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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을 따다줘] 12
1. 씬. 강하의 집 앞 (밤)
-11회 연결 상황에서.
빨강 : (코를 찡끗하며) 변호사님, 술 드셨어요? 변호사님? (조심스럽게 흔들면서) 변호사님?
강하 : (눈을 뜨는)
빨강 : 왜 여기서.....
강하 : (빨강의 머리를 당겨 끌어안는)
빨강 : (놀라서 눈이 커지는)
강하 : 너까지 성가시게 하지 마. 너까지.....성가시게.... 제발 그러지마.
빨강 : (머리 떼어내려고 하면서) 변호사님?
강하 : (자신을 멍하니 보는 빨강을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가져가는데)
빨강 : (굳어져서) 왜 이러세요? 변호사님?
강하 : (그제야 정신이 드는 느낌으로 빨강을 확 밀치는)
빨강 : (당황해서 보는)
강하 : (화가 난 듯 집으로 들어가는)
빨강 : (여전히 멍한 느낌으로 그런 강하를 보면서 서있는)
2. 씬. 거실 (밤)
-준하, 남이 안고 어르고 있는.
준하 : 임마, 형이랑 누나들은 다 자는데, 왜 아직 안자? 새나라에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거야.
-들어오는 강하.
준하 : (일어서며) 지금 와?
강하 : (남이 안고 있는 모습을 보는)
준하 : 다 자는데 혼자 칭얼거리고 있어서, 애들 깰까봐 데리고 나와 있었어.
강하 : (무시하고 올라가는)
준하 : (남이에게) 저 아저씨는 원래 캐릭터가 저러시니까 네가 이해해라.
-하는데, 들어오는 빨강.
준하 : 큰 누나 왔다, 남아.
빨강 : (멍한 표정으로)
준하 : 빨강씨?
빨강 : 아, 네, 왜 남이를?
준하 : 무슨 일 있었어요?
3.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화가 나서 옷을 벗어던지는.
4. 씬. 2층 욕실 (밤)
-강하, 샤워하고 있는. 그러다 벽을 손으로 치면서.
강하 : 정신 차려, 원강하.
5. 씬. 지하방 (밤)
-빨강, 남이에게 우유 먹이며 멍하니 앉아있는. 아이들 모두 잠들어 있고.
강하의 얼굴이 떠오르는.
강하 : 너까지 성가시게 하지 마. 너까지.....성가시게.... 제발 그러지마.
빨강 : (머리를 흔드는)
6. 씬. 식당 (밤)
-빨강, 들어오면, 준하, 커피잔을 들고 돌아서는.
준하 : 왜 안자고 나와요?
빨강 : 오늘 밤도 밤새서 일하시게요?
준하 : 그렇죠 뭐. 빨강씨는 왜?
빨강 : 쌀도 씻어놓고 다림질도 좀 하려구요. 머리 뒤숭숭할 땐 일하는 게 최고라서요.
준하 : 머리가 왜 뒤숭숭한데요?
빨강 : .....
준하 : 비밀 결사대 조직원들끼리도 비밀 있는 거예요?
빨강 : 그, 그냥요.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잘 할 수 있나 뭐 그런 거 생각하다보니.
준하 : 부탁 하나 할까요?
빨강 : (보면)
준하 : 나한테까지 비밀 같은 거 만들지 말아줘요. 다가가고 있는 사람 맥 빠지니까. (나가는)
빨강 : (정말 복잡하다)
7. 씬. 강하의 집 전경 (새벽)
8. 씬. 거실 (새벽)
-빨강, 지하방에서 나오는데, 강하, 2층 계단에서 양복 차림으로 내려오는.
서로 어색하게 보는.
빨강 : 식사 안하시고 출근 하세요?
강하 : 어젯밤에 술이 과했던 같은데....
빨강 : (보면)
강하 : 우리 집 앞에서 만났습니까?
빨강 : ....아니요. 그런 적 없는데요.
강하 : (나가는)
빨강 : .....
9. 씬. 길 (새벽)
-운전하는 강하, 차를 세우고 핸들을 주먹으로 내려치는.
10. 씬. 식당 (아침)
-빨강, 준하, 태규, 동생들 식사하고 있는.
태규 : 자기? 이따 밤에 시간 있지?
빨강 : 자기란 소리 하지 말랬지.
태규 : 시간 있어? 없어?
빨강 : 왜?
태규 : 내가 친구 놈들 잘 꼬셔놨거든. 오늘 밤에 다시 와서 보험 설명 좀 해봐. 어쩌면 계약 할지도 몰라.
초록 : (태규, 어깨 다독이며) 바로 그거예요. 오빠.
태규 : (브이 자 그리는)
11. 씬. 정회장 서재.(아침)
-정회장, 의자에 앉아있고, 서있는 재영.
재영 : 도와주세요, 할아버지.
정회장 : (보면)
재영 : 강하 오빠와 결혼하고 싶어요.
정회장 : 이놈아, 그런 일은 너희 둘이 결정을 해야지.
재영 : 강하 오빠, 할아버지 말씀은 거역 못할 거예요.
정회장 : 강하 그 놈이 누구 말은 듣는 놈이냐?
재영 : 많이 애썼어요. 저 태어나서 지금까지 강하 오빠만 바라봤어요, 할아버지. 강하 오빠 놓치고 싶지 않아요.
할아버지한테 이런 말씀 드리는 거 정말 자존심 상하지만, 그래도 매달려 볼 데라곤 할아버지 밖에 없어서.....
저 애원하는 거예요.
정회장 : .....
12. 씬. 회사 복도 (아침)
-강하, 걸어오면, 기다리고 있는 은주.
강하 : (냉정하게 스치고 가려고 하면)
은주 : (앞을 가로막으며) 엄마 전화 그런 식으로 끊는 거 매너 아니야, 너.
강하 : (지나치려고 하면)
은주 : 얘기 좀 하자구, 얘기 좀.
-그 모습을 멀리서 걸어오다가 보는 재영.
강하 : 무슨 얘길 더 해요?
은주 : 마지막이라구, 정말 마지막이라니까. 너도 내가 돌아와 사는 거 원치 않잖아?
강하 : 맘대로 하세요. 어차피 마찬가지 아닌가요? 몇 년에 한 번씩 나타나서 뜯어가는 거나 뭐 다를 것도 없을 거 아니에요.
재영 : (이상한 생각이 들면서 조금씩 다가오는)
강하 : 하지만 이것만 알아두세요. 돌아오셔서 사신다고해도 다시는 봉 노릇 하는 일 없을 거란 거요. (걸어가는데)
재영 : (앞에 서고) 누구야? 어제도 찾아왔던 그 분 아니야?
강하 : (걸어가 버리면)
은주 : (뒤에서 소리치는) 원변호사님, 우리 자주 좀 봐야겠네요.
강하 : (서늘한 표정으로 걸어가고)
재영 : (중간 지점에 서서, 걸어가는 강하와 묘하게 웃으며 돌아서는 은주를 바라보며, 의아한 느낌이 드는)
13. 씬. 회사 복도 (낮)
-빨강, 은말, 진주, 긴장한 표정으로 현금 지급기 앞에 서있는.
진주 : 원변호사가 최저생계비는 빼고 빠져나갈 거라고 했다면서. 어서 비밀 번호 눌러봐, 어서.
은말 : 그 정도라도 나오면 그게 어디냐? 월급날 한 푼도 못 받는 것만큼 허망한 일이 없는데.
빨강 : (긴장한 표정으로 비밀 번호 누르는)
-164만원 잔고 뜨는.
빨강 : 어....어.....(놀라서 눈 커지는)
진주 : 이, 이게 얼마야? 너 실적 이렇게 많이 나온 거야? 이게 최저생계비면 다 받았으면 얼마라는 거야.
빨강 : 아닌데, 이럴 리가 없는데.
은말 : 왜? 뭐가 이상해?
빨강 : 너무 많아. 뭐가 잘못 된 거 같아.
은말 : 회사에서 그런 실수를 할 리가 있냐?
-장수, 손에 비디오 테잎이나, CD 들고 오면서.
장수 : (호들갑스럽게) 빨강씨?
-세 사람 모두 돌아보면.
장수 : 내가 감이 이상하다고 했죠? 이거 뭐가 있는 사건입니다.
빨강 : .....
14. 씬. 회사 내 CC TV 실 정도 (낮)
-장수, 빨강, 은말, 진주 CC 티브이 화면 보는.
장수 : (화면 돌려보면서) 제가 보험 사고 증거물로 쓰겠다고 복사를 해왔거든요. 사고 현장엔 cc tv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결정적인 단서는 없지만 바로 전 구간에 이런 게 찍혀있어요. 이거 빨강씨 아버님 차 맞죠?
빨강 : 네, 맞는 거 같아요.
장수 : 그 전 구간하고, 그 전 구간에도 아버님 차를 뒤쫓는 트럭이 한대 있습니다.
은말 : 정말 그러네.
진주 : 그럼 이게 어떻게 되는 거야? 뺑소니 사고였다는 거예요?
장수 : 꼭 그렇지도 않은 거 같습니다. 단순한 뺑소니 사고 같지는 않다구요.
빨강 : 그럼요?
장수 : 정확하게 cc tv가 설치되지 않은 장소에서 사고가 일어난 점을 감안해 볼 때
이건 단순한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감이 팍 오거든요.
은말 : 아, 어렵게 말하지 말고 쉽게 풀어서 좀 해봐. 단순한 사고가 아니면?
장수 : 이건 프로의 냄새가 나요.
빨강 : (보는)
장수 : 완전 범죄를 노린 프로의 솜씨 같다는 거죠.
빨강 : 무슨 말씀인지.....
은말 : 그래. 나도 무슨 말인지 통 모르겠네. 빨강이 엄마, 아빠가 누구랑 철천지 원수질 양반들도 아닌데.
프로씩이나 되는 사람이 이런 범죄를 저질렀겠어?
진주 : 그래요, 그건 좀 이상해요.
빨강 : ....
장수 : 아닙니다. 이건 어쩌면 엄청난 음모가 숨어있는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빨강 : .....
15. 씬. 회사 복도 (낮)
-멍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빨강, 은말, 진주 따라 오고.
은말 :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잘 좀 생각해봐. 누구랑 싸우고 그러신 적 없는지.
빨강 : 없어, 그런 사람.
진주 : 그건 내가 보장해. 나도 빨강이 엄마, 아빠 아는데, 세상에 법 없이도 사실 분들이었잖아.
은말 : 하지만 이차장이 저렇게 감이 팍팍 온다면서,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는 사건일 수도 있다고 큰 소릴 치잖냐?
잘 좀 더듬어봐, 빨강아. 동네에서 싸움 같은 거 하신 적 없는지.
빨강 : 없어. 우리 엄마, 아빠, 누구랑 싸우시는 거 한 번도 본 적 없어.
진주 : 이차장이 계속 조사를 해보겠다니까 기다려보자. 잘 하면 트럭 번호 알아낼 수도 있다고 하잖아. 근데....
은말 : 뭐?
빨강 : (보면)
진주 : 저렇게 조사하고 그러는 거 보니까 형사 영화에 나오는 사람 같지 않아?
은말 : 넌 지금. 너 설마 한순간에 확 반하고 그런 거야?
진주 : 아니야. 나 일 하러 간다. (걸어가는)
은말 : 쟤 좀 이상하지?
직원 : 할머니? 또 일 안하시고.....
은말 : 아, 네. 지금 가고 있어요. (얼른 뛰어가는)
빨강 :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은)
장수E : 이건 어쩌면 엄청난 음모가 숨어 있는 사건일 수도 있습니다.
16. 씬. 정회장 사무실 (낮)
-정회장, 앉아있고, 들어오는 강하.
강하 : 부르셨습니까?
정회장 : 앉거라.
강하 : (앉고) 오정애씨 행방은 계속 알아보고 있습니다.
정회장 : 강하야?
강하 : 네.
정회장 : 우리 재영이 녀석 말이다.
강하 : .....
정회장 : 그 녀석 태어나서 지금까지 응석이라는 걸 부릴 줄 몰라. 애기 때부터 떼라는 걸 쓰는 걸 본 적이 없어.
하나 밖에 없는 손주 놈이니 이뻐라 하기도 하고, 그러면 할애비 상투를 잡으려고 할만도 한데,
어린놈이 워낙 눈치가 빨라 그런지 그 놈은 그래본 적이 없어. 어쩌면 그게 내 탓이겠지.
지 부모와 내가 편한 사이가 아닌 걸 너무 일찍 눈치 채버려서 그런 걸게야.
강하 : .....
정회장 : 그래서 그 놈이 난 좀 아프다. 강하야?
강하 : 네.
정회장 : 그 놈, 너하고 많이 닮지 않았냐? 너희 둘, 부모 때문에 아픈 거, 많이 닮은 거 같지 않느냔 말이다.
강하 : ......
정회장 : 그 놈이 말이야. 오늘 나한테 애원이라는 걸 하더구나.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쉬운 소리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놈이
할아버지, 도와주세요, 그래. 그래서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그 놈이 오죽 했으면 나한테까지 저럴까 싶어서, 널 불렀다. 그 놈.....네 짝으로 안 되겠느냐?
강하 : .....
정회장 : 응석 한번 맘껏 부리지 못하게 만든 못난 할애비가 묻는 게다.
강하 : 죄송합니다, 회장님.
정회장 : .....
강하 : 전 재영이를 여자로 본 적이 없습니다.
정회장 : (암담하게 보는)
강하 : 죄송합니다.
17. 씬. 커피숍 (낮)
-카드사 직원, 빨강 앉아있는.
빨강 : 경리부에 가서 알아보니까 카드사에서 월급 차압을 취소했다고 해서요. 어떻게 된 일인가 해서, 이렇게.
직원 : 그게요. 어떻게 된 거냐면 말이죠.
빨강 : 네.
직원 : 제가 힘 좀 썼습니다.
빨강 : 네?
직원 : 쭉 따라다니면서 보니까 애까지 업고 일하러 다니는 딱한 처지더라 말이죠. 저도 인간인데, 없는 사람 형편
헤아릴 줄도 알고, 눈물도 있고, 인정도 있고, 그런 거 다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회사에 말했습니다.
이건 안 된다. 안 되는 일이다. 물에 빠진 사람, 작대기로 물속에 쑤셔 넣는 일이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
이 사람은 믿을만하다. 한번만 기회를 주면, 어떻게든 카드 빚 갚을 사람이다. 내가 그랬습니다.
빨강 : (벌떡 일어나는)
직원 : (화들짝 놀라는) 왜?
빨강 : (넙죽 인사하며)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 은혜 평생 안 잊겠습니다.
직원 : 아니 뭐 그렇게까지....
빨강 : 나가시죠.
직원 : 어딜?
빨강 : 오늘은 우선 30만원만 갚으려구요. 다음 달 부터는 더 많이 갚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18. 씬. 길 (낮)
-걸어오는 빨강.
빨강 : 잘해야 해, 진빨강, 다들 이렇게 도와주시려고 하는데 정신 번쩍 차리고 잘해야 하는 거야.
(핸드폰 울리고) 네? JK 생명 FC 진빨강입니다.
19. 씬. 장례식장 (낮)
-빨강, 급하게 들어오는.
가족들 앉아있고, 중년여자의 사진이 영정으로 걸려 있고.
빨강 : (인사하고) 진빨강입니다.
20. 씬. 장례식장 일각 (낮)
-빨강, 상주인 중년 남자 서있는.
남자 : 어떻게 이럴 수 있냐구요? 입원비 청구 했을 때는 아무 말 없이 지급해줬다가,
막상 사망하고 나니까 자필 사인이 아니라서 사망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냔 말예요?
빨강 : 죄송합니다, 제가 회사에 가서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남자 : 나 재판할 거니까 알아서 해요. 아무리 거대 보험사하고 소송해서 이길 확률이 없다고 하지만
이렇게 억울한 경우엔 별 수 없지 않겠어요?
빨강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21.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책상 앞에 앉아있고, 그 앞에 서서 서류 내미는 준하.
준하 : 점심은 먹었어?
강하 : (서류 넘기는)
준하 : 아침도 안 먹고 출근 했잖아?
강하 : 검토해 볼 테니까 나가라.
준하 : 왜 자꾸 밥을 굶는 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 형 이러면 신경 쓰이니까. (하는데 뛰어 들어오는 빨강)
강하 : (확 인상 구겨지면서) 이런 식으로 뛰어드는 거 이젠 습관인가 보죠?
빨강 : 문영옥 고객 사망 보험금 지급 문제로 왔는데요. 입원금은 지급 했으면서, 사망 보험금은 자필 사인이 아니라서
지급 할 수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강하 : (일어서며) 입원금 지급 땐 자필 사인에 대한 조사는 하지 않으니까요.
빨강 : 그럼 뭐예요? 작은 돈은 주지만, 큰 돈일 때는 못준다 그거잖아요?
강하 : 그 사인 누가 한 겁니까?
빨강 : (말문이 막히고)
준하 : (그런 빨강을 보고)
강하 : 자필 사인 아닌 건 맞지 않나요?
빨강 : 제....제가 했어요. 그렇지만 그때 손을 다치셔서 제가 나중에 문제가 될까봐, 문영옥 고객님 손을 붙잡고 했어요.
정말이에요. 정말이라구요.
준하 : 고객이 도움을 받아서 하긴 했지만, 직접 한 거면 문제없는 거 아닌가?
강하 : (신경질적으로) 넌 빠져 있어.
빨강 : 하늘에 두고 맹세할 수 있어요. 저 혼자 한 게 아니에요. 제가 고객님 손을 붙잡고.
강하 : 그런 건 자필 사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 정도도 모릅니까?
빨강 : 그럼 어떡해요? 손을 못 쓰시는 상태였는데.
강하 : 그럼 계약을 하지 말았어야죠. 자필 사인을 하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던 거 아닙니까?
빨강 : 서너 달이나 손을 못 쓰신다고 해서 한 거예요.
강하 : 지금 이러는 거 고객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는 거 같죠?
빨강 : .....
강하 : 회사 변호사에게 항의하고 떼쓰고 이러는 거 고객을 위해서인 거 같죠? 착각하지 말아요. 진빨강씨.
댁의 그 작은 실수 하나가 고객한텐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나가봐요, 진빨강씨.
22. 씬. 회사 복도 (낮)
-힘없이 걸어 나오는 빨강, 준하.
준하 : 너무 낙심하지 말아요. 나도 다른 구제 방법이 있나 알아볼 테니까....
빨강 : 맞아요.
준하 : (보면)
빨강 : 변호사님 말이 다 맞아요. 전 늘 이런 식이예요.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은 거 맞아요. 그냥 실적 올리는 거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어요. 불입금이 큰 보험이라, 문제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잠시 했지만 무시 했어요.
고객님이 손 나은 다음에 직접 사인하는 게 났지 않겠냐고도 하셨는데 (울먹해지면서) 제가 우겼어요.
아무 문제없을 거라구. 제가 다 알아서 하겠다구. 아무 것도 알아서 하지도 못할 거면서, 그럴 주제도 못되면서....
이 계약 따내서 수당 받으면, 강남 고급 미용실 가서 근사하게 파마 해야지. 변호사님하고 같이 가던 그 아가씨처럼
그런 파마해야지. 그랬어요.
준하 : (쓸쓸하게) 문제는 우리 형이군요.
빨강 : 아니요. 언제나 문제는 저였어요. 저 혼자 꿈꾸고 저 혼자 미쳐 날 뛴 거니까. (걸어가는)
준하 : (안타깝게 바라보는)
23. 씬. 장례식장 (밤)
-일하고 있는 빨강, 상주 다가오는.
상주 : 가라니까 왜 이래요?
빨강 : 그래도 제가 뭐라도 도와드리고 싶어서.....
상주 : 이러는 거 우리 더 열 받게 하는 거니까 그냥 가요.
빨강 : 그냥 돕게 해주세요.
상주 : 가라구, 가. 아가씨 얼굴 보면 더 속만 터지니까. 이럴 시간 있으면 가서 회사하고나 싸워요.
24. 씬. 일식집 정도의 장소 (밤)
-정회장, 재영, 마주 앉아있는.
정회장 : (술병을 드는)
재영 : (당황해서 보는)
정회장 : 술 좀 하는 거 같던데, 받아.
재영 : 아니에요, 할아버지, 제가 어떻게 할아버지 앞에서....
정회장 : 받아.
재영 : (하는 수 없이, 술잔을 들고)
정회장 : (따라주고) 나도 한잔 따라주렴.
재영 : (술을 정회장에게 따르고)
정회장 : 오늘 강하 놈 만났다.
재영 : (긴장해서 보는)
정회장 : 참 모진 구석이 있는 놈이야, 그 놈.
재영 : .....
정회장 : 널 여자로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구나.
재영 : (서늘해지고)
정회장 :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 나도 그랬다. 내 안사람과 얼굴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초례청에 섰다구.
그러니 여자로 본 적이 당연히 없었을 거 아니냐구. 그런데도 혼인해서 살다보니 세상에 여잔 그 사람 하나 뿐이더라구.
여자와 남자로 만나 맺어지는 사이도 있지만, 그냥 남으로 만나 여자와 남자로 살아갈 수도 있지 않냐구.
재영 : 그러셨더니 뭐래요? 그 사람? (기대는 하지 않고 묻는 말이다)
정회장 : 세상에 너하고 단 둘이만 남는다 해도, 넌 지 놈한테 여자가 아닐 거라구 하더구나.
재영 : (술잔을 들어 마시고)
정회장 : (술을 따라주며) 재영아?
재영 : 네.
정회장 : 그럼 아닌 게야. 너한테 잘 해준 게 없는 할애비라서 어떻게든 네 소원을 들어주고 싶었다만. 난 역부족이구나.
할아비가 벌주로 따르는 술이다.
재영 : (술을 마시는)
정회장 : 아닌 사람은 보내 주거라. 그래야 네가 덜 아프다.
재영 : 근데요, 할아버지.
정회장 : ......
재영 : 보내지지가 않아요.
정회장 : 다른 데로 눈을 좀 돌려봐.
재영 : 그래지지가 않아요. 늘 한 곳만 바라보고 살아서..... 어떻게 눈을 돌려야 하는 건 지 모르겠어요.
정회장 : (안타까운)
25. 씬. 일식집 앞 (밤)
-정회장, 재영 서있는.
재영 : 들어가세요, 할아버지.
정회장 : (보면)
재영 : 전 술 좀 깨고 들어갈게요.
정회장 : 나도 어디 좀 가야겠다. 네 엄마한테는 못 들어올 거라고 하렴.
재영 : 늦었어요.
정회장 : 내일 아침에 네 녀석 얼굴 볼 용기가 없어서 그런다. (돌아서려고 하면)
재영 : 할아버지?
정회장 : (보면)
재영 : 고맙습니다. 애 써주신 거.....
정회장 : (재영 어깨를 잡으며) 넌 나한테 귀한 손주다. 그러니 너무 많이 애닳아 하지는 말거라.
26. 씬. 재즈바 (밤)
-강하, 술을 마시고 있는. 준하 들어오는. 태규 전화하고 있는.
태규 : 빨리 안 오고 뭐해? 한 놈은 내가 진짜 잘 구슬러 놨단 말이야. 자기가 잘만 하면 계약 할 수 있다니까. 몰라, 몰라.
늦어도 꼭 와. 오늘 저 자식 용돈 받아와서 오늘 아니면 술 다 사먹어버릴 거라구. 오는 거야? 꼭, 꼭이야. (전화 끊는데)
준하 : 큰 삼촌 언제 왔냐?
태규 : 아까. 여자 애들이 같이 마시자고 하는데도 다 퇴짜 놓고 혼자 저러고 있어.
준하 : (강하 앞으로 다가가서) 빈속에 술만 마시는 거 아냐?
강하 : (무시하고 술을 마시는)
-울리는 핸드폰.
준하 : 전화 오는 거 같은데?
강하 : (배터리 빼버리고 술만 마시는)
준하 : (울리는 핸드폰) 응? 나야.
재영E : 원강하 어디 있니?
-강하의 얼굴로 짝 부어지는 술.
강하 : (얼굴을 들면. 재영 술잔을 들고 서있는)
준하 : (놀라서 재영의 팔을 잡는) 뭐하는 짓이야?
태규 : (친구와 얘기하다가 놀라서 보는)
재영 : 우리 할아버지 나 때문에 너한테 사정까지 하시게 만들었어.
강하 : (일어서는)
재영 : (강하의 가슴을 밀며) 못난 손녀 딸 때문에 생전 아쉬운 소리 할 줄 모르는 어른한테 그런 일까지 하시게 만들었다구.
강하 : 그러게 뭐하러 그런 일까지 하시게 만들어?
재영 : 죽어도 너 아니면 안 되겠으니까.
강하 : (돌아서려고 하면)
재영 : (거칠게 잡으면서) 너 말고는 아무도 안 되겠어서.
준하 : (서늘하게 보는)
재영 :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니? 응? 꼭 그렇게까지 잔인해야 했냐구?
강하 : ....
재영 : 세상에 남자, 여자 너하고 나 둘만 남아도 난 아닐 거라구?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렇게는 못 하겠디?
강하 : 그 어른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날 위해주시는 어른께 거짓말을 할 순 없잖냐? (걸어가는)
재영 : 원강하? (따라가려고 하면)
준하 : (재영의 팔을 잡으면서)
재영 : 놔, 놓으라구.
27. 씬. 재즈 바 앞 (밤)
-강하, 나오면, 따라 나오는 재영. 뒤 따라 나오는 준하.
재영 : 나도 알아. 내가 얼마나 치사하게 달라붙고 있는지.
강하 : (무시하려고 가려고 하면)
재영 : (강하의 팔을 거칠게 잡아 돌려세우는)
강하 : (톤 높여서) 그만 좀 하자. 그만 좀 하자구. 네가 아무리 이래도 나 변하지 않아.
재영 : 내가 어떻게 해야 하니?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 거냐구?
강하 : 네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없어. 난 너한테 마음이 가지 않아. 왠 줄 알아? 난 마음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놈이니까.
그러니까 제발 시간 낭비 하지 마. 동생으로 생각하는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재영 : 죽어줄까?
강하 : .....
준하 : (아득하고)
재영 : 약이라도 먹고 줄어줄까? 그럼 변해줄래?
강하 : 아까운 목숨 가지고 장난하지 마. 나 같은 놈 때문에.
-그때 멀리서 세 사람 뒤로 걸어오는 빨강.
강하 : (돌아서서 걸어가는. 빨강과 반대편으로)
재영 : 나한테 남자가 돼달라고 하지 않을게.
강하 : .....(걸어가는)
재영 : 그래도 안 되겠니? 그냥 내 옆에서만 살아달라고 해도?
강하 : (택시 타고 멀어지는)
재영 : (주저앉으며) 동생이라도 좋고, 여자가 아니라도 좋다구. (울면서) 널 안보고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데 어떡하냐구.
준하 : (안타깝게 보다가, 일으켜 세우는) 그만해.
재영 : (가슴에 머리 기대면서) 준하야? 준하야?
준하 : 그래.
재영 : 어떻게 좀 해줘. 너 내 친구잖아. 넌 날 위해서 뭐든 해줬잖아? 제발 네 형 좀.....어떻게 해주라, 준하야.
나.....죽을 거 같아. 숨이 막혀서 죽을 거 같아, 준하야.
준하 : (손으로 재영의 등을 쓸어내리려다가 멈추는. 가늘게 떨리는 손)
빨강 : (그 모습을 놓치지 않는. 괴로운 준하의 표정을 보게 되고)
준하 : 그러려고 하는 중이야. 널 위해서......뭐든 하려고 하고 있는 중이야.
빨강 : ...... (돌아서는)
28. 씬. 강하의 집 세탁실 (밤)
-빨강, 다림질 하고 있는. 태규, 들어오는.
태규 : 어떻게 된 거야? 온다면서?
빨강 : 일이 많았어.
태규 : 계약보다 중요한 일이 어딨어?
빨강 : 내일 갈게.
태규 : 그 자식, 술 다 사 처먹었단 말이야.
빨강 : 그럼 할 수 없지 뭐.
태규 : 왜 그래? 자기. 그런 정신 상태로 무슨 일을 하겠다구.
빨강 : (톤 높여서) 우태규?
태규 : (깜짝 놀라서)
빨강 : 하지 마. 나 네 자기 아니야. 얼마나 더 말을 해야 알겠니?
태규 : 왜 화를 내고 그래? 내가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니구.
빨강 : 나 네가 가지고 노는 장난감 아니야.
태규 : 내가 언제 자길 장난감으로 생각했다구.
빨강 : (와이셔츠 들고 나가는)
29. 씬. 거실 (밤)
-빨강, 와이셔츠 들고 나오면, 따라 나오는 태규.
태규 : 자기 그러는 거 나 모...모....
빨강 : 네가 이러는 거야 말로 나 모독하는 거야. 내가 아무리 동생 다섯 끌고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고 아등바등하고 있어도,
그래서 만만해 보여도 그러지 마.
30. 씬. 마당 (밤)
-강하, 서있으면. 걸어오는 준하. 그 위로.
빨강E : 아무렇게나 가지고 놀아도 되는 사람은 아니라구. 나도 사람이란 말이야. 사람이라구.
태규E : 내가 언제 자길 사람으로 안 봤다고 이래?
빨강E : 니들 감정놀음에 나 이용하지 말라구.
태규E : 무슨 말이야? 자기?
빨강E : 자기라고 하지 말라구. 나 한 달 뒤면 죽어도 이 집에서 나갈 거야. 그러니까 제발 잡아 흔들지들 말고,
그냥 내버려 두라구.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동생들 데리고 나갈 테니까.
강하 : (눈을 감는)
준하 : .....
강하 : (눈을 뜨고 돌아서는데, 서있는 준하)
준하 : 어디 가려구?
강하 : 경고하는데, 저 여자 내버려둬라.
준하 : 싫다면.
강하 : 들었잖아? 저 여자 멍청해보여도 알 건 다 알아. 한 달 뒤면 나갈 여자야. 그러니까 그때까진 아무 짓도 하지 마.
준하 : 이 집에선 나갈지 모르지만, 저 여자 혼자 동생들 데리고 나가게 하진 않을 거야.
강하 : (준하 멱살 잡으며) 네가 왜 이러는지 내가 모를 거 같냐?
준하 : .....
강하 : 누굴 위해서 이러는지 모를 만큼 내가 천치로 보여?
준하 : 처음엔 형하고 상관.....그래 있었어. 하지만 점점 형하곤 상관없는 일이 되어가고 있어. 그러니까 그냥 들어가지.
강하 : .....
준하 : 술 먹고 헤매는 모습, 저 여자 헷갈리게 하는 거거든. 원래대로 해. 형. 그게 날 도와주는 거니까.
(강하가 쥔 멱살 풀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강하 : .....
31. 씬. 거실 (밤)
-들어오는 준하, 시무룩하니 서있는 태규.
태규 : 지금 와?
준하 : 응.
태규 : 작은 삼촌?
준하 : 왜?
태규 : 내가 빨강이한테 그러는 거 말이야. 빨강이 입장에서 보면 기분 나쁜 일일 수도 있는 걸까?
준하 : .....
태규 : 오갈 데 없는 사람한테 장난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 걸까?
준하 : 태규야?
태규 : 응.
준하 : 널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법이 뭔지 아니?
태규 : ......
준하 : 너도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거야. (자기 방으로 들어가는)
태규 : ......
32. 씬. 강하의 방 (밤)
-빨강, 강하의 와이셔츠 걸다가, 강하의 양복에 손이 가는.
빨강 : (조심스럽게 강하의 양복을 만지다가, 이 악물면서 손을 떼어내는) 한 달 뒤면 나가는 거야.
하늘이 두 쪽 나도 꼭 나가는 거야. (돌아서는)
33. 씬. 식당 (밤)
-들어오는 빨강, 준하, 커피 내리고 있는.
준하 : 커피 내렸는데, 같이 마시죠.
빨강 : 드세요.
준하 : 그러지 말고, 같이 마셔요. 나 혼자 마시기 심심하잖아요.
빨강 : 지금까지 제 편 돼주시고, 도와주신 거 감사하게 생각해요. 눈물 나게 고마운 거 많아요, 팀장님한테.
준하 : 왜 갑자기 쑥스럽게 그런 말은 해요?
빨강 : 눈물 나게 고맙지만, 그렇지만, 팀장님 심심풀이 땅콩은 돼드릴 수 없어요. 그러니까 혼자 드세요.
준하 : (팔 잡는) 사람 참 허접하게 만드네요, 빨강씨.
빨강 : 지금 이러시는 거 심심풀이 땅콩 취급하시는 거예요. (팔 뿌리치고, 개수대 앞으로 가서 서는)
준하 : 나.....여자 많았어요.
빨강 : .....
준하 : 독하지 못한 놈이라 다가오는 여자 뿌리친 적 없어요.
빨강 : .....
준하 : 근데 나.....한 번도 먼저 다가간 적은 없어요.
빨강 : (돌아보고) 왜요? 나같이 별 볼 일 없는 여자한테 왜 그렇게까지 하셔야 하죠?
준하 : .....
빨강 : 팀장님 같은 분이 왜요? 스스로도 너무 이상하다는 생각 안 드세요?
준하 : .....
빨강 : 그 이상한 일에 말려들 만큼 저 한가한 사람 아니에요. 전 살아가는 일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다른 덴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그러니까, 한가한 사람 찾아보세요.
준하 :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군요. 난 독하진 못하지만 끈기 하난 타고난 놈이에요. (나가는)
빨강 : .....
34. 씬. 준하의 방 (밤)
-준하, 들어오는. 생각에 잠겨 앉는.
35. 씬. 마당 (밤)
-강하, 계단에 생각에 잠겨 앉아있는. 빨강, 쓰레기봉투 들고 집에서 나오는.
빨강 : (강하를 보고) 왜 여기 앉아 계세요?
강하 : .....
빨강 : 들어가세요, 추워요. (계단 내려가려고 하면)
강하 : (팔 잡는)
빨강 : (눈을 감는)
강하 : 미안합니다.
빨강 : .....(눈을 뜨고)
강하 : 어젯밤.....실수 한 거. 그리고 필름 끊긴 척 한 거.
빨강 : 그게 뭐 대수겠어요?
강하 : (보면)
빨강 : 변호사님한테 어젯밤 전, 룸싸롱에서 옆에 앉혀놨던 여자랑 다름없다는 것 정도는 알아요.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계단을 내려가려고 하면)
강하 : (일어서며) 나 잡놈이지만 그 정도는 아니야.
빨강 : (보고) 실수하시네요, 변호사님.
강하 : .....
빨강 : 그냥 필름 끊기신 걸로 하시면 좋았을 텐데요. (내려가려고 하면)
강하 : 신경이 쓰여.
빨강 : (멈추고)
강하 : 그냥 좀.....신경이 쓰여. 신경이 자꾸 긁혀, 댁 때문에.
빨강 : 그렇겠죠. 저같이 이상한 가정부를 데리고 계신데 신경이 긁히시는 건 당연하겠죠.
한 달만.....아니, 이젠 한 달도 안 남았으니 그때까지만 신경에 거슬리시더라도 참아주세요. (내려가는)
강하 : .....
36. 씬. 강하의 집 앞 (밤)
-빨강, 쓰레기봉투 들고 나와서 벽에 기대서는.
37.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 (들어와서 문에 기대 눈을 감는)
38. 씬. 강하의 집 앞 (밤)
-벽에 기대 서있는 빨강. 정회장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정회장 : 빨강아?
빨강 : (눈 뜨고) 할아버지?
정회장 : 다들 잠들었냐?
39. 씬. 지하방 (밤)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빨강과 정회장.
빨강 : 식사는요?
정회장 : 했어.
빨강 : 그럼 어서 주무세요. (나가려고 하면)
정회장 : 왜 또?
빨강 : 아직 할 일 남았어요. (나가는)
정회장 : 얼굴이 어느새 반쪽이네. 조금만 더 참아 보거라, 빨강아.
40. 씬. 욕실 (밤)
-청소하고 있는 빨강, 들어오는 태규.
태규 : 빨강씨?
빨강 : (보고)
태규 : 자기라고 하지 말라고 해서.
빨강 : 그거나 그거나니까 그냥 누나라고 불러. 아까 화낸 건 미안했다. 그냥 좀 화나는 일이 있어서 괜히 너한테 화풀이 한 거야.
태규 : 작은 삼촌이 그러는데.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자기도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거라는데.
빨강 : (보고)
태규 : 그치만 자기, 아니, 누나. 나 그거는 못할 거 같아. 그 말하려구. 너무 오래 일하지 말고 쉬어. (나가는)
빨강 : ......
41. 씬. 지하방 (밤)
-빨강, 공부하고 있는. 정회장, 일어나 앉으며.
정회장 : 그건 뭐냐?
빨강 : 법률책이에요.
정회장 : 그런 것도 봐야 하냐?
빨강 : 회사 자료실에서 빌려왔어요.
정회장 : 너처럼 열심히 하는 사원이 있으니 네 회사 사장님은 든든하시겠구나.
빨강 :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니까 그런 말씀 마세요.
정회장 : (다가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니?
빨강 : .....
42. 씬. 강하의 집 전경 (밤)
43.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침대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문 열고 비몽사몽으로 들어오는 파랑.
강하 : (이불을 걷어주면, 파랑 태연하게 들어와서 눕는, 그런 파랑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네 엄마, 아빠는 어떤 분들이셨니?
파랑 : (세상모르고 자는)
강하 : 나도 네 엄마, 아빠 같은 분 자식으로 태어났으면..... 지금처럼은 안됐겠지?
파랑 : .....
강하 : (파랑의 옆에 누우면서) 아저씨는 말이다. 마음이라는 걸 보여주면......늘 매를 맞았단다.
그래서 어느 때부턴가는.....그걸 보여주면 안 되게 됐어. (눈을 감는)
-F.O
44. 씬. 회사 전경 (낮)
인구E : 아버지? 왜 그러세요?
45. 씬. 정회장 사무실 (낮)
-정회장, 인구, 강하 앉아있는.
인구 : 강하가 다 알아서 할 일을 왜 아버지께서 직접 나서셔서?
정회장 : 회사에도 책임이 있는 일이니 사망 보험금은 지급하는 걸로 처리하도록 해라.
강하 : 안 좋은 선례를 남기시는 일입니다, 회장님.
정회장 : 회사 직원의 실수니, 회사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한 거다.
입원비를 지급했다는 건, 이미 계약이 성립 했다는 거 아니냐? 성립된 계약에 토를 타는 건, 도의가 아니다.
인구 : 아버지? 대체 어떻게 아신 거세요? 아버지, 암행어사처럼 회사 뒷조사 하고 다니시고 그런 거예요?
정회장 : 내가 어떻게 알게 된 건 중요한 게 아니고, 그렇게 처리하도록 해.
46. 씬. 회사 복도 (낮)
-강하, 인구 걸어오는.
인구 : 틀림없어, 틀림없어. 내가 못미더워서 회장 직속 조사실 같은 걸 따로 두고 계신 거야.
강하 : (눈길이 서있는 은주에게로 가는)
은주 : (느물거리는 미소로 바라보고)
인구 : 에이, 아버지는 대낮부터 술 마시고 싶게 만드네. 같이 가자, 강하야.
강하 : 아닙니다, 전 할 일이 있어서.
인구 : (걸어가면서, 핸드폰 누르며) 준하야? 뭐하냐?
강하 : (돌아서며)
은주 : (다가오며) 저 양반은 용케 아직 그 자리 지키고 있는 모양이지?
강하 : (무시하는데)
은주 : 나 이러는 거 귀찮지 않니? 네 아버진 회사로 찾아오겠다고 전화 한번이면 바로 해결 되곤 했는데.
너 그건 네 아버지 안 닮은 거 같다. 참 네 동생도 여기 다니지?
강하 : (은주의 팔을 끌고 한쪽으로 가서 밀어붙이는)
은주 : 왜 이러니?
강하 : 자식이 저 하나 밖에 없으시죠?
은주 : .....
강하 : 그 자식이 죽는 꼴 보고 싶으세요?
은주 : (보다가. 쓰게 미소 지으며. 강하의 볼을 톡톡 건드리면서) 비즈니스엔 룰이 있는 거란 건 나도 알아.
네 아킬레스건을 자르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구. 그러니까 협박까진 필요 없어.
하지만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니? 엄마 그렇게 만들지 마. (걸어가는)
강하 : (괴로운)
47. 씬. 멀티샵 (낮)
-민경, 직원들과 걸어오며.
민경 : 일반적인 명품 브랜드 뿐 아니라 국내에 시판되지 않은 새로운 브랜드 입점에도 힘써 주세요.
(핸드폰 울리면 받으며) 어머 사모님. 네. 조만간 오픈할 예정이에요. 위치요? 신사동 가로수길 아시죠?
-은주, 걸어와서 손을 드는.
민경 : (굳어지는)
48. 씬. 멀티샵 내, 장소 (낮)
-민경, 굳어져서 보고 있고, 은주 두리번거리며.
은주 : JK 생명 사모님께서 집안에만 계실 줄 알았더니, 너 출세했다.
민경 : 언제 왔어요?
은주 : 그제. 우리 계통에서 네가 제일 출세했을 거야, 그치?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너처럼 자살 소동이나 한번 벌여볼 걸 그랬어.
민경 : 비아냥거리는 취미는 여전하군요.
은주 : 아니야, 얘, 비아냥거리는 거. 정말 네가 부러워서 그래.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더니 딱 널 두고 하는 말이다.
솔직히 나 너 그 집안에서 이렇게 오래 버틸 줄은 몰랐다. 지레 겁먹고 돈 몇 푼에 물러난 내가 미친년이지.
아냐, 아냐. 네 신랑하고 강하 아빤 근본부터 다른 사람들이니까. 친구면서 어떻게 그렇게 틀린지 몰라.
민경 : 왜 찾아온 건데요?
은주 : 형편이 좀 갑갑해서 찾아왔는데, 우리 강하 나 괄시한다. 하긴 그동안 내가 좀 괴롭히기도 했지 뭐.
그래서 어쩌니, 옛정에 호소해볼 수밖에.
민경 : (싸늘하게 웃으며) 언니하고 나 사이에 옛정이라는 게 뭐가 있는데요?
은주 : 왜 이러니? 방 한 칸 없는 너 내 집에 데리고 있었던 거 너 벌써 잊은 거야?
민경 : 그냥 있었던 건 아니죠. 언니 속옷 빨래까지 하면서 식모살이 제대로 한 걸로 아는데요.
그리고 10여 년 전에 죽는 소리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계산도 따로 해줬구요.
은주 : 그건 방세였고. 정인구.
민경 : .....
은주 : 너한테 정인구를 물어야 한다고 등 떠밀었던 거 나란 건 기억하지?
민경 : ......
은주 : 그래서 오늘날 네가 대 JK 생명의 안주인이 된 거잖니?
민경 : 하고 싶은 말이 뭐예요?
은주 : 뭐겠니?
민경 : 왜 그렇게 한심하게 살아요?
은주 : 이민경.
민경 : 왜 아들한테까지 괄시 받을 정도로 사냐구요?
은주 : 너 너무 많이 컸구나. 내가 사모님들 다니시는 피부샵에 가서 이러쿵 저러쿵 떠벌이면 너 피곤하지 않겠니?
민경 : (싸늘하게 웃으며 일어서는) 그럼 그래 봐요.
은주 : (일어서는)
민경 : 나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아직도 있으려나 모르겠네요.
은주 : .....
민경 : 이게 참 산뜻해요. 감추고 싶은 과거 까놓고 사니까 눈치 볼 일도 없고, 눈 먼 돈 뜯길 일도 없고, 좋더라구요.
-노크 소리.
민경 : 네.
-들어오는 재영.
민경 : 웬일이야?
재영 : 입점할 우리 지점 인테리어 체크하려구요.
민경 : (은주에게) 볼일 보셨으면 가주시겠어요?
은주 : 다음에 보자. (나가면)
재영 : (강하와 마주하고 있던 모습 스치고 따라 나가는)
49. 씬. 멀티샵 내 복도 (낮)
-은주, 걸어 나오면, 재영 따라 나오는.
재영 : 저기요?
은주 : (돌아보고)
재영 : JK 생명 원강하 변호사님 찾아 오셨었죠?
은주 : 아가씨는 누구?
-나오는 민경.
민경 : 인테리어 디자이너 와있다니까 내려가자.
재영 : 잠깐만이요, 엄마.
은주 : 딸?
민경 : 내려가자니까.
은주 : 너 닮아서 인물 좋다.
민경 : (신경질적으로) 가자니까.
재영 : .....(하는 수 없이, 따라가면서, 은주를 돌아보는) (민경에게) 누구예요?
민경 : 아무도 아니야.
50. 씬. 멀티샵 내 (낮)
-걸어오는 민경, 재영.
재영 : 저 분 강하 오빠 찾아왔던 거 봤어요. 그 분이 왜 엄마하고 같이 있어요?
민경 : .....
재영 : 엄마?
민경 : (멈춰 서고) 강하, 생모야. 됐니?
재영 : ....
민경 : 내가 왜 강하가 그렇게 싫은 줄 아니? 저런 여자 아들이기 때문이야.
재영 : .....
51. 씬. 장례식장 (낮)
-일하고 있는 빨강.
상주 : 정말 왜 이렇게 귀찮게 굴어? 아가씨 얼굴 보는 거 정말 싫다니까.
빨강 : 죄송합니다, 그럼 설거지라도 도와드리고....
상주 : 필요 없어, 필요 없다구. (하는데 전화 받고) 여보세요? 그래요, 내가 문영옥 남편이오.
(듣고) 그럼.....주는 거요? 정말이요? (끄덕이고) 알았소, 서류 가지고 가리다. (전화 끊고) 이봐요, 아가씨?
빨강 : 네?
상주 : 회사에 가서 뭐라고 했소?
빨강 : 네?
상주 : 재판 없이 보험금 지급하겠다는 전화가 와서 말이야.
52.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일하고 있으면, 뛰어 들어오는 빨강.
강하 : 습관이군.
빨강 : 죄송합니다. 너무 좋아서 노크 하는 걸 잊어버렸어요.
강하 : 언제는 노크하고 들어왔습니까?
빨강 : 문영옥 고객님 사망 보험금 재판 없이 지급한다면서요?
강하 : 회사 방침이 그렇게 정해졌습니다.
빨강 :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변호사님.
강하 : 내가 한 일 아닙니다. 윗분들이 그렇게 결정하신 거고, 난 받아들인 것 뿐이니까.
빨강 : 겸연쩍으신 거죠?
강하 : (보면)
빨강 : 누가 칭찬하고 고맙다고 그러면 겸연쩍어서 일부러 틱틱거리고 그러시는 거죠?
강하 : 내가 한 일 아니라니까요.
빨강 : 지나친 겸손은 오만이라는 말도 있던데.
강하 : 내가 지나친 겸손 같은 거 할 인물로 보입니까?
빨강 : 그건 아니지만. 어쨌든 고맙습니다. 오늘 밤에 뭐 드시고 싶은 거 있으세요? 저 어제 월급도 100프로 다 받았거든요.
카드사 직원분까지 도와 주시더라구요. 이래서 세상은 살만하다고 하는 건가봐요.
제가 오늘은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 드릴 테니까 드시고 싶은 거 있으면 말씀하세요.
강하 : 그런 거 없으니까 뭘 차리든 맘대로 하고 그만 나가주시죠.
빨강 : 그럼. 나가보겠습니다. 제가 정성껏 저녁 준비 해놓을 테니까. 일찍 들어오세요. (나가는)
53. 씬. 회사 복도 (낮)
-빨강, 신이 나서 걸어오면, 준하 마주 걸어오는.
준하 : 좋은 일 있나 봐요?
빨강 : (잠시 어색한 느낌으로 보다가) 네. 문영옥 고객님 보험금 재판 없이 지급 되게 돼서요.
준하 : 잘됐네요.
빨강 : 그럼.
준하 : 내 느낌인가요? 내 얼굴 똑바로 안보는 거 같은 느낌?
빨강 : .....
준하 :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대답해줄래요?
빨강 : (보고) 변호사님, 팀장님, 태규. 절 고용하신 주인 집 식구분들로만 생각 하니까요. (걸어가는)
준하 : ......
54. 씬. 강하의 사무실 (낮)
-강하, 일하고 있으면 들어오는 준하.
강하 : 검토한 서류 전달 됐을 텐데?
준하 : 그 일도 형이 한 거야?
강하 : .....
준하 : 키다리 아저씨 노릇이라도 하고 싶은 거야?
강하 : ......
준하 : 이건 좀 아니지 않나? 내가 어떤 생각인지 밝혔으면 그런 역할은 내가 하도록 해줘야 하는 거 아냐?
강하 : (일어서는)
준하 : 그러니까 앞으론 좀 자제해줘.
강하 : 그럴 수 없다면?
준하 : ......
강하 : 그러고 싶지 않다면?
준하 : (허하고 헛웃음 웃고) 뭐야? 형?
강하 : 뭔 거 같냐?
준하 : 또 투쟁본능이라도 발동한 거야? 근사한 여자 애 앞에 놓고, 누가 먼저 꼬시나 게임 하던 그 심리가 발동한 거냐구?
강하 : ....
준하 : 진빨강, 형의 투쟁본능을 자극할 만큼 근사하지 않잖아?
강하 : .....
준하 : 난 게임하고 싶은 마음 없으니까 이번엔 좀 빠져주지?
강하 : 네가 그랬지? 내가 여자하고 그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처음 본다구. 여자 때문에 신경질 내는 것도 처음 본다구.
준하 : 그래서?
강하 : 내가 왜 그래지는지 궁금해졌다. 그걸 좀 알아보고 싶은데, 네가 좀 빠져줄래?
준하 : 형한텐 형 때문에 죽고 싶다는 재영이가 있어.
강하 : 그럼 네 위로가 필요하겠구나.
준하 : 정신 차려.
강하 : 정신을 차려야 할 사람은 너인 거 같은데. 네가 왜 진빨강이란 여자한테 눈길을 돌렸는지 잘 생각해봐.
그럼 여기서 천천히 생각해봐라. 난 회의가 있어서. (나가는)
준하 : ......
55. 씬. 강하의 집 식당 (낮)
-빨강, 은말, 진주, 김치 담그고 있는. 주황, 노랑, 초록, 파랑 옆에서 돕고 있는.
빨강 : 내가 하다하다 이젠 별 일을 다 시키지, 은말씨?
은말 : 네가 맘먹고 상 좀 차려내보겠다는데 도와야지 어쩌냐?
진주 : 젓갈 좀 더 넣어야 하지 않나?
은말 : 아냐, 됐어. (옆에서 맛보고 있는 애들에게) 어떠냐? 니들은?
주황 : 진짜 맛있어요.
파랑 : 할머니도 우리 집에 숨어 사세요.
은말 : 뭐?
빨강 : 아냐, 아냐, 은말씨.
은말 : 아이고, 쪼그리고 앉아서 일을 했더니 그런가 왜 이렇게 오줌이 자주 마렵냐?
진주 : 빨리 다녀와. 얼른 해주고 몰래 빠져나가야 하니까.
56. 씬. 거실 (낮)
-은말, 화장실로 들어가려고 하면, 정회장 나오는.
은말 : (놀라서 주저앉는) 회.....회장님.
정회장 : (굳어져서 보는)
57. 씬. 지하방, 또는 거실 일각 정도의 장소 (낮)
-은말, 넋이 나가서, 정회장 그 앞에.
은말 : 회장님께서 어떻게 여기? 변호사님 댁에 놀러 오신 거세요?
정회장 : 그게 아니고.
은말 : 그게 아니시면요?
정회장 : 내가 빨강이랑 좀 아는 사이라서.
은말 : 빨강이랑요? 진빨강이랑요?
-시간 경과.
은말 : 그럼 정체를 숨기시고 빨강이한테 얹혀살고 계시다 그거세요?
정회장 : 간단하게 말하면 그래요, 최여사.
은말 : 세상에 이런 일도 있네요. 회사도 몰래 몰래 드나드신다는 말은 들었는데, 얼굴을 모르니 이런 일도 있나보네요.
정회장 : 내가 빨강이 저 놈이 어떻게 살아가나 좀 지켜보고 있는 중이니까 최여사가 협조 좀 해줘요. 부탁합니다.
은말 : 저기요, 회장님.
정회장 : 네?
은말 : 이런 말씀 드리면 너무 계산적이라고 하실 텐데.
정회장 : 무슨?
은말 : 제가 나이가 먹어서 그런가, 찬물에 손 담그는 일이 여간 고되지 않거든요.
정회장 : 네?
은말 : 화장실 청소는 젊은 사람들한테만 맡기시면 어떨까 싶은데. 아, 아니에요. 아무래도 제가 비밀을 지켜드린다는 거를 빌미로
너무 계산적인 거 같네요. 제가 손이 얼어 터져도 화장실 청소를 하죠 뭐.
정회장 : 제가 조치해보겠습니다.
58. 씬. 강하의 집 앞 (밤)
-은말, 진주 나오는.
진주 : 집도 좋고, 한 1년만이라도 여기서 살면 좋을 텐데, 그렇지 은말씨?
은말 : 빨강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 같다.
진주 : 걱정하지 않아도 되긴, 한 달 뒤면 이 집에서 나와야 하는데.
은말 : 빨강이 부모님이 빨강이한테 어떤 인연을 만들어주고 가셨는지 모르잖냐?
진주 : 그게 무슨 말이야? 무슨 말이야? 은말씨?
은말 : 그런 게 있어, 많이 알면 다친다.
59. 씬. 강하의 집 식당 (밤)
-근사한 식탁. 빨강, 동생들 서있으면, 강하, 태규 들어오는.
태규 : 뭐야? 뭐야? 이거 다 자기가....빨강씨가 차린 거야?
빨강 : 맘먹고 정성껏 준비했으니까 맛있게 들어주세요.
-동생들 일제히 “맛있게 들어주세요.”
강하 : (식탁 앞에 앉는)
파랑 : (물 따라주면서) 많이 드세요.
강하 : 그래, 니들도 어서 먹자.
-모두 앉아서 식사하는.
강하 : 빨강씨도 같이 앉아서 먹죠.
빨강 : 아니요, 남이 깰 때 되서 가보고 올게요.
강하 : 방 문 열어놓고 와요, 깨서 울면 소리 들릴 거 아닙니까?
초록 : (초록에게) 오늘 저 아저씨 좀 이상한 거 같지 않아?
노랑 : 우리 팀장 아저씨한테 물 들었나보지 뭐.
주황 : 떠들지 말고 밥이나 먹지.
60. 씬. 길 (밤)
-준하의 차 안.
강하 : 네가 그랬지? 내가 여자하고 그렇게 말 많이 하는 거 처음 본다구. 여자 때문에 신경질 내는 것도 처음 본다구.
내가 왜 그래지는지 궁금해졌다. 그걸 좀 알아보고 싶은데, 네가 좀 빠져줄래?
61. 씬. 술집 (밤)
-준하, 술을 마시고 있는.
62. 씬. 회사 복도 (밤)
-재영, 팀장 걸어오는.
팀장 : 야근 하셨나 봐요?
재영 : 네. 팀장님도 늦게까지 계셨네요?
팀장 : 고객들한테, 발송할 편지를 좀 쓰느라구요. 참, 진빨강이요.
재영 : (보면)
팀장 : 문제없는 계약을 다섯건 했습니다.
재영 : 딱한 처지 내세워 고객들한테 동정표를 받은 모양이군요. 그런 게 회사 위상을 위해서 도움이 될지 모르겠네요.
팀장 :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재영 : (소란스러운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수위와 실랑이하고 있는 은주, 술에 취해 있는.
은주 : 원강하 변호사 집 주소만 알면 된다니까. 내가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런다니까.
수위 : 그런 건 절대 알려드릴 수 없다는데 왜 이러세요.
재영 : 저기요.
은주 : (돌아보는)
재영 : 저랑 말씀 하시겠어요?
은주 : .....
63. 씬. 강하의 방 (밤)
-강하, 컴퓨터 앞에 앉아있고, 노크 소리.
강하 : 네.
-들어오는 빨강, 커피 잔 들고.
빨강 : 저 오늘은 분명히 노크 했어요.
강하 : 들었습니다.
빨강 : (커피 놓아주면서) 침대보 지금 좀 갈면 안 될까요? 저녁 준비하느라 깜빡했어요, 오늘 갈아야 하는데.
강하 : 해요.
-빨강, 침대보 벗겨내는. 그 모습, 안보는 척 지켜보는 강하.
빨강 : (이불보 다 갈고, 일어서서) 그럼 안녕히 주무세요.
강하 : 저기 말입니다.
빨강 : 네.
강하 : 계약서 말이에요.
빨강 : 계약서가 왜?
강하 : 한 달 기한 정한 거요.
빨강 : (의아하게 보는)
강하 : 계약 연장하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빨강 : (멍하니 보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