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黑)과 백(白)
얼마 전에 읽은 흑산(黑山)(김훈 著)에서 흑은 고통이며 박해의 악이었다. 그러면 백은 선으로 승리이며 평화가 아닐까? 흑과 백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생각이다. 세계 대전에서 일본의 패망과 죽음이 세계의 평화를 가져오게 했다.
옛 어린 시절이 뇌리를 스친다. ‘보리밭 사잇길로 걸어가면….’ 요즘 보리밭을 보기가 무척 어렵다. 우리가 어릴 때만 하더라도 밭에는 보리농사가 주류를 이루었으며 주식이 보리밥이었다. 보릿고개라는 말도 있어 춘궁기로 초근목피로 주린 배를 채우던 옛 시절이었다.
그때는 쌀밥을 한 번 배불리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다. 완전 꽁보리밥이었다. 언감생심 쌀밥은커녕 보리밥도 배불리 못 먹던 시절이었다. 쌀농사도 짓기는 했지만, 자식들의 뒷바라지 밑천으로 쌀을 시장에 팔아서 돈을 마련하여 학비며, 생활비로 충당했다.
며칠 전 인근 길을 가다 보리밭을 지나는데 깜부기가 더러 보였으며 옛 추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 하굣길에 보리밭을 지나며 그 무리 중에 줄기와 이삭이 까맣게 변한 보리를 보게 되었다. 그것을 뽑아 친구의 얼굴에 분장하며 깜부기라 놀리며 장난치곤 했었다. 깜부기는 알고 보니 보리 중에 나약하여 병에 걸린 이삭으로 말라 죽은 것이었다.
히브리 경전에 ‘깜부깃병’이라는 말이 다섯 군데 나온다. 이는 그들 신이 내리시는 재앙과 관련된 말이다. 히브리어로 깜부기는 ‘창백하다’의 의미로 깜부깃병으로 곡식이 말라 병들어 죽는 것으로 사람이 병들어 창백한 얼굴에 빗댄 표현이다. 그들의 질병은 죄로 말미암아 신이 내린 저주의 벌로 간주했으며 무리에서 격리되었다.
깜부기는 얼굴빛이 남달리 까만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황인종으로 황갈색의 얼굴인데 볕에 그을려 새까맣게 탄 사람을 빗대어 부르기도 하며, 그는 우리와 같은 민족이 아니라는 멸시하며 놀려대는 말이다. 어릴 때 친구 간에 유달리 얼굴빛이 검은 아이를 ‘깜부’라고 하며 놀려대기도 했었다.
지금 시대는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다문화 시대에 살고 있다. 민족의 고유성을 초월하여 다변화하고 있다. 그래서 ‘깜부’가 상대를 놀리는 장난의 말이 아니라, 상대를 멸시하는 수준 낮은 말로 욕이 될 수도 있다. 별명도 듣기 좋은 말이 있고 상대의 마음을 거슬리게 하는 말이 있으니 말이다.
흑은 부정적이며 죄와 죽음을, 백은 기쁨과 부활을 상징한다. 어릴 때 깜부기를 뽑아 상대의 얼굴에 서로 칠해주며 장난치며 놀았던 시절이 그립고 그 친구들이 보고 싶기도 하다. 보리밭을 지나다 만난 깜부기가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다니 격세지감이다. 흑과 백의 의미를 마음의 곳간에 다듬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