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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월 보리수필문학회가 탄생하고 벌써 9년이 다 되어 간다.
그 동안 월례회나 격월례회에 작품 합평회를 하면서 토론하였던 점들 가운데서
자료도 찾아보고, 몇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고, 나의 생각을 적어 보았다.
1. 영어 알파벳 또는 외국어 문자 표기 문제
우리는 우리말을 표기하는 우리 글자인 한글로 수필문학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19세기 말에 나온 독립신문은 한글 전용 신문이었다. 일본어와 같이 한국어도 한자를 혼용하여 표기하는 체계지만 20세기 말에 나온 한겨레신문은 독립신문처럼 한글 전용 원칙을 지키고 있다. 고 리영희 선생은 한겨레신문이 이제는 한자를 병기해도 좋겠다는 말씀을 돌아가시기 전에 하셨다.
하지만 한겨레신문은 아직도 한글 표기 원칙을 지키고 있다. 이 점은 사실 나도 불만이다. 한자어를 우리말로 순화하여 쓰거나 순우리말로 고치고 한글로 표기하여야지, 표기만 한글로 하면 동음이의어나 뜻이 분명하게 전달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한글과 한자 병용 표기 체계를 가지고 있다.
한겨레신문에서 알파벳은 톤(t), 미터(m), 킬로그램(kg)같은 부호나 기호 따위는 그대로 알파벳을 쓰지만, 영문 이니셜은 기사 본문에서 우리말로 의역이나 음역하고 괄호 속에 넣어 처리한다. 그렇지만 헤드라인에는 정보 전달의 경제성이나 신속성을 위하여 알파벳을 그대로 노출한다. 언론매체의 특성 때문이다.
한글과 한국어를 쓰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문학, 그 중에서도 수필문학이라고 하는 정선되고 순정한 산문 문학의 문장에서 한글, 한자를 섞어 쓰는 것은 가능하지만, 알파벳을 섞어 쓰는 것은 영어 문장 속에 한글을 섞어 쓰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기본적으로 표기 원칙에 어긋난다. 수필문학 문장에서는 도량형 단위 같은 것도 한글로 표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아라비아 숫자는 무방하겠지만 느낌의 맥락에 따라서는 한글로 표기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령, 37, 삼십칠, 서른일곱 이라고 표기 하였을 때 그 느낌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문맥에 따라서 선택하면 될 것이다.
1)고속열차(KTX) 도입이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
테제베(TGV) 듀플렉스를 모델로 한 2층짜리 케이티엑스의 도입을 수년 전부터 검토해 왔다.
-한겨레신문 2012. 7. 19
2)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케이티엑스(KTX) 및 인천공항 민영화
-한겨레신문 2012. 7. 20
3)평균 해발고도가 3800m로
-한겨레신문 2012. 7. 20
4)키는 약 164 센티미터이고......짐꾼들은 45 킬로그램 정도의......북위 37 도 34 분, 동경 127 도 6 분에 위치한 서울은 해발 고도가 약 37 미터이고,.....삼각산은 높이가 818 미터....높이는 7.5 ~ 12 미터이고, 길이는 총 22.5 킬로미터
(<외국인의 눈에 비친 19 세기 말의 한국>, 이사벨라 버드 비숍 원작, 신복룡 등 옮김)
-교육과학기술부, 고등학교 국어(하), 2010.
*원문을 옮긴이가 각종 단위들까지 우리말로 충실히 번역하였다. 충실한 번역 원문을 국어책이 그대로 옮겨 싣고 있다.
1)내주 SBS '힐링캠프' 출연: 헤드 라인
2)<에스비에스>(SBS) '힐링캠프'에 : 기사 본문
-한겨레신문(2012. 7. 20.)
3)이틀에 걸쳐서 KBS 1 라디오
-이오덕, <<우리말 바로쓰기>>, 한길사, 2002.
4)'상판 이음새 빗물 스며
핀 주변 H빔 부식'
어느 신문 1면에 난 제목이다. '이음새 빗물 스며'만이 우리 말이고 그밖에는 모두 들온말인데, '핀' 'H빔'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상판'도 알 수 없다. '부식'도 모를 사람이 많을 것이다. '주변'은 국민학생들이 읽는 교과서에도 나오는 말이지만 '둘레'라는 말이 더 낫다. ...... 이 가운데서 '버팀쇠' '우물통'은 순우리말이다. 'H형빔'과 'H빔'은 같은 말이겠지.
이오덕, <<우리말 바로 쓰기>>(3), 한길사, 2002.
*초등학교 교사로서 평생 동안 정확하고 바른 우리말 쓰기를 지도해오신 이오덕 선생님이지만 정작 한글로 쓰는 한국어 문장에서 알파벳을 그대로 쓰는 문제점은 바로잡아야 할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셨다. 옥에 티다.
1)ㄱ군과 ㄴ군이 싸우도록 했다. ...... ㄷ군은 선배들의 폭력과 ......ㄹ군한테는 위탁교육을 중단하라고
-한겨레신문(2012. 7. 20)
2)이튿날 새벽 K 시로 다시 길을(이청준, <눈길>)
-교육과학기술부, 고등학교 국어(하), 2010.
*국어 교과서이지만 작가의 소설 원문을 존중하여 그대로 싣고 있다. 내가 작가라면 'K 시' 를 한글 자모인 'ㄱ 시'라고 하였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쓰고 있는 작가들의 잘못된 버릇이다. 'ㄱ 씨', 또는 '케이 씨' 라고 하면 될 것을 'K 씨'라고 하는 것도 같은 경우이다. 사실 우리말 고유명사에 소리가 '케이'로 시작하는 것이 거의 없지 않은가.
주시경 선생이나 최현배 선생 같은 그 제자들, 한글학회가 우리말을 지키고 가꾸는 노력이 있었지만 일제 강점기 때 우리말과 우리글을 빼앗겼다. 갑자기 맞이한 해방 이후 우리말의 어법, 문법, 철자법, 외래어 표기법, 한글 표기 원칙이 정립되지 않았다. 한겨레신문, 이오덕 선생 등의 노력으로 우리말이 조금은 정확하고 아름답게 가꾸어지고, 민족성과 민주성도 얻어 갔다. 하지만 음식을 먹거리라고 하는 것은 억지스럽다. 순우리말로 바꾸려면 어법에 맞게 먹을거리라고 해야 한다. 체언에 어간이 그대로 붙을 수가 없다.
1)Anh was living room building a tower, the tallest tower he'd ever built. His grandfather was in the kitchen making dinner.
2)얀은 거실에서 탑을 쌓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쌓아왔던 탑 중에 가장 높은 탑이었지요. 얀의 할아버지는 오붓한 저녁 식사를 위해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계셨어요.
-게일실버 지음, 문태준 옮김, <<화가 났어요>>, 불광출판사, 2011.
*시인 문태준이 독일 작가가 쓴 영문 동화를 완전한 한국어로 옮겼다. 우선, 첫 문장에서 과거분사를 우리말로 정확히 옮기고 있다. 만약, 위의 영문 문장을 아래와 같이 한글과 알파벳을 뒤섞어 쓴다면 이것은 영문도 한글도 아니다. 문장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
3)얀 was living room building a 타워, the tallest tower he'd ever built. His 할아버지 was in the kitchen making 저녁.
모든 언어는 기본적으로 일개국어 사용자(the monolingual)를 대상으로 한다. ......우리집 꼬마들이 즐겨 보는 계몽사의 <<어린이 세계의 명작>>이라는 시리이즈의 경우를 보자. 이것은 번역작품인데 그 속에 들어 있는 글은 완전히 한국말이다. 고유명사나 희한한 개념도 모두 의역되지 않으면 음역되어 있다. 즉 그 시리이즈의 번역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들의 번역작품의 독자대상이 일개국어 사용자라는 철칙이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이 너무도 당연한 원칙이 우리나라 철학도들에게는 전혀 인식되어 있지 않은 듯하다. 한국의 철학도들은 한국의 동화작가 보다도 더 철학적 언어인식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 제목이 <<Aristoteles에 있어서의 키네시스(희랍문자)와 에네르게이아(희랍문자)의 問題>>이다. 이 짧은 제목에 자그만치 4개 국어가 들어가 있다. 영어, 한국어, 희랍어, 한문. ....<<Hegel의 實體觀>>이며 그 안에 소제목이 "Hegel과 Platon의 Idealism"으로 시작하고 모든 고유명사가 영어로 직접 들어와 있다. 나는 도대체 이따위 무질서한 언어전통이 어디서 그 족보를 찾아야 할지 알 수가 없다. ...... 나는 국어순화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언어생활의 다양성을 위하여 어떠한 말도 용인할 수가 있다. 그러나 최소한 한국철학이 한국어라는 통용가능한 문자형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는 원칙조차도 지켜지지 않는 철학이라면 그것이 과연 이 땅의 철학인가? 의역이 안될 때는 음역을 하면 그뿐이다. 음역어가 애매하면 괄호에 원어를 표기해 주면 그만이다. 그것이 구차할 때는 뒤에 글로사리를 만들어 주면 그뿐이다. 우리말은 음역을 할 수 있는 음역이 넓은 훌륭한 언어이다.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도 음역이 좁은 카나로 이 세상의 모든 고유명사를 음역 해놓고 있다. 그러면서도 혼선없는 고등한 학문활동을 하고 있다. 왜 그다지도 우리는 우리말에 자신이 없는가? 한국 대학가에서 쏟아져 나오는 논문이 순수한국어 논문인 경우는 극소하다. ...... 우리나라 인구의 몇 퍼센트가 '에네르게이아'(희랍문자)를 읽는다고, 우리나라의 몇 사람이나 "Hegel"을 읽는다고 그렇게도 다국어를 혼용하시는가? 우리나라의 철학논문의 거개가 이러한 기본적 원칙조차 지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 철학계의 초보성, 원시성, 유치성, 기만성을 잘 드러내는 것이다.
-김용옥, <<도올논문집>>, 통나무, 1991.
*위의 인용문에서 철학 대신에 문학이나 수필을 넣어보면, 우리가 수필 문장을 쓰면서 알파벳을 섞어 쓰는 것이 바르지 않고, 알맞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나의 초등학교 교과서 문장을 기억하여 보면 수학이나 과학 같은 교과서를 빼고는 외래어 표기는 이탤릭체로 인쇄하여 구분하였다. 일본어에서는 외래어는 철저하게 카타카나로 표기하여 쉽게 구분되게 한다.
제1장 중국글자말에서 풀려나기
......
제2장 우리 말을 병들게 하는 일본말
진다, 된다, 되어진다, 불린다, 에 있어서, 의, 와의, 과의, 에의, 로의, 에서의, 로서의, 로부터의, 에로의, 에게서, 보다, 에 다름 아니다, 의하여, 속속, 지분, 애매하다, 수순, 신병, 인도, 입장, 미소, 미소짓다, 그녀........
제3장 서양말 홍수가 졌다
이 땅에서는 서양사람들도 우리 말을 해야 한다,
영어문법 따라 쓰는 '-었었다'
*한국어에는 분사 구문이 없다. 과거분사는 과거로 쓰면 된다. '-었었다'는 '-었다'로 쓰면 된다.
제4장 말의 민주화(1)
제5장 말의 민주화(2)
5. 일제시대. 북한. 중국연변의 말
제6장 글쓰기와 우리 말 살리기
-이오덕, <<우리말 바로쓰기>>(1) 의 차례
*이오덕 선생님은 한문이나 한자어에 익숙한 세대이고, 일제 강점기에 일본어 교육을 받았고, 영어 공부도 하였으며, 교육의 민주화와 민족화 운동에도 노력하셨고, 초등학교에서 어린이들의 글짓기 교육에 평생 힘써 오신 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우리말에 침투해 있는 한자어, 일본 한자어, 일본어식 표현, 영어식 표현에 예민하였다. 영어 어법을 한국어 어법으로 혼동을 하는 경우, 일본어 어법을 별 생각없이 우리가 얼마나 많이 쓰고 있는지를 일깨워 주었다.
제1장 우리말이 걸어온 길
제2장 우리 겨레의 얼을 빼는 일본말
제3장 모든 문제가 말 속에 있습니다.
제4장 누가 말을 죽입니까? 누가 말을 살립니까?
제5장 배달말은 배달겨레의 생명입니다
제6장 말과 글, 어떻게 살릴까요?
제7장 방송말 바로잡기
제8장 농사말 바로 쓰기
제9장 사투리, 이 좋은 우리 말
-이오덕, <<우리말 바로쓰기>>(3) 의 차례
*위의 목차에서 '제5장 배달말은 배달겨레의 생명입니다'에서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제6장 말과 글, 어떻게 살릴까요? 에서는 물음표를 붙였다. 제목에서는 기본적으로 문장 부호를 찍지 않는 것이지만 의문부호를 붙인 것은 정확함을 기할려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제9장에서는 사투리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표준말은 아닐 지 모르지만, 사투리 속에는 풍부한 느낌과 의미를 담고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에서 쓴 꼬막조개라는 말은 사투리이지만, 이 말 외에는 그 느낌을 표현할 길이 없어서 작가가 의도적으로 작품에서 썼고, 지금은 표준말이 되었다. 문법은 고정 불변한 것이 아니라 생성하고 변형하는 것이다. 문법은 특히 언어예술인 문학에서 말이나 작품보다 우선할 수 없을 것이다.
*이오덕 선생님은 돌아가셨지만, 우리말을 지극히 사랑하는 분으로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을 꼽을 수 있다. 언론인 중에는 손석춘 씨가 생각난다. 영국에게 400년 동안 식민지 지배를 받은 아일랜드는 말을 빼앗겼다. 말은 그 겨레의 영혼인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처럼 우리도 우리말과 글을 아름답고 풍요롭고 정확하게 가꾸어 나가야할 책무가 있다.
2. 에세이와 수필
에세이와 수필은 같은 말이다.
에세이는 서양에서 들어온 말로 구태여 중수필이라 옮긴다면, 미셀러니는 경수필로 옮긴다.
수필은 동양 한자문화권에서 전통적으로 써온 우리말이다.
요 몇 년 동안 나온 포항문학(문학만)을 보면, 에세이와 수필을 구분하여 쓰고 있다.
에세이는 지식인의 시사평론이나 지식인의 철학적인 생활 글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며 책의 앞 부분에 특집처럼 큰 비중을 차지하게 싣고, 수필은 생활인의 소소한 생활 모습을 담은, 그야말로 신변잡기적이고 문학적인 글을 가리키는 것으로 쓰고, 책의 뒷 부분에 싣고 있다. 권위로 똘똘 뭉친 아무 소설가의 사견일 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잡글은 에세이로 부르고 남의 수필은 신변잡기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가소롭다.
3. 한자 혼용 문제
‘장학퀴즈’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20주년 특집’을 만들기 위해 찾아간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 한-중 수교 직후였기에 홍콩과 베이징을 거쳐 한참을 에둘러 가야 했다. 지금도 눈앞에 선하게 펼쳐지는 칼바람 부는 하얼빈에서 ‘중국 인민’인 재중동포를 출연자와 방청객으로 모시고 진행한 ‘장학퀴즈 20주년 특집’ 제작은 쉽지 않았다. 방송 환경은 열악했고 무엇보다 ‘남쪽 말’과 ‘북쪽 말’의 미묘한 차이를 헤아려야 했다. 그들은 ‘퀴즈’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여했다. “‘퀴즈’가 뭔가 했더니 ‘유희’구먼요….” 프로그램 녹화를 마치고 한숨 돌릴 즈음 출연 학생이 툭 내뱉은 한마디였다.
그럴듯한 ‘번역’이었다. ‘퀴즈’는 놀이하듯 풀어가며 뭔가를 알아가는 ‘유희’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 퀴즈 프로그램에 ‘(역사극에 나오는) 사약은 무엇인가’ 묻는 문제가 나왔다. 정답은 ‘먹으면 죽는 약’(死藥)이 아닌 ‘임금이 하사한 약’(賜藥)이다. 이처럼 뜻이 헷갈리는 문제를 또 낸다면 ‘노점’을 출제할 수 있겠다. ‘노점’(路店)이라 지레짐작하는 이가 많기 때문이다. ‘길가의 한데에 물건을 벌여 놓고 장사하는 곳’(표준국어대사전)은 ‘노점’(露店)이다. ‘길’(路)이 아닌 ‘이슬’(露)인 까닭은 노천점포(露天店鋪), 그러니까 ‘한데(사방, 상하를 덮거나 가리지 아니한 곳)에 차린 가게’여서 그렇다.
노점을 ‘거리 가게’, ‘길 가게’로 다듬은 국립국어원의 순화안은 생뚱맞다. ‘노천’의 뜻을 헤아리지 않은 순화어이기 때문이다. ‘국어 순화’의 순화는 순수하게 하는 순화(純化)가 아니라, 잡스러운 것을 걸러내는 순화(醇化)이다. 술꾼과 뗄 수 없는 ‘해장’도 제 뜻 가늠해 쓰는 이 많지 않다. ‘창자(腸)를 풂’이 아닌 ‘숙취(?)를 풂’에서 온 말이 ‘해장’이다. 국어사전은 원말 ‘해정’(解酊)의 음이 변해 ‘해장’이 된 것으로 밝혀 놓았다.
강재형/미디어언어연구소장·아나운서
-한겨레신문(2012. 7. 20 <말글살이>)
*위의 글에서 퀴즈를 빼고는 나머지 문제들은 한글로만 표기하는데서 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립신문에서처럼 한겨레신문에서 한글만을 고집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국한문 병용 체계이다. 그리고 중일 모두 기본 한자어 약 2000자를 쓰고 있다. 표의문자인 한자 2000자를 조합하면 수도 없이 많은 의미를 만들어내고 정확하게 표기할 수 있다. 한중일 중에서 우리만 한자가 가지는 장점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베트남도 알파벳을 문자로 쓰면서 신세대들은 한자를 모른다. 의미의 정확함과 발음과 달리 글자 모양이 변하지 않고 지속하는 점(한글 전용이지만 독립신문을 100여 년이 지난 지금 읽어보면 요즈음 한글로 번역하고 한자를 병기하지 않으면 읽기가 정말 힘들다.), 표의문자인 한자가 가지는 의미의 깊이와 풍요로움, 이름과 성을 비롯하여 우리 전통 문화의 99%가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는 점, 동아시아 한문문명권의 성립이라는 미래와 그를 주도할 수 있는 역량 등, 한자가 가지는 장점들을 생각하면 한글 전용은 사실 문제가 적지 않다. 한글 전용은 우리 겨레를 우민화 하는 맹점도 있다.
오늘날 출판되는 책에서 잘못된 한자 인쇄가 수도 없이 많다. 한국에서 나오는 책의 한자 표기는 믿을 수가 없다. 엉망이다. 원고도 그렇겠지만 대부분은 출판사의 실무자들이 한자에 까막눈이기 때문일 것이다. 젊은 세대는 한문은 고사하고 제 이름도 한자로 쓸 줄 모른다. 서양인에게 고전언어인 라틴어 교육이 중시되듯이 동양의 고전언어인 한문 교육이 등한시되기 때문이다. 영어 위주의 외국어 교육, 한글 전용 어문 교육 정책이 분명히 잘못되었다.
포항문학 최신호에 보면 어느 분의 시 제목이 '여분오어(汝糞五漁)' 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오어사, 혜공과 원효 설화를 소재로 하는 시이다. 물론 여분오어(汝糞吾魚)가 바른 표기이다. 이런 것이 한둘이 아니다.
*위의 신문 기사에서 해장이 해정의 음이 변한 것이라고 하는 데서 비로소, 수주 변영로의 수필집 <<명정40년>>의 책 제목의 뜻을 알겠다. 보리수필6호 특집이 술이었는데, 이 수필집을 아직도 읽어보지 못했다. 물론 시대의 한계이지만, 이 수필 문장은 지나치게 한자, 한문을 뒤섞어 놓아서 그 특유의 느낌은 있지만, 오늘날은 읽기가 참 버겁다. 수필가 독문학자 김진섭의 수필도 그렇다. 당대에는 명문이고 미문이지만, 지금은 참 난해한 글이 되었다.
B6판. 반양장. 190면. 1953년 서울신문사에서 간행하였다. ‘명정사십년(酩酊四十年) 무류실태기(無類失態記)’라고도 한다. 책머리에는 박종화(朴鍾和)의 ‘서(序)’와 작자의 자서로 ‘서설(序說)’이 있고 수록 작품 72편을 4부로 나누어 편성하고 있다.
제1부 ‘명정사십년’에는 「등옹도주(登甕盜酒)」·「부자대작(父子對酌)」·「가두진출(街頭進出)의 무성과」·「졸한무예보래(猝寒無豫報來)」 등 48편, 제2부 ‘명정낙수초(酩酊落穗鈔)’에는 「기인고사대불핍절(奇人高士代不乏絶)」·「교실내에 로이드극(劇)」 등 4편, 제3부 ‘남표(南漂)’에는 「현대출애급판」·「한양아 잘 있거라」·「하나의 전환」·「부공부수(婦功夫守)와 기외(其外)」 등 10편, 제4부 ‘명정남빈(酩酊南濱)’에는 「서언(緖言)」을 위시하여 「계엄주(戒嚴酒)의 범람」·「하고방 순례」·「명정의 피날리」 등 10편이 각각 실려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수필들은 대부분 1949∼1950년에 걸쳐서 『신천지』에 연재된 『명정사십년 무류실태기』와 6·25 때 부산 피난 시절 『민주신보(民主新報)』에 연재된 「남표」를 중심으로 하여 엮은 것이다. 대주가(大酒家)로 불린 작자가 40년간 술에 취해서 살아온 무류실태기로서 풍자적이고 해학적이며 기지 넘치는 필치로 그 시대상을 고발하고 있다.
남들은 삼사십 년 동안 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였다고 대성질호(大聲疾號)하는 판에 자신은 “호리건곤(壺裏乾坤)에 부침(浮沈)한 것을 생각할 때 자괴자탄(自愧自嘆)을 금할 수 없다.”고 변영로는 「자서」에서 말하고 있다. 요컨대 자신의 반생은 비극성을 띤 희극일관으로 경쾌주탈(輕快酒脫)하게 저지른 범과가 기백기천으로 헤아릴 길 없다는 것이다.
변영로가 이렇게 술에 취해서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시대상을 박종화는 “세상 됨됨이가 옥 같은 수주(樹州)로 하야금 술을 마시지 아니치 못하게 한 것이 우리 겨레의 운명이었으며, 난초 같은 자질이 그릇 시대를 만났으니 주정하는 난초가 되지 않고는 못 배겨내었던 때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한국현대시론(韓國現代詩論)』(박두진, 일주각, 1977)
「수주선생(樹州先生)과 불기정신(不羈精神)」(이상로, 『현대문학』, 1962.12)
「나의 주정받이 평생기(半生記)」(양창희, 『희망』, 1955.1)
****그냥 생각난 이야기
1)우리 속담에 '하룻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였다. 여기서 하룻은 하릅의 와전이다. 짐승의 나이를 셀 때 쓰는 말로, 하릅, 두릅, 사릅, 나릅이라고 한다. 각기 한 살, 두 살, 세 살, 네살이라는 뜻이다.
2) '십 년 공부 도로아미타불'이라는 속언이 있다. 본래 '十念 공부 都盧 아미타불'에서 나온 말이다. 죽기 전에 열 번 전력을 기울여 아미타불을 염송하면 아미타불이 주재하는 서방 정토 극락에 태어난다는 불교의 정토신앙에서 나온 말이다.
***
오랫동안 공들여 해온 일이 허사가 되는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은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뜻과는 반대의 뜻입니다.
"십념공부나무아미타불(十念工夫南無阿彌陀佛)은 불교에서 사람이 죽어 사는 임종 시에 아미타불을 열 번 만 정성 들여 외면 어떤 중생이든지 왕생극락할 수 있다는 뜻의 무량수경에 나오는 불교 권념의 말이다. 이것을 강조하여 여기서 다시 '십념공부도로아미타불十念工夫都盧阿彌陀佛 쓰게 된 것이다.
여기서, '십념(十念)은 열 번을 왼다는 뜻이요, 공부(工夫)는 계속 외는 것(持誦)을 바르게 염하여(正念) 익힘을 뜻함이요, 도로(都盧)는 다만(但)이라는 뜻이요, 나무南無는 '귀의(歸依)'라는 뜻이요, 아미타(阿彌陀)는 무량수(無量壽)의 뜻이요, 불(佛)은 불타(佛陀)를 뜻한다." - 최창렬, <우리 속담 연구> (1999)에서 재인용(본문 43쪽)
나무아미타불을 열심히 하면 극락에 갈 수 있다는 '십념공부나무아미타불'이 '십념공부도로아미타불'로 바뀌고 '십 년 공부 도로 아미타불'로 바꾸면서 십념이 '십 년'으로, 한자로 된 도로都盧를 우리말 부사 '도로'로 인식하면서 결국은 '오랫동안 공들여 해 온 일이 허사가 되는 경우'를 말하는 부정적인 의미의 속담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첫댓글 좋은 지적과 문제제기 고맙게 보았습니다.
문인들이 먼저 표준어와 문법에 맞는 글을 써야 한다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정상적인 문장부호를 쓰면 오히려 지적당하는 풍토를 문인들이 만들어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하는 경헙도 했습니다. ^^*
정보가 가득한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