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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확장, 보로 안보, 고로 의지 신라 지평을 연 장보고
장보고시대를 연 해양진출 세계를 누비다. 신라를 빛내다
해상무역 구조화 된 철학의 존재론에서 출발
장보고는 해양시대 구도가 재현되고 있다고 보고, 최신 무역기술이 생산성 항상 효과를 내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일관된 결과나 결론을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한계도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는 것을 판단하고, 해상무역 모델은 바다 지식의 방대한 통계적(統計的) 압축이지만, 재현 기능한 원칙으로 운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해상무역을 해본 사람이라면, 사실이 아닌 내용을 그럴듯하게 말하는 환각(幻覺) 현상을 한 번쯤 경험해 봤을 터, 확률적 변이(變異)를 본성으로 가진 청해진은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이 생명인 실제 업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고, 데이터를 많이 쌓은 것만으로는 이 벽(壁)을 넘을 수 없다고, 이를 벗어날 핵심 열쇠가 ‘지식(知識)을 구조화하는 〈청해진〉 이다’ 라고, 철학의 존재론에서 출발한 개념으로 무역의 세계를 정의하며 설계도를 그렸다.
‘청해진에서 고객은 무엇이고, 계약은 무엇이며, 둘은 어떤 관계인가?’ 청해진은 이렇게 개념과 관계, 규칙을 명시적으로 정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데이터를 쌓아 단순한 숫자 더미가 아닌 의미 있는 지식의 네트워크가 되게 했다.
무역상대국이 그럴듯한 답을 내놓는다면, 청해진 기반 해상무역은 검증된 경로를 추론한 답을 내놓았다. 연구.실험실의 사무실을 넘어 실제 현장에서 믿고 맡길 수 있는 해상무역이 탄생하게 했다.
청해진은 이 원리를 꾸준히 해외 무역국과 신라에 이식했다. 청해진의 성장 비결은 단순했다. 기업의 데이터를 숫자나 표가 아닌 현실 세계의 개념과 관계로 재정의 했다. 그 구조가 조직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상태에서 해상무역은 단순 도구가 아니라, 조직 잔체의 신경망을 이해하는 지능이 되게 했다.
고객 기업에서 이란 구조가 한 번 내재화되면, 그것을 걷어내고 재구축하는 비용이 너무 커, 이 때문에 청해진의 고객 유지율은 90%에 이르렀다. 좋은 제품을 넘어 조직의 뼈대가 되는 것, 이것이 청해진이 만들어낸 진짜 해자(垓字), 경쟁 기업.나라가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기술 및 지원 기반의 경쟁 우위다.
청해진의 성공은 해상무역 도입의 본질이 조직 변혁을 이뤄내는 데 있음을 보여줬다. 해상무역을 활용해 기존 업무의 효율화를 꾀하는 것은 출발선일 뿐, 진짜 경쟁력은 조직이 가진 지식과 프로세스를 구조화하고, 그 위에 해상무역을 올려 조직을 재구성해 전체의 역량을 확장하는 것에서 나오게 신경을 썼다.
부분적.단발적.생산성 향상이 아닌 ‘구조 기반’ 의 진정한 확장, 그것이 시대와 기업과 나라, 개인 모두에게 요구되는 전략임을 장보고는 직시했다.
장보고는 “구조화(構造化)는 단순히 질서를 부여하는 작업이 아니다” 라며 선인들이 경험을 추상화했을 때 기하학이 탄생했듯이, 구조화는 곧 추상화이고, 추상화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토양이라고 했다. 기업이 자신의 지식을 구조화할수록 패턴이 보이고, 패턴에서 통찰(通察)이 생기며, 통찰에서 혁신(革新)이 피어난다고 봤다.
장보고는 해상무역에 있어서 데이터의 중요성을 모르는 기업은 이제 없다고 했다. 하지만 데이터를 쌓는 것과 데이터로 생각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라고 보며, 해상무역 시대의 창의성과 혁신은 더 많은 데이터뿐 아니라, 더 잘 구조화된 사고와 이를 실행으로 연결하는 능력에서 비롯됨을 설파했다.
장보고는 구조가 없으면 데이터는 소음(騷音)이다 라고 했다. 소음으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도, 무역에서 성공할 수도 없다는 사실이 이미 당나라에서 가르쳐 줬다. 청해진이라는 화칼과 창. 화살은 모두의 손에 들려 있다. 청해진이 보유한 전문역역의 지식과 경험이 담긴 데이터를 어떻게 구조화하고, 그 위에서 청해진을 어떻게 작동시키며, 어떻게 조직의 구조적 변혁을 이룰 것인가에 대한 답이 청해진, 신라 승부를 갈랐다.
●청해진, 청해진은 진압부대를 넘어 무역거점이였다
청해진의 청해, 그 청해는 다양한 해석으로 ‘정치적 관점, 경제적 관념, 사회적 관계’ 로 본다. 청해진의 진(鎭)은 ‘진압하다’ 라는 의미가 핵심이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진은 진영의 ‘진(陣)’ 이면서 ‘물건을 놓아 두다’ 라는 개념으로 진(鎭)을 말한다. 진은 어쩜 나아가다. 전진하다, 힘쓰다. 움직이다. 이기다. 다하다. 전력하다. 추천하다의 ‘진(進)‘ 으로써의 진의 역할을 띠었다. 또 진은 참된, 변하지 않은 ’진(眞)‘ 으로 쓰였다. 또 진은 떨치다라는 ’진(振)‘ 으로 사용했다. 또 진은 보배로운 ’진(珍)‘ 으로 가치를 띠게 했다. 진은 또 물건 등을 늘어놓은 진(陳)으로, 진은 넉넉하게 한 ’진(賑)‘ 으로, 이르거나 미치게 한 ’진(臻)‘ 으로 쓰였다.
청해진은 보고진(保皐鎭)이며, 보고서를 작성해 알리는 기능과 보고서로 일을 추진하는 업무와 보고서를 통해 바다를 지배하는 군사적.상업적 역할을 띠게 한 책임을 다했다.
이런 청해진과 보고진, 보고서는 보고시대를 여는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하는 〈신라 앤 장보고 작업〉 이었다. 작업은 하나의 ‘작품(作品)’ 으로 승화시켰으며, 승화된 작품은 신라를 새롭게 열었고, 백성들을 희망차게 해주었다. 작품들이 신라에서 빛을 발하게만 하지 않고, 그 작품들을 해외(海外)로 공유하게 했다.
보고진은 ‘보고작(保皐作)’ 이었다. 걸작(傑作)을 탄생시킨 장보고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 가슴에 갤러리 창에 작품으로 전시(展示)되고 있다. 아름다운 세계에서 오는, 멋진 그림들이 전시기간 없이 〈신라 이천년 역사, 장보고 천년 세계를 보다〉 주제로 매일 진행되고 있다.
청해진은 ‘블루진’ 이었다. 우린 그런 블루진에서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노래는 ‘파도소리’ 요, 춤은 ‘물결’ 이 아니던가? 장보고의 블루진은 명장면으로서 가지가 있다. 인기도가 높다. 지금도 완도 앞바다는 소리가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고, 멋진 물결이 출렁인다.
블루진, 보고진은 영암 선암에서부터 시작되어 당나라에 여울져 완도에서 음악과 춤을 선보였다. 청해진 보고진의 블루진은 어느 레코드판 수집가에 의해, 그 판이 귀중한 물건으로 소장(所藏)되고 있다.
그 판을 다시 꺼내어 우리는 장보고의 블루진의 음악에 춤을 춘다. 그리고 그런 장면을 자보가 그랬듯이 우리도 영상(映像)으로 제작해 둔다.
청해진~보고진~블루진은 블루웨이브 뮤직페스티벌이다. 바다를 무대로 한 파도의 음악을 통해 통일신라 희망의 물결이 완도 청해진에서 〈블루웨이브 뮤직페스티벌〉 을 개최했다.
1000년 전 실시한 이후 오늘날에도 그 영혼이 음악으로 춤을 추고 있다. 블루웨이브 뮤직페스티벌은 선한 영향력을 음악에서 실어 전 세계 혼란 속 세계인에게 사랑을 전하고, 참여자들에게 즐거운 공조(共助) 경함을 제공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신라캠페인 공조자인 장보고를 비롯해 신라왕들의 응원과 후원(後援) 아래 진행됐다.
또한 협찬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 나라들의 프로모션 부스, 체험거리 등 다양한 이벤트도 만나볼 수 있게 하면서 참여하게 했다. 장보고가 추진하는 청해진~보고진~블루진의 페스티벌에는 신라 조정, 귀족, 지역 호족, 그리고 당.일본.동남아 등의 국가들이 협찬사로 참여했다.
블루웨이브 뮤직페스티벌은 계절에 맞춘 봄의 새싹, 여름의 파도, 가을의 추색, 겨울의 설경을 콘셉트로 진행됐다. 후원자의 사랑을 뜻하는 ‘바람-Wind의 돌풍' , 백성들의 꿈을 뜻하는 '갈매기-Gull의 무희, 후원자들의 사랑과 응원이 집약되어 완성된 파도-Wave의 파문 등 다양한 메타포-Metaphor(은유)를 통해 후원자+참여자의 사랑으로 나라와 백성들이 마음껏 꿈을 꿀 수 있는 희망의 파도를 만들자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추진했다.
장보고는 “잔잔한 바다의 수면을 한번 손가락으로 쳐주면 이내 파장이 생겨서 큰 물결이 생겨나듯, 우리의 작은 사랑이 모여 큰 파도를 이룰 수 있다” 며 전 세계인들이 파도 위에서 마음껏 꿈을 펼치기를 기대하면서 신라는 물론 세계인에게 큰 희망이 될 것이라고 했다.
청해진의 보고진, 그리고 블루진은
-발급 조건 : 컴페션 1:1 세계인 정기후원 시작
-관람 보장 : 추첨 없이 100% 관람 블루페스석
-좌석 이용 : 본인 포함 최대 5명의 후원자기준
-현장 혜택 : 전용티켓수령 컴페션 스토어 굿즈
-후기 공간 : 블루 페스석 구역 따로 존재 공간
블루패스권을 부여해 해상무역을 추진하게 한 장보고의 블루진, 블루진은 푸른 바다물결이 이는 곳의 무대에서 희망의 음악을 전하는〈블루웨이브 뮤직페스티벌〉 로 진행하게 했다.
장보고의 메타포, 은유적인 것들의 ‘바다는 세계이다’ 라는 말은 바다가 소중하다는 표현으로써 세계는 바다로 통한다는, 바다를 통해 군사와 무역을 추진했다.
장보고는 Compass 메타포 핵심으로 ▲자율적 탐색과 향해 ▲군사.선원 주체성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길잡이 ▲도구이지 가이드 역할 등으로 나침판 메타포를 구현하게 했다.
나침판 메타포가 특별한 이유로는 복잡한 세상으로 내비게이션, 길을 찾는 능력을 기리는 나침판 메타포를 적용했다. 장보고는 공정성(公正性)의 답이 아닌 방향성(方向性)의 제시, GPS처럼 정확한 경로를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나침판처럼 ‘방향성(方向性)과 원칙(原則)을 제시’ 하여 학습자가 스스로 최적의 경로를 찾아주도록 돕는 역할을 띠었다.
통일신라시대 무역의 패러다임. 전환은 군사와 무역에 있어서 리더자와 직원 간에 나침판을 들고 스스로 ‘탐험을 주체적(主體的)’ 으로 실행하게 했다. 징보고는 첨단 지능과 인간의 인지적(認知的), 사회적(社會的), 정서적(情緖的) 기능을 결합했다. 나침판은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의 상상력(想像力), 인식(認識), 책임감(責任感)을 상징한 것으로써 이를 통해 기술을 활용해 세상을 형성해 나가는 인간의 역할을 띠게 해주었다.
●바다 위에서 떠있는 배 上.下 개념의 그림
장보고는 바다를 〈上.下〉 개념의 그림을 그렸다. 지평선은 한 일(一)자, 배는 복(卜)자이다. 이 두 한자를 합치면 윗 상(上)이 된다. 상(上)은 ‘위, 하늘, 임금’ 을 뜻한다. 하(下)는 ‘아래, 아랫사람’ 을 뜻한다.
바다위에 떠 있는 배를 ‘상(上)과 하(下)’ 로 보았다. 이 두 한자를 조합하면 ‘공(工)과 정(正)’ 자를 떠오르게 한다. 또한 ‘왕(王)’ 자가 연상된다.
장보고라는 이름의 비밀처럼 그가 보고 펼치는 모든 대상은 ‘비밀(秘密)’ 담겨져 있다. 신비에 가깝다고 할 정도로, 수수께끼를 풀게 만든다. 바다하면 수평선, 파도 등이 연상된다. 장보고는 수평선을 하나의 선으로 보지 않고, 위, 하늘, 임금의 ‘상(上)’ 으로 보았다. 또한 아래라는 ‘하(下)’ 의 한자로 여겼다.
그는 바다 위에 떠 있는 배가 똑바로 서 있으면 ‘상(上)’ 으로, 배가 뒤집어 있으면 하(下)로 보았다. 그는 배가 온전하게 바로 서서 항해하면, 위에 있고, 하늘에 이르고, 왕으로서의 군림한다는 개념으로 해석했다. 반대로 배가 뒤집어지게 되면, 아래에 있고, 하늘에 이르지를 못하며, 보잘 것 없는 사람으로 판단했다.
장보고는 상.하 개념을 인정하면서 상과 하를 ‘공(工)’ 으로 만들려했고, 공(工)은 ‘물건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 이 되겠다는 마음에서 바다에 띄운 배다. 그리고 ‘정(正)’ 으로 진행하려 했다. 정(正)은 ‘바로 잡겠는 것, 올바르게 갖추겠다는 것, 올은 길을 가겠다는 것, 올은 일을 하겠다’ 는 마음에서 배를 항해하게 했다. 그리고 ‘왕(王)’ 으로 군림하려 했다. 왕(王)은 ‘바다의 으뜸과 해상의 우두머리, 군주로서의 옹립’ 하겠다는 마음으로 대양을 누볐다.
장보고는 수평선을 그저 바다가 만든 ‘하늘과 맞닿은 선’ 으로 보지 않았다. 수평선을 일(一)자로 보고, 그 지평선 위에 떠있는 배를 복(卜)자로 보고, 수평선의 일(一)자와 배의 복(卜)을 조합해 ‘상(上)’ 으로 풀었다. 일(一)자와 복(卜)은 모든 것에 대한 길흉(吉凶)을 알아내주는 일종의 점술학적(占術學的)으로, 수평선과 배를 그렇게 바라봤다.
장보고는 바다의 수평선은 신라가 그려낸 〈희망 線〉 으로 보며, 그 희망 선에 배가 떠있다고, 그 배들을 희망 선을 넘나들게 했다. 희망 선은 〈희망 船〉 으로 여겼다.
“나는 바다의 선을 긋겠다.”
“그리고 배를 띄워 그 선을 넘나들게 하겠다.”
그런 각오로 그는 매일 시시때때로 바다에 배를 띄운 채 상하의 개념을 그린 ‘공(工), 정(正), 왕(王)’ 자를 만들었다.
공(工)에 힘의 력(力)을 쓰니 공로의 ‘공(功)’ 이요, 공(工)에 치다의 복(攵)을 쓰니 공격의 ‘공(攻)’ 이다. 이런 공(工)에 점 두개를 붙이면 ‘정(正)’ 이 되고, 그 정(正)은 ‘왕(王)’ 이라는 개념으로 승화된다. 정(正)에 치다의 복(攵)을 쓰니 나라를 다스리는 일의 ‘정(政)’ 이 됨이다. 왕(王)에 해의 일(日)을 쓰니 기운이 왕성한 ‘왕(旺)’ 이요, 또 왕(王)에 물 수(氵)를 쓰니 많고 풍족한 ‘왕(汪)’ 이다. 또 옥(玉)에 황금의 금(金)자를 쓰니 보물의 ‘옥(鈺)’ 으로 그 가치를 띤다.
정(正)은 원래 도덕이 아닌 ‘정당성(正當性)’ 을 뜻한다. 정병(正兵), 국가가 승인한 군대의 간사한 꾀를 쓰지 않고 ‘정당하게 싸우는 군대’ 를 말한 것으로, 정(正)은 착함이 아니라, ‘국가.제도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승인된 상태’ 를 뜻한다. 정(正)은 국가 질서가 어떤 행위를 ‘공식적으로 시작.확장’ 하는 순간을 형상화한 한자로 본다.
청해진도 하나의 ‘성(城)’ 으로서 ‘국가 질서, 법, 권력’ 을 의미한다. 정(正)은 성을 정복(征服)하러 가는 행위가 아니라. 그 행위가 ‘국가적(國家的)으로 승인’ 되었음을 선언하는 상태다.
정(正)은 도덕적으로 착하다. 개인적으로 옳다가 아니라, ‘공적으로 정당화되었다. 기준으로 채택되었다’ 라고 해석한다. 정(政治), 治(다스림), 法(도리)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이루고 있다. 정(正) 성을 정복하러 가는 모습이 아니라, 국가가 어떤 행위를 공식적(公式的)으로 승인(承認)하고, 그 인정(認定)을 기준으로 삼는 상태를 뜻하는 한자로, 정(正)은 도덕이 아니라, ‘정당성(正當性)’ 의 한자로서 정(正)에 치다의 복(攵)을 써 나라를 정당하게 다스리는 ‘정(政)’ 으로 쓰인다. 이렇게 바다의 수평선과 배에서 나타내는 한자들은 하나 같이 〈다스림〉 이라는 의미로 바다를 형성하고, 그 위로 배들이 항해하게 한다. 해상(海上)은 곧 〈수평선과 배〉 를 말한 것으로 수평선을 넘는 희열(喜悅). 불가능을 가능(可能)으로 바꾸는 아찔한 쾌감(快感)이 모두 두려움을 압도했다.
그래서 징보고는 〈해상왕〉 이라는 칭호가 따라붙은 것이다.
장보고는 바다의 수평선과 바다에 떠다니는 배를 철학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정치적이고 이상적인 관념으로 바라봤다. 수평선은 일(一)자다. 배는 복(卜)이다. 이것은 ‘상하(上下)’ 를 말한다고, 갑골문(胛骨文)이나 소전(小篆)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공자나 맹자도 이런 풀이를 하지 못한 장보고만의 형상화학적(形象化學的)인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관념론 ▲인식론적(認識論的) 관념론 ▲선험적(先驗的) 관념론 ▲절대정신(絶對精神) 관념론이다. 장보고는 수평선과 배의 신비(神秘)를 자신의 이름처럼 드러낸다.
●청해진은 신라의 중요한 돈줄이자 핵심 자산
선진문물에 눈을 뜬 장보고에 의해 설치된 청해진(淸海鎭), 당나라의 모델을 통일신라에도 적용하게 했던 일로, 장보고의 제안은 신라의 획기적인 정책 방안이었다.
군사기지(軍事基地)이면서 무역기지(貿易基地)를 둔 것은 청해진이 유일했기 때문에 신라 사람들은 혁신(革新)으로 받아들었다.
완도 청해진, 장악(掌握)이 아닌 ‘장악(帳幄)’ , 점령(占領)이 아닌 ‘점령(漸領)’ 이 되어버린 완도 장좌리 장도 등 섬, 이 섬은 신라의 안보와 평화, 무역과 경제를 책임지는 섬으로 사실상 신라의 ‘돈줄이자 핵심 자산-Crown Jewel’ 로 꼽힌다.
완도의 청해진은 단순한 해적을 소탕하거나 국토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을 넘어 국제적인 글로벌 핵심 기지로서의 역할을 띠게 하여 세계를 무대로 한 〈대양진출〉 이라는 거대한 마스터플랜의 〈장보고의 전술기지〉 였다.
그는 청해진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으로 〈화살표〉 를 그렸다. 화살표는 하나의 꽃모양이 됐으며, 꽃이 피어 그 향기(香氣)를 사방으로 퍼지게 했다. 유혹(誘惑)의 향기다. 향기에 여러 곳에서 이 향기를 찾아 들었고, 장보고가 피어낸 꽃에 빠지게 만들었다.
일명 화술(花術)이다. 이 화술에 의해 나비(무역상인)와 벌(해적)들은 이 꽃의 향기에 취해, 그만 장보고가 피어낸 꽃에 반하고 말았다. 장보고의 화술에 매력을 느낀 나비와 벌들은 신라의 꽃에 관계는 더욱 활발히 했고, 신라를 탐(貪)하려했던 분들은 도둑의 해적(海賊), 원수의 해적(海敵), 오랑캐의 해적(海狄)이 아닌 바다를 빛나게 한 ‘해적(海玓)’ , 바다를 아름답게 한 ‘해적(海頔)’ 이 되었다.
당나라가 해상을 이용해 활하게 세계 곳곳으로 진출했다. 실크로드는 육지에서만 있는 것이 아닌 바다에서도 있었다. 그런 실크로드처럼 장보고도 신라에서 추진해보겠다고 마음먹고 그는 당나라에서 23년간의 삶을 정리하고 신라로 다시 들어와 육지와 섬, 군사와 무역이라는 전략으로 계획을 세우고, 지형을 탐색(探索)하며 완도를 가장 적합한 지역으로 보고, 군사기지와 무역기지로의 청해진을 설치했다. 완도 청해진이 국제군사기지, 국제무역항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런 정책에 신라는 눈을 세계로 뜨게 되었으며, 그 선인들보다 더 활발하게 진행하게 했다. 그동안 지역의 항구를 통해 행했던 것을 장보고는 확실하게 규모적인 기지(基地)를 두어 신라를 국제적으로 위상을 높이려 했다.
장보고는 “신라가 세계적인 질서와 구조 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보다 이른 단계부터 역량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고 강조하며, 신라가 기존 방식으로 해양을 바라보거나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 기존의 방식으로 만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하며, 그는 “산업 변화와 경기 등 불활성이; 크고, 해외 시장이 경직될수록 기업과 나라가 정치.경제.사회.문화.군사 등에 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며 무역교류의 전략이 마땅치 않다 보니 신규 사업부터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되고, 고스란히 백성들의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고, 그는 해외 시장의 유연 안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신라기업이 백성들이 원하는 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장기적인 기업 성장 정책을 마련했었다.
장보고는 〈신라를 넘어 세계를 향하다〉 라는 거창한 구호로 ‘세계로 미래로’ 라는 슬로건 아래 청해진을 출렁거리게 했다. 사실 청해진은 물수 변(氵)이 들어간 맑은 청(淸), 바다 해(海), 나루 진(津)이다. 물 수가 세계나 들어가게 할 만큼 희망의 물결이 치게 하겠다는 야망(野望)을 가진 장보고였다. 그는 물 넓을 묘(淼)의 바다가 넓고 끝이 없어 아득한 ‘묘묘(淼淼)-Water Bursting Forth’ 의 의미가 담긴 청해진이라는 곳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 확장.지킴.높임의 〈장보고〉 를 빛 바라지게 않으려 했다. 장보고는 바다물이용 정책에서 ‘합할 답(沓)’ 의 겹쳐서 합해지게 한 ‘답합(沓合)’ 하게 했으며, 사람이 많이 휩쓸려 붐비는 ‘잡답(雜沓)’ 하게 했다. 답(沓)은 다른 곳으로 진출하기 위한 이용 수단의 발판으로서의 ‘답(踏)’ 으로 진전됐다.
묘묘(淼淼)는 묘만(淼漫),묘망(淼茫)으로 바다가 끝없이 넓어, 이 바다를 항해했던 장보고, 그는 항해(航海)하고자 끝없이 펼쳐지는 묘만과 묘망의 묘묘를 일엽편주(一葉片舟)에 불과한 목선(木船)으로 바다로 향했다.
장보고의 Boundless, 한(끝)없는 ‘Infinite’ 였다. Boundless의 바다는 Vast의 범위.크기.양 등이 어마어마한 방대하고 막대한 ‘Huge’ 였다. 또 Unlimited로 무제한, 무한정의 바다 사용권을 누린, 장보고는 그 항해에 무제한 접근을 허용 받으며, ‘무제한 무역-Unlimited Trade’ , ‘무한 책임 회사-an Unlimited Company’ , ‘광대무변의 바다-an Unlimited Expanse of the Sea’ , ‘자유로운 출입-Unlimited Access’ , ‘광대한(막힘없는)시야-Unlimited Visibility’ , ‘군사.무역 무제한의 자위권-Military.Trade Unlimited Self-Defense’ 를 행사했다.
묘(淼)는 장보고의 장(張)에 ‘Extend(사업.영향력 등을 확대.확장)’ 으로 더 길게, 더 크게, 더 넓게 해주었고, 묘는 보(保)를 통해 ‘Combine(하나의 단일채로 만드는 결합), Unite(다른 사람들과의 연합), Join(연결), Together(조직적이고 확신에 찬 함께, 같이)’ 의 ‘답(沓)’ 하게 했으며, 묘(淼)에서 답(沓)으로 진척된 일은 ‘Foothold(사업.직업 등에서 성공)과 Toehold(권력.성공)’ 의 발판이라는 답(踏)으로 ‘고(皐)’ 해지게 했다. 장묘(張淼).보답(保沓).고답(皐踏)이 된 청해진+장보고=신라군사.무역 등식(等式).공식(公式) 행사였다.
지금도 ‘물결이 춤추는 바다-The sea with dancing waves’ 다. 그 파도는 높을지라도 그 파고를 넘었다. 물결에 희망을 띄웠다. 물결이 바다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는 이 모습은 장관(壯觀)을 이룬다. 물결이 아름다운 춤추는 바다는 수평선을 배가 넘나드니 높은 위치나 지위의 ‘상위(上位)’ 의 개념이 아닌가 한다.
바다의 위, 높은 위치에 장보고, 청해진, 신라가 있다.
●전문경영체제를 이룬 청해진
장보고가 CEO로 있는 청해진, 그 운영진을 보면 청해진 스타일이 보인다. 해외 진출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청해진 최고의 의시결정 기구인 운영진 수장을 전문가로 채우는 전문진 바람이 신라를 휩쓸었다.
그 자리에 누구를 앉히느냐를 보면 청해진 그룹의 경영 철학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청해진은 ‘학자, 경제 관료, 전문가 맞춤형’ 을 택했다. 장보고는 청해진 운영진의 역할이 전략 제안자 보다는 ‘재무.법률 리스트’ 를 보완할 전문가에 더 치우쳤다. 기술과 사업은 사내 경영자가 챙기되, 금융.규제.투자자라는 세 축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베테랑에게 경영의 수장을 맡기는 설계다.
자율을 중시하는 전문가 맞춤형 구조다. 현장에서 뛰는 경영자가 경영진을 감독하게 한 파격적인 실험을 해보였다. 장보고는 속도 경쟁이 치열한 해외무역 특성상 청해진이 경영자 주도의 빠른 전략 실행에 방점을 두었다. 신라는 청해진이 해외무역 투자를 선제적(先制的)으로 발표하고, 전문경영진과 투자로 주용 국면마다 빠른 결정으로 주목 받았다.
장보고는 청해진 독립성을 우려를 위식해 선임 전문경영진 제도를 도입했다. 전문경영진 대표 격인 선임 사외경영진이 별도 회의를 주재하고, 경영진에 자료를 요청할 권한을 갖게 함으로써 견제(牽制)와 균형(均衡)을 꾀한다는 전략이었다.
●항해, 그 낯선 길 위에 서다
“바다를 쳐다보게 되면, 그 길 위에 서있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모든 풍경은 길이고, 여정입니다.”
일상을 항해로 만드는 바다에서 장보고는 그 길을 진짜 방문해 자신의 그림으로 옮겼다. 누군가의 사진 속, 영상 속의 길들은 어떻게 장보고의 경험으로 담을 수 있을까? 그는 그 또한 바다를 통해 가보지 않은 그 길의 경험을 느껴보려고 했다. 처음 본 대양의 풍경의 그림 속에서는 바로 자신의 고향의 바다처럼 다가왔다.
장보고는 ‘선택의 순간은 언제나 온다’ 라며, 누군가는 안정적인 삶을 택하고, 누군가는 위험을 감수하며 새로운 길을 개척한다면서 “선택은 단순할지라도 모른다.” “지금의 자리를 지킬 것인가” , “아니면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 “그러나 그 단순함을 깨닫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저항을 경험해야 하는 걸까” 라는 질문을 자주 던졌다.
장보고는 현 상태를 방어하거나, 현 상태에 맞섰다. 모든 것을 원래 모습 그대로 지키기 위해 방어하거나, 모든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이끌고 설득하고 노력했다.
장보고는 길을 만들어가려는 마음을 가졌다. 들이든, 산이든, 바다이든 간에 길을 개척하려고 했다. 그는 이건 나만이 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하거나, 적어도 네가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 걸음씩 작은 변화를 만들어갔다.
장보고는 “모두에게 주어진 길은 없다” 며 “지도는 없다.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야 한다” 고 했다. 정해진 길을 따라가면 좋으련만, 그는 세상에는 우리만의 독창적(獨創的)인 길이 있을 것이라고,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위에 서서 스스로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고유한 역할을 만드는 과정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장보고는 새로운 길을 개척, 그 길 위에 서기 위에 그 길은 쉽지 않지만, 자신이 개척하는 길을 두고 사람들이 비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는 그런 우려를 감수하더라도,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겠다며 바다의 길 위에 서길 원했다. 장보고는 그 불확실함이야말로 길을 만드는 자신의 특권으로 여겼다. 실패는 필연적일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조금 더 강해졌다.
바다 길 위에 서는 용기, 장보고는 바닷길을 무서움보다는 희망적인 길로 보였다. 사람들은 무엇을 선택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그는 바다를 향한 발걸음을 떼는 것이 더 큰 변화를 가져온다고 봤다. 속한 조직이나 사회, 더 나아가 세계의 변화와도 연결된, 장보고는 자신의 착한 선택 하나가 주변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봤다.
‘보이지 않던 길 위에 서다’ 라며, 자신의 위치에서 길을 만들어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장보고는 어떤 길이 정답일지 미리 알 수는 없지만, 중요한 것은 그 길 위에 서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어느새 서있는 자리가 새로운 길의 시작이 되어 있었다. 길은 늘 장보고 앞에 있지만, 그 길 위에 설 용기는 온전히 장보고의 몫이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통해 대양(大洋)을 누비는 ‘해로(海路)’ 를 새로 만들거나, 기존의 길을 더 가꾸어 항해에 지장(支障)이 없게 했다.
장보고가 만든 해로는 ‘장보고 바다 길 위에 서다’ 라는 장보고 따라 바다 여행의 액션을 취하게 한 길이다.
그는 바다 길에 서며 여러 나라들로 항한 물살을 갈랐다. 물살은 함선(艦船)과 상선(商船)으로 세차졌고, 세차지는 만큼 교류는 활발해졌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걸었던, 남이 두려워했던 길이여도 마다하지 않고 그 길을 걸었던, 장보고는 바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바다를 즐겼다.
장보고를 키워준, 그를 장수(將帥)와 무역상인(貿易商人)으로 만들어낸 당나라 무령군(武寧軍)과 인연이 안 됐더라면, 징보고는 ‘바다 위의 길에 서다’ 가 아닌 ‘대지 위의 길에 서다’ 라고 했을 것이다.
장보고가 개척한 해로는 〈水상한 핫루트〉 였다. 水상한 핫루트는 ‘水上한 바닷길’ 이다. 바닷물 위에 떠가는 배들을 위한 길을 터주는 일은 水上한 해로, 水上한 배다. 그 水上은 해양의 여러 형상의 ‘수상(水象)’ 이었다. 수상한 핫루트에는 ‘사람의 얼굴을 수놓아 만든 형상’ 의 수상(繡像)한 것들이 바다를 흥미롭게 했다.
그런 바다를 항해한다는 게, 좋았던지 장보고는 노를 더 저어 됐다. 선박이 바람을 받아 나아가도록 돛을 높이 올렸다. 장보고는 “희망의 돛을 높이 올립시다” 라고 선원들에게 신라라는 이름의 자부심을 갖고, 하늘을 찌를 듯한 희망의 돛을 높이 올리고, 항해를 떠났다.
그는 “승리의 바람이 불어온다. 두 손 모아 돛을 높이 올려라” 했다. “영광의 바다로 우리 나가자 거칠 것은 무엇도 없노라!” 하며 “신라 해양무역, 닻을 거두고 돛을 높이 올려라!” 청해진은 해상무역이라는 시황(市況)에 힘입어 신라의 해양무역에 박차를 가했다.
신라해양무역(新羅海洋貿易)을 위협하고 있는 당나라 무역의 실태를 살펴보면, 당나라 무역은 당나라 정부와 금융의 전폭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신라를 추격하고 있었지만, 당나라에 없는 것은 신라에는 있고, 당나라가 못 연 뱃길을 신라는 여는, 당나라는 신라보다 능력의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어, 부족한 일로 인한 품질이나 운반 혁신 부족으로 무역의 애로사항이 있어 선주사들과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어, 이를 외면하는 선주사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고, 이를 경험한 많은 선주들이 신라로 발길을 되돌리고 있었던 것.
신라는 장보고에 의해 어느 나라보다 좋은 선주들을 갖추고 있어 무역(貿易)에는 자신감이 컸다. 국제 시장에 모처럼 활기를 띠게 될 것으로 예상돼, 신라 선박들 대부분을 세계 최고 수준의 신라 상선들이 싹쓸이 하는 등 〈水상한 핫루트〉 가 활발히 진행됐다.
장보고는 “모처럼 신라해양무역이 여러 곳에서 좋은 신호를 보내고 있어, 좀처럼 오지 않을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다” 라고 보고,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고 했다.
장보고는 “그동안 신라 백성들이 움츠렸던 가슴도 활짝 펴지고, 수심으로 가득한 얼굴에는 웃음꽃이 만개할 그날이 멀지 않았다” 고 하면서 “신라해양무역, 닻을 거두고 돛을 높이 올려라!” 했다.
●수평선은 결승선
왕도 청해진에서 바다의 지평선, 그 선은 ‘결승선(決勝線)’ 이었다. 장보고는 바다를 통한 무역에 있어서 신라.당.일본.동남아 등과 무역 사업의 성공적 완수를 통해 양국의 바다를 같이 연 것처럼, 상선 및 물품 분야 협력을 강화해 양국이 글로벌 해양강국(海洋强國)으로 함께 도약하길 바랐다.
이런 나라들과 관계를 격상(格上)시키며, 나나 간의 관계를 최상의 수준으로 만들어가자는 의지를 다졌다. 국제자유무역 계기로 나라간 관계를 신라에서는 유일한 특별 포괄적(包括的)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역사적인 결심을 맺었다.
양국은 물품 등 핵심사업을 비롯해 해양조선, 지식재산,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MOU를 체결했다.
장보고는 “나라간의 무역(貿易)에 있어서 경쟁이 생길 수밖에 없다” 며 “경쟁은 선의의 경쟁이 되도록 서로 상생관계로서 발전을 기해야 한다” 고 협력체계를 이루어가기를 바랐다.
장보고는 수평선을 결승선으로 보고, 그 결승선을 향해 전력 질주했다. 결승선을 통과하면 곧 전환점(轉換點)이 보였고, 그 전환점은 바로 당.일본.동남아 등의 지역이었다. 전환점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신라 또는 일본 등으로 뛰었다.
장보고는 “결승선이 보인다” 라고 말하며, 신라와 당.일본.동남아는 나란히 완수(完遂)에 대한 의지를 밝힌 가운데, 하루 이틀 걸려 달렸던 항해(航海)가 마침내 종료될 수 있다는 기대감을 크게 가졌다. 무역을 거래하고 있는 나라들은 완수의 결승선 도착을 염두에 둔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면서 무역의 릴레이 경주에 만족감을 표시하는 환호성을 질렀다.
장보고는 “결승선이 보인다” 며 “오늘이나 내일은 아니지만, 다가오고 있다. 어떤 나라도 우리의 완주에 해방하거나 신라의 임무를 방해할 방법이 없다” 고 결승선을 향한 전력 질주를 했다.
청해진은 방어(防禦)와 대응(對應)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침력, 약탈 등 위협에 대해 선제적으로 식별하고, 공조.복원력.기술 경쟁을 강화하는 종합적 접근으로 방어와 대응체계를 갖추었다. 적으로부터 대비해 국토를 보호(保護)하고 피해를 줄이는 정책.체계로 안보 취약지역에 대한 비상대응체계를 운영하는 등의 침략.약탈.자연재해에 따라 방어 기준 전환, 기후대응팀 추진을 등으로 위기 대웅을 집단의 공세적(攻勢的) 방어로 추진했다. 그리고 진출(進出)과 교류(交流)로서 신라 기업.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프로그램.행사와 지역.국가 간 경제.문화 교류 협력을 촉진했다. 진출 목적으로 수출, 투자유치, 콘텐츠, 해외진출, 기술교류 등에 맞춰 연격해주는 등의 기업 등 무역종사자, 무역사절단 등에 협력 등 다양한 진출 지원과 교류를 증진시켰다. B2B 매칭 네트워킹의 신라 비즈니스 허브, 무역종사자, 무역사절단 등에서 1:1 미팅,매칭을 하게 하는 등의 현지 바이어 투자자 접근, 무역사절단, 투자교류회 등에서 관계자와의 직접 만남을 통해 진출 기반을 만들어 줬다.
“신라 방어망은 어디 있어?”
방어기지가 어디냐고 물으면 〈완도 청해진〉 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실제 상황처럼 방어하라!” 하며 주변국들의 시시때때 노리고 있는 공격성(攻擊性)을 미리 차단했다. 그는 “모략(謀略)하거나 해적(海賊)들을 보면 그들을 바로 처단하라!” 라고 단호히 물리쳤다.
청해진은 그런 체제를 갖춘 채, 뛰어난 선수들을 출전시켰다.
방어의 선(線)과 무역의 선(線)을 긋고, 그 선을 향해 뛰었다. 단거리 선수가 단변에 결승선을 향해 뛰듯이, 마라톤 선수가 전환점을 밟고 결승선을 향해 달리듯이 청해진에서도 훈련된 선수들을 투입해 경쟁에서 우위(優位)를 점령하고자 했다.
결승선의 수평선은 눈앞에 보였지만, 다가가면 갈수록 더 멀어져 보였다. 인내(忍耐)가 없으면, 그 선을 밟을 수가 없었다. 지구력(持久力)이 많이 필요한 결승선을 항한 항해였다.
망망대해(茫茫大海)의 진출은 힘들고 고난의 연속이었다. 높은 파고의 풍랑(風浪) 속에서 항해(航海)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확고한 집념(執念)과 강한 의지(意志)가 없으면 중도 포기다. ‘나의 사전에는 포기라는 것은 없다’ 라고 장보고는 부하와 선원들에게 사기(士氣)를 진작시키면서 진출무대(進出舞臺)에 서게 했다. 무대는 바다였고, 바다는 배들이 무대를 장식해, 장식된 무대는 한 곳에 고정된 설치물이 아닌 이동식(移動式) 무대로서 당과 일본과 동남아 등지로 떠가며, 신라가 제작자로 나서 장보고가 기획.각색하고, 연출한 장면을 바라보게 했다. 신라+청해진이 연출한 극적인 장면에 찬사(讚辭)를 보냈다. 그 무대가 군사선(軍事船)이면서 무역선(貿易船)의 두 역할을 띤 ‘다목적선(多目的船)-Multi-Pose Vessel’ 으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다목적용 선박은 세계 ‘평화(平和)와 번영(繁榮)’ 을 위한 배였다.
신라는 국제무역에 투입될 해양무대에 띄울 다목적 선박인 ‘청해선(淸海船)’을 건조에 착수, 청해선 기본 및 실시설계 용역, 착수보고회를 개최하고, 선박의 톤수와 주요 세원, 기분 구조와 사양, 주여 설계 방향 및 일정 등에 대한 설명과 의견 소통의 장을 마련했다.
새로 건조될 청해선은 총톤수 5톤 이상 급 규모로 다목적의 썽동선 형태의 선박으로 항구 내에서 첨단공법 건조 시설을 아용한 군사용이면서 상업용의 선박으로서 두 가지 임무를 효율적으로 병행(竝行)하는 다목적용 선박이다.
다목적용 선박, 청해선은 그 배경 및 목족으로 다목적 해양 운행선 〈온누리號〉 로서 대양을 누비게 했으며, 대상 및 방법론에서 국가 해양 지원 개발 및 운행 중요성 증대와 신라해양연구소의 청해선으로 항해하게 했다. 분석 및 수행으로 온누리호인 청해선은 신라 기본 설계, 청해진 건조, 모델 및 성능 시험 검증을 통해 건조됐다. 결괴 및 의의로 온누리호의 해양 운행 최적화 설계 및 공급 장비 활용 연구 효율성 증대를 기했다.
장보고는 ‘신라.청해진이 세계의 최고 선박 시장 석권, 당분간 경쟁자가 없다’ 라는 전제를 달고 신라 조선업계는 청해진을 위주로 대형 선박 건조에 심혈을 기했다.
청해진이 있는 완도 장좌리 앞바다에는 거대한 배들이 마치 섬처럼 바다 위에 떠 있었다. 5톤 이상의 대형 군함과 상선이 눈을 사로잡았다. 사람과 물건을 함께 실어 나르는 페리선인 로 펙스(Ro-Pax) 선도 저 멀리 보였다. del 배들은 선박 내 외장 작업을 끝내고 인도해 갈 선주사(船主社))의 사원들을 태우고 길게는 3박 4일 동안 시운전에 들어가, 안전운행에 이상이 없으면 이 배를 선주(船主)에게 넘겨 이용하게 했다.
8~9세기 때 장보고가 선박을 획기적으로 제작(製作)했었다. 그때부터 신라의 조선은 8세기 후반부터 고부가 고가 선박, 고 기능의 다목적용 선박에 눈을 돌리면서 수출액이 늘고, 매출액과 경상이익(經常利益)이 동반 상승하기 시작했다.
신라 조선업계가 미래를 걸고 찾아 나선 길은 ▲군사목적용 선박 제작 ▲군함,상선의 대형화 ▲특수 다목적선의 제작 등이다.
온누리호의 청해선, 바다의 섬을 만들고, 섬과 섬으로 이어지게 한 징검다리식의 선박들이 줄을 이었다. 선박이 한곳에 모이면, 거대한 섬 하나가 탄생되었고, 그 섬에서는 장좌리의 섬을 능가하는 군사와 무역, 그리고 관광의 메카로 조성되게 하는 등의 완도 청해진의 백리섬길이 당나라, 일본, 동남아까지 연결되는 등 신라를 포함한 대규모 섬 네트워크를 형성, 바다 위에 떠있는 배들은 거대한 섬으로서 섬을 능가하는 다른 섬보다 더 크고, 더 발전하고, 더 유명한 섬으로 능파대처럼 파도를 능가하는 섬처럼 자체를 능가하는 섬들이 바다를 수놓았다. 이런 선박으로 이루어진 섬들이 바다에 조성은 신라는 물론, 다른 나라에게 축복(祝福)이 됐다.
〈서남해 섬을 능가하는 청해섬〉 이라는 제목에 감동했으며, 신라는 동북아 문화 허브로 완도 앞바다 청해섬(선박으로 이루어진 섬)으로 변신한 것에 대해 섬을 능가하는 신라 완도 바다의 섬은 세계인들의 대부분을 끌어들었다.
청해섬을 보고, 하나둘 무(武).상(商)이라는 예술의 옷을 입은 섬, “육지 벗들을 오라하네!” 라고, 신라 추천했다. 문화예술이 있는 섬, 완도 앞바다의 섬과 당.일본.동남아 사이 바다 위에 조성된 선도(船島)의 〈청해섬〉 을 예술(藝術)의 섬으로 단장했다. 춤추자 청해도(淸海島), 육지 벗들의 발길이 잠시 주춤한 사이 청해섬이 세련된 화장을 하고, 완도와 당.일본.동남아 사이 수백 년 고독과 이별을 잊고, ‘예술섬-Art Island’ 으로 변신하면서 ‘희망, 소통, 공유, 우정, 사랑’ 을 노래했다.
대양에서 펼쳐진 청해섬은 여행자를 반긴다. 수려한 풍경과 독특한 생활 문화를 품은 보석 같은 섬, 청해섬은 신라와 해외의 〈바다섬프로젝트〉 에 선정돼, 인정과 건강에 예술까지 제대로 입었다.
군함도(軍艦島),무역도(貿易島)인 청해섬은 ‘자연+예술’ 이 공존하는 글로벌 랜드마크로서 바다에 선박의 섬을 조성해 자연이 공존하는 문화예술 공간을 완성하고, 신라사람은 물론, 세계인이 즐겨 찾는 랜드마크로 발전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다.
대양에 떠있는 청해섬, 바다 위 예술공원, 여러 개의 비정형(比定型)의 떠있는 꽃잎으로 구성된 해상공원은 독창성(獨創性)과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꽃잎들은 섬과 섬으로 연결돼 세계인 어느 누구나 바다 위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노을과 바다 풍경을 동시에 누릴 수 있게 해주었다.
장보고는 일상 속 쉼표 하나, 완도 예술의 섬 청해섬 여행기에 강력 추천하며 항해를 멈추지 않았다. 파도에 춤을 추는 건, 신라기 만든 선박들이 무희(舞姬)로 등장했다.
1000년이 지난 요즘도 완도 앞바다에는 바다 사나이 장보고가 그린 고요한 설렘〈신라, 장보고의 고요한 일상 展〉 이 펼쳐지고 있다.
완도 앞바다에서 위치한 〈갤러리예술섬-Gallery Art Island〉 가 완도의 섬과 바다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온 영암 출신 청해진 대사 장보고가 초대해 기획전(企劃展)을 꾸준히 천년 동안 열고 있다.
전시는 갤러리예술섬이 신라인을 조명하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신라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신라인과 세계인들 시리즈의 첫 번째 무대다.
장보고는 이 전시에서 〈신라, 장보고의 고요한 일상〉 이라는 주제로 평범한 일상 속에 숨겨진 완도를 배경으로 한 신라의 아름다움을 관조적(觀照的) 서정주의(抒情主義) 화풍으로 풀어낸 신작과 대표작들을 선보이고 있다.
완도의 섬과 바다, 장보고의 시선으로 다시 태어난 장보고의 캔버스 안에는 신라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한구석에 품고 있을 법한 풍경들이 가득하다.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든 고향 영암 선암마을 뒷산 오봉산과 활성산,궁성산에서 내려다본 전경부터 빨갛게 물든 완도 동백섬, 삶의 활기가 느껴지는 섬과 청해진의 고요한 바다까지 완도의 사계절이 장보고 특유의 자극적이지 않고 담백한 상태의 슴슴하면서도 깊이 있는 색채로 구현됐다.
특히 그의 화풍은 대상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상을 멀리서 지켜보며 그 안에 담긴 서정성(抒情性)을 추출해 내는 ‘관조(觀照)’ 의 미학(美學)을 보여준다.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한, 익숙한 완도의 풍경이 장보고의 붓끝에서 얼마나 따뜻하고 설레는 공간으로 변모(變貌)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섬이 예술이다.’ ‘청해섬이 작품이다.’ 명작(名作)을 탄생시킨 장보고의 예술성은 1000년이 지나도, 그 작품은 빛 바라지 않는다.
●환상의 섬 청해진, 신비의 섬 청해섬
장보고가 중년을 보냈던 완도의 섬 청해진, 이 섬과 주변의 섬들은 매우 놀랍고 경이로운 느낌을 준 ‘환상(幻想)의 섬-Fantasy Island ’ 이다.
장보고는 이런 섬들을 보고 “정말 환상적이네요” 라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는 섬에 청해진을 설치한 것을 두고, “매우 환상적인 조합이네요” 했다. 서로 어울리기 힘든 요소들이 환상적으로 조합한 모습이여서 〈환상의 섬〉 이라고 했다.
환상적인 광경이 연출된 청해진, 운해, 바닷길, 일몰, 푸른 바다, 파도 등이 환상적이었다. 운해 속 섬, 나지막한 섬 정상에서 운해로 둘러싸인 천공(天空)의 섬 같은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했고, 만조 시간에 바닷길이 열려 갯벌이 드러나는 신비로운 현상이 빚어졌다. 청해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노을 풍경이 바위들과 함께 마법 같은 장면을 연출했다. 여름철 폭풍으로 인한 높은 파도, 썰물 때 하늘을 반사해 거울 같은 광경, 플랑크톤이 빛을 산란시켜 파란 수면을 만드는 현상, 이런 독특한 자연 광경으로 매일 연출되는 등 환상적이 풍경이 포착됐다.
여행도 이런 멋진 곳으로 떠나는 구나! 장보고가 반해버린 환상적인 광경이 펼쳐지는 단순히 섬 풍경을 넘어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준 섬 투어 여행의 최적지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게 했다.
장보고는 완도의 섬에서 보는 운해, 천공(天空)에 떠오르는 섬 연상시키는 환상적인 광경이라고 극찬(極讚)했다. 자연의 끝없이 열린 하늘의 천공(天空)의 섬은 자연의 조화를 이룬 ‘천공(天功)의 섬’ 이었다.
장보고는 완도의 섬에 대해 〈완도의 섬, 환상적인 광경과 신라 미술 작품들을 만나다〉 라고 “완도의 섬들은 자연이 빚은 예술과 상상력이 만나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곳이다” 라고 했다.
이곳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상상 속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어낸 것으로, 그 안에 들어서면 마치 다른 차원으로 온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섬들은 단순히 섬을 감상하는 곳이 아니라, 방문객 스스로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색다른 경험을 즐길 수 있는 장소로 꾸며져 있어 섬에 주는 매력에 빠졌다. 섬은 〈섬과 전설〉 주제로 구성된 작품들은 방문깨들에게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시간을 선사해준다.
이처럼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청해진은 환상적인 경험과 상상력 넘치는 작품들을 통해 탐방객들의 글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청해진에 대한 평판도 높아졌다. 따라서 완도행 발걸음 중 꼭 한번 방문해보길 추천한다. 특별한 경험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환상의 섬 청해진...
완도 앞바다에 떠 있는 선박(船舶)들이 하나의 〈섬〉 처럼 보였다, 그 섬은 〈신비의 섬 청해섬〉 이다.
완도 앞바다의 ‘선박’ 들로 이루어진 섬은 장보고가 낳은 기적의 예술(藝術)이다. 배들이 떨어져 있으면 흩어진 꽃잎이요, 한곳에 모아있으면, ‘한 송이 꽃’ 이다.
바다 위의 선박들을 보기를 꽃이 핀 모양새로 본 것이다. 꽃은 물결에 따라 이동을 하고, 파도에 의해 보였다 안 보였다고 하고, 때로는 그 꽃들이 하나의 〈꽃 정원〉 을 이뤄 바람이 향기를 날린다. 꽃 정원은 조성됐다가도 일부 꽃으로만 남아 다소곳이 피어있는 한 송이 야생화 꽃을 보는 듯했다.
장보고의 바다 꽃밭 조성은 신라의 상징성(象徵性)이 되었다. 신라만의 바다 꽃 정원을 만들어 〈신라의 향기〉 를 품어내었다. 그 향기에 바다는 새들을 불러들었고, 새들은 신라의 향기에 취해 날개 짓을 해되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춤사위다.
꽃 정원에 파도가 부딪히면 그 물방울은 마치 사람의 눈물 같았다. 선박은 눈물을 흘렀는데, 그 눈물은 〈기쁨의 눈물〉 이었다. 희망에서 오는 눈물이었다.
신라의 선박들, 바다의 꽃 정원을 보고 해외 사람들은 “신라에도 이렇게 멋진 곳이 있다니, 우리나라보다 더 신비로운 광경을 뽐내고 있구나!” 하며, 감탄(感歎)했다.
그들은 “신라를 여행하면서 신라 같은 독특한 분위기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을 발견할 수 있다” 며 “이러한 독특한 국내 여행자들을 방문하면, 기전 잘 알려진 여행자들을 방문했을 때보다 조금은 더 특별한 에너지를 받곤 한다” 고 했다.
신라의 선박들은 상선(商船)에 그치지 않았다. 상업적(商業的)이면서도 군사.여행.어선의 목적으로도 사용하게 했다. 배는 연안(沿岸)에서 사용되는 배에 그치지 않고, 대양(大洋)에서도 항해할 수 있는 거선(巨船)의 역할을 띠게 했다.
선박들이 항해하는 모습은 파도를 거스르는 모습이 꽃으로 보였다가도 물고기로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곳을 보게 되면, 신라바다의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마치 세상과 천상(天上)을 가르는 경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이곳의 경치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외감(敬畏感)을 자아내기도 하는 신라바다다.
신라바다는 자연과 조화를 이룬 선박군(船舶群)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마법(魔法) 같은 공간으로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런 신비를 자아낸 배들은 〈하늘을 나는 배〉 의 신라바다에 신기루(蜃氣樓)가 포착 되곤 했다. 완도 앞바다에서 마치 거대한 배가 하늘을 떠다니는 듯한 신비로운 고아경이 포착된 것이다.
바다의 신기루로 불리는 지평선 위에 발생하는 거대한 신기루의〈파타 모르가니-Fata Morgana〉 현상인데, 선박들이 수면(水面)을 가르는 것이 아닌 하늘을 나는 듯 보였다.
“야!~ 진짜 신기하다.”
“날아다니네, 배가!”
AI(인공지능)가 만든 가짜 영상 같은 모습의 항해는 한동안 계속되었다. 배가 하늘을 나는 둣한 착시(錯視)는 바다의 신기루라 불리는 〈파타 모르가나〉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신기루(蜃氣樓_는 차가운 공기와 그 위에 따뜻한 공기가 만들어질 때 빛이 굴절하면서 발생한다. 완도 앞바다에도 해수면 근방 기온과 위쪽 기온 차이가 크게 나 공기 밀도(密度)를 바꾸면서 착시가 나타난 것이다.
공기 밀도 차이를 일으켜서 나타나기만 하면 신기루가 나타나는 건데, 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신기루는 규모가 크고 상이 뚜렷하다. 완도 앞바다에서 파타 모르가나 현상이 발생한 건 차가운 바닷물 영향이다. 이 영향에 선박들이 하늘을 나는 배로 둔갑한다.
신기루 같은 배들, 이런 하늘을 나는 듯한 배들이 신비(神秘)를 자아낸다. 당나라나 일본, 동남아 지역의 바다에는 그런 현상들이 덜하고 크지 않은데, 신라바다에서는 그 신비가 많이 드러난다. 장보고가 띄운 배들이 신비 그 자체여서 좀 많이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신라바다의 배들의 군무(群舞), 배들로 이루어진 군무단(群舞團)이빠르게 항해하며 추는 춤으로, 마치 꽃이 피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관을 자아냈다.
신라 신비주의(神秘主義) 종교의식을 기원으로 하는 것 같은, 어려운 경전(經傳)을 읽는 대신 춤을 통해 신을 만나고자 하는 배 활동적 명상으로 종교적(宗敎的) 의미를 갖게 했다.
완도 등 신라바다에서는 배들의 군무를 쉽게 만나볼 수 있을 정도로, 청해섬(신라 선박)은 신라의 대표적인 군무로 여겼다.
신라바다를 추는 분들을 청해인이라고 부르는데, 청해인들은 자기만의 주기도문(主祈禱文)을 외우며 기도 후, 파도소리에 맞추어 물결처럼 항해의 춤을 추었다. 신비로운 음악을 배경으로 여러 개의 배들이 오고가며 꽃처럼 피어나는 신라바다의 모습은 환상적(幻想的)이고 경건(敬虔)하였다.
가끔 배들이 원을 그리며 항해하기도 했는데, 청해섬의 주된 항해는 모든 만물(萬物)은 돈다는 세상의 이치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태양계(太陽系)의 행성(行星)들을 상징하며, 계속되는 회정이라는 고통스러운 항해는 신(神)을 만나기 위해 이겨내야 하는 하나의 관문으로 여겼다.
회전 중 선원들이 양팔을 벌려 오른손을 하늘을, 왼손은 대지를 가리키는 동작은 하늘로부터 전해지는 사랑과 은총(恩寵)을 사람들에게 전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회전 속도가 빨라질수록 신과 가까워진다고 믿으며, 신과의 소통에서 나아가 마침내 신과의 합일(合一)을 추구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청해섬의 군무는 신라의 색채가 가장 강한 경주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매일 완도 앞바다 등 신라 전역의 바다에 〈신라 선박 페스티벌〉 이 열렸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신과의 합일을 이루는 바다’ 라는 뜻의 〈신비-含 드러나다〉 로 수많은 선원들이 진행하는 청해섬 군무가 펼쳐졌다. 매일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국내외 수많은 군인.상인.어부.주민들이 지켜보는 세계적인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여기가 신들의 놀이터, 신들도 반할 정도의 아름다운 광경의 신라바다에서 펼쳐졌다. 완도에서 포착된 빛나는 파도, 그 물결 위에 배들이 떠갔다.
신라바다에 떠있는 배, “정말 신비로워!”
신기루는 어쩜 ‘신기원(新紀元)’ 이 아니었는가 한다. 새로운 기원, 즉 획기적인 사실로 말미암아 전개되는 시대가 출현(出現)한 것이다. 신라바다에 나타난 신기루 현상은 신라의 신기원을 보여주는 일로써, 신라는 청해진을 통해 국제자유무역에 있어서 성과를 달성했다.
이런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 신기원을 이룬 신라는 기술제품, 기록 연구 등에서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는 놀라운 성과를 달성하는 등의 끊임없는 열정과 의지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꿈과 같은 무역의 신기원을 이루었다.
청해진 대사 장보고는 군사를 배경으로 한, 국제자유무역 등 혁신해 사회적 가치의 막대한 자본 창출하는 경영 신기원을 이뤄냈다.
청해진을 설치 한 후부터 사회적 가치 창출액을 측정해온 신하가 그동안 무역 분야에서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하고, 신사업을 활발히 추진한 결과, 사회적 가치 총량이 매년 꾸준히 증가한데 따른 성과로 분석됐다.
장보고는 각 관계사들로 하여금 사회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측정하고,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측정 결과를 이해관계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사회적 가치 창출 노력을 배가해 나갔다.
이에 각 관계사들은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 자체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사업 전반의 구조적인 변화를 꽈해 성과를 가뒀다.
청해진은 이해관계자들이 당연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거나, 완화하는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비즈니스 모델이 생겨나고. 혁신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런 식으로 사회적 가치 신라 각 관계사 사업에 내재화(內在化)되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장보고는 항상 자신에게 다짐하기를 ‘난 신라무역의 신기원을 이룬다’ 라고 자신감을 갖고 무역에 뛰어들었다. 그는 〈국제자유무역 신라가 추진한다〉 고 ‘국제자유무역은 신라로부터’ 라는 무역의 첫 출발은 신라로 통한다는 신라무역에 돛을 올렸다.
장보고는 가지 않는 길에서 시작 된 신라 청해진의 더 새롭고, 더 강하고, 더 잘 사는 신신기원적(新紀元的)인 도전(挑戰)과 도약(跳躍)을 ‘9세기를 넘어 앞으로 10세기’ 를 내다보는 더 특별한 변화가 기대를 모으고 있다고, 10세기를 내다보는 길에서는 해상무역과 신산업 육성 등으로 영원한 신라 실현과 문화 증진을 통한 신라의 고유자신을 평생 소득화(所得化)하는 정책 추진과 섬 및 바다 기반 시설 지속적 확충과 무역산업 시설물 정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여 잘 사는 신라에 대한 기대치는 더욱 높여가게 했다.
‘신라는 바다의 신기루, 바다의 신기원으로 장보고가 다시 돌아왔다. 당나라 탈출, 새로운 시대에 압도적 스케일의 신기원이 펼쳐진다’ 라는 23년 만에 당나라에서 돌아오며 차원이 다른 스케일과 더욱 스펙터클해진 이야기를 써냈다.
희미해진 기억과 퇴색해진 그림에서 포착해 볼 수 있는 쓰러져 가는 건축물과 도로에 드러난 갓길은 어렴풋한 흔적만을 남긴 지난 인류의 역사를 드러내며, 앞으로 펼쳐질 스토리에 대한 호기심(好奇心)을 자극했었다.
〈군사.무역의 신기원 청해진 뜬다〉 라는 청해진을 ‘신기해진(新紀海鎭)’ 으로 만들어냈다.
●장보고는 르네상스칼라다
르네상스칼라-Renaissance Collar의 정치.경제.상업.문화.예술.군사 등 다양한 분야를 두루 섭렵(涉獵)하고 만능인(萬能人)을 말한 신조어다. 그는 온갖 책을 널리 읽거나,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경험을 축적했다.
그는 그런 깊은 지식과 폭 넓은 일을 했기에 전 세계의 그 누구와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재주꾼이다.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는 재주와 솜씨를 갖춘 ‘재간(才幹)’ 이 있는 그이기에, 그는 정치.경제.상업,사회.문화.예술.군사 등 자신의 꿈을 쫒아 관련된 사업에 뛰어들었다.
장보고는 군사(軍事)로서 활동을 하다가 무역(貿易)을 공부한 후 무역회사에서 유통업자로 일한다거나, 군사.무역인이 정치가로서의 활동을 했다. 그런 그가 다방면에서 자신의 전문 지식을 활용해 대중적인 인기를 끄는 〈장보고 콘텐츠〉 를 개발해 성공했다.
그는 그런 일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토대로 또 다른 변화를 꽈하기도 했다. 실제로 르네상스칼라 중 상당수가 다른 일을 그만두고, 다시 당초의 꿈을 몰두했다. 장보고의 르네상스칼라에 매력(魅力)을 느낀 것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 중국 당나라 관리(官吏) 등용 시험에서 인물을 평가했던 네 가지 기준이다. 신(身)은 풍채와 용모, 언(言)는 논리적인 언변, 서(書)는 필체와 필력, 판(判)은 사물의 이치를 구별하는 판단력을 뜻한다.
이 네 가지를 두루 갖춘 사람을 으뜸으로 평가하고, 여기에 덕행(德行)이나 재능(才能), 효심(孝心) 등을 감안해 관리로 선발했다.
특히 지식과 됨됨이를 보여주는 글은 인재를 뽑는 핵심 잣대였다. 조선시대 관리가 되는 관문인 과거시험(科擧試驗)은 결국 글쓰기 능력의 테스트였다.
이런 재주가 다분한 사람이 바로 장보고다. 그는 어릴 적부터 궁술(弓術)에 능했다. 생각하는 것이 깊고 넓고, 포부가 커 예사스럽지 않게 생각했다. 장보고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당나라로 떠났다. 당나라에는 이미 신라인들이 거주하며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장보고는 신라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인 신라방을 찾아 거기서 함께 소통과 공유하며 일을 도모했다. 그는 군인이 되겠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당나라에 있는 무령군(武寧軍)에서 군인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군에서 요구하는 자격시험에 도전해 합격통지를 받고 군인으로 근무했다. 그는 남다른 군사실력을 보여줘 지휘자인 소장(少將)으로 진급하고 무령군의 책임자로서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장보고는 군인으로 있으면서 통일신라시대 당나라 산둥반도 적산촌(赤山村) 일대에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을 세워, 당나라에 머물던 신라 승녀, 상인, 유학생 등의 신앙 거점이자 항해 안전을 기원하는 예배처로 지역사회에 기여했다. 범화원은 신라와의 연락기관 역할을 하였고, 신라 승려뿐 아니라, 일본 승려들도 이 절에서 머물며 도움을 받았다. 적산법화원은 신라원(新羅院)과 함께 예배처(禮拜處)로 신암심(信仰心)을 키우며 평안(平安)과 안녕(安寧), 단결(團結)과 번영(繁榮)을 기했다.
신라방(신라인 거주 집단지)이 규모의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을 키워냈다. 당나라는 군사작전에서 장보고의 역할에 매우 중요시하며, 그의 전술(戰術)과 전략(戰略)에 귀를 기울었다. 신라방은 그가 추진하는 일에 일시에 번성(蕃盛)했으며, 타국에서 귀 죽지 않고 이민자(移民者)로서 당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해주었다. 기세등등(氣勢等等)한 신라임을 보여줬다.
〈아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치이는 확연하다. 시대가 변할수록 그만큼 새로운 것들을 요구한다. 그런 시대에 단순히 아는 것만으로는 경쟁력(競爭力)을 유지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왔다. 그래서 ‘배우는 사람’ 이 되고자 한다.
‘배우고 또 배우니 좋지 아니한가’ 라며 당나라 장수(將帥) 장보고는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 왔지만, 영리하게 군인 생활을 해왔고, 어린 나이지만, 자신에 대한 확신도 있고, 확신은 자존감을 높게 만들고, 군인으로서 더 빛나게 한다” 고 했다.
그는 당나라에서 무령군 소장으로서 충성심(忠誠心)과 사명감(使命感), 그리고 국가관(國家觀)을 확고히 했다. 나라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군복무에 충실히 한 그는 빠르게 달려왔지만, 급하진 않았다. 장보고는 조금씩 변화하는 자신을 인식하면서 배우고 또 배웠다. 지칠 법도 하지만, 활기찼다. 이유는 단 하나, 군 생활이 해외에서의 삶이 너무나 재미있고, 행복해서다.
장보고는 “당나라 생활은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정말 바쁘게 달려왔다” 며 “많이 배웠던 것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이렇게까지 경험하고 느꼈구나! 실감하고 있다” 고 밝혔다.
장보고는 “내가 무령군에 입대해 군인으로서 활동으로 매우 달라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며 “내 성격이 활발해졌고 더 남자다워졌다면서 칭찬을 많이 듣고 있다” 고 했다.
장보고는 그런 자신의 변화에 대해 다양한 캐릭터를 맡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듣는 자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성격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로 장보고는 정말 바쁘게 달려왔다. 그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구 좋아하는 일을 쉬지 않고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며 만족해했다.
장보고는 “개인적으로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을 신경 못 쓴 것 같아 아쉽기도 한데, 그런 거에 비해서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했으니 알찬 한해였다” 며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고 했다.
바쁘게 달려온 지난 세월, 마무리도 좋았다. 군대(軍隊).군비(軍備).전쟁(戰爭)의 업무를 만나, 지금까지 활동했던 역할 중 제일 강한 캐릭터를 맡았다고 했다. 마니아층이 두터운 임무의 매력도 알게 됐고, 강한 척 하지만 아픔이 있고, 이야기의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소장 직을 수행하며 새로운 캐릭터 도전의 의미도 깨달은 장보고였다.
그는 무령군은 마니아층이 두터우니까 진짜 하면서도 즐거웠다고 했다. 복무하는데 전혀 지루하거나 힘들지도 지치지 않았다고 했다. 계속 궁금해 하는 것들이 군인(軍人)다운 군인을 만들어가는 군사(軍事)들과 같은 입장인 것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진짜 경력한 영향이나 충격 등의 임팩트-Impact가 강한 캐릭터라 신선했고,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캐릭터가 처해있는 상황 자체도 탄탄하고, 장보고가 앞으로 풀어나갈 이야기도 많은 것 같으니 너무 욕심이 났다고 했다.
그렇게 무령군을 만난 장보고는 이전 일에 비해 확실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겪었다. 무령군 소장이라지만, 상처가 있는 장보고는 잘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보고는 내가 왜 타국에 와서 군 생활을 하는가?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하면서 지키는 일, 보호하는 일, 그리고 상업을 배우는 일, 무역을 해볼 수 있는 일, 세상 사람들과 상대를 해보는 일, 친분을 쌓는 일, 선진 문화를 배우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고 자신을 위로하며 용기를 북돋았다.
가히 배우고 또 배우는 장보고였다. 주어진 일만 갖고 열심히 임함에 있어서도 몰입(沒入)을 배웠다. 군인이라는 직업에 걸맞게 상황에 맞춰 자신을 컨트롤 할 줄 아는 똑똑한 장수였다.
그는 함께 한 동료들에도 많이 배웠다. 그는 또 신라방에 계시는 분들한테도, 당나라 사람들한테도 배움이 많았다. 특히 피곤하고 지친 상태이 장보고를 생각해 남들이 보지 않은 데도 눈물을 흘리며 충실히 역할을 맞춰준 분들을 보며 진짜 멋쟁이라고 느꼈고 감동했다.
어떤 마음으로 현장에 임해야 하는지 또 배웠다. 존경의 시선을 보내준 동료와 신라방에 계신 분들에게도, 법화원에 있는 분들에게도 고마운 마음뿐이었다.
주어진 상황에서만 배움을 얻었을까? 그것도 아니다. 마니아층이 두터운 군 생활과 당나라 생활이었던 만큼, 많은 사람들의 의견에도 자연스럽게 배움을 얻었다. 반응을 모두 챙겨보며 뿌듯함도 느꼈다. 역할에 대한 믿음은 원래 있었지만, 탄탄 하는 칭찬이었으니, 더 뿌듯했다며 어느 것 하난 허투(虛套)로 생각하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다.
장수를 통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만족스럽게 생각한 장보고는 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자신을 다르게 보는 주위 사람들의 반응이 나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디. 내가 누군지 잘 모르겠다는 이 상태가 좋은 것 같기도 하다며, 어떤 캐릭터 성격을 맡아도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기기 때문이라 라고 현재의 모습에 만족했다. 장보고는 나에게 맞게 뭐든지 한 게 중요한 것 같다며, 나이에 맞게 성장해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 많이 하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서 물론 주연을 하면 너무 좋겠지만, 일단 나이에 맞는 캐릭터를 하는 게 중요하다며, 어기지로 안 맞는 걸 하면 더 인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군 생활을 오래 할 건데 나중에 충분히 적절하게 할 수 있을 때가 오지 않을까요? 하며, 서른 마흔이 됐을 때 20대 모습을 보며 또 느끼는 게 있을 것 같다면서 입대 후 바쁘게 달려온 세월은 후회는 없다고 했다. 진짜 빨리 지나간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군 생활에 빠져 들었다. 그만큼 앞으로도 더 집중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장보고는 아는 사람에 그치지 않았다. 배우는 사람으로 변신을 시도했다. 그는 시대를 잘 읽었고, 미래시대를 미리 내다보는 예측(豫測) 능력도 뛰어났다. 신라는 지금의 신라로는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는 것, 지금의 안보 전략으로는 절대 질서와 안정, 평화와 번영을 기할 수 없다는 것에 직시(直視)했다.
그는 〈신라의 틀을 바꾸자〉 라는 슬로건을 제시하며, 신라를 변화시키는 일에 아는 사람에서 ‘배우는 사람’ 으로 변신했다.
장보고는 ‘문제해결 능력, 창의적 사고’ , 그리고 ‘지속적인 학습 능력’ 이 너무나 중요한 시기라고 과거가 바라보는 현재, 현재가 내다보는 미래에 대한 고찰(考察)에서 분명 변화와 혁신이라는 것에 필이 꽂아야 한다고 봤다. 기존의 교육의 방식도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한 보고 듣는 태도에서 벗어나 내가 먼저 만들고 보여주려는 일에 더 집중하고 앞장서야 한다고,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지식(知識)을 유동적으로 배우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되고 있다고 봤다.
장보고는 고정된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아는 사람’ 유형은 한때 강력한 우리가 말하는 ‘사(士)’ 자 직업을 가졌지만, 미래시대에서는 점점 더 도태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보고, 기존의 경험과 습득한 지식에 의존하며,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어려움을 겼을 수 있다는, 특히 배움이 없는 사람은 더욱 더 그렇다. 그래서 기존의 틀을 깨고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필수적이 되고 있다는 점을 깨닫고 아는 사람보다 배우는 사람이 되길 바랐다.
아는 사람은 한 번 배운 지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새로운 학습보다는 기존의 지식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성장 마인드 셋을 가진 사람들은 끊임없이 배우며 변화하는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한다. 이점을 안 장보고는 늘 배우려는 자세를 취했다. 그래서 그는 신라보다 더 선진화된 당나라에 가서 여러 분야를 배우려고 했다.
장보고는 시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늘 변화의 연속성(連屬性)에 놓여 새로운 것들이 출현한다는 것을 믿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 학습의 중요성을 느낀 장보고는 한 가지 기술을 익히면 오랜 기간 활용할 수 있지만, 내일 내일로 더 시대가 바뀔수록 또 다른 것들이 나타나기에 학습(學習)이 평생 지속되어야 한다고 했다. 새로운 기술이 끊임없이 등장하며 기존 기술도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정체된 지식은 금방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지식의 축적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고, ‘변화에 적응하는 학습 태도’ 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배우는 것에 노력하려 했던 장보고는 새로운 정보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분석(分析)하고, 실생활에 적용(適用)하려고 했다. 그는 “배우는 사람이 승자가 될 것” 이라며 ▲배워 자신의 생산성 극대화 ▲협업하여 시너지 창출하는 방법 익힘 ▲창의적 사고와 전략적 결정에 집중해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하고, 미래를 주도하게 했다.
장보고는 아는 사람으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배우는 사람으로 성장할 갓인가? 의 갈림길에 서며 시대에 부흥하는 승자가 되려면, 끊임없이 배우고 적응하며, 시대를 앞서는 지식과 기술을 터득하는 일에 적극적인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했다.
변화는 위기가 아니라 ‘기회(機會)’ 라 보고, 그는 늘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자신의 변화는 곧 신라와 전 세계를 동시에 변화시킨다고 확신했다.
장보고는 훌륭한 인물을 꿈꾼다면, 전문성과 소통의 태도를 두루 갖춰야 한다며, 전문가(專門家)의 길을 걷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다.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신라 승려들을 위한, 항해 안전을 기원하는 데 당나라 산둥반도 적산촌에 ‘적산법화원’ 을 두었다. 그러면서 승려와 신라인들과 소통창구로 쓰며 서로 정보와 지식을 공유(共有)했다.
신라에는 뛰어난 지식과 기술의 다방면에 능통(能通)한 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장보고의 머리나 카리스마에는 좀 못 미쳤다. 장보고가 선진 문명을 많이 보고 느끼고 배운 인물이어서 그를 능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장보고는 지능.전략.지휘 중심 리더십의 ‘지장(智將)’ , 덕 중심 리더심의 ‘덕장(德將)’ , 용기.전투.지휘 중심 리더심의 ‘용장(勇將)’ 이었다. 지.덕.용을 모두 갖춘 인물로서 능력(知性)이 품성(德)과 지배력(勇)보다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장보고는 덕장으로서 뛰어난 '덕성(德性)-Virtue' 로 부하들의 마음의 감동시키려는 리더였다. 그는 또 지장으로서의 뛰어난 지략(智略)과 전문성을 갖춘 ‘전략가(戰略家)’ 였다. 용장으로서의 용맹(勇猛)함과 추진력(推進力)을 갖춘 리더로서 강인함으로 사람들을 입도하는 ‘지배력(支配力)-Dominance’ 를 발휘했다. 장보고는 리더의 탁월한 ‘전문성(專門性)-Competence’ 를 부하들은 Respect-존중(尊重)했다.
장보고는 덕장이 영향력을 높이는 경로는 구성원으로부터 '감탄(感歎)-Admiration' 을 이끌어냈다. 용장이 영향력을 높이는 경로는 ‘두려움-Fear’ 를 통해서 그랬다. 지장의 영향력은 ‘존중(尊重)-Respect’ 로부터 나오게 했다.
장보고는 나의 리더를 생각하면 나는 세상에 여전히 ‘선(善)’ 이 있다고 믿었다. 나는 나의 리더의 선함에 감동한다며, 나의 리더는 내 자신에 대해 너 나은 부분이 있음을 인식하게 한다고 했다. 나의 리더는 타인을 돕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기꺼이 희생했다. 나는 나의 리더의 도덕적(道德的) 기준을 따르려고 노력했다. 나는 나의 리더의 진정성(眞正性) 덕분에 행복감을 느꼈다.
장보고는 나의 리더는 타인을 ‘통제(統制)’ 하는 것을 즐긴다고 했다. 나의 리더의 재능은 타인에게 인정(認定)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는, 나는 나의 리더가 성공할 수 있는 기술(技術)과 전문성(專門性)이 충분함을 믿었다. 나의 리더는 타인으로부터 전문가(專門家)로 여겨진다고 봤다. 그는 나는 나의 리더가 일터에서 유능(有能)하다고 생각했다.
장보고는 여러 리더의 유형에서 ‘높은 덕성, 중간 지성, 낮은 용성’ 의 균형(均衡)잡힌 기여형(寄與形) 리더였다. 그는 또 높은 덕성, 높은 지성, 낮은 용성의 겸손한 승자형(勝者形) 리더이기도 했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을 쓴 손무(孫武)는 장수를 세 분류로 나누었는데, 지장(智將), 덕장(德將), 용장(勇將)이다. 지장은 싸움에 있어서 대처할 상황을 파악하고, 예측 분석하여 전략을 세우는 전략가(戰略家)라 할 수 있는 〈제갈량〉 이다. 덕장은 많은 사람을 따르게 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이미지 소유자로서 그 덕성(德性)에 감동되어 지장과 용장들을 우군으로 삼을 만큼 존경받는 지도력을 가진 자에 해당된 〈유비〉 이다. 용장은 항상 “나를 따르라” 하는 리더십으로 능력이 출중하고 두둑한 뱃심을 가진 용맹(勇猛)과 강한 리더십으로 군사(軍事)들을 선두에서 이끌어 가는 카리스마를 자진 지도력(指導力)을 가진 〈장비〉 이다.
장보고는 이런 제갈량 같은 지장, 유비 같은 덕장, 장비 같은 용장이면서 더 하나 갖춘 것은 ‘영장(靈將)’ 이다. 영장은 영적(靈的) 장수다. 보이는 싸움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싸움이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령(聖靈)의 강력한 기름 부으심으로 인한 신의 주권적 섭리(攝理)를 믿는, 그 능력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인데, 그 인도함을 받은 자가 바로 통일신라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해상왕 ‘장보고(張保皐)’ 였다.
장보고는 이러한 통전적(通全的)인 지도자로서 ‘지장과 덕장, 용장 그리고 영장’ 의 지도자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신라나 주변국들은 수년간 갈기갈기 찢기어진, 이 신라의 민족의 마음을 하나로 봉합(封合)하고 치유(治癒)하는 〈지도자-장보고〉 가 합(合) 한자를 위해 온 백성이 마음으로 우러르고, 추앙할 만한 위대한 덕성(德性)을 갖춘 영장(靈將)이 나오게 한 신라, 신 앞에 겸손히 무릎 끊어 구해했는데 바로 장보고가 나타났다.
●1723401858, 805828846의 부호
1723401858에서의 전하는 부호(符號)는 비밀(秘密)이 숨겨진 숫자들이다. 1723401858에서 가장 핵심적인 수는 ‘8’ 이다. 또 1과 7은 8, 3과 5는 8, 2와 4는 곱하기 8, 1과 2와 5는 8의 수로 도출된다. 숫자들끼리 더해보면 8이라는 수가 성립되는데, 여기서의 나온 8은 장보고에게 평생 부여된 사주관상적(四柱觀相的)인 수이다. 그럼 8은 어떤 의미가 담긴 수일까? 장보고는 798년에 태어나, 805년에 당나라로 갔다. 그는 다시 828년에 청해진을 설치했다. 그는 846년에 사망했다. 798년, 828년, 846년 이 숫자에도 ‘8’ 이라는 수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왜 8과의 인연이 깊은가? 이 것이 궁금하다.
8이 지닌 상징적 의미는 ‘영적(靈的)’ 인 의미에서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숫자 8은 신창자(神創者)가 이니시에이션-Initiation, 입문할 때의 의식의 일곱 단계, 즉 칠천계(七千界)를 통과해 도달하는 최종지점이며, 그 자체로 낙원의 회복(回復), 재생(再生), 부활(復活), 지복(至福), 완전히 리듬의 상징이며, 신의 은총에 의해서 인간이 새로이 태어나는 것은 제 ‘8일 째’ 라고 한다.
불교에서는 완성상태 및 모든 가능성을 나타내며, 불족석(佛足石)의 ‘팔길상(八吉相)’ 이며, 중국에서는 전체, 모든 가능성의 현현(顯顯)과 ‘행운(幸運)’ 의 상징하며, 팔괘는 양을 나타내는 효(爻)가 세 개씩 다양하게 결합해서 8개의 조합으로 나타나있는 데, 이들 8개의 조합은 대게 원형으로 배치되며, 이때 원주는 시간과 공간 및 그 속에서의 ‘상생 유전’ 을 상징한다.
숫자 8은 ‘행운, 부, 완성’ 을 상징한다. 이런 8의 수를 간직한 장보고에 부여한 부호이며, 이 비밀은 곧 ‘무한, 재생, 새로운 시작, 번영, 행운, 균형, 조화, 부활’ 등을 찾아볼 수 있다.
1723401858은 17은 당나라로 갈 때 나이, 23은 당나라에 머문 기간, 40은 당나라에서 신라로 들어올 때 나이, 18은 청해진에 군무 기간, 58은 그가 사망한 나이를 말한다. 장보고는 789ㄴ녀에 태어나 805년에 당나라로 떠났다. 그는 828년에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했다. 그는 846년에 암살이라는 비극을 맞았다. 이 수는 무한, 재생, 새로운 시작, 번영, 행운, 균형, 조화이면서 부활이었다. 부활(復活)은 그가 세상을 떠나고 없지만 그의 영혼(靈魂)은 아직 우리 가슴에 남아 살아 혼(魂)으로 숨 쉬고 있다는 의미다.
미래는 문이요, 과거는 열쇠이다. 그 열쇠는 장보고에게 부여된 숫자 부호에 있다. 그 숫자들의 비밀을 풀어보면 그의 미래를 볼 수 있다. 그 열쇠의 핵심적인 비밀번호는 ‘8’ 이였다. 그는 신라의 문, 청해진의 문과 무역의 문, 세계의 문을 여는 데는 자신이 청해진을 설치했던 시기의 ‘828’ 을 누르면 문이 열리게 했다. 장보고에게 부여된 부호는 잘 숙성된 와인처럼 비교할 수 없는 깊이와 복합적인 풍미를 지닌다고 극찬한다. 그에게는 숫자 8이 ‘행운’ 을 상징했던 것.
●장보고의 그리움은 가슴마다
장보고는 『물속 제 그림자 쳐다보고/어쩔 할 수 없는 향수에/먼 산을 쳐다보는/내 신세가 처량하다』 라고 고향을 그리워했다. 그는 당나라에 있을 때 조국 신라와 고향 영암을 잊지 못했다.
23년 만에 조국을 다시 찾은 그는 당나라에서 읊은 시 한수를 다시 떠올리면서 바다를 바라봤다. 이때도 역시 바다는 장보고의 모습을 비추게 했다.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내 모습이 뚜렷하게 잘 보이다가 흐릿하게 흔들리게 보이기도 해, 그는 “내 모습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구나!” 하며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 내 모습도 바다에 비추는 것처럼 올바르게 보이고 그릇되게 보이겠구나!” 자신의 모습 변화를 보고 많은 것을 생각했다.
장보고는 바다에 비추는 자신의 모습이 물결에 어그러지는 것을 두고, 말하기를 “내 모습을 더 좋게 만들어내려고 물결이 이는구나!” 했다. 자신의 모습이 더 또렷하게 보여. 그는 나름의 느낌을 터득했다. 물에서 철학을 얻었고, 자신의 꿈을 다시 꾸었다.
장보고는 자신의 모습을 어그러지게 한 물결은 자신을 더 돋보이게 만들려는 물결로 여겼으며, 물결을 〈희망〉 으로 보았다.
장보고는 그런 물결을 보고 “그래 이것이야!” “문의 열쇠는 물결에 있어!” “바로 이것이야!” “물결을 타는 거야!” “물결에 희망을 걸자!” 라고 하면서 그는 한동안 물결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물결-Wave, 파도가 춤을 추면 희망도 춤을 춘다.
장보고가 당나라에 있을 때 읊었던 詩, 춤추는 바다, 바다에 희망을 건 장보고의 향수(鄕愁)였다. 물결에 철학을 얻었고, 꿈을 꾸었던 그는 청해진에서도 물결에 마음을 띄웠다. 그런 물결이 자신의 마음이 움직이는 걸로 생각하고, 그는 물결에 희망을 걸었다. 무역이라는 것이다.
물결은 쉼 없이 움직이는 현상을 하고 있는 동력물결이기에 그 물결은 생동의 에너지라고 보며, 장보고는 그 물결에 배를 띄웠다. 그 선박에는 물품과 사람을 실었다.
출렁이는 바다에 둥둥 떠가는 선박을 보고 ‘춤추는 바다’ 라고 하면서 춤추는 바다에 여러 배를 띄워 “배도 춤을 추네! 희망의 춤이로구나!” 했다.
물결이 햇빛에 반짝여 신라의 배들도 은빛에 물들었다. 모두가 은빛 찬란한 신비로움에 젖었다. 이런 광경을 연출하면서 바다를 수놓은 배들은 신라의 영토를 넓히는 것 같았다. 신라인들의 희망의 노래를 파도소리와 화음을 낸 듯했다. ‘믌결이 치노메라 여셔여셔 배를 띄워라’ 했다. 장보고는 잔잔한 바다보다 물결이 치는 바다를 더 선호했다. 물결을 가르며 항해하는 법을 터득한 그였기에 물결을 이용해 배가 나아가게 했다. 그는 물결을 〈희망의 물결〉 로 보았다. 희망의 물결이 치니 자신이 띄운 배들이 〈희망선〉 으로 항해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물결이 치니 배가 떠간다. 배가 떠가니 희망이 춤을 춘다” 라고 물결처럼 몸을 흔들었다. 그렇게 기분을 낸 장보고는 물결을 이는 바다를 보고 〈자주海樂〉 이라고, 즐거운 물결이라면서 물결이 자주 일기를, 배가 그 물결에 띄워 나아가기를 바랐다. 이런 현상을〈들樂날樂〉 이라고 했다.
배가 나가고 들어오고 하는 일이 즐거움과 기쁨을 주는 일로 봤다. 그는 『바다 물결 무락(舞樂)이요, 물결 이는 선희(船喜)로구나』 라고 읊었다.
장보고는 물결을 ‘물로 결정한다’ 는 뜻으로 풀었다. 배의 9할은 물결이 결정한다고 선박의 항해에 영향을 미쳐온 물결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항해, ‘물결이 바뀌면 선박의 항해도 달라진다’ 라는 순리(順理)를 따랐다. 신라의 모든 배들은 물로 결정을 했다. 물은 물결로서 선박들의 순항에 영향을 끼쳤다.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바다, 망망대해에서 떠가는 배, 어떤 물결을 일으키고 치느냐에 따라 배의 항해를 좌우됐다. 물결이 높게 일면 배들은 더 높이 떠 나아갔고, 물결이 좀 일으키면 배는 서서히 항해했다. 물결에 따라 배의 항해가 결정됐다. 어울리고, 높여주고, 살아나고, 좋게 느껴지고, 접합하고 상태는 다양하게 전해졌다.
장보고는 ‘떠내려가지 마라! 넋 놓고 있으면, 미혹(迷惑)의 물결에 떠내려갈 뿐이다’ 라는 그 물결이 아닌 희망이 춤추는 바다, 그런 바다의 물결을 이용한 항해(航海)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신을 차렸다. 절대 그는 무엇에 홀려 정신을 못 차리게 한, 정신이 헷갈려서 갈팡질팡 헤맨 미혹(迷惑)의 물결에는 배를 띄우지를 않았다.
●조국의 무대는 마지막 무대입니다
장보고는 다섯 살 나이에 처음 궁사를 배운 훈련장은 저의 무대였습니다. 저에게 그곳은 고국의 백성 여러분과 수십 년간 꿈을 키워온 매우 소중한 무대입니다.
이제 그 고국으로서 다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하나의 무대가 아니라, 한개 청해진과 여러 명의 군사와 여러 선박들을 관리하며, 신라 군사.무역 기관을 이끌게 됐습니다.
제게는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임입니다.
이 역할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며, 지난 23년간 당나라에서 경험을 쌓아온 경험을 신라 군사.무역.문화.예술과 정치.경제.사회에 더 깊고 넓게 기여하는 일에 보태고자 합니다.
청해진이 더 많은 분들께 더 가까이 열려 있는, 이 시대를 품는 군사.무역의 중심이 되도록, 제게 주어진 역할을 성실하고 충실하게 해나가겠습니다.
청해진 대사 임명식에 인사드리겠습니다.
~라고 청해진 대사 임명에 더 큰 포부를 갖고 국가에 충성할 것임을 맹세했다.
그는 당나라 무령군 소장으로 있을 때, 조국 신라와 정보를 교환했었다. 조국의 소식을 들으면서 언젠가는 조국 신라에 다시 들어가 나라를 위해 희생하겠노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조국에서 안 좋은 소식들이 전해져, 그는 소장에서 사직(辭職)하고 조국으로 돌이 왔다.
신라에 가서 바다에 진(鎭)을 쳐 나라를 어지럽힌 해적(海賊)들을 진압(鎭壓)하고 소탕(掃蕩)해 바다의 질서(秩序)를 회복시키면서 안전 속에 무역(貿易)을 하도록 하겠다는 각오를 세우고 조정(朝廷)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국에서 서신(書信)이 와. 그는 망설임도 없이 주저하지 않고 결심하며, 신라방에 있는 신라인들한테 이 사실을 알리고, 무역(貿易) 등으로 다시 찾아뵐 것을 약속하면서 그는 신라로 향했다. 신라에 도착하지마자 왕이 계신 곳, 경주를 찾아 조정에 계신 임금에게 자신의 귀국(歸國)과 존재(存在), 자신의 꿈과 희망과 의지를 알렸다.
임금은 기다렸다는 듯이 장보고를 반갑게 맞이하며, 장보고의 알현(謁見)을 귀담아 듣고, 장보고의 뜻을 들어줬다. 청해진(淸海鎭) 특명전권 대사(大使)로 임명하며, 그를 완도(莞島)로 보냈다. 그는 완도 장좌리에 있는 장도(長島)라는 작은 섬에 청해진을 설치해 나라의 안보(安保)와 신라 국제무역(國際貿易)에 기여를 하라는 특명(特命)을 내렸다.
장보고는 이미 자신이 신라 조정에서 큰 임무를 부여받을 것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갖게 할 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기에, 임금의 특명에 당황하지를 않았다.
그는 당나라 무대를 신라 무대에서 서겠다는 역속을 지켰다.
장보고는 〈Only〉 라는 칭호가 따랐다. 그는 ‘The one and Only-비교할 수 없는 뛰어난, 유명한 유일한 사람’ 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그는 또 ‘One of the Candidates/Choices-후보 중 한명, 여러 선택지 중 하나’ 였다.
‘Only 장보고, Only One 신라’ 라는 정책으로 그는 유일한 신라를 만들기 위한 유일한 청해진으로서 막강한 해군력(海軍力)과 무역강국(貿易强國)으로 발돋움하게 했다.
신라 청해진 대사 장보고를 평가하는 단어 〈Only〉 는...
O-Outstanding(뛰어난, 걸출한, 두드러진)
그는 두드러진 성과를 낸 인물
N-Noticeable(뚜렷한, 현저한, 분명한)
그는 현저한 추진력을 구사한 인물
L-Lively(활기 넘치는, 적극적인, 활발한)
그는 활기차고 적극적인 인물
Y-Yeet(최고임, 멋짐)
그는 최고 멋진 인물
그런 인물을 지칭하는 Only가 아닌가 한다.
장보고는 ‘장보고 곁에 신라. 신라 안에 청해진. 바다 위에 장보고’ 라는 슬로건을 만들고, 그는 Only다운 ‘Only-장보고’ 를 보여줬고, ‘Only-청해진’ 을 운영했고, ‘Only-신라’ 를 만들었다.
유일하다는 건, ‘독보적(獨步的)-Unrivaled’ 이다 라는 뜻이다. 장보고는 군사와 무역 분야에서 경쟁(競爭) 상대가 없는, 필적(匹敵)할 것이 없는, 비할 데 없는 무적(無敵)의 남이 따라 올 수 없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보여줬다. 그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탁월(卓越)함의 ‘훌륭함-Excellent, 뛰어남-Outstanding, 우수한-Superior, 최고의-Superb’ 이다. 탁월한 ‘월등(越等), 걸출(傑出), 우월(優越), 수완(手腕)’ 으로써 〈신라+청해진+장보고〉 최상급(最上級)임을 보여줬다. 그런 남다른 재능으로 신라는 안보와 질서, 무역과 경제는 인정된 상태로 나아갔다. ‘바다는 신라의 진출무대다’ 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바다를 향했다. 장보고의 Only정책은 결국 바다를 지배한 해상왕(海上王)으로 등극했다.
신라는 장보고에 의해 국제적(國際的)으로 위상이 높아졌으며, 그가 추진한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은 〈신라가 그 중심〉 에 서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줬다.
●안보 기반 강화 무역 개선 활발
안보(安保)가 튼튼해야 무역도 활발하다. 장보고가 추진한 청해진은 군사+무역이라는 연결 포인트로 진행했다.
안보가 안정되면 무역이 원활해진다는 신념으로 군사가 단순히 소탕(掃蕩)이나 방어(防禦) 목적을 넘어 무역을 원활하게 한, 안정적으로 운행할 수 있도록 하게 하는데 역할을 띠었다.
안보가 튼튼하면 국가의 안정성이 높아져 무역.투자 환경이 개선될 수 있다는 전제를 달고 통상.경제 분야에 나섰다.
청해진아라는 방위 산업.국방 경영은 안보 기반을 강화하는 수단으로써 이는 장기적으로 무역.산업 경쟁력과도 연결되기에 신라는 〈군사+무역〉 이라는 청해진을 통해 바다는 신라의 앞마당으로 여겼다.
장보고는 신라 안보정책 실천 방안으로 정보.기술 집약형 군사력으로 안보 역량을 강화했다.
신라무역, 무역선은 청해진의 군사선의 호위(護衛)를 받고 항해했다. 청해진의 군사는 무역을 위한 투입된 군인(軍人)이었다. 그들의 신라 선박들이 해적(海賊)과 기상(氣象) 악화 등으로 인한 선박의 불안감 해소를 위한 청해진 군사들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오고갈 수 있었다.
청해진은 군사+무역을 한데 묶어 진행한 플러스알파의 정책으로 추진하게 했다. ‘군사 없는 무역을 없고, 무역에는 군사가 필요하다’ 라는 〈군사+무역=청해진〉 정책을 진행했다.
청해진은 보위(保衛) 기능(관리)과 원활(圓滑) 기능(편리)의 두 기능에 담당하며, 안전 속에 무역(貿易), 무역으로 군사력(軍事力) 강화, 그리고 이것으로 인한 신라 번영(繁榮)을 누리게 했다. 군사의 보위, 무역의 원활 두 가지 요소가 균형을 이뤄 나라에게는 안정(安定)과 평화(平和), 해상무역에는 안전(安全)과 순항(順航)을 기했다.
이것이야말로 청해진의 역할성과 목적으로 ‘보위海鎭, 원횔海鎭’ 이다.
장보고는 군사력(軍事力)을 무역(貿易)에다 투자했다. 무역에 투자한 만큼, 발생하는 이득이 더 컸기 때문이다. 무역이 활발히 추진되면, 거기에 발생하는 자금(資金)으로 군사력을 키운데 사용했고, 군사력이 커질수록 무역은 활발하게 추진됐다. 이것은 다시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영향을 미쳤다.
군사+무역-청해진, 안전(安全)과 항행(航行)의 자유를 누리게 한 희망의 바람이요, 번영의 물결이었다. 장보고는 신라 해상정책은 해상 수송(輸送)에 중요한 통로라며, 이러한 바다의 흐름이 활발해진다면, 세계적으로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특히 신라의 해상정책이 활발하게 추진된다면, 이런 일들이 해협(海峽)과 수로(水路)에서 반복되면서 세계가 무역(貿易)과 정치(政治), 평화(平和)가 만연(蔓延)하는 〈희망의 물결〉 로 변할 것이라고, 그는 신라의 해성정책 추진에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자유무역을 통한 세계화 만개
지구는 하나다. 지구는 둥글다 라는 하나인 지구, 자유무역(自由貿易)으로 세계화는 만개했다.
장보고는 〈세계화 시작되다〉 라는 구호로 해상교역로 개척, 안전하고 원활한 항해, 활발한 교역을 추진하고자, 공급망 확대, 관세, 지정학적 긴장 완화에 신경을 써 행하게 했다.
안전한 교역로(交易路)와 자유로운 통합(統合)은 세계화의 필수 조건이었다. 교역을 통해 상호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세계 해상무역 무역량(貿易量)을 늘려갔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통해 모든 해협에서 〈항행의 자유〉 를 누리게 했다. 그는 경쟁이 치열한 거친 파고 속에서 신라 경제의 생존법(生存法)을 찾아 나섰다. 생존을 위해 〈바다의 세계화, 신라의 번영화〉 라는 무역의 꽃이 만발하도록, ‘장보고의 무역정책, 청해진의 바다미래, 그리고 영원한 신라를 그리며 해양무역(海洋貿易)에 팔을 걸었다.
바다의 세계화, 그리고 평정(平靜)과 지배(支配) 빌드업(만들어 가는 과정)을 했다. 속도전(速度戰)이다. 빠르게 추진하며 신라가 바다를 마음껏 누빌 수 있도록 해양 정책에 온 힘을 쏟았다. 장보고는 “바다의 물은 하나다. 이 대영 저 대양으로 나누지만, 바닷물은 하나다” 라며 무역도 마찬가지라는 전제를 달고, 무역의 세계화, 무역바다를 만들어내는 데, 실혈을 기했다.
그는 자신의 꿈이자, 희망사항이었기에 결국 원하는 대로 바다는 지역마다 다르게 출렁거렸지만, 물결을 하나로 이어졌다. 그런 물결을 타며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에 선박을 띄웠다.
장보고는 신라를 대표하는 ‘무역상(貿易商)’ 이다. 청해진이라는 무역대표기구(貿易代表機構)를 두며, 그는 신라를 대표하는 기업.상인들과 함께 국제 무대에에서 주목을 받았다. 장보고 외에도 기업인과 상인들이 국제자유무역에 참여했다. 여기에 신라 조정에서도 무역에 힘을 실어줬다.
신라 청해진의 국제자유무역기구는 세계무역기구에서도 가장 기대하는 국제무역기구 중 하나로 꼽혔다.
거대한 세계관 속 촘촘한 서서(敍事)를 다룬 방대한 분량의 무역 작품이라, 후반 작업이 길어지면서 국제자유무역 진출까지 사업제안서를 제출하는 데, 시간이 딸리기도 했다.
하지만 국제자유무역기구 측은 기한을 연장해줬다. 그만큼 장보고가 운영한 청해진을 국제무대 경쟁 부문에 올리는 걸 간절히 원했던 것이다. 거장의 무역 작품이나 무역 작품이 뛰어난 무역 상대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 무역 작품에 한해 출연 마감 시한을 연장해주는 게 국제자유무역의 관례다.
세계에서는 장보고가 주도하는 신라 청해진의 국제자유무역 진출은 “신라 경제계로선 무척
고무적인 일“ 이라며 ”장보고가 신라 무역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성장했다는 걸 의미한다“ 고 했다.
●장보고의 균형정책, 신라의 안정정책, 세계의 평화정책
장보고의 청해진, 신라의 바다, 그리고 세계무역 〈대칭 구조를 이루다〉 라는 정책으로 비대칭(非對稱) 구조를 대칭(對稱) 구조로 만든 장보고의 국제자유무역, 그는 균형정책(均衡政策)에 따른 이런 거대한 무역정책으로 비대칭 구조를 대칭 구조로 바꾸어났다.
장보고는 무역 대칭을 위해 ‘열정, 책임감, 균형 감각, 그리고 추진력’ 으로 국제자유무역에 앞장섰다. 바다는 높게 낮게 출렁거렸지만, 무역만큼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게 했다. 그리고 나라마다 각기 다른 정책으로 무역의 물결을 치는 것에 대해, 장보고는 이 물결을 안정적으로 출렁이고 흐르게 했다. 어는 한 쪽으로 쏠렸던 무역의 비대칭 구조를 균등하게 대칭 구조로 바꾸어났다.
무역에서 비대칭 구조는 한 쪽이 상대방보다 더 큰 수입.수출 의존도, 더 큰 중간재 수입 비중, 더 큰 무역수지 적자 등으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상태를 말한 것으로써 이런 비대칭 구조를 바꾸기 위해 수입대체 국산화, 공급망 다변화, 협력 모델 전환 등으로 의존도(依存度)를 균형(均衡) 있게 낮추는 정책을 구현했다.
무역 비대칭 구조와 대칭 구조는 수입.수출의 의존도에 있어서 비대칭 구조는 한쪽이 상대적으로 높음, 대칭 구조는 양쪽이 비교적 비슷한 수준을 말한다. 중간재 수입에 있어서 비대칭 구조는 한쪽이 상대적으로 어 높음, 대칭 구조는 양쪽이 비슷한 수준을 말한다. 무역수지에 있어서 비대칭 구조는 한쪽이 적자.흑자 편차 큼, 대칭 구조는 적자.흑자 편차가 작음을 말한다. 혐력 모델에 있어서 비대칭 구조는 한쪽이 주도.의존 경향, 대칭 구조는 상호 보완.협력 중심을 말한다.
신라.당 무역에서는 신라가 당나라로부터 수입유발 의존이 당나라보다 월등히 높아 비대칭적(非對稱的) 상호의존(相互依存)이 만성화 됐다는 분석이 있었다. 신라.당 무역에서는 신라의 대중 의존도는 상승, 당의 신라 의존도는 하락해 상호 비대칭이 심화(深化)됐고, 중간재 수입 비중이 높아 공급망 리스크가 커졌다는 지적이 제시되어 왔다.
그래서 장보고는 이런 비대칭의 폐단(弊端)을 바로 잡기 위해 대칭 구조로 전환(轉換)을 위한 정책 방향으로 신라.당.일본으로부터 수입(輸入)하는 제조업 끼계.부품 중간재 소재 등을 국산화(國産化)하는 수입대체.공업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신라는 당.일본.동남아 등의 나라와의 공급망 안정 협력체계(協力體系)를 구축하고, 중간재(中間財) 수입.수출 유발 효과를 높이는 방향으로 〈협력 모델〉 로 전환시켰다.
장보고는 신라 무역수지 적자(赤字) 요인을 완화하기 위해 수출 품목 다변화의 수입 의존도 완화의 대체.국산화를 함께 추진했다.
장보고는 의존도 완화, 대체.국산화에 대해 여러 고민에 빠졌고, 그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대체 방안을 구상하고, 내났다.
그는 ‘무역의 파고는 바다의 파고만큼 높고 불규칙하다’ 라는 정의를 내리면서 이 높고 불규칙한 무역 파고를 뛰어 넘는 방안을 강구(講究)했다.
그간의 신라와 당.일본간의 산업연관 분석과 연결연관 분석에 따르면, 8.9세기에 있어서 생산이 당과 일본으로부터 수입유발 및 의존이 당괴 일본에 있어서 신라와의 그것보다 월등히 높고, 9세기에 와서 당.일본의 생산 제품 가공 부문과 기초소재, 소비재 부문 등 제조업에 있어서 중간재 수입유발 효과는 당.일본 제조업의 중간재 부문에 신라 수입유발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비대칭적 구조는 신라 경제구조가 대 당.일본 무역으로부터 만성적 역조(逆調) 구조로 고착(固着)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비대칭적 무역의 상호의존(相互依存) 구조를 개선(改善)하기 위해서는 “신라는 당과 일본으로부터 수입하는 수입 대체적 공업화(工業化)를 하려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나가야 한다” 는 주장을 하며, 이런 비대칭적 구조 해결에 나섰다.
당과 일본은 상호주의에 입각하여 비대칭적 상호의존을 완화시킬 당.일본 국내의 수입 정벽(障壁)을 낮추고, 기술 이전, 직접 투자 등 경제적(經濟的)인 협력을 늘려나가게 했다.
장보고는 기존의 협력 모델은 한계에 직면했다고 보고, 신 모멘텀을 창출하는 방향으로 미래 신라.당.일본 경제 협력을 추진하는 동시에 글로벌 지정학.지경학적 리스크 대비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는 대외연 신라.당.일본 무역 의존도 비대칭성 심화, 기존 경험 모델 한계성을 느끼고, 이에 대한 중간재 해외에서 수입, 공급망 안정 협력 시급성에 발 벗고 나섰으며, 새 모멘텀 창출에 당나라 견제 등 비경제적 리스크도 대비했다.
장보고는 비대칭 구조를 대칭 구조로 바꾸기 위해 비대칭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크기, 볼륨 차이’ 와 ‘위치.각도.연쇄적 틀어짐’ 인지에 철저히 분석.파악을 했다.
●장보고바다 세계바다를 출렁이게 하다
장보고바다가 대양(大洋)을 이룬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등의 여러 대양들 속에 장보고바다가 출렁인다.
신라는 〈장보고바다〉 라는 신라를 상징하는 바다를 조성해, 이 바다에 여러 형태의 목적 선(船)을 띄웠다. 군사선(軍事船)으로, 무역선(貿易船), 여객선(旅客船) 등으로서 배들이 바다 위에 둥둥 떠다녔다.
장보고바다는 확장의 물결이 일으켰고, 지켜주는 물결로 흐름을 탔으며, 높은 권위적인 위치에서 배들이 항해(航海)했다.
장보고바다는 푸르렀다. 물결은 아름다웠다. 그 물결을 만든 장보고바다는 드넓고 평화(平和)로웠다. 이 멋진 장보고바다에서 그림 같은 선박들이 떠다닌 모습은 장관(壯觀)을 이루며, 희망선(希望船)으로 뱃고동소리를 울렸다.
장보고바다, 춤추는 바다였다. 바다가 춤을 추니 갈매기들도 덩달아 춤을 추었다. 이런 멋진 광경(光景)이 연출되게 한 〈장보고바다〉 였다. 특히 무역 ‘무희선(舞姬船)’ 으로 장보바다를 이용하게 했다.
장보고바다는 희망의 물결이 일어, 그 희망선에 물건을 싣거나, 사람을 태운 배들로 항해하게 바닷길을 열어줬다. 장보고바다는 봉쇄(封鎖)라는 그런 바다가 아니었다. 누구나 자유(自由)롭게 바다를 항해(航海)하게 해주었다. 〈항해 海보고, 누리게 海보고〉 했다.
항해 海보고, 누리게 海보고의 장보고바다였으며, 이 바다는 〈장보고물결〉 이라는 모토로 신라바다에서 태평양(太平洋), 대서양(大西洋), 인도양(印度洋), 남극해(南極海), 북극해(北極海) 등 오대양 등으로, 그 물결이 퍼지게 했다. 이 물결은 〈장보고바다, 신라海보고〉 로 상징성을 부여했다.
그 오대양은 장보고바다에서 시작해, 널리 바다를 확장(擴張)시키는 ‘장대양(張大洋)’ 으로 출렁이고 흐르게 했다.
장보고바다로 널리 연 지평(地平)은 곧 거센 물결을 일으킨 ‘평해(泙海)’ 로, 그 평해는 제곱의 바다 ‘坪보고海’ 로 이루어지게 했다. 거듭제곱-Exponentiation으로 더 넓혔다. 장보고는 장보고바다에서 〈변화의 물결〉 이라는 거듭제곱으로 ▲해상무역의 교역량 확보 및 증가 ▲신라교역 성과 지수 상승이 되게 했다.
꿀 타래처럼 2가닥을 한 번 겹칠 때마다 2배로 늘어 14번 반복하면, 214=16,384가 되게 하거나, 수타면처럼 면 반죽을 한 번 늘릴 때마다 2배가 되고, 이것을 6번 반복하면 26=6426=64 되듯이 거듭제곱으로 장보고바다를 넓혔다. 바다가 넓어진 만큼 신라무역도 규모적(規模的)인 확대를 불러들었다.
장보고바다는 영암 선암에서부터 그 지평을 열었다. 물결이 물결을 낳고, 낳은 물결은 더 널리 퍼져나가는 자연현상처럼 장보고바다는 물결이 끊임없이 이어져가게 했다. 물결 거듭제곱 海보고다. 장보고바다를 기억(記憶)하는 국두암(國頭岩), 맨 앞 시초로써, 나라의 우두머리로서 〈물결을 일다〉 라는 주제로 장보고바다로 떠오르게 했다.
●장보고의 이름으로 안보와 무역을 추진
장보고가 청해진을 통한 해양질서와 국제자유무역은 한마다로 〈확보하고〉 라는 말로 축약할 수 있다. 장(張)의 확장, 보(保)의 보호, 고(皐)의 높임의 의미를 담은 확보하고 이다.
확보한다는 것은 확실히 보증하거나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Secure’ 로 안전한, 확실한 앞으로도 계속되거나 성공적일 것이다 라는 획득함이다. 또 ‘Retain’ 으로 계속 유지하다. 간직하다. 보유하다의 통제권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또 ‘Reserve’ 로 비축하다. 확보하다의 뜻으로써 인정돼 있는 지위를 확보하는 의미로 쓰인다. 또 'Procure와 Obtain' 로 구하다. 획득하다의 뜻으로써 의미를 둔다.
신라는 신사업 확장을 위해 추가 자금을 청해진을 통해 확보했다. 청해진은 상위권 진입을 위해 선발 선수를 확보했다. 소송을 대비해 관련 증거를 확보하는 절차를 진행했다. 이런 확보(確保)의 의미를 지닌다. 그 확보(確保)는 곧 넓힌다는 확(擴), 지킨다는 보(保)로써 ‘확보(擴保)’ 다.
확보하고 격리하고 보호하라 청해진, 군사+무역이라는 해상력과 무역력이 모여 만들어낸 초현실 창작 프로젝트다.
신라의 조선술(造船術)과 그를 바탕으로 한 항해술(航海術)이 뚜아났다. 조선술이 뛰어나 정찰선(정찰선), 주력함(主力艦), 儈선(쾌船) 등은 철(철)을 이용했으며, 지휘선인(指揮船)인 누선(樓船)은 갑판에 몇 층의 누각(樓閣)을 세운 대형 선박이었다.
이란 선박들로 세계 최고 해양력(海洋力)을 갖춘 이들과 장기간 전투(戰鬪)를 할 수 있었던 신라의 해양력은 낮은 수준이 아니었다. 신라는 장보고로 인하여 해양력 강화가 우수했으며, 이 해양력에 의해 해상무역이라는 막강한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청해진은 동아시아 신질서 판도와 황해무역권(黃海貿易勸)을 둘러싼 대결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두며 우위를 점령했다. 더불어 해상권을 둘러싼 갈등을 해소시켰다. 전후 황해엔 본격적인 무영망이 오나성됐고, 교류가 활발해졌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치.군사적인 힘이 작동하면서 한나라의 내해적(內海的)인 성격이 강했다. 또 멸망한 신라의 유민들은 대거 당나로 갔었고, 일부는 일본 열도로 이주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신라, 신라인 재발견에서 해륙(海陸) 교통로 확보하고, 중계무역(中繼貿易)의 황해 무역권9貿易勸)을 놓고 당과 일본 등과 격돌을 하기도 했다.
해상무역 청해진, 무역의 기본적인 예산(豫算)을 확보하고 집행(執行)을 확인하며, 무역 진출을 활발히 했다.
먼저 확보란 자료.정보.증거가 바탕이 되어, 그 이후에 진행된 조치를 취하는 등의 확보하고 나서 이루었으며, 확보된 자료라기보다는 확보(확산)처럼 확대(擴大)의 의미로 행했다.
신라는 안보 속 해상무역에 있어서 조례안(條例案)을 갖고, 조직과 인력 운영, 평가 우ᅟᅡᆫ칙에 필요한 사항을 규정해 재정건전성(財政健全性)과 기관의 투명성(透明性) 확보하고, 출자(出資).출연(出捐) 기관의 정관 작성 또는 변경 시 미리 조정에 보고해 작은 정관 변경으로 인한 혼란 방지 등 무리한 경영을 예방하는 게 목적으로 두었다.
확실히 보증하거나 가지고 있는 확보하고는 어떤 대상, 즉 ‘자금-재정 확보, 장비 확보, 증거 확보, 위치 확보, 입지 확보’ 등을 누락 없이 확보해 놓는다/두었다는 뜻이다.
이런 ‘확보하고’ 라는 정책으로 청해진 역할을 띠었으며, 청해진은 확보하고 라는 정책으로 해상무역을 추진했다.
장보고는 “바다를 확보하라!” 하며 바다 자치권(自治權)과 경계(境界) 확보, 해양자원(海洋資源) 확보, 해양조사(海洋調査) 기반 안전 항해를 위한 바다의 이용.관리.권한과 안전을 확보했다.
청해진은 바다를 통해 적지에 상륙하여 교두보(橋頭堡)을 확보하는 전전후 전략 기동군(機動軍)이었다.
동묵아 바다는 선박 대결, 경선박 확보해 해양주권 지켜야 한다는 장보고의 의지는 선박 확보가 시급하다고 보고, 주변국 선박 운용에 대비해 군사선(軍事船)과 무역선(貿易船) 기능을 할 수 있는 대형 수송함(輸送艦)이 운용될 수 있게 했다. 신라는 군사와 무역을 위한 물건을 실을 ‘다목적선(多目的船)’ 을 보유했다.
이처럼 주변국의 선박 보유 경쟁으로 동북아 바다에서 해상권의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었다. 기존의 바다권 중심에서 ‘무역권(貿易勸)’ 중심으로 확대되게 했다.
청해진은 무역 핵심 해상권(海上權), 바다 전망 바다뷰권을 확보한 복합 수익형(收益形) 장소였다.
장보고는 ‘바다에서 금 캔다’ 라는 ‘해금(海金)’ 작전을 펼쳤다. 바다는 해상무역이 형성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본격적인 추진이 이루어지게 하여 신라해상무역, 국제자유무역에 활발하게 추진했다. 그는 신라 청해진 영구 바다제패 확보에 야망(野望)을 품었다.
장보고는 안전한 바닷길 확보 위해 가일층(加一層) 노력 하겠다며, 그는 해양조사에 심혈을 기했다. 해양조사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바다를 지속적으로 조사하고 관측해 기초자료를 확보하였다. 이렇게 습득한 자료들을 토대로 선박이 안전한 항해를 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했다. 해상무역을 한 상인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자료를 제공하기도 했다.
장보고는 해양조사원(海洋調査院)을 통해 국민 생활에 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해양 정보를 제공해 유용하게 해주었다. 특히 해양 예보는 안전한 바다 여행에 도움이 되는데, 다양한 공모전을 통해 어부와 상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고, 더불어 산업화로 이어질 수 있도록 조정에서 지원 방안을 강구(講究)하게 했다.
장보고는 해상무역의 시스템의 황금률은 바로 ‘다각화(多角化)-Diversification’ 이다. 단일 국가나 경로(徑路)에 너무 의존해서는 안 된다. 또 자국 내에서 제품을 최대한 생산해야 한다. 그러면서 신라 무역의 미래는 ‘고품질’ 에 있다 라고 봤다. 그는 가능하면 모든 것을 ‘제품화(製品化)’ 하라는 조언을 했다. 메이드 인 신라-Made in Sillla를 고집했다. 신라 제품으로 국제자유무역을 늘려야 한다고 했다. 특히 신라만의 독보적인 제품 생산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신라가 운영한 국나+무역의 청해진(淸海鎭) 결정은 아주 훌륭했다고 봤다.
장보고는 군사든, 무역이든 유사시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판단과 청해진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며, 이를 최대한 활용했다. 군사(軍事)뿐만 아니라, 무역(貿易) 등을 병행(竝行)하고, 이를 효율적(效率的)으로 무역 공급망(供給網)에 통합시키려면 아주 강력한 ‘무역망(貿易網)-Trade Network’ 가 필수적이라고 보고, 청해진을 통한 국제자유무역에 교두보(橋頭堡)를 형성했다. 이런 ‘무역체계(貿易體系)-Trade System’ 을 구축하여 신라해양무역을 추진했다.
무영망은 동남아시아의 오래된 오스트로네시아 비취해상 네트워크와 동남아시아와 남아시아 간의 해상 향신료 네트워크, 그리고 아라비아해 및 그 너머의 서아시아 해상 네트워크의 발자취를 따라 현재 시대까지 이 고대(古代) 해상무역로(海上貿易路)와 일치하게 했다.
●선암이 없었다면 당나라도 없고 청해진도 없었다
선무(船無)하면 당무(唐無)요, 당무하면 신무(新無)다. 선무는 장보고가 태어난 곳 영암 선암마을 지칭한 말로, 궁복으로 태어났던 장보고는 마을 앞이 바다여서 그는 바다에 대한 꿈을 꾸었고, 희망을 찾았다. 바다는 그를 바다가 출렁거리듯이 여러 가지의 생각들을 일으켰다. 그래서 그는 바다에 모든 삶을 걸고, 목표로 〈바다인생〉 이라는 철학과 사고, 비전과 희망을 말했다.
바다를 꿈꾸는 그는 바다를 점한 당나라 산둥반도로 향했다. 그는 무령군(물여군)에서 군인으로 활약하며 당나라의 안보(안보)와 질서(질서), 평화(平和), 그리고 발전(發展)에 헌신(獻身)했다.
그런 사람을 만들어준 해안(海岸)마을 ‘선암(船岩)’ 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선암이 없었다면 당나라도 없었다. 그런 관계로서의 선암과 산둥반도의 사이는 우연(偶然)이 아닌 ‘운명(運命)’ 의 만남이었다.
그는 이런 관계로 인해 신라 ‘청해진(淸海鎭)’ 을 낳게 했다. 청해진은 군사와 무역의 운용(運用) 역할을 한 ‘군대(軍隊)와 상업(商業)의 기관(機關)’ 이었다. 당나라가 군사와 무역의 무령군(武寧軍)이라는 이런 기관을 갖추고 있어, 장보고도 신라 완도 작은 섬에 청해진을 설치했다. 당나라가 없었다면, 완도 청해진도 존재하지 않았다.
선무하면 당무요, 당무하면 신무라는 말은 상상해볼 수 없는 정도로 ‘선유(船有)하니 당유(唐有)하고, 당유하니 신유(新有)하다’ 라는 선암이 있어서 당나라가 있었고, 당나라가 있어 신라가 있었다는, 그런 ‘선+당+청’ 의 관계설정으로 신라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裝飾)할 수 있었다.
선당청(船唐淸)은 ‘선당청(宣黨菁)’ 으로서의 역할을 띠었다. 베품이 있고, 무리를 이룬, 우거진 선암과 당나라와 청해진으로서의 관계를 맺었다.
장보고는 그가 태어난 고향, 선암보고 눈시울 적신다. 장보고는 그를 키워준, 당나라보고 가슴을 뛰게 한다. 장보고는 그를 훌륭한 인물로 만들어준, 청해진보고 눈물을 흘린다. 감격(感激)의 찬 뜨거운 눈물이다. 선암에 감사함, 당나라에 존경함, 신라에 사랑함이 오늘날에도 그의 영혼(靈魂)으로 피어난다.
장보고가 태어났음을 확인해주는 영암 선암의 ‘건덕암(乾德암)과 국두암(國頭岩)’ 은 영광(榮光)에 빛나는〈역사적인 진실〉 이며, 장보고가 무령군 소장으로서 활약했던 당나라 서주는 명성(名聲)에 빛나는〈역사적인 흔적〉 이며, 장보고가 활동했던 완도 청해진(淸海鎭)은 신예(新銳)의〈역사적인 보고〉 이다. 고로 청해진은 ‘영광+명성+신예의 결정체(結晶體)’ 라고 볼 수 있다.
선암은 바닷길을 열어줬고, 산둥반도는 바다의 물결을 일으켰고, 청해진은 바닷길과 물결을 보였다.
물결 파(波), 파동(波動)의 물결은 길을 열어주면서 배를 항해(航海)하도록 해주었다. 이 물결은 ‘보고파(保皐波)’ 로서의 보고파신라, ‘희망으로 번영으로 대신 채워 보고波’ 라는 주어진 환경 속에서 많은 것을 〈海보고波〉 라고 뱃길을 열면서 파동을 일으켰다.
해외 사람들은 신라하면 떠오른 일에 대해 청해진 무역 콘텐츠를 들었다. 〈신라는 세계를 만든다〉. 〈청해진은 바다를 이끈다〉 무역 간담회(懇談會)에서 장보고는 “제가 생각할 때 신라는 너무나 좋은 환경 조건이 갖춘 바다를 간직하고 있다” 며 “최적의 무역하기 좋은 환경의 해상교통.교류와 경제.발전을 위한 기반 조건의 지원.재원 등을 갖춘, 바다환경권의 건강하고 쾌적한 무역을 위한 필수적인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고 했다.
그는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고, 특히 무역(貿易) 분야를 이끌고 있다면서 제품 등 부분에도 관심이 높기 때문에 굉장히 풍부한 콘텐츠가 신라를 대표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며 “제가 기획가(企劃家)라면, 이런 부분들을 관계자들에게 집중할 것” 이라고 했다.
그는 “또 덧붙이고 싶은 것이 제가 기획가였다면, 신라는 금세공에도 대단하지 않나, 명장들을 만나고 싶다” 며 “너무나 사랑하는 신라 제품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행복하고 신라에 자랑스러운 무역을 할 기회를 얻게 되어 기쁘다” 고 했다.
장보고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신라에서 해보고파요, 청해진을 통해 해보고파요, 모든 것을 바다를 통해 해보고파요” 라며, 소원을 말해봐! 〈국제자유무역〉 을 해보고파라고 했다.
해보고파, 해통(海通)해서 좋고, 보고(寶庫)여서 좋고, 고품(高品)돼서 좋고, 파랑(波浪)을 일으켜서 좋다 라는, 바다(신라)의 보고(장보고)가 파문(군사.무역)을 일으킨 〈해보고파〉 였다.
해외 각 나라에서는 청해진이 제시한 〈조건에 만족海〉 라는 신라가 제시한 조건에 ‘조건愛, 조건海’ 라고 하면서 〈海보고波〉 라고 반복적인 언어로, 긍정적인 의사를 드러냈다.
〈해보고파〉 는 ‘바다에서 장보고랑 파도를 일으키고 싶다’ 는, 희망 섞인 미소가 감돌게 한, 감동을 전하는 협력파트너십 구축을 도모하는 슬로건이다.
바다가 주는 삶의 표고(標高) 이어지는 일상, 장보고-ing 海보고波는 멈추지 않는다.
●장보고, 신라무역의 초기화하다
9세기 신라바다는 평온(平穩) 상태로 유지됐다. 장보고가 설치한 청해진(淸海鎭)에 의해서다. 그는 청해진이라는 이름, 청자를 푸를 청(靑)자를 쓰지 않고 맑은 ‘청(淸)’ 자를 썼다. 맑은 청은 ‘빛이 선명하다, 사념(邪念)이 없다 탐욕(貪慾)이 없다’ 는 뜻으로도 쓰인다.
장보고는 청해진은 오염되지 않고 맑은, 올바르지 않은 그릇된 생각을 갖지 않는,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을 내지 않는, 이런 사고와 행동을 보이겠다는 마음에서 청(淸)자로 명칭을 구성했다. 청해(淸海)는 ‘꾸밈없는 순수한 바다’ 라는 뜻이다. 이런 정신으로 완도 장좌리에 진영(鎭營)을 둔 것이다. 푸른 물결 출렁이고 아니라, 『맑은 물결 흐르네』 라는 신라바다가 정의로움이 흐르는 티 없는 순수한 물결이 이는, 신라의 진정심이 출렁거린 바다로서 海보고波로 항해를 하겠다는 것이다.
장보고는 신라무역을 ‘초기화(初期化)’ 했다. 처음 상태로 되돌리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데이터를 삭제하고 설정을 초기화한 것이다.
그는 신라무역을 초기 상태로 되돌려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 시작했다. 다시라는 '리셋-Reset' 이다. 무역을 다시 재설정 하거나, 물건을 옮겨 다시 놓거나, 제품 등의 다시 끼우는 작업을 실시했다.
무역(貿易)과 상업(商業)을 위한 각종 물품을 두고 이후의 진행 상황을 원하는 대로 갈 때까지 계속 로드 하는 작업, 신라무역 새로운 지평을 연,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이라는 정책으로 확대.확장시켰다.
장보고는 신라무역을 한층 끌어올려 놓고자, 기존의 방식을 뜯어고치고, 새로 기획하여 추진했다. 신라무역을 글로벌 수준으로 ‘재편성(再編成)’ 한 것이다.
초기화 또는 재설정으로 해석되는 리셋은, 청해진을 통해 해양무역을 활발하게 추진할 것이며, 국제 정세의 판(板)이 새롭게 짜이게 하며, 기존보다 더 유익하고 활발하게 진행하게 하였다.
장보고는 ‘신라무역, 국제해상무역을 개편하라’ 는 명령어를 제시한 채, 신라해상무역 재개편(再改編)에 나섰다. 그는 신라해상무역을 국제(國際) 수준으로 맞춰야한다고, 무역의 목표를 세계로 향하게 했다.
신라무역 초기화, 리셋한 장보고의 정책은 오늘 날에도 적용된다. 안주하지 않고, 그 때 그때 상황과 흐름에 맞춰 리셋을 했다. 리셋은 신속하고 한 발 앞서 행하게 했다. 신라가 어느 나라보다 기존의 틀에서 머물지 않고 항상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간, 앞서야한다는 ‘선지자적(先知者的)’ 인 자세를 취했다.
남이 가지 않은 길, 남이 하지 않은 일을 장보고는 개척(開拓)했다. 그는 그런 길을 걸며, 신라만의 실크로드를 만들어놓았다.
이런 일로 신라는 어느 때보다 해양무역이 활발했고, 선진화되었다. 국제무대에 당당하게 올라섰다. 〈해양무역 무대에 서다〉 작품에 기획부터 연출까지 총책(總責)으로 신라 청해진을 배경으로 신라무대에 전 세계인을 끌어들었다.
총책인 장보고는 〈신라무대 주인공이 되다〉 라는 모든 신라 사람은 물론 당.일본.동남아.아랍 등 사람들도 신라무대에서 주인공으로서 연기를 펼칠 수 있게 해주었다.
●인상파주의 장보고 자연주의에 심취하다
장보고는 지적(知的)인 면에 강한 인상파(印象派)였다. 보이는 그대로의 사실주의를 추구했다. 자신의 강한 인상에다 자신의 강력한 추진력(推進力), 그리고 열정(熱情), 경험(經驗), 책임감(責任感), 균형감각(均衡感覺)을 소유한 인물이다.
인상파는 ‘보이는 그대로의 순간적 인상과 분위기, 빛.색의 변화를 중시’ 한다. 암시 분위기, 보이는 그대로 포착한다. 인상파는 아카데미즘에 대한 반발과 자연주의(自然主義) 확장에 흐름을 탄다.
반면 낭만파(浪漫派)는 강렬한 색채와 드라마틱한 구도로 인간의 열망과 감정을 표현하며, 신고전주의의 이성.질서에서 벗어나 감정과(感情) 자유(自由)를 중시하는 흐름을 따른다.
장보고는 인상주의자(印象主義者)이면서 ‘자연주의자(自然主義者)’ 였다. 낭만주의자(浪漫主義者)는 자연의 힘과 분위기를 포착하는 데 초점을 두며, 형태를 단순화하고 빛.색으로 감정적 인상을 전달하는 경향이 짙었다면, 인상주의자는 형태보다 빛과 공기, 고정된 색보다 순간의 변화를 더 중요하게 보고, 같은 풍경이라도 시간.날씨에 따라 색감과 느낌이 달라지는 점을 강조했다. 자연주의자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실제의 사물들을 묘사하는 사조(思潮)로 자연을 예술의 스승이지 그 원천으로 본다.
이런 사실주의는 낭만주의에서 주체를 일정한 양식에 일치되는 이상적인 모습으로 묘사하는 데에 대응(對應)하여, 자연주의를 옹호(擁護)하였다. 인상파 장보고는 무역 양식(樣式)에서 자연주의는 세밀한 부분까지 매우 정확하게 그리려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묘사했듯이 군사와 무역, 특히 무역면(貿易面)에 있어서 사실 그대로의 모습과 환경을 그려내었다.
청해진의 해상무역은 ‘사실적, 진실적’ 이런 개념으로 그려낸 작업 展이었다. 보이는 그대로의 그림 作으로,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있는 되도 없는 것처럼, 아닌 데도 사실인 것처럼, 사실인데도 없었던 것처럼, 꾸미지 않았는데 구민 것처럼, 부족한데도 아닌 것처럼, 낡았는데도 새로운 것처럼 처리하는 이런 작업은 금지(禁止)하거나 배제(排除)했다.
진솔하게 그려내려 했고, 사실에 입각한 일을 추진했으며, 성과를 해보였다.
장보고의 무역의 신념은 ‘있는 그대로의 보여줌’ 이었다. 자기 자신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가식 없는 나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있는 그대로ㅡ 현실 그대로의 가식 없는, 자신이 실제로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장보고의 추진 스타일, 청해진 대사 모델이 나다운 모습과 자연스러운 콘셉트를 강조하며 가식 없는 모습을 내세웠다. 그는 일상 자기 관리에 내가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부담을 줄이고, 판단은 상대에게 맡기자는 취지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 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가면(假面)을 쓸 법도 하다. 하지만 그는 가면은 쓰질 않았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줘야 할지 아니면 포장(包裝)하더라도 좋은 모습의 나를 보여줘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할 것이다.
대체적으로 사람들은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는 편이지만, 젊은 나이에는 스스로를 포장하기 바쁘다. 본래의 자신보다 더 밝고 젠틀한 모습의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항상 가면을 쓰곤 한다. 이성을 만날 때가 특히 그러하다.
장보고는 군사로서, 상업가로서 어떤 때는 그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다. 감추려는 수줍음도 가졌다.
‘그래,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자’ 라고, 이래나 저래나 사람들에게 크게 어필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자고 마음먹게 된 것이다.
장보고는 ‘나라는 사람을 굳이 숨기면서까지 사람을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는 생각을 가졌다. 포장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진짜 나라는 사람을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포장하더라도 결국엔 본래의 내가 드러나기 때문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당당히 드러내기로 한 장보고, 그는 빛.색의 순간적 효과를 낸 ‘인상파 장수(將帥)’ 요, 현실을 선입견 없이 관찰해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데 중점을 둔 ‘자연파 무역상(貿易商)’ 이었다.
海보고서, 장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 보여줄 수 있어 좋았다.
신라 헤상왕 장보고의 새로운 모습을 만날 수 있었던, 장보고의 海보고서가 세상 사람들한테 주목(注目)을 받았다.
장보고는 군사와 무역이라는 설렘도 있었지만, 첫 작업이라 부담감도 컸다. 海보고서가 잘 진행될 수 있었던 이유는 신라 군사와 무역상들과 함께했기 때문이다. 당나라에서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어 새로웠다. 하나의 청해진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 부하와 상인들에게 존경심을 가졌다.
장보고는 “서툴고 부족한 모습이 많았지만, 관심 있게 봐주신 백성들께 정말 감사하고, 작업에서 만들어진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던 좋은 기회였던 것 같다” 고 했다.
장보고의 海보고서를 통해 첫 작업에 나선 장보고는 작업에서 볼 수 없던 자연스런 함부터 인간미 넘치는 진솔함까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선을 끌었다. 또한 청해진은 장보고의 직접 섭외한 상인들과 구성한 루트로 이뤄졌다. 인상주의와 자연주의에 입각(立脚)해서...
장보고는 바다라는 자연이 품은 생명력 아름다움, 신라의 빛.색채로 완성시켰다. 신라 해양화단(西洋畵壇) 선구자, 첫 인상주의 장보고로서의 ‘신라 자연과 풍토’ 를 주제로 빛에 의해 약동하는 생명(生命)을 표현하고자 인상주의 기법을 도입해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한 신라 해양화단(해외무역 추진단)의 선구자(先驅者)였다.
인상파 거장 장보고, 그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한테 마음에 새겨지며, 가슴속에 남고 있다. 그는 또 자연파 거장 장보고로서 우리들에게 스스로 존재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안상보고, 자연보고 라는 〈장보고 展〉 에 눈길을 끈다. 천년이 지난 후에도...
빛과 색에 비춘 인상보고 展, 사실과 순수에 비춘 자연보고 展
두 전시는 신라 청해진이 그려낸 명작(名作)이다.
●장밋빛 인생 장보고
장고는 장밋빛 전망으로 가득 찼다.
장보고의 당나라의 ‘영요영화(榮耀榮華)’ 로운 생활을 한 인물이다. 그는 권력(權力)과 부(富)를 얻어 번성과 호화롭고 화려한 생활을 했다. 그가 그런 생활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신라방이라는 든든한 신라인들 속에 이방인(異邦人)으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그는 ‘금의옥식(錦衣玉食)’ ,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할 정도로 당나라에서 ‘달팔십(달팔십)’ 의 권력과 영달(榮達)의 삶을 누리는 등의 호화로운 장보고, 장밋빛 인생 장보고로 삶을 뵀다.
당나라에서의 생활은 9할 이상의 군인(軍人)으로 보냈지만, 군인이면서도 그는 ‘식전방장(食前方丈)’ 의 사방 열 자의 상에 잘 차린 음식의 호화로운 잔치 풍성한 식사를 즐기는 그런 행복한 삶을 누렸다.
장보고는 당나라 적산포 일대에서 신라인 여행객을 위해 세운 불교사설로, 국제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한 ‘적산법화원(赤山法華院)’ 설립자로서 권위, 당나라에서 무령군(武寧軍) 소장(少將)으로 활약했던 뒤 귀국해 완도에 청해진을 세워 해적을 소탕하고 당.신라.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을 주도한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로서의 지위를 지니며, 살찐 고기와 맛좋은 술이라는 ‘비육대주(肥肉大酒)’ 의 호화스러운 요리를 즐겼다.
장보고는 호화로운 집안에서 자란 젊은이의 ‘호화자제(豪華子弟)’ 는 아니었다. 진주나 조개 따위의 보물로 호화찬란하게 꾸민 대궐의 ‘주궁패궐(珠宮貝闕)’ 같은 곳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그만큼 노력했기 때문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입지적(立志的)인 인물, 천민(賤民)에서 상위계층(上位階層)이 된 인생역전(人生逆轉) 장보고로서의 ‘영요영화(榮耀榮華)와 금의옥식(錦衣玉食)’ 을 누릴 수 있었다.
장보고는 노자의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욕되지 아니한다는 ‘지족불욕(知足不辱)’ 이라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의 욕심(慾心)은 끝이 없지만, 그는 자제 할 줄을 알았다.
그는 아무리 고성능 자동차라 해도 브레이크가 없으면 달릴 수 없듯, 끝없는 욕심이나 욕망(慾望)을 적당한 선에서 참고 제어(制御)해 지족불욕, 찬란히 빛나게 했다.
‘행복은 만족에 있다-Happiness is Cotentment’ 고 하듯이, 아무리 재산(財産)이 많아도, 아무리 권력(權力)이 높아도, 아무리 명예(名譽)로워도 스스로가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그 것은 만족이나 행복하고는 거리가 먼다는 것을, 부족감ㅇㄹ 느낀 나머지 도를 넘치거나 지나친 목표 달성을 위해 자칫 무리수를 쓴다면 그 결과는 불을 보듯 한다는 것을 장보고는 알고 있었다.
그런 마음을 가진, 평범한 사람으로서의 자세로 소박한 꿈을 위하여 또는 적당한 목표를 설정해 놓고, 그 꿈이나 목표(目標)의 실현 또는 성취(成就)를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그 과정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장보고는 누구에게나 꿈과 희망을 갖고 있듯이, 그도 꿈과 희망은 세상을 살아가는 활력소(活力素)가 되고, 스스로 노력하고자 하는 모티브로 작동하게 했다.
그는 꿈과 희망을 실현하고도 제 분수를 모르고 허황된 환상(幻想)이나 무지개를 계속 좇아 이성을 잃고 본능에 따라 브레이크 없는 탱크처럼 무리하게 앞만 보고 멈추지 못할 일로 불행(不幸이나 욕(辱)됨의 싹이 움트게 하질 않았다.
멈출 줄을 알아 라는 ‘지지(知止)’ , 장보고는 그런 글을 걸어놓고 항상 좌우명(座右銘)으로 삼았다.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이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보다 더 풍요로운 부자이고,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더욱 지혜롭고 행복하다는 의미다. 그는 복(福)은 겸소(儉素)함에서 나오고, 화(禍)는 교만(驕慢)함과 탐욕(貪慾)에서 나온다는 진리를 가슴에 새겼다.
장보고는 ‘수레를 버리고 걸어서 간다’ 는 ‘사거이도(舍車而徒)’ 로 불의(不義)의 지위(地位)를 버리고, 청빈(淸貧)에 만족함을 해보였다.
“수레 같은 사치(奢侈)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살아가리라” 하며, 한 순간의 그 불의한 이득이 올무가 되어 결국에는 자신을 옥죄어 올 것이 너무나 자명하기 때문에, 그는 그 말을 항상 입에 올렸다.
장보고는 소학(小學)에서 관리가 되어서 지켜야 할 세 가지 행동은 바로 ‘청렴함(淸廉)함, 신중함(愼重)함, 그리고 근면(勤勉)함’ 이다.
그래서인지 장보고는 완도에 군사와 무역의 진영 명칭을 ‘청해진(淸海鎭)’ 이라고 한 것인지, 맑은 ‘청(淸)’ 자를 썼다. 청해진은 ‘마음(心), 생각(思), 행동(動)’ 이 맑은 것이다. 결백(潔白)하여 몸을 지키는 것이 청(淸)이다. 이러해야 공정(公正)한 처사(處事)를 할 수 있다.
또 ‘신(愼)’ 이란 신중(愼重)하고 조심하는 것이다. 제 분수를 알고, 제 분수에 맞게 행동하고 행동하는 것이며, 재산, 재주, 지위, 권력이 좀 있다고 오만불손(傲慢不遜)하고 자존망대(自尊妄大)하질 않았다.
또 근(勤)은 자기가 하는 일에 부지런한 것이다. 장보고는 정성(精誠)과 능력(能力)을 다하여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심혈을 기울이는 태도(態度)를 갖췄다. 이것이 관리(官吏)의, 기본적인 덕망(德望)이며, 이를 실천할 때, 명성(名聲)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銘心)하며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로서의 소임(所任)을 다했다.
장보고는 아무리 권력이 좋고, 돈이 좋아도 사람다운 도리(道理)를 벗어나 이것을 추구(追求)하지 않았다.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영화(榮華)와 부귀(富貴)를 누리겠다고 인간답지 않은 이런 행동을 한, 갈부음도천수(渴不飮盜泉水), 목이 말라도 도천의 물은 마시지 않았다.
수나라 양제(楊帝)는 잦은 토목 공사와 침략 전쟁으로 백성들을 학대(虐待)했다. 대운하가 완성된 후, 그는 낙양에서 양주로 순행(순행)하기 위해 수십 만 명의 백성을 동원, 수천 척의 호화선단(豪華船團)을 만들었다. 운하 인근의 지방 관리들은 그가 요구하는 뇌물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을 악랄(惡辣)하게 수탈(收奪)했다. 그가 이르는 곳마다 해골(骸骨)이 땅바닥에 널렸다는 말이 전할 정도로 포악(暴惡)했다.
그런 양제처럼 장보고는 청해진이라는 군사와 무역을 추진하면서 그런 포악성을 드러내진 않았다. 군사위주, 상인중심, 백성우선주의를 고집(固執)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주제(君主制) 시대의 군주 중에는 성군(聖君)보다 폭군(暴君)이 훨씬 많았다. 폭군들은 스스로 설인(殺人), 방화(放火), 강간(强姦) 등의 반인륜(反人倫) 범죄를 거리낌 없이 저지르면서도 백성의 잘못은 사소한 것이라도 용서하지 않았고, 차지 비위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잔인하게 처형(處刑)했다.
자기는 무슨 짓을 해도 되지만, 다른 사람은 어떤 짓을 해도 안 되며, 특히 자기 뜻을 거스르는 사람은 악랄하게 죽여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공통된 신념이다. 옛날 폭군들은 소시오패스, 즉 반사회적(反社會的) 인격 장애자(障碍者)로 보는데, 장보고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제왕무치(帝王無恥), ‘제왕은 부끄러움이 없다’ 는 뜻인데. ‘제왕에게는 비밀이 없다’ 나 ‘제왕에게는 생활이 공개되고, 기록되는 존재여야 된다’ 는 원칙을 세웠다. 그래서 장보고도 제왕무치가 되지 않도록 부끄러움을 안 장수로 매사 임하며,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도록 노력했다.
장밋빛 인생을 꿈꾸었던 장보고는 권력 휘두르며 함부로 날뛰는 ‘도량발호(跳梁跋扈)’ 의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뛰지 않았다. 권력자는 백성의 삶을 위해 노력하고 봉사하는 데, 권력을 선용(善用)해야 함에도 권력을 사적(私的)으로 남용(濫用)하는 그런 행동은 절제(節制)했다.
장보고는 “권력자가 지켜야 할 규범의 본질은 위임 받은 권력을 선용해서 백성의 인위와 행복을 위해 노력하고 종사하는 것” 이라며 자신이 곧 권력의 원천인 것처럼 행동하지를 않았다. 그는 권력을 사유화하는 위정자(爲政者)가 많을수록 백성의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권력을 위임 받은 권력으로 주인을 지배하는 형국, 즉 주객이 뒤바뀐 상황에서 백성이 행복할 수는 없기 때문에 권력을 휘두르는 일은 삼갔다.
장보고는 ‘석서위려(碩鼠危旅)’ ,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히는 일은 하질 않고 장밋빛 인생을 살아갔다.
장보고의 장밋빛 인생은 신라번영으로 세계 곳곳의 무도가 함께 무역(貿易)의 마법(魔法)처럼 개조해서 세계 사람들을 미치게 만들어보자고, 신라무역으로 알게 된 공통점, 국제자유무역을 마음대로 진행하며 세계 사람들을 놀리고 싶다고 했다.
장보고는 “전지구적(全地球的) 단위의 무역유행 파타가 벌어지고 있다” 며 미세한 차이 같지만, 반응은 뜨겁다. 일부로 나가지 않아도 스스로 진행하도록 하자. 무역 장벽이 허물어진 것 같다는 낙관적(樂觀的)인 전망을 내놓았다. 이들이 무역에 구애받지 않고 교류하기 시작하자 체감상 게시물의 확산 속도와 범위가 넓어진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당나라사람들이랑, 일본사람들이랑, 동남아사람들이 신라 거리를 활보하는 느낌, 장보고가 차려 놓은 음식을 즐겨보는 그들은 “세계 각국의 무역상들이 신라라는 국제무대에 서게 되서 놀랐다” 고 했다.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에 동참하는 나라들은 사람 사는 세상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새삼스러운 진리(眞理)를 마주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 모두 한 가족이야, 우리가 똑같은 웃음 짓게 한 감각을 가지고 있고, 똑같은 것들을 공유한다는 걸 발견하는 등 세계인으로서 공통 감각을 확인하며 즐거워하는 반응이 많았다.
장보고의 장밋빛 인생
-드라마 : 장밋빛 인생
-핵심내용 : 장보고의 군사와 무역 추진 5부작
-주제 : 장밋빛 인생 장보고를 보다
-역할 : 국토방위안보, 국제자유무역
이런 장보고만의 장밋빛 인생을 설정하고 번영한 신라, 튼튼한 신라, 세계 속의 신라, 그리고 장보고에 의한 세계 평화를 갈구(渴求)하는 것에 〈장밋빛 인생〉 이라는 그럴듯한 연출을 해보였다.
고단한 삼속에서도 누구나 장밋빛 인생을 꿈꾸며 산다. 인생의 황금기(黃金期)나 전성기(全盛期)를 구가(求暇)하고, 가장 기억되는 멋진 순간들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장보고는 장미(薔薇)를 선물하기를 좋아했다. 장미를 받으면 기분이 좋은 이유는 장미 꽃 향기에는 여성 호르몬을 자극하는 성분이 있어 향을 맡으면, 자신이 섹시해 보이고, 스트레스가 해소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성들이 프러포즈할 때 다른 꽃보다는 장미꽃을 선물할 때 성공확률이 높아지는 사랑의 명약(名藥)으로 통한다, 이처럼 화려하고 향기 나는 인생의 전성기에 가장 기억하고 싶고, 가장 추억하고 싶은 순간들을 되 뇌이며, 자기 스스로 만족하는 삶,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삶이 〈장밋빛 인생〉 이라고 본 장보고다.
장보고는 장미 한 송이를 입에 물고 사랑(백성. 사업파트너, 무역상인, 해외국가.민족 등)하는 이와 함께 탱고 춤을 추는 상상을 하면서, 이름다운 행복감이 스며들게 했다.
●찬란한 유산 청해진, 신라 하체 근육 강화다
청해진이 있는 완도 장좌리 장도는 산의 기운이 스며드는 땅, 맑은 물이 모여드는 곳, 생명의 싹이 움트는 섬이다. 이런 영험(靈驗)한 기운이 서린 곳에서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배운 지식을 십분 활용해 신라천년을 〈신라이천〉 으로 만들고자 했다. 신라가 천년왕국을 넘어 세계를 제패한 〈세계왕국〉 을 꿈꾸었다. 신라의 통일, 해상, 외교적 야망을 세계적 규모의 국가로 확장하려는 시도나 상징적으로 내세우고자 했다.
신라의 천년왕국(千年王國)은 신라가 장기간 지속되는 강대국(强大國)을 지향했다. 세계왁국(世界王國)은 천년왕국 신라를 더 넓게 만들려고 했다. 신라의 해상제국(海上帝國) 재현은 세계왕국 수준의 영광(榮光)으로 재현하겠다는 지역 프로젝트다.
장보고의 야망, 신라 세계왕국은 신라의 통일.해상.외교적 야망을 세계적(世界的) 규모의 국가로 확장하려는 것이었다.
6세기경 북방의 강자 고구려 제국의 심장을 찌르며, 한강의 주인이 되어 천하를 꿈꾸었던 신라는 천년왕국 신라의 힘찬 부활로 찬란한 신라를 지속시켰던 것처럼 장보고는 청해진을 통해 신라왕국을 〈신라 세계왕국-Kingdom of the World Silla〉 으로 만들어 놓으려고 했다.
신라이천과 세계 신라 세계왕국 구상은 첫째 탄탄한 ‘군사력(軍事力)’ 을 갖춘 것이었다. 그는 당나라 무령군 소장으로 있으면서 지방군벌(地方軍閥)의 속성과 군대양성(軍隊養成) 방법을 익혔던 것을 완도 장좌리 장도에 군사+무역기지인〈청해진〉 을 설치했다.
청해진은 ‘진압(鎭壓)하고 물건을 눌러 둔다’ 는 진(鎭)이라는 뜻처럼 무역(貿易)에도 관심과 추진에 역할을 띠게 했다.
둘째로 신라 ‘왕권(王權)’ 강화다. 왕이 국정의 중심 권력을 강화해 중앙집권(中央集權)으로 한 왕권 중심의 통치체제를 구축해, 그 기반으로 세계로 뻗어가려는 왕권 강화로 중앙집권 국가의 출현, 관료제(官僚制).군제(軍制) 정비, 과세권(課稅權) 확립, 시민 계급의 재정적(財政的).정치적(政治的) 지원 등과 연결시켜 절대왕정(絶代王政)과 전제왕권(專制王權)의 국왕이 최고 영주(領主)로서 권한을 확장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정비하여, 이를 토대로 신라왕국을 〈신라 세계왕국〉 으로 세우려고 했다. 신라 세계왕국 실현에는 〈청해진〉 이 뒷받침을 했었다.
셋째로 세계로 진출하는 ‘해상무역(海上貿易)’ 이다. 신라는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 이라는 글로벌무역으로 신라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으로 무역교통로(貿易交通路)를 개척해 진출하고자 했다. 신라는 국제자유무역으로 신라의 탄탄한 경제(經濟)와 문화(文化)를 세계에 심으려고 했었다. 신라의 무역 세계화(世界化)로 신라 세계왕국을 꿈꾸었다.
그래서 신라이천, 신라 세계왕국 실현을 위해 신라의 하체와 엉덩이 근육을 강화하고 신체를 단련시키고자, 신라 하체.엉덩이에 해당되는 완도 ‘청해진(淸海鎭)’ 을 집중 운동시켰다.
신라의 경제(經濟) 체질(體質)은 단기 지표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산업구조 다변화, 투자수출 기반 강화, 구제 혁신, 첨단산업 육성, 구조 개혁, 세제 금융 지원’ 등으로 신라 체질을 바꾸는 정책 방향으로 하여, 신라 내부 성장 동력을 재편하는 일에 〈청해진〉 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장보고의 주장이었으며, 그는 성숙(成熟) 경제에서는 고성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성장을 제고보다 〈삶이 질 개선〉 과 〈개인의 성취 기회〉 확대를 핵심으로 하는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보고,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청해진〉 에 답이 있고, 그 역할을 띠어야 한다고 봤다.
장보고는 신라 경제정책에 있어서 〈경제활력, 민생안전, 체질개선〉 이 세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 그는 청해진 대사로 있으면서 국제 감각을 살려 ‘경재활력 제고, 민생경제 안정, 경제성장 개선’ 을 신라 경제 운용에 핵심 기조로 삼았다. 수출.투자 촉진과 내수 활성화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와 함께 물가.생계비 부담 완화와 주거 안정으로 민생을 챙기고, 노동.교육.복지 등 3대 구조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신라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였다.
장보고는 무역기지인 청해진을 통해 추진한 무역에 참여 업체와 수출 다변화 성공 기업을 대상으로 금융지원을 강화했다. 그는 신라 경제의 체질 개선이 절실하다고 보고, “신라는 그동안 안팎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기적(奇蹟)에 가까운 경제 성장 역사를 써오고 있다” 며 “현재 예상되는 저성장의 장기화를 방지하고, 미래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경제 체질을 바꿔 성장률(成長率)을 끌어올려야 한다” 고 강조했다.
장보고는 “지금은 성장률 제고에 초점을 맞춰 경제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을 동원해야 한다” 며 “정책은 경제 전반의 활력을 극대화(極大化)할 수 있는 방안에 집중해야 한다” 고 역설(逆說)했다.
규제 혁파 조치도 전향적(轉向的)으로 추진하고, 세제(稅制) 혁신 등으로 투자 의욕도 되살려야 한다고, 성장률을 높이고 경제 체질을 개선하기 위해 종전과 다른 파격적(破格的)이고 혁신적(革新的) 정책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고 강조하면서 신라 경제 체질을 바꾸는 데는 〈청해진〉 이 그 중심에 서야한다고 주장했다.
장보고는 신라 경제 체질 개선으로 ‘노동.교육.복지’ 등 3대 구조 개혁과 ‘금융.서비스.공공’ 등 3대 경제 혁신과 ‘군사.무역.안보’ 등 3대 채질 강화와 국제교류.협력체계..파트너십.문화교류.세계화 등 5대 확대의 〈3+3+3+5 청해진 정책〉 을 제시하며, 신라 및 세계의 협력과 미래 비전으로 신라의 새로운 물결을 일으켰다.
이런 체질 개선 및 강화, 확대는 〈신라 근육〉 을 튼튼히 하는 것이었다. 장보고는 신라 근육 강화와 신체 단련으로, 신라를 버티게 할 그 하체(下體)를 완도 장좌리 ‘장도’ 로 보고, 이곳에 ‘청해진’ 을 두어 신라 경제 체질 개선을 위한 신라 근육 키우기에 나섰다. 하체와 엉덩이를 함께 강화시키는 일에 〈청해진〉 을 훈련(訓練)시켰다. 장보고는 신라의 어느 곳보다 이곳 청해진이 있는 지역이 가장 혈(穴) 저리로 봤다. 이 혈 자리를 자극해 신라를 국제무대(國際舞臺)로 향하게 했다.
신라가 있는 땅, 지도상으로 보면 삼면이 바다에 싸이고, 한 면은 육지로 이어진 땅의 ‘반도형(半島形)’ 이다. 이런 형국(形局)을 갖춘 곳이기에 지구상의 모든 기운이 제다 신라가 있는 곳으로 몰려든다고 장보고는 봤다. 세상의 기(氣)의 흐름이 신라로 스며든다고 보고, 그는 남해바다의 섬을 물색, 그 기운이 집중, 몰리는 부위.지점을 완도 장죄리 〈장도〉 로 보았다.
명상.품수.건강 관점에서 볼 때 머리(水) 기운이 올라가고 몸(火) 기운이 내려오는 수승화강(水昇火降)과 단전(아랫배).백회(머리) 같은 균형 상태를 이루며, 머리는 시원하고, 배와 몸 중심은 따뜻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여 몸과 마음이 안정(安定)되고 집중력(集中力)이 살아나게 하듯이 신라의 기(氣) 흐름에 신경을 썼다.
신라의 기운은 어느 곳이 센가? 어느 곳에 모이게 할까? 장보고는 고민하며, 모든 육지의 기운을 이곳 신라 완도 장좌리 장도에 집중하게 했다. 바로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을 담당하게 한 청해진에 기가 흐르게 했다. 청해진이 있는 곳이 가장 기가 서린 곳으로 보고, 기를 더 많이 모았다.
장보고는 머리(대륙)에는 열과 생각이 가득 차 있고, 몸은 차갑고, 에너지는 위쪽에 몰려 있는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머리 무겁고, 집중력 저하, 불면, 번 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수승화강을 고집, 완도 장죄리 장도에 청해진을 두었다.
장보고는 하체가 튼튼해야 재물운(財物運)이 머문다고 봤다. 돈을 끌어당기는 곳이 바로 완도 청해진으로 보고, 청해진을 탄탄히 했다. 그는 하체 근육(筋肉)이 약하면 기운이 위로 붕 뜨게 된다며 부초(浮草) 같은 상태를 바로잡았다.
떵이 단단해야 건물이 높이 올라가듯, 신라의 몸도 하체가 튼튼해야 들어온 재물운을 흘려보내지 않고, 내 것으로 굳건히 붙잡을 수 있다는 신념을 가졌다.
하체는 재물을 담는 ‘운(運)’ 의 그릇이다. 그런 사고로 나라 하체는 신라 몸에서 가장 큰 근육들이 모여 있는 곳의 청해진으로, 에너지를 저장하는 창고 역할을 하게 했다. 장보고는 하체 근육이 약하면 기운이 위로 붕 뜨게 된다며, 부초(浮草)와 같다고 하여, 돈이 들어와도 정착하지 못하고 금방 새 나가는 상(像)으로 보고 하체 근육을 강화시켰다.
엉덩이 근육이 곧 ‘금고(金庫)’ 의 두께이다. 장보고는 관상학(觀相學)이 얼굴에만 국한된다고 생각하질 않았다. 몸의 형태를 보는 체상(體相)에서 엉덩이는 재복(財福)의 척도라고 봤다. 금고를 지키는 탄력, 엉덩이에 탄력이 있고, 두툼하면 말년 운이 강하고 재산(財産)이 줄어들지 않는 명당(明堂)의 체상으로 봤다.
반대로 엉덩이 근육이 빠져 빈약해지면 활동력(活動力)이 떨어지고 운의 뒷심이 부족해진다고 여겼다.
그래서 장보고는 엉덩이 근육을 키우는 운동은 단순히 몸매를 가꾸는 것이 아니라, 신라인의 인생 금고를 더 크고 튼튼하게 보수(補修)하는 과정으로 여겼다. 엉덩이 근육 신라(新羅)다. 신라 하체 근육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힘은 일은 밀어붙이는 추진력(推進力)이 되게 했다. 또 걸음걸이가 당당하고 안정감(安定感) 있는 신라인들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신뢰가 쌓이게 해주었다.
운(運)의 흐름을 바꾸는 하체 운동 루틴-Routine(최고의 운동 수행 능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습관적으로 하는 동작이나 절차), 완도 청해진을 통해 대지(大地)의 풍요로운 에너지가 신라인의 몸(身)으로 흡수(吸收)된다고 상상하며, 청해진에서 운동(군사.무역)하게 해 재물운의 파동(波動)이 더욱 강해지게 했다.
장보고는 운동 후 따뜻한 차 한 잔으로 기운 안착시켰다. 강도 높은 하체 운동 후에는 미지근하거나 따뜻한 차(기운)를 마시게 해주었다. 운동으로 일어난 뜨거운 기운을 부드럽게 순환시켜 몸(신라) 구석구석에 안착(安着)시키는 과정을 창해진에서 선보였다. 이는 세계의 ‘모든 기운을 청해진으로 모인다.’ ‘하체와 엉덩이 근육을 탄탄히 하자’ 라며 하체의 청해진을 단련(鍛鍊)시켰다. 그리고 엉덩이의 신라를 강화(强化)시켰다. 이런 모토로 무역(貿易)으로 열심히 벌어들인 소득(所得)을 안전한 자산(資産)으로 전환하는 풍수적(風水的) 갈무리 의식행사였다.
장보고는 청해진이 있는 곳을 하체(下體)로 보고, 발(足-뿌리.근본) 역할을 한 바다를 통해 ‘FTA(Fess Trade Agreement)-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 을 활발하게 추진했었다. 그는 하체가 부실하면, 바다도 힘이 없고, 더 이상 움직인다는 것은 어렵다고 보고, 청해진이란 그 혈(穴) 자리를 자극하는 등의 묵직하고 생기가 없을 때 혈(穴)을 찾아 눌려줘 생동의 기운이 발(發)하게 했다.
장보고는 〈혈 자리로 건강 찾기〉 의 새롭게 신라를 만나는 시간 청해진이라는 개념(槪念)으로, “하체와 엉덩이 신라 혈 자리 어디인가요?”
신라의 혈 자리인 청해진으로 근육의 긴장(緊張)과 경직(硬直)으로 인해 발생하는 상태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한 것을, 이러한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청해진〉 혈 자라를 자극(刺戟)했다. 청해진으로 신라 근육의 긴장(緊張)을 완화하고 통증을 경감(輕減)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
신라의 혈 자리 청해진을 자극하여 몸의 균형을 회복(回復)시키고, 증상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 방법은 신체의 자연 치유력(治癒力)을 촉진하고, 근육의 긴장을 완화하며, 신라 혈액순환(血液循環)을 개선시켜, 피(경제.문화.예술.사회.정치)의 순환을 도와 신라의 발전을 활발(活潑)히 하게 하였다.
●장보고의 선서에 세계가 놀라다
청해진 선서(宣誓), 그 선서는 ‘영암 선암과 당나라 서주’ 를 말한다. 그리고 선서는 ‘신청(申請)’ 으로써 신청은 ‘신라와 청해진’을 말한 것으로, 장보고는 선서하기를 『신라를 국제적으로 키우는데 앞장선다. 신라를 세계 최고의 국가로 성장시킨다. 신라인이 가장 뛰어난 인물로 만든다. 신라가 주도한 세상을 연다』 라는 다짐을 했다.
장보고의 꿈, 야망(野望)은 영암 선암에서 태동(胎動)하기 시작해 당나라 서주에서 이주한 신라인들과 함께 완제품으로 〈신라엔진〉 을 가동했다. 엔진 속도를 높여 완도 청해진에서 액셀을 밟았다. 멈출 줄 모르고, 속도제한이 없는 ‘무한계도(無限繼道)’ 다.
바다가 쉼 없이 파도를 치며 흐름을 보이듯이, 장보고도 신라의 재한속도 무제한 구간의 도로에서 질주(疾走)를 멈추지 않았다. 신라의 바다, 그 해상로(海上路)는 차선 無, 속도 無, 물건 무제한(無制限), 사람 최대한(最大限)으로 이용하게 했다.
신라의 국제자유무역 선서, 그리고 세계진출무대 신청은 어떠한 조건(條件)이나 제약(制約)이 없었다. 단지 선의 질서(秩序)와 도리(道理)가 있을 뿐이며, 그 관계에서 교류(交流)가 활하고 당당히 서게 했다.
선서는 신라를 세계 국가로 올려놓겠다는 다짐이며, 신의를 지키기 위해 나라와 나라 사이에 행하는 약속의 맹세(盟誓)이다. 그런 맹세로 신라가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겠다는 신청서(申請書)를 제시하고 세계무대에 어께를 나란히 하였다.
신라는 당나라 등 다른 나라들보다 면적이 작고, 인구가 많지 않고, 자본이 없어 땅과 인적.물적 면에서는 열약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축되지 않고, 국제자유무역 선서를 하며, 세계무대진출무대에 오르겠노라고 신청을 했다. ‘船西+宣誓=국제자유무역, 新淸+申請=세계무대진출’ 이라는 등식을 성립시켜 글로벌 신라로서 국제무대에서 어께를 나란히 하며 함께 세상을 열었다.
●군사와 무역 장수로 장보고가 유일하다
역사적으로 군사 분야에서 뛰어난 장수가 많다. 그런데 군사와 무역, 두 가지 일에 종사하는 장수는 드물다.
지금으로부터 1100년 전에 대한민국 역사에서 800년대(9세기) 군사와 무역을 담당하는 장수는 장보고가 유일하지 않는가 한다. 통일신라시대에 그는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로 있으면서, 해상무역(海上貿易)을 주도하면서 군사력(軍事力)을 맡아 세력(勢力)을 확장하는 장수로 알려진 인물이다.
◇군사와 무역 장수 장보고
-무역 : 당.신라.일본.동남아.아랍을 잇는 해상무역 주도
-군사 : 해적진압, 황해 제해권 장악, 1만 명 병력 함대 운영
-기반 : 청해진 설치 및 운영
-영향 : 왕위 계승 전쟁에 영향력 행사
장보고는 청해진을 기지(基地)로 해적(海賊) 소탕(掃蕩)해 무역로(貿易路)를 안정시키고, 이를 통해 무역을 확대(擴大)하며, 군사력을 키웠다.
무역을 통해 축적한 자본(資本)과 해상 인맥(人脈)이 왕의 계승 다툼에서의 동맹(同盟) 지원으로 이어지게 했다.
그런 일을 행한 장수로서 그는 해적 소탕과 무역을 결합(結合)해 황해 해상권(海上權)을 장악한 장수로 인식(認識)한다.
장보고의 작전(作戰)은 견훤과 궁예의 나주 전투에서 전함을 활용한 잔술(戰術)과 해상세력(海上勢力)의 연계가 전쟁 승리에 영향을 준 사례가 됐다.
장보고는 이런 군사와 무역으로 대한민국 역사에 있어서 가장 훌륭한 징수로서의 바다를 지배(支配)한 신라의 영웅(英雄)으로 남는다.
장보고는 통일신라시대 9세기 초 해상무역과 군사력을 통해 동북아시아 바다를 장악한 인물로, 당나라와 일본, 발해 등 동아시아 전역에 영향력을 행서한 해상왕(海上王)으로 불린다.
그는 신라의 장수(將帥)이자 상인(商人)이었고, 바다를 기반으로 권력(權力)을 형성한 해상제국(海上帝國)의 지도자(指導者)였다.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면 외교관(外交官), 무역왕(貿易王), 군사령관(軍司令官), 그리고 지역 공동체의 수호자(守護者)로서 다면적인 리더십을 보여준 탁월(卓越)한 인물이다.
당나라에서 군에 입대하여 절도사(절도사) 휘하의 용병(傭兵)으로 복무했던 장보고, 그는 무령군(武寧軍) 소장(少將)으로 복무할 만큼 높은 지위에 오르면서 군복 시기에 그는 실전 경험을 쌓고, 당의 군사(軍事) 체계와 국제 정세, 해상 교통로 등을 파악했다.
특히 당나라 연해(沿海) 지역의 해상교역(海上交易)과 해적(海賊) 문제를 직접 목격하면서 해양 안보와 무역 통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감(體感)했다.
이 경험은 훗날 그가 해상 세력을 조직하고, 청해진을 중심으로 한 국제무역(國際貿易) 허브를 구축하는 데, 결정적 기반(基盤)이 되었다.
820년 경 장보고는 신라로 귀국한 뒤 곧바로 당나라에서 쌓은 군사력, 외교력과 무역 경함을 바탕으로 해상바위와 무역 통제의 필요성을 신라 조정(朝廷)에 건의했다.
그는 당나라와 일본, 신라를 오가는 무역선(貿易船)들이 해적의 습격을 자주 받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 해적을 진압하고 해상 질서를 수립하겠다는 제안(提案)을 했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828년 신라 흥덕왕(45대)은 그에게 청해진을 완도 장좌리 장도에 설치를 허락했다. 장보고는 이곳을 근거지로 삼아 군사력(軍事力)과 행정력(行政力)을 기반으로 한 자치적(自治的)인 해상왕국(海上王國)을 운영했다.
◇해상제국 심장 청해진
-해적 진압 : 동중국해 및 남해 일대에서 해적 소탕, 안전한 항로 확보
-무역 중심지 : 신라.당.일본.동남아를 연결하는 해상 실크로드 핵심 거점
-군사 기지 : 1만 명 이상 병력 유지, 자치 함대 운영
-경제 활동 : 상단 조직을 통한 무역, 물자 분배, 선박제조 및 수리
-중교 중심지 : 불교 승려들의 왕래 활발, 법화경 중심의 해상 포교 활동 진행
이런 주요 기능으로 청해진은 단기간에 동아이사의 전략적 요충지(要衝地)로 떠올랐다. 장보고는 막대한 부(富)를 축적하면서도 해적 피해를 줄이고, 국가 간 교류를 형성하여 신라 왕실에도 크게 기여(寄與)했다.
장보고는 단순한 지역 유지가 아니었다. 그는 국제 정치의 플레이어였다. 국제외교(國際外交)와 무역(貿易) 일조했다. 장보고의 영향력은 해상뿐만 아니라 육지에도 확장되었다. 그는 점차 신라 중앙 정계에 깊이 관여하였다. 중앙 정치 개입과 장보고의 권력화를 노렸다.
장보고는 단순한 무장(武裝) 세력의 수장(首長)이나 지역 군벌(軍閥)이 아니었다. 그는 세계화 초기 동아시아 해상 네트워크의 중심에 있었고, 경제.군사.외교.문화의 교차로(交叉路)를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런 그는 해상 방위와 중요성을 처음으로 안식하고 실현한 인물, 청해진이라는 자율(自律) 행정 지역의 모델을 보여준 인물, 무역과 군사력, 종교와 외교를 융합한 선도적 리더십을 발휘한 인물, 그의 생애는 드라마, 소설, 게임,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조명될 만큼 역사적 인물로서의 평판이 높고, 대한민국 상징성(象徵性)으로 기리고, 표상(表象)으로 남는다.
장보고는 신라이면서도 ‘세계인(世界人)’ 이었다. 그는 바다를 넘어 문화(文化)와 사람, 물자(物資)를 연결하였고, 해적(海賊)의 시대를 끝내고 해상 평화(平和)의 시대를 연 개척자(開拓者)였다.
그가 만든 청해진은 단순한 무역항(貿易港)이 아닌 오늘날로 치면 ‘자유무역지대(自由貿易地帶), 군사기지(軍事基地), 문화복합도시(文化複合都市)’ 의 복합체(複合體)였다.
장보고의 죽음은 비극적(悲劇的)이였지만, 그의 사상(思想)과 업적(業績)은 한 대에도 유효(有效)하다. 해양(海洋)의 중요성, 무역(貿易)과 군사력(軍事力)의 균형, 국제교류(國際交流)의 가지 등 장보고가 보여준 삶은 21세 대한민국에도 많은 시사점(時事점)을 남긴다.
청해진을 세워 바닷길 평화(平和)와 무역 혁명(革命)을 이룬 장보고의 역할에 대해 영웅(英雄)을 넘어 ‘성웅(聖雄) 장보고(張保皐)’ 가 아닌가 한다.
신라가 낳은 최고의 벤처정신 장보고다. 신라.당.일보.동남아.아랍 등 나라별로 내부 네트워크를 가동하는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된 채, 동아시아 삼국무역의 중심세력으로서 장보고의 청해진 선단(船團)은 경제적 부와 군사력으로 중앙정부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구가(謳歌)하였다.
군사력+해상력+무역력을 보여준 훌륭한 업적, 성웅 이순신을 능가할 만한 대한민국 국보적(國寶的)인 인물이다. 대한민국 장수 중에 장보고만큼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를 지키면서 무역을 하는 등의 ‘국토방위(國土防衛)와 국제무역(國際貿易)’ 이 두 역(役)을 한 인물은 〈장보고〉 뿐이다.
그는 육군출신이면서 ‘해군(海軍)’ 으로 복무했다. 해군 장군으로서 ‘국제무역(國際貿易)’ 을 총지휘했다. 그는 준비된 장수로서의 청해진 대사직(大使職)을 수행했다. 그는 해군으로서 영웅(英雄) 칭호를 받을만했고, 무역(貿易)의 왕(王)으로 부를만했다. 그런 그이기에 우리는 그를 두고 바다를 지배한 ‘해상왕(海上王)’ 으로 칭한다.
청해진, 신라의 무역기지인 이곳을 통해 펼치는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의 상대국은 단순한 소비시장이 아니라, 글로벌 생산(生産)과 공급망(供給網)을 이끄는 핵심 국가로 여기고, 지정학적 전쟁의 여파 속에서 공급망 불안정과 글로벌 경제 위기가 상시화(常時化) 되고 있기 때문에 신라와 당.일본 등은 서로에게 중요한 전략적(戰略的) 파트너가 되게 했다.
장보고는 신라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낙관적(樂觀的)’ 으로 내다봤다. 신하는 통일신라로서 영토 확장, 평화 질서를 평정(平定)했다. 작은 소국(小國)이 강대국(强大國)으로 나아갈 것임을 확신했다.
그런 긍정적(肯定的)인 사고로 신라의 경제 협력 수준을 놓게 보고, 그래서 국제자유무역이라는 신라가 당.일본.동남아.아랍 등과 서로 협력할 여지가 많다고 보고, 협력파트너 끌어들었다,
●청해진의 유와 맑음 정책
“백성의 생명과 안전, 단 한 치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겠다. 어떤 상황에서도 백성을 반드시 지켜내는 나라, 신라를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 놓겠다.” 장보고는 이렇게 청해진 대사의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는 “신라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백성의 생명(生命)과 안전(安全)을 지키기 위함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기본과 원칙을 반드시 세우겠다” 고 했다.
그러기 위해 장보고는 〈유〉 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를 좋아했다. 유는 있거나 존재함과 직접 경험에서 나타나는 실제의 있을 ‘유(有)’ , 흐르다의 흐를 ‘유(流)’ , 따르다의 말미암을 ‘유(由)’ , 온갖 것과 모든 것의 무리 ‘유(類)’ , 후세에 전하는 끼칠 ‘유(遺)’ , 힘을 모아 서로 도운 협력 ‘유(勠)’ , 물고기 떼 지어 놀 ‘유(瀢)’ 를 자신의 인생철학(人生哲學)과 신조(信條)로 삼았다.
유를 좋아한 그는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이라는 ‘유(由)’ 에 신라가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통해 관계를 맺은 만큼, 그 무역교류가 ‘유리(有利)’ 하게 했다. 또 흐르고 굴러가게 한 ‘유전(流轉)’ , 자유로이 움직인 ‘유동(遊動)’ , 안녕과 질서와 평화를 ‘유지(維持)’ , 흘러 넘쳐난 ‘유일(流溢)’ ,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꾀어 이끎의 ‘유도(誘導)’ , 신의가 있는 유신(有信), 인도하고 전진하는 ‘유진(誘進)’ , 능력이 뛰어난 ‘유능(有能)’ , 의미나 뜻이 있는 ‘유의(有意)’ , 끼치어 둠의 ‘유류(遺留)’ , 둘 이상 서로 연결하거나 결합한 ‘유대(有待)’ , 어떤 일이 원인이 되어 다른 일이 일어난 ‘유발(誘發)’ , 이롭거나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는 ‘유익(有益)’ , 이런 유로 청해진을 유용(有用)하게 여겼다. 국제자유무역은 군함이 바다 위를 돌아다니며 경계한 유익(遊弋)함 속에 진행됐다.
서기 830년대 신라 청해진에는 세계 각국으로부터 온갖 물건을과 외국 사람들이 물려들었다.
“왜 그랬을까?”
“무엇 때문에?”
신라가 해외로 문호(門戶)를 개방하며 무역(貿易)과 교류(交流) 정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신라는 당나라에서 수입된 비단. 두루마기, 금띠, 채색 비단, 흰 앵무새, 금은 세공 그릇, 공장 꼬리, 에메랄드, 물소뿔, 거북 껍질, 양모 제품, 페르시아 직물, 자단 목재, 당나라 카펫, 상아로 만든 아홀(牙笏) 등이 선착장에 무더기로 풀어졌다.
수입한 물건들을 창고에 짐을 부리고 나면, 이번에는 당나라로 향하는 물품들을 무더기로 배에 실었다. 선박에는 과하마라는 작은 말, 약재인 우황, 인삼, 바다표범 가죽, 금, 은, 사냥매인 해동청, 개, 대화어아금.소화어아금.조하금.조하주.어아주.누응령 등의 고급 직물, 배, 머리털 등 여러 물건들을 실고 당나라로 등으로 수출(輸出)했다.
그리고 일본으로 향하는 배에도 짐이 실렸다. 칼, 금, 은, 세발짜리 솥, 비단, 명주, 배, 가죽, 말, 개, 노새, 말안장, 버선 등 신라 특산품과 함께 당나라에서 수입한 향료와 약품, 낙타 등이 배에 올랐다. 일본으로 떠났던 신라 선박은 일본에서 들어온 명주, 명주의 원료인 면 등이 신라에서 부려졌다.
지금으로부터 약 1100년 전 신라의 청해진은 세계적인 국제자유무역항으로서 크게 번성하고 있었다. 신라의 선박들은 당.일본.동남아 등의 몰려와 무역품(貿易品)을 실고와 부리는가 하면, 신라의 특산품(特産品)을 실고 당.일본.동남아 등지로 떠나갔다.
서쪽으로 나가는 선단(船團)은 당나라의 산둥반도 덩져우를 시작으로 창장강 지역의 양저우, 당나라 강남의 향저우, 광저우까지 사실상의 정기 항로(航路)를 운항(運航)했다. 동쪽으로는 일본 후큐오카, 하카다 등지로 진출해나갔다.
바다의 실크로드 동쪽 끝부분에 해당하는 당나라~신라~일본~발해로 이어지는 해상무역(海上貿易)의 중심부인 청해진(淸海鎭)에 거점을 두고 동아시아 지중해(地中海)의 번영(繁榮)을 주도하고 있었던 것은 바로 신라의 〈장보고 무역선단〉 이었다.
장보고가 사업 추진 키워드로 삼은 유, 글로벌 ‘유포(流布)-Disseminate’ 다. 세상에 널리 퍼지게 한, 세상에 널리 퍼뜨린 일의 유유히다. 이러한 사업이 모든 신라 장보고에 의해 유포되었다.
유는 ‘보급-Dissemination, 공급-Supply, 유통-Circulation, 순환-Circulate, 전파-Disseminate, 확산-Spread’ 이라는 정책으로 무역(貿易)을 활발히 하였다. 유는 ‘유정천리(惟政千里)’ 다. 나라와 무역을 다스리는 일을 꾀하면서 〈신라무역은 천리를 간다〉 라는 명제(命題)로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을 추진했다.
청해진이여유, 장보고이여유, 신라이여유 라는 신조어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했다. 완도 청해진 앞바다는 유유히 바닷물이 흘러갔다. 유유히 흐르는 물은 어느 지점에서 여울지다가 다시 파도를 치면서 연안(沿岸)에 이르렀다. 항구(港口)에 도달한 물결은 물보라를 치다가 다시 신라로 그 흐름을 유유히 하였다. 유유히, 그 유에는 각 나라의 특산품(特産品)이나 사람들을 실고 향해하는 선박들의 흐름이다.
장보고는 “대체 불가능한 독점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교류증진(交流增進) 효과를 지닌 세계무역 기업의 영업 지렛대 효과에 힘입어 이익(利益) 성장세가 기하급수적(幾何級數的)이다 라고 그렇게 진단했다. 그는 세계적 유동성(流動性)은 무역으로 물밀듯 유입(誘入)되고 있다. 국장(局長) 탈출은 지능 순이라는 말이 나왔던 신라 무역마저 성장지수(成長指數)를 중심으로 자금이 몰려들며 무역 탄력이 강해지는 모습이다. 신라 자금은 독점적(獨占的) 강한 수요(需要)를 바탕으로 이익금(利益金) 성장세가 예상되는 기업을 찾아다니며 급격히 쏠리고 있다” 고 했다.
국제자유무역은 그간 상상을 초월하는 이익증가세를 보였던 당.일본이 주춤하는 사이 신라는 두 나라의 영업이익을 추월할 것이라는 예상을 하며, 수요가 폭발하고 있지만, 공급 유연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 점을 안 장보고는 이 문제를 해결하여 수요(需要)에 차질이 없도록 하였다.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따른다’ 는 뜻이다.
성격, 가치관, 관심사 등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된다는 의미다.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친해지기, 성향이 닮은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는 현상을 설명할 때 쓰는 사자성어다.
심리학(心理學)에서 유유상종은 사용한다.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특성, 즉 태도, 가치관, 성격, 사회경제적 배경과 코드, 필요성 등을 가진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경향을 설명할 때 사용된다. 사회학(社會學)이나 커뮤니케이션학에서도 중요한 개념으로 다루어지며, 관계 형성, 사회 연결망, 집단 응집력 등을 연구하는 데 활용한다.
유유상종-Homophily, 호모필리라는 용어는 비슷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끼리 연결되거나 관계를 맺는 경향을 말한 것으로, 유사성에 기반 한 관계 형성의 경향이다.
homo=same 같은, phiy=love, attraction 끌림으로 동질성(同質性), 즉 같은 것이 끌리는 성향이라는 뜻이다.
유유상종, Homophily는 사회학.교육학.네트워크 이론에서 사용하는 학술 용어다.
같은 깃털의 새끼리 모인다-Bird of feather flock together. 비슷한 것은 서로를 끌어당긴다-Like attracts like.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함께 어울린다-People of the same kind stick together. 이런 부류로 유유상종의 의미를 둔다.
“왜 비슷한 사람끼리 모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편하기 때문이다. 생각이 통하고, 대화가 잘 되고, 갈등이 적다. 그래서 나와 비슷한 사람에게 끌린다. 결국 인간관계는 선택이 아니라 흐름(流)이다.
유유상종이 주는 진짜 메시지는 단순한 인간관계의 이야기가 아니다. 환경(環境)과 성장(成長)에 대한 이야기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 좋은 방향으로 성장하고, 부정적인 환경이 있으면, 그 영향을 그대로 받게 된다. 그래서 관계는 선택이(選擇) 아니라 ‘책임(責任)’ 이다.
장보고 주변에는 코드가 맞은 사람들이 주로 가까이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자신을 만들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 환경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장보고는 한 번 더 생각해보면서 “나는 누구와 함께하고 있는가?” 그 선택이 결국 장보고의 미래를 만들었다.
같은 종류끼리 서로 어울린다는 뜻을 지닌 유유상종은 단순한 인간관계를 넘어 자연의 이치(理致)와 사회적 현상(現狀)을 설명하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과 비슷한 성향, 가치관, 환경을 가진 사람들과 가까워지며, 이는 인간 사회적 기본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이 말은 단순히 끼리끼리 논다는 가벼운 의미를 넘어 삶의 방향과 선택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철학적(哲學的) 개념이다. 무의식적으로 자신과 닮은 사람을 찾고, 그 속에서 안정감(安定感)과 소속감(所屬感)을 느낀다. 이러한 현상이 개인의 성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에 장보고는 〈유유상종〉 에 철학을 담았다.
중국 역사서인 사기(史記)의 ‘화식열전(貨殖列傳)’ 에서 유래된 유유상종, 이 기록에서는 부유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과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과 어울린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인간관계의 특징을 넘어서 당시 사회구조와 경제 활동을 설명하는 중요한 통찰(通察)이었다.
같은 수준의 사람들끼리 모이는 현상은 자연스럽게 경제적(經濟的) 계층의 형성으로 이어졌고, 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有效)하다. 이처럼 유유상종은 단순한 격언(格言)이 아니라, 사회구조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장보고는 봤다.
장보고는 “유유상종은 긍정적인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며 비슷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강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고 믿었다.
무역을 열심히 하는 상인들끼리 모이면 서로 자극을 주며 더 높은 성취를 이른다는 것이다.
장보고는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 며 긍정적(肯定的)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하면 자연스럽게 자신도 변화하게 된다는, 이는 결국 상인들 자기개발(自己開發)과 성공(成功)으로 이어지게 했다.
유유상종은 생존(生存)을 위한 전략(戰略)이기도 하다. 같은 종류끼리 모이면 협력(協力)과 보호(保護)가 가능해지고, 이는 생존 확률을 높인다는 점에서 유를 정신 기조로 삼은 장보고는 유유상종에 집중했다.
오늘날 SNS의 온라인 커뮤니티는 유유상종을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제공하고, 이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모이게 된다. 장보고도 그런 일을 해보이면서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이라는 거대한 사업을 추진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인연(因緣)을 맺는다. 어떤 이는 찰나의 만남으로 스쳐지나가고, 어떤 이는 인생의 깊은 골짜기까지 함께 걷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냉정한 진실이 하나 있다. 바로 〈유유상종〉 의 법칙(法則)이다.
어둠의 무리는 어둠의 무리끼리 손을 잡고 모이며, 밝음의 무리는 밝음의 무리끼리 손을 잡고 모인다. 이것은 단순히 성격이 비슷하다는 차원을 넘어 각자가 내뿜는 에너지의 주파수(周波數)가 서로를 끌어당기는 자석(磁石)과도 같기 때문이다.
장보고는 “내가 머무는 무리의 색깔이 나의 색깔이 된다.” “다섯 명의 부자와 어울리면 내가 여섯 번째 부자가 된다” 라는 자기개발에 〈유유상종〉 을 사용했다.
장보고는 국제자유무역에 있어서 포괄적(包括的) 동반자(同伴者) 관계로 격상(格上)하고, 무역 확대(擴大) 및 해상 질서(秩序)를 회복하는 안정화(安定化)에 협력하기로 했다.
장보고는 “유유상종, 양국이 공유하는 역사적 유대감(紐帶感)과 문화적(文化的) 친근감(親近感)이 있다면, 양국은 전례가 없을 정도로 빠른 시간 내 전략적(戰略的) 관계를 강화할 수 있을 것” 이라고 봤다.
그러면서 파트너와 교류증진은 양국 간 두터운 상호신뢰(相互信賴)를 바탕으로, 공통의 비전을 공유하고,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모색함으로써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도약(跳躍)시킬 중요한 이정표(里程標)가 되게 했다.
유유상종, ‘비슷한 체취(體臭)를 가진 사람이 처음부터 친구로 끌린다’ 라는 다섯 사람을 나두고, 몸에서 나는 냄새가 비슷한 사람끼리 서로 알아보고 친구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과학 연구 결과가 나온 것처럼 장보고는 무역파트너, 친구를 맺은 사람들끼리 낯선 사람보다 체취가 비슷할 가능성이 높아, 같은 냄새를 풍기는 사람이어서 관계는 끈끈해졌다.
유유상종의 마법(魔法). 장보고의 곁에 머무는 사람이 장보고의 미래를 결정했다.
장보고는 “누군가에게 함께하고 싶은 밝음인가?” “아니면 함께 늪으로 빠져드는 달콤한 어둠인가?” 이렇게 스스로 묻고, 그는 내가 먼저 도파민의 노예에서 벗어나, 맑은 정신으로 세상을 마주하기 시작할 때 내 주변에는 자연스럽게 빛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점을 알고, 유유상종의 법칙을 따랐다.
장보고는 “내가 좋은 사람을 찾아가는 것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은 사람이 됨으로써 완성된다” 고 봤다.
장보고는 성공하고 싶어 성공한 사람 곁으로 다가갔다. 행복해지고 싶어 순간의 쾌락(快樂)이 아닌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과 가까이 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타인에게 여섯 번째 행운(幸運)이 되어줄 수 있는 따뜻하고 단단한 빛이 되었다. 어둠의 손을 놓고 밝음의 손을 잡은 순간, 장보고의 인생은 전혀 다른 괘도(掛圖)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유명유실(有名有實), 이름만 그럴듯하고 실속이 없는 유명무실(有名無實)이 아닌 이름도 있고 실속도 좋은 유명유실의 청해진이 되게 하겠다는 장보고의 의지(意志)와 집념(執念)은 강했다.
바다를 통한 〈맑음〉 을 두겠다는 것의 청해진, 그 청해는 맑고 밝은 세상‘ 이라는 뜻을 가진 ‘청명지세(淸之世)’ 의 청류(淸流)를 말한다. 청류는 명분(名分)과 절의(節義) 지키는 깨끗한 사람들로 구성된 좋은 기운을 가진 집안으로서의 맑음, 즉 ‘소리, 눈동자, 몸가짐, 마음가짐, 정신과 바다의 질서, 안정, 평화와 신라의 무역과 나라의 발전과 번영’ 등의 맑음이다.
장보고는 신라 바다와 세계 바다를 ‘청담허무(淸淡虛無)’ 의 조촐(아담하고 깨끗함)하여 서물에 구애(拘礙)되지 않고 담박(淡泊)한 바다, ‘청렴강직(淸廉剛直)’ 의 마음이 고결(高潔)하고, 재물(財物) 욕심이 없고, 굳세고 꼿꼿한 바다, ‘청정무구(淸淨無垢)’ 의 맑고 깨끗하여 더럽거나 속된 데가 없는 바다, ‘청렴결백(淸廉潔白)’ 의 맑고 검소(儉素)하며 깨끗하고 순수(純粹)한, 성품(性品)이 고결(高潔)하고 욕심이 없으며, 순수한 인품(人品)을 지닌 바다, ‘청백재상(淸白宰相)’ 의 청렴결백한 재상의 바다. ‘청청백백(淸淸白白)’ 의 몹시 청렴결백한 바다. ‘청렴공정(淸廉公正)’ 의 성품(性品)이 고결(高潔)하고 탐욕(貪慾)이 없으며, 공평(公平)하고 바른 바다. ‘청백리(淸白吏)’ 의 관직(官職), 수행(遂行), 능력(能力)과 청렴(淸廉), 근검(勤儉), 도덕(道德), 경효(敬孝), 인(仁) 등의 덕목을 겸비한 이상적인 관료상의 바다. 청백유성(淸白有聲)의 청렴결백하다는 소문의 바다, ‘청백전가(淸白傳家)’ 의 대대로 청렴공정(淸廉公正)을 지키는 바다, ‘청소지사(淸素志士)’ 의 결백하고 하례허식(虛禮虛飾)이 없는 선비의 바다로서 ‘청성탁현(淸聖濁賢)’ , 현인(賢人)의 탁주를 피하고, ‘성인(聖人)의 청주’ 를 즐겼다.
청해진은 맑을 청(淸)의 ‘성인 성(聖)’ 이었으며, 흐릴 탁(濁)의 ‘현명할 현(賢)’ 이 되지 않았다.
장보고는 저 바다의 부유물을 걷어낸다면, 맑은 바닷물이 더더욱 깨끗하게 흐르겠지! 海浮游物收, 淸海水之靜流
청해진의 청해(淸海)는 ‘바다를 맑게 하다’ 라는 뜻이다. 청해는 성실과 행실이 고결(高潔)하고 탐욕(貪慾)이 없는 ‘청렴(淸廉)’ 이다. ‘맑게 물들이다’ 는 청렴, 맑음으로 공직사회를 투명(透明)하게 하겠다는 것이며, 장보고는 청렴이라는 물감(바다색)을 가지고 능동적(能動的)으로 공직사회(청해진 환경)를 덧칠했다. 이는 주어진 일에 떳떳하게 최선을 다하여, 백성들에게 먼저 다가가 친절(親切)하게 응대(應對)하겠는 것이다.
‘청해=청렴을 덧칠하면 할수록 선명해진다’ 라는 백성들과의 양방향 소통(疏通)이 필수적(必須的)으로 보고, 공직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많은 일들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백성들의 소리를 꾸준히 들었다. 이렇게 하면 공직자와 백성 간의 신뢰(信賴)가 쌓이고, 이는 청렴한 사회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청해=청렴은 장보고 개인의 덕목을 넘어 사회 전체의 가치로 자리 잡게 했다. 공직자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이 청렴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했다.
장보고는 〈청해=청렴〉 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최고의 덕목(德目)으로 여겼다. 청렴이라는 물감으로 투명하고 맑게 물들인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늘 자신을 돌아보고, 백성들의 삶에 진실로 도움이 되는 공직자(公職者)로 참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그는 청렴을 한 청해(淸海)로서의 청해진(淸海鎭)을 두었으며, 청렴=청해는 사회 전체의 발전(發展)과 행복(幸福)을 위한 중요한 가치가 되게 했다. 완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 청렴의 가치가 더욱 빛나게 청해진을 가꾸었다.
장보고는 ‘청(淸)’ 을 논하였다. 장보고는 청을 논함에 있어서 ‘청신(淸身)’ 의 관점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맑음을 유지하는 ‘보청(保淸)’ 의 관점에서는 법고(法古)를 따르면서도 ‘청아(淸雅)하고, 청가(淸佳)한 아름다움’ 과 ‘청백(淸白)’ 함을 자신의 기준으로 삼아 고금(古今)의 묘함을 이루고자 하였다.
장보고는 청해진의 바다가 주는 청(淸)의 의미를 통해 청이라는 것이 단순한 양생(養生)을 위함이 아닌 ‘철학(哲學)과 미학적(美學的)’ 차원에서 규명하였다.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 ‘뜻이 강하고 굳은 사람은 반드시 성공한다’ 라는 말이다. 장보고는 어떤 일에 뜻이 있거나 관심이 있는 ‘유지자(有志者)’ 였다. 그가 하고자 한, 추진한 일마다 큰 성과(成果)를 거두었다. 실패(실패)보다는 성공(成功)하는 일의 확률(確率)이 높았고, 좋은 결과(結果) 보여줬다. 전념(專念)하는 일미다 성공적으로 끝내는 일을 보여줬다. ‘사경성(事竟成)’ 이다.
●바다에서 희망을 캔 장보고
“목숨을 걸고 그 길을 갑니다. 그리고 희망을 캡니다.”
장보고의 바다를 향한 각오다. 그는 바다에 나의 모든 미래가 달려져있다고 보고, 바다를 정복한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의지를 불태우며, 바다에 모든 역량(力量)을 집중했다.
장보고는 “신라바다 질서를 어지럽힌 해적(海賊)과 신라의 안정을 헤치는 자들을 철퇴(鐵槌)시키겠다는 철저한 대응과 빈틈없는 준비로 백성의 삶과 신라를 지켜내는 일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고 했다.
바다는 높은 파도로 쉽게 항해를 허용하지 않는다. 잔잔했다가도 심하게 바닷물이 요동을 치거나 폭풍으로 높은 파도를 치며 웬만한 배들은 띄울 수 없다. 바다는 육지와 달라 바다의 속성을 잘 모르면 바다 진출도 어렵고, 서고도 잣다. 그리고 첨단 시스템이나 정보 등을 갖추지 않으면, 항해에 어려움이 따른다. 그래서 모든 일에 철저하게 장비를 갖추고 항해 기술을 갖고 항해해야 한다.
바다에 나가면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모른다. 이런 위험성(危險性)을 무릅쓰고 배를 띄워 항해의 모험(冒險)을 즐긴다. 바다는 도전(挑戰) 정신이 없으면 접근은 어렵다. 강인한 도전만이 바다는 길을 허용(許容)한다.
거친 바다, 장보고는 왜 그런 험한 바다를 사랑하며 즐기기를 좋아했을까?
거친 바다 같은 삼의 여정을 그린 장보고의 꿈은 원대했다. 그는 바다의 꿈을 잘 꾸었는데, 잔잔하고 평온한 바다의 꿈을 꾸었다.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있다는 암시(暗示)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바다에서 펼쳐지는 일이나 인간관계에서도 큰 갈등 없이 흐름이 괜찮았다. 재물운(財物運)이나 기회(機會)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보고는 운명이라는 바다에서 노를 저었다. 태어난 환경이나 갑작스러운 시대적 파도를 선택할 수 있는, 그 파도를 마주했을 때 돛을 올릴지, 아니면 노를 저어 방향을 틀지 결정하는 행위 주체성(主體性)은 오롯이 장보고 개인의 영역(領域)이었다.
바다는 끝이 보이지 않고 때로는 압도적(壓倒的)이지만, 노를 젓는다는 행위는 매우 구체적(具體的)이고 일상적(日常的)인 실천을 의미한다. 흔히 삶을 항해에 비유하곤 한데, 하지만 이 비유가 진부(眞否)함에 머물지 않고, 우리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는 이유는 인생의 가장 본질적(本質的)인 두 가지 속성인 ‘주어지는 환경’ 과 ‘나의 선택’ 을 가장 극명(克明)하게 대비(對比)시키기 때문이다.
운명(運命)은 장보고를 거친 바다로 던지지만, 노를 젓는 것은 장보고의 몫이었다. 장보고는 자신이 원하지 않은 시점과 장소에,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시대적(時代的) 조류(潮流) 속에 던졌다. 이를 철학적(哲學的)으로 ‘피투성(Facticity)’ 이라 부른다.
거친 바다는 통제(統制)할 수 없는 외부의 힘을 상징한다. 갑작스러운 경제적(經濟的) 위기(危機). 사랑하는 이와 이별(離別) 혹은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흐름과 같은 것들이다.
운명은 자비(慈悲)롭지 않다. 그것은 때로 집어삼킬 듯한 파도로 다가오며, 우리를 무력(無力)하게 만든다. 만약 여기서 멈춘다면 인간은 그저 파도에 휩쓸려 다닌 부유물(浮游物)에 불과하다. 그러나 비극(悲劇) 속에서도 희망(希望)이 잉태(孕胎)되는 지점은 여기에 있다.
바다에 희망을 키운 장보고, 그는 ‘바다에 신라의 미래가 있다’ 라고, 출렁이는 바다에 외교, 무역, 문화 등을 꿈꾸었다. 특히 무역(貿易)에 중점을 두어 나라 간의 물적 교류는 물론, 정치.문화 등의 정보를 공유했다. 그런 연유(緣由)로 안정과 평화, 발전과 번영을 기했다.
장보고는 이런 일을 위한 ‘잇다. 엮다. 묶다. 펼치다’ 라는 액션을 취했다. 나라 간 이음, 사람 간 엮음, 정책 간 묶음, 무역 간 펼침을 하며, 희망을 키워냈다.
장보고는 바다가 문화고 경제다, 정치, 사회를 이루는 일이다 라고 했다.
장보고는 “노를 젓는 행위는 인간만이 가진 존재입니다. 바다에 던져진 직후, 우리에게는 선택의 순간이 옵니다” 라고 하면서 파도에 몸을 맡기고 침몰할 것인가, 아니면 물살을 가르며 나아갈 것인가, 장보고는 노를 젓는다는 행위는 단순한 노동(勞動)이 아니라고 했다.
그것은 장보고의 삶에 대한 주권을 선언하는 실존적(實存的) 결단이었다.
마주한 파도의 높이가 어느 정도인지,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는지를 파악하는 냉철한 지성(知性)을 갖춘 장보고, 파도의 높이는 나의 영역(領域)이지만, 노를 쥐는 힘의 강도와 배의 각도(角度)는 오롯이 자신의 영역이라며,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줄 안 장보고, 항해는 단 한 번의 강력한 노질로 완성되지 않다며, 반복되는 단조로운 움직임이 쌓여 비로소 수평선 너머로 나아가는 동력이 된다고 본 장보고였다.
장보고는 삶의 주인으로서 써 내려가는 항해록(航海錄)에서 운명이 바다라면 인간의 의지는, 그 바다 위에 길을 내는 ‘궤적(軌跡)’ 이라고 봤다.
장보고는 바다는 모든 흔적(痕迹)을 지워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노를 저어 본 사람의 근육에는, 그 저항(抵抗)의 기억이 새겨진다며, 고난(苦難)을 통과하며 얻은 근육은 다음 파도가 몰아칠 때 우리를 더 유능한 뱃사공(沙工)으로 만들어 준다고 했다.
결국 인생의 완성도는 얼마나 평탄한 바다를 만났느냐가 아니라, 어떤 자세로 노를 저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거친 풍랑(風浪)은 고통스럽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가진 잠재력(潛在力)을 이끌어내는 스승이 되기도 한다. 장보고에게는 자신의 인생항로, 바다가 스승이었다.
바다에 희망을 키웠던 장보고, 그는 바다에 고래가 없으면 먼 푸른 바다가 아니듯, 마음속에 꿈을 키우지 않으면, 장보고가 아니라고 봤다. 그는 바다에서 희망을 키우며 희망을 캤다.
그는 바다 체험(體驗)을 통해 바다의 의미.가치를 깨닫고, 미래 해양 인재(人才)로 성장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을 개설(開設)했다.
장보고는 ‘희망의 바다’ 주제로 상상력(想像力)과 꿈을 키우는 바다 체험을 진행했다.
장보고는 ‘시련(試鍊)은 용기(勇氣)를 낳고 바다는 희망(希望)을 키운다’ 라고 내일의 희망을 노래하는 바다를 꿈꾸었다.
장보고 대서사시 5편
김대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