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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순례] [13] 취병(翠屛)궁궐 담장의 기본은 사괴석(四塊石·벽이나 담을 쌓는 데 쓰는 육면체의 돌) 기와돌담이다. 네모난 화강석을 가지런히 쌓고 석회로 줄눈을 넣어 반듯하게 마감하고는 그 위에 기와를 얹은 것이다. 이 사괴석 기와돌담은 보기에도 위엄과 품위가 있어 궁궐 바깥 담장으로는 제격이지만, 생활공간의 안 담장으로는 너무 무거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 궁궐 곳곳에는 벽돌담장, 꽃담장 또는 허튼 돌을 조각보 맞추듯 이어 쌓은 '콩떡 담장'이 배치되어 있다. 궁궐의 이런 여러 담장 중에는 취병(翠屛)이라는 일종의 생울타리(살아있는 나무를 심어 만든 울타리)도 있었다. 취병은 시누대를 시렁으로 엮어 나지막이 두르고 그 안에 키 작은 나무나 덩굴식물을 올려 여름에는 푸름으로 가득하고 겨울에는 얼기설기 엮은 대나무가 그대로 담장 구실을 한다. 이러한 취병은 서양에도 있어 장미넝쿨 생울 같은 꽃담(floral screen)을 '트렐리스(trellis)'라고 부르고 있다. 취병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를 중요한 미적 덕목으로 삼은 우리 옛 건축에 더없이 잘 들어맞는 형식이었다. 200년 전 창덕궁과 창경궁의 모습을 그린 〈동궐도(東闕圖)〉에는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취병이 18곳이나 그려져 있다. 대개는 건물의 뒷담과 정자 주변에 둘러져 있는데 너른 마당을 낀 대문 앞에 가로지른 헛담으로 친 것도 있다. 조선후기 백과사전이라 할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취병 설치하는 법이 자세히 나와 있다. "버들고리를 격자(格子)모양으로 엮어서 그 속을 기름진 흙으로 메운 다음 패랭이꽃이나 범부채와 같이 줄기가 짧고 아름다운 야생화를 심으면 꽃피는 계절엔 오색이 현란한 비단병풍처럼 된다." 그러나 취병은 잘 돌보지 않으면 금세 풀덩이가 되거나 시누대가 쓰러져 버리고 만다. 조선왕조가 막을 내리고 궁궐의 전각들이 텅 비게 되면서 그 많던 취병은 모두 사라졌고 끝내는 취병이라는 아름다운 건축 조경 양식의 맥마저 끊어져 버리고 말았다. 창덕궁관리소는 작년에 이 취병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부용정과 규장각 사이의 꽃계단[花階]에 〈동궐도〉 그림대로 취병을 설치했다고 한다. 이로써 우리는 비로소 취병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모두들 틈 내어 한번 구경가 볼 만한 일이다. 유홍준 명지대 교수·미술사 사라진 한국 전통미(美)인 ‘살아 있는 명품 담’ 창덕궁 취병(翠屛)이 100여 년 만에 복원됐다. 복원은 1820년대에 그려진 '동궐도'(국보 제249호)의 취병 모습과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의 취병 제작 기법을 토대로 이뤄졌다.
대나무를 엮어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작은 나무나 넝쿨식물을 올리는 '친환경 담'으로 덕궁 후원 같은 궁궐, 상류층의 정원에 사용됐다.취병은 식물을 소재로 한 산(生)울타리와 울타리의 복합형태이며 내부가 보이는 것을 막아주는 가림막 역할과 공간을 분할하는 담의 기능을 하면서 그 공간을 깊고 아늑하게 만들어 생기가 나게 하는 아름다움이 있다.
자연과 건축의 어울림을 추구한 한국 전통 정원의 백미이지만, 정성껏 관리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어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사라졌다. 역사와 함께 사라진 전통조경기법의 현대적 시도를 통해 주합루와 부용지 권역의 한국적 아름다움은 한층 배가될 것이며 조선시대 상류층이 보고 즐겼던 명품 담을 국민 모두가 즐길 수 있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취병은 시의 소재로도 쓰였다. 율곡 이이의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중 제4연 '취병'에는 '취병에 닙(잎) 퍼졌다'는 구절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