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명 횡사한 유령의 수기
주 요 섭
내가 죽었다고?
세상 사람들은 날 죽었다고 말들 하지만 나는 버젓이 살아 있다. 『김 아무개는 죽었다. 거룩한 죽음을 했다.』고 신문들이 매일 추켜세우고 있지만 나는 살아 있고 거룩한 죽음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내가 한 행동이 살신성인(殺身成人) 이라고? 천만에. 내가 그런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위인이라면 오죽이나 좋으랴! 내가 자동차에 치어 육체를 잃어버린 건 사실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의 이기적인 행동이었지, 내가 무슨 절개를 지키려 했거나 남의 육체를 살려 주려고 의식적으로 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차에 치어 죽게 된 어린이를 구원해 살리고 내가 대신 죽었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내가 육체라는 껍질을 홀랑 벗고 홀가분한 유령이 되어 삶을 지속하게 된 경로를 올바로 아는 이는 나 혼자뿐이다. 나 혼자만이 내 마음과 행동의 동기를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지금 나는 거추장스런 용적, 무게, 형태 등을 다 버리고 자유스럽게 살고 있다. 아무것도 안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고 안 마셔도 목이 마르지 않다.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병도 걸리지 않고 참말로 편히 살고 있다. 육체적 고통도 즐거움도 나는 모른다.
그러나 정신만은 말짱하고, 기억력은 더 늘었고, 마음의 고통과 즐거움은 예전보다 열 곱이나 더 강하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지금 영 잠을 자지 않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에 집이 소용없고 걸어다니지 않기 때문에 길도 소용없다. 그러나 필요에 따라 나는 자유자재로 커질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내 아내 또는 자녀들의 주머니 속으로 기어들어갈 수 있고, 단숨에 수천 리 거리를 날아 갈 수도 있다.
그런데 나에게는 고약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아무 때나 세상 누구의 머리 속으로나 기어들어가는 나는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을 시시콜콜 다 알게 된다. 이것이 지금 나의 커다란 고통이요, 또 슬픔이다. 인간들의 생각이 냄새를 풍기기 때문이다. 향기로운 내음보다 구린내가 더 많이 나는 것이다. 손, 발, 입은 좋은 일, 착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일하는 동기는 불순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지나간 몇 해 동안 나는 줄곧 자살할 생각을 하고 있었었다.
『한 가족 집단 자살』 보도가 신문 지상에 거의 날마다 실리고 있는 것을 읽으면서도 나는 몸서리만 칠 따름, 용기를 내지 못하는 채 살아 온 것이었다.
이승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삼 년 전에 자살을 감행한 내 맏아들의 유령을 저승에서 만나게 될 것이 무서웠던 것이다. 피투성이 얼굴에 독기 품은 눈을 가지고 나를 노려보곤 하는 아들의 모습이 연방 꿈에 나타나고, 낮에 길을 걸을 때에도 그 애의 유령이 날 졸졸 따라다니는 것 같은 직감으로 몸서리 쳐지곤 했었다.
삼 년 전에 열다섯 살이었던 그놈. 아비가 모르는 자기 나름의 고민도 물론 있었을 것이지만, 그 날 그놈이 달려오는 버스 앞에 몸을 던진 것은 내가 시킨 것이나 다름 없는―즉 내가 그 애를 죽였다는 자책감이 내 마음을 계속 고문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날 아침 내가 무슨 이유로 하필 그 애를 두드려팼는지? 밥 달라고 조르는 철모르는 어린것들에 대한 나의 죄책감과 그 날따라 여느 때보다 더 심한 바가지블 긁는 아내에 대한 나의 분노가 엉뚱하게도 착하디 착한 맏아들에게 향해 터졌던 성싶다.
"이놈, 나가 뒈져라, 뒈져!"
하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나는 그 애를 마구 팼던 것이었다.
내 육체가 차에 치어죽련 그 날 오후. 달려오는 버스 앞으로 뛰어가는 소년 하나가 내 눈에 띄었을 때 그 애를 삼 년 전에 죽은 내 아들로 착각하고 그리로 뛰어들어간 것이었다. :
"아버지!"
하고 비명을 지르는 내 아들의 목소리를 분명 들었다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 애를 살릴 생각이었는지 나도 함께 죽어 버리고 싶었었던지, 자살하는 용기를 가진 그 소년의 기개에 대한 시기심이 발동했었는지, 아니 그 순간 나도 자살할 용기를 얻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두 저 애와 함께 죽자.』하고 느끼며 뛰어들었는데 어쩌다가 내 발이 전차 궤도에 걸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얼떨결에 그 소년을 밀치고 내 육체만이 차에 깔린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소년을 살리고 내가 죽으면 나의 유가족은 좀더 풍부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공리적인 생각이 그 순간 내 머리를 지배했었는지도 모른다. 바로 며칠 전 어떤 장교 하나가 땅에 떨어진 수류탄 위에 몸을 던져 자폭하여 많은 병사들을 구원해 주었기 때문에 각처로부터 조위금이 쇄도하고 있다는 신문기사가 그 순간 내 눈앞에 크게 떠올랐었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나같은 놈에게도 그련 좋은 기회가 와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며칠째 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웬걸, 그런 기회도 운이 좋아야 오게 마련이지. 하고많은 날, 하필 꼭 그날, 꼭 그 시각에. 하도 넓은 세상에 하필 바로 그 특정된 지역에……. 천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우연인걸』 하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 내가 차 앞으로 뛰어들던 그 순간에는 아무런 생각도 못한 것 같다. 머리가 혼미하여 무의식중 본능적으로 뛰어들었을 것이다.
몇 해만에 처음으로 그 날 점심을 나는 배부르도록 먹었었다. 곰탕 두 그릇을 한 자리에서 다 먹은 것이었다. 웬 돈으로? 그날 아침 나는 도둑질을 한 것이었다.
북새통 시장에서 지전 한 몽치를 슬쩍해 가지고 시장 밖으로 태연히 걸어나오는데 성공한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 준 것은 이틀 굶어 쪼르륵거리는 내 창자의 힘이었다. 배가 부르자 겁이 더럭 났다. 식권 살 때에는 조심조심 백 원짜리 지폐 한 장만 살짝 꺼냈었건만, 식당문 밖에 나서자마자 내 손은 자꾸 돈 들어 있는 주머니로 들어가고, 금방 형사나 순경이 어깨를 잡는 것 같은 공포에 떨게 되었다.
쌀 사 가지고 얼른 급히 집으로 가고 싶은 생각은 간절했지만 쌀가게에 들어섰다가는 곧 탄로날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혔다.
마주 걸어오는 모든 사람의 시선이 모두 돈 들어 있는 내주머니에 집중, 눈독을 들이는 것만 같았다. 발각되기 전에 어서 속히 돈 뭉치를 처분해야만 되겠다는 초조감이 내 머리를 채웠다.
『어떻게 처분한다? 남몰래 감추어 둬야지. 어디에? 감춰 두려면 집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집에까지 무사히 가는 것이 문제다. 너무 멀다. 가는 동안에 형사에게 잡히고 만다. 아니, 형사들이 집 근처에 잠복하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내 몸을 뒤져 봐서 돈 몽치가 발견되면 영락없이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된다. 기껏 곰탕 두 그릇 사먹고 숱한 돈을 빼앗기고 징역을 산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에키! 저게 파출소 아닌가? 되돌아가야지. 아니 되돌아가면 되려 의심 받지. 골목이 없나? 아, 있다. 골목으로 새서 인적이 없으면 길가 아무 데나 버리고 맘놓고 다녀야지.』
그런데 그 골목 끝까지 가도 인적이 끊이질 않았다. 두세 번 뒤돌아보던 나는 흠칫 놀랐다. 『저기 저 자가 내 뒤를 밟는 것이 아닌가? 어서 큰 길로 나가 인파 속에 섞여야지.』
벌기 어려운 것이 돈이었고, 도둑질하기는 더 어려웠는데, 도둑질한 돈을 남몰래 버리자니 그게 더 어려운 일이었다. 돈이라는 것이 이렇듯이 묘한 물건이라고 생각되기는 평생 처음이었다. 『벌기는 어렵고 쓰기는 쉬운 것이 돈이라고 말들 하는데, 쓰지 못하고 버리려고 하니 이건 죽기보다 더 어렵구먼.』
전전 긍긍하면서 한참 걷노라니 배가 꾸룩꾸룩하기 시작했다. 무척 오랫만에 그것도 무척 기름진 것으로 별안간 꽉 채워진 배가 놀랐는지 화가 났는지 배가 아프고 뒤가 마려웠다. 동대문 옆 공중 변소까지 가는데 진땀을 뺐다. 날이 무더워서가 아니라, 금방 누가 목덜미를 덮치는 것 같은 공포에 쫓기면서 배가 아파 죽을 지경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비어 있는 변소간이 하나 있었다.
바지춤을 내리기 무섭게 활활 내리 쏟았다. 곰탕 두 그릇이 온통 물로 변한 모양이었다. 기발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지, 그게 제일 안전하지. 돈 뭉칠 이 변기 속에 처넣어야지 .
돈 뭉치를 꺼내 들자, 너무나 아까운 생각과 더불어 묘한 생각이 났다. 『아무리 백만 장자라도 지금의 나 같은 짓을 감히 못할 게다.』
백 원짜리 지폐 한 장 한 장 차례로 나는 밑을 닦아 아래로 던졌다.
통쾌 했다.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변소 밖으로 나오니 몸과 마음이 다 상쾌했다.
그러나 그건 한순간.
『이 바보 새끼야, 공짜로 생긴 돈을 변기 속에 버리는 천치가 세상 어디 또 있니!』하는 욕설이 내 귀를 먹먹하게 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고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나에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내 속에 있는 욕심이란 놈이 날 꾸짖는 것이었다.
『이 미련한 놈아, 네가 십 년을 번들 그 많은 돈을 한몫 손에 잡아 볼성싶으냐? 남들은 십만 원, 백만 원도 공공연히 도둑질해 가지고 떵떵거리고 살며, 백주에 대로를 활보하는데, 그까짓 돈 천원쯤 가지고 벌벌 떨다가 감추지도 못하고 구더기에게 선사하다니. 비겁한 놈. 구더기만도 못한 심장을 가진 놈. 미친놈. 얼 빠진 놈. 너 같은 건 죽어야 한다. 오늘 저녁 네 가족이 또 굶는 꼴을 어떻게 보고 견디겠니? 길에서 불심 검문 받기가 그렇게 무서웠다면 곧장 술집으로 가서 술이라도 실컷 마시고, 오랫만에 계집질도 한두 번쯤 해 봤을 게 아니냐. 길 하나만 건너가면 대낮에도 소매 잡아끄는 젊은 색시들이 우굴우굴하는데. 옹졸한 놈, 쓸개빠진 놈. 죽어라 죽어. 너 같은 놈은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없어.』
내가 생각해 봐도 역시 맹랑한 일이었다.
허탈감을 품은 채 정신없이 거리를 방황하다가 버스에 치일 순간에 놓여진 소년을 보고 부지중 달려든 나였다.
차에 치여 내 육신의 숨이 끊어지자마자 내 혼은 훨훨 나는 것을 나는 느꼈다. 방금 벗어 버린 내 껍데기가 너무나 초라하고 더러위 보이는데 나는 놀랐다. 머리가 터져 허연 골이 쏟아져 있고, 입, 코, 눈에서 시뻘건 피가 자꾸 홀러나오는 것만이 비참하고 더럽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몸에 두른 누더기가 더러운 것이 아니라 육체 그 자체가 초라하고 더러운 것이었다. 그런 보잘것없는 껍데기 벗기가 싫어 사십여 년이나 고생하며 살아 온 내가 참말 어리석어 보였다.
내게 떠밀린 소년은 잠시 넘어졌다가 곧 일어섰다. 죽지 않고 살았다고 그 소년은 껑충껑충 뛰고 있지만 그 모습이 나에게는 가엾게 보였다. 급정거한 버스 앞으로는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여기서 내려다보니 모두 궁상맞은 인간들이었다.
교통 순경들도 나타났다. 순경 하나가 내 옷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주머니 모두가 빈털터리였고 작업복 바른쪽 옆구리! 주머니에서 동전 다섯 잎을 꺼내 들고 흔들면서 얼굴을 찡그리는 것이었다.
『저 자가 내 주머니에게 지전 뭉텅이를 발견하고 꺼냈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하고 생각하니 돈 뭉치를 이미 버리고 죽은 것이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얼마 못 가서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 영혼의 나라에서는 돈이 필요 없다. 먹고 마실 필요 없고 옷입을 필요 없으며, 약도 필요 없고 여행하는 데 여비도 소용없는 생활에 돈이라는 게 필요할 리가 없다. 그래 바로 얼마 전까지 내가 돈 때문에 고생하고 도둑질까지 하고 그걸 몰래 버리느라고 진땀을 빼던 생각을 하니 어처구니없기 그지없다. 그리고 지구 위에 사는 사람들이 돈 때문에 싸우고, 돈 때문에 살인하는 걸 볼 때 인간이란 참말로 한심하고 가련한 동물이라고 느껴진다.
이튿날 새벽 각 신문 조간에 살아난 소년의 사진을 살리고 『남 살리기 위해 자아를 희생한 거룩한 분의 신원은 알 길이 없다.』고 대서 특서 보도되었다. 그런 기사들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금 반성해 봤다.
소년을 꼭 살려 주고 싶은 충정을 가지고 그 순간에 내가 차 앞으로 뛰어갔던가? 그때 만일 내 발이 전차 궤도에 걸리지 아니하여 나도 소년도 둘이 다 살았더라면 신문 기자들은 어떤 기사를 썼을까? 만일에 내 행동으로 인하여 소년이 죽고 내 육체는 살아 있게 되었다면? 그렇게 되었을 경우에 경찰은 즉각 나를 체포했을 거고, 신문들은 하늘과 인간이 다 같이 분노할 살인자 악당이라고 욕을 막 퍼부었을 것이다.
『살신성인』과 『과실치사』는 종이 한 장 차이가 아니라, 한 장 종이의 앞뒷면에 지나지 아니 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내 몸뚱아리의 처리 문제를 가지고 언론계와 경찰이 신경을 쓰고 있는 꼴을 내려다보면서 나는 쓴웃음을 웃었다. 벌써 썩기 시작하는 송장을 방치해 두고 연고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린다니? 영혼이 떠나 버린 육체는 이미 아무의 소유물도 아니다. 사십여 년 동안 내가 그걸 걸치고 세상에 살아온 건 사실이지만 내가 홀랑 벗어 내버리고 이리로 올라온 이상 그건 폐물이다. 폐물이란 아무나 아무렇게나 처분해도 상관없다. 더구나 썩는 물건인 만큼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처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소나 돼지의 시체라면 연고자나 소유권자를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것들은 썩기 전에 각을 뜨고 썰어 처분하면 적잖은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시체 처분에는 되려 적건 크건 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인간이란 동물은 살아 있을 때에도 제일 말썽꾸러기 동물이요, 죽은 뒤에도 제일 말썽을 일으키는 귀찮은 동물이다.
매미나 뱀이 벗어 버린 허물은 아무 데나 방치되어 스스로 썩어 변모되고, 들짐승들이 벗어 버린 허물은 딴 짐승들이 먹어치우는데, 유독 사람이 벗어 버린 허물은 인공적으로 썩혀야만 되게 되어 있다.
그래 내가 벗은 허물을 당국이 가매장하기에 잘한다는 생각을 하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버린 껍질에 미련이 남아 있다거나 소중하게 생각해서가 아니다. 살아 남은 인간들에게 보이는 미관상 문제와 위생 문제가 게재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옅은 땅 속에서나마 내 허물이 정상적으로 썩어 가고 있는 참에 땅 속에 함께 묻히지 않은 내 구두가 인연이 되어 내 신원이 밝혀지고 말았다. 이에 따라 조위금이 구역구역 내 아내의 손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살아남아 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는 반가운 일이었으나, 내가 한 일이 과연 많은 어린이들의 순정을 받아들여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떳떳한 행동이었었나를 반성해 볼 때 나는 송구러운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기분도 잠시. 역겨운 마음을 금할 수 없는 광경을 나는 목도하기 시작했다. 우선 불로 소득의 일종인 공돈맛을 보게 된 내 아내의 생각이 불순해지는 데 나는 환멸과 증오를 느꼈다. 나는 아내에게 충고했다.
"조위금이 자꾸 들어온다고 거기에만 등댈 생각을 해서는 못쓰오. 더 많이 들어오길 바라고 욕심부려도 안 되고. 평생 굶주리고 헐벗고 살아온 당신이라 한꺼번에 목돈이 손에 들어오니 도취되는 심정은 나도 이해할 수 있소. 허지만 허욕을 내도 안 되고 낭비해도 안 돼요. 지금 들어온 돈은 어디까지나 공짜로 들어오는 것인데 공짜만 바라고 살다가는 머지않아 실망하고 패가 망신하게 된다는 말요."
『고마운 아저씨의 유가족 도와 주자.』
고 떠들면서 모금 운동을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볼 떼 나는 감격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의 그런 성의를 받을 가치가 있는 일을 했다고 믿지 않는 나는 도리어 민망하고 무안하기 그지없었다.
순진성을 잃은 것같이 보이는 어른들이 이튿날 신문을 펴 들고,
"아, 이것 봐. 우리 이름이 여기 이렇게 났구먼 ― 돈 몇 푼 내고 성명 석 자가 이렇게, 평생 처음, 이렇게 신문에 났으니 해 볼만한 일인데."
라고 소리지르는 꼴을 보는 나는 그자들의 얼굴에 침을 뱉아 주고 싶었다.
돈이 들어 있는 봉투 하나를 신문사에 전달하는 뚱뚱한 중년 여인 하나가 내 눈에 띄었다. 봉투를 내밀면서 그녀의 살찐 얼굴에 나타나는 회심의 미소. 나는 구역질이 났다. 그녀 자기에게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소액의 돈을 거지에게 던져 주면서 느끼는 값싼 자비심의 자아 만족감을 나타내는 미소. 『내가족은 거지가 아니다.』 하구 나는 그녀에게 호통쳤다. 물론 그녀 혼자만이 들을 수 있는 내 목소리였다. 남이 보기에는 왜 그러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별안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그녀는 황망히 신문사를 나와 밖에 기다리고 있던 자가용 세단을 타고 도망가 버렸다.
그 다음 액수를 밝히지 않는 『금일봉』(그 봉투 속에 들어 있는 돈이 얼마라는 걸 나만은 물론 알고 있었다.)을 회사하옵시는 정치인을 나는 봤다. 약간의 돈으로 자아 선전에 급급하는 약삭빠른 정치인의 생리. 분노라기보다 어처구니없는 조소를 나는 느꼈다.
굳이 제 이름 밝히기를 거부하는 『무명씨』의 조위금도 들어왔다. 이 무명씨가 내고 간 돈은 참말 거액이었다.
조위금이 웬만큼 들어오자 내 아내는 가매장해 둔 내 시체를 공동묘지에 옮겨 묻어야 한다고 서둘렀다. 나는 다시 그녀에게 충고했다. 폐물이 썩는 것은 어디서 썩어도 썩기는 마찬가지이니까 옮겨 묻는 데 드는 비용을 아껴 남들을 돕는 일에 충당하라고.
나는 아내에게 거듭 암시했다. 무덤을 잘 쓰고 못 쓰는 것이 송장에게 아무런 영향를 끼치지 못하고, 자손의 생활에도 영향주는 바 절대로 없다고.
송장을 화장에 붙이는 것은 최급속도로 썩이는 방법이요 땅 파고 묻으면 천천히 썩이는 차이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인간들은 명당이니 무엇이니 하는 풍수설을 꾸며 가지고 막대한 돈을 들여 묘지를 선택해 사 놓고 다시 막대한 비용을 들여 분묘를 크게 만들기 경쟁을 하고 있다.
이 영혼의 나라에서는 만인이 모두 다 절대 평등이다. 거지의 혼, 혹은 극빈자의 혼이라고 해서 천대받는 일이 없고, 권력가 혹은 큰 재벌의 혼이라고 해서 우대해 주는 일도 없다.
또 세상에 벗어 남겨 두고 온 시체가 화장당했거나, 거적에 뚤뚤 말려 아무 데에나 평토장으로 묻혔다고 해서 그들의 혼백이 여기서 비굴감이나 열패감을 느끼는 일이 없고, 비단 수의에 입혀 두껍고 값진 관 속에 들어 명당 중에두 상병당 자리에 깊숙이 묻히고 집 한 칸만하게 크고 높은 봉분을 이고 있는 시체의 혼이라고 해서 뽐내거나 우월감을 가지지 못하는 고장이 곧 여기다.
뫼를 잘못 쓰면 자손이 벌을 받곤 명당에 쓰면 자손이 상을 받아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는 엉터리 미신이 인간 세상 그중에도 특히 한국 사회에 널리 뿌리 깊게 보급되어 있다는 사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이전에 내가 육체라는 껍데기 속에서 지구상에 살고 있을 때에는 나도 그런 걸 믿고 있었다. 내가 못났다는 자각은 않고, 조상의 산소를 잘못 써서 내가 못산다고 조상 탓만 하고 살아 온 나였다. 책임 전가도 유분수지. 그러나 이 나라에 와 보니 그것이 커단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었다.
지상에 벗어 버리고 온 껍질을 잘 위해 주지 않는다고 자손에게 화를 내고 벌을 줄 만큼 옹졸하거나 사랑이 부족한 혼백은 이곳에 하나도 없다. 또 송장을 잘 위해 준다고 자손에게 상을 줄 수 있는 권력도 가진 혼백도 하나도 없다.
땅에 버리고 온 껍데기는 이미 내 것이 아니라는 걸 여기 우리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어서 그 폐물을 자손들이 어떻게 다루건 무관심이다.
단지 우리 모두가 기원하고 또 자손들에게 거듭 암시해 주는 것은 될 수 있는 대로 올바른 생활을 해 달라는 부탁이다. 올바르게 생활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육체가 죽은 뒤 혼령이 어떤 특권 생활을 하게 된다는 공리적인 동기에서 기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지상 생활이 우리 혼령 생활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 다만 올바르게 사는 것이 삶의 옳은 길이요, 살아있을 때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무한 시. 영원 속에서 기껏 70년 단 한 번밖에 가져 보지 못하는 지상 생활을 착하게 보내는 것이 보람 있는 생활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영혼의 나라가 천당과 지옥으로 나뉘어 있다는 학설도 믿을 바가 못 된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여기는 천당도 지옥도 아닌 단지 『유령의 나라』 다.
세상에서 나쁜 짓한 자의 혼은 지옥으로 가 영원한 고통에 묻히게 되고, 좋은 일한 자의 혼은 천당으로 가서 영원무궁한 복락을 누린다고 떠들어 대는 것은 하나의 협박인 동시에 유혹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협박과 유혹을 일삼아하고 다니는 선의의 사람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좀더 착한 생활을 하는 것이 옳다고 아무리 타일러도 대부분 인간들이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려버리면서 자주 악을 저지르니까 애가 타서 협박도 하고 유혹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지구 위에 사는 자손들이 못된 짓을 하면 그들 선조의 혼들이 비탄에 잠기고 착하게 살도록 하라고 자손들에게 계속 호소한다.
어떤 민간인 기관에서 나에게 무슨 상을 준다고 하는 말이 들려온다. 참 거북하기 그지없는 소식이다. 내가 지상에서 한 행동에 대해 지금 인간 세상에서 너무나 왁자하게 떠드는 것이 나에게는 수수께끼다.
백 보를 양보해서 그날 오후 내가 버수 앞으로 뛰어든 동기가 순수했다고 가정해 보자. 위기에 처해 있는 동포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 사람들이 과거에 얼마든지 있지 아니한가. 가까운 예 하나만 들어 보자. 지난 여름에 강에 놀러갔다가 물에 빠져 거의 죽게 된 동생을 구하려고 물로 뛰어든 형이 있었다. 그 형이 동생을 건지기는커녕 자기 자신이 허위적거리고 있을 때 맏형이 또 뛰어들어갔다. 그러나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셋이 다 빠져 죽은 사고가 있었다. 그때 이 『거룩한 일』은 신문에 조그만 기사거리만 제공하고는 쉬 망각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하나는 살고 하나는 죽으면 죽은 이가 동포애의 화신이 되는데, 하나를 구하려다가 셋이 다 죽은 경우는 묵살되고 마는 세상 ― 참 야릇한 세태다.
더구나 이상한 것은 한 어린이가 차에 치여 죽을 위기에 직면한 것을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목격하게 될 때 어떤 인간인들 무의식중에 뛰어들 것이 아닌가. 그건 인간의 본능이 아닌가! 다시 말하자면 그런 일은 인간 세계에 응당 있는 일이 아닌가 말이다. 응당 있는 일이고, 과거에 흔히 있어 온 일을 가지고, 유독 나 하나만을 영웅처럼 내세우는 심리를 나는 이해 못 하겠다.
인간이면 누구나 다 응당 해야 할 일을 한 걸 가지고 이처럼 거룩하게 추켜세워야막 될 만큼 우리 겨레는 비인간적이란 말인가?
하기는 지상에 사는 인간들 중 정신병자가 아니면 위선의 화신처럼 보이는 분자들이 꽤 많이 있다.
한국 사람으로 전 세계에서 명성을 날린 음악가 하나가 수십 년만에 처음 귀국해 연주회를 가진 일이 수년 전에 있었다. 국내 음악가들 중 환영하는 이들도 없지는 않았으나 질투였는지, 많은 사람이 냉대 정도를 떠나 중상모략과 악평을 퍼부었었다.
그가 외국에서 갑자기 죽자, 서울에서 그의 추모 음악회를 개최했다. 우리 나라 음악가들의 도량이 넓다고 생각되어 나는 무척 기뻐했다. 그러나 그들이 내세운 추진 위원 명단을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음악 감상은커녕 음악가들을 가리켜 『풍객쟁이들이 못되게 군다.』고 공공연히 멸시하여 사회에 물의를 일으켰던 인사의 이름이 그 명단에 버젓이 끼여 있었다. 그보다도 더 놀란 것은 현재 외국에 가 있는 사람들의 이름도 섞여 있었고, 이미 죽은 지 오래 되어 혼백이 나보다 먼저 이 나라에 와 있는 인사의 이름까지도 도용되어 있는 것 이었다.
내가 기절 초풍한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육체적 모든 기능을 상실한 나, 하나의 유령에 지나지 않지만 정신적 기능은 이전보다 더 발달되어 있다. 이것이 지금 나의 고민이요, 슬픔이다.
바로 조금 전에 그 음악가의 영혼과 추모 음악회 개최 추진위원 명단에 오른 사람의 유령과 나 그 밖에 여러 혼백들이 만나 한바탕 웃었다. 즐거워서 웃은 것이 아니라 어처구니없어서 웃은 것이다.
언제나 지구에 사는 인간들이 철이 들려는지?
〈1965. 11〉
2016년 11월 25일 읽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