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리그 가 아닌 수퍼 리그 시절
(세미 프로에 연고지를 확정하지 않았던 시절, 팀 수가 모잘라 실업인 한일 은행이 리그에 참여. 일 년 뒤에 상무가 추가)
아마 최대어 김종부는 럭키금성(현 서울), 현대(울산),대우(현 부산). 이 세 재벌 팀이 치열한 스카웃 전쟁.
김종부 형을 대우 직원으로 채용한 대우와 고려대에 수 억원의 지원금을 지원한 현대로 2파전
(82년 강남 24평 아파트가 2천4백 하던 시절)
당시는 드래프트가 아닌 자유 계약에 대학교 입김이 더 중요한 시대. 갈등 끝에 고려대,김종부,현대가 입단 계약 발표
헌데, 일주일 뒤 김종부가 대우행을 발표 하면서 파문
고려대는 즉각 김종부를 징계하고 축구 선수 등록을 철회하고 그의 특기생 특혜를 없애
(학점 미달로 졸업하지 못하고, 한 학기를 재 수강해서 졸업)
지금까지 여론은 고려대와 현대를 비판 해
헌데, 대우는 김종부만 파문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또 한명의 대어 선수를 놓고 역시 스카웃 파문을 일으켜
바로 김주성
유공(현 제주)이 현대 처럼 했던 방식으로 조선대에 지원 하고 스카웃 한 것에 대우가 김주성 마음을 얻어
현대와 달리 유공 감독이 김정남이였고. 김정남은 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 감독을 겸임해
(김정남은 88올림픽 대표 소속이였던 김종부를 쓰지 못 하다, 월드컵 예선 마지막 대회 일본전 부터 김종부를 쓸 수 있었고
김종부에 김주성까지 스카웃 전쟁에 휘둘릴 경우, 대표팀 전력 약화를 우려 유공 그룹 관계자를 설득, 양보)
그 당시에 과연 대우가 그렇게 까지 스카웃 전쟁을 할 필요가 있었을 까?
84년 우승팀에 전 맴버가 국가 대표였던 대우
변병주,이태호,정해원
조광래,박창선,정용환,김판근,김풍주등
스카웃 파문 끝에 김주성을 얻었으면 되었지, 왜 김종부를 끝까지 잡고 늘어 졌을 까?
반면 현대는 허정무에 백종철,렌스바르겐등으로 대우에 상대가 되지 못 하던 상황
대우와 달리 김종부가 절실할 수 밖에 없던 팀 사정
86년 신년초 대우는 호텔에서 김주성,김종부 입단식을 강행
현대는 선수 스카웃을 떠나 재벌 자존심 문제로 비화
86년 협회의 일시적 중재로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 2차전 불가리아전에서 동점골로
한국 월드컵 사상 첫 승점(골키퍼 오연교의 실수가 아니였다면 첫 승리 였을 것을1)
87년으로 넘어가
(이 해에 프로 축구 연고지 제도가 정착. 대우 로얄즈가 부산으로)
최순형 당시 축구 협회장은 훗날 이야기 해
"현대도 오기 싫다는 선수 굳이 고질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했다! 여론도 안 좋고, 다만 재벌 자존심 때문에.
현대가 당시 통 크게 대의적으로 양보하고 반대 급부를 받는 선에서 합의가 끝난 상태 였다!
김종부 문제가 해결 가닥으로 잡았는데, 그 사건 때문에! 결국 파문이 더 커졌다!
그 사건이란
87년 여름 대우 로얄즈는 너무 늦은 연고지 정착을 위해서 엉청 큰 노력을 펼쳐
일본 올림픽 국가 대표팀을 불러 대우와 친선 경기를 구덕 경기장에서 펼치고, 대대적인 신문 광고
헌데 그 경기에서 선수로 뛸 수 없는 김종부가 대우 유니폼을 입고 첫 경기에 나서
현대는 비공식적으로 양보를 낸 상태에서 난 사건이고, 현대 수뇌부는 절대 용납 할 수 없었어
현대 축구단 해체 를 선언
대우는 '관중들이 원해서 어쩔 수 없었다!'라고 변명 했지만
이미 신문 광고에 김종부 첫 출전 이라는 광고를 내 보낸, 즉 대우의 쇼 였어
현대가 해체를 선언하고 극한 상태로 가자 대우 역시 꿀 먹은 벙어리에
축구인들 이를 해결 못 한 최순형 축협 회장 퇴진과 현대 해체 반대 운동
결국 최순형 회장 퇴진(김우중 대우 회장이 다음 회장으로), 김종부 포철로 트레이드 건으로 마무리 하고
현대는 재창단 선언으로 마무리
(최순형 회장은 한국 프로 축구 1호팀인 자신의 소유팀인 할레루야가 적자를 본 다는 이유로 85년에 프로팀을 실업으로
전환 시켜, 축구인들로 부터 계속된 공격을 받았던 시점)
김종부는 아마 시절 선수 위용을 잃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다시 대우로 영입 되었지만
소리 소문 없이 젊은 나이에 은퇴해
프로 축구는 김종부 파동으로 드래프트 시행 그리고 한국 프로 사상 첫 6년 FA 제 시행(3년 시행후 폐지)
(대우의 변병주가 FA로 현대로 이적 해)
그 김종부가 경남 감독으로 부임 했으니, 세월이 빠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