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부터 귀에 익던 속담이 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중국 사람이 챙긴다.” 예전에는 그저 웃어넘기던
말이었는데, 요즘 들어 그 의미가 묘하게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기술과 노력의 결과가 반드시 그것을 만든 사람
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시장’이라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
게 된다.
얼마 전 아이의 손을 잡고 과학축제를 찾았다. 아이는 로봇 복싱쇼를 본다는 기대에 한껏 들떠 있었고, 실제로
현장에서 마주한 로봇들은 놀라울 만큼 정교하고 생동감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가 터지고, 아이들은 줄을
서서 로봇과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그 순간 문득 떠오른 사실 하나가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 로봇이 한국이 아니라
중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는 점이었다. 우리는 기술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그 기술의 상업적 결실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중국의 성장은 더 이상 ‘빠르다’는 말로는 부족해 보인다. 덩샤오핑의 실용주의적 선택 이후, 중국은 체제의 유연함을
무기로 삼아 산업의 방향을 과감하게 바꿔왔다. 특히 전기차 산업에서 보여준 행보는 인상적이다. 내연기관 시대에는
뒤따라가던 위치였지만, 새로운 기술의 물결이 시작되자 누구보다 먼저 뛰어들었고 결국 세계 시장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늦게 시작했다는 약점을 오히려 기회로 바꾼 셈이다.
지금 그 흐름은 로봇 산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기술 개발에 그치지 않고, 로봇을 대중 앞에 끌어내어 자연스럽게
일상의 일부로 만드는 과정이 진행 중이다. 격투 경기, 마라톤, 대형 전시회 같은 이벤트들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라
산업을 키우기 위한 하나의 전략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관심이 커지고, 관심은 곧 투자와 시장으로 이어진다. 이 흐름을
보고 있으면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반면 우리는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한국 역시 결코 뒤처진 기술력을 가진 나라는 아니다. 반도체,
제조업, 자동화 기술 등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러나 문제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시장으로 연결
하느냐에 있다. 우리는 여전히 ‘잘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사이, 누군가는 ‘잘 파는 구조’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아직 모든 것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로봇 산업은 이제 막 시작된 분야이고, 누가 최종적인 승자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기에 지금이 더 중요하다. 이미 판이 굳어진 뒤에는 따라잡기가 어렵지만, 아직 방향이 열려 있는 지금은
선택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단순한 위기의식이 아니라, 어떤 선택을 하느냐일 것이다.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역, 즉 산업 현장과
결합된 기술을 어떻게 빠르게 현실화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기술을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이 실제로
쓰이고 돈이 되는 구조까지 만들어내야 한다.
아이와 함께 돌아오는 길, 로봇을 보며 환하게 웃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아이가 살아갈 미래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
일지도 모른다. 그 세계에서 우리는 여전히 기술을 보여주는 나라로 남아 있을까, 아니면 그 기술로 새로운 흐름을 이끄는
나라가 되어 있을까. 답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 그 방향을 가르는 중요한 갈림길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