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되라] 개신교계에서 이단시하는 교파들 – 여호와의 증인
여호와의 증인은 1852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 앨러게이니에서 태어난 잡화상인 러셀(Charles Taze Russel, 1852-1916년)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러셀은 20세에 장로교회를 떠나 안식교의 영향을 받고 1872년 만국 성서연구회를 만들어 성서 연구에 몰두 하였습니다. 그는 1877년 성서를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미 1874년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재림했다고 주장했는데, 그 후에 재림 연도를 1914년으로 바꾸었습니다.
1916년 러셀이 사망하고, 1917년 워치타워 협회 법률고문이었던 조셉 러더퍼드(1869-1942년)가 후임자로 취임했습니다. 그는 여호와의 증인 본부를 뉴욕 브룩클린에 두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병역을 거부하고 국가와 국법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것은 러더퍼드가 신도들에게 인간들이 만든 것은 모두 마귀의 짓이라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1931년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서 총회가 열렸는데 이때 교파명을 ‘여호와의 증인’(이사 43,10; 44,8)으로 정했습니다. 1940년부터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그들의 간행물인 〈워치타워〉와 〈파수대〉를 들고 집마다 방문하여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러더퍼드가 1942년에 사망하자 3대 회장으로 나단 크노르가 취임한 후 성서를 그들 교회에 맞추어 번역한 ‘새 세계 번역’을 펴냈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은 이 번역만을 올바른 성서라고 주장합니다. 1950년에 신약이 번역되었고, 10년에 걸쳐 구약을 완성하고 1961년 합본으로 만들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 한국에 들어 온 때는 1912년으로 홀리스트 선교사가 입국하여 문서 전도를 시작했는데, 1949년 스틸 선교사 부부가 내한함으로써 본격적인 선교 활동이 전개되었습니다. 한국에는 약 10만 명이 조금 넘는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월 2회 발행되는 〈파수대〉, 〈깨어라〉를 들고 노상이나 호별 방문을 통하여 전도하고 있습니다. 1950년에 병역 거부, 국기 경례 거부, 수혈 거부 등으로 많은 문제를 일으켰고 이 문제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은 예수님이 하느님이 아니시며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첫 번째 피조물로서 우주 창조의 중보자 역할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맏아들이지 절대로 하느님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들은 삼위일체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매주 5시간 왕국회관 모임에 참석하고 호별 방문을 해야 합니다. 그들은 보통 2인 1조가 되어 각 가정과 직장 사무실을 방문하여 성서를 펼쳐 보이며 〈파수대〉와 〈깨어라> 등의 각종 소책자를 사보도록 강요합니다.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 90%가 그리스도교에서 넘어간 이들인데, 그들은 개신교 신자들보다 성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가톨릭 신자들을 주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2023년 9월 17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이동 원주주보 들빛 4면, 유충희 대철베드로 신부(둔내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