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물과 눈물, 그리고 인공의 시대
예전에는 ‘농사천하지대본(農事天下之大本)’이라 하여, 사람의 삶이 온전히 땅과 하늘에 의지해 있었다.
저수지 하나 없던 천수답 시절, 비가 오지 않으면 모내기조차 할 수 없었고, 그해의 흉년은 곧 굶주림으로
이어졌다. 가뭄이 들면 도랑은 바닥을 드러내고, 우물마저 말라버려 물 한 모금 구하기 어려운 날들이 이어
졌다. 그 시절의 물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였다.
그러나 내 고향 까막골 아랫동네에는 마르지 않는 샘 하나가 있었다. 앞산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그 샘물은
아무리 날이 가물어도 그칠 줄 몰랐다. 여름에는 이가 시릴 만큼 차가웠고,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
따뜻함마저 품고 있었다. 그 물맛은 유난히 맑고 달아, 70년이 지난 지금도 혀끝에 선연하다. 그 샘은 단순한
물줄기가 아니라, 마을 사람들의 희망이자 위안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그 샘물을 누구보다 먼저 길어 오시던 분이었다. 첫닭이 울기 전 새벽녘, 조용히 일어나 찬물
에 몸을 씻고, 정화수 한 그릇을 떠 상 위에 올려놓으셨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용왕님께 가족의 무탈과 자손
들의 복을 빌었다고 한다. 그 정성 어린 기도는 물처럼 맑고 깊었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삶은 비극으로 끝이 났다. 6·25 전쟁 중 포탄에 집이 불타 피난을 떠났다가, 남겨둔 살림살이
를 챙기러 다시 들어가셨다가 아군의 총탄에 맞아 돌아가셨다. 한 사람의 생은 그렇게 허망하게 사라졌지만,
그분의 기도는 사라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 우리 집안의 자손이 서른여섯에 이르니, 그 숫자 속에는 할머니
의 간절한 마음이 고스란히 이어져 있는 듯하다.
어릴 적 우리는 “눈에 눈이 들어가면 눈물인가, 눈물인가” 하며 장난스러운 말놀이를 하곤 했다. 그때의 눈물은
웃음과 함께 흘러나오는 것이었지만, 나이가 들수록 눈물은 점점 말라간다고 한다. 샘이 마르듯, 사람의 눈물샘
도 세월 속에서 서서히 고갈되는 것일까.
얼마 전부터 아침에 눈을 뜨면 눈동자가 뻑뻑한 느낌이 들어 안과를 찾았다. 의사는 ‘안구건조증’이라며 인공눈물
을 처방해 주었다. 하루 네 번 넣으라는 말에 따라 눈에 한 방울씩 떨어뜨렸더니, 신기하게도 눈뜨기가 훨씬 수월해
졌다. 자연의 눈물이 부족해지자, 이제는 인공의 눈물로 그 자리를 채우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샘물이 마르지 않던 시절에는 자연이 우리의 삶을 지켜주었고, 할머니는 그 자연 앞에서
기도했다. 그러나 지금은 자연이 아닌 인공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인공눈물 한 방울이 내 눈을 적셔주듯,
우리는 점점 더 많은 것을 인공의 힘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것이 바로 AI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까막골 샘물이 흐르고 있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그 샘물의 차가움과
따뜻함, 그리고 그 곁에서 기도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마르지 않는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어쩌면 진정한 ‘샘’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