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뻤다 / 빗새
새벽녘 성내천엔 새벽 걸음을 걷는 이들이 나온다
해가 뜨려면 아직 두어 시간이나 남았는데
아직도 어둠을 끌어안고 해탈의 탈바꿈을 거부하는 시간
한 손에 지팡이, 한 손은 수양버들처럼 흔들리는 육신
뇌졸중에 걸린 여인은 억지로 한걸음 한걸음
어둠을 깨고 길을 나선다
성내천 가로등이 아직도 제 발섶에 시커먼 잠을 끌어안고
이 고요한 적막을 깨뜨리지 않으려고 조명도 깜빡이는데
여인이 하나 둘 적막을 깨며 걸음을 걷는다
남편도 없고, 홀로 사는 이 삶을
그나마 이어가려면 걸음이라도 시원하게 걸어야지
어금니 꽉 깨물고 한걸음씩 한걸음씩 걷는데
한시간이 지나자 몽촌토성쪽에서 떠오르는 강렬한 햇살
그 투명한 햇살이 여인의 머리에 광선처럼 쏟아져
생명의 기를 불어넣는다
여인의 걸음이 속도를 낸다
깊섶에 잠을 자던 풀들도, 배롱나무꽃들도
일아나 박수를 친다, 큰 소리로 응원을 한다
여인의 귀에도 함성이 들린다
저 멀리서 보이는 환영의 메아리
내가 당신을 응원하고 있으니, 힘을 내요
내 몫까지 있는 힘을 다해서 살아주세요
벌써 10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말이
아침 신선한 바람을 타고 여인의 귀를 만지며 지나가고
여인은 글썽이는 눈으로 지팡이에 힘을 주면서
새로운 발걸음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