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모임은 흔히 다른 집단을 배제하고 비난하는 배타적이고 이기적인 파벌로 발전하기도 했다. 패거리를 짓고 작당을 잘 하는 사람들이 사회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학교수 자리를 놓고 벌이는 암투도 사실은 자기 사람을 심기위한 패거리 교수들 간의 싸움인 경우가 많다. 학벌, 재벌, 문벌, 군벌, 파벌 등은 모두 어느 영역에나 배타적인 지배 집단이 존재함을 말해준다. 장관, 교수 임명에서 자격과 능력을 기준으로 한다지만 내용적으로는 가족, 친척, 사제, 선후배, 동창, 동향 등의 연분이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기에 줄을 잘 서야 인생이 편하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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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공적인 문제를 공적으로 해결하는 기재를 발전시키지 못한 편이다. 노인, 장애인, 육아, 건강의료 문제는 모두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겪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집합적인 관심을 가지면 더 효과적이고 인간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데도 개인적인 수준을 넘어서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제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인은 공동의 문제를 사회적으로 처리하기 보다는 모두 개인적인 방식으로 해결한다. 공동탁아소의 운영이나 장애자를 위한 공동시설의 설치를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각자가 겪는 어려움을 타인의 개인적 도움을 받아서 해결하는 것이다.
일상적인 문제나 고민거리가 생기면, 주로 가족, 성직자, 학교 선배, 고향 사람, 직장 상사 등과 고민한다. 이는 개인의 사회적 관계망이 특수한 연줄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동창회, 종친회, 향우회, 취미단체 그 어느 모임이든 구성원의 결혼식, 장례식 등의 경조사가 있으면 반드시 참석하여 부조금을 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부조금은 큰 일을 당한 사람들을 모임의 구성원들이 개인적인 수준에서 돕는 행위이다. 이런 것을 한국형 사회복지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지만, 아는 사람들끼리 폐쇄적 집단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전근대적 속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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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은 성인의 80%가 자발적 결사체의 회원이며, 성인 1인당 가입 단체수가 1.63개이다. 만약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많은 사적 모임이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자발적 조직의 성격을 갖게 된다면, 스웨덴 못지 않은 다양한 공적 영역이 활성화될 것이다.
/ 정수복 ‘시민이식과 시민참여’
첫댓글 스웨덴 대단하군요. 근데 저기는 노조가 활성화 되서 그런것이 아닐까요? 아무튼 예전에 신문을 돌리는 장애인 사진을 보며.. 이 나라의 복지수준을 개탄하는 반응보다 자신의 게으름을 탓하는 반응이 더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이 기억나네요.
노조와 시민단체는 별개의 차원이 아니죠. 시민단체가 강한것은 그만큼 시민들의 사회의식이 높다는 것이고, 당연히 노조가 강력해집니다. 근데 스웨덴의 경우는 님 말씀대로 강력한 노조와 사민주의 정당이 70년 이상 이끌어왔고, 그것을 기반으로 시민단체와 시민의식이 더욱 배가 되었다고 보면 될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