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하고 불변하신 대제사장 (히 2:17-18)
복음은 결국 하나님에 관한 진리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더욱 유념하라는 말로 2장을 시작합니다.
무엇에 유념하라고 합니까? “들은 것”, 즉 성경이 말하는 복음에 유념하라고 합니다(히 2:1).
장차 주실 미래가 있고 그 영광을 위해 지금 우리를 준비시키고 계시지만, 그렇다고 우리 혼자 어떻게든 세상에서 생존하도록 버려두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복들은 단순한 이론이 아닙니다. 경험 가능한 것입니다.
가장 먼저 찾아오는 복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주님이 오신 이유이자 목적이었습니다.
죄인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하나님과 화목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을 위해 이 일을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아는 자로서 거룩한 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갈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두 번째 단어는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입니다.
그 첫 번째 의미는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피로 거룩해졌다는 성경말씀의 의미는 오직 하나님을 위해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오직 두 부류로 나뉩니다.
하나님이 자기 것으로 구별하신 인간과
그렇지 않은 인간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로 가득한 세상에서 베드로는 우리를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고 일컫는데(벧전 2:9),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특별한 재산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 우리를 구별하셨고,
우리 안에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이처럼 하나님이 보시기에 특별한 대상입니다.
자신이 이런 존재라는 생각을 해본 적 있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 손안에 있다는 사실,
주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은 여러분의 머리털까지 세고 계십니다. 그가 모르시거나 허락지 않으시는 일은 단 한 가지도 일어날 수 없고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에게 소원을 주시고 행하게 하십니다(빌 2:13).
때로는 징계하시지만, 그 또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영광으로 이끌어 가고자 채찍질하시는 것입니다.
징계야말로 우리가 그의 자녀라는 증거이기에 어떤 의미에서는 고난당할수록 더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를 구별하는 데서 그치지 않으십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가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녀들이 지닌 혈과 육을 자신도 지님으로써 그들을 동정하는 대제사장이 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자신처럼 만들기 위해 자신은 우리처럼 되셨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는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아들딸로 삼기 위해 육신이 되시고 사람이 되셨습니다.
자신의 본성을 우리에게 주기 위해 우리의 본성을 입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벧후 1:4). 우리는 그를 영접했고, 그는 우리 안에 찾아와 거하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사실들을 참으로 안다면,
사람도, 미래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은 결국 그와 함께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는 사실을 붙잡는다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2장에 나오는 그 다음 복은 사탄의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여러분은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탄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사탄의 영토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흑암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참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처럼 말할 수 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7). 우리는 믿음으로 두려움 없이 단호하게 마귀를 대적할 수 있습니다.
저는 지금 그리스도인이 죄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도 죄에 빠집니다. 그러나 아예 피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못한 탓에 죄에 빠질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한한 자비로 그 대책 또한 마련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직분에 대한 중대한 가르침이 의미하는 바가 이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말 그대로입니다.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이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시험받을 때도 도와주십니다.
죄에 빠져 침체하고 낙심할 때도 우리에게는 위대한 대언자가 계십니다.
우리 구주는 시험받는 자를 능히 도우시는 분입니다.
혼자 버려두지 않고 늘 곁을 지켜 주시는 분입니다. 그를 의지하면 죄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사는 자를 능히 지켜 죄에 빠지지 않게 하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대제사장은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히 13:8).
항상 살아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끝까지 구원하실 것입니다.
자신을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모든 자를 온전히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