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창읍의 든든한 진산(鎭山)인 노성산에 걸쳐진 오래된 산성
평창 노산성<魯山城 = 노성산성(魯城山城)> - 강원도 지방기념물 80호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yeyewon.co.kr%2Fpy%2F2009%2F926-50.jpg) |
송학루와 남산공원을 둘러보고 읍내 북쪽에 솟아난 노성산을 찾았다. 노성산(419m)은 노산(魯山
)이라고도 하며 그 허리에 오래된 산성(山城) 유적인 노성산성(노산성)이 둘러져 있다. 노성산
을 찾은 것도 바로 그 산성을 보기 위함이다. 처음에는 산성의 흔적 조차 찾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왔는데 와보니 비록 와르르 무너지고 땅 속에 묻히긴 했지만 산성의 흔적을 더듬는데
그리 문제는 없었다. 성의 흔적이 제법 진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노산성으로도 불리는 노성산성은 북과 동, 남쪽의 3면이 평창강과 맞닿아 있다. 특히 북쪽은 깎
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누구도 범하기 어려운 지세를 자랑하며, 성을 공격하려면 천상 서쪽 밖에
는 없을 정도로 천험(天險)의 요새를 자랑한다.
이 성은 언제 축성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신라 후기 기와조각이 수습되어 적
어도 신라 후기에 조성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고려 후기와 조선 초기 기와조각도 다량으로
수습되고 있어 그 시절에도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에는 노산성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선조(宣祖) 때 평창군수 김광복(金光福)이 허물어진
산성을 손질했다. 임진왜란(1592년) 때는 군수 권두문(權斗文)이 지사함(智士涵), 우응민(禹應
民), 이인노(李仁怒)와 함께 백성을 이끌고 이곳까지 침공한 왜군과 싸워 물리친 격전지이다.
성의 둘레는 약 517m, 성벽의 높이는 1.3m로 낮은 편이다. 성벽은 북쪽의 절벽부분을 제외하고
축조되었으며, 능선 바로 아래 부분의 흙을 깎고 바깥쪽에 성벽을 쌓았다. 산 허리에 만들어진
산복식(山腹式) 성으로 북쪽이 가장 높고 남쪽이 낮은 북고남저(北高南低)의 지세이다.
성벽에 사용된 돌은 편마암(片麻岩)으로 '品' 형태로 면석쌓기를 했으며, 서쪽 성곽은 정상에
전적비를 만들고 계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원형이 많이 망가졌으며, 서쪽에서 남쪽으로 굽어지는
부분에는 치와 망대(望臺)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나, 크게 훼손되어 정확하게 확인하기는 어렵
다. 남쪽 성벽은 약 334m로 대부분 붕괴되어 산성의 흔적만 더듬을 수 있다. 정상 부근에는 우
물터가 한 곳 있으며, 깊이가 약 2m라고 한다.
평창읍에서 노성산성을 가려면 읍내에서 장평 방면으로 가야된다. 터미널 기준으로 13분 정도
걸으면 평창1차아파트가 나오고 오른쪽으로 노성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언덕길이 나온다. 그 길
을 7분 정도 오르면 어느 고을이나 흔히 있는 현충탑(顯忠塔) 입구이다. 입구를 지나 1분 정도
가면 4거리가 나오는데, 직진하면 활터인 노성정(魯城亭)이 나오고 왼쪽 오솔길로 4분 정도 가
면 그 길의 끝에 계단이 나오는데, 계단을 오르면 바로 노성산성과 임진노성전적비이다.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blog.yahoo.co.kr%2Fybi%2F1%2F33%2Ff6%2Fpynce43%2Ffolder%2F11%2Fimg_11_148_14%3F1254762186.jpg)
▲ 노성산을 오르는 도중에 만난 만남의광장 조형물
돌고래로 보이는 2마리의 동물이 서로를 마주보며 돈독한 정을 확인한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blog.yahoo.co.kr%2Fybi%2F1%2F33%2Ff6%2Fpynce43%2Ffolder%2F11%2Fimg_11_148_13%3F1254762186.jpg)
▲ 노성산으로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길
각박한 속세살이를 상징하듯 가파른 정도가 장난이 아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blog.yahoo.co.kr%2Fybi%2F1%2F33%2Ff6%2Fpynce43%2Ffolder%2F11%2Fimg_11_148_0%3F1254762186.jpg)
▲ 노성산 남쪽에 세워진 현충탑(顯忠塔) |
현충탑이나 현충비는 어느 고을에나 흔히들 있기에 거의 찾지도 않지만 그 탑 앞에만 서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숙연해진다. 나라가 대한제국 시절이나 6.25시절처럼 다시 어려워진다면 나는 과
연 어떻게 처신을 해야될까?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져야 될까? 아니면 그 반대야 되야
될까? 학교에서 가르친 대로라면 전자가 정답이겠지만 이놈의 나라 꼬락서니를 보면 정말 후자
가 되고 싶은 마음 뿐이다.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blog.yahoo.co.kr%2Fybi%2F1%2F33%2Ff6%2Fpynce43%2Ffolder%2F11%2Fimg_11_148_10%3F1254762186.jpg)
▲ 추모성왕<鄒牟聖王 = 동명성왕>의 후예들이 활솜씨를 뽐내는
노성정(魯城亭)
보통 때 같으면 몇몇 사수(射手)들이 화살을 쏘고 있겠지만
그날따라 아무도 없어 적막만이 가득하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blog.yahoo.co.kr%2Fybi%2F1%2F33%2Ff6%2Fpynce43%2Ffolder%2F11%2Fimg_11_148_12%3F1254762186.jpg)
▲ 노산성으로 오르는 조그만 길 |
콘크리트길이 아닌 흙길이었다면 더욱 정겹고 운치가 있었을 것을 굳이 4발 수레를 위해 콘크리
트로 밀어버릴 필요가 있었을까? 게다가 현충탑 아래에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거늘~~ 그 점이 너
무 아쉽다. 가로수가 멋드러지게 들어선 저 길의 끝에는 산성으로 오르는 계단이 나오며, 그 계
간을 오르면 노성산 정상과 임진노성전적비가 나그네를 맞이한다. |
![](https://t1.daumcdn.net/cfile/blog/13114E0E4ACA285824)
▲ 노성산 정상에 세워진 임진노성전적비(壬辰魯城戰績碑)
임진왜란 때 왜군와 싸워 물리친 우국(憂國)의 넋을 기리고자 1982년에 세운 것으로
마치 그날의 함성이 아련하게 들려올 것만 같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img.blog.yahoo.co.kr%2Fybi%2F1%2F33%2Ff6%2Fpynce43%2Ffolder%2F11%2Fimg_11_148_1%3F1254762186.jpg)
▲ 노산성의 서쪽 성벽
비록 장대한 세월의 거친 흐름 속에 형편없이 닳고 허물어지긴 했지만
산성의 흔적은 무리없이 확인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1982년 전적비를 세우고 계단을 만들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https://t1.daumcdn.net/cfile/blog/20114E0E4ACA285722)
▲ 전적비에 그늘을 드리워주는 거대한 느티나무 (강원-평창-10호)
수령(樹齡) 200년의 느티나무로 노산성의 끝없는 쇠락을 말없이 지켜봤을
산증인으로 높이는 15m, 둘레는 3m에 이른다. |
![](https://t1.daumcdn.net/cfile/blog/19114E0E4ACA285721)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yeyewon.co.kr%2Fpy%2F2009%2F926-51.jpg)
▲ 옛날의 위용은 온데간데 없고 산의 일부이자 자연의 일부가 되버린
노산성의 서남쪽 성벽 (사진 2장) |
하늘을 향해 거의 80도로 서 있었을 철벽의 산성, 허나 세월과 자연 앞에 형편없이 닳고 닳아서
결국 꼬부랑 노파처럼 40도로 아래로 낮아지고 말았다. 이곳이 산성이라는 안내문이 없었다면
어느 누가 산성의 흔적으로 보겠는가? 옛 성곽(城郭)의 여장을 따라 이어졌던 성곽길은 옛 성곽
을 따라 진한 실선으로 남아있어 성곽의 윤곽을 짚어볼 수 있다. |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yeyewon.co.kr%2Fpy%2F2009%2F926-53.jpg)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yeyewon.co.kr%2Fpy%2F2009%2F926-54.jpg)
▲ 노산성의 동남쪽 성벽 (사진 2장)
인간이 만든 것이 아무리 견고하고 화려하다 한들 자연 앞에서는 일개 모래성일 뿐이다.
위대한 자연은 성벽을 무너뜨리고 식물의 씨앗을 잔뜩 퍼뜨려 조그만 잡초의 세상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yeyewon.co.kr%2Fpy%2F2009%2F926-55.jpg)
▲ 운치 가득한 전나무 숲길 (노산성 동남쪽 성곽길)
하늘로 곧게 솟은 전나무가 옛 산성의 여장 역할을 대신하며
성곽길을 따라 이어져 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yeyewon.co.kr%2Fpy%2F2009%2F926-56.jpg)
▲ 낭떠리지로 이루어진 노산성의 북쪽 |
산성 북쪽은 성벽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 바로 천길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절벽 아래에 바로
평창강의 푸른 물이 굽이처 흐르는 그야말로 자연식 해자까지 갖추고 있으니 새가 아닌 이상은
어느 누가 감히 오를 수나 있겠는가? 이곳에서 아랫 세상을 굽어보니 정말 다리가 후덜거릴 정
도로 아찔하다. 까마득한 저 아랫 세상~ 마치 하늘에서 바라보는 인간 세상같다. 여기서 낭떠러
지를 통해 산성 서쪽으로 넘어가는 길이 있으나. 길이 험하고 위험하여 자칫 저 밑으로 굴러떨
어질 수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
![](https://t1.daumcdn.net/cfile/blog/15114E0E4ACA285826)
![](https://t1.daumcdn.net/cfile/blog/18114E0E4ACA285928)
▲ 노산성 북서쪽에서 바라본 평창의 산하 (사진 2장, 평창읍 북쪽)
칼처럼 솟은 무수한 산 사이로 산을 베게하며 둥지를 튼 평창 고을,
하늘이 낮아 재 위는 겨우 3자의 높이라 할만큼 하늘과 가까운 고원지대이다.
골짜기마다 깃들여진 농가가 군데군데 보이고
평창강 주변에
터를 잡은 고원의
옥토에는 고원의 청정한 기운과 농민들의 애뜻한 정성을
먹고 자란 벼들이
올해의 풍년을 예감하게 한다.
|
※ 평창 노산성 찾아가기 (2011년 12월 기준)
* 평창까지의 교통편은 앞의 남산공원(송학루) 참조
* 평창터미널에서 노산성까지 가는 길은 앞의 노산성 앞부분 참조
* 승용차로 가는 경우 (노산성 아래까지 접근 가능)
① 영동고속도로 → 장평나들목을 나와서 평창 방면 31번 국도 → 후평4거리에서 평창읍내로 좌
회전 → 고개를 넘으면서 왼쪽 노성공원으로 가는 가파른 오르막길로 좌회전 → 노성산 주차
장 → 노산성(임진노성전적비)
* 소재지 -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하리 산1, 중리 산10 일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