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푸 10 - 호텔에서 코르푸섬을 소개하는 그림을 보며 이주민의 역사를 생각하다!
2024년 5월 6일 코르푸 Corfu 섬에 도착해 카발레리 호텔 Cavalieri Hotel 에 체크인후 올드
포트리스 요새 Old Venetian fortress 와 올드포트 Old Port 에 새 베네치아 요새
New Venetian fortress 를 보고는 오래된 골목길을 걸어서 구경하면서 옛일을 회상합니다.
로마 역사에서 드루수스는 아우구스투스에 이어 2대 황제가 될사람이었지만 라인강전선에서 죽으니
형제인 티베리우스가 황제가 되었는데, 드루수스가 아우구스투스의 누나인 옥타비아의 딸
안토니아와 결혼해 낳은 아들 게르마니쿠스는 그 이름에서 보듯 게르마니아를 정복한 장군 입니다.
그런데 그가 동방을 다스리던 중인 서기 19년 10월 10일 향년 33세로 급사하자 사람들은 티베리우스
가 시리아 총독 피소를 사주해 독살했다는 의심을 했는데....... 부인 아그리피나는
유골을 품에 안고 후일 3대 황제가 되는 일곱살 칼리굴라와 한 살 딸을 데리고 로마로 출발했습니다.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출발한 배가 여기 코르푸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아드리아해
건너편인 이탈리아에서는 너도나도 브린디시항으로 달려갔으며, 게르만전선의 로마
병사들도 옛 총 사령관을 생각하며 울었고..... 티베리우스는 근위병 3개 대대를 보내 호위
하게 했으며, 연도에 나온 로마인들은 몰약이나 입고 있던 옷을 벗어 태우면서 애도했다고 합니다.
다음날인 5월 7일 아침에 식당으로 가서 뷔페식 아침을 먹고 내려와 리셉션에서 오늘 코르푸
외곽의 해변 도시로 가는 버스편을 물으며.... 코르푸섬을 소개하는 책자에서
여러 귀중한 사진을 보다가, 또 다시 옛일이 떠올라 고대에 이주민의 역사를 생각해 봅니다.
트로이 전쟁에도 나오는 그리스 미케네 문명은 기원전 1200년경 도리아인들의 침입으로
파괴되고 멸망한후 기원전 800년까지는 기록이 전혀 없으므로 암흑시대
라고 부르는데..... 기원전 800년경 부터는 도시 국가인 폴리스들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폴리스들은 기원전 776년경 고대 올림픽을 통해 동족 의식을 다졌지만 하나의 국가로 통합을 이루지는
못했으며 처음에는 소왕국 형식이었으나 점차 귀족정 형식으로 변화하게 되고
나중에는 식민 활동 활성화와 화폐 경제의 도입, 철 가격의 하락 등으로 평민들 역시 무장을 하게 됩니다.
이 평민들이 전투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자 그들의 발언권이 늘어났고 이후 폴리스는
차이는 있을지언정 통상 참주(독재자) 를 혐오하는 헬라스적 전통을
가지게 되는데.... 이 시기를 대표하는 폴리스로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테베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델로스 동맹을 결성한 아테네가 패권을 쥐었지만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일으키자 동맹은 무너지고 주도권은 승리를 거둔 스파르타에게 넘어가지만
그후 테베를 중심으로 반스파르타 연합군이 레욱트라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패권은 테베에게 돌아갑니다.
혼란이 거듭되자 북쪽에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 2세는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폴리스군
을 격파했고 알렉산드로스 3세 시대를 거치면서 완전히 약화되었으며 헬레니즘 제국 시대로 접어
들며 이전의 문화를 잃어버렸고.... 마케도니아 왕국이 로마에 의해 멸망당한 후에는 자치권마저 사라집니다.
도시국가 폴리스 시대에 그리스인들은 왕성한 해양 활동을 통해서 곳곳에 식민도시들을 많이 세웠는데
이는 그리스 본토가 척박하고 좁아터진 탓에 증가하는 인구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리스인들의 식민 활동은 대략 기원전 750년 경에 처음 시작해 기원전 500년까지
무려 250여 년에 걸쳐서 이루어졌다고 보여지며, 고대에 식민활동
에 나선 민족은 페니키아(레바논) 의 도시들과 그리스 도시들 두 민족이 있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세기부터 100년간 활발한 무역 활동을 벌이며 지중해, 흑해 해안가 곳곳에 식민도시
건설에 열을 올렸는데, 다만 독립적인 성향이 강했던 그리스인답게 식민도시를 세웠다고 해도
그리스 본토에 충성을 바치거나 종속된다는 개념은 아니었고, 독자적인 하나의 도시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스인들이 세운 식민도시는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었는데, 하나는 영구적인 정착촌인 식민도시
였고, 나머지 하나는 '엠포리아' 라고 해서 정착도시 라기보다는 무역소에 더 가까운 개념이었으니
엠포리아의 경우 그리스인 뿐만 아니라 현지인들도 모이면서 활발하게 경제활동이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리스인들이 가장 먼저 식민화한 지역은 시칠리아 섬이었으니, 시칠리아 전역에
식민도시들이 들어섰고, 그 중심지는 동남쪽에 자리한 시라쿠사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이탈리아 반도 남부 나폴리와 타란토에까지 그리스 식민도시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기원전 7세기 경에는 더 멀리 뻗어나가면서 심지어 프랑스의 마르세유까지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흑해의 경우 지중해 식민 도시들에 비해서 덜 유명한 면이 있는데 오히려
지중해 연안 보다 이쪽이 무역이나 식민 활동은 더욱 왕성했습니다.
흑해 그리스 식민도시들은 목재나 가죽 등을 수출했고 대신 그리스 본토로
부터 올리브나 농산물들을 수입하면서 상부상조했는데...
진출을 활발하게 해서 흑해 연안은 대부분 그리스인들의 영향권이었습니다.
또 아나톨리아 (소아시아) 반도의 서쪽 해안 지방에도 그리스 식민도시들이 많이 세워
졌는데, 이 식민도시들은 이오니아라고 불렸으며 아나톨리아의 비옥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나중에는 심지어 그리스 본토 보다도 더 부유해져 문화가 발달합니다.
그리스 식민도시들은 시라쿠사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일대, 흑해 해안가 일대, 그리고
밀레투스를 중심으로 한 아나톨리아 일대의 이오니아 지방으로 나뉘어집니다.
특히 이오니아 밀레투스의 경우 비옥한 농토와 상당한 인구를 토대로 본토의 웬만한 대도시들마저
능가하는 생산력을 드러내면서...... 그리스 세계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의 영광을 누렸습니다.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 아낙시메네스, 아낙사고라스,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 등 걸출한
인물들이 이오니아에서 쏟아져나왔고, 사실상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은 그리스 본토가 아니라 서부 아나톨리아 해안가의 도시들에서 발흥했다고 보는게 맞습니다.
다만 이 그리스 자유도시들은 기원전 6세기 경에 초강대국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의 침공을 받아 페르시아 아래로 복속당했으며..... 이후 이들은
페르시아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는데, 후일 그리스 ~ 페르시아 전쟁의 발단이 됩니다.
전성기 시절에는 거의 이 식민도시들에 사는 그리스인들이 무려 80만명에 이르렀고
서쪽으로는 이베리아 반도에서 동쪽으로는 흑해와 아나톨리아에 이르렀으며
이들은 지중해권 무역을 꽉 휘어잡으면서 그리스 무역 촉진에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이런 식민지 중에 하나가 펠로폰네소스 입구 코린트운하에 자리한 해운등 교통의
요충지 코린토스가 그리스 서부에 섬에 세운게 여기 케르키라 곧 코르푸입니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은 이런 부유해진 식민도시들에서 일어났으니.... 그리스 철학은
서양 철학의 시조라 일컬어지는데..... 물론 그리스 바깥의 세상인 고대 근동에도
이성과 합리적 사고가 있었고, 근동의 수많은 지혜문학들이 새로 발굴되고 있기는 합니다.
그리스의 특이함은 사유의 구조화에 있으니, 중동의 지혜문학은 여러 세기에 걸쳐
필사되었고, 문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고대 중동의
지혜가 필사되고 보존되었다는 것은 세계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인가 합니다.
예외가 있다면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의 지혜보다 훨씬 후대인 공자의 책 정도인데.... 지혜문학이
전수되어 젊은이들에 대한 교육이 수월하게 되었고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 지게 되었습니다.
서양의 사고방식은 고대 중동 문화 보다는 그리스와 로마에 의해 형성되었으니, 그리스 에서도
헤시오도스의 책 "노동과 나날" 은 중동의 지혜에 비추어 볼 때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기원전 5세기부터 그리스는 고대의 지혜와 달리 사유를 구조화하는 철학을 발전시킵니다.
소크라테스의 등장 이전 최초의 그리스 철학자는 이오니아 식민도시 밀레투스 출신
의 탈레스 인데, 특징은 자연이나 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그 원인을 신의
섭리와 같은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계 내부에서 탐구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탈레스는 일식을 예측할 수 있었고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고 주장했으니 탈레스가 창시한
밀레투스 학파에서는 이후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 등이
등장했는데 이들 모두 세계의 근원을 불변하는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하려 시도했습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실체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고 무한히 운동하는 물질인
아페이론 (ἄπειρον) 이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했으며..... 아낙시메네스는
공기가 만물의 근원이라고 주장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을 만물의 근원이라고 봤습니다.
밀레투스학파의 영향을 받아 이탈리아 엘레아에서 엘레아학파가 등장하니 대표 학자인 파르메니데스는
논리적으로만 따졌을때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기 때문에, 있는 것에서 없는 것이 되고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이 되는, 세상의 모든 "운동과 변화" 는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밀레투스학파의 헤라클레이토스가 내세운 '모든 것은 변화한다' 라는 주장을 반박한 것으로,
이런 업적 덕분에 후일 형이상학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며 이후 제자인
제논이 등장해 제논의 역설을 포함해 '운동과 변화' 자체는 불가능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애썼고, 또다른 학자인 멜리소스가 등장해 후대의 원자론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파르메니데스와 엘레아학파의 등장으로 생겨난 또다른 학파가 있으니 다원론자들 인데,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에 관한 학설이 대두된후 더 이상 이전의 일원론만으로 세계를 설명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불이면 불, 물이면 물, 공기면 공기 이렇게 하나의 존재가 만물의 근원이라는 '일원론' 을
내세웠지만 파르메니데스가 이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일원론이 무너지게 된 것이니 대표주자
로는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등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건 원자론을 제기한 데모크리토스 입니다.
데모크리토스는 만물이 완전하게 채워진 입자인 원자와 텅 빈 공간인 진공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고, 이들이 결합과 해체를 반복하며 물질이
이루어지고 소멸한다고 믿었으며, 심지어 다중우주의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소크라테스 이전 그리스 철학에서 빼놓을수 없는 사람이 피타고라스로 피타고라스의 정리
때문에 수학자로 더 유명하긴 하지만 사실 철학자인데 일원론인 밀레투스학파의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였고, 스승의 영향을 받아 만물의 근원이 수(數) 라고 주장 했습니다.
피타고라스는 이 세계가 단순한 물질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 수학적 구조나 수학적 형식에 의하여
만들어져 있다고 봤으며..... 세계 최초로 스스로를 철학자라고 부른 것도 바로 이사람 입니다.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채식, 살생 금지, 생명 존중 등을 요구하기도 했으며 후일 플라톤
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고, 나중에 르네상스 때는 데모크리토스와 함께 실험적
자연과학의 성립에 중요한 역할을 맡아 세계 과학사적으로도 큰 의의를 남긴 인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