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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林歷史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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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역사기행 후기방 탑을 향해 공양올리는 약왕보살(藥王菩薩) ㅡ 평창 오대산 월정사 석조보살좌상<복제>
浮雲 추천 0 조회 7 26.08.27 03:42 댓글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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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6.08.27 04:05 새글

    첫댓글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바로 앞에는 오른쪽 무릎을 꿇고 공양을 올리는 형상의 석조보살좌상(국보)이 놓여 있었다. 현재 진픔은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며 탑 앞에는 복제품(리플리카)이 놓여있다.

  • 26.08.27 04:05 새글

    탑과 보살상이 하나의 예배 세트를 이루는 독특한 구도로, 붓다의 사리를 모신 탑에 공양을 올리는 숭고한 신앙적 행위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최고 수준의 석조 조각이다.

  • 26.08.27 04:05 새글

    석조보살좌상의 정확한 존명은 약왕보살(藥王菩薩)로 추정하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며, 학계 및 사찰에서는 석조약왕보살좌상으로 불린다.

  • 26.08.27 04:05 새글

    《법화경(法華經)》 약왕보살본사품에 따르면, 약왕보살은 부처님의 사리탑에 자신의 몸과 팔을 불살라 공양(소비공양)을 올릴 정도로 지극 정성으로 사리탑을 예배한 보살이다. 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공양을 올리는 이 석상의 독특한 자세(공양상)가 이러한 법화경 속 약왕보살의 사리탑 공양 장면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 26.08.27 04:06 새글

    오대산이 문수보살의 성지라는 점에서 문수보살로 보거나,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약왕보살 신앙과의 연관성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사리탑에 공양을 올리는 도상적(圖像的) 특징 때문에 학계에서는 약왕보살이라는 명칭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 26.08.27 04:06 새글

    약왕보살(藥王菩薩, Bhaisajyarāja)은 불교에서 중생의 신체적 질병은 물론 마음의 번뇌와 무명(無明)이라는 근본적 병까지 고쳐주는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치료·치유의 보살이다.

  • 26.08.27 04:06 새글

    《법화경(法華經)》 '약왕보살본사품'은 약왕보살의 신앙적 정체성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경전이다. 전생에 '일체중생喜見보살'이었을 때, 부처님과 법화경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자신의 몸에 향유를 바르고 불을 붙여 공양을 올리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을 바쳤다.

  • 26.08.27 04:06 새글

    소신공양 이후 다시 태어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에 자신의 팔을 불살라 공양을 올렸는데, 이 신심에 감동한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팔이 다시 원상복구되었다고 한다.

  • 26.08.27 04:06 새글

    보통 아미타불이나 석가모니불의 좌우 협시보살로 등장할 때 동생인 약상보살(藥上菩薩)과 쌍을 이루어 함께 나타난다.

  • 26.08.27 04:07 새글

    약왕보살의 도상적 특징은 손에 약병(藥壺), 약풀(藥草), 혹은 불사리를 담은 은혜의 용기나 연꽃같은 ​지물(持物)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주로 묘사된다.

  • 26.08.27 04:07 새글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처럼 사리탑 바로 앞에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탑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는 《법화경》 속 약왕보살의 사리탑 공양 장면을 가장 완벽하게 형상화한 독특한 한국적 도상이다.

  • 26.08.27 04:07 새글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부처(전각의 본존)'로서, 주로 왼손에 약단지(약병)를 들고 좌상이나 입상으로 독립하여 모셔진다 .​약왕보살은 부처님의 가르침과 사리를 수호하고 보살피며 중생을 치유하는 '보살(협시 또는 공양자)'로서, 탑을 향해 공양을 올리거나 부처님 옆에서 중생의 구원을 돕는 역할을 한다.

  • 26.08.27 04:07 새글

    약왕보살은 단순한 의료의 의인화를 넘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진리를 위해 바치는 극진한 헌신(소신공양)과 치유를 동시에 상징하는 보살이다.

  • 26.08.27 04:07 새글

    보살좌상을 팔각구층석탑과 함께 고려 현종 13년(1022년)경을 전후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 26.08.27 04:08 새글

    1022년은 고려가 거란의 침입(3차 거란 전쟁)을 물리치고 국가적 안정을 되찾아가던 시기이다. 이에 따라 고려 왕실과 오대산 불교 세력이 국태민안(國泰民安)과 평화를 기원하며 대대적으로 사찰을 중창하고 팔각구층석탑과 석조보살좌상을 세운 것으로 확인되었다.

  • 26.08.27 04:08 새글

    거란과의 혹독한 전쟁(1018~1019년 강감찬의 귀주대첩)을 치러낸 직후, 국가의 안녕과 전쟁 희생자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고려 왕실과 오대산의 고승(대덕)들이 주도하여 탑을 세우고 약왕보살을 안치했음을 보여준다.

  • 26.08.27 04:08 새글

    약왕보살의 제작배경도 같은 맥락으로 석탑과 완전한 한 쌍(세트)으로 제작되었다.

  • 26.08.27 04:08 새글

    석탑 정밀 해체·보수 과정에서 석탑 기단부와 보살상이 앉아 있는 대좌(하대석)의 석재 재질, 조각 기법, 지대석의 연결 구조가 완벽히 일치함이 확인되었다. 즉, 보살상은 탑을 다 세운 뒤 나중에 가져다 놓은 것이 아니라 1022년(고려 현종 13년) 석탑을 건립할 때 처음부터 석탑의 일부로서 함께 구상되고 조각된 것이다.

  • 26.08.27 04:08 새글

    《법화경》 '약왕보살본사품'에서 약왕보살이 부처님의 사리탑에 자신의 몸을 바쳐 극진히 공양했던 것처럼, 고려 왕실과 오대산 승려들은 거란 전쟁의 참화를 씻고 사리를 봉안한 탑(1022년 건립)을 향해 약왕보살이 영원히 공양을 올리는 형태를 석조 미술로 구현해 낸 것이다.

  • 26.08.27 04:09 새글

    참혹했던 2·3차 거란 전쟁 직후였던 만큼, 중생의 병과 고통을 고쳐주는 약왕보살의 치유 상징성은 전쟁으로 상처받은 고려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데 가장 절실했던 시대적 염원과도 일치한다.

  • 26.08.27 04:09 새글

    월정사 팔각구층석탑과 약왕보살상은 현종 대 고려인들이 시련을 이겨내고 올린 가장 뜨겁고 아름다운 맹세이자 하나의 완벽한 불교 미술 작품인 셈이다.

  • 26.08.27 04:09 새글

    힘든 세월을 견뎌낸 현종과 고러인들이 이 탑과 보살상을 세우고 많은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 26.08.27 04:09 새글

    거란의 침입으로 도성이 잿더미가 되고 나주까지 먼 피난길을 떠나야 했던 청년 군주 현종, 그리고 초목처럼 짓밟히면서도 삶을 견뎌내야 했던 고려의 백성들. 전쟁이 끝난 직후 세워진 이 거대한 팔각석탑과 그 앞의 보살상은 단순한 돌조각이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의 눈물과 피땀을 닦아주는 거대한 위로의 안식처였다.

  • 26.08.27 04:09 새글

    탑 앞에 몸을 숙이고 손을 모은 약왕보살의 모습은, 곧 "이제는 참혹한 전쟁 없이 나라와 가족이 평안하기를" 간절히 빌었던 현종과 고려 백성들 자신의 모습이었다.

  • 26.08.27 04:09 새글

    자신을 불살라 공양을 올리고 마침내 치유를 얻은 약왕보살처럼, 전쟁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산하와 중생의 삶도 다시 피어나리라는 희망을 석탑과 보살상에 담았던 것이다.

  • 26.08.27 04:10 새글

    강릉의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역시 이 월정사 보살상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석탑 앞에 무릎을 꿇고 있어, 고려 시대 강원도 영동 지역에서 크게 유행했던 '탑 - 약왕보살 공양상' 배치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 26.08.27 04:10 새글

    머리에 높다란 원통형 보관을 쓰고 있으며, 통통한 뺨과 살포시 머금은 미소, 화려한 장신구 표현이 월정사 석조보살좌상과 대단히 유사하다.

  • 26.08.27 04:10 새글

    화강암이 주를 이루는 한국 석조각에서 드물게 부드러운 대리석(또는 백색 사암계 석재)으로 조각되어, 피부와 옷주름의 표현이 매우 유연하고 우아하다.

  • 26.08.27 04:10 새글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국보) 역시 월정사·신복사지 보살상과 동일한 '고려 전기 강원도 영동 지역의 석조 공양보살상 계통'에 속한다.

  • 26.08.27 04:11 새글

    한송사지 보살상 역시 사찰의 중심에 위치한 불탑이나 본존불을 향해 공양을 올리는 도상적 역할을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 26.08.27 04:11 새글

    다만 월정사와 신복사지의 보살좌상은 석탑 바로 앞에 오른쪽 무릎을 꿇은 자세(공양 자세)로 배치된 가장 완벽한 공양상인데, 한송사터 보살솨상 무릎을 꿇은 대신 한쪽 다리를 얹은 편안한 자세(유희좌/편좌)를 취하고 있어 양식과 조형미는 월정사·신복사상과 완벽히 동궤를 이루고 있다.

  • 26.08.27 04:11 새글

    고려 전기 오대산과 대관령 너머 강릉(명주)을 중심으로 한 영동 지역에서는 화엄·법화 신앙과 결합하여 탑 앞에 정교하고 우아한 석조보살상을 배치하는 독창적인 미술 유행했다. '영동 지역 석조보살상 파'를 형성한 것이다.

  • 26.08.27 04:11 새글

    한송사지 보살상, 월정사 보살상, 신복사지 보살상은 모두 고려 시대 영동 지역 호족 및 왕실의 후원 속에서 탄생한 동일한 학파·계통의 명작들이다.

  • 26.08.27 04:11 새글

    세 보살상은 모두 높은 원통형 보관, 살집이 있는 푸근한 얼굴, 섬세한 장신구 표현 등 동일한 양식적 계통을 공유하지만, 자세(도상)*와 석재, 상세 표현 기법에서 명확한 차이점을 가진다.

  • 26.08.27 04:12 새글

    월정사 석조보살좌상은 오른쪽 무릎은 땅에 대고 왼쪽 무릎은 세운 공양 자세(착좌/공양상)이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무엇인가(향로나 연꽃)를 쥐고 팔각구층석탑을 간절히 지그시 바라보는 구도이다.

  • 26.08.27 04:12 새글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도 월정사 보살상과 동일하게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세운 삼층석탑을 향해 무릎을 꿇고 공양을 올리는 자세이다. 월정사 상에 비해 몸을 앞으로 약간 더 숙여 한층 엎드린 듯한 신심을 표현했다.

  • 26.08.27 04:12 새글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은 두 보살상과 달리 한쪽 다리를 가부좌하고 다른 쪽 다리를 세우거나 편안하게 내린 유희좌(遊戲座) 내지 편좌(偏座) 형태이다. 탑에 직접 바짝 다가앉은 직전 공양상이라기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고 풍류가 느껴지는 편안한 자세이다.

  • 26.08.27 04:12 새글

    월정사 보살은 높고 웅장한 원통형 보관, 가슴에 화려한 영락(목걸이) 장식을 하였고, 원숙하고 깊은 삼매에 빠진 듯한 미소를 띠고 있다

  • 26.08.27 04:12 새글

    신복사지 보살상은 보관의 두께감이 두텁고, 다소 투박하지만 향토적인 정감을 표현했다. 둥글둥글하고 정겨운 시골 어머니·보살 같은 인상이다.

  • 26.08.27 04:12 새글

    한송사지 보살상은 보관과 귀걸이, 목걸이의 세공이 가장 정교하며 고려 귀족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미소가 매우 온화하고 현대적인 감각이 느껴질 정도로 세련된 얼굴이다.

  • 26.08.27 04:13 새글

    위치 및 성격을 비교해 보면
    ​월정사와 신복사지 보살상은 석탑과의 세트 구성이 완전하게 입증된 사례로 탑 바로 앞 기단부에 착석하여 '석탑(사리탑)에 공양을 올리는 약왕보살'의 도상을 극적으로 완성했다.

  • 26.08.27 04:13 새글

    한송사지 보살상은 사찰 터의 본존불이나 석탑 앞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독립된 조각으로서의 완성도가 매우 높아 고려 왕실 및 강릉 지역 최고 호족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제작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26.08.27 04:13 새글

    세 보살상은 모두 고려 전기 화엄·법화 신앙의 독창적 수용과 강원도 지역 석조 공양상 파의 성립을 입증하는 한국 미술사의 독보적인 유산들이다.

  • 작성자 26.08.27 10:53 새글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 작성자 26.08.27 10:54 새글

    한송시지 석조보살좌상

  • 작성자 26.08.27 10:59 새글

    신복사지 석조보살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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