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26: 4. 궤계로 잡아 - 마 26: 5. 민요
마 26: 4. 궤계로 잡아 -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
실상 그들은 처음부터 그런 일을 계획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주신 것 때문에 그들은 이미 예수를 죽일 것을 의논했었다(요 5: 16 전통본문; 마 12: 14).
또 요한복음 5: 18에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고 말함을 인해 그를 죽이려 했다.
또 요한복음 7: 7은 그가 그들을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에, 요한복음 12: 19는 온 세상이 그를 따르기 때문에, 또 마태복음 27: 18은 그들이 그를 시기하기 때문에 죽이려 했다고 증언한다.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에게 하나님의 법을 가르친다는 종교 지도자들이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을 까닭 없이 죽이려고 이렇게 악한 일을 도모하였다. 그의 교훈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들은 그것을 지적하고 성경과 이성에 입각한 공정한 비평을 하여야 했었다.
까닭 없이 미워하고 죽이려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서로 사랑하고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1] 예수를 흉계로 잡아
공동번역과 새 번역에서는 '궤계'라는 단어를 '흉계'로 번역하고 있다. ‘흉계로’라는 원어(돌로 δόλῳ)는 ‘몰래, 은밀히’라는 뜻이다. (BDAG, NASB).
어떻게 번역이 되었든지 저들이 예수를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정당한 명분 없이 음해하려했다는 데에는 차이가 없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려고 준비하시는 예수의 모습과 궤계로써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하는 거짓된 종교인들의 권모술수(權謀術數)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십자가의 고난을 향하는 예수의 정정당당한 발걸음과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비열한 방법을 사용함에 있어서 조금도 거리낌이 없는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깊은 병에 든 산헤드린의 권력자들이 대비되고 있다.
2] 죽이려고 의논하되(*, 쉬네불류산토).
이는 '협의하다', '계략을 짜다'는 뜻인 '쉼불류오'(*)의 부정과거 중간태 직설법으로서 그들의 모의가 상당히 다급하고 긴장된 상태로 진행되었음을 암시해 준다. 그들은 비밀리 죄인 아닌 죄인을 극형에 처하기 위해 몹시 당황했다(Robertson).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 죽이기를 공모하였다. 실상 그들은 처음부터 그런 일을 계획하였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38년 된 불치의 병자를 고쳐주신 때에 그들은 이미 예수를 죽일 것을 의논하였었다. (요 5: 16 전통본문 마 12: 14).
또 요한복음 5: 18에 보면,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고 말함을 인해 그를 죽이려 하였다. 요한복음 7: 7은 그가 그들을 악하다고 증언하기 때문에, 12: 19은 온 세상이 그를 따르기 때문에, 마태복음 27: 18은 그들이 그를 시기하기 때문에 죽이려 했다고 증언한다.
하나님을 섬기며 백성에게 하나님의 법을 가르친다는 종교 지도자들이 의로우신 하나님의 아들을 까닭 없이 죽이려고 이렇게 악한 일을 도모했다.
그의 교훈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들은 그것을 지적하고 성경과 이성에 입각한 공정한 비평을 해야 했었다. 까닭 없이 미워하고 죽이려 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서로 사랑하고 이웃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
마 26: 5. 민요 -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 말하기를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
그러나 민란을 염려하여 명절에는 하지 말도록 하였다.
1] 말하기를 민란이 날까 하노니
유대사가 요세푸스의 증언에 따르면(Jos, Wars 12:1-2) 메시야 대망 사상이 심히 고조되었던 A. D. 1세기를 전후하여 백성들의 봉기와 소란이 빈번히 발생했다고 전한다.
* 행 21: 34 - 무리 가운데서 어떤 이는 이런 말로, 어떤 이는 저런 말로 소리 치거늘 천부장이 소동으로 말미암아 진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내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유월절 기간에는 각 지역, 특히 예수의 선교 중심지였던 갈릴리 지역 주민들이 예루살렘으로 많이 모여들기 때문에 예수를 처형할 경우 민란의 위험성이 상당히 높았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로 결안할 때 그들은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러나 일견 성공처럼 보이는 이러한 악한 일은 오래가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와 그들의 계획을 미워하시기 때문이다.
(1) 때가 무르익었다.
"그때에“
① 예수님의 예언은 적중했다.
본문에서의 '그때'란 곧 예수님께서 고난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를 말한다. 그러므로 이는 예수님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이미 다른 것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극히 작은 일 같지만 주님의 말씀을 신뢰할 수 있게 하여 준다. 비록 더디어 보일지라도 주님께서는 당신의 약속을 '때가 되면' 반드시 이루신다.
② 모든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의하여 진행된다.
주님은 자시의 고난의 때를 이틀이 지나면 즉 유월절이 시작되는 목요일이라 예언하셨다.
그러나 5절에 보면 예수를 잡을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목요일은 유월절 명절이므로 민요가 날까 두려워 그날을 피하여 다른 날을 선택하여 예수를 잡을 것을 결안한 것이 나온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예언대로 유월절날 잡히셨다. 그는 분명히 자신의 고난의 때를 정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결정대로 잡히셨다. 그는 인간의 생각까지도 주관하시고 변화시켜 자신의 구원 사역을 차질 없이 수행하셨다.
(2)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였다.
'가야바라 하는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여'.
① 죄인의 자리다.
대제사장 가야바는 로마 총독 빌라도의 전임자에게 아부하여 대제사장으로 임명받은 자였다. 이러한 사실이 보여 주듯 그는 자기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권력욕의 화신이었다.
* 요 18: 14 –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바로 이러한 가야바의 관정에 모였다. 우리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시 1: 1)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② 은밀히 모였다.
산헤드란 공회원들은 스스로가 가장 거룩하고 의로운 자들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그들의 모임은 유대 사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버렸을 때는 가장 비열한 자들의 모임이 되었다. 그들이 공식적으로 모이는 공회당에서 모임을 갖지 않고 대제사장의 관정에 모였다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일 모의를 하기 위해 모였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그 모임을 개최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사람이나 단체에게 중요한 것은 외양으로 거룩함을 표하느냐 안 하느냐가 아니라 과연 지금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느냐? 안 받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지 않을 때 우리는 사탄에게 쓰임 받을 수밖에 없다.
(3)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① 예수를 죽이기로 결안 하였다.
'의논하되'라는 단어는 부정과거형으로 이미 이들이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안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그들은 예수로 인하여 민란이 일어나고 로마 군대가 그 민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기득권을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을 염려하여 쉽게 이러한 결정을 하였다.
* 요 18: 14 - 가야바는 유대인들에게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고 권고하던 자러라.
악한 일은 쉽사리 의견 일치를 보게 된다. 거기에는 자신들의 이기적인 욕망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그 일과 함께 종말을 맞게 될 것이다.
② 흉계를 사용하기로 하였다.
예수님에게서 책잡을 것이 없었던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궤계를 사용하기로 했다.
이처럼 동기와 목적이 순수하지 못한 데서는 절대로 순수한 방법이 나올 수 없다. 순수한 방법은 순수한 동기와 목적을 추구하는 데서만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4) 명절을 피하였다.
'민란이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이 말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이 진정으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냐하면 이 말은 민란이 일어날 가능성만 없다면 명절에라도 예수님을 죽일 수도 있다는 그들의 의도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경외하는 마음도 없었다. 차라리 그들은 무신론자나 불신자에 가까웠다. 아니 오히려 그들보다 악한 행위를 서슴없이 자행하였다.
인류의 구주로 오신 메시야를 해하려는 그들의 악행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함으로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일조하였으나 그 행위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2] 명절에는 하지 말자 하더라.
유대 최대의 절기인 유월절(2절)기간 동안에 예루살렘은 수많은 인파와 고조되는 종교적 열기와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띤 메시아사상의 고조 등으로 조그마한 사건이라도 커다란 폭동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기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모여들었는지는 역사가 요세푸스가 잘 알려 주고 있다. 요세푸스에 따르면 총독 케스티우스(Castius) 때에 유월절에 예루살렘에 모여드는 엄청난 숫자의 유대 군중들이 통치자에게 얼마나 위협적인가를 네로 황제에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대제사장으로 하여금 유월절에 제물로 드리기 위해 잡는 양의 수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이 때 조사한 바에 의하면 256,500마리의 양이 제물로 바쳐진다는 것이다. 양 한 마리 당 10명 정도가 한 무리가 되어 제물을 드리며, 어떤 경우에는 20명이 한 무리를 이룰 때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모여드는 숫자는 약 200만 명을 훨씬 능가하는 숫자가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는 갈릴리 사람들을 비롯해서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던 사람들이 많았으므로 공개적으로 예수를 체포하거나 위해(危害)하려는 시도는 폭동이나 민란을 일으킬 것은 뻔하다.
따라서 명절을 피해서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저들의 의도는 너무나 당연하다. 그들은 7일간의 유월절 공식 기간이 지난 뒤에 예루살렘에 운집했던 무리들이 각기 고향으로 흩어질 때 예수를 처형하려 했다.
그러나 저들의 예정은 유다의 배반으로 바뀔 수 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유다의 배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예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수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사건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진행되는 것이며, 사람들의 계획은 그 앞에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