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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 비문 전문 해석
國罡上廣開土境好太王(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
<해석 : 전북대 김병기 교수>
1면 1행
惟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天帝之子, 母河伯女郞, 剖卵降出*, 生而*有聖德*, #####命駕
유석시조추모왕지창기야, 출자북부여천제지자, 모하백여랑, 부란항출*, 생이*유성덕*, #####명가
옛날에 시조인 추모왕이 나라를 건립할 때에 그의 부친은 북부여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여랑으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태어나자 곧 성덕이 있었다.
- 世* : 出로 읽음. 水谷悌二郞만 世로 봄
- 而* : 子(雙勾本)
- 德* : 두이변만 보임.
- 駕 : 멍에 가, ①멍에 ②탈것 ③임금의 수레 ④타다
1면 2행
巡幸*南下, 路由夫餘奄利大水, 王臨津*, 言曰, “我是皇天之子母, 河伯女郞, 鄒牟王,
순행*남하, 로유부여엄리대수, 왕임진*, 언왈, “아시황천지자모, 하백여랑, 추모왕,
爲我木連葭浮龜“ 應聲卽爲(我連葭浮龜;3행)
위아목연가부구“ 응성즉위(아연가부구:3행)
순행 남하하였다. 그는 남하하는 길에 부여의 엄리대수를 지나게 되었다. 왕은 나루에 이르러
말했다. “나는 황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나를 위해 거북을 띄워 배로 삼고
갈대로 다리를 만들어라” 소리에 따라 즉시 거북과 갈대로 이루어진 다리가 나타났다.
- 幸* : 車
- 津* : 聿
- 葭 : 갈대 가 ① 갈대 ② 멀다 ③ 아득함 ④ 갈잎 피리
1면 3행
(我?)連葭浮龜, 然後造渡, 于沸流*谷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 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下迎王.
(아?)연가부구, 연후조도, 우비류*곡홀본서, 성산상이건도언. 불락세위, 인견황룡래하영왕
王于, 忽本東岡, 黃*(龍負*升天;4행)
왕우, 홀본동강, 황*(용부*승천:4행)
연후에 강을 건넜다. 비류곡 홀본지방 서쪽의 산 위에 성을 쌓아 도읍을 삼았다.
세상의 왕위를 즐기지 않아 (하늘은)황룡을 보내 왕을 영접하였다.
왕은 문득 홀본 동강에서 황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 于 : 於로 표현한 경우도 있음.
- 沸流* : 송양의 전설과 관계가?
- 不 : 求로 표현한 경우도 있음
- 黃* : 水谷悌二郞은 履로 봄.
- 負* : 水谷悌二郞은 首로 봄.
1면 4행
龍負升天. 顧命世子儒留王, 以道興*治, 大朱留王, 紹承基業遝*至十七世孫, 土廣開土境平安好太王
용부승천. 고명세자유류왕, 이도흥*치, 대주류왕, 소승기업전*지십칠세손, 토광개토경평안호태왕
유명을 이어받은 세자 유류왕이 치국지도로 사업을 진흥시켜 국가가 大治되었다.
대주류왕은 양대의 기업을 계승하여 계속 발전했다.
이어 17세를 전하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다.
- 興* : 大
- 遝* : 윗부분에 四자가 남아있음. 朴時亨은 遝(=及)으로 봄. 傳로 표현한 것도 있음
1면 5행
二九登柞, 號爲永樂太王. 思澤洽*于皇天, 威武柳被四海. 掃除不#, 庶寧其業, 國富民殷, 五穀豊熟.
이구등작, 호위영락태왕. 사택흡*우황천, 위무류피사해. 소제불#, 서령기업, 국부민은, 오곡풍숙.
昊天不(弔:6행)
호천불(조:6행)
18세에 즉위하여 존호를 영락태왕이라 했다. 그의 은택은 황천과 같았고, 그의 무공은 사해에
진위하였다. 외래의 침략을 제거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평안히 그 업에 종사할 수 있게 했다.
국가는 부유하고 백성도 은실(殷實)했다. 오곡이 풍숙했다. 하늘은 왜 우리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가?
- 洽* : 合, 和 , 洽 [qià] ① 화목하다 ② 의논하다 ③ 널리 ④ 화합하다 ⑤ 교섭하다
- 于 : 汚라고 한 글도 있음.
- 桭* : =振, 雙勾本은 柳로 봄.
1면 6행
弔, 십*有九, 宴駕棄國. 以甲寅年九月卄九日乙酉, 遷就山陵. 於是立碑, 銘記勳績, 以求後世焉其詞*曰
조, 십*유구, 연가기국. 이갑인연구월입구일을유, 천취산릉. 어시입비, 명기훈적, 이구후세언기사*왈
39세에 국가와 세상을 사별해 내던지니, 갑인년 9월 29일 을유에 왕을 안장했다.
그 앞에 비를 세워 왕의 훈적을 명기하여 후세인에게 보이노라. 각사(刻詞)로 말한다.
- 십* : 卄에 작대기가 하나 더 있는 모양으로 삼십을 뜻함. 州로 표시된 글도 있음.
- 詞* : 水谷悌二郞은 辭로 봄.
1면 7행
永樂五年, 歲在乙未, 王以碑麗*不歸*#人, 躬率往討, 過富山*負碑至鹽水*上, 破其三*部落六七百營*,
영락오년, 세재을미, 왕이비려*불귀*#인, 궁솔왕토, 과부산*부비지염수*상, 파기삼*부낙육칠백영*,
牛馬群(羊;8행)
우마군(양:8행)
영락5년은 을미년으로 왕은 비려가 고구려 함몰인들을 귀환해 주지 않기 때문에 몸소 토벌에
나섰다. 부산을 넘어 산을 등에 지고 염수에 이르러 비려의 3부락 6~7백명을 파하고 소, 말, 양떼를
- 碑麗* : 거란의 한 지파. 태자하 상류지역에서 활동. 고구려와 인접하여 늘 전쟁 상태.
(소수림왕 8년 9월)
- 歸* : 息
- 人* : 又
- 歸*#人 => 息愼貢又 명시된 글도 있음.
- 富山* : 당시 현도군과 고구려 중간 위치. 현재의 우모대산.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조, 삼국사기 등에 보임.
- 鹽水* : 1. 동가강설
2. 천관우 - 시라무렌강(요하줄기)
3. 왕건군 - 태자하
- 三* : 丘
- 落* : 이형구는 族으로 봄.
- 營* : 當
위 내용은 삼국사기 원년의 일로 보고 있음. 삼국사기에 따르면 “북으로 거란 정벌, 남녀 5백 명을
사로잡고 본국인으로 사로잡혔던 백성 1만인을 설유하여 귀국하게 하였다.”
1면 8행
羊, 不可稱數, 于是旋駕, 因過襄*平*道, 東來#城, 力城*, 北豊*, 王備獵*, 游觀土境*, 田獵而還.
양, 불가칭수, 우시선가, 인과양*평*도, 동래#성, 역성*, 북풍*, 왕비엽*. 유관토경* 전엽이환.
百殘, 新羅, 舊是屬民,
백잔, 신라, 구시속민,
헤아릴 수 없이 노획했다. 그곳에서 돌아오면서 양평도를 거쳐 동으로 왔다. #성, 역성, 북풍에
이르러 왕은 사냥준비를 시켰다. 순유와 사냥을 하며 돌아왔다. 백잔(=백제), 신라는 옛 속국으로
- 襄* : 雙勾本은 鍔에서 쇠금변을 뗀 글자로 봄. 駕라는 글자로 표현된 글도 있음.
- 襄平* : 지금의 요양
- # : 部로 된 경우도 있음.
- 力城* : 요동군에 속함(진서 지리지에 보임)
- 北豊* : 지금의 통화일대. 발해의 풍주.
- 獵* : 獵의 간자로 쓰여져 있음.
- 土境* : 국토를 가리키는 말.
왕건군은 430년대에서야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했다고 주장. 385년 고국양왕이 요동 점령, 같은 해에
연의 모용농이 회복했다고. 그러나 광개토왕 14년에 연 모용희가 요동성 공격에 실패하고 있음.
1면 9행
由來朝貢, 而倭*以辛卯*年來, 渡海破百殘##*#羅, 以爲臣民,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 討伐*殘國.
유래조공, 이왜*이신묘*년래, 도해파백잔##*#라, 이위신민, 이육년*병신, 왕궁솔수군, 토벌*잔국.
軍至窠南,
군지과남,
조공을 바쳐왔다. 그러나 신묘년 이래로 왜가 바다를 건너 백잔과 신라를 쳐 신민으로 삼았다.
때문에 6년 병신에 왕은 몸소 수군을 인솔하여 백잔국을 토벌했다. 군사가 백잔소굴 남쪽에 이르러
- 倭* : 이형구는 後로 봄.
- 辛卯* : 광개토대왕 원년
- ##* : 이형구는 倭寇로 봄.
- 六年* : 396년
- 伐* : 雙勾本은 利로 봄.
정인보는 “도해파”의 주어를 고구려로 보고 목적어 왜가 생략되어 있다고 여김.
(박시형도 같은 의견). 菅政友는 “도해, 파백잔”으로 읽음.
김석형은 “왜이신묘년래 (고구려가) 도해파백잔. (고구려가) 신라
城, 勾牟城, 古莫耶羅城, 須*鄒城, ##城, #而耶羅城, 전城, 於利城, 農賣城, 豆奴城, 沸城,
성, 구모성, 고막야라성, 수*추성, ##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농매성, 두노성, 비성,
比(利城*; 2면1행)
비(리성* 2면1행),
- 須* : 이형구는 彌로 봄(비류가 자리잡았던 미추홀). 貢, 莫자로 보는 경우도 있음.
- 比利城* : 진흥왕 순수비의 碑利城과 관련?
광개토대왕 비문 - 2면 0
2면 1행
利城, 彌鄒城, 也利城, 大山韓城, 掃加城, 敦拔城, ###城, 婁賣城, 散那城, 那旦城, 細城, 牟婁城,
리성, 미추성, 예리성, 대산한성, 소가성, 돈발성, ###성, 누매성, 산나성, 나단성, 세성, 모루성,
蘇赤*(城;2행)
소적*(성:2행)
- 미* : 彌의 고자.
- 赤* : 灰
2면 2행
城, 燕婁城, 析支利城, 巖門종*城, 林城, ###, ###, #利城, 就鄒城, #拔城, 古牟婁城*, 閏奴城,
성, 연루성, 석지리성, 암문종*성, 임성, ###, ###, #리성, 취추성, #발성, 고모루성, 윤노성,
貫奴城, 彡穰(城;3행)
관노성, 삼양(성:3행)
- 종* : 뫼 산 밑에 날 일자=>이런 글자는 없음. 뜻은 至
- 古牟婁城* : 중원 고구려비에 보임.
2면 3행
城, 曾拔城, 宗古盧城, 仇天城, ####逼其國城, 殘不服義, 敢出迎戰. 王威赫怒, 渡阿利水*,
성, 증발성, 종고노성, 구천성, ####핍기국성, 잔불복의, 감출영전. 왕위혁노, 도아리수*,
遣刺*迫城, 殘兵
견자*박성, 잔병
그 국성에 다가갔다. 백잔은 의에 복종하지 않고 감히 나와 영전했다.
왕은 위엄으로 대로하여 아리수를 건너 선두부대를 보내 성으로 진격했다. 백잔 군대는
- 阿利水* : 한강
2면 4행
歸穴, 就便圍城. 而殘主*困逼, 獻出男女生口*一千人, 細布千匹, 跪王自誓, 從今以後, 永爲奴客*.
귀혈, 취편위성. 이잔주*인핍, 헌출납여생구*일천인, 세포천필, 궤왕자서, 종금이후, 영위노객.
太王 恩赦始*
태왕 은사시*,
구렁으로 돌아갔다. 쫓아 이어 성을 포위했다. 백잔의 주는 곤경에 빠져 남녀 생구 1천인과
세포 1천필을 헌납하고 왕 앞에 꿇어 앉아 맹세했다. “지금으로부터 이후 영원히 노객이 되겠소”
태왕은 은혜를 베풀어 용서하고
- 而殘主* : 이진희는 百殘王이라고 봄. 그러나 비문에서 고구려왕 이외 왕의 호칭이 보이지 않는다.
- 生口* : 노비보다 하층으로 인간 대우를 하지 않는 존재(이종욱)
- 奴客* : 牟頭婁 묘지 墨書銘에도
1. 大使者牟頭婁#奴客
2. 聖王奴客祖先
3. 奴客牟頭婁 등이 나타난다.
일종의 귀족 신분으로 신하가 왕에게 자신을 일컬을 때 쓴 말인듯.
- 始* : 水谷悌二郞은 先으로 봄
2면 5행
迷之愆, 錄其後順之誠. 於是得*五十八城, 村七百, 將殘主*弟幷大臣十人, 旋師還都. 八年戊戌*,
미지건, 록기후순지성. 어시득*오십팔성, 촌칠벡, 장잔주*제병대신십인, 선사환도. 팔년무술*
敎遣偏師*觀*(帛愼土谷;6행)
교견편사*관*(백신토곡:6행)
미혹하여 저지른 허물을 용서하고 뒤에 그가 공손한 성의를 다 할 것인지를 살피기로 했다.
이번에 58성과 7백촌을 얻었다. 백잔주의 아우와 대신 10인을 이끌고 개선군대를 거느리고
환도했다. 8년 무술에 군대를 변경의 백신토곡에 보내어 살피게 하여
- 愆 허물 건 ① 허물 ② 어기다 ③ 잃다 ④ 병
- 得* : 拔
- 主* : 이형구는 王으로 봄
- 戊戌* : 398년. 백제 아신왕 2년, 관미성 공격 실패.
- 偏師* : 전체 군대 중의 일부분
- 觀* : 천관우 - ‘관찰’의 뜻으로 복속관계의 확인
왕건군 - 자기 국경의 순시
박시형 - 무력 시위의 ‘관병’
2면 6행
帛*愼土谷, 因便抄莫斯羅城, 加太羅谷男女三百餘人. 自此以來, 朝貢論事. 九年己亥*, 百殘違誓,
백*신토곡, 인편초막사라성, 가태라곡남녀삼백여인. 자차이래, 조공논사. 구년을해*, 백잔위서,
與倭和*(通;7행)
여왜화*(통:7행)
인하여 다시 막사라성, 가태라성에서 남녀 3백여인을 잡아왔다. 이 이후로 조공하여 일을
논하게 되었다. 9년 기해에 백잔은 자기의 맹세를 위반하고 왜와 더불어 통호했다.
- 帛* : 천관우는 息으로 보아 영안지방의 숙신(말갈)으로 파악.
왕건군은 이 부분을 모두 백제와의 관계에서만 파악한다.
(그러나 왕제까지 잡아온 마당에 조공관계를 논하지 않았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형구는 肅으로 봄. 津田左右吉은 帛으로 보고 경원지방 비정. 이형구는 이에 대해
지방인과 조공으로 논사를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표시함.
- 己亥* : 399년. 十年 庚子조와 함께 임나일본부의 근거로 삼고 있다.
- 和* : 이형구는 賊으로 봄
2면 7행
通, 王巡下平穰. 而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 潰破城池, 以奴客爲民*,
통, 왕순하평양. 이신라견사백왕운, 왜*인만기*국경, 궤파성지, 이노객위민*,
歸王請命. 太王恩慈*, 稱其忠誠,
귀왕청명. 태왕은자*, 칭기충성,
왕은 남으로 평양을 순유했다. 그리고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왕에게 아뢰었다. 왜인이 나라 안에
가득 차 성과 못이 파괴되니 노객(신라왕)은 백성으로써 왕의 명을 듣기를 원한다고 했다.
태왕은 인자하여 그들의 충성을 칭찬했다.
- 倭* : 이형구는 殘으로 봄
- 其* : 이것으로 보아 신라 사신의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님
- 以奴客爲民* : 일본학자와 왕건군은 “대왕의 노객을 천민으로 만들었다”라고 해석
- 慈* : 後
2면 8행
特遣使還, 告以密*計. 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住*救新羅. 從男居城*至新羅城*, 倭滿其中.
특견사환, 고이밀*계. 십년*경자, 교견보기오만왕*구신라. 종남거성*지신라성*. 왜만기중.
官軍*方至, 倭賊退.
관군*방지, 왜적퇴.
신라 사신을 특별히 돌려보내며 비밀계획을 말했다. 10년 경자에 보병, 기병 5만을 파견하여 신라를
구원하게 했다. 남거성으로부터 신라성에 걸쳐 왜인이 가득했다. 관군이 도착하자 왜적은 퇴각했다.
- 密* : 雙勾本은 口로 봄
- 十年* : 400년. 신라 내물 이사금 45년으로 이시기에 주목할 만한 기사는 없음.
단 393년 왜인이 금성을 포위하고 5일 동안이나 공격했다는 기사는 있음.
- 住* : =往(비문에 往자는 모두 住로 되어 있음)
- 男居城* : 박시형은 고구려 성으로 봄. 왕건군은 신라 남부의 성으로 봄
- 新羅城* : 국도
- 軍* : 兵(초기 雙勾本)
2면 9행
#######自倭*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戍兵. 拔新羅城, 鹽*城, 倭寇大潰*, 城內
#######자왜*배급추지임나가라*종발성, 성즉귀복, 안라인*수병. 발신라성, 염*성, 왜구대궤*, 성내
** 2면 9행의 처음 7자는 글자가 없는 부분으로 판독됨(왕건군).
왜의 배후를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까지 이르자 성은 즉각 항복하여
신라인으로 지키게 하였다. 신라성과 염성을 장악하여 왜구는 크게 무너졌다. 성안의
- 倭* : 기존의 판독에서는 來로 보았음
- 任那加羅* : 금관가야. 삼국사기 강수전에 본래 임나가량인이라는 대목이 있음.
昌原 鳳林寺 眞鏡大師 寶月凌空塔碑(924)에 선조가 임나의 왕조이다라고 적혀 있음.
- 安羅人* : 일본학자들은 安羅를 아라가라의 다른 명칭으로 임나일본부의 용병이라고 해석한다.
신공황후 49년 3월조에 보면 신라의 安羅卓淳 등 7국 점령...이라는 기사가 있음.
그러나 왕건군은 安은 동사로 羅人은 新羅人으로 봄.
- 戍 수자리 수 ① 수자리 ② 경비하다 ③ 국경을 지키다 더보기
- 鹽* : 이형구는 農으로 봄
- 寇 도둑 구 ① 도둑 ② 원수 ③ 약탈하다 ④ 적(敵)
- 倭寇大潰* : 雙勾本에 倭滿倭潰로 적혀 있다. 이진희는 이점을 들어 비문조작의 구체적 증거로 봄.
2면 10행
################十九, 盡拒隨倭*, 安羅人戍兵. 新*羅城##其#######言
################십구, 진거수왜*, 안라인수병. 신*라성##기#######언
**2면 10행 앞 16자는 글자가 없는 부분으로 판독됨(왕건군).
십분의 구는 왜를 모두 따라가기를 거절하여 신라인으로 수성하게 했다. 신라성......
- 拒隨倭* : 臣有來, 更有來, 臣隨來, 臣順來
- 新* : 이진희의 주장으로는 이 글자는 샤반느 탁본에 滿으로 나타나 있어 위조의 증거라고 함.
3면 1행
##且#######################辭###出#######殘*倭潰(逃;2행)
##차#######################사###출#######잔*왜궤(도:2행)
나머지 왜구는 무너져 흩어져 도망갔다.
- 殘* : 백잔?
3면 2행
逃. 拔#城, 安羅人戍兵. 昔新羅寐錦*, 未有身來論事*, ####廣開土境好太王####*寐錦#家僕句*
도, 발#성, 안라인수병. 석신라매면*, 미유신래논사*, ####광개토경호태왕####*매면#가복구
#성을 탈취하여 신라인을 안치하여 지키게 했다. 전에 신라 이사금은 스스로 와서
조공청명함이 없었다. 광개토경호태왕에 이르러 이사금은...
- 寐錦* : 중원고구려비에도 보인다. 이사금 또는 마립간의 뜻일 것.
- 論事* : = 朝貢
- ##* : 뒤에 寐錦이 있는 것으로 보아 新羅일 것이다.
- 僕句* : 佐伯有淸은 실성 이사금 11년 (412년)에 나오는 卜好와 동일인물로 봄
3면 3행
請###朝貢. 十四年甲辰*, 而倭不軌, 侵入帶方*界, 和通殘兵#*石城, #連船###, 王躬率住*討, 從平穰
청###조공. 십사년갑진*, 이왜불궤, 침입대방*계, 화통잔병#*석성, #연선###, 왕궁솔왕*토, 종평양
...조공했다. 14년 갑진에 왜는 양국의 관계를 파괴하고 대방의 경계를 침입하여 백잔병과 연합하여
석성을 공격했다. ...왕이 몸소 병사를 영도하여 토벌했다. 평양을 떠나
- 甲辰* : 404년
- 帶方* : 김석형은 불분명하다고 이진희는 위조라고 함.
- #* : 下, 攻, 取로 추정함
- 住* : = 往
- 率 : “율”이라고 된 것은 잘못됨. “솔”이라고 해야 함.
삼국사기 4년 (395) 8월에 백제와 패수 위에서 싸워 이를 파하고 8천여명을 사로잡았다.
백제 아신왕 4년 8월 좌장 진무 등으로 고구려 공격, 담덕이 친히 군사 7천으로 항전으로
백제 대패. 6년에 왜와 결호. 태자를 인질로 보냄.
3면 4행
###鋒相遇, 王幢要截盪刺, 倭寇潰敗, 斬煞無數. 十七年丁未*, 敎遣步騎五萬, ########. 王師
###봉상우, 왕당요절탕자, 왜구궤패, 참살무수. 십칠년정미*, 교견보기오만, ########. 왕사
선봉이 적과 만났다. 왕의 군대는 길을 끊고 막아 사방에서 추격하여 살해하여
왜구는 궤멸되어 패했고 참살된 자가 무수했다.
<17년 정미~ 이후 해석 누락됨, 빙혼 : 보병과 기병 5마을 파견하여.....왕사는~~>
- 丁未* : 407년 후연 모용희 建始 1년, 전지왕 3년
- 17년 정미조의 정토 대상 국가는?
1. 今西龍 - 倭
2. 三宅米吉, 박시형, 김석형 - 백제(왕건군은 백제쪽에 기록이 없다고 반박)
3. 이병도 - 가야, 왜
4. 김정학 - 왜, 백제
5. 浜田耕策 - 선 왜, 후 백제
6. 문정창, 정두희, 천관우 - 후연(자치통감 403년 숙군성 공격)
3면 5행
四方合戰, 斬煞蕩盡. 所獲鎧甲一萬餘領, 軍資器械, 不可稱數. 還破沙溝城, 婁城, 牛#*城, #城, #####
사방합전, 참살탕진. 소획개갑일만여영, 군자기계, 불가칭수. 환파사구성, 루성, 우#*성, #성, #####
사방 포위 작전을 썼다. 적은 전부 참살되었으며 개갑 만여령을 노획하고
군자 기계는 수를 셀 수 없었다. 돌아오며 사구성, 누성, 우#성, #성, ...
- #* : 없는 글자가 아니고 田위에 삐침 =>이런 글자는 “由” 아니면 없음.
3면 6행
#城. 卄年庚戌, 東夫餘*舊是鄒牟王屬民, 中叛不貢. 王躬率住討, 軍到餘城*, 而餘擧*國駭服. 獻出####
#성. 卄년경술, 동부여*구시추모왕속민, 중판불공. 왕궁솔왕토, 군도여성*, 이여거*국해보. 헌출####
#성을 빼앗았다. 20년 경술, 동부여는 옛적에 추몽왕의 속민이었는데 중도에 이반하여
다시는 조공하지 않아 왕은 몸소 군대를 이끌고 동부여를 토벌했다.
왕이 동부여의 도읍에 다다르자 동부여는 두려워하여 항복했다.
- 東夫餘* : 이병도는 동예지방으로 천관우는 두만강 하류로 봄
- 擧* : 城
- 餘城* : 부여의 국도
3면 7행
##. 王恩普覆*, 于是施還. 又其慕花隨官來者, 味仇婁鴨盧*, 卑斯盧鴨盧, 타社婁鴨盧, 肅斯舍鴨盧, ###
##. 왕은보부*, 우시시환. 우기모화수관래자, 미구루압노*, 비사노압노, 타사루압노, 숙사사압노, ###
...왕의 은혜가 고루 미치자 왕이 돌아왔다. 그 교화를 흠모하여 관군을 따라온 자가
미구로 압로, 타사루 압로, 숙사사 압로, ###
- 覆* : 덮을 부
- 鴨盧* : 귀족의 명칭?
이병도 - 수장의 직명
박시형, 왕건군 - 동부여의 귀족
三宅米吉 - 동부여의 위호
佐伯有淸 - 인명
3면 8행
鴨盧. 凡所攻破城六十四*, 村一千四百. 守墓*人烟戶*. 賣句餘*民*國烟二看*烟三*.
압노. 법소공파성육십사*, 촌일천사백. 수묘*인연호*. 매구여*민*귝연이간*연삼*.
東海賈*國烟三看烟五, 敦城
동해가*국연삼간연오, 돈성, ,
압로였다. 무릇 성 64개를 공파하고 촌 1천4백을 취득했다. (광개토왕의) 수묘인연호다.
매구여의백성은 국연2 간연3. 동해가는 국연3 간연5, 돈성
- 六十四* : 영락6년의 58개성과 17년의 6개성을 합한 성의 수로 봄.
박시형은 8년조의 막사라성과 가태라곡을 합하면 66이 되므로 64성이란 동부여에서 얻은 성의 숫자라고 주장
- 守墓* : 삼국사기 열전 명림답부전(179년), - 質山에 장례 지내고 수묘 20가를 두었다.
- 戶* : 왕건군은 이것이 대량의 노예戶라고 함.
- 賣句餘* : 지방명. (고구려의 구민?)
- 民* : 왕건군은 民은 노예를 뜻한다고 함.
김석형은 良人으로 봄
이형구는 수묘인이 되기 전에는 노예였다가 수묘인이 되고나면 양인이 된다고 함.
- 看* : 조인성은 看이 간수, 간호의 뜻이라고 봄
- 賈* : 왕건군은 商戶의 뜻으로 천민으로 판정
박시형은 谷으로 보아 東海谷으로 봄
東海谷은 삼국사기 태조왕 55년조에 보임
- 國烟二看*烟三* : 국연과 간연은 1:10 정도 비율. 국연이 보다 상위개념일 듯.
박시형은 국연1 + 간연10의 집단으로 파악
3면 9행
民四家盡爲看烟. 于城一家爲看烟. 碑利城二家爲看烟. 平穰城民國烟一看烟十. 此連二家爲看烟. 徘婁
민사가진위간연. 우성일가위간연. 비리성이가위간연. 평양성민국연일간연십. 차연이가위간연. 배루
백성의 4가는 모두 간연이 된다. 우성의 일가는 간연이 된다. 비리성의 2가는 국연이 된다.
평양성 백성은 국연1, 간연10. 차련2가는 간연이 된다. 배루
3면 10행
人國烟一看烟십*三. 梁谷*二家爲看烟. 安夫連卄二家爲看烟. 改谷三家爲看烟. 新城*三
인국연일간연십*삼. 양곡*이가위간연. 안부연卄이가위간연. 개곡삼사위간연. 신성*삼
인은 국연1, 간연43. 양곡2가는 간연이 된다. 양성2가는 간연이 된다. 안부련 22가는 간연이 된다.
개곡3가는 간연이 된다. 신성3
- 십* : 卄 + 卄 사십
- 梁谷* : 梁貊之谷 (요양지방)
- 新城* : 서천왕 7년 (276) 왕이 신성에 이르렀다.
봉상왕 2년 (293) 5년 (296) 전연의 모용외와 신성에서 충돌
광개토왕 9년 (399, 400) 거기대장군 모용희가 선봉이 되어 신성, 남소 2성을 장악했다.
박시형은 심양으로 왕건군은 집안현 서북, 혼강 일대로 봄
3면 11행
家爲看烟. 南蘇城*一家爲國烟. 新來韓穢沙水城國烟一看烟一. 牟婁城二家爲看烟. 豆此鴨岑韓五家爲
가위간연. 남소성*일가위국연. 신래한예사수성국연일간연일. 모루성이가위간연. 두차압잠한오가위
가는 간연이 된다. 남소성1가는 국연이 된다. 새로 들어온 한예로 사수성은 국연1, 간연1.
모루성의 2가는 간연이 된다. 두차압 잠한의 5가는
- 南蘇城* : 신성 부근
3면 12행
看烟. 句牟客頭二家爲看烟. 求底韓一家爲看烟. 舍蔦城韓穢國烟三看烟卄一. 古模耶羅城一家爲看烟.
간연. 구모객두이가위간연. 구저한일가위간연. 사조성한예국연삼간연이일. 고모야라성일가위간연.
간연이 된다. 구모객두2가는 간연이 된다. 구저한1가는 간연이 된다.
사조성의 한예는 국연3, 간연21. 고모야랴성 1가는 간연이 된다.
3면 13행
炅古城國烟一看烟三. 客賢韓一家爲看烟. 阿旦城, 雜珍城合十家爲看烟. 巴奴城韓九家爲看烟. 臼模盧
경고성국연일간연삼. 객현한일가위간연. 아단성, 잡진성합십가위간연. 파노성한구가위간연. 구모노
경고성은 국연1, 간연3. 객현한1가는 간연이 된다. 아단성, 잡진성의 합10가는 간연이 된다.
파노성한의 9가는 간연이 된다. 구모로
3면 14행
城四家爲看烟. 各模盧城二家爲看烟. 牟水城三家爲看烟. 干저利城國烟二看烟三. 彌鄒城國烟一看烟
성사가위간연. 각모로성이가위간연. 모수성삼가위간연. 간저리성국연이간연삼. 미추성국연일간연
성의 4가는 간연이 된다. 각모로성의 2가는 간연이 된다. 모수성의 3가는 간연이 된다.
간저리성은 국연2, 간연3. 미추성은 국연1, 간연
4면 1행
七. 也利城三家爲看烟. 豆奴城國烟一看烟二. 奧利城國烟二看烟八. 須鄒城國烟二看烟五. 百
칠. 야리성삼가위간연, 두노성국연일간연이. 오리성국연이간연팔. 수추성국연이간연오. 백
7. 야리성의 3가는 간연이 된다. 두노성은 국연1간연2. 오리성은 국연2간연8. 수추성은 국연2간연5.
4면 2행
殘南居韓, 國烟一看烟五. 大山韓城六家爲看烟. 農賣城國烟一看烟七. 閏奴城國烟一看烟卄二. 古牟婁
잔남거한, 국연일간연오. 대산한성육가위간연. 농매성국연일간연칠. 윤노성국연일간연십이. 고모루
(백은 1행에 있음)잔 남거한은 국연1간연5. 대한산성 6가는 간연이 된다.
농매성은 국연1간연7. 윤노성은 국연1간연22. 고모루
4면 3행
城國烟二看烟八. 전*城國烟一看烟八. 味城六家爲看烟. 就咨城五家爲看烟. 彡穰城卄四家爲看烟. 散那
성국연이간연팔. 전*성국연일간연팔. 미성육가위간연. 취자성오가위간연. 삼양성십사가위간연. 산나
성은 국연2간연8. 전성은 국연1간연8. 미성의 6가는 간연이 된다. 취자성의 5가는 간연이 된다.
(삼양성24가는 간연이 된다=>누락분, 빙혼 삽입). 산나
- 전* : 椽에서 木대신 王 =>이런 글자 없음.
4면 4행
城一家爲國烟. 那旦城一家爲看烟. 句牟城一家爲看烟. 干利城八家爲看烟. 比利城三家爲看烟. 細城三
성일가위국연. 나단성일가위간연. 구모성일가위간연. 간리성팔가위간연. 비리성삼가위간연. 세성삼
성 1가는 국연이 된다. 나단성 1가는 간연이 된다. 구모성 1가는 간연이 된다.
간리성 8가는 간연이 된다. 비리성 3가는 간연이 된다. 세성 3
4면 5행
家爲看烟. 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存時敎言. “祖王先王但敎取遠近 舊民*守墓洒掃. 吾慮舊民轉當贏劣,
가위간연.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존시교언. “조왕선왕단교취원근 구민*수묘쇄소. 오노구민전당영열
가는 간연이 된다.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 생존시에 교시로 말했다. “조왕, 선왕은
다만 원근의 구민으로 수묘함에 청소만을 명령했다. 나는 구민이 쇠약해져버릴까 염려한다.
- 舊民* : 왕건군 - 노예
조인성 - 수묘인은 본래부터 천민은 아니었을 것이고 원거주지에서 사민되어
세력이 약해진 사람인 듯. 노비보다는 부곡과 같은 위치인 듯.
수묘인은 1) 선정된 장지를 관리, 2) 장례 후 묘 수호
4면 6행
若吾萬年之後, 安守墓者, 但取吾躬巡所略來韓穢, 令備洒掃.” 言敎如此, 是以如敎令,
약오만년지후, 안수묘자, 단취오궁순소략래한예, 영비쇄소.“ 언교여차, 시이여교령
取韓穢二百卄家. 慮
취한예이백십가. 로
내 만년의 후에는(죽은 뒤에는) 묘를 안전하게 지키는 자는 다만 내가 몸소 순행하여 약탈해온
한예를 취해 청소를 준비케 한다.” 교시가 이와 같아, 이것으로써 교령과 같이 한예 220가를
취하였다.
4면 7행
其不知法則, 復取舊民一百十家. 合新舊守墓戶國烟卄*, 看烟三百, 都合三百卄*家. 自上祖先王以來, 墓上
기불지법칙, 복취구민일백십가. 합신구수묘호국연십*, 간연삼백, 도사삼백십*가. 자상조선왕이래, 묘상
(그러나) 그 법칙을 모를까 염려하여 구민 110가를 다시 취해, 합이 신구 수묘호 국연 30,
간연 300으로 도합 330가이다. 윗조상, 선왕 이래로부터 묘위에
- 십* : 卄에 작대기가 하나 더 있는 모양으로 삼십을 뜻함.
4면 8행
不安石碑, 致使守墓人烟戶差錯. 唯國岡上廣開土境好太王, 盡爲祖先王墓上立碑, 銘其烟戶, 不令差錯.
불안석비, 치사수묘인연호차석. 유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 진위조선왕묘상립비, 명기연호, 불령차석.
석비를 안치하지 않아 수묘인 연호에 차이나 착오가 생기게 되었다. 오직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은
선대왕 묘 모두에 비를 세워 연호를 명기하여 차이, 착오가 없게 하였다.
4면 9행
又制守墓人自今以後不得更相轉賣. 雖有富足之者, 亦不得擅賣. 其有違令, 賣者刑之. 買人制令守墓之.
우제수묘인자금이후불득경상전매. 수유부족지도, 역불득천매. 기유위령, 매자형지. 매인제령수묘지.
또 수묘인의 제도를 만들어 지금 이후부터는 서로 전매를 하지 못하게 했다.
비록 부유한 사람이 있어도 역시 마음대로 살 수가 없다.
그 령을 위배하면 판자는 형을 받고 산자는 제도에 따라 수묘케 한다.
<빙혼>
언젠가는 꼭 보고 읽고 싶었던 광개토대왕의 비문을 읽어 보았다. 생각보다 고대어가 많아
이해가 어렵지만 학자들이 잘 보이지 않는 글자나 없어진 글자를 가지고 자기들 나름대로
추측을 하여 비문을 해석한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다. 짝짝짝*1000번.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비문 중에 다양한 비문이 있는데 띄어쓰기는 물론이고 독음도 개판이 많아
잘 골라서 서너 가지 다른 비문을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빙혼도 그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으로 읽어보았는데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띄어쓰기가 제일 나은 것 같아 이 비문 해석을 선택하여 읽어 보며 나름 고치긴 고쳤는데...
지금은 이 지안시 비석에 접근할 수 없도록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에 동북에 가면 꼭 먼발치서라도 꼭 가서 비석을 바라보고 싶다.
일본 애들이 만주국을 통치할 때 비문에 장난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일제시대 이후 현대사를 가지고 국사 교과서에 매달리기 보다는
환인/환웅/단군제국에서부터 지금은 이미 중국 동북 공정에 빼앗겨 버린
대진국, 부여 등을 포함하여 이조선 이르기까지 다시 한 번 역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일제 식민사관의 역사학자 이병도 아류들은 제외하고 말이다.
개독/땡초 출신 등 외래 종교인들은 반드시 배제하고 민족사관을 지닌 사람이 저술하였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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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이의 해석본>
제1면 비문
옛날에 시조인 추모왕이 나라를 건립할 때에 그의 부친은 북부여 천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여랑으로 알을 깨고 세상에 나왔다. 태어나자 곧 성덕이 있었다.
순행 남하하였다. 그는 남하하는 길에 부여의 엄리대수를 지나게 되었다.
왕은 나루에 이르러 말했다. <나는 황천의 아들이고 어머니는 하백의 딸이다.
나를 위해 거북을 뛰워 배로 삼고 갈대로 다리를 만들어라>소리에 따라 즉시 거북과 갈대로
이루어진 다리가 나타났다. 연후에 강을 건넜다. 비류곡 홀본지방 서쪽의 산 위에 성을 쌓아
도읍을 삼았다. 세상의 왕위를 즐기지 않아(하늘은)황룡을 보내 왕을 영접하였다.
왕은 문득 홀본 동강에서 황룡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유명을 이어받은 세자 유류왕이 치국지도로 사업을 진흥시켜 국가가 대치되었다.
대주류왕은 양대의 기업을 계승하여 계속 발전했다.
이어 17세를 전하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다.
18세에 즉위하여 존호를 영락태황이라 했다.
그의 은택은 황천과 같았고, 그의 무공은 사해에 진위하였다.
외래의 침략을 제거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평안히 그 업에 종사할 수 있게 했다.
국가는 부유하고 백성도 은실했다. 오곡이 풍속했다.
하늘은 왜 우리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가?
39세에 국가와 세상을 사별해 내던지니, 갑인년 9월 29일 을유에 왕을 안장했다.
그 앞에 비를 세워 비를 세워 왕의 훈적을 명기하여 후세인에게 보이노라 각사로 말한다.
영락 5년은 을미년으로 왕은 비려가 고구려 함물인들을 귀환해 주지 않기 때문에 몸소 토벌에
나섰다. 부산을 넘어 산을 등에 지고 염수에 이르러 비려의 3부락 6~7백명을 파하고
소, 말, 양 떼를-------
※ 위 내용은 삼국사기 원년의 일로 보고 있음.
삼국사기에 따르면 <북으로 거란 정벌, 남녀 5백 명을 사로잡고 본국인으로 사로잡혔던
백성 1만인을 설유하여 귀국하게 하였다.> 그 곳에서 돌아오면서 양평도를 거쳐 동으로 왔다.
# 성, 역성, 북풍에 이르러 왕은 사냥준비를 시켰다. 순유와 사냥을 하며 돌아왔다.
백잔(백제), 신라는 옛 속국으로 조공을 바쳐왔다. 그러나 신묘년 이래로 왜가 바다를 건너
백잔과 신라를 쳐 신민으로 삼았다. 때문에 6년 병신에 왕은 몸소 수군을 인솔하여
백잔국을 토벌했다. 군사가 백잔소굴의 남쪽에 이르러--------
※ 왕건군은 430년대에서야 고구려가 요동을 차지했다고 주장. 385년 고국양왕은 요동 점령,
같은 해에 연의 모용논이 회복했다고, 그러나 광개토왕 14년에 연 모용희가 요동성 공격에
실패하고 있음.
제2면 비문
백잔은 의에 복종하지 않고 감히 나와 영전했다. 왕은 위엄으로 대로하여 아리수를 건너 선두부대를
보내 성으로 진격했다. 백잔 군대는 구렁으로 몰아갔다. 쫓아 이어 성을 포위했다. 백잔의 주는
곤경에 빠져 남녀 생구 1천인과 세포 1천 필을 헌납하고 왕 앞에 끓어 않아 맹세 했다.
“지금으로부터 이후 영원히 노객이 되겠소” 태왕은 은혜를 베풀어 용서하고 미혹하여 저지른 허물을
용서하고 뒤에 그가 공손한 성의를 다할 것 인지를 살피기로 했다.
이번에 58성과 7백 촌을 얻었다. 백잔주의 아우와 대신 10인을 이끌고 개선군대를 거느리고
환도했다. 8년 무술에 군대를 변경의 백신 토곡에 보내어 살피게 하여 다시 막사리성, 가테라성에서
남녀 3백 여인을 잡아왔다. 이 이후로 조공하여 일을 논하게 되었다.
9년 기해에 백잔은 자기의 맹세를 위반하고 왜와 더불어 통호했다.
왕은 남으로 평양을 손유했다. 그리고 신라가 사자를 보내어 왕에게 아뢰었다.
왜인이 나라 안에 가득차 성과 못이 파괴되니 노객(신라왕)은 백성으로써 왕의 명을 듣기를
원한다고 했다. 태왕은 인자하여 그들의 충성을 칭찬했다.
신라 사신을 특별히 돌려보내며 비밀계획을 말했다. 10년 경자에 보병, 기병5만을 파견하여 신라를
구원하게 했다. 남거성으로부터 신라성에 걸쳐 왜인이 가득했다. 관군이 도착하자 왜적은 퇴각했다.
왜의 배후를 추격하여 임나가라의 종발성까지 이르자 성은 즉각 항복하여 신라인으로 지키게
하였다. 신라성과 염성을 장악하여 왜구는 크게 무너졌다.
성안의 십분의 구는 왜를 모두 따라가기를 거절하여 신라인으로 수성하게 했다. 신라성....
※ 2면 9행의 처음 7자는 글자가 없는 부분으로 판독됨(왕건군)
※ 이 행 위의 16자는 글자가 없는 부분으로 판독됨(왕건군)
제3면 비문
나머지 왜구는 무너져 흩어져 도망갔다. □성을 탈취하여 신라인을 안치하여 지키게 했다.
전에 신라 이사금은 스스로 와서 조공 총명함이 없었다. 광개토경호태왕에 이르러 이사금은…
…조공했다. 14년 갑진에 왜는 양국의 관계를 파괴하고 대방의 경계를 침입하여 백잔병과 연합하여
석성을 공격했다. … 왕이 몸소 병사를 영도하여 토벌했다. 평양을 떠나 선봉이 적과 만났다.
왕의 군대는 길을 끊고 막아 사방에서 추격하고 살해하여 왜구는 궤멸되어 패했고 참살된 자가
무수했다. 사방 포위 작전을 썼다.
적은 전부 참살되었으며 개갑 만여령을 노획하고 군자 기계는 셀 수 없었다. 돌아오면 사구성, 누성,
우#성,#성,… □성을 빼앗었다. 20년 경술, 동부여는 옛적에 추몽왕의 속민이었는데 중도에 이반하여
다시는 조공하지 않아 왕은 몸소 군대를 이끌고 동부여를 토벌했다. 왕이 동부여의 도읍에 다다르자
동부여는 두려워하여 항복했다. … 왕의 은혜가 고루 미치자 왕이 돌아왔다.
그 교화를 흠모하여 관군을 따라온 자가 미구로 압로, 타사루 압로, 숙사사 압로, □□□ 압로였다.
무릇 성 64가를 공파하고 촌 1천4백을 취득했다.(광개토대왕의)수묘인연호다.
매구여의 백성은 국연2간연3, 동해가는 국연3간연5, 돈성 백성의 4가는 모두 간연이 된다.
우성의 일가는 간연이 된다. 비리성의 2가는 국연이 된다.
평양성 백성은 국연1, 간연10, 차련 2가는 간연이 된다.
배루인은 국연1, 간연43, 양곡 2가는 간연이 된다. 양성2가는 간연이 된다.
안부련 22가는 간연이 된다. 개곡3가는 간연이 된다. 신성3가는 간연이 된다.
남소성 1가는 국연이 된다. 새로 들어온 한예로 사수성은 국연1, 간연1,모루성의 2가는 간연이 된다.
두 차압잠한의 5가는 간연이 된다. 구모객두2가는 간연이 된다. 구저한 1가는 간연이 된다.
사조성의 한예는 국연3, 간연21, 고모야리성 1가는 간연이 된다. 경고성은 국연1, 간연3,
객현한 1가는 간연이 된다. 아단성, 잡진성의 합10가는 간연이 된다. 파노성한의 9가는 간연이 된다.
구모로 성의 4가는 간연이 된다. 각모로성의 2가는 간연이 된다. 모수성의 3가는 간연이 된다.
간저리성은 국연2, 간연3, 미추성은 국연1, 간연7.
제4면 비문
야리성의 3가는 간연이 된다. 두노성은 국연1간연2, 오리성은 국연2간 연8. 수추성은 국연2연5.
백잔 남거한은 국연1 간연5. 대한산성6가는 간연이 된다. 농매성은 국연1연7. 윤노성은 국연1간연22.
고무루성은 국연2간 8. 전성은 국연1간연8. 미성의 6가는 간연이 된다. 취자성의 5가는 간연이 된다.
산나성 1가는 국연이 된다. 나단성1가는 간연이 된다. 구모성 1가는 간연이 된다.
우리성8가는 간연이 된다. 비리성3가는 간연이 된다. 성성3가는 간연이 된다.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 생존시에 교시로 말했다.<조왕, 선왕은 다만 원근의 구민으로 수묘함에
청소만을 명령했다. 나는 구민이 쇠약해져버릴까 염려한다. 내 만년의 후에는(죽은 뒤에는)묘를
안전하게 지키는 자는 다만 내가 몸소 순행하여 약탈해온 한예를 취해 청소를 준비케 한다>
교시가 이와 같아, 이것으로서 교령과 같이 한예 220가를 취하였다.
(그러나) 그 법칙을 모를까 염려하여 구민110가를 다시 취해, 합이 신구 수묘호 국연30,
간연300으로 도합 330가이다. 윗 조상, 선왕 이래로부터 묘위에 석비를 안치하지 않아
수묘인 연호에 차이나 착오가 생기게 되었다. 오직 국강상광개토경호태왕은 선대왕 묘 모두에
비를 세워 연호를 명기하여 차이, 착오가 없게 하였다.
또 수묘인의 제도를 만들어 지금 이후부터는 서로 전매를 하지 못하게 했다.
비록 부유한 사람이 있어도 역시 마음대로 살 수가 없다.
그 령을 위배하면 판자는 형을 받고 산자는 제도에 따라 수묘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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