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가시
양 효 숙
남편은 아무 날도 아닌데 꽃을 사들고 왔다. 꽃을 지키기 위해 가시를 함께 지녔다는 장미꽃을 뒤로 하고 밤에 마실을 간다. 마을버스 안 라디오에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창 밖에 있는 사람들과 버스 안 사람들을 훑어보며 가사를 음미한다. 전철처럼 마주 보지 않고 놓인 의자에 앉아 앞 사람의 뒷모습을 본다. 사람의 뒷모습은 순하고 착하게 생겼다.
어떤 사람이 누군가를 향해 소리치는 바람에 시선이 하나로 모아졌다. 좁은 버스 안에서 젊은 남녀가 사랑을 속삭이는 게 불편했던 모양이다. 당사자들만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드라마처럼 지켜만 봤고 연인들은 따가운 눈총에 문이 열리자 내린다. 술 냄새 풍기는 아저씨 주위에서 사람들은 나름 긴장한다. 그 모습은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아무 것도 모른 채 새로 탄 사람들이 또 다른 분위기를 만든다. 저녁 여덟 시 무렵의 마을버스 안은 그야말로 바람 잘 날이 없다.
휴대폰을 꺼냈다. 이름과 얼굴이 생소한 남자동창의 부고문자가 스팸문자와 함께 지워졌다. 마흔 셋에 훌훌 떠나기엔 조금 억울했겠다. 울타리를 누비던 덩굴장미가 이파리를 떨구더니 가시들을 내어 놓는다. 더 억세진 가시 줄기들은 꽃이 아닌 울타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를 지키는 일이 내 울타리를 지키는 일과 맞닿는다. 내 안에 숨은 가시들은 나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는 일과 어떤 관계일까. 십 개월 가깝게 맞으러 다니는 수지침은 나를 지키는 일이요 내 가족을 위하는 일이었다. 부드러운 손바닥과 다르게 손등은 까칠했었다. 폐에 열이 많아 피부가 트고 간에 열이 있어서 성격 또한 까칠하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다. 거칠어진 맨손을 내밀었다.
누구한테 손 벌리며 살지 말라 했는데 최선생님 앞에서는 다소곳이 손을 내민다. 손바닥 위로 수지침이 꽂힌다. 1밀리의 침이 꽂힐 때마다 쫙 펼쳤던 손바닥이 움찔움찔 모아진다. 독립운동을 하며 고문 받았던 분들이 뜬금없이 떠오르고 예수님의 손바닥마저 스친다. 침술사가 된 최선생님이 청바지를 빳빳하게 다려 입고 여느 때처럼 수지침을 놓는다. 침이 제 자리에 꼿꼿하게 서있다. 다침한 자리에는 구멍이 숭숭 뚫릴 것만 같다. 수지병원으로 변한 컨테이너박스 안이 덥다. 에어컨을 리모컨으로 조절하듯이 몸 속 열기도 조절하려 한다. 수지침으로 혈액순환을 시키고 장기에 있는 열독마저 빼낸다.
엄지와 검지손가락은 침을 놓지 않아 비교적 자유롭다. 종이컵에 따라놓은 냉수를 마시며 긴장을 식힌다. 따끔거리는 통증을 주먹 쥐며 참아낼 수도 없다. 통증을 고스란히 껴안을 때 두 손은 고슴도치 손으로 변해간다. 내 손이지만 내 손이 아닐 때도 있다. 오른 손의 침을 왼 손이 뽑고 왼 손의 침은 오른 손이 뽑아준다. 뽑은 침을 소독한 후 침통에 꽂아두고 맞기를 반복한다. 다이어리에는 생리 날과 침 맞는 날이 붉게 표시된다. 내 몸과의 친밀한 사귐의 시간이다. 냉랭하던 손이 따뜻하고 각질이 일어나던 까칠한 피부도 부드럽다.
최선생님은 시인이다. 사랑을 테마로 시를 쓰던 분이 수지침사가 되어 일침을 놓는다. 시인의 말이 가슴 뻐근한 통증을 주듯 수지침사의 침도 마찬가지다. 침의 개수가 점점 늘어나 200여개가 넘게 꽂힌다. 하지만 두 눈은 맥없이 졸린다. 부교감신경이 항진돼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무조건 좋은 증세란다. 혹여 졸다가 손바닥을 짚는 바람에 침이 박혀도 아무 부작용이 없단다. 침을 뽑을 때마다 핏방울이 맺힐 것 같은데 그것도 아니다. 피가 나오면 오히려 산삼을 먹은 효과라니 내 손과 네 손 상관없이 피만 보면 좋다고 소리친다. 일주일에 두 번 가까운 문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여서 침을 맞는다. 작품을 놓고 합평하는 분위기와는 다르다. 서로의 몸 상태를 먼저 읽어주고 알아봐 준다. 잘 먹고 소화 잘 시켜서 배설하는 일이 관심사다. 어떻게 쓸 것인가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맞닿았다. 살아가고 살아내는 일이 치열할 때 글은 저절로 맺힌다. 숨은 가시마저 자원으로 사용한다. 수지침을 하나하나 뽑아내며 터지는 핏방울 속에서 가시를 본다.
침을 놓는 손놀림에 믿음이 간다. 시인의 손길과 침술사의 손이 하나 되어 아름답다. 최선생님 주위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고3처럼 잠을 자며 봉사하는데도 지친 표정이 없다. 사는 날 동안 사람들과 어우러져 제할 일을 찾았다며 웃을 뿐이다.
작은 컨테이너박스로 지어진 최선생님의 사무실은 시화전을 상시 여는 공간처럼 보인다. 자작시가 크게 내걸려 있고 다양한 시들이 액자에 들어가 있다. 최시인은 이제 수지침으로 시를 쓴다. 톡톡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처럼 침관을 통해 침이 떨어질 때마다 통증사이로 전해지는 감동이 있다.
서로의 손을 잡으면 열독이 저절로 빠져 나간다. 몸 속 열독은 수지침이 빼주고 마음의 열독은 좋은 사람이 빼주는 거로구나. 수지침을 뽑고 나면 손이 뻣뻣하다. 남의 손처럼 뻣뻣한 손을 마주 잡고 부비면 금세 따뜻해진다. 빼놓았던 수지반지를 제자리에 끼운다. 손이 놀면 가난하게 산다고 끊임없이 손을 놀리는 엄마 손가락에도 수지반지를 끼워드렸다. 이따금씩 가시가 만져진다. 장미꽃을 지키기 위해 함께 피어났다는 그 가시를 만진다. 하지만 세상에는 가시 없는 꽃이 많아 보인다. 아니 더 많아 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