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자비하신 은혜와 십계명
시대의 소망(1) - 만일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주의를 돌려서 그들의 학식과 경건을 칭찬하셨다면 그들은 그분을 기쁨으로 환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하늘나라를 온 인류를 위한 자비의 시대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바리새인들이 묵인할 수 없는 종교의 한 측면을 제시하고 계셨다.
그들 자신의 모본과 교훈은 하나님께 대한 봉사를 바람직하게 보이도록 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미워하고 배격하던 바로 그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관심을 두시는 것을 보았다.
이 사실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에 최악의 감정을 격발시켰다.
“유다 지파의 사자”(계 5:5)의 영도 하에, 이스라엘이 모든 열국보다 높임을 받아 탁월하게 되리라는 자랑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그리스도의 견책과 그분의 순결한 임재 앞에서, 그들이 느꼈던 책망을 견디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들의 야심찬 희망이 깨어지는 것을 더 잘 견뎌 낼 수 있었을 것이다.(DA243.2)(1기별 235)
화잇주석 6권(1) -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가족들이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생명을 주신 그 큰일을 깨닫게 하신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일 3:1).(6BC1110.1)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사심이 없으시고 무한하신 사랑과 자비의 화신을 볼 때에 죄인의 마음에는 감사의 정신이 일깨움을 받고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대로 따르게 된다.(원고87, 1900).(6BC1110.2)
특별히 도덕률에 대하여 말하는 것 —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갈 3:24).
이 성경절에서 성령께서는 사도를 통하여 특별히 도덕률에 관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율법은 우리에게 죄를 나타내 보여주고, 그리스도의 필요성을 느끼게 해주고,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활용함으로써 용서와 평화를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로 달려가게 해 준다....(6BC1110.3)
십계명을 자비의 측면에서 보고, 금지조항이라는 측면에서 보지 말아야 한다. 그 금지조항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틀림이 없는 행복을 보증하는 것이다. 그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받아들였을 때, 그것은 우리 속에서 역사하여 품성을 순결하게 하고 그 품성은 무궁토록 우리에게 기쁨을 가져다 줄 것이다.
그것은 순종하는 자들을 보호하는 방호벽이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며,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움직일 수 없는 의의 원칙들을 보여줌으로써, 범죄의 결과인 악(惡)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고자 하신다.(6BC1110.4)
우리는 하나님을 죄인을 벌[罰: 심판]주시려고, 대기하고 계신 분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죄인은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 벌을 불러온다. 그 자신의 행동들은 확실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련의 환경을 조성한다.
죄를 범하는 행동마다 죄인 자신에게 반응을 일으키고, 그 속에 역사하여 그 품성을 바꾸어 놓고, 그가 다시 죄를 범하기 쉽게 만들어 놓는다. 사람은 죄를 선택함으로써 자신들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고, 축복의 통로를 스스로 잘라버린다. 그 확실한 결과는, 파멸과 죽음[영원히 지옥 불에 불타 없어져 사라짐]이다.(6BC1110.5)
율법은 하나님의 생각의 표현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받아들일 때, 그것은 우리의 생각이 된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타고난 욕망과 경향성들을 초월하게 하고, 죄를 범하게 하는 유혹을 이기게 한다(원고23a,1896).(6BC1110.6)
두 율법의 상호 관계 — 두 율법의 상호 관계에 대해서, 정확하고 상세하게 깨닫는 것이 필수적인 것은 아니다. 훨씬 더 크고 중대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아는 것이며, 거룩한 계명을 순종하고 있느냐, 불순종하고 있느냐를 아는 것이다(편지165,1901).(6BC1110.7)
24-26 유일한 치료제 그리스도(갈 6:14; 요일 3:4) — 마음이 갈보리의 십자가에 이끌리게 될 때에, 우리는 불완전한 시각으로 치욕의 십자가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본다. 그가 왜 죽으셨는가? 죄 때문에 죽으셨다.
죄가 무엇인가? 율법을 범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눈이 열려서 죄의 성질을 보게 된다. 율법이 파괴되어 범죄자를 용서할 수는 없다. 그것은 우리를 벌 받을 사람이라고 정죄하기 때문에 우리의 몽학선생이다.
치료제는 어디 있는가? 율법은 우리를 내몰아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타락하고 죄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의를 나누어 줄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며, 그의 의로운 품성을 입고 있는 사람들을, 그의 아버지께 제시하려 하심이다.(원고50,1900).(6BC1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