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의자 / 임효빈
베란다 앞 흔들의자가 흔들리다 그녀가 일어서자 현기증을 일으킨다
한 점 바람 없이도 휘청이는 그녀의 이력을 의자가 되짚어 본다
삶을 헛디딜 때마다 늘어난 주름이 전부다 한 치씩 삶의 물살을 다지고 또 다졌다
어떤 수사나 장식으로도 진열할 수 없는 그녀의 주름들
물기 없이 보존된 그녀의 자서로 남아 한 페이지씩 넘겨본다
더는 조여지지 않는 괄약근으로 픽션의 잔해들을 쏟아내고 이젠 불임의 부표가 출렁이는 뱃머리가 안온한 그녀
식탁 위 백색의 알약들이 그녀의 손에 닿자 헛구역질하지만 흰 벽 프레임 속 한 여자가 등을 보이며 허물어진다
흔들리는 손끝으로 물컵을 내려놓자 한 권의 제본이 마무리된다
삐걱거리는 인터폰이 그녀의 마지막 기별을 전하고 그녀의 표제가 되고 싶은 흔들의자가
흔들린다
— 시집 『우리의 커튼콜은 코끼리와 반반』 (여우난골,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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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효빈 시인
1966년 충남 부여 출생.
202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우리의 커튼콜은 코끼리와 반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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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효빈이 지니고 있는 ‘흔들림’의 테제는 시집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징후다.
그녀의 현기증은 삶을 헛디딜 때마다 늘어난 주름의 이력에서 기인한다.
견고하게 보존된 “주름”들, 탄력을 잃은 괄약근에서 쏟아지는 “픽션”들, 망망대해에서 출렁이는 “불임”의 부표들은
“백색의 알약들”과 “헛구역질”과 “흰 벽 프레임”에 가까스로 당도한다.
방향 상실의 감각으로 세월의 부침을 기록하고 있는 이 시에서 ‘흔들림’은 난파선처럼 침몰하고 있는 화자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기표다.
화자의 내면은 외부의 힘에 의해 걷잡을 수 없이 표류해온 ‘흔들림’으로부터 발로한다.
시의 지형에 불시착하는 동안 부서지고 고장 나고 조각난 언어로써 자신의 생존 좌표를 타전하게 되는 것이다.
권력과 불모로서의 사랑 역시 ‘나’의 존속과 당위를 불안하고 위태롭게 한다.
이 위기는 흔들림이라는 운동 상태로 전이된다.
그녀는 흔들리는 한 권의 책이며 마침내 표제작으로 「흔들의자」를 쓴다.
흔들의자는 안정이나 평온 혹은 충족의 프레임 바깥에 선 시인의 아이덴티티인 것이다.
- 출판사 서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