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매기살
'갈매기고기의 '갈매기'는
'횡격막'의 뜻
한 여남은 해 전의 일이다.
퇴근을 하고 현관을 막 나섰는데, 누가 어깨를 툭 쳤다.
"아, 배선생. 오랜만요."
돌아보니, 옛날의 출판사 있을 때 한 사무실에 있었던 친구가 아니던가? 너무나 반가워서 우리 둘은 우선
근처의 다방엘 들어가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었다. 옛 얘기로 조금 시간을 보내다보니 저녁 시간도 늦고 해서 식사나 같이 하자며 밖으로 나왔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마포 거리는 꽤 붐볐다. 어느 것으로 배를 채울까 하다가 내가 제안을
했다.
"이 동넨 갈매기고기 유명한데, 그것 괜찮을까?"
이 소리에 친구의 눈이 둥그래졌다.
"뭐? 갈매기고기? 갈매기의 고기로 만든 요린가?"
이 친구는 '갈매기고기'라니까 이것을 새 종류의 갈매기로 만든 고기로 알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이
고기를 접해 보지 못했던 사람 중에는 이 친구처럼 생각했던 이가 적지 않았다.
□ 갈매기의 고기로 안 사람 많아
요즘에 와서도 새로운 음식들이 많이 나오고, 그에 따라 이름들도 생소한 것이 많아졌다.
'갈매기'라는 것도 그 중의 하나다. 언뜻 들으면 이 이름은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로 알아듣기가
아주 쉽다. '갈매기고기'는 분명히 갈매기의 고기이고, 그 '갈매기'라면 대개 물새 중의 갈매기를 연상치 않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갈매기고기를 거의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가 되었다. 요즘에 와서는 이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도 꽤 많이 늘어났다. 서울의 마포나 성남시 여수동 일대에 이러한 음식점들이 꽤 많은데, 이들 음식점에는 저마다 자기네가
처음 시작한 것이라는 듯 '갈매기 본토', '갈매기 원조' 등의 이름을 달고 손님들을 끌고 있다.
그런데, '갈매기'의 고기도 아닌데, 어떻게 '갈매기고기'인가?
사람이나 모든 짐승들에겐 몸 속에 횡격막(橫膈膜)이란 것이 있다. 숨을 쉴 때 허파를 죄었다 풀었다
하면서 숨쉬기운동(호흡작용)을 돕는 적당한 두께의 힘살막이다.
이 힘살막을 토박이말로는 '갈막이' 또는 '간마기'라 했다. '갈마기'는 허파 아래쪽에 가로지른 막이라
해서 원래 '가로막이'라고 했던 것이 변한 말이고, '간막이'는 간의 아래쪽을 막고 있다고 해서 된 말이다. 일부 지방에선 '간매기'라고도
했다.
'가로마기'는 '갈막이(갈마기)'로 줄고, 이것은 다시 '갈매기'로도 옮겨갔다.
□ 원래의 말은 '가로막'이었고
약 20년 전까지도 초등학교나 중학교의 자연과 생물 교과서에 인체 내부의 그림에서 이 막(횡격막)이
'가로막'으로 표기돼 있었다. 그런데, 그 후 언제부터인지 이 말이 슬그머니 교과서에서 빠지고 '횡격막'으로 옮겨 갔다.
'갈매기'는 다음과 같은 과정으로 정착된 말이다.
가로막이(가로마기)>갈마기>갈매기
그 갈매기(횡격막)의 살이 바로 '갈매기살'이고, 갈매기살로 요리한 고기가 바로 '갈매기고기'인데,
문제는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연상케 돼서 이름에 혼동을 안겨 주는 점이다.
사실, 횡격막이란 말도 한자 뜻 그대로 풀면 '가로질러 막은 막'의 뜻이니 '가로막'이란 말은 누가
보아도 그 구실에 잘 어울리는 말이라 할 수가 있다.
'갈매기살'이라고 하면 대개는 돼지의 가로막(횡격막) 살로 통한다. '갈매기고기'라고 해도 역시 돼지
가로막의 살로 요리한 고기로 안다. 그만큼 돼지의 가로막 살은 요리로 주로 이용된다.
예전에는 갈매기고기란 것이 없었다. 도살장에서 이 부위는 따로 처리되어 짐승의 먹이 정도로나 씌었다고
한다. 돼지 한 마리에서 이 부위는 4kg 정도밖에 나오지 않는 데다가 그나마 질깃질깃한 껍질로 덮여 있어 요리가 되리라고 생각질 않았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 여남은 해 전에 누군가가 그 힘살막의 얇은 막을 벗겨 양념에 절여 불판에 구워
'갈매기살구이'라는 요리로 개발했는데, 맛이 괜찮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면서 이 음식은 날로 인기를 더해 갔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가로막'은 '가로'와 '막'이 합쳐져 이루어진 말이다.
'가로'라는 말은 '갈'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의 말에 '갈래', '가락', '갈림길' 등의 말이 모두
이 '갈'에서 나온 것이다. 이 말은 원래 '옆으로 가닥져 나온'의 뜻을 가진 말이었다. '갈'은 그 조어(祖語)가 '갇'이다. 그래서
'가닥', '가다귀' 같은 말이 나왔다. '가다귀'는 참나무 따위의 잔 가지이다. 지금의 '가지(나뭇가지)'란 말도 원래는 '갇'에
'-이'(접미사)가 붙어서된 '갇이'이다.
갇+이=갇이>가디>가지
따라서, 횡격막의 순 우리말인 '가로막'도 알고 보면 '갇'이 그 뿌리랄 수 있다.
이 말은 뒤에 꼭 '떼다'란 말이 따르는 말이다. 따라서, '시치미를 한다'든지,'시치미를 간다'든지
하는 말은 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