 공동주최한 국제신문사에서 선상규 한국체육진흥회장에게 2년 전의 제3회 조선통신사 한일우정걷기 서울~부산 기록 자료가 있느냐고 연락이 왔다. 선 회장이 행사참여기록을 구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마침 가지고 온 노트북에 그때 쓴 행사참여기가 저장되어 있어서 이를 메일로 송부하였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편리함을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