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3일 새해맞이 피정 후
그 짜릿한 영혼의 정화를 체험한 분들의 바람대로 다시 사순 피정을 준비했다. (2015. 3.14)
사순 3주일 토요일이니 장미주일을 맞이하기 직전이다
장미주일은 사순시기 중간에 너무 깊이 어둡게 지내지 말고 밝게 지내라는 교회의 배려로
그 날만은 신부님의 제의도 보라에서 핑크색으로 바꿔 입는다.
우리는 준비기간 동안 9일 기도를 바치며 하느님께 함께 해 주시기를 청하고
피정을 주관한 나는 순서며 자료를 정리하고 봉사자들을 만나고 연락하며 지냈다.
피정자체를 하는 게 좋기도 하지만
주관자인 나는 피정 동안 모든 참석자가 성령의 은총을 충만히 받을 수 있도록 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하기에
정작 피정보다 준비기간 동안 늘 하느님과 함께함을 묵상하는 게 더 좋다.
요번엔 회개와 자비, 희생, 단식으로 보내는 신자들에게 사순 피정을 하되
부활과 구원을 전제로 한 사순이니 감사함으로 밝게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는
지도신부님의 당부를 고려해서 성가와 함께 하는 사순피정으로 기획했다.
참석자 중 많은 분이 전-현직 성가대원이었기에
성가를 부르면서는 우울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성가를 뽑고 묵주기도를 선창할 봉사자, 그리고 십자가의 길에서 십자가를 들어줄 봉사자,
엄청난 반주, 그리고 간식, 성가와 함께 하는 십자가의 길, 그리고 자료집 만들 준비로 머릿속이 어수선 했다.
지난 피정 때 한글을 제대로 배워
요번엔 자료를 만들고 프린터 하고 준비하는 건 많이 노련해졌다.
직원들에게 맡기던 자료 복사도 이젠 혼자서 척척하게 되었다.
미리 마련된 자료들을 신부님께 보여드리고 지도를 받았는데
애써 지난 밤 마련한 묵상글 " 주여! 용서 하소서!"는 너무 무겁다고 하시며
필리피서 2장 1절부터 18절을 묵상으로 추천해 주셨다.
'그렇겠다, 성경만큼 좋은 묵상이 어디 있겠나...'
싶어 냉큼 군소리없이 내용을 바꿨다.
지도해 주실 분이 계셔서 얼마나 마음 가벼운지...
진작에 여쭤보고 했으면 그 고생 안해도 되었을 걸...
어른이 계시면 언제나 먼저 여쭤보고 해야할 일임을 새로 마음에 새겼다.
막달레나 언니가 꾸르실료팀의 십자가의 길에서 성가를 챙겨주었고
난 십자가의 길 묵상을 챙겨 피정을 진행할 시나리오 마무리를 했다.
성가 봉사를 하는 알비나와 성가를 뽑고
묵상곡을 불러줄 유스티나를 집에 초대해 연습도 도왔다.
인원을 모으는 건 안나언니가 앞장 서서
주말임에도 사십 명 가까운 신자가 함께 참여했다.
보고 싶은 분들이 많이 오셨다.
함께 점심을 먹고 성지 이곳저곳을 산책하며 홀로 묵상을 하다가
성당에 입당할 때 로마서에서 뽑은 말씀 카드와 피정 자료를 하나씩 챙겼다.
피정은 엘리사벳 언니의 묵주기도로 시작되었다.,
카랑하고 야무진 기도 소리를 듣는 순간 '성공적인 피정이겠구나' 느낌이 왔다.
누구에게 기도 선창을 부탁할까 할 때 그분 얼굴만 떠올랐고
십자가 행렬때 누구에게 십자가를 들게 부탁할까 할 때도 리드비나 언니 한 분 얼굴만 생각났다.
성가를 부탁할 때도 망설임없이 한 사람 한 사람.....
필요할 때마다 거절없이 기쁘게 응답했다.
아마도 성령이 활동하셔서 당신을 드높이고
당신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겸손한 마음들을 아시기에 직접 주관하기로 하신 듯했다.
신부님께서 추천하신 성경말씀 필리피서 2장 1절 부터 18절은 우리 모두의 가슴을 울렸고
이어진 묵상 성가 구원자 예수를 들을 땐
"사랑한다, 너를! 너를 원한다, 나는 구원자, 예수 너의 사랑이다. "
하자 긴장된 가슴이 녹아내렸다.
이번 피정은 교황님의 지향에 따라 가난한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기도가 권고된 때였다.
우리도 우리 자신의 기도지향과 함께 그분들을 위한 기도도 함께 바치기로 했다.
늘 그렇지만 기도는 실천없이는 헛된 바람이다.
이제 십자가의 길이다.
이번 십자가의 길은 성가와 함께 하는 십자가의 길이었다.
각 처마다 주님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성가 가사로 바꿔 부르고
마지막 제대 앞에서 주모송을 바쳤다.
성가 가사는 우리 마음을 십자가의 구원을 바라보도록 이끌어 점점 성가소리가 커지고 진정성 있게 들렸다.
그게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나중 피정 후 나누기를 할 때 보니 십자가의 길 기도의 은총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두드린 듯했다.
그분의 십자가의 길을 더불어 함께 걷고 묵상하다보니
우리가 지고 있는 삶의 십자가의 무게는
주님의 십자가에 비하면 턱없이 가볍고
때로는 탐욕과 무지, 그리고 게으름과 같은 죄종에 뿌리를 두고 있음이 분명했다.
십자가의 길을 걷는 동안 누가 뭐라지도 않았는데 흐느낌 소리가 들렸다.
제 각기 자신의 삶의 십자가 묵상이 되고 있나 보다 싶었다.
잠시 십 분쯤 휴식을 취한 후 신부님이 강의가 이어졌다.
요즘 성지는 무척 쓸쓸하다.
본당의 사순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성지는 방문 신자가 줄어든다.
모처럼 40명 가까운 신자들 앞에서 강의를 하시는 신부님은 진지하고도 자상하셨다.
대충 강의를 생각나는대로 요약하면
*"천당을 가고 싶은가?"
물으셨다.
"예"
하고 대답하자
"그럼 지금 가고 싶은가?"
물으셨다.
속으로 겁을 내며 즉각 응답을 못해서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그건 아니오."
였다.
신부님께서 웃으시며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고
그럼 지금은 현실에 충실하고 어쩔 수 없이 죽으면 천당으로 가고 싶은 것인가?"
물으셨다가 우리가 얼마나 이기적인가 돌아 보라고 하셨다.
그렇게 현실에 한 발 걸치고 눈치껏 내 잇속만 챙기는 게 우리라고....
결론은 신앙생활을 자기 만족을 위해 하지말고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탁하는 신앙인이 되라 하셨다.
* "우리는 천당에 갈 수 있는가? 천당이 어디인가?"
물으셨다.
당신은 오래 전에 교도소 사목 (교정 사목)을 하셨다고 전제 한 뒤
감옥에 가면 미사때 한 두 명이 참례하는데
천주교 신자의 숫자가 압도적으로 적다고 하셨다.
그 일을 맡아 하실 때 다른 나라의 교정 상황을 참조하러 멕시코를 방문했을 때
그곳 감옥에 갔더니 수인들이 자그마치 삼만 명이 수용되어 있었다 하셨다.
우리나라는 많아야 삼 천 명 정도인데....
근데 놀라운 건 수용인원이 많으니 거기엔 학교 가게 병원 같은
사회에 필요한 건 외부세상처럼 다 존재했었다 한다.
감옥과 사회가 같아 보이신 것이다.
감옥이라 하니 감옥이지, 세상과 같았는데
문득 우리가 사는 지금 이 곳이 감옥과 같지 않은가 생각해 보라 하셨다.
문득 장자의 나비의 꿈이 떠올랐다.
당신은 처음 소임은 교정 사목을,그리고 빚투성이 본당을 , 그리고 미주사목, 돌아오니 쓸쓸한 은이성지,
당신 뜻대로 된 사목을 받아 본 적이 없이 주교님 뜻에 순명으로 받아 들이고
어느 날은 속 상해서 마음속이 뒤죽박죽이기를 반복하다가
문득 당신의 마지막 소임은 무엇일까 묵상해보니
그게 죽음이라는 소임이구나 깨달으셨다 하셨다.
듣던 우리도 결국 마지막 소임에 대한 묵상을 해야하는데
천국을 갈 것인가 지옥을 갈 것인가라는 물음이셨다.
그러나 선택할 자격이 없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나?
천국에 악인이 들어가면 행복을 누릴까?
착한 이가 지옥에 들어가면 고통스럽기만 할까?
결론은 악인은 천국에 가도 주변 사람을 오염시켜 천국을 어지럽히고
착한 이는 지옥에 가도 그곳을 불 밝혀서 따뜻하게 만들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는 주변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 사람일까?
하고 묵상거리를 던지셨다.
그렇다면 천국과 지옥은 결국 내 자신의 삶의 방식에 따른 것일 수 밖에 없다.
이승이든 저승이든 결국 착한 삶의 방식을 택한다면 그곳이 천국이 될 수밖에 없음이 결론이다.
신앙인은 죽어 천국에 가기 전부터 지금 여기에서 천국을 살아야 한다.
*말씀을 끝내시며 신부님께서는 봄바람 얘기를 꺼내셨다.
봄에는 따뜻한 바람이 불 것 같은데
생각보다 차갑고 소란스럽게 분다고.
그것은 겨울 잠을 자고 있는 나무에게
바람으로 자극을 주어 봄소식을 알려 가지 끝까지 물을 올리려는 하느님의 뜻라며
하느님께서 바람으로 우리를 깨우듯
나도 누군가의 영혼을 깨우는 그런 바람같은 사람이 되라 하셨다.
가볍게 지나치시려는 것을 나는 참석자들에게도 들려 달라고 용기를 내어 청했다.
전날 금요일 미사 강론이었는데 함께 못들어 아쉬운 따뜻한 강론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자인 나는 십자가의 길을 인도하며 진이 다 빠졌는지 남은 성가를 다 부르지도 못하고
신부님 강의 후에 서둘러 우리는 잠시 피정후의 묵상들을 나누었는데
다들 주님의 수난 묵상을 제대로들 했는지
흐느끼기도 했고, 위로 받기도 했고, 각오를 다지기도 하셨다.
이곳에 머무셨을 성령께 참 감사할 일이다.
이 세상 그 무슨 일인들 그분께서 주관하지 않으신 일이 없다하니
이런 일을 벌일 용기를 주신 주님께 영광과 찬미를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