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열다섯 살 때 도회지에 나가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일본말을 초등학교 때부터 배웠기 때문에 영어도 외국어이므로 일본말과 어법이 비슷하겠지 했는데, 영 다르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 예를 들어, "나는 집으로 간다"고 할 적에 영어로는 "나는 간다 집으로" 식으로 말의 순서가 바뀌는 것을 보고 놀랐다. 중국어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당시 조선어 선생으로서 조정우라는 어른이 계셨는데, 가끔 교과서에 없는 말을 했다. 우리나라를 '한국'이라 하고 우리글을 '한글'이라고 하는데, '한'은 크다는 뜻도 되고, 으뜸이란 뜻도 되고, 둥글다는 뜻도 되고, 오직 하나라는 뜻도 된다고 했다. 그러므로 '한글'은 즉 크고 으뜸되고 둥글고 오직 하나인 인류역사상 제일 좋은 글자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하늘의 어원은 '한울'인데, '한울'에 '님'을 붙여서 '한울님'이라 하면 우주의 임자, 우주의 주관자의 뜻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을 들은 뒤부터 나는 우리나라 말과 글에 대한 자부심과 애국심에 불타게 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당시 조선어학회 기관지 『한글』을 탐독했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우리말본』도 읽게 되었다. 1937년 일본 유학을 떠날 때에는 『한글』 잡지를 창간호부터 꾸려 가지고 가슴에 품고 떠났다. 이런 정열로 해서 일제말기 미나미(南) 조선총독이 우리의 말과 글을 말살할 때, 나는 '그 놈을 죽이고 나도 죽자'하며 한 때 미쳐 날 뛴 적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한글학자도 아니고 대학교수도 아니고 언어학자도 아니다. 한글에 대한 상식인에 불과하다. 나는 주요한 선생의 뒤를 이어 사단법인 한글전용국민실천회의 제2대 회장도 지냈고, 외솔상도 탔지만, 그것을 나는 상식인으로 했지, 그 방면의 전문가로서 한 것은 아니다.
독일의 문호 괴에테는 말하기를 "상식은 인류의 수호신이다"라고 했다. 상식은 즉 신적 존재라는 말이다. 상식없는 인류, 상식없는 사회는 쉬 망한다는 말이다. 지식이나 학문없이는 살 수 있어도, 명예나 돈 없이는 살 수 있어도, 상식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나는 먼저 자연스럽게 상식인이 되었다. 상식을 벗어난 어떠한 인간도 인간다운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먼저 자연스럽게 한글을 사랑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땅에서 한울을 우러러 한국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말본』,『한글』을 통해서 더욱 한글을 사랑하게 된 나에게 있어서는 한글·한울·한국, 이 셋은 '한' 삼위일체이다. '성' 삼위일체와 같은 존재이다. 이를테면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와도 같은 존재이다. 이것은 나의 소신이요 철학이다.*
全澤鳧 - 동경신학대학 예과 졸업, 월간 사상계 주간, 월간 새벗 주간, YMCA 총무, 방송심의위원회 회원 등 역임, 現 교남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