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서 옮겼습니다 .
판독자: 『금석문 탁본 조사보고서(2019)』
전액 :
孝子豊山洪此竒碑
전면 :
洪姓童子名此竒(奇의 俗字)父曰寅輔文法罹月三栲㮄(榜의 이체자)肉中悲兒方口食聖得知叫呼宛轉輒如期母訟父冤走京師淚枯血盡 命之衰視不受含旅復夜兒乃飄然不父辭撾鼓經季守 天扉蓬髮繭足觀者噫或與之餌去虱蟣會歲大旱慮 囚疑貴臣爲言 王曰咨飭令本道淸單辭兒不量力 爲奔馳驛往驛回皆先之未至三舍病已危匍匐詣 闕 冀聖慈恩言纔降氣一絲㮄(傍의 本字)人讀聽倐躍而父兮父兮 生矣㢤已而瞑目遂大歸方父入獄兒在胚比父出獄兒 在輀十四季間天實爲如憫衰俗俾扶持吁嗟人式其在斯
上之十九季乙卯十月資憲大
資憲大夫行忠州牧使驪興李家煥撰並書
후면 :
乃父銘之曰母兮子兮呼籲守 闕 活夫活父天降孝烈世無聞矣始對 短碣是誰之力錦帶下恤德若山高 恩如海
濶乃父之心與碑共屹 舍弟集浩謹書 塚在 祖父校理公墓下
판독자 : 최진욱
孝子豐山洪此竒碑
洪姓童子名此竒父曰寅輔文法罹月三栲㮄肉中悲兒方口食聖得知叫呼宛轉輒如期母訟父冤走京師淚枯血盡命之衰視不受含旅復夜兒乃飄然不父辭撾鼓經季守天扉蓬髮繭足觀者噫或與之餌去虱蟣會歲大旱慮囚疑貴臣爲言 王曰咨飭令本道清單辭兒不量力
爲奔馳驛往驛回皆先之未至三舍病已危匍匐詣 闕
冀聖慈恩言纔降氣一絲傍人讀聽倐躍而父兮父兮
生矣㢤已而瞑目遂大歸方父入獄兒在胚比父出獄兒
在輀十四季間天實爲如憫衰俗俾扶持吁嗟人式其在斯
上之十九季乙卯十月 日
資憲大夫行忠州牧使驪興李家煥撰並書
乃父銘之曰母兮子兮呼願守 闕
活夫活父天降孝烈世無聞矣始
短碣是誰之力錦帶下恤德若山高
恩如海濶乃父之心與碑共屹
舍弟集浩謹書
塚在 祖父校理公墓下
<표점>
《孝子 豊山 洪此奇碑》
前面:
洪姓童子, 名此奇。父曰寅輔, 文法罹月, 三栲榜肉中。悲兒方口食聖, 得知叫呼, 宛轉輒如期。
母訟父冤走京師, 淚枯血盡命之衰。視不受含, 旅復夜。兒乃飄然不父辭, 撾鼓經季, 守天扉。蓬髮繭足, 觀者噫。
或與之餌, 去虱蟣。會歲大旱, 慮囚疑。貴臣爲言, 王曰: "咨!" 飭令本道淸單辭。
兒不量力爲奔馳, 驛往驛回皆先之。未至三舍, 病已危。匍匐詣闕冀聖慈, 恩言纔降, 氣一絲。
榜人讀聽倐躍而: "父兮! 父兮! 生矣哉!" 已而瞑目, 遂大歸。
方父入獄, 兒在胚; 比父出獄, 兒在輀。十四季間, 天實爲。如憫衰俗, 俾扶持。吁嗟! 人式其在斯。
上之十九季乙卯十月, 資憲大夫行忠州牧使, 驪興李家煥撰並書。
後面:
乃父銘之曰:
"母兮子兮, 呼籲守闕。活夫活父, 天降孝烈。 世無聞矣, 始對短碣。是誰之力? 錦帶下恤。 德若山高, 恩如海濶。乃父之心, 與碑共屹。"
舍弟集浩謹書。
塚在祖父校理公墓下。
<전혜경 해석문>
효자풍산홍차기비(孝子豊山洪此奇碑)
홍씨(洪氏)성의 동자는 이름이 차기(此奇)요, 아버지는 인보(寅輔)인데 법에 걸려 한달에 세 번 곤장을 맞아서 살 속이 터질 정도였는데 아이가 막 밥을 먹다가도 용하게 알고 부르짖으며 뒹구르니 마치 약속한 듯 하였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원통함을 호소하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눈물이 마르고 피가 다하여 목숨이 쇠약해지더니 마음속 응어리가 받아들여지는 것을 눈으로 보지 못하고 객지에서 죽어 돌아 왔다. 아이가 이에 표연히 아버지에게 하직 인사도 하지 않고 몰래 올라가 신문고를 울리고 여러 해 동안 대궐 문을 지키고 있었다. 봉두난발을 하고 다리에는 굳은살이 박이니 보는 사람들이 탄식하고 혹은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머리의 이와 서캐를 잡아 주기도 하였다. 이 해에 큰 가뭄을 만나 혹시 죄가 의심스러운 죄수가 있을 까 걱정하였는데 대신이 이를 말하자 왕은 “아! 본도에 명령을 내려 증거가 없는 말인지 깨끗하게 살피라.”고 하셨다. 아이는 자기 힘을 헤아리지도 않고 분전히 다니며 역마가 갈 때나 역마가 올 때나 모두 앞장을 섰는데 90리도 이르기 전에 병이 이미 위독한 상태였으나 기어서 대궐에 나아가 임금의 자비를 구하였다. 은혜로운 말씀이 비로소 내려왔지만 기운은 실날과 같았다. 옆에 있는 사람이 읽어주니 듣고서 갑자기 벌떡 일어나며 “아버지! 아버지! 살게 되었습니다.”라 하고는 잠시 후 눈을 감고 마침내 죽고 말았다. 아버지가 옥에 들어갈 때 아이는 태중에 있었고 아버지가 옥에서 나옴에 이르러서는 아이가 상여에 있었다. 14년간 하늘이 실로 쇠퇴한 풍속을 안타깝게 여겨 그로 하여금 붙잡아 지탱하도록 한 것이니 아! 슬프구나, 사람의 모범이 여기에 있도다.
지금 임금(정조) 19년 을묘(1795년) 10월 일 자헌대부 행 충주목사 여흥(驪興) 이가환(李家煥)이 글을 짓고 쓰다.
아버지가 명(銘)하기를,
그 어머니와 그 아들이여, 대궐문을 지키고 호소하여 남편을 살리고 아버지를 살렸으니 하늘이 열녀와 효자를 내려 보냈구나.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되 비로소 작은 비석을 세우니 이 누구의 힘인가? 금대(錦帶 : 이가환의 호)가 아랫사람을 돌보아 주셨구나. 덕은 산처럼 높고 은혜는 바다처럼 넓어라. 네 아비의 마음은 비석과 함께 우뚝하리라.
동생 집호(集浩)는 삼가 쓴다.
묘는 조부인 교리공(校理公)의 묘아래에 있다.
<번역문>
[전면]
홍씨(洪氏) 성을 가진 어린아이의 이름은 차기(此奇)요, 아버지는 인보(寅輔)라 하였다. 아버지가 법에 저촉되어 다달이 세 차례나 국문을 당하며 형틀 아래 살점이 찢겨 나갔다.
아이가 밥을 먹다가도 옥에서 아버지가 부르짖는 때를 기막히게(聖) 알아채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굴리며 슬피 울었다.
어머니는 남편의 원통함을 하소연하고자 한양(京師)으로 달려갔으나, 눈물이 마르고 피가 말라 목숨이 쇠하여졌다. 죽어 염습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타향의 밤을 맞아 홀연 세상을 떠났다.
아이는 이에 홀연히 아버지에게 작별을 고하지도 못한 채, 신문고를 치며 수년 동안 대궐 문을 지켰다. 쑥대밭 같은 머리와 부르튼 발을 보며 구경하는 이들이 탄식을 금치 못하였다. 혹 어떤 이는 먹을 것을 주기도 하고 이와 서캐를 잡아주기도 하였다.
마침 그해에 큰 가뭄이 들자 의심스러운 죄수를 재심리(慮囚)하게 되었는데, 한 귀한 신하가 임금께 아뢰니 임금께서 이르시기를, "아아!" 하시고 본도(충청도)에 명하여 단서와 진술을 명확히 조사하도록 하셨다.
아이는 제 힘을 가늠하지 못하고 오로지 달리며, 역과 역을 왕래함에 항상 남보다 앞섰다. 그러나 한양을 서른 리(三舍) 남겨둔 곳에서 병이 이미 위독해졌다.
그래도 기어이 대궐로 나아가 성상의 자애로우심을 바라니, 은혜로운 말씀이 겨우 내렸을 때는 숨이 실낱같았다. 곁에 있던 사람이 판결을 읽어주는 것을 듣자마자 펄쩍 뛰어오르며, "아버지! 아버지! 살아나셨구나!" 하고는, 이내 눈을 감고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처음 아버지가 옥에 갇힐 때 아이는 태중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옥에서 나올 때 아이는 상여(輀) 위에 있었다.
십사 년(14년)의 세월 동안 하늘이 참으로 한 일이었으니, 쇠퇴해가는 세상의 풍속을 안타깝게 여겨 아이로 하여금 이를 부지하고 지탱하게 한 것인가! 아아! 사람이 본받아야 할 모범이 바로 여기에 있도다.
주상(正祖) 19년 을묘(1795년) 10월,
자헌대부 행 충주목사 여흥 이가환(李家煥)이 글을 짓고 또 쓰다.
[후면]
그 아버지가 명(銘)을 짓기를,
"어머니와 자식이여, 대궐 문을 지키며 울부짖었네. 지아비를 살리고 아버지를 살렸으니, 하늘이 내리신 효열(孝烈)이로다.
세상에 듣도 보도 못한 일이니, 비로서 이 조그만 돌비석을 대하도다. 이 뉘 힘이었던가? 금대(錦帶, 이가환의 호)께서 아래를 굽어살펴주신 덕분이로다.
덕은 산처럼 높고, 은혜는 바다처럼 넓도다. 이 아버지의 마음은, 이 비석과 더불어 영원히 함께 우뚝 서 있으리."
아우 집호(集浩)가 삼가 쓰다.
무덤은 할아버지 교리공(校理公) 묘 아래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