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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맛어때
 
 
 
카페 게시글
세상과의 소통 여래장 대한 논쟁을 읽고....
비단금 추천 0 조회 182 07.07.25 08:32 댓글 3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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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07.25 09:54

    첫댓글 [여래장 계열의 가르침은 ‘법’을 중심한 초기불교-아비담마/아비달마-중관-유식의 불교 주류의 가르침이 결코 될 수 없다. 우리에게도 불성이 있고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소박한 믿음을 강조한 ‘믿음의 종교’일 뿐이다.(<인도불교의 역사>, 하 148~9 참조) 그런데 불교의 믿음은 여래장이나 불성이나 일심에 대한 믿음보다는 초기경이 강조하고 있는 불.법.승.계에 대한 믿음이면 충분하다.] 동아시아의 가르침 속에는 여전히 아래 제가 설명하는 것처럼 등인지 된장인지 구분안하는 가르침으로 흘러가는 풍조이다. 즉 수행에 세밀함을 드러내지 않는다..._()_

  • 07.07.25 09:47

    따라서, 후박나무님처럼 세밀하고 분석적이고 아우럴수있는 고타마 싯달타의 가르침으로 동아시아는 거듭나야한다..._()_

  • 07.07.25 09:54

    저는 각묵스님의 견해를 지지합니다...정말 고타마 싯달타의 가르침을 등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안가게 설명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으니깐요. 즉 아함경에 토대를 두지않은 북방불교는 헛개비입니다..지금의 논의 자체가 건설적인 것입니다....하루빨리 조사선과 화두선이라는 수행체계에서 자리 잡고 있는 한민족 고유의 마음챙김을 되돌려주어야 할 것입니다...._()_

  • 07.07.25 10:01

    사띠는 마음작용이다...누구는 말라식(자의식)이다. 그냥 소슬은 사띠의 주체적 바탕은 의와 의식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입니다._()_ 그럼 마음마음하는 맴이 뭐꼬?

  • 07.07.25 10:09

    공사상 공사상하는 불교 철학적인 용어를 이제는 내려놓아야 수행으로써의 고타마 싯달타의 가르침이 살아 숨쉴 것입니다. 한자로 된 경전을 쉬운 언어 바른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 즉 번역이 아닙니다. 충분한 용어 설명 쫌 제대로 하는 가르침이길 바랍니다....화엄경 읽어보니깐 아함경하고 일치되는 부분이 많더만...중학생 정도의 ?은 불자가 그러더구많요 무엽지같은 장면은 빼고 ㅎㅎㅎㅎ

  • 07.07.25 10:12

    현실적으로 현양매구(懸羊賣狗)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북방의 가르침이 전부 틀렸다는 야기가 아닙니다.잘 정비하여야합니다. 논리적으로 학문을 대하는 어린 세대를 위해서라도요! 최근에 번역된 서양불교서적 쉽디쉽지요 ㅎㅎㅎㅎ. 우린 얼마나 애매한 용어들이 너무너무 많은지 등인지 된장인지 구분이 안되지요! 즉 세밀함/설득력이 덜하다는 이야기 입니다....._()_

  • 작성자 07.07.25 10:41

    북방대승경전의 覺의 등장은 초기 불교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실참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한 것으로 저는 봅니다. 상좌부에서 사티에 해당되고 유식에서는 전식득지(이것도 중국에서 나온것임)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기신론에서 보이는 체,상, 용의 구조는 이런 문제를 매끈하게 해결했습니다. 각묵스님은 교학자인네 실참이 교학지식에 미치지 못했기에 위와 같은 주장을 하는 걸로 저는 보고 있습니다....

  • 07.07.26 18:12

    비단금님 저의 의견은 이렇습니다. 각묵스님이 보신 것이 타당합니다...수행이라! 실참하신 분 중에 각묵스님정도의 교학적 입장을 이해할 스님이 몇분이나 계시는지요..단언하건데 별로 없습니다...대부분이 잘이해하지 못합니다.....꼭찝어보면 교학의 이치에 맞지않는 두리뭉실형입니다...위에서 소슬이 대승적 입장에서 설명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있는 것이 실정입니다..._()_

  • 07.07.25 20:14

    [상좌부의 견해는 마음은 대상을 가진다. 즉 찰나생 찰나멸의 관점이다. 여기서 모순이 생긴다. 무상, 고, 무아를 철견한 것도 찰나생멸하는 마음 작용이라는 소리다. 이건 무아를 철견하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어째서 이렇게 말하는지요. 또 [상주하는 마음을 정의하지 않으면 이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게 해결인지요?..()

  • 07.07.26 18:08

    저는 이리 질문하신 후박나무님의 견해에 한표..._()_

  • 작성자 07.07.25 20:50

    이것은 실참과 관련된 겁니다. 마음은 대상을 가지며 찰나생, 찰나멸하고 무상, 고, 무아를 철견하는 건 사티라는 마음작용이다 는 이론적인 겁니다. 마음의 찰나생멸을 어떻게 관찰합니까? 무슨 수로 엄청 짧은 순간인 찰나생 찰나멸하는 걸 관찰하겠습니까? 또한 마음의 찰나생멸을 관찰하는 것은 그 어떤 것입니까?

  • 작성자 07.07.25 21:14

    등무간연으로 우리같은 중생들은 마음 작용은 끝임없이 지속됩니다. 실참을 하게 되면, 지속되는 마음작용의 변화상이 처음으로 관찰됩니다. 상좌부에서는 마음작용의 변화상을 캐치하는 마음작용을 사티라는 용어로 지칭합니다. 무상유정처에서는 관찰자가 사라져 버립니다. 이것이 무아입니까? 비상비비상처에서도 관찰자도 관찰대상도 사라져 버립니다. 그럼 이게 무아입니까? 그런데 선정력이 쌓이면 깨워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일어나는 순간에도 깨워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선정의 끝입니다.

  • 작성자 07.07.25 21:29

    이론상 상좌부의 사티는 찰나생멸하는 마음작용입니다. 관찰자가 멸해버리면 무아는 추론에 의한 것이지 철견한것은 아닙니다. 관찰자가 사라지는 체험은 무상유정처, 비상비비상처에서 할 수 있습니다. 대상이 멸하는 건 멸진정에서 뿐입니다. 이론상 사티는 생멸하는 마음작용이기 때문에 멸진정에서는 작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깨워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같은 문제가 초기 유식에서도 있었습니다.

  • 작성자 07.07.25 21:46

    야뢰야식도 생멸심입니다. 야뢰야식이 멸함에도 깨워있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무구식이 등장합니다. 생멸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사티를 생멸하는 마음작용으로 보는 상좌부에서는 이론상 최고 선정처는 비상비비상처라는 논리적 한계를 갖게 됩니다....

  • 07.07.26 18:13

    [생멸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적확하게 말씀드리면 고타마의 가르침이 아닙니다^^그러니 "상락아정"이라 표현합니다. 이것은 8정도의 관점에서 바른 언어가 아닙니다^^그래서 엄밀히 말하면 여래장 계통은 빗나간 견해들입니다...._()_

  • 07.07.27 07:52

    [생멸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혹시 불생불멸을 뚯하신다면 이야할 수있습니다만 대개가 그런 뜻으로 말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이야기의 진원지가 여래장 계통의 견해를 가진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엄밀히 말씀드리면 적확하게 불교가 아닙니다..._()_

  • 작성자 07.07.26 19:52

    소슬님! 어떤것이 고타마의 가르침입니까? 부처님께서 직접 기술하신 경전이 있습니까? 왜 아함부 경전, 반야부경전, 유식계열의 경전들의 서술된 스타일이 다릅니까? 또한 부파간 전승되는 아함부경전들이 서로 다릅니까? 그리고 우리가 접하는 아함부, 반야부 경전들이 그당시에 유행했던 경전 전부였을까요?

  • 07.07.27 07:32

    비단금님 복잡하게 갈것이 없습니다.스타일은 달라도 하는 소리는 일맥을 가져야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몸은 허물어져도 없어져도 마음만은 영원하다는 이야기의 진원지가 바로 여래장계통의 견해라는 소리입니다..._()_

  • 작성자 07.07.26 20:17

    "상락아정"의 용어도 중론에 등장합니다. 용수보살은 서기2세기경에 생존하신분이죠. 세친보살은 서기 4세기경분이십니다. 불멸후 6백에서 8백년이 지났습니다. 그 당시에 여러종파들이 있었습니다. 자신들의 종파가 부처님의 직설이라고 주장했을 거라는 건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불멸후 2천5백여년이 지난 지금 그것도 외국에서 고타마의 가르침은 이렇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까?

  • 07.07.27 07:39

    용수보살님께서 도 딲았다는 수행이야기있다면 저도 한수배우지요...이분은 학자였습니다. 불교를 더복잡하게 만든 장본인이지요...서양의 가르침은 적어도 토대는 확실히 논리적이고 쉬운 언어로 가르치지요...참고로 What Buddhists believes/불교이야기, 담마난다 스님/이병두 옮김/미투_()_

  • 07.07.27 07:49

    서양서적이 거북스러우시면 [법정스님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전재성 님의 아함경 시리즈, 각묵스님 대림스님 번역 아함경 시리즈 초기불전연구원 편]을 권합니다..._()_

  • 07.07.27 07:44

    상락아정에대한 소슬의 견해 : 조건 지어진 것들은 모두 무상하고, 조건 지어진 것들은 모두 괴로우며 조건지어지거나 조건지어지지않는 것들은 영혼이나 자아가 없다. 즉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법구경, 제277, 278, 279]로 대신합니다. 고타마 싯달타의 견해로는 상락아정 영원한 항상하는 즐거움! 스스로를 맑힘! 영원한 착각입니다....제대로 표현하면 불생불멸!!! 태어나지 않으니 괴로움도 없고 멸함도 없는 것이다..._()_

  • 작성자 07.07.27 12:41

    一切法不生 一切法不滅 , 若能如是解 諸佛常現前 (화엄경), 是法住法位 世間相常住 (법화경) : 여래장이 상견이라고 하니 일체법 불생불멸하니 제불이 항상 존재한다고 하니 이것도 상견이네요. 소슬님! "불생불멸"은 常입니까? 無常입니까? 도대체 어떠한 상태를 불생불멸이라고 합니까? 불생불멸의 어휘가 등장하는 아함부 경전이 있습니까?

  • 07.07.27 12:20

    불생불멸의 어휘가 등장하는 아함부 경전이 있습니까? : 없습니다^^ ㅎㅎㅎ 언어에 들어있는 함축된 뜻을 제멋대로 번역하여 마치 제불이라는 산냐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화엄경 법화경이란 뒤섞여 사는 세상에 그냥 불법이 무인가를 맛베기 보여주는 보살수준의 경일 뿐! 하근기의 사람들을 위한 경이고 또한 화합을 제일로치는 자비심으로 써내려 선재동자의 구도기....세상에 이런 사람들이 있구나. 세상에 이런 선생들이 있구나. 선지식 shopping을 온몸으로 다닌 선재동자의 구법의 과정 속에 나타난 이야기입니다..._()_

  • 07.07.27 12:22

    화엄경 법화경, 대승기신론에 나타나는 중요한 key를 빼고는 그냥 믿음 돋아주는데 약으로 쓰시길...근데 믿음은 계율청정, 법의 자비함, 승가의 청정!!! 이것으로 족하지요...._()_...

  • 07.07.27 12:26

    반야심경에 나타나는 불생불멸 불구부증....반야심경...믿음을 돋구기 위한 원기회복의 약방문!!! Lets go Lets go to the Paradice.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_()_

  • 07.07.27 12:33

    대승기신론은 신라가 고유의 믿음신앙! 풍류도! 신선사상!(사유상은 조선의 사고체계를 제대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소슬은 반가사유상을 신선을 꿈꾸는 청년으로 본다)이라는 엔진을 갈아치우기위해 시대적으로 도입된 것이다....개인적으로 원효스님의 대승기신론을 좋아합니다만...._()_

  • 작성자 07.07.27 12:53

    천년이상 중국, 한국, 일본 등 그동안 존재했던 수많은 불자들은 왜곡된 부처님 가르침만 보다가 사라졌겠네요.... 법화경과 화엄경은 범어본이 있다하니 부처님이 태어나신 나라에서도 제대로된 부처님 교설을 보고 가지 못한 불자가 상당하겠네요....

  • 작성자 07.07.27 09:17

    고마타 부처님께서는 이세상에 오셨다가 가셨습니다. 소슬님 께서는 [몸은 허물어져도 없어져도 마음만은 영원하다는 이야기의 진원지가 바로 여래장계통의 견해라는 소리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몸을 가지고 이땅에 오셨다 가신 고마타 부처님은 몸도 버리고 마음도 소멸했다는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닙니까? 소슬님의 견해로 여래장이 상견이라면 몸도 마음도 멸해 버린 것은 단견이 되지 않습니까?

  • 07.07.27 12:00

    < 마음이란 무엇인가? > 마음은 물질이 아니고 비 물질이다. 마음은 비 물질이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느낌과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이것들을 일으키는 마음을 알 수가 있다. 마음은 매 순간마다 빠르게 일어나고 사라진다.앞선 마음이 사라지면 뒤에 마음이 새로 일어난다.새로 일어난 마음은 있던 마음과 다른 마음이다. 마음은 있지만 항상 하는 마음이 아닌 것이다. 항상 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으며 조건에 의해 계속 변하기 때문에 나의 마음이 아니다.

  • 07.07.27 12:02

    마음은 물질 없이 혼자서 존재하지 못하며 물질과 함께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게 된다. 마음이 지속하는 시간은 빛이 번쩍하는 순간의 백만분의 일보다 짧은 순간에 머물면서 변한다. 마음은 일어났다가 사라지지만 종자가 있어서 다음 마음에 과보를 전하고 사라진다. 그래서 마음은 과보의 힘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이 과보가 바로 종자, 조건, 정보, 원인과 결과다. 이처럼 나라고 하는 정신과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은 먼저 행위가 있고 그 행위에 대한 과보가 만든다.

  • 07.07.27 12:06

    매순간 생멸하는 마음은 한 마음이 아니므로 어제 있었던 마음이 오늘의 마음이 아니다. 현재의 마음이나 조금 뒤의 일어난 마음들은 조건에 의해 흐르고 있는 새로운 마음들이다. 나의 마음이 있다면 죽을 때 호흡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숨을 쉴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야 한다. 죽기 전의 마지막 호흡임을 알아도 어쩔 수 없이 숨을 거두어야 하며 마지막 마음조차도 끝내야 한다. ......묘원님의 글을 인용하며...._()_

  • 작성자 07.07.27 12:14

    묘원님의 견해도 단견(斷見)이네요. [죽기 전의 마지막 호흡임을 알아도 어쩔 수 없이 숨을 거두어야 하며 마지막 마음조차도 끝내야 한다] 몸도 마음도 끝나버리네요. 영원히 상주하는 거나 단멸해 소멸하는 거나 불교의 중도는 아니죠...

  • 작성자 07.07.27 09:50

    그리고, 제법무아의 의미는 어떤 것입니까? 무아를 설명한 경전 구절을 인용해 주시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법구경의 제법무아의 법은 유무위법을 포함하는 담마로 기술되어 있지만 아함부 경전에서는 유위에서만 무아가 나옵니다. 어느것이 불설에 맞는 걸까요? )

  • 07.07.27 14:14

    언제 잘 정리하여 서로 탁마하였으면 합니다...차한잔 올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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