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면 동보서점 옆 골목 번화가.
찬란한 젊음이 넘치다 못해 탱글탱글 터질 것 같다.
줄지어 선 타로카드점집과 형형색색의 네온사인,현란한 간판의 고급 주점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동굴처럼 웅크리고 있는 이방의 골목이 있다.
젊음의 골목과 결코 타협하지 않을 것 같은 완고한 골목,바로 서면 공구골목이다.
공구골목은 말 그대로 각종 기계의 부품을 사고 파는 골목.
크고 작은 기계부품부터 선박용 부품,차량용 부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품을 취급하는 곳이다.
한 때 '공구골목에서 못사는 부품은 없다' 할 정도로 영화를 누렸던 곳이기도 하다.
볼트,베어링,벨트,스프링,와이어로프,파이프,모터,클러치,브레이크,연마기,열기기,에어공구,윤활유 등등을
이 골목에서 구할 수 있다.
그만큼 한 시절 거대한 규모로 서면 뒷골목을 풍미했던 곳이다.
그토록 견고한 이 골목도 '시대적 변화의 큰 물결'에는 예외 없이 물러나 앉고 만다.
젊은이들을 위한 다양한 주점들이 이 골목에 야금야금 자리잡기 시작한 것. 주점골목,싸구려 밥집골목 등에
속수무책 영토를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곳은 전쟁 중이다.
소비재의 현란한 도발에 생산재의 속절없는 수성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쥬디스 태화 신관 후문 쪽을 입구로 삼고 있는 주점골목은 저녁이면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해가 지면 무덤처럼 정적이 감돌던 이곳이,이제 각종 간판 불빛과 네온으로 밤새 '해가 질 줄 모른다.'
주로 구이집과 해물집 그리고 실비집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급속도로 골목이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주점골목의 특징은 저렴한 비용으로 술자리를 즐길 수 있다는 점과 각종 덤이 많다는 점이다.
주로 안주 한 접시가 5천원선이고 숯불 돼지고기류는 3천원부터,해물류도 1만5천~2만원이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지글지글 숯불에 고기와 해물이 맛있게 익어 갈 때면,어김없이 젊은 남녀가
연기 자욱한 골목을 뚫고 주점으로 들어간다.
가족과 외식을 하는 팀도 간혹 눈에 띈다. 그래서 더욱 시끌벅적하고 화기애애하다.
새로운 주점이 우후죽순 계속 생겨나는 통에 서로간의 경쟁도 치열하다.
맛 경쟁,가격 경쟁에 이어 물량 공세도 만만찮다.
새로 개업한 주점은 대나무통술을 공짜로 내는데다가 안주 한 접시를 덤으로 제공하는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주점골목 입구 왼편으로 아주 작은 골목이 하나 있다.
좋은 사람과 어깨동무하고 가면 골목이 꽉 차는 좁은 곳. 이곳이 싸구려 밥집골목이다.
이곳의 밥값은 2천500원이 넘지 않는다.
생겨난 지는 공구골목의 역사와 함께 했으니 한 40~50년 정도 된다.
최근 들어 밥집이 더 늘어 20여 미터 골목에 10여 집이 들어앉았다.
이 골목의 밥값은 너무나 착하다.
소고기국밥,돼지국밥,사골국밥 등이 2천원이다.
국수 1천300원,비빔밥은 1천500원이다.
일반 정식과 된장찌개,순두부찌개는 2천원,돼지불백과 돌솥비빔밥 등이 제일 비싼 2천500원이다.
가격이 싸다고 맛이 없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골목의 역사가 맛을 증명한다.
필자의 단골만도 두 곳이나 된다.
개발 시절 산업화의 물결을 타고,'서면시대'를 선도했던 부산 산업의 한 축,서면 공구골목.
이들의 서면에서의 시대적 소임은 이제 점점 소멸되어 가고 있다.
새로운 변화에 수긍하며 이 골목은 한창 리모델링이 진행 중인 것이다.
이들의 '노고와 희생의 아름다운 퇴진'에,감사의 마음과 함께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낸다.
최원준·시인 cowej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