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산 좋더라! -
권다품(영철)
미세 먼지와 꽃가루로 뿌옇던 하늘이 어제 비로 다 씻겼는지 깨끗하고 맑았다.
얼굴이 탈까봐 선크림을 좀 바르고, 커피를 몇 잔 타고, 홍초액을 타서 혼자 뒷산을 올라갔다.
아내가 내리막 길을 좀 걷고나면 다리가 결리고 아프대서, 혼자 다니다 보니 이젠 혼자 사부작 사부작 다니는 것이 더 편해져 버렸다.
오늘도 석불사 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그 산 고갯길 정상에서 오른 쪽으로 전망대에 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420계단을 올랐다.
맑은 산공기를 마시며 계단을 오를 때는 다리가 묵직해지고 더 건강해지는 느낌이어서 항상 그 길로 오른다.
420계단을 계단을 다 오르고,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 15분정도 걸으면, 구청에서 산행인들이 점심도 먹고 쉬고 갈 수 있도록 마루 7개와 여러 의자들을 곳곳에 만들어둔 곳이 있어서, 그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
마침 저 쪽에 빈 마루 하나가 보인다.
오늘은 재수가 좋다.
자리를 깔고, 우선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셨다.
땀이 난 뒤라 바람이 참 시원하고, 커피 맛이 더 좋다.
자리를 깔고 배낭에 한 권 꼽고 온 책을 읽었다.
'아이큐 검사 때 173이 나왔는데, 을도같은 담임이 '그 애의 아이큐가 그렇게 나올 리가 없어. 이건 잘못 기록된 걸 거야'라고 생각하고는 100을 빼고, 73으로 기록해서, 17년동안 친구나 주위 사람들에게 바보 취급을 받으며 살아온 세계에서 아이큐 좋은 사람들의 모임인 멘사 회장의 이야기'를 쓴 "바보 빅터"라는 책이다.
혹시 나는 사람을 눈에 보이는 대로만 펀단한 적은 없을까 반성해 보기도 하고....
요즘은 영상 시대가 되다보니, 나도 비판은 하면서도 은연중에 요즘 세태에 적응이 돼 버린 것 같다.
솔직히 인쇄된 활자는 딱딱한 느낌이 들고, 썩 읽고 싶지는 않지만, 산만한 마음을 잡고 집중시키기에 좋다 싶어서 억지로 들고 앉다보면, 어느듯 내용에 빠져들기도 한다.
또, 마음 속 더러움들도 조금 닦여지는 것 같아서 산에 갈 때는 책을 한두 권씩 가지고 가서 읽다가, 졸음이 오면 그 시원한 숲속 그늘에서 한 숨 자기도 한다.
저 쪽 맨 구석 마루에 아주머니 5명이 소주를 마셔가며 화투를 치고 있다.
"오메~, 나이스, 나이스, 한 장씩 줘 바라. 완고다." 하고 소리를 지른다.
아마 누군가 설사해둔 걸 먹은 모양이다.
"엄마야, 나는 피박이다."
"앗싸, 또 붙었다. 보자~. 나 스톱할란다. 6점이니까 언니는 600원이고, 니는 피박이네! 1200원이다."
참 정겨운 모습이다.
이 쪽 마루에는 7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 다섯 분이 할머니 한 분도 소줏잔을 나누고 있다.
할아버지들은 할머니께 점수를 따고 싶은지 각자 자기 취미활동들을 자랑하고 있다.
얼마 후의 내 모습일 수도 있겠다 싶다.
내 옆 마루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과일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점심을 맛있게 먹고 도란 도란 얘길 나누더니, 얼굴에다 수건을 덮고 자고 있다.
세상 평화로워 보인다.
그 윗 마루에는 중학생 초등학생 아들만 둘이 있는 가족이 준비해온 음식들을 먹고 있고, 동생녀석이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는 형의 귀를 가느다란 꼬챙이로 자꾸 몰래 간지럽히는데도, 형은 알면서도 짜증도 안 내고 동생에게 주먹만 둘러메고 웃고만다.
아빠엄마는 둘이 하는 냥을 보고 웃기만 한다.
우애가 참 좋아 보여서 귀엽고 예쁘다.
또 저 쪽 마루에는 과일을 먹으며 도란 도란 얘기를 나누는 젊은 부부의 모습도 예쁘고, 마루를 차지하지 못한 사람들은 햇볕좋은 긴의자에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얼굴에다 수건을 덮고 얘기를 나누는 아주머니들도 군데 군데 보인다.
초록 녹음 속에 참 평온한 모습들이다.
그늘 아래 마루에 앉은 사람들이 "땀 식으이끼네 춥다. 인자 좀 움직여 보자."는 말이 들리는 걸 보니까, 나만 선득했던 게 아닌가 보다.
따뜻한 햇살에 자리잡고 누운 사람들이 부럽다.
공기 맑고, 새들 지저귀고, 온 천지가 깨끗한 초록이고....
그런 자연 속에 평화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내 마음을 맑게 해준다.
김밥 싸고, 과일 좀 넣고, 막걸리나 소주도 몇 병 넣고....
안주?
족발 직인다 아이가!
산에 가마 운동돼서 좋고, 공기 맑아서 좋고....
처음 보는 아주머니 아저씨들이라도 같은 마루에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당겨앉으며, 맛있는 음식 나눠먹고 술도 한 잔씩 나눌 수 있고....
산행?
이런 맛 아이가?
어이, 우리 시간 나는 대로 산행가보자꼬.
산 진짜 좋더라!
2023년 5월 1일 낮 점심을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