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몸의 변화뿐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과거와 현재가 문득 교차하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즘 들어 책을 읽거나 모니터를 볼 때면 안경 없이는 글자가 또렷이 들어오지
않는다. 난시까지 겹쳐 글자가 부옇게 흐려 보이니, 안경은 이제 몸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백내장 수술을 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아직은 그럴 단계가 아니라는 의사의 말에 그대로 지내고 있다.
얼마 전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늘 두던 자리에 안경을 찾으려 했는데, 이상하게도 안경이 보이지 않았다. 서재
책상 위 안경집은 비어 있었고, 주변을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 없었다. 거실과 침실, 심지어 화장실까지 살펴보
았지만 허사였다. 순간 ‘혹시 내가 깜빡한 걸까, 벌써 기억력이 이렇게 된 건가’ 하는 불안한 생각까지 스쳤다.
결국 오래된 스페어 안경을 꺼내 썼다. 돌아가신 산집 형님이 왜정시대 일본에서 쓰시다가 가져오신 것으로,
지금이라면 박물관에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물건이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지만 렌즈는 여전히
또렷했고, 덕분에 불편함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아침, 서재로 들어가 의자를 뒤로 밀치다가 바닥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 그토록 애타게 찾던 안경이
떨어져 있었다. 허탈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 순간 떠오른 말이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 늘 가까이
에 있으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자주 놓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 세대에게 ‘등잔’이라는 말은 낯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등잔은 어린 시절의 기억 그 자체다.
시골에서 자라던 시절, 밤이 되면 우리는 등잔불 아래 모여 앉았다. 솜으로 만든 심지를 등잔뚜껑 구멍에 끼우고,
그 안에 등유를 부어 불을 밝혔다. 어머니는 낮에는 농삿일을 하시고, 밤에는 등잔불 아래서 아버지의 해진 양말과
옷을 기우셨다.
조금이라도 더 밝히려고 심지를 돋우면 불꽃이 커지며 그을음이 생겼다. 그러면 다시 낮추어야 했다. 기름은 귀했고,
낭비할 수 없었다. 석유를 사려면 닷새마다 열리는 장에 이십 리를 걸어가야 했다. 한 되짜리 빈 정종병을 들고 가서
석유를 담아 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병 하나에 담긴 기름은 단순한 연료가 아니라, 가족의 밤을 밝히는
소중한 빛이었다.
그 시절의 석유는 그렇게 귀했는데, 오늘날 석유는 세계를 움직이는 핵심 자원이 되었다. 최근 중동 지역의 긴장으로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원유 가격이 급등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해협은 전 세계 에너지의 상당 부분이 지나
가는 길목이다. 우리나라 역시 에너지 수입의 대부분을 이곳에 의존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석유의 거래 단위가 아직도 ‘바렐(barrel)’이라는 것이다. 이는 약 159리터에 해당한다. 19세기 미국
서부에서 석유가 발견되었을 당시, 크기가 제각각인 통 때문에 분쟁이 잦았고, 결국 40갤런짜리 오크 통이 기준이
되었다. 이후 상인들이 덤으로 2갤런을 더 얹어 주면서 42갤런, 즉 오늘날의 바렐 단위가 굳어졌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등잔에 넣던 몇 리터의 석유와 오늘날 바렐 단위로 거래되는 거대한 석유 시장은 같은
물질에서 출발했지만 그 의미와 규모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어둠을 밝히고, 삶을 이어가는
에너지라는 점에서 말이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안경을 의자 밑에서 찾은 일은 사소한 해프닝이었지만, 그 덕분에 나는 등잔불 아래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과 오늘날의 세상을 함께 떠올릴 수 있었다. 가까이에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 당연하게 여겨 잊고
지내는 것들. 어쩌면 우리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들은 늘 그렇게, 등잔 밑 어둠 속에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