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일자 : 2026. 5. 25 - 5. 27 (2박 3일)
2. 여행지
가. 완도 : 보길도. 청산도. 완도
o 보길도 : 세연정- 땅끝전망대- 격자봉- 낙서재- 곡수당- 동천석실- 글씐바위- 예송리해변- 예작도
o 청산도 : 매봉산- 범바위- 서편제 촬영장- 일주
o 완 도 : 구계등. 장도. 장보고기념관. 완도수목원.
나. 강진 : 영랑생가. 사의재. 남미륵사
3. 참석자(4명) : 천장문님. 김은탁님. 백영곤님. 정옥삼
4. 명소 해설
가. 완도군
o 전라남도 남단에 있는 군.
o 완도를 비롯한 55개의 유인도와 210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져 있다.
o 행정구역은 완도읍·금일읍·노화읍·생일면·군외면·신지면·고금면·약산면·청산면·소안면·금당면·
보길면 등 3개읍 9개면 89개 동리가 있다(법정리 기준, 행정리 기준 246개리).
o 면적 396.36㎢, 인구 44,535(2025).
나. 보길도
o 최고봉인 격자봉(425m) 이외에 광대봉(311m)· 망월봉(364m) 등. 300m
내외의 산이 사방에 솟아 있으며, 중앙에 있는 좁은 저지는 농경지로 이용된다.
o 섬의 명칭은 섬 내에 명당자리가 있다는 뜻으로 "보길도"라 불렀다고 한다.
o 동백나무· 후박나무· 곰솔나무· 팽나무 등 250여 종의 식물이 자라며,
예송리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예송리상록수림(천연기념물 제40호)과
예송리 감탕나무(천연기념물 제338호)가 있다.
o 유물·유적으로 부용동 정원(전라남도 기념물 제37호)을 비롯하여
세운 세연정, 선백도 바위에 새겨진 송시열비, 보길나루에서 발견된 조개더미,
예송리에서 채집된 유경역자식석촉 등이 있다.
o 해남군 토말(땅끝마을)과 완도에서 각각 출발하는 정기여객선이 운항된다.
o 다도해해상국립공원에 속하며, 섬의 남동쪽에 중리·예송리 해수욕장이 있다.
o 면적 32.142㎢, 해안선 길이 56.9km, 인구 2,852명(2016).
다. 청산면
o 완도군 청산면에 속한 섬. 완도 남동쪽 해안에서 남동쪽으로 약 19.7㎞ 지점에 있다.
주위에는 장도·지초도·항도 등의 부속섬과 대모도·소모도·여서도 등이 있다.
산과 물이 모두 선푸르다 하여 "청산도"라고 했다.
o 최고봉인 매봉산(385m) 이외에 대봉산(379m)·보적산(330m) 등
300m 내외의 산이 사방에 솟아 있다.
o 볼거리로는 서편제와 봄의 왈츠 영화촬영지로 봄엔 유채꽃과 가을엔 코스모스꽃
축제를 하고 있으며.
o 연근해에서는 삼치·갈치·고등어·멸치·문어 등이 잡히며, 김·미역·다시마·톳 등이 양식된다.
취락은 중앙부와 서부 평야지대에 주로 분포하는데,
o 중심지는 서부의 도청리이며 이곳에 청산도항과 여객버스터미널이 있다
라. 강진군
o 대한민국 전라남도 남서부에 있는 군.
o 행정구역은 강진읍·군동면·칠량면·대구면·마량면·도암면·신전면·성전면·작천면·
병영면·옴천면 등 1개읍 10개면 287개 동리가 있다.
o 면적 500.93㎢, 인구 31,804(2025).
o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 때 도강현과 탐진현의 2현을 합하고
각각의 글자를 따서 강진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o 1418년에는 지금의 병영면에 병마절도사를 두고 병영성을 축조했으니,
강진은 조선시대에 전라도 병영이 있었던 곳이다.
o 유홍준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남도답사 1번지" 라 칭하였고
o 볼거리로는 영랑생가. 세계모란공원. 가우도와 강진만 습지.
고려청자박물관. 전라병영성과 하멜기념관. 다산초당과 백련사. 무위사.
백운동원림. 설록다원. 등 과
o 가볼만한 산으로는 월출산. 덕룡산. 주작산. 만덕산. 등이 있다.
마. 윤선도(尹善道 : 1587- 1671(84세))
o 1587년 6월 22일 한성 동부 연화방(서울 종로구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o 26세이던 1612년(광해군 4) 봄 진사시에 급제하여 성균관 유생이 되었다.
o 1616년(광해군 8) 12월 예조 판서 이이첨을 벌할 것과 유희분, 박승종의 죄를 물어야 한다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가 함경도 경원으로 귀양을 갔다.
o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이이첨 일파가 처형된 뒤 풀려나
의금부도사에 임명되었으나 3개월 만에 사직하고 해남으로 내려갔다.
o 1628년(인조 6) 별시 문과 초시에 장원 급제하여 봉림 대군[효종], 인평 대군의 스승이 되었다.
그 뒤 5년간 공조 좌랑, 형조 정랑, 한성부 서윤 등을 지냈다.
o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윤선도는 의병을 모아
강화도로 가다가 길이 막혀 해남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인조가 청에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실망하여 이듬해 2월 제주도로 떠났다.
o 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보길도에 잠시 내렸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섬에 눌러앉기로 하였다.
o 윤선도는 자신이 머물던 마을 일대를 "부용동"이라 하고 격자봉 아래에 집을 지어
낙서재(樂書齋)라는 이름을 붙였다.
o 그 후 10여 년 동안 보길도의 부용동과 금쇄동의 자연 속에서 한가로운 생활을 즐기면서
금쇄동을 배경으로 한 산중 신곡과 산중 속신곡과
o 1651년(효종 2) 한글 연시조 "어부사시사" 등을 지었다.
바. 정약용 (丁若鏞 : 1762- 1836년(74세))
o 조선 후기 유형원과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여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 송보, 호는 사암, 여유당이며
그는 출중한 학식과 재능을 바탕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o 1801년 신유사옥 후 강진으로 유배되어 18년(사의제4년.다산초당14년)생활 하였으며,
그는 이곳에서 독서와 저술에 힘을 기울여 그의 학문체계를 완성했다.
o 특히 <경세유표>·<목민심서>·<흠흠신서> 등.50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o 다산은 다양한 분야에서 천재에 가까운 인물로, 자연과학에도 관심을 기울여,
홍역과 천연두의 치료법에 대한 책을 내기도 했고,
o 도량형과 화폐의 통일을 제안했으며 건축기술인 "거중기"를 고안하기도 했다.
낙서재
낙서재 : 윤선도 선생이 살던곳
귀암
낙선재에서 바라본 동천석실
곡수당
동천석실 : 침실
송시열 선생의 글씐바위
예작도 건너가는 다리
예송리 해수욕장
완도 전화국
청해진이 있었던 장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