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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영토 확장, 신라를 국제무대로 올린 장보고
장보고 확장정책 장(張)의 카드를 내밀다
바다에서 희망을 캔 장보고, 그는 영토(領土) 확장(擴張)에 온 힘을 쏟았다. 영토 확장은 나라를 지키는 일이요, 자신을 높이는 일이었다.
그는 바다를 보기를 단순한 선박의 항로를 하는, 선박 뱃길 영토(領土)라고 보질 않았다. 선박이 다니는 바다를 세상과 세상을 연결해주는, 그러면서 희망을 낳은 〈무한한 희망이 춤추는 바다 영토〉 라고 봤다.
장보고는 “보세요, 바다가 물결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그리고 파도는 부딪혀 물보라를 꽃피듯이 합니다” 라고 표현하면서 바다를 지키고, 신라의 균형을 바로 세우라는 준엄한 명령(命令)을 내리고 있다고 했다.
장보고는 바다 물결과 물보라는 신라의 방향을 가를 분수령(分水嶺)이라며, 타 나라가 폭주(暴注)하도록 둘지, 아니면 견제(牽制), 균형(均衡)으로 신라를 바로 세울지 선택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의 바다를 향한 책임이라고 보고, 신라를 다른 나라에다 내어주면, 정권의 폭주를 막을 마지막 제동(制動) 장치가 사라진다고, 신라영토 장(張)-확장(擴張), 보(保)-신라 보호(保護), 고(皐)-신라 상승(上昇)을 강조했다.
푸른 바다와 작은 섬 사이로 떨어지는 황금빛 낙조(落照)가 손꼽히는 완도 장좌리 장도에 자연과 사람이 교감(交感)할 수 있는 사계절 바다 산업(産業)이 연출됐다.
장보고는 “신라의 바다를 관리해라, 그렇지 않으면 상어에게 잡혀먹을 것이다” 라고 경계태세에 경각심(警覺心)을 울렸다. 무엇을 관리(管理)하라는 건지, 찬찬히 생각해 보면, 여러 면에서 등한시해서는 안 될, 꼭 해야 될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 중에서도 ‘상어 떼의 출몰(出沒)’ 이다. 상어는 깊은 바다, 넓은 곳에서 있다가 연안까지 접근을 한다. 연안 지역들은 그런 상어를 쉽게 전근하도록 허용(許容)하는 경향이 다서 발생한다. 상가 연안에 머물면, 그냥 놀다가 가는 것이 아닌, 연안 지역을 공포(恐怖) 몰아 넣는 등 포악성(暴惡性)을 드러낸다.
그래서 장보고는 상어를 퇴치(退治)하고자 강력한 무기로 상어 떼가 다시는 접근(接近)하지 못하게 했다.
장보고는 신라영토(新羅領土) 확장과 보호한다면, 동북아시아 최초 해상무역과 전략적 교류 체결은 신라 무역이 질적으로 도약하는 중요한 전환점(轉換點)이 될 것이다 라고 내다봤다.
청해진 대사 장보고는 세계 최대 럭셔리 무역 네트워크 신라가 추진하는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이 해양 럭셔리 무역(貿易) 활성화를 위한 당.일본.동남아.아랍 등과의 전략적 업무협약(MOU)를 체결했다.
합의 협력 분야는 ▲글로벌 마케팅 ▲데이터 분석 ▲상품 개발 세 축으로 국제무역 고객을 위한 신라인의 무역진출 경험을 공동(共同)으로 만들어갔다.
신라 기반의 국제자유무역은 전 세계 나라에 걸쳐 전 지역과의 세계무역 네트워크와 전 세계인의 무역 전문가(專門家)를 보유한 세계 최대 규모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 네트워크다.
세계무역(世界貿易) 시장은 연평균 5.5%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며, 그 성장세는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되는 고부가가치(高附加價値) 시장으로서, 신라무역은 동북아시아 최초로 신라에서 열린 국제자유무역기구(청해진)를 통해 글로벌 무역업계(貿易業界) 리더들이 신라를 직접 경험(經驗)하게 했다.
신라로 들어오는 무역상인(貿易商人)들은 대부분 당과 일본 등 근거리 국가에서 왔다. 장보고는 당과 일본 무역상들을 환영하지만, 아랍이나 북미 무역상들이 더 많이 들어오길 바랐다. 근거리 무역상들보다 소비액(消費額)이 훨씬 크고, 교류량(交流量)도 많은데다가, 체류(滯留)하는 기간도 길기 때문이다.
장보고는 “예측 가능한 일은 자동화(自動化)로, 특별한 가치는 사람의 손길로 만들어라” 라고 늘 말해왔다.
장보고는 “국제자유무역에 있어서 회원 간 거래(去來)를 중시하는 초청(招請) 기반 네트워크다. 지원서(志願書)를 받는 게 아니라, 상대 무역 측이 직접 지명(指名)하고 초청해야 회원이 될 수 있다” 고, 초청 회원은 상대측에게 선택권(選擇權)을 우선 부여했다.
럭셔리 국제자유무역의 핵심으로 ‘감성(感性)’ 을 꼽았다. 국제자유무역이야말로 그 감성을 끌어올리고 목적지의 가치를 배가시키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국제자유무역, 잘 짜여 진 ‘무역정책(貿易政策)’ 과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尖端) 기술(技術)’ 이 만들어내는 국제자유무역이야말로 〈신라가 가진 힘〉 이라고 했다.
●협상가이자 전략가인 장보고
“협상합시다.”
안보(安保) 보장을 위해, 무역(貿易) 증진을 위해서 우리 협상하지고 장보고는 협상 테이블에서 신라의 상품들을 하나 하나 설명하며 홍보했다. 그리고 당.일본 등의 제품에도 관심을 보이며 서로 교류하는 무역 파트너서의 상생 발전하기로 약속하며, 어느 때보다 더 협력체계를 유지하기로 했다.
징보고는 밝은 내일을 여는 일에는 ‘협상(協商)’ 이 답이다. 협상만이 미래를 열 수 있으며, 그 협상은 조건 없는 전제조건을 달고, 대화 지체를 우선시했다. 전제조건 없는 프로세스구축을 지지하며, 원활한 무역증진(貿易增進)을 약속했다.
제 3차 심판이 있는 토론(討論) 아니라, 양 당사자가 합의(合議)로 문제를 풀어야 하므로 토론형(討論形) 접근으로, 상대의 입장, 즉 이익.제한.우선순위를 정리하고, 내가 원하는 것과 상대가 원하는 것의 교차점을 찾는 장보고였다.
장보고는 협상에 있어서 다자간 무역 협상, 다각적 무역 교섭(交涉), 관세(關稅)의 인하, 비관세 장벽의 축소와 철폐 등 자유무역의 확대를 목적으로 한 신국제 라운드였다. 이런 다자간 무역 협상은 실무(實務) 협상, 즉 실제의 업무나 사무가 어떤 목적에 부합되도록 결정하기 위하여 여럿이 서로 의논했다. 실무 협상을 통해 다자 통상 협상의 여러 국가가 참여하는 무역 협상을 진행했다. 다자 통상 협상은 두 나라의 정부 사이에 이루어지는 양자 통상 협상으로 진전시켰다.
협상은 국제통상(國際通商) 협상, 호혜적(互惠的) 협상 등으로 협상의 다각화(多角化)와 범위(範圍)를 넓히면서 위상을 높였다.
당나라와의 협상을 어렵지 않았다. 이미 장보고가 무령군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해시키는 데 도움이 됐다. 유리하게 협상 파트너로 끌어올렸다.
그는 해상(海上)을 조화롭게 장사를 하는 ‘해상(諧商)’ 으로, 해상(諧商)은 배에 물건을 싣고 다니면서 파는 장사를 한 ‘해상(海商)’ 으로서 나섰다.
이런 무역은 예전에도 활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장보고만큼 실력을 갖춘 사람은 없었다. 무력 연마는 곧 무역 기술을 닦는 일이었으며, 그는 당나라를 가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군사와 무역’ 을 겸한 사람이 되겠다는 꿈을 꾸었던 것이다. 그가 갔던 산둥반도는 그만한 입지조건을 갖췄고, 당나라를 국제무역으로 성장시키는 데, 잘 갖춘 환경과 아주 중요한 군사(軍事) 요충지(要衝地)였다. 그래서 장보고는 이런 곳에서 배워 익힌다면 나의 미래보장은 물론, 신라의 앞날을 위한 일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그런 확신과 자신감을 갖고 어린 나이에 위험을 무릅쓰고 당나라로 떠났던 것.
그런 그를 신라 조정에서는 주시(注視)할 수밖에 없었다. 장보고를 눈 여겨봤던 흥덕왕은 장보고가 국내로 다시 들어왔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가 찾아주기를 바랐다. 아니나 다를까 생각대로 어느 날 장보고가 찾아와 아뢰기를 군사와 무역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왕은 원했던 일이라고 반가워했다.
군사기지와 무역기지를 둔 청해진으로 해적들을 소탕하면서 안전 속에 무역을 추진하겠다는 장보고의 생각은 왕의 생각이고 해서, 서로 마주 떨어져 청해진 사업을 차질 없이 진행됐다. 순조롭게 진행을 한 것은 장보고가 당나라에 있을 때, 배운 것들이 많았고, 그걸 써 먹고 싶었던 신라의 왕들이었다.
바다를 지키고 해상무역에 있어서 이 역할은 무두 장보고에게 믿고 맡겼다. 결과는 우리가 일고 있듯이 바다를 지배(支配)한 인물, 해상무역(海上貿易)을 일으킨 사람이라고 해서 해상왕(海上王) 또는 무역왕(貿易王)으로 그를 보고 있다.
통상(通商) 전문가 장보고, 그는 통상 전문가다운 국제무역기구 정책 협상, 통상정책 수행 등 실무적(實務的)인 국제(國際) 감각을 갖추었다.
통상 교섭(交涉), 국제무역 재협상(再協商) 등 통상교섭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로서 나섰다.
장보고는 통상에 있어서 1인 다 역을 소화해내는 다재다능함을 보여주는 등 통상정책국(通商政策局) 심의관(審議官)처럼 통상 분쟁(紛爭) 대응, 다자간 규범 조사(調査), 조약(條約).협정문안(協定文案) 심사 등을 수행(修行)했다.
통상협정 체결에 따른 국내대책 수립.이행관리, 비준(批准).동의(動議) 지원, 피해 산업 지원 방안 수립 등 정책 업무를 담당했다.
장보고의 국제통상전문가(國際通商專門家), 그는 청해진에 대사로 소속되어 무역 계약(契約), 결제(決濟) 및 관련법규(關聯法規) 등에 대한 지식과 외국어 능력, 무역실무 능력을 바탕으로 국제무역 관련 업무를 수행했다.
무역 절차(節次)의 흐름을 파악(把握)하여 거래에 필요한 자료(資料)나 정보(情報)를 정리하고, 계약상 필요한 서류 등을 작성(作成)하는 일과 거래나 데이터나 정보나, 법규에 따른 계약서 작성과 수입대금 결제와 통관절차 지원 등을 진행하는 능력을 갖추었다.
장보고는 이론(理論)과 실무(實務)를 갖춘 국제통상(國際通商) 전문가이다. 그는 당나라에서 군사적(軍事的)인 전술(戰術)과 무역(貿易)의 전략(戰略)을 터득했다. 당나라가 실시했던 공급망.인플레시션 감축법 등 급변하는 통상(通商) 환경에 기민하게 대응하는 것을 배웠다. 그는 무령군 군사로 있으면서 신라방을 통해 무역을 추진했다. 그는 이미 당나라에서 무역실무론(貿易實務論)을 터득하였다. 이처럼 자타가 공인하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兼備)했다.
장보고는 청해진 대사로 부임을 받고 소감문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투자 환경을 조성해 신라를 첨단 전략산업의 국제 투자.기술.인력 중심으로 만들겠다” 고 했다.
또 기업이 초격차(超隔差) 역량을 조기에 구축하도록 지원하겠다며 세계정세와 통상 환경이 급변하면서 기업 경영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지고 혁신과 성장에 대한 요구는 어느 때보다 높아진 가운데, 신라 산업 무역총책(貿易總責)으로 내정돼 막중한 책임감(責任感)을 느낀다고 했다.
통상전문가는 수출입(輸出入) 과정에서 무역 제도 법률, 시스템을 자극해 유리(有利)하게 협상(協商)하는 작업이다. 전문성(專門性)을 갖추고 자유무역협정(自由貿易協定)을 외교적(外交的)으로 하는 사람이다.
장보고는 외국어에 능통했다. 다른 나라의 통상전문가(通商專門家)들과 대화를 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일을 하므로, 상대 국가의 무역 상활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능력도 갖추었다.
국제 기준이 뭔가를 미리알고, 통상 연관 분쟁(紛爭)을 많이 알수록 유리하기 때문에 국제무역학(國際貿易學)의 ‘무역수지론(貿易收支論), 국제물류(國際物流), 무역학(貿易學)’ 에서의 지식을 터득했다. 국제법(國際法)에 종통하고 대화를 잘하면서 자기의 이익(利益)을 찾아가는 그런 성향을 지닌 인재로 거듭났다.
장보고는 국익(國益)을 생각하면서 일하므로 애국심(愛國心)을 확고히 했다. 국제 규정, 무역에서의 관계 같은 것을 존중하면서 일해야 하므로 좋은 매너를 갖추었다. ‘신라愛, 청해진愛, 장보고愛’ 라는 나라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췄다.
장보고는 “신라 경제가 내 손안에 있소이다” 라고 국가 간의 경재 활동을 하면서 국제통상(國際通商)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라를 대표해 공동(共同)의 규칙(規則)을 만드는 실무자(實務者)로 나섰다.
지구상에는 200여 개의 나라가 있다. 나라와 나라 사이에는 경계선(境界線)이 있다. 그 경계선을 넘어서 돈과 상품을 주고받으려면, 국가 간의 약속이 필요하다. 시장이 클수록 상품이 많이 판매할 수 있어 이윤(利潤)도 크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국가 간에 경계선을 허물고 한 몸의 경제(經濟)를 하기 위해 조약(條約)을 맺는다. 이런 일을 ‘자유무역협정(自由貿易協定, FTA)’ 라고 한다.
협정을 체결한 국가 간에 상품과 서비스를 사고 팔 때 관세(關稅) 등 무역장벽(무역장벽)을 낮춰 상대 국가에 무역 특혜를 주는 협정(協定)을 한다. 이 일을 직접 맡아하는 사람이 국제통상전문가(國際通商專門家)이다. 장보고는 그런 국제통상전문가로서의 신라를 대표(代表)했다.
장보고는 어떤 조건으로 국가 간의 약속을 맺는 것이 신라의 이익(利益)을 가장 높일 수 있는지를 생각해, 다양한 각도로 분석하고 예측해 최상의 결론을 만들어냈다. 신라 국제통상전문가(國際通商專門家)로서...
청해진은 신통상질서전략실, 통상협력구 등에서는 국제적인 회의나 굵직한 사업 등 국가 간 협력에 필요한 업무(業務)를 담당했다. 통상정책(通商政策), 무역투자(貿易投資) 등에서는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대.내외적으로 홍보(弘報)하며, 정부.업계.국민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관련 부처에 전달하는 일도 맡았다.
정책(政策)을 만들고, 시행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정을 거쳤다. 정책 방향을 잡은 뒤 전문가와 관계 부처에서 자문(諮問)을 받아 구체적인 정책을 만들고 예산(豫算)을 짰다. 정책이 만들어진 후에는 각종 행사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정책을 홍보했다.
장보고는 〈세계지도〉 를 항상 펼쳐보았다. 그리고 매일매일 세계 여러 나라를 마음속으로 여행(旅行)하며, 그 나라와 어떤 거래(去來)를 하고 싶은지를 생각했다. 그 나라가 현재 신라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으며, 수출액(輸出額)과 수입액(輸入額)은 어느 정도 되는지, 수출 상품과 수입 상품에 무엇이 있는지, 그 나라와 자유무역협정(自由貿易協定)을 한다면 어떤 조건을 걸고 싶은지를 탐구(探究)했다. 그런 노력으로 장보고는 훌륭한 국제통상전문가(國際通商專門家)가 될 수 있었다.
당.일본은 신라의 투자가 이뤄지기 적절한 곳이며, 기업하기 좋은 적절한 곳이다. 무역장벽(貿易障壁)을 해소하거나 허물고, 원산지(原産地) 규정을 느슨하게 하고, 시장(市場) 접근을 확대(擴大)하고, 문호(門戶)를 개방해야 한다.
불확실성의 시대 속에서 신라와 당.일본.동남아.아랍 상호 성장과 혁신을 촉진하는 최적의 전방위적(全方位的) 협력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데, 서로 공감하며 모든 산업에서의 협력을 확대하고, 문화(文化)와 인적교류(人的交流)도 한층 강화시켰다.
장보고는 “신라.당.일본.동남아 등은 태평양 지역에 대한 공동의 전망(展望)을 갖고 있다” 며 “함께 손을 맞잡고 공동 번영을 이룰 수 있다” 고 봤다.
신라는 당.일본 등과 핵심 기술(技術) 및 공급망(供給網) 관련 협력을 강화하고, 양국 간 경제 안보(安保)에도 긴밀히 이뤄나갈 것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무역은 국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잇는 힘을 지니고 있다” 고 생각하며 “활발한 무역을 통해 양국의 우정(友情)이 더욱 깊고 넓어지길 바라는 의미에서 추진했다.
청해진 대사 장보고는 자신이 추진한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에 대해 이제 양국은 특별 전략적(戰略的) 동반자 관계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했다. 신라는 당.일본.동남아.아랍 등과의 무역을 함으로써 양국이 신뢰할 수 있는 동반적(同伴的) 관계가 미래지향적(未來指向적) 관계로 바뀌었다고 했다.
장보고는 각국과의 무역(貿易).외교(外交) 관계를 격상시키고, 양국 간 협력을 생활식품.용품에서 조선. 해양, 금융, 첨단산업, 국방.방산 전략산업으로 확대하였다.
장보고는 양국은 태평양에 대한 공유(共有)와 비전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인재(人材) 간 교역, 조선(造船) 분야 협력, 환경 에너지와 관련된 협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 기회(機會)를 확대하였다.
신라는 지금의 수준인 무역량(貿易量)i과 무역액(貿易額)에서 배 이상 수준으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를 내놓고, 이를 위해 양국은 조선, 핵심 물품 등에서 공동 사업을 발굴하기 위한 산업담당 협의체인 산업협력위원회(産業協力委員會) 신설 등 양해각서(諒解覺書)를 체결했다.
조선분야에서도 당 정부의 조선 시설 건설 지원을 통해 신라 조선 기업들이 당 조선 시장에 진출하는 방안을 협의하였다. 항만 인프라 개발을 위한 항만(港灣) 협력, 세계 규모로 성장하는 데, 공동 목표를 세웠다.
이런 국제통상전문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름에서 확장하고 지키고 높은 지위에 오른다는 뜻 말고도, 또 다른 의미에서의 역할을 띠었다. 장보고는 장사-Merchandise의 신(神)으로서 보고품(寶庫品)을 전달한 고위직(高位職)의 위치에 있었을 정도로 뛰어난 실력.재능.능력.수단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장의 매출 이익을 집착하고, 세세항 영업을 직접 수행하며 시스템화보다 직업적 전문성에 의존하는 성향을 지닌 ‘장사꾼’ 이 아닌 장기 비전 시스템.위임(委任)을 통해 확장성(擴張性)과 지속성(持續性)을 추구하는 ‘사업가(事業家)’ 로서의 역할을 띠었다.
장보고는 당장 매출 이익보다는 ‘장기 비전.가치’ 에 초점(焦點)을 맞추었으며, 직접 영업.직접 관리보다 ‘시스템.위임.관리’ 에 운영방식(運營方式)을 두었다. 제한적보다 ‘가능성(可能性)’ 에 강조하며 확장성(擴張性)을 기했으며, 내 몫 중심보다 역할 분담과 신뢰 기반에 직권 관계(職員關係)로 추진했다.
시스템을 갖추고 직원의 역할을 명확히 분담해 사장(社長)이 없어도 운영이 가능한지 점검했다. 단기 매출만이 아니라 비전 목표를 설정하고, 직원과 공유(共有)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핵심으로 했다.
장보고는 국제자유무역에 있어서 가족을 대하여 애정(愛情)을 가지듯이 정사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임했다. 그리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장사에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었다. 건강한 몸과 마음, 확고한 서비스 정신, 모나지 않은 성격, 정보, 자신감 넘치는 말과 행동, 신뢰, 건전한 자세, 끈기 등을 갖추었다.
장보고는 상대의 인격(인격)을 높여주고 이해해주는 말과 행동, 그리고 표정으로 친절한 말과 행동의 친절의 원칙을 자기 장사에 대하여 소명의식(召命意識), 즉 잔명사상(盡命思想)을 갖고 직업정신(職業情神)을 발휘했다.
장보고는 사람을 볼 떼 이익보다는 의(義)를 앞세웠다. 공자가 군자는 의를 생각하고, 소인은 이익을 생각한다고 했듯이 그는 의(義)를 앞세운 군자다운 장사를 해보였다.
장보고는 신라 왕(王)들이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에 이익이 되겠는가” 를 묻자, 장보고는 “왕께서는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라고 답했다.
장보고가 의를 강조한 것은 이익만 앞세우면 위아래가 모두 이익만 따지게 되고, 결국 조직과(組織)과 공동체(共同體)가 무너진다는 것 때문이었다.
장보고는 당장 눈앞에 보인 장사꾼 같은 이익을 먼저 계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팔릴지, 남을지, 당장 얼마나 벌 지에서 출발한 장사꾼처럼, 관계보다 거래가 앞서고, 신뢰보다 회전(回轉)이 앞선 그런 사람이 이니었다, 그는 의(義)를 먼저 새우고 이익을 설계하는 사람이었다. ‘손님, 직원, 거래처, 공동체; 가 오래 유지(維持)되는 구조를 먼저 봤다.
장사꾼은 한 건의 매출(賣出)을 보고, 경영자는 찬 전체를 본다. 상품 하나가 아니라 브랜드를 보고, 오늘 손님 수가 아니라, 내일도 다시 오는 이유(理由)를 봤다.
가격(價格)이 아니라, 명분(名分)을 만들고, 판매(販賣)가 아니라, 평판(評判)을 경영했다.
정보고는 진정한 경영자로서의 자세, “내 가족이 먹을 수 있는 건강한 음식, 쓸 수 있는 물건이라는 기준을 지키면 결국 손님이 남는다” 를 선택했다.
장사꾼은 손님을 매출로 보고, 경영자는 손님을 관계 자산(資産)으로 본다. 장사꾼은 직권에게 “빨리 팔아라” 를 말하고, 경영자는 직원에게 “왜 이 방식으로 손님을 대해야 하는가” 를 가르친다.
장보고가 묻는 질문은 하나이다. 당신은 이익을 위해 사람을 쓴가. 사람을 살리는 방식으로 이익을 만드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장사꾼과 경영자를 가르는 가장 본질적인 기준이다. 장보고는 ‘사람을 살리는 방식’ 으로 이익(利益)을 취했다.
장보고는 국제통산전문가로서의 기본정신에 ‘인(仁)과 의(義)’ 를 두었다.
●탐색에서 실행으로 옮긴 장보고
탐색하다. 탐색은 ‘찾을 팀(探), 찾을 색(索)’ 을 말한다. 무언가를 찾아 선택(選擇)을 한다는 뜻이다.
장보고는 탐색이라는 단어로 정보.기술.산업.사람 등을 잦아 선택을 했던 것을, 신라인공지능을 앞세워 정보.기술.산업.인재 검색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신라는 청해진의 기지를 내세운 전략을 신라.당.일본.동남아 등 동남북아시아에 이어 아랍 등 유렵까지 그 밤위를 넓혔다. 아시아 국가에 이어 중동권까지 진출을 확대하며 글로벌 탐색 검색 시장 선점에 나선 것이다. 이란 정보.기술.산업.인재 탐색을 넘어 ‘실행(實行)’ 으로 옮겼다.
예전에는 시스템을 확인하고, 별도의 기능을 열어 물어봐야 했다. 그러던 것을 이 모든 작업을 한 시스템에서 처리할 수 있게 했다. 청해진은 이렇듯 검색 기능과 자사 생태계를 연동(連動)시켜, 사용자 이탈을 막고, 무역에 관한 검색 창에서 사용자들의 체류 시간을 늘리게 해주었다. 체류 시간이 길어지면, 물품 단가(單價)가 오르고, 매출로 직결(直結)되었다.
장보고는 청해진 검색 창을 선보인 기능을 해외 사람들도 사용하게 하며, 신라 제품에 관심도(關心度)를 높였다.
신라 검색 창은 단순한 정보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이용자를 대신해 가장 나은 선택을 골라 실행까지 맡는 〈개인 비서〉 역할을 하게 했다.
탐색을 넘어 실행, 실행은 열매 실(實), 갈 행(行)으로 ‘가득 차게 보내다, 가득 차게 일하다. 가득 차게 나아가다. 가득 차게 움직이다. 가득 차게 흐르다’ 라는 뜻이다.
장보고는 탐색에 그치지 않고 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는 목표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설정해 무엇을 언제까지 할지 정했다. 그리고 큰 목표를 작은 단계로 나눠 부담을 줄이고, 단계별로 실행(實行)했다.
실행 결과를 평가하고,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며, 동기(動機)와 보상(報償)으로 지속성을 높였다.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는 속도가 경쟁력(競爭力)과 기회(機會) 확보에 영향을 줄 수 있어, 빠른 실행이 중요하다고 봤다.
장보고는 “얼마나 빨리 실행으로 옮기는지가 성공을 가르는 열쇠이다” 라고, ‘실행의 속도’ 가 성공의 열쇠를 여는 비결로 봤다. 빠른 실행은 경쟁에서 앞서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되기에, 그는 시장에 빨리 진입할수록, 고객을 얻고, 기회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짐을 알며, 빠른 실행을 해보였다. 늦게 실행되면, 경쟁자들이 시장을 선점(先占)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시장 점유율(占有率)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점을 알고, 그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 실행 계획 세우기, 일정 관리, 지속적인 평가와 수정을 통해 빠른 실행을 실현’ 할 수 있는 실행에 옮기는 데, 발 빠른 전략(戰略)을 구사했다.
장보고는 이런 빠른 실행으로 세계 각국의 무역 공급망, 경제 안보(安保) 영토(領土) 확장에 나섰다. 장보고가 지향하는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 남반구 신흥국 외교의 정점을 찍는 일정을 소화(消化)했다.
장보고의 실행력, 『선암이 선두에 나서 뛰니/서주가 서두르기 시작하네/완도가 완벽을 기하니/신라가 신나게 나아가도다』 라는 신라가 신속하게, 당이 당차게, 일본이 일주(一周)로 열어가는 해상무역의 실행 속도전(速度戰)이다.
장보고는 뭐든 궁극적 목표는 하나다면서 당장은 내가 책임진 무역이 안전하게 전달되는 것, 길게는 나와 가족, 내 주변 사람 모두 기뻐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날마다 마지막 날처럼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그저 하루하루를, 이 특별하고도 보통인 삶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갈 뿐이다-I just live each day ad if it were the last day of this ordinary and special life” 라고 했다.
장보고는 특별하고 보통인 삶을 실기를 좋아했고, 그는 ‘As if were the last day-마지막 날처럼’ 이라는 하루하루를 중요시하며 최선을 다했다.
장보고는 노자가 말한 “이 세계는 힘이 작동하는 비틀기로 꼬여있다” 고 했듯이, 음(陰)과 양(陽)으로 전혀 관계없었던 무엇과 꼬이고 또 꼬이며, 영토(領土)를 확장하고 또 확장해 나갈 때, 우린 힘을 얻고, 힘찬 모습이 된다고 했다. 그는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라고 신라가 추진한 무역장책은 최고의 삶을 누리게 하고 유지하게 한 〈행복정책〉 이라고 강조했다. 있음과 없음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의존하며 함께 존재하고 생겨난 ‘유뮤상생(有無相生)’ 인거다.
분석을 넘어 실행으로, ‘분석은 장보고에게 실행은 상인에게’ 라는 캐치프레이로 신라의 무역정책 데이터 분석 실무자(實務者) 분들이 직접 참여하는 가운데, 새롭게 공개된 무역정책안(貿易政策案)을 내놓고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에 참여했다.
신라는 분석은 장보고에게 실행은 상인에게 데이터 분석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 개선까지 이어지는 프로세스를 더욱 가속화할 수 있는 청해진 장책을 준비한 새로운 기능들을 소개하면서 추진했다.
장보고는 지금껏 못 보던 성과(成果)를 찾자! 신라 웹에 등록된 게정의 사용자 이름과 비밀번호를 입력해 시스템에 접근하게 해준〈신라 로그인 브릿지〉 를 새롭게 선보였다.
신라 로그인 브릿지는 “왜 이 페이지를 로그인을 했지?” “어떤 페이지에서 가입이 유도했지?” 같은 무엇이 고객을 로그인(미리 등록된 계정)하게 만들었는지에 개한 궁금증을 데이터 기반으로 명확히 파악할 수 있는 기능이다.
페이지 간 전환, 이탈, 회원가입, 목적 파악까지 기존 분석 수치(數値)와 로그인 정보(情報)를 결합하면, 회원 가입의 반응.감정.행동.사건을 순차적으로 일으키는 계기(繼起)를 발견할 수 있는 보다 효과적인 여정(旅情)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신라는 1:1 컨설팅과 같은 기회 외에도 분석(分析)이 익숙하지 않은 기업들을 위해 청해진과 협업(協業)으로 데이터 컨설팅까지 아우르는 풀 패키지를 준비했다. 신라는 청해진과 손을 맞잡아 도구 제공뿐만 아니라, 실제 분석과 교육, 개선까지 올인원으로 제공하는 체계를 마련해 나갔다.
검색을 넘어 실행으로, “사용자는 더 이상 검색어를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라며 청해진이 상요자의 의도(意圖)를 이해하고, 필요한 콘텐츠.상품.서비스를 제안하며, 실제 행동까지 대신 수행(隨行)하게 했다.
장보고는 무역 정보를 시작으로 사용자의 탐색.구매.예약.실행이 끊김 없이 이어지는 경험을 제공해주었다.
장보고는 글로벌 빅 태크-Big Tech, 가술 산업에서 규모가 크고 시장을 주도하는 가장 크고 지배적(支配的)인 기업으로서, 플랫폼 비즈니스와 서비스를 통해 소비자와 기업에 광범위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巨大) 기업둘이 출연해, 다자간무역기구인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 경쟁을 본격화하는 가운데 나온 정책으로 검색(檢索)에서 실행(實行)으로 넘어가는 〈청해진 정책 전환〉 이 빠르게 진행했다. 신라는 청해진국제저유무역을 출시해, 사용자 요청을 이해하고 정책을 실행하거나 일정을 조정하는 등 행동 수행형(隨行形) 신라국제자유무역(新羅國際自由貿易)으로 발전시켰다.
이처럼 해외 기업들이 돕거나 지원하는 행위를 넘어 계약이나 협상 등에 관한 업무를 대신해서 처리하고 그에 대한 수수료를 받는 법정 대리인으로 전환하는 상황에서, 청해진은 신라형(新羅形) 통합 모델을 선보이며, 데이터 생태계(生態界) 전반을 연결하는 전략을 취했다.
해외 기업들은 이미 첨단산업 기반으로 업무 자동화 단계에 진입했다. 청해진이 이 흐름을 신라 데이터 생태계와 결합시켜서 신라형 무역 표준의 〈신라무역플렛폼〉 으로 성장, 가능성(可能性)을 낳았다.
장보고는 “무역(貿易) 기술이 발달할수록 사용자가 다양한 활동과 교류를 뒷받침하는 기반 시설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필요한 행동이 스스로 움직이고 작용한 자동화(自動化)되는 경험이 중요해질 것” 이라며 “검색에서 실행으로 이어지는 완전한 사용자 여정을 신라 청해진이 실현하겠다” 고 강조했다.
신라의 무역 전환이 글로벌 트랜드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청해진이 이를 신라 서비스 구조에 맞게 ‘현지화(現地化)하고 차별화(差別化)된 전략(戰略)을 제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청해진은 ‘독야청청(獨也靑靑)’ 이었다. 모두가 변해도 자기 자리를 지키며 푸르게 서 있는 모습을 취하는 등, 세상이 변해도 중심은 그대로 독야청청한, 타인의 시선이나 유행에 휘둘리지 않는 내면의 고요한 자존을 유지했다. 모두가 어떤 흐름을 따를 때. 혼자 다른 길을 가는 반항이 아니라, 확산에서 비롯된 선택이며, 비용을 감수한 고독한 결단이었다.
장보고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조용히 걸어갔다. 그 모습은 남들과 다른 선택을 두려워하지 않는 내면의 근육을 보여줬다.
무리를 벗어난 존재가 아름다울 때, 대부분은 무리 속에 있어야 안심한다. 다른 사람들과 같아야 틀리지 않았고 느낀다. 하지만 어떤 존재는 무리 속애서 빛나지 않는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서거나, 다른 길을 걸을 때, 자기만의 색을 드러낸다. 독야청청은 그런 존재의 가치에 대한 찬사다. 같지 않음이 틀림이 아닌, 오히려 더 선명한 태도임을 보여주는 일이다.
청참함은 단지 색깔이 아니다. 청청(靑靑)은 단지 푸름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푸름은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지 않는 〈마음의 색〉 이다. 그건 유행을 따른 색이 아니다. 순간의 기분이 아니라, 오랜 원칙, 오래 지킨 기준이다. 그래서 독야청청의 청청은 감정보다도 태도(態度), 주장보다도 자세(姿勢)를 말한다. 독야청청은 남을 위한 태도가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충직(忠直)한 대답이다.
“나는 나대로 푸르게 서 있다.”
변하지 않는 태도가 빛날 때, 독야청청은 요란하지 않다. 주목받지도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많은 것이 바래지고 관심이 떠나고 세상이 흔들릴 때, 그 자리에 고요하게 남아 있는 태도가 있다면, 그것이 바로 독야청청이다.
장보고는 독야청청의 푸르고 푸른 ‘청청(靑靑)’ 이 독야청청(獨也淸淸)의 맑고 맑은 ‘청청(淸淸)’ 으로서의 사념(邪念)이 없고, 탐욕(貪慾)이 없는 청청의 물결이 출렁거렸다.
청해진, 해(海)는 ‘사해위가(四海寪家)’ 다. 온 천하를 다 집으로 삼았다. 그는 무역을 위해 이곳저곳을 다니며 온 천하를 제 집으로 만들었다. 온 나라 어느 곳에도 집은 있다는 뜻으로, 무역으로 여기저기 다니며, 무역항이 제 집을 드나들 듯했다. 온 세상이 집이 되게 한 장보고는 천하를 제 집안으로 만들었다.
천하를 제 집으로 만든 제업(帝業)의 광대함을 의미한 사해위가, 장보고는 해상무역이라는 제왕(帝王)의 업적(業績)으로 신라와 바다를 화평(和平)을 유지하고,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해상신질서 건설〉 이라는 새로운 이상을 창도(唱導)하고, 또 세계평화(世界平和)를 유지하고, 그 진보(進步)를 추진시키기 위해 일독(一讀)이 해상동맹(海上同盟)을 체결하여, 신라 역사 이래 국책(國策)은 더욱더 견고(堅固)한 것이 되었다.
장보고와 신라 백성은 귀국(貴國)의 이러한 국정(國政)에 대해 만강(滿腔)의 경의를 표함과 동시에 귀국의 번영(繁榮)과 선진(先進) 발달의 현상은 신라에 있어 귀감으로 삼아야 할 점이 실로 지대하다는 것을 /*다.
장보고는 바다를 통해 신라는 동아신질서 건설, 나아가 세계신질서 건설의 중대책임을 귀국(貴國)과 함께 분담하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고 국가의 독립, 자유의 완성을 위해 노력했다.
이런 청과 해로 진(鎭)을 두며, 탐욕하지 않는, 천하를 제 집으로 만들며 신랑영토를 확장했다.
●장보고의 외침, 신라 번영은 바다에서
바다소리를 자장가 삼고 바다를 보고 자랐던 장보고, 그는 바다를 보며 “바다가 나의 세계이구나” 라고 늘 말해 됐다. 바다세상을 꿈꾼 장보고는 자신의 삶을 〈바다〉 에서 찾으려고 했었다.
그는 평생 바다를 떠나지 않았다. 장보고는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육지보다 ‘바다에 미래가 있다’ 고 했다. 특히 그는 “바다를 안전(安全)하게 만들어야 백성들이 바다로 나오고 향한다” 며 “안전망(安全網)을 구축해 접근성(接近性)을 높이고, 바다 활용도(活用度)를 높여야 한다” 고 강조했다.
장보고는 “미래 신라의 번영은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 며 미래는 바다에 달려져 있음을 입버릇처럼 해됐다.
장보고가 설치한 청해진(淸海鎭)은 기본적으로 국가안보(國家安保)를 지키는 것 외에 국가번영(國家繁榮)을 지원하는 임무가 주어져 있다.
특히 신라는 삼면이 바다고 발해.당나라.일본 등 주변국들과 대적하고 있어 섬과 마찬가지라고 본 장보고는 그래서 해외 물동량의 97% 이상이 바다를 통한다고 봤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에는 세계 강국들이 포진해 있다. 그래서 신라 해군은 발해뿐만 아니라, 이러한 국가들을 상대로 안보(安保)는 물론, 국익(國益)을 지켜야 했다.
그러나 아들 나라의 해군력(海軍力)보다 더 강한 해군력을 건설하기가 쉽지 않았다. 따라서 신라는 그동안 대양해군(大洋海軍)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온 결과 대형선박과 군사선(軍事船) 등의 우수한 전력(戰力)을 갖췄다.
그러나 주변국 해군력을 고려하면 아직도 미흡한 점이 있다고 본 장보고, 무엇보다 전쟁 억지력(抑止力)을 거쳐서 어느 누구도 신라를 감히 위협(威脅)하지 못하게 해애 한다고 본 장보고, 그 대표적인 전력(戰略)으로써 군사.무역을 겸한 다목적선(多目的船)을 구축했다.
미래 신라의 번영(繁榮)은 바다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장보고, 그는 국토가 협소한 나가가 생존(生存)하려면, 바다로 뻗어나갈 수밖에 없다고 봤다. 신라는 전혀 기반(기반)이 없던 상태에서 국가전략사업(國家戰略事業)으로 조선업(造船業)을 육성시켜 조성강국으로 끌어올렸다.
그는 앞으로 신라의 살길은 〈바다〉 라는 인식으로 국가 역량(力量)을 총동원해 조선업과 함께 해운업(海運業)을 발전시켜서 신라를 세계의 물류(物流) 거점국(據點國)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하려면 좋은 항만(港灣)과 인프라가 국축돼야 한다는 장보고의 생각, 그는 군사기지와 무역기지를 갖춘 완도 〈창해진〉 이 좋은 시작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바다는 자원개발, 어업육성, 해양관광과 해양스포츠 등 무한한 보고(寶庫)이라고 보면서 신라의 정책(政策)과 전략(戰略)이 〈바다를 중심〉 으로 펼쳐져야 한다고 봤다.
바다, 넓다 넓은 희망의 세계 바다를 보는 모든 사람들과 마음이 설레듯 바다는 희망(希望)을 나타내고 있다.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 에 고기잡이 노인은 60평생을 바다에서 살았지만, 언제나 볼 때마다 바다는 설렘의 대상이라고 말했다.
고대 사회에서 바다는 두려움의 존재였다. 하지만 군래에 들어서면서 바다는 개척(開拓)과 보존(保存)의 대상이 되었다. 장보고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半島)에서 사는 우리로서는 바다가 너무나도 당연하고 가까운 것처럼 느껴지지만, 바다를 잘 알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고 했다.
바다는 인류(人類) 역사와 함께 해왔다. 신석기(新石器) 시대사람들은 벌써부터 바다가 먹이를 찾을 수 있는 먹이창고인 것을 알고, 바다 근처(近處)에 움집을 짓고 살았다. 인류의 정착생활(定着生活)을 처음 시작한 신석기 시대부터 바다와 함께 역사(歷史)를 시작했다.
로마와 카르타고는 지중해(地中海)의 해상권(海上權)을 둘러싸고 포에나 전쟁을 승리로 이끎으로 로마는 유럽세계의 황금(黃金) 문화를 이끌어나가는 주역(主役)이 되었다.
콜럼버스는 바다를 향한 모험정신(冒險精神)으로 신대륙(新大陸)을 개척하며, 인류에게 새로운 미지(未知)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입증(立證)하였다.
이처럼 바다는 나라의 번영을 위해서는 꼭 장악(掌握)해야 할 중요한 곳이다. 이렇듯 인류의 발달을 바다와 아주 밀접(密接)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나라의 발전과 경제 성장에 있어서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다고 본 장보고는 “반도이기 때문에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자원(資源)의 확보와 무역(貿易)의 우선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고 봤다.
앞으로 얼마만큼의 경제 성장이 이루어질지 모르는 미래 대강국(大强國) 당나라를 대비해 항구(港口) 개척을 진행한 장보고였다. 그는 당나라 장건이 비단길을 개척했지만, 많은 물건을 나르기에는 새로운 방안을 모색해야 했다. 그래서 바닷길을 열게 되었다. 바다를 통해 물자(物資)나 문화(文化)를 교류하는 것이 많은 양을 나룰 수도 있고, 비용도 적게 든다고 본 것이다.
장보고는 “9세기 이후부터는 태평양(太平洋) 시대가 될 것이다” 라고 내대봤다. 여러 나라와의 무역을 바다를 교류(交流)해 활발히 하였다. 이처럼 바다를 삼면이나 끼고 있는 나라로서는 보는 이익(利益)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대륙(大陸)의 중앙에 위치한 나라들이라면 문화나 물자를 교류할 때도 많은 양을 교류할 수 없으며, 그 만큼의 돈이 많이 든다. 또 풍부한 수산물(水産物)은 영양가 있는 식생활(食生活)에 도움을 주기에 바다의 관광 자원으로도 엄청난 이익을 볼 수 있다. 그런 면을 장보고는 꿰뚫어보고 ‘바다가 미래다.’ ‘바다가 살길이다’ 라며 바다에 관심을 두었다.
장보고는 바다를 군사(軍事)면에서나 무역(貿易)면에서 중요한 장소라고 봤지만, 바다를 활용한 관광 자원으로도 필요성을 느꼈다. 그는 바다를 정책적(政策的)으로 개발한다면, 좋은 관광(觀光) 자원이 될 것이라고, 관광 자원이야말로 바다의 환경을 오염 시키지 않으면서 수익(수익)도 올리고 신라의 수려한 경관(景觀)을 외국(外國)에 널리 알릴 수 있는 참신한 기획을 장보고는 펼쳤다.
장보고는 “바다를 사랑하는 일은 곧 인류를 사랑하는 일이다. 바다가 없으면 지금의 신라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바다에 대한 동경(憧憬)과 희망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발달된 문명(文明)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했다.
바다는 자구를 풍부하게 한다. 지구의 젖줄이자, 인류 역사의 동반자(同伴者)이다. 바다를 모른다면, 발전할 수 없다. 바다를 안다 해도, 모두에게 이롭게 사용할 줄 모른다면, 발전은 없다. 바다를 잘 알고 신라의 자랑인 반도의 특성을 이롭게 사용해 태평양 시대의 주역(主役)으로서의 역할을 더 확고하게 자리매김 해야겠다는 장보고의 미래관(未來觀), 그의 의지(意志)는 오늘 날에도 필요하다.
장보고는 신라를 바다를 통해 번영하는 강대 해양국가(海洋國家)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해양 경제는 해양산업(海洋産業)의 핵심 분야 중 하나이다. 정보고는 해양보호 구역 및 어업자원보고 구역 확대 등 신규로 설정하고 해양 생턔계를 복원하여 신라 해역 면적의 10%에 해당되는 해양(海洋) 및 연안(沿岸) 보호 구역을 확보했다.
그가 추진한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목표는 해양, 연안 및 도시 생턔계를 효과적(效果的)으로 관리하고 보호하는 것이었다. 신라 해역 면적의 약 10%를 해양 및 연안보호구역으로 확대하여 생물다양성 보존, 중요 해양 생태계 복원 및 보호에 기여하고, 육상 및 해양 생태계 간의 자연적 관계와 조화를 보장하며, 기후 변화 및 해수면 상승에 선제적(先制的)으로 대응하고, 국방(國防) 및 안보(安保)를 확보하면서 해양경제(海洋經濟)를 지속 가능하게 발전시키고, 독립성(獨立性), 조건 및 영토(領土) 보전을 유지함으로써 신라를 바다로부터 번영(繁榮)하는 강대 해양국가(海洋國家)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정보고는 “당나라와 신라의 장강과 한강을 하나로, 공동 번영의 바다에서 만날 것” 이라고 “당과 교역에서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눈 전망과 약속들은 수많은 협력(協力)의 물줄기가 돼 흐르고, 마침내 양국 공동 번영이라는 큰 바다에서 함께 만날 것” 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당과의 역동적(力動的)인 성장과 도약의 여정에 신라가 신뢰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로서 함께하게 되기를 기대했다. 양국은 글로벌 핵심 협력 국으로서 과학기술, 혁신, 신문명 전환 등 신라가 미래 성장 핵심 축으로 삼고 있는 분야에서 협력을 한층 더 심화해 나갈 것이라고 비전을 제시했다.
장보고는 당.일본.동남아.아랍 등의 무역파트너들에게 “우리가 뿌린 씨앗이 울창한 숲으로 자라나게 될 것” 이라며 “양국이 함께 키워가는 우정 역시 다음 세대를 위한 풍요로운 결실로 이어질 수 있도록 우리 함께 힘을 모아가자” 고 독려했다.
장보고는 무역파트너들과의 식사자리에서 건배사로 “공동번영 바다” 로 선창(先唱)했다.
●장보고, 그는 왜 리더인가?
지배자, 통솔자, 선구자, 개척자, 혁신가, 제왕. 해상왕 이런 칭호가 어색하지도. 지나치지도, 과장되지도 않은 잘 어울리는 존칭(尊稱)이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당나라에서 23년간 있을 때, 군사기술과 전술, 무역술과 수단을 배운 사람이다. 그런 장보고가 신라에 들어와 청해진(淸海鎭)을 통해 대사(大使)로서 탁월함을 보여줬다. 군사면 군사(軍事), 무역이면 무역(貿易), 정치면 정치 모든 면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단지 군사(軍事)가 아니었던 거, 군사지만 무역상인(貿易商人)으로서의 수완(手腕)을 보였다.
군대(軍隊)를 통솔(統率)하고 지휘(指揮)한다는 것은, 탁월한 실력(實力)과 결단력(決斷力)을 갖추어야 한다. 장보고는 배운 자가 아니라 가르치는 자다. 그는 당나라에서 군사술(軍事術)을 배웠고 가르쳤다. 군사술뿐만 아니라, 무역학(貿易學), 거래방법론(去來方法論)에도 배웠고 추진했다.
그런 그이기에 청해진에서의 리더로 임무를 띠었고, 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리더는 팀의 목표 달성을 위한 구성원들이 마주하는 문제를 빠르게 파악 정리하고, 해결을 찾거나, 조언,에스컬레이션-Escalation(사고대응, 분쟁해결)을 수행한다.
장보고는 혼란(混亂)을 통제하고, 대응체계를 정립, 자신의 책임 인식하에 갈등 봉합에 나서 신뢰를 얻었다.
위기 상황에서 어느 정도 공중(公衆) 앞에 서야하고, 통신(通信)과 접촉할 것인지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던 장보고, 자신의 책임 있는 행동이 필요하다면 대중 앞에 나선 태도를 취한 장보고, 그는 위기 상황에서 잘서(秩序)와 통제(統制)를 통해 혼란을 감소시키고, 대응(對應) 체계를 재정립했다. 위기 대응 과정을 감독하면서 대응 주체들이 위기 상황을 이해하고 적절한 방향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조력자(助力者) 역할을 했다.
위기(危機) 대응의 경계(經界) 기준을 제시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사고의 균형감(均衡感)을 줬다. 장보고는 위기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규정(規定)을 매우 중요시 하며, 그것에 따라 조직 내부의 위기관리 실무 팀의 대응 수준과 정도, 조치(措置)의 기준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장보고는 현재 위기 상황을 어떻게 규정하고 어느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했다. 그에 부합한 위기 대응 범위가 설정되고 실제 행동에 반영되게 했다.
장보고는 위기 시 갈등(葛藤)을 봉합(縫合)하는 역할을 했다. 내 책임이라는 인식하에 대응해 신뢰를 얻었다. 평소 위기를 예측하고 대비했다. 위기가 발생한 후 대응 과정은 복잡하고 혼란스럽기 마련이었지만, 그는 적절하게 잘 대처(對處)하는 등의 조직이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 대응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위기는 불확실성(不確實性)을 먹고 자란다. 불확실성의 일부는 ‘신뢰(信賴)’ 에 의해 통제된다. 신뢰는 결과상(結果上)의 성공 여부보다 과정상(過程上)의 투명성(透明性)과 일관성(一貫性)에 의해 얻을 수 있다. 위기 시 러더십의 역할은 결국 신뢰를 얻기 위한 장치다라는 것을 장보고는 리더다운 리더로서 직시(直視)하고 있었다.
●신라가 나서고 청해진이 만든 장대한 보고
바다를 지배하려는 자의 꿈은 원대하다. 넓고 깊은 바다처럼 사람의 마음도 바다를 닮고 싶어 한다. 청해진이라는 이름으로 바다를 춤추게 한 자, 그는 장보고(張保皐)였다. 그의 이름에서 느낄 수 있는 넓힘, 지킴, 높임 이 수식어는 고로 베풀 장(張), 지킬 보(保), 부르는 소리 고(皐)의 장보고이다. 장은 넓히거나 크게 하다는 뜻이며. 보는 편안하게 하거나 돕다는 뜻이다. 고는 고(告)하거나 높다는 뜻이다. 크게 넓히고, 편안하도록 도와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여 알려주는 일에 역할을 띠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이름으로 표현했다.
청해진 대사 장보고는 보호해주겠다는 알림을 하며, 오래도록 두루 길고 넓게 하려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따 ‘장대(張大)한 보고(保皐)’ 라는 정책을 폈는데, 신라가 나서고 청해진 만든 〈장대한 보고〉 다.
장보고는 군사작전(軍事作戰)에서나, 무역전선(貿易前線)에서 장대한 보고라는 작전명(作戰名)으로 추진했다.
청해진 장대한 보고
신라를 세계로, 국격을 최고로, 군사를 강대국으로, 무역을 국제자유무역으로 라는 정책을 세우고, 세계적인 신라로 부상한다. 1국 1강 1신라를 만들고, 多 상대 多 거래 多 수익을 창출하는 구조로 추진한다 라는 장보고만의 정책을 펴 장대한 신라를 만들겠다고, 자신의 이름을 따 〈장대한 보고〉 에 강한 집념을 가졌다.
장보고는 100일 동안, 10개의 나라, 100개 도시를 탐방하며 동북아사이 고대문명(古代文明)의 현대적 부활(復活)이라는 장대한 서사(敍事)를 선보였다.
그는 세계평화 정책을 펴는데 있어서 사람이 먼저다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다’ 라고 했다. 지구의 열병과 골병 등 만병의 근원이 ‘인간(人間)’ 이라고 봤다. 가는 해 오는 해 세계 곳곳을 일주하노라니, 천혜(天惠)를 자랑하는 이곳의 풍광(風光) 또한 지극히 인공적(人工的)이라는 점이 못내 눈에 밝힌다.
가 본 곳마다 다양한 종이 살고 있었고, 다양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었고, 여러 모습들이 그려지고 있었다.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목가적(목사적)인 풍경은 채 몇 년 안 돼 만들어진 가공할 인공자연(人工自然)이다. 네발 동물이 살아가는 드넓은 목장(牧場)과 목초지(牧草地)가 생겨나는 만큼이나 태고(太古)의 원시림(原始林)은 장식(裝飾)되어 왔음을 모격(目擊)했다.
북반구 사람들에게 일용할 고기와 치즈와 우유를 제공하는 남반구의 낙농업(酪農業)부터가 자본주의(資本主義) 세계체제(世界體制), 수출(輸出)과 수입(收入)으로 작동하는 국제분업(國際分業)과 세계무역(世界貿易)의 소산(所産)이었다.
더 이상 무위장녀(無爲自然)은 없었다. 돌아갈 자연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기공(加工)된 자연, 인공적(人工的) 자연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인위(人爲)가 곧 하위(下位)를 뜻하는 것만 아니었다. 가짜 자연이라기보다는 ‘디자인된 자연’ 이었다. 필요한 것은 본디 자연으로의 회귀(回歸)보다는 자연스럽게 디자인된 미래 문명의 창조(創造)였다.
오래된 미래보다는 〈깊은 미래〉 가 더 어울렸다. 요사이 인공 인간이 등장하고 있다. 유전학(유전학)에서는 GNO사이언스라는 어법도 널리 사용된다. 인공지구(人工地球)와 인공생명(人工生命)과 인공지능(人工知能), 문자 그대로 천지(天地)가 개벽(開闢)하고 만물(萬物)이 다시 창조되고 있다.
그리하여 20세기 지구는 오롯이 인간이 만들어낸 49억 년 만의 새 지구라고 한다. 제2의 창세기(創世記), 인류세(人類世)라는 신조어가 조금의 과장(誇張)도 허언(虛言)도 아니다.
장보고는 이런 인류세에 대해 깊은 고민을 했었다. 그는 산업화(産業化)시대에 역경(逆境)도, 민주화세대(民主化世代)의 고통(苦痛)도 일국적(一國的) 과업에 그쳤다는 것을 깨닫고, 다음 세대에는 필연적(必然的)으로, 숙명적(宿命的)으로 지구적(地球的) 단위로 사고하고 지구적 수준에서 실천하는 지구세대(地球世代)가 아니할 수 없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지구와 함께 살아가는 사상(思想)을 연마하고 일상을 창조하는 인공지구(人工地球) 시대의 첫 번째 지구사랑 지키기를 표방했다. 그는 홀로세, 치세(治世)의 살아가기, 성장하기보다는 인류세(人類世), 난세(亂世)의 살아남기, 생존하기가 더 적절하고 절실하다고 생각했다.
21세기에 부활한 고대 한반도의 민족 서사시(敍事詩)가 이미 9세기에 일어났다. 장보고라는 한 인물에 의해서 지구는 또 하나의 세계를 보여줬다.
자연적이면서도 인공미(人工美)를 가미(加味)시켰고, 인공적이면서도 자연미(自然美)를 구사(驅使)했다.
장보고는 장대한 보고 정책으로 ‘인위자연(人爲自然)’ 을 펼쳐가돼, 자연을 사람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질 않았다. 인위자연은 가공(加工)으로써 사람이 만든 것을 말한다. 자연적인 것이 아닌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물건 등이 인위자연으로 표현했다.
그가 추진한 국제자유무역은 인위자연(人爲自然)이라고 볼 수 있다. 가공식품(加工食品), 가공제품(加工製品) 등을 각 국으로 수출하거나 수입했다.
장보고는 군사(軍事)면에서 장대한 보고 정책을 보여줬지만, 무역(貿易)면에서도 장대한 보고를 보여줬다. 그는 일이 지금에서는 장대한 보고의 역사적인 일로 본다.
장보고는 신라무역, 국제자유무역을 추진한 일에 대해서 신라무역의 역대급 실적과 경쟁력은 기업이나 상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신라 사회 전체의 결실(結實)이라고 봤다.
그는 “신라무역의 결실에는 수많은 기반시설. 수많은 협력기업, 신라 조정과 신하, 백성들과 연결되어있다” 고 했다. “현재 발생한 이익(利益)을 회사 내부의; 구성원들끼리 나눠도 되는 정책이 아니다. 신라무역 이익은 신라 전체에 돌아가는 것” 이라고 강조했다.
장보고는 신라무역은 한 번 이익을 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대규모 투자가 지속되지 않으면 안 되는 산업구조라고 봤다. 현 단계에서 어느 정도 이익을 누리고, 미래 세대의 몫이자 미래 경쟁력을 위해 남겨놓을 것인지에 대한 조화(造化)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장보고는 무역으로 인해 남는 자금을 저축(貯蓄)했다가 다시 투자자금(投資金)으로 투입되게 하는 경제구조(經濟構造)를 확실히 하여 신라무역을 추진했었다. 장대한 보고란 그저 기분이나 내는 일이 아닌, 다음 세대,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는 일에 역할을 수행했다.
장대한 보고는 신라를 〈세계적인 규모〉 로 키우기 위한 ‘신라張, 세계張’ 이었으며, 신라 안보를 담당한 ‘신라保, 무역保’ 였다. 신라를 높은 단계로 얼려놓은 ‘국격皐, 위상皐’ 를 한 청해진(淸海鎭)이었다. 청해진을 〈장대한 보고〉 라는 정책적인 측면에서 볼 때 글로벌 신라로 당당하게 서게 하는, 이미 1000년 앞서 진행한 9세기의 정책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신라 무역대국을 꿈꾼 장보고, 해상 공급망 전략상선대 확충
바다는 인류 역사의 통로(通路)였다. 권력의 기반(基盤)이었다. 세계 질서를 결정짓는 무대(舞臺)였다.
대양시대(大洋時代)를 포르투갈과 스페인, 행상 패권을 장악한 영국, 그리고 현대의 미국까지 바다를 지배한 국가는 곧 세계 경제를 주도(主導)했다. 바다를 장악(掌握)한 국가가 번영(繁榮)했고, 바다를 외면한 국가는 쇠퇴(衰退)했다.
이런 나라들처럼 해양시대를 열고 싶었던 장보고는 바다에서 태어나 바다에서 죽겠다는 각오로 바다사나이가 되겠다며 바다를 꿈꾸었다. 동경하는 바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겠노라고 하면서, 그는 바다에 자신의 인생을 걸었다. 그는 “바다는 나의 몸이다” 라고 했다. 바다의 물결은 “나의 마음이다” 라고 했다. 그런 정신으로 바다를 꿈꾸고 희망을 걸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半島) 국가임에도 신라는 바다를 기회(機會)의 공간이 아닌, 경계(境界)의 공간으로 인식했다. 이런 점에 장보고는 잘 못된 사고로 보고, 바로 잡고자 했다.
쇄국(鎖國) 정책으로 스스로 문을 닫았던 시기에 세계는 이미 바다를 통해 연결되어 있었고, 신라는 당이나 일본 등으로 국한(局限)되어있었다. 변화에서 멀어져있었던 것이다. 신라는 당.일본 등과 나름의 해상을 통한 교류를 해왔지만, 국제적인 규모에는 못 미쳤다. 그래서 장보고는 신라의 바다 영토(領土) 확장(擴張)이라는 거대한 플랜을 짜 바다에 투자(投資)를 했다.
다시 바다로 나가게 했으며, 나간 바다는 더 범위(範圍)를 넓혔고 거리를 도 길게 했다. 당.일본에서 아랍 쪽으로 그 범위를 확보해 해운(海運)과 무역(貿易)을 통해 세계 시장과 연결되게 했다. 그 위에서 신라를 무역 강국(强國)으로 만들어냈다.
장보고는 신라의 해양 정책에 대해 신라는 또 한 번의 전환점에 서 있다고 봤다. 지정학적 충돌은 세계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다고 판단했다.
당나라의 해적 등으로 신라 해협에서의 긴장 고조가 새로운 위협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당나라의 해적들이 시시때때로 출몰해 해양 질서를 어지럽히게 한 것에 대해 충격에 빠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신라의 현실은 더욱 엄중했다. 신라의 수출입 물동량의 90%가 바다를 통해 이동했다. 이는 곧 해운이 흔들이면 제조업이 멈추고 무역이 끊기며, 신라 경제 전체가 마비될 수 있음을 의미했다.
해운은 더 이상 단순한 운송 서비스가 아니디라는 것을 장보고는 깨닫고, 신라 경제를 지탱하는 혈맥이자 위기 상황에서 신라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고 봤다.
장보고는 해운은 단순한 운송 서비스를 넘어 안보와 직결된 전략자산(戰略資産)으로 인식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라 제조업, 무역 유지를 위한 해상 공급망의 안정성은 경제 안보의 중심이 되고 있고, 생활용품.곡물 등 전략화물의 안정적인 수송은 국가안보의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보고는 신라가 필요한 것은 해운을 전략자산으로 재 정의하는 일이었다. 그 출발점은 국선대(國船代)의 확대다. 장보고는 신라 선대 확대의 4대 핵심 전략을 제안했다.
신라의 선사(船社)들이 당.일본 등 선사와 벌이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은 상황임을 장보고는 직시했다. 그래서 현재의 신라 선대 규모를 2배 이상으로 확장해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고 보면서, 신라가 기존의 선대 규모를 크게 많게 용도에 맞게 해야 할 시점이라며, 세계 물류 대란 발생 시 신라 기업의 물량을 우선적으로 처리할 뿐만 아니라, 안정적(安定的)인 운임(運賃)으로 수출할 수 있는 해상주권(海上主權)을 확보하는 일이다.
그래서 신라 선대 확대 4대 핵심 전략(戰略)으로 ▲국적 선대 확대 ▲물품 수송 자립 ▲신라 전략상대 구축 다목적 선박 전환 등이다. 특히 신라 전략상대 구축은 평시엔 상업용, 유사시 국가 통제 애너지.식량.잔략물자 수송 투입의 국내 건조 필수로 50척 이상 확보했다.
이런 핵심 전략의 수송로(輸送路)의 안전은 전력망(戰力網)과 도로망(道路網)만큼이나 기본 인프라로 보았다.
유사시(有事時)를 대비한 전략상선대(戰略商船代) 구축이 필요다고 본 장보고는 전쟁(戰爭)이나 재난(災難) 성황에서 민간(民間) 선박은 군수물자(軍需物資)를 수송하는 핵심 자신이 된다고 보고, 이들 선박(船舶)은 육해공군(陸海空軍)이 전선(前線)을 지킬 수 있도록, 군(軍) 물자를 실어 나르는 바다 위의 보급로(補給路)를 개척했다. 이것이 이른바 〈제4군〉 개념이다.
장보고는 신라 전략상선대는 민간선사가 선박을 운영하되 정부가 선박 건조(建造)와 신라 선원(船員) 고용 비용(費用)을 지원하는 구조로 운영(運營)하게 했다. 평상시에는 상업용(商業用)으로 쓰다가 전시(戰時) 등 유사시 정부 명령(命令)에 따라 핵심 물자를 수송(輸送)하게 하였다.
전략상선대의 대부분이 상선.소형선 등으로 대부분 개인 선사들이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밖에 없는 선박들이었다.
장보고는 유사시에 대비한 선박이므로 청해진 조선소에서 건조해야 한다고 선박은 국가차원에서 건조하게 했다. 가장 전략상선대법(戰略商船代法)을 제정(制定)해 정부의 지원을 강화하고, 비상시 선박 동원 유효성(有效性)을 높였다.
청해진 건조를 위한 건조보조금, 신라 선원 승선에 따른 운영보조금을 법제화(法制化) 했다. 전략상선대 승선 해기사(海技事)에게는 전략 해기사로서 대우나 혜택을 확대했다. 또 세제(稅制) 지원 등의 이루자게 해주었다. 일종 규모의
일종 규모 이상의 전력상선대를 국가 차원에서 확보하고 신라 선원(船員)을 기반으로 운영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는 것은 경제안보(經濟安保)을 위한 최소한의 준비다.
장보고는 “결론은 명확하다” 라고 하며, 해운은 더 이상 민간산업(民間産業) 영역에만 맡겨둘 수 없는 국가 전력자산(戰略資産)이라고 보고, 대형 상선 확대, 물품 수송 자립, 전력상선대 구축, 다목적 선박 전환 등 이 모든 과제는 개별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의지로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국가 차원에서 이루어지게 했다.
장보고는 바다를 이해하지 못하는 국가는 세계 경제를 이해할 수 없다. 그리고 해운(海運)을 장악(掌握)하지 못하는 국가는 무역국가(貿易國家)로서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신라가 다시 한 번 도약(跳躍)하기 위해서는 ‘바다’ 를 바라보는 시선부터 바꾸어야 한다. 정부(政府)와 산업계(産業界), 그리고 백성 모두가 바다의 가치를 재인식(再認識)하고 ‘무역대국(貿易大國) 신라의 새로운 백년을 준비’ 해야 할 때이라고 강조했다.
신라는 장보고의 원대한 꿈, 신라 해운설계를 해, 신라는 바다와 관련된 활동 지식이 개인의 시야를 확장하는 해저지질도 같은 해영 정보의 확장, 무역 길 확보, 그리고 여행을 통해 세계관을 넓히는, 바다의 세계를 더
장보고는 바다의 실크로드, 세계의 모든 깃발을 휘날려라! 하며 운송은 운명이다-Transportation is Civilization. 그는 9세기에 신라의 바다 세계를 넓히려는 꿈을 꾸고 희망을 향해 바다를 개척했다. 특히 해상무역(海上貿易)에 집중하며, 바다의 실크로드를 만드는데. 노력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통해 연안(沿岸)을 따라 곳곳에 무역기지(貿易基地)를 건설(建設)했다.
문명의 길, 바다의 실크로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되고도 광범위한 역사(歷史)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깊은 역사를 더 역사적인 실크로드로 만들어내기 위해 장보고는 신라를 기점으로 또 다른 바다 실크로드를 개척했다.
기원전 2500~3000년 무렵의 이집트인들은 육로(陸路)보다 해로(海路)가 더 훨씬 유리(有利)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장보고도 신라 언안을 비롯해 다른 지역의 연안을 따라 곳곳에 무역기지(貿易基地)와 보급기지(補給基地)를 건설에 나섰다.
이집트의 배들은 나일강의 동쪽 지류(支流)를 따라 비터호를 경유, 홍해로 빠져나온 뒤 폰트까지 거서 금, 상아, 흑단, 가구용 목재, 향, 계피, 가죽 따위를 싣고 다시 나일강의 항구(港口)로 돌아왔다. 그 뒤 알렉산더의 후계자들이 이집트에 건설한 프톨레마오스 황조 때 이집트에서 활동하던 그리스 상인(商人)들이 홍해의 항구로부터 아라비아 해안(海岸)을 거쳐 인도까지 항해(航海)하는 데 성공했다. 로마제국의 등장은 이런 고대 인도 항로(항로)의 비약적인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기원전 1세기 중엽 로마 항해사 하필루스가 아라비아해의 계절풍(季節風)을 이용해 안정적이고 주기적으로 인도를 항해하는 방식을 개발해 동서 항로의 발전에 결정적 기여를 했다. 상인들은 7월 이집트를 출발해 계절풍을 타고 9월 말 인도의 항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11월 말 인도에서 귀로(歸路)에 올라 2월이면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올 수 있었다. 서기 160년 무렵까지는 이 동방(東方) 항로가 중국까지 이어졌다. 당시 바다는 아직 주로 육고의 실크로드를 통해 로마로 들어갔지만, 향수.향료.후추.보석.역.진주.상아.면화.무명.가죽.티크목재 등 인도산 물품들은 바닷길을 통해 이집트나 이라크 지역으로 간 뒤 다시 로마로 운송(運送)했다.
이런 것처럼 장보고도 바다 실크로드에 관심을 갖고 신라만의 바다 실크로드를 개척하였다. 서쪽애서 동쪽으로 오는 서도(西道)와 마찬가지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진출하는 시도도 이어졌듯이, 이미 서기 1세기 무렵 중국의 내륙부터 바다의 실크로드를 거쳐 이집트와 중동 지역으로 나아가는 항로(航路)가 활성화되었듯이 신라의 바다 실크로드를 추진했다.
도자기 향신료, 전적으로 바닷길에 의존했다. 바다의 실크로드는 일찍부터 도자기와 향신료의 교역로이기도 한다. 운송 과정에서 파괴될 위험이 높고 중량도 무거운 도자기를 나르는 데 배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그리고 인도와 동남아 일대에서 생산되는 향신료를 아랍과 유럽 지역으로 대대적인 운송하기 위해 배(船)와 항구(港口)가 발달했다.
육상교통의 위함과 복잡성 때문에 열대와 아열대산 향신료는 거의 전적으로 바닷길에 의존했다. 바다의 실크로드는 〈도자기의 길이자 향신료의 길〉 이었다. 바다의 실크로드는 또한 〈종교(宗敎)의 길, 문명(文明)의 길〉 이기도 했다. 이 길을 통해 불교(佛敎)의 많은 고승(高僧)과 순례자(巡禮者)들이 오가면서 인류 정신문명(精神文明)의 지평(地平)을 넓혔다.
●장보고의 안보정신 신라의 영토를 넓히다
해운의 바다를 넓혀라-張
바다의 안보를 지켜라-保
신라의 위상을 높여라-皐
장보고는 튼튼한 안보(安保) 속에 활발한 무역(貿易)을 추진했다. 안보에는 외교안보(外交安保), 경제안보(經濟安保), 무역안보(貿易安保), 국사안보(軍事安保) 등 ‘국가안보가 미래다’ 라는 튼튼한 안보 유지 속에 무역보급선(貿易補給船)을 국제보고선(國際保皐船)으로 운행했다.
징보고의 이름은 〈바다〉 를 말한다. 張保皐 이름 한자에서 바다가 있고, 물이 흐른다.
해상 징보고
신라 장보고
세계 장보고
바다를 지배(支配)한 장보고가 되겠다는 의지로, 그는 자신의 이름을 장보고라 하였다.
장(張)은 넓은 바다다.
보(保)는 깊은 바다다.
고(皐)는 높은 바다다.
바다처럼 넓고 깊은 큰 물결을 일으키겠다는 확고한 정신이다. 신라 바다사상과 경제관념이다.
장보고라는 이름은 알면 알수록 깊음과 의미가 있고 사랑이 간다. 그저 개념 없이 지은 이름이 아니다. 그는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바다소리를 듣고 바다를 사랑하게 됐다. 영암 선암(船岩) 마을은 천 년 전에 바닷물이 출렁거렸다. 그 물결은 이어져 당나라에 이르렀고, 이른 파도는 장보고를 〈바다사나이〉 로 만드는 토대를 갖추게 하였다. 그는 완도 청해진에서 바다인생의 완성도를 이루었다. 지금의 선암 바다는 사라졌으며, 그 대신 논두렁 밭두렁이 결(洯)을 한다.
활을 다루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며 궁복(弓福)이라고 했던 이름을, 그는 바다에서 영토 확장과 안보를 통해 나라의 위상을 높이겠다고, 자신의 영예스럽게 하겠다며, 〈장보고〉 로 개명하여 바다사나이로서 대양(大洋)을 누볐다.
상생해 보라!
파도치는 바다에서 배를 타고 활과 칼을 들고 항해하는 모습을...
참 멋진 그림이 아닌가?
장보고는 자신의 이름에 모든 철학(哲學)과 사상(思想), 미래관(未來觀)을 담고, 이름처럼 전진(前進)했다.
파도를 단 칼에 베어버린 장보고, 그는 배보다 더 큰 물고기를 활로 제압(制壓)시켰다. 당연 해적들을 물리치는 당당함을 보여줬다.
위세(威勢)를 떨친 그는 파도가 아무리 높게 거칠게 친다고 해도 장보고 앞에서는 파도의 무기력(無氣力)함을 드러냈다. 헤쳐 나가는 그의 힘에 파도도 그의 앞에서는 잔잔해졌다.
장보고가 자신의 이름대로 신라의 영토와 무역을 확장하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국가안보(國家安保)의 외교안보(外交安保), 국방안보(國防安保), 경제안보(經濟安保), 자원안보(資源安保)에 있어서 어느 누구하나 그의 뜻을 꺾을 수가 없었다. 장보고의 단호함, 그는 상대의 무례하고 선을 넘는 행동을 감정적(感情的)으로 맞서지 않으면서도, 내 경계(境界)를 분명히 하고 원칙(原則)을 지키는 태도를 유지했다.
상대에게 자신의 경계를 알리고 존중받게 하며, 상호존중(相互尊重) 기반의 관계로 전환하게 한 장보고였다.
인간관계에서 단호(斷乎)하지 못하고 선 넘는 것을 허용(許容)해주면 상대는 내가 제공해주는 호의(好意)에 대가 없이 무임승차를 하게 되고, 이것은 상대를 돕는 게 아니고 더 망가지게 된다는 점을 알고, 단호함을 보였다.
공짜로 이익(利益)을 얻는 것은 이익을 얻는 자에게도 해가되고 사회 전체에도 해가 된다는 장보고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 개념과 단호하지 못한 것은 명확히 구분했다.
직장 내 인간관계, 선 넘는 사람을 멈추게 하는 단호한 말 한마디는 〈장보고〉 였다.
가장 단호한 장보고, ‘불확실한 사회 뜻대로 할 수 있는 오직 우리 자신의 판단과 가치관뿐이다’ 라고 그는 유연하게 대처하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확장, 안보, 고위라는 장보고의 이름이다. 자신의 이름을 정책적(政策的) 방안(方案)과 상징적(象徵的) 브랜드로 하여 그는 국제자유무역을 활발히 하였다.
안보관(安保觀)이 투철(透徹)한 장보고, “나는 반드시 신라의 영토 확장을 하겠노라” 라고 굳게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존재 높임과 동시 세계의 신라로 그 위상을 높이는데 노력했다. 천번 만번 말해도 그에 대한 위대함을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그는 세계적(世界的)으로 훌륭한 인물이다.
장보고의 이름은 ‘빛남’ 이 있다. 빛나는 이름으로 남았다. 장보고의 생애(生涯)와 업적(業績), 그의 활약을 통해 역사를 보다. 역사를 뒤흔든 결정적 순간의 재미있고 놀라운 재발견이라고 할까? 그의 생애(生涯)와 업적(業績)은 ‘역사적(歷史的)-Historic’ 으로 우리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전한다.
놀라운 이야기 속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장보고는 신라시대의 무적(無敵) 장군으로서 그의 뛰어난 전략(戰略)과 대처 능력, 바다 안보(安保)에서 우수한 지휘력(指揮力)으로 한국 역사에 빛나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이번 글에서는 장보고의 생애(生涯)와 업적(業績), 그의 활약을 통해 역사적으로 우리에게 남긴 놀라운 이야기를 살펴보았다.
장보고는 789년 전남 영암 선암마을에서 태어났다. 신라는 당시 당.일본 등 주변국의 해적(海賊)과 내란(內亂)으로 동요(動搖)하던 시기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는 당나라에서 무령군(武寧軍) 무과(武科)에 합격하며 그의 열정과 노력을 보여줬다.
장보고는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로 부임해 신라의 연안(沿岸)을 지켰고, 바다의 질서(秩序)를 회복시켰다. 무역(貿易)에 손을 대어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에도 그 명성(名聲)을 크게 떨쳤다. 그의 철저(徹底)한 준비와 탁월(卓越)한 전략(戰略) 능력으로 승리(勝利)를 거두었다.
장보고는 해양선(海洋船)을 개발하여 당.일본 군사선(軍事船)을 압도(壓倒)하는 데에 성공했다. 또 무역선(貿易船)에 첨단기술(尖端技術)을 도입하며, 뛰어난 항해(航海) 기술과 운항(運航)으로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에 이바지하였다. 이 독특한 전술(戰術) 무기와 선박(船舶) 기술은 당시 세계에서도 놀라운 혁신(革新)으로 평가되었다.
군사선과 무역선은 불가능한 승리(勝利)와 업적(業績)을 이끌어내며 장보고의 위대한 지휘력을 입증했다.
영원한 영웅 장보고는 그의 뛰어난 지휘력(指揮力)과 영웅적(英雄的)인 실적으로 인해 신라시대의 해상왕(海上王)으로 간주(看做)되며, 그의 이름은 한국 역사의 〈영원한 해상왕〉 으로 기억된다. 그의 모습은 동상(銅像)과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媒體)를 통해 후대(後代)에게 전해져왔으며, 그의 미래를 위한 희생(犧牲) 정신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준다.
장보고는 그의 열정(熱情)과 불굴(不屈)의 의지를 통해 역사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든 극복(克服)할 수 있는 힘을 상기(想起)시키며, 우리 역사와 미래에 대한 자부심(自負心)을 불러일으킨다. 이런 입증(立證)과 정(認定)을 받을 만큼, 그의 군인(軍人) 정신, 경제(經濟) 관념과 대처(對處) 능력은 역사적(歷史的)인 성과로 기록되었다.
커피가 단순한 기호식품(嗜好食品)을 넘어, 장내(場內) 미생물(微生物)과 대사 물질에 변화를 주는 복합적인 요인이듯이, 커피가 장(腸)과 뇌(腦)의 소통(疏通) 경로를 다시 설계해 정서적(情緖的)인 안정감(安定感)을 주는 데, 기여하고 있듯이, 커피가 장내 유익균(有益菌)을 활성화하며, 우울감(憂鬱感)과 스트레스, 충동성(衝動性)을 낮추는 데도 효과가 있는 듯이 장보고가 운영한 군사(軍事)와 무역기지(貿易基地)인 청해진(淸海鎭) 정책도 커피성분처럼 신체적(身體的).정신적(精神的)인 안정(安靜)과 활력(活力)에 중요한 역할을 한 듯하다.
청해진은 신라의 장(腸)을 깨끗이 해주었고, 소화(消化)를 도왔다. 장내 유익균(有益菌)을 늘러주고, 해로운 세균(細菌) 억제(抑制)해 소화와 흡수(吸收)를 원활하게 도왔다. 정장제(整腸劑), 장을 바르게 한다라는 느낌이 들게끔, 장을 정상(頂上) 상태로 돌려주는 억제(抑制)를 했다.
청해진은 신라의 〈정장제〉 역할로써 장내 세균의 균형(均衡)을 회복(回復)시키고, 탈이나 불편함 같은 장 기능 이상을 완화하였다. 특히 장내 유익균을 늘려주고 해로운 세균을 억제해 소화와 흡수를 원활하게 돕는 역할을 띠었다.
신라가 체했을 때, 소화불량일 때 장보고는 이에 대한 처방술로 치유를 한 유익균이 되어주었다. 소화를 돕고, 비타민을 합성하며 면역력(免疫力)을 강화시켰다.
청해진의 산바이오틱스-Sanbiotics, 유익균(Lactic Acid Bacteria)을 직접 공급하거나,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성분을 공급하는 등의 산바이오틱스의 조합(調合)을 이뤄 정장제 같은 청해진이 단순히 장(腸) 운동을 조절하는 약(藥)이 아니라, 장내 세균의 환경을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청해진은 소화 흡수(吸收)를 도왔다. 비타민을 합성(合成)했다. 해로운 균의 증식(增殖)을 억제했다. 면역력(免疫力)을 강화했다. 뇌와 연결되어 기분(氣分)에도 영향을 줬다.
청해진은 채소.과일.통곡물.콩류 등의 식이섬유(食餌纖維)를 섭취(攝取), 김치.된장.요구르트의 발효식품(醱酵食品), 장을 원활하게 해준 식수(食水) 제공, 장 운동과 세균 균형을 무너뜨리는 스트레스 관리에 중요한 역할로써의 신체기능.정신건강은 물론, 나라의 건강과 경제 활성화를 돕는 역할을 해주었다.
정장제는 단순한 장악(掌握)이 아니라, 신라 몸의 균형을 회복시켜주는 중요한 ‘보조제(保潮堤)’ 였다.
유산균과 정내 유익균은 정장제의 핵심 축을 이르며 소화(消化), 면역(免疫), 정신(精神) 건강까지 전신(全身)에 영향을 미쳤듯이 청해진도 그런 역할로써의 신라 백성들의 생활 습관 관리와 함께 정장제(整腸劑)를 활용하게 했다. 잦은 소화불량(消化不良)과 불편함에서 벗어나 건강한 장과 맑은 컨디션을 회복(回復)되게 해주었다.
장보고는 그의 뛰어난 전략(戰略)과 용맹(勇猛)한 실력으로 신라를 지켰으며, 역사적인 해상왕으로 남아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희생(犧牲)과 열정(熱情), 불굴(不屈)의 의지(意志)와 집념(執念), 투철한 사명감(使命感)으로 가치(價値)를 전달하며, 장보고의 무적(無敵)의 위업(偉業), 불굴(不屈)의 투지(鬪志), 끈질긴 집념(執念), 나라를 지키고자 한 신념(信念), 신라를 세계적인 국가로 만들려는 헌신(獻身)은 한국 역사 속에서 영원히 기억(記憶)될 것이다.
장보고의 업적(業績)은 한국 역사에 빛나는 영광(榮光)이며, 그의 이야기는 후대에도 영원히 전해져갈 것이다. 그의 힘과 열정을 기리며, 장보고의 영광 찬 이야기를 기억하고 공유해 봤으면 한다.
궁복(弓福).궁파(弓巴)라는 이름은 어떤 연유(緣由)로 짓게 됐는지, 장보고(張保皐)로 이름을 짓게 된 이유(理由)는 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장보고라는 이름이 전하는 의미가 뭔지. 그의 출생년도와 태어난 곳에 대한 기록이 없어 여러 설(說)로 전해지는데, 진정 그가 언제 어느 곳에서 태어난 건지를, 그런 기록을 입증하는 전설적(傳說的)으로 전하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 그 사실을 밝히는 이야기들로 엮여낸 장보고에 관한 서사시(敍事詩)를 드라마틱하게 저술(著述)해본다.
●항해는 계획을 세우는 순간 항해가 시작되다
신라해역(新羅海域)에서 항해(航海)를 할 때는 자유롭게, 마냥 배가 떠가는 대로 항해를 하였으나, 신라해역을 벗어나서는 철저한 계획을 세워 항해토록 했다.
항해는 끝나는 그 순간 항해는 다시 시작된다. 그 기억은 두고두고 재생(再生)되며, 선박(船舶)들의 항해를 멈춰 세우고, 그리움으로 뒤돌아보게 한다.
대양(大洋)을 누비려는 신라 선박들을 항해의 계획을 세우는 그 순간부터 항해가 시작되었다. 그만큼 항해의 의지가 강했던 장보고의 항해 계획은 확고했다. 항해가 끝났을 때 새로운 길이 시작되었고, 선배(先배)가 가면 후배(後배)가 갔고, 후배가 오면 선배도 왔다.
나의 항해는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가야한다며, 장보고의 항해의 여정은 시작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긴 항해가 끝나면, 두 번째 항해가 시작된다. 청해진을 보는 것 자체가 바로 그 두 번째 항해일 것이다. 무수한 질문들을 품고 바다로 항해하는 배처럼, 우리 역시 이 청해진을 통해 삶의 깊은 바다로 항해를 떠나게 된다 라고, “지나간 내 생애(生涯)에 거센 파도여! 내 희망의 물결을 더욱 높게 일게 하라!” 바다사나이 장보고가 지켜본 바다, 그리고 인간의 실태. 신라 해양문화는 청해진과 함께 또 하나의 시작을 알리며, 더욱 세계를 향했다. 인간 시유(思惟)의 깊이와 광활한 상상력(想像力)의 한 정점을 표상하는 대작(大作), 바다의 서사시(敍事詩)가 펼쳐졌다.
●장보고에게는 바다가 아닌 보다였다
푸른 바다. 깊고 넓은 바다. 장보고에게는 그런 바다가 〈보다〉 라는 것으로 느껴졌다. 보다는 ‘바라보는(見) 것과 지켜봐주는(保)’ 의미로서의 보다다. 보다는 ‘신라를 보다. 세계를 보다. 대양을 보다’ 등으로 바다를 그렇게 여겨 불렀다. 바다는 ‘눈길이 가는 대로 바라 보다(視線)’ 이며, 보다는 ‘멀리 바라보고 있다(眺望)’ 라는 뜻이다. 바라보다-〈너 일까봐 바라보고〉 다. 보고 있다-〈나를 바라보고〉 다. 보다는 멀리 내다본다는 의미에서의 바람 봄이다. 미래를 예견(豫見)하고 장기적으로 대비하는 통찰력(通察力) 또는 현재의 문제를 넘어 더 넓은 관점(觀點)으로 상황을 바라보는 태도(態度)를 말한다. 장보고는 심사(深思), 깊이 생각하고, 원려(遠慮), 먼 앞일을 미리 헤아리며 멀리 내다본다는 의미로써의 보다였다. 그는 “바다를 멀리 내다보라!.” 장보고가 맞추어진 초점(焦點)은 우리가 어디에 있고 싶은지 또한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지 바다를 멀리 내다본 다음, 매일 시간을 할애해 거기에 도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일들을 행할 때 더욱 선명(鮮明)해진다는 신념(信念)을 가졌다. 장수(將帥)라면 깊이 생각하고, 멀리 내다볼 수 있어야한다는 생각을 했던 장보고의 시선에는 바다를 〈보다〉 로 여겼다. 그는 눈앞에 문제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미래에 대한 내다볼수록 목표는 더욱 뚜렷해지고, 어떤 위기(危機)와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릴지 않고 조직(組織)을 이끌어갔다. 장보고는 흔들리는 배를 탓을 때 멀리를 느끼는 것은 한치 앞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먼 바다를 바라보면 바다의 파도는 잔잔(潺潺)하고, 평온(平穩)하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멀리도 사라진다고 했다. 바다는 바로 앞에 있는 것들을 보는 전반에 걸치지 않고, 한 부분에 국한된 단편적(斷片的)이고 일반적(一般的)으로 적용되는 ‘보편적(普遍的)’ 인 개념(槪念)이라면, 보다는 멀리 있는 곳까지의 일들을 내다보는 전체적(全體的)으로 아우르는 ‘포괄적(包括的)이고 전반적(全般的)’ 인 개념이다. 또 보다는 하늘이 보고 있고, 세상 사람들이 보고 있음을 뜻한다. 정보고가 하는 일은 하늘이 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다라는 명칭보다는 ‘보다’ 로 보았다.
장보고는 바다는 멈춤 상태에서의 시선(視線), 보다는 진행상태에서의 시각(視覺)이다. 보다는 생태동사, 행위동사, 성취동사, 완수동사와 자동사, 타동사, 완전동사, 불완전동사와 규칙동사, 불규칙동사와 본동사, 보조용언과 주체동작동사, 주체변화동사와 능동태, 수동테적인 동사로서의 품사를 갖춘다.
하늘이 보고 있다. 바다를 품어라!
장보고는 푸른 물결 바다를 ‘푸른 물결 보다’ 라고 하면서 보다에 원대한 꿈을 키웠다.
바다의 시선(視線), 바다의 보선(保線)으로 시해(視海)하며 보해(保海)하는 것이기에 바라보다의 ‘바다’ 라고 부르지 않고 보호(保護)하다의 ‘보다‘ 라고 했다. 바다를 보호하는 보해(保海)는 보배로운 바다의 ‘보해(寶海)’ 로 여겼다.
그래서 장보고는 보배 같은 바다를 바라봤고(視), 지키려(保) 했다. 장보고 가다. 장보고 오다. 장보고라는 이름은 바다를 보러 갔고, 바다를 보고 왔다는 뜻이 담긴다. 장보고의 장은 성씨(姓氏)이면서 〈바다〉 를 나타낸다.
장보고는 ‘바다를 보러 간다. 온다’ 라는 의미를 담고, 바다를 향했다. 바다에 띄운 배들은 장보고의 마음에 띄운 배이면서 신라의 백성을 태운 배로서 항해(航海)했다.
장보고(張保皐)의 장(張)은 확장(擴張)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마린스-Marinus의 왕양(汪洋)하다. ‘바다가 끝없이 넓다’ 는 뜻의 형용사(形容詞)로 바다가 한없이 넉넉하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바다는 ‘왕양하다. 양양하다’ 처럼 ‘넓다. 넉넉하다’ 는 뜻의 형용사를 붙여 ‘바다가 한없이 넓다’ 는 의미로써의 a Floating boat on the Sea-바다 위에 떠 있는 배처럼 장보고다.
바다는 큰 바다 양(洋)으로 기득 차서 넘치는 상태에 있는 ‘양일(洋溢)하다’ . 한없이 넓고 멀어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망양(茫洋)하다’ . 바다가 끝이 없이 넓은, 사람의 앞날이 한없이 넓어 발전의 여지가 많은 ‘왕양(汪洋)하다’ . 앞날이 희망차고 전망이 밝은 ‘전도양양(前途洋洋)하다’ 라는 의미로써의 바다다. 그런 바다를 ‘보다’ 라고 한 장보고, 그는 자신의 성인 장(張)을 양(洋)으로 여기며 장보고라 하였다.
확장의 대상은 양(洋)이였으며, 그 바다를 지킨다(보호.안보)는 사상(思想)과 정신(精神)을 담은 〈장보고-張保皐〉 라는 이름이다.
●장씨 성은 단순한 성으로서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지구상에는 많은 성씨들이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가장 많은 성씨 중에는 김(金).이(李).박(朴)으로 꼽는다. 대한민국의 성씨는 귀화인(歸化人)까지 합하여 총 5,582개(2015년 가준)로 조사되며, 본관별 성씨는 36,744개로 나타난다. 인구 5명 이상 성씨만 통계청에서 집계되고 있다.
성씨별 순위에는 김씨(金氏)가 10,689,959명, 이씨(李氏)가 7,306,828명, 박씨(朴氏)가 4,192,074명, 최씨(崔氏)가 2,383,927명, 정씨(鄭氏)가 2,151,879명, 강씨(姜氏)가 1,176,847명, 조씨(趙氏)가 1,055,567명, 윤씨(尹氏)가 1,020,547명, 장씨(張氏)가 992,721명, 임씨(林氏)가 823,921먕 순으로 조사됐다.
그 많은 성씨 중에서 9번째로 많은 ‘장씨(張氏)’ 의 장은 베풀 장(張)으로 ‘베풀다. 넓히다. 크게 하다’ 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장씨는 우리나라에서는 중국에서 유래(由來)된 성씨다. 장씨 가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최초의 장씨로는 장보고(張保皐)로 알려진다.
장씨 성의 유래로 상황오제(上皇五帝) 중 헌원(軒轅)의 손자 휘(暉)가 별을 보고 활.화살을 제작해 제사를 주관하며 성을 장(張)으로 정했다고 전한다.
안동장씨(安東張氏) 시조로 정정필(鄭貞弼)로 삼는다. 장보고의 후손으로 전해진다.
헌원의 손자가 별을 보고 활.화살을 제작해 제사를 주관하며 핝다 중에 장(張)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진다. 장(張)의 한자를 풀어보면 긴 화살이라는 뜻이 된다. 긴 화살인데 베풀 장(張)으로 사전에는 설명한다. 베 풀장은 ‘넓히다. 크게 하다’ 라는 뜻으로도 풀어났다. 넓히다는 범위.규모,세력 등을 늘려서 넓힌다는 ‘확장(擴張)’ 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한다. 크게 하다는 모양이나 규모 따위를 크게 하다는 ‘확대(擴大)’ 라는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의 장(張)이며, 장의 활 궁(弓)은 ‘넓히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長)은 ‘늘리다’ 라는 뜻으로써 〈무언가를 크게 벌이다〉 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장이 단순히 성으로서의 의미를 넘어 ‘확장(擴張).확대(擴大)’ 라는 의미를 담고 있음을 장보고는 그래서 자신의 성을 장씨로 하였다. 한국의 장씨는 원래 중국에서 유래(由來)됐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두고자 하며. 중국의 성씨 중에 확장이라는 의미를 둔 장씨(張氏)이기에 국내에서는 장보고를 위주로 장씨 가문(家門)이 번성(蕃盛).번창(繁昌)했다.
장(張)은 번성.번영,번창.확장.획대 등의 의미로써 시용된다. 장(張)의 긴 장(長)은 길다는 의미와 〈우두머리〉 라는 의미로 확장되어 쓰인다. 장은 〈오랫동안 지속되다〉 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긴 장(長)자가 들어간 장(張)은 펼 장(張)으로써 〈길게 뻗어간다〉 는 의미에서 유래됐다.
활이나 활 모양을 뜻하는 글자인 ‘활 궁(弓)’ 은 ‘가까운 대로부터 먼데 이르는 것이다’ 라는 형태를 본받았다. 활 궁(弓)이 부수로 쓰일 때는 ‘당기다. 베풀다’ 라는 뜻으로 전달된다.
활 궁(弓)과 긴 장(長)자가 결합된 베풀 장(張)은 ‘활을 팽팽하게 하여 당기면 멀리 길게 나아간다’ 라는 뜻이다. 범위, 규모, 세력 따위를 늘려서 넓힌다는 개념의 확장(擴張)이다.
‘신라 무역영토 확장에 있어서 안보에 도움을 주다’ 라는 개념으로 장을 자신의 성씨로 하였으며, ‘자유무역(自由貿易)은 국가 안보(安保)에 도움이 된다’ 라는 장보고의 시각이다. 그는 보호주의(保護主義)보다는 개방주의(開放主義)를 표방(標榜)했다.
경제 성장(成長)은 안보상(安保相)의 측면에서 신라의 국익(國益)이기도 하다. 성장하는 경제를 통해 국방비(國防費)를 더욱 잘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보고는 상대국보다 국가성장성(成長性)이 높은 국가는 경쟁국(競爭國)보다 국방(국방)에서 더 많은 경제적(經濟的) 지원을 사용할 수 있다고 봤다.
무역(貿易)은 궁극적으로 국가가 아닌 사람이 한다. 장보고는 신라인(新羅人)들은 거래(去來)에서 경제적으로 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국경(國境) 간 무역에 참여한다며, 그러한 확신이 없다면, 거래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정부가 이를 금지하면, 그로 인해 발생하는 더 큰 경제 성장도 막아버리는 셈이다. 그래서 신라 조정에서는 장보고의 무역정책에 응해줬다.
무역은 다른 국가에도 이롭다. 당연히 여기에는 신라의 적대국(敵對國)도 포함되며, 이 때문에 보호(保護) 무역은 경쟁자의 경제 성장을 거부하는 수단으로써 정당화(正當化) 된다. 그러나 장보고는 해당 논리가 2차 효과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즉, 보호 무역을 강요하는 국가에는 순손실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가 A가 국가 B와의 무역을 방해하기로 선택하면, 국가 B는 국가 A에 대해 공격적으로 견해를 갖게 되거나, 국가 A의 경쟁자와 더 가까운 관계를 추구하게 되거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덜 평화적인 방법을 추구할 수 있다. 이는 특히 국가 B가 국가 A가 부과한 무역 제한이 자국의 장기적 경제 성장을 약화시키고, 국가안보 목표를 실현하는 능력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믿는 경우에 해단된 일로써 장보고는 이점에 염두하고 무역을 추진했다.
국가 A가 부유하고, 소비 시장이 크고, 외국인과 거래하기 쉬운 환경일 경우, 국가 A의 경제는 외국 기업과 투자자(投資者)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는 국가 A가 더 성장하여 국가안보에 활용할 자본(資本)이 늘어나고, 국민들의 고용 활성화(活性化)와 물가 안정화(安定化) 역시 발생할 수 있다. 게다가 국가 A의 시장(시장)에 투자하는 외국인(外國人) 및 기업(企業)이 늘어나면서 해당 국가의 안보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반대로 국가 A가 보호무역주의를 받아들인다면, 외국인들이 이들과 거래하고 투자하는 것을 꺼리게 된다. 이는 국가 A의 경제 성장이 줄고, 국가안모에 사용할 잠재력(潛在力) 지원이 줄고, 다른 국가들이 국가 A의 복지(福祉)에 무관심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보고는 이러한 주장에 대한 예외 역시 알고 있으며, “국가 간 무역이 증가하면 국가 간 관계가 더 평화(平和)로워진다는 주장은 확장적(擴張的)인 용어보다는 ‘확률적(確率的)’ 용어로 표현되어한다” 고 강조했다.
무역 분야에서의 경솔한 ‘국가안보(國家安保)’ 주장은 국가안보를 농담이나 인맥주의로 바꿔 도리어 국가안보를 훼손한다. 그래서 장보고는 왕에게 알현(謁見)하고 조정(朝廷)을 설득해 광범위한 수입(輸入) 제한은 불필요하다고 조언(助言)하며, 해외무역(海外貿易)에서 스스로를 단절(斷絶)한 국가는 모든 것을 스스로 생산하고, 노력해야 한다. 즉, 비교우위(比較優位)를 활용해 얻는 모든 혜택을 포기하고, 그렇게 하는 데, 높은 기회비용(機會費用)을 지원할 의향이 있어야 한다. 이는 해외 경쟁에서 비롯된 개선, 국제노동 분업에서 오는 전문화와 관련된 효율성(效率性), 전문화를 통한 경제 성장을 회피(回避)하는 것도 포함된다.
자급자족(自給自足)의 또 다른 비용은 어떤 국가도 완전하고 끝없는 국내 공급이 없는 원자재(原資材)에 대한 모든 범위에 대한 접근이 없으면, 상당한 노동(勞動) 및 자본력(資本力)을 보유한 국가 조치도 그런 접근이 가능한 국가보다 뒤쳐질 것이라는 점이다.
보호무역주의(保護貿易主義)에 대한 많은 국가 안보적(安保的) 정당화는 기껏해야 허황되고, 최악의 경우에는 부패(腐敗)한다. 이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장보고는 그런 문제점을 왕이나 조정 대신(臺臣)들에게 보고하고, 사소한 보호무역주의로 국제 시장에서의 지배적 지위(地位)를 훼손하고, 스스로를 곤경(困境)에 빠뜨리는 우(愚)를 범하지 않았다.
영토 확장, 무역 확장 등의 확장이라는 개념으로 신라를 세계적인 국가로 만들어내려는 꿈, 그의 희망이 자신의 이름을 ‘장보고(張保皐)’ 라고 하였다.
그는 ‘정궁복(鄭弓福)’ 이라는 정씨(鄭氏) 성이 들어간 이름을 나두고 ‘장보고(張保皐)’ 라고, 성을 장씨(張氏)로 한 것은 집안과 나라를 크게 일으키며 규모를 크게 넓히고 확대시키는 등의 ‘확장(擴張)’ 하고자 성을 장(張)으로 삼았다.
●고래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동해.서해.남해와 태평양.대서양.인도양에 나타난 대왕고개, 해저(海底)로 나타난 고래가 다시 심해(深海)로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 고래사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장보고는 고래사냥에 나섰다. 고래는 세계 각 나라와 바다를 말한다. 그는 당나라를 비롯해 일본, 동남아, 아랍 등으로 고래사냥을 나섰다. 고래사냥은 영토와 경제.문화.예술 등으로 막강한 군사력(軍事力)으로 자유무역(自由貿易)이라는 카드를 꺼내며 해양정책(海洋政策)을 펼쳤다.
장보고의 작살(斫殺)은 날카로웠다. 고래가 나타나면 즉시 작살을 던졌다. 그가 사용한 작살은 살상(殺傷)의 무기(武器)가 아닌 외교, 경제, 문화 등의 무기였다. 이런 관념(觀念)으로 해양을 누볐다. 고래사냥에 나선 그는 작은 돌고래부터 큰 대왕고래 등을 상대해 힘찬 항해를 했다.
무소불위(無所不爲)라고 할까? 그는 못할 일이 없었다. 한번 마음먹은 일은 기필코 해내고야 말았다. 항해해라 거침없이, 나아가라 어디든, 정박하라 어느 곳이든, 그리고 맺어라 외교와 경제.문화 등을...
의지를 불태우며, 그는 대양(大洋)을 누볐다.
고래가 심해로 다시 들어가면, 신라 고래사냥은 어렵게 된다고 보고, 장보고는 고래가 항상 수면 위로 나타나기를 바랐다. 고래가 수면 위로 유영(遊泳)을 하도록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심혈을 기했다.
신라 항구(港口)가 고래사냥과 함께 국제무역(國際貿易)의 중심지로 하여 청해진을 보급기지(補給基地)로 삼고, 대외교역(對外交易)을 활발히 하였다.
신라 선단(船團)은 청해진을 중심으로 전 세계를 누비며, 중간 기착지(寄着地)를 확보를 위해 당.일본.동남아 등의 개항(開港)을 추진했다.
고래는 신비(神秘)한 존재다. 바다의 로망이다. 거대한 몸집에다 생긴 모양과 형태의 신비로움 때문에 고래는 누구에게나 호기심(好奇心)을 불러일으키고 호감(好感)을 가지게도 한다.
넓고 푸른바다를 자유롭게 누비는 고래는 많은 이이게 로망이기도 한다. 송창식이 부른 1970년대의 대 히트송 〈고래사냥〉 은 고래에 대한 젊은이들의 로망을 노래했다.
『자 떠나 동해바다로/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잡으러...』 이 노래는 당시 억누르는 듯한 사회 현실에서 고래사냥이라는 로맨티시즘을 통해 사람들의 답답한 심정을 달래 주기도 했다.
고래하면 하면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의 소설 ‘모비딕(Moby Dick)’ 을 떠올리는 이도 많을 것이다. 소설에서 흰 고래는 복수(復讐)의 대상으로 나오지만, 세상의 모든 바다를 누비고 다니는 특별한 존재로서 장작 독자들에겐 막연한 로망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 세대는 중고생 때 동명(同名)의 영화를 보고, 바다 끝까지 모비딕을 쫓는 외골수 에이해브 선장(船長)의 집념과 그를 따르는 선원(船員)들의 모험심(冒險心)에 고취되곤 했다.
모비닥 김석희 역본을 보면 서두에 나오는 문장은 『리바이어던-Leviathan, 거대한 해수(海獸)가 한번 지나가면, 그 자취가 번쩍번쩍 빛을 내니, 깊은 바다가 백발을 휘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따금 고래는 그 거대한 꼬리를 공중으로 치켜 올리곤 했는데, 그러면 채찍을 휘두르는 듯한 소리가 5~6,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들렸다. 용감한 작살 잡이가 고래를 공격하고 있는 동안에는 “기운을 내라, 젊은이들이여! 너희들의 심장이 멎지 않게 하라!” 』 라고 써났다.
장보고는 〈고래보러 가기-Whale Watching〉 라는 넓은 대양에서 유영하는 고래들을 보고자 바다로 나갔다.
고래는 이빨 고래 중 가장 덩치가 큰 향유고래, 고래 중 가장 공격적인 범고래 등 여러 고래로 바다를 누볐다. 향유고래는 90분까지 물속에 있을 수 있으며, 대왕오징어를 찾아 3킬로미터 깊이까지도 잠수한다. 범고래 한 쌍이 상어 20여 마리를 공격하여 간(肝)만 빼내서 먹는다. 장보고는 푸른고래.대왕고래.흑등고래.밍크고래.향유고래.귀신고래.핀고래.범고래,돌고래 이런 고래의 형태로 바다를 누볐던 것이다.
특히 향유고래는 기름이 가장 많아 포경선(捕鯨船)들이 주로 추적(追跡)하는 고래이다.
고래의 크기는 작게는 2미터에서 크게는 30미터나 되며, 몸집이 제일 큰 고래는 ‘푸른고래-Blue Whale’ 이다.
고래는 많은 물을 들이키기 때문에 머리 부분이 몸 전체의 30~40%나 된다. 깊은 바다에서 먹이를 찾아야하는 수염고래(대왕고래, 흑등고래, 흰고래, 밍크고래, 귀신고래, 핀고래)와는 달리 이빨을 갖고 먹이를 사냥하는 이빨고래(향유고래, 범고래, 돌고래)는 뛰어난 청각을 가지고 있는데, 멀리까지 음파(音波-Sonar)를 쏜 후 반사돼 오는 음파를 따라 추적 대상을 찾아간다고 한다.
흑동고래는 수컷이 암컷을 유인(誘引)하기 위해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고래는 참 신비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고래는 크게 ‘수염고래와 이빨고래’ 로 나뉘며, 이는 입 구조뿐 아니라 ‘막이 방식, 사회성, 진화 경로’ 등 생태적(生態的) 차이를 반영한다. 그렇듯 장보고는 다양한 종과 형태, 크기의 고래처럼 여러 형태의 배를 건조해, 선박마다 형태.크기와 목적에 따른 역할을 부여해 바다에 띄웠다. 신라 선박도 일종의 고래처럼 특성을 띠며 행동을 했었다.
이빨을 가진 고래는 군사적(軍事的)인 무기로, 수염을 가진 고래는 상업적(商業的)인 무기로 쓰이게 했다. 수염고래가 긴 수염(鬚髥)으로 거른 플랑크톤을 섭취하듯이 신라 선박도 수염고래 방식으로 바다를 누볐다. 해적(海賊) 퇴치(退治)나 국토방어(國土防禦)를 위해서는 이빨고래처럼 작은 어류에서부터 큰 포유동물에 이르기까지 사냥했다.
신라의 고래는 아직 바다에 존재한다. 다만 역사적인 흐름으로 신라에서 대한민국으로 그 이름이 바꾸었을 뿐이다. 1000년 전에 장보고라는 한 인물에 의해 신라의 고래는 전 세계의 바다를 누볐고, 고래가 자신의 영역(領域)을 확보해 두고 누볐듯이, 장보고도 신라 고래로 해로(海路), 영역(領域) 등으로 바다를 지배(支配)하기도 했다.
신라 고래의 유영(遊泳)은 멈추지 않았다. 다만 역할 담당자가 바뀌었을 뿐이다. 한때는 해상왕(海上王)이라는 칭호를 받은 장보고가 유영에 나섰다. 지금은 장보고를 대신해 여러 인물들이 유영한다.
가수 송창식이 부른 ‘고래사냥’ 이라는 노래는 멈춤 없이 부른다.
자 떠나 동해바다로/신화처럼 숨을 쉬는 고래를 잡으러...
멜빌(Herman Melville)의 소설 ‘모비딕(Moby Dick)’ 도 200년이 됐지만, 아직도 읽혀지고 있다.
리바이어던-Leviathan, 거대한 해수(海獸)가 한번 지나가면, 그 자취가 번쩍번쩍 빛을 내니, 깊은 바다가 백발을 휘날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따금 고래는 그 거대한 꼬리를 공중으로 치켜 올리곤 했는데, 그러면 채찍을 휘두르는 듯한 소리가 5~6,킬로미터 떨어진 곳까지 들렸다. 용감한 작살 잡이가 고래를 공격하고 있는 동안에는 “기운을 내라, 젊은이들이여! 너희들의 심장이 멎지 않게 하라!...
●밀물은 반드시 온다
장보고는 밀물은 반드시 온다 라는 신념으로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가지고, 어려움을 견디고 다시 일어 설 수 있었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항상 모든 것이 풍족하고, 모든 것이 잘 되는 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이 해안 끝까지 들어와 있어서 언제라도 배를 띄울 수 있는 밀물 때만 잇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한꺼번에 빠져 나가버리는 썰물처럼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삶의 저편으로 밀려나가 버릴 때가 있다. 물이 다 빠져나갔기 때문에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나룻배를 다시 움직일 수 있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우리가 기억할 것은 밀물은 반드시 온다는 방심해도 안 되고, 반대로 썰물 때에 낙심하고 절망해서도 안 된다.
밀물 째에 배를 띄워서 열심히 일하고, 썰물 때는 다시 밀물이 올 것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그 때를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썰물을 만났을 그때가 바로 신을 기대할 때이다.
장보고는 이런 신념으로 밀물과 썰물에 대해 자연의 섭리를 터득하고, 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장보고는 밀물은 다시 온다고 믿는 믿음은 확고했다. 중요한 것은 썰물 때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밀물을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밀물을 맞을 준비를 했다. 낡은 배를 손질하고, 깨끗하게 청소하고, 그물을 손질하고, 다시 고기를 잡으러 나갈 준비를 했다.
그래야 밀물이 오면 지체하지 않고 즉시 배를 띄우고 고기를 잡으러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장보고는 밀물이 반드시 올 것을 믿었다. 썰물 때에 낙심하거나 빈둥거리지 않고 부지런히 다음 밀물 때를 준비했다.
희망은 믿음이고, 믿음은 희망이다. 우리 인생에 썰물이 있으면 밀물도 있을 것이라는 장보고의 시각이다.
신께서 반드시 다시 은혜(恩惠)를 주실 것이고, 다시 부흥(復興)을 두실 것이고, 다시 복(福)을 주실 것이고, 반드시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장보고는 썰물 때에도 믿음이 다시 올 것을 믿고 희망을 가지고 내일을 준비했다.
바닷물은 항상 움직이고 있다. 수직으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주로 강물처럼 수평(水平)으로 흐르고 있다. 물이 들어갈 때, 즉 외해(外海)에서 내해(內海)로 흘러 들어오면 만수위(滿水位)가 되고, 그 물이 다시 외해로 빠져나가면 저수위(低水位)가 되어 갯벌이 보인다.
이러한 밀물과 썰물이 일어나는 바닷물의 흐름을 조류(潮流)라고 한다. 육지 쪽으로 들어오는 것을 밀물(들물)이라고 하고, 외해로 빠져나가는 것을 썰물(날물)이라고 하는데, 이 두 가지를 왕복성(往復性) 조류라고 한다.
바닷물이 지구.태양.달 사이의 인력(引力) 작용으로 인해 하루에 2회 오르내리는 것을 조석(朝夕)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조석을 일으키는 힘을 기조력(起潮力)이라고 한다.
이런 기조력을 잘 활용한 장보고, 그는 썰물은 때가 되면 다시 해안으로 물이 찬다는 것을 알기에 물이 빠진다고 해도 절대 낙심(落心)하지 않았다. 때를 기다리며 밀물이 들어서면 바로 배를 띄워 항해를 했다.
장보고는 밀물과 썰물의 음양교구지지(陰陽敎區地支),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갯벌이 형성되는 데, 갯벌은 바다가 되기도 하고, 육지가 되기도 한다. 갯벌은 음(陰)과 양(陽)의 기운이 서로 결합(結合)하는 곳, 음양이 충화(沖和)하는 공간으로 생기(生氣)가 충만하다.
바닷물이 가득차면 차는 대로 쓰임새가 있고, 빠지면 빈대로 쓰임새가 있다. 그런 사실을 장보고는 바다가 보여준 밀물과 썰물 철학을 신라의 해상정책으로 삼고, 바다를 활용한 각종 정책을 구사(驅使)했다.
장보고는 신라 해안을 차고 오른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그 물은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바닷물의 흐름을 희망적(希望的)으로 바라봤다.
밀물과 썰물은 수입(輸入)과 수출(輸出)로 여겼다. 교역(交易)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밀물, 세계의 모든 문물들이 들어온다. 썰물, 신라의 모든 문물들이 세계로 나아간다 라는 밀물과 썰물은 희망을 부르는, 번영하게 만드는 일로써의 낙관적(樂觀的)인 현상으로 보았다.
●전하 신라 안보와 해상은 제가 지키겠습나다 장고의 자신감
자신감, Self-Confidence이란 스스로에 대한 신뢰(信賴)와 확신(確信)을 의미한다. 자신의 s능력(能力)이나 판단(判斷)에 대한 궁정적(肯定的)인 반응을 바탕으로 한 마음가짐이다.
자신감이 많은 사람은 대범(大凡)하게 행동하는 편이어서 결과의 도출(導出)이 빠른 편이며, 설령 결과(結果)가 좋지 않아도 금방 긍적적으로 바뀐다.
장보고의 자신감, 청해진 실적으로 증명했다. 그는 높게 날아오를 것이라고 말한 후 신라 군사력 강화, 해상질서 회복과 현장경영 실천, 영업이익 달성 초과 신라의 경제 세계무대로, 무역교류 투자 혁신 주효 상품 차별화 및 무역 혁신 박차 등으로 기염(氣焰)을 토하며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장보고는 당나라에서 23년간 머물다가 다시 신라로 귀국(歸國)해, 신라는 높게 날아오를 것이다. 이를 위해 1등 신라에 맞는 최고 정상의 본성(本性)을 회복(回復)하겠다 라고 자신감(自信感)을 드러냈다.
장보고는 그가 태어난 곳인 전남 영암 선암마을에서 있을 때부터 어린나이에도 나라도 지키고, 무역도 하는 일에 꿈을 꾸었다. 그가 태어나자 그에게 ‘궁복(弓福)’ 이라는 의미심장한 이름을 지어줬다.
활을 잘 다루는 아이기에 그에게 궁(弓)이라는 이름을 쓰게 했다. 궁복은 장차 장보고(張保皐)라는 이름으로 개명(改名)하게 되는데, 궁복이든, 장보고이든 이름마다 다 사연(事緣)이 있다.
궁복은 10세도 안 된 어린아이가 화살을 쏘는 것에 관심(關心)이 많았다. 부모들은 그런 행동을 한 궁복을 보고 저 애는 커서 무엇이 되려고 그럴까? 매우 궁금하게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궁복은 자신만의 생각이 있었던 것이었다. 그는 어린나이에 세계(世界)를 꿈꾸었던 〈꿈동이〉 로 자라났다.
궁복의 세계관(世界觀)은 이미 어릴 때부터 싹텄다. 세계관이라는 그의 철학적(哲學的) 견해(見解)는 미래관(未來觀)으로써 조국(祖國) 신라를 염두(念頭)하며 국가관(國家觀)을 아로 새겼다.
“나는 커서 나라를 보호(保護)하고, 나라 발전(發展)에 기여(寄與)하는 인물이 되겠다.”
그러면서 바다를 바라보면 상념(想念)에 젖었다.
신라의 국격(國格)을 높여야 한다. 신라를 세계무대(世界舞臺)에 서게 해야 한다. 신라가 변방(邊方)을 나라가 아닌 세계중심(世界中心) 국가로 위상(位相)을 높여야 한다.
나라사랑에 이바지하고자, 나라사랑 정신을 기리거나 실천하는 일에 앞장섰다.
“나라사랑이 신라를 키워갑니다” 라고, 존경과 사랑으로 신라를 바라봤다. 그는 ‘부흥시키자 열정과 의지로’ 라는 기치(旗幟)로 신라를 위한 세계관과 미래관을 설계(設計)했다.
그런 원대한 꿈을 갖고 성장해갔던 그는 어느 시기에가 다가오자 때를 놓치지 않고, 배를 타고 신라를 떠나 당나라로 이민(移民)을 했다. 군사기술과 무역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신라는 이미 당나라 산둥반도에 신라방(新羅坊)이라는 신라인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었다. 이주민(移住民)들의 집단촌(集團村)을 형성하며, 당나라 정치.경제.문화.예술.사회에 젖으며, 신라인의 입지(立志)를 다졌었다.
그런 집단촌에 궁복은 정보(情報)를 접하고 당나라에 먼저 와 있는 신라방을 자신도 가서 함께하겠다며, 마음먹고 때를 기다렸다가 시기에 맞춰 당나라에 살고 있는 신라인들을 만났다.
그의 나이 17세 때이다. 그는 당나라 군사가 되겠다고 생각하고 갔기에, 그는 서주에 있는 무령군(武寧軍) 입대(入隊)했다. 그는 5년 만에 소장(少將)으로 진급(進級)해 23년간 군복무를 했었다.
이때 그는 군사기술(軍事技術)의 전략(戰略).전술(戰術)은 물론 무역(貿易)에도 터득(攄得)했다. 그런 실력(實力)을 기른 그는 당나라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런 실제로 해보가나 겼어 본, 거기서 얻는 지식(知識)이나 기능(技能)을 환원(還元)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떠났던 조국 신라(新羅)로 들어왔다. 그의 나이 40세 때다.
궁복(弓福)으로 당나라로 갔던 그는, 당나라에서 장보고(張保皐)로 개명(改名)하여 확장(張)과 지킴(保)과 높임(皐)에 정신을 두고, 당나라에 희생(犧牲)을 했던 그가 신라에 들어와 장보고라는 이름값을 하겠다며, 그는 신라에 들어오자마자 먼저 조정(朝廷)에 계신 흥덕왕(45대)을 찾아 아뢨다.
“전하! 당나라 무령군 소장으로 근무한 장보고입니다.”
“전하를 찾아뵌 것은 신라의 현 상황이 걱정돼서 불안한 마음으로 염치(廉恥)없이 이렇게 찾아뵘을 용서해주십시오, 널리 헤아려주십시오.”
장보고는 신라의 현 상황에 대해 걱정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자신이 나서보겠다는 강한 집념(執念)과 의욕(意慾)을 왕(王)에게 당당히 말했다.
장보고의 자신감, 그는 당나라에서 기른 힘과 터득한 지식(知識)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 힘은 ‘군사술(軍事術)’ 이다. 그의 지식은 ‘상업술(商業術)’ 이다. 이런 기술을 갖췄기에 이 분야에서 자신감을 가진 것이다. 그런 자신감을 조국 신라에 환원(還元)하겠다며, 흥덕왕을 설득(說得)해 청해진(淸海鎭)이라는 군사기지(軍事基地)와 무역기지(貿易基地)를 세웠다.
흥덕왕에게 청해진을 둬 신라의 영토(領土)를 확장(擴張)하고, 바다를 지키며 신라를 세계적(世界的)으로 키우겠다고 군사(軍事) 1만 명을 자신에게 배당(配當)해달라는 요구에 왕은 들어줬다.
장보고의 구상(構想)과 계획(計劃)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당나라에서 배운 지식(知識)이이니, 전문적(專門的)인 내용들을 얘기해 흥덕왕은 장보고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흥덕왕은 장보고의 요구에 대해 기꺼이 승낙(承諾)하고, 그를 청해진(淸海鎭)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로 부임(赴任)하게 했다.
만약 장보고가 당나라에 가지 않았다면, 거기서 무령군에 근무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일반인으로 여기며 흥덕왕은 크게 신뢰(信賴)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흥덕왕은 장보고의 경력(經歷)에 충분히 살펴보고, 그를 진정한 군인(軍人), 상업인(商業人)으로서의 탁월하고 훌륭한 인물로 보고, 장보고가 원한 완도(莞島)에 청해진(淸海鎭)을 두게 했고, 그를 외교사절의 제일 계급인 특명전권대사(特命全權大使)로 역할(役割)을 띠게 하여 국가 원수(元首)로부터 다른 나라의 원수에게 파견되어 주재국(駐在國)에 대해 국가의 의시를 표시하는 임무를 가지며 국가 원수와 그 권위(權威)를 대표하는 일을 맡겼다.
장보고는 군사는 물론 ‘외교(外交).통상(通商).문화(文化).관광(觀光)’ 등을 맡아 신라를 대표했다. 청해진은 ‘외교부(外交部)’ 로서 기능(機能)을 띠며, 통상교섭(通商交涉)이 국제(國際) 질서(秩序).안보(安保)와 직결되는 영역(領域)으로 확대되게 했다. 외교적 네트워크와 협상(協商) 역량이 통상(通商) 성과에 직접 연결되게 하였다. 심지어 청해진을 ‘산업통상부(産業通商部)’ 역할도 띠게 했다. 첨단기술 등 핵심 산업의 기술 원자재 이해가 통상 전략(戰略) 수립(樹立)에 필요하게 했다. 또 문화(文化)에 있어서도 교류중징(交流增進)하게 했다. 관광(觀光) 분야에도 서로 왕래(往來)하게 하는데 ‘문화관광부(文化觀光部)’ 로서 역할을 띠게 했다. 외교부와 산업통산부, 문화관광부를 청해진에 부서(部署)로 둔 것이다.
경쟁자(競爭者)가 아닌 동반자(同伴者).협력자(協力者)가 돼야 한다고 공존(共存)의 길을 가야한다며, 환상적(幻想的) 미래를 함께 만들어 나가기를 바랐던 장보고는 이런 막중한 임무를 띠며, 청해진을 통해 신라를 국제적(國際的)으로 위상(位相)을 높였다. 신라라는 작은 나라가 당나라 같은 대륙(大陸)과 상대하게 한 것이다. “기죽지 않고 꽃피면서...
장보고는 왕의 뒷받침으로 신라를 세계무대로 서게 했다.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이라는 정책을 펼쳐 신라무역이 세계적(世界的)인 국제무역(國際貿易)으로 당당히 진출(進出)하게 했다. 신라의 국제, 신라의 무역을 말한 ‘신국제(新國際) 신무역(新貿易)’ 이라는 신조어(新造語)도 만들어낼 만큼, 신라를 국제적으로 위상을 높였고, 신라 무역을 만들어냈다.
신국제 신무역은 장보고의 손안에서 이루어졌다. 장보고 작품이 신라를 국제적(國際的)으로 만들었고, 신라의 무역을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으로 추진하게 했었다.
한때는 무령군 소장으로 일을 했지만, 그는 한 군대의 소장(少將)에서 그치지 않았다. 군사(軍事)로 있으면서 상업(商業)에 손을 댄 ‘군상인(軍商人)’ 으로서 1인 2역을 해냈다. 그는 다시 신라로 들어와 완도 푸른 바다물결 위해 진영(鎭營)을 둔 청해진(淸海鎭)에서 ‘외교.통상.문화.관광’ 등 1인 多역을 맡아 탁월한 능력(能力)을 발휘했다. 그는 국내 정치(政治)에도 관여(關與) 또는 개입(介入)을 했다.
장보고 이전에도 해상무역(海上貿易)은 이루어졌지만, 장보고가 추진(推進)하는 무역정책(貿易政策)과는 차원(次元)이 달랐다. 어느 정책(政策)보다도 뛰어났으며, 준비된 장보고의 무역정책에는 어느 누구도 능가(凌駕)하질 못했다. 그는 배움의 ‘군사술(軍事術)과 상업술(商業術)’ 이었고, 실천의 ‘외교술(外交術)과 무역술(貿易術)’ 이었다. 당나라에서 보았거나 체험(體驗)한, 습득(習得)했던 것을 신라에서 선보인 그는, 신라에서만 배우고 익힌 사람보다, 더 지식(知識)이 뛰어났고, 탁월한 능력(能力)을 갖추었고, 실천 의지(意志)가 컸다. 장보고는 단순한 외국어(外國語) 지식만이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문화.정치.경제 흐름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소통(疏通).협업(協業).의사결정(意思決定)에 작용하는 역할을 띤 국제적인 감각(感覺)으로 폭넓은 경험(經驗)과 열린 사고(思考), 해외 체험(體驗), 교류(交流), 다양한 사례 학습(學習) 등을 통해 관점(觀點)을 확장(擴張)하고, 유연(柔軟)하게 대응(對應)했다.
글로벌 기업.공공기관 등은 국경(國境)을 넘어 협력(協力) 거래(去來)가 늘어남에 따라, 문화적(文化的)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협업(協業)할 수 있는 인재(人才)를 요구하고 있어 신라 조정에서는 군사(軍事)와 선진문명(先進文明)을 배운 장보고를 눈여겨보고, 그에게 외교.통상.문화.관광 등 전권(全權)을 부여했다.
청해진은 그런 필요성에 의해 설치됐던 것이다. 청해진은 세계적인 군사.외교.통상.문화.관광사로서 전 세계의 국가와 상대한다.
장보고는 해외근무(海外勤務)할 기회(機會)가 많았고, 업무상(業務相)으로 해외 출장(出張)도 잦았다. 자연히 국제적(國際的) 감각을 익히게 됐다.
청해진에서 근무한 직원(職員)들도 다양한 국적(國籍)의 고객(顧客)을 이해하고, 배려(配慮)할 수 있는 국제적 감각을 갖추도록 했다.
장보고는 국제적 감각을 갖추기 위해서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키고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노력하고 ▲폭넓은 경험을 통해 열린 사고를 키웠다. 그는 국제적 감각을 갖추는데 ,이 세 가지의 핵심을 터득(攄得)했다.
장보고는 그런 감각을 갖추었기에 다양한 국적의 고객과 소통하는데 있어서 별 어려움이 없었고, 문제가 없었다. 또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노력을 통해 타인(他人)의 관점을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는 마음을 키울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경험을 통해 열린 사고를 키워 변화(變化)에 유연하게 적응(適應)하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장보고는 국제적인 감각을 갖추기 위해서 끊임없는 노력을 했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세상을 더 넓게 보고,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교류(交流)에서 고객의 배려(配慮)와 편의(便宜)를 책임(責任)지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서 고객과 소통하고, 그들의 요구를 이해할 수 있는 국제적 감각이 필수적(必須的)이었기 때문이다.
장보고의 자신감은 ‘확신(確信)’ 이다. 그가 구상한 정책(政策)이나 설계(設計)한 비전을 자신(自信)하며, 일에 강력한 추진력(推進力)을 발휘했다.
장보고가 군사 1만영을 요구했을 때,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군사력을 키워 막강한 행세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로지 신라 보호(保護)과 신라 경제(經濟)에 도움을 주고자 했다. 군사력(軍事力)이 튼튼하면 그만큼 인보(安保)와 질서(秩序)는 물론 경제적(經濟的)으로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청해진에 많은 군인(軍人)거 필요로 했다. ‘튼튼한 국방안보 속에 튼튼한 경제가 이루어진다’ 라고, 장보고는 진리(眞理)를 깨닫고 정의(正義)에 입각(立脚)한 사고(思考)와 충성(忠誠)에 부응(副應)한 행동(行動)을 해보였다.
국제무역(國際貿易)은 막강한 군사력(軍事力)이 없으면 교역(交易)에 있어서 어려움이 따른다. 해상무역의 선박(船舶)들이 항해 도중에 해적(海賊)들의 공략(攻掠)을 받기 쉽다. 무역은 든든한 안보(安保) 속에 이루질 때, 활발(活潑)해지고 지속(持續)된다.
장보고는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을 배운 사람으로서 그 지식(知識)과 속성(屬性)을 잘 알고 있기에 〈군사+무역=교통〉 이라는 등식(等式)을 적용, 답(答)다운 답을 찾아낸 2차 방정식(方程式)으로 풀었다. 무역을 하려한데 군사력(軍事力)이 없다면, 무역은 쉽지 않아 무역에 ‘군사력’ 을 키웠다. 또 군사력을 키우는데 ‘경제력(經濟力)’ 이 있어야 했다.
군사와 무역 관계는 ‘상호보완적(相互補完的)’ 인 관계로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補充)해 함께 완성도(完成度)를 높이는 관계를 뜻한다. 서로에게 의지해 존재한 ‘상호의존적(相互依存的)’ 으로 관계를 유지했다.
상호보완적, 한쪽이 강점(强點)이거나 보완(補完)되는 요소가 있어, 함께 있을 때 더 큰 효과를 낸다는 믿음으로 ‘군사(軍事)와 무역(貿易)의 균형(均衡)’ 을 맞추었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군사시설(軍事施設)보다는 ‘상업시설(商業施設)’ 에 더 치중(置重)했다. 그는 ‘서로 부족한 부분을 도와준다’ 라는 ‘상호보완적(相互補完的)-Trade-off’ , 정책을 추진했다. ‘군사는 무역을, 무역은 군사를’ 기치(旗幟)로 청해진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遂行)했다.
상호주의(相互主義) 원칙을 내세운 장보고, 그는 당.일본.동남아.아랍 등 세계와의 관계는 국제 질서(秩序)를 위한 중요한 일이라며, 특히 나라 간 관계의 안정(安定)은 세계의 호재(好材)라며, 적수(敵手)가 아닌 동반자(同伴者)와 협력자(協力者)가 되어 서로를 성취(成就)시키고, 공동번영(共同繁榮)하며, 신시대(新時代)의 국가 간 올바른 공존(共存)의 길을 가야 한다고 했다.
나라 간의 공동 이익(利益)은 크고, 각자의 성공(成功)은 서로에게 기회(機會)가 된다고 늘 믿어왔다며, 양측이 합치면 모두에게 이(利)롭고, 싸우면 모두가 상처(傷處)를 입는다고 봤다.
장보고는 또 국가 관계라는 큰 배가 항로(航路)와 키를 잘 잡도록 함께 이끌어 미래가 국가 관계가 과거(過去)를 계승(繼承)하고, 미래를 여는 역사적(歷史的)이고, 상징적(象徵的)인 내일이 되도록 하자고 ‘상호주의(相互主義)’ 를 표방(標榜)했다.
그는 세계 각국이 지구 최대의 ‘이익공동체(利益共同體)’ 라고 했다. 무역전쟁(貿易戰爭) 등 몇몇 나라 간의 갈등(葛藤)을 강조하는 일반적(一般的) 인식(認識)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일부에서는 당과 신라가 정치.경제.문화 분제 등으로 당.신라 간 안보(隣保) 갈등도 심화(深化)하고 있다는 인식(認識)이 일반적인데, 이외도 사뭇 다르다. “당.신라 관계의 본질은 무엇으로 보냐” 고 묻는다면, “전쟁(戰爭)보다는 양국이 수십 년간 벌여오고 있는 대립(對立)과 타협(妥協)의 반복은 전형적(典型的)인 ‘경쟁(競爭)’ 의 필수 구성요소다” 라고 답한다.
당.신라는 무역(貿易)이라는 경쟁 속에서 이 거대(巨大)하고 치열(熾熱)한 경쟁을 위해 수많은 대화(對話) 속에 채널을 가동했다.
장보고는 세계는 새로운 갈림길에 섰다면서 당.일본.동남아.아랍 등 양국이 무역.평화의 합정(陷穽)을 넘어, 국가 관계의 새로운 이론적(理論的) 틀이나 개념의 집합체(集合體)를 열 수 있으나, 세계 도전(挑戰)에 함께 대응(對應)해 세계에 많은 안정성(安全性)을 불어넣을 수 있느냐, 양국 국민의 복지(福祉)와 인류(人類)의 앞날과 운명(運命)을 위해 함께 양국 관계의 아름다운 미래를 열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봤다. 이것들은 역사적(歷史的) 질문, 세계적(世界的) 질문, 국민(國民)의 질문이라고 할 수 있으며, 또한 저와 세계인들이 국가 지도자(指導者)로서 함께 써 내려가야 할 시대의 답안(答案)이라고 했다.
군사를 키워 무역지도를 넓히겠다는 장보고의 생각, 그의 꿈은 아마 엄마의 뱃속에서부터 이미 바라지 않았을까 한다. 자궁(子宮, 아기집) 속에서 태아(胎兒)의 유영(遊泳)이 시작돼, 그는 태어나자마자 다시 ‘바다’ 라는 곳에서 유영을 했었다.
그가 태어난 전남 영암(靈岩) 선암(船岩)마을의 바다는 희망의 물결이 일으켰다. 마을사람들은 바다를 보면서 삶의 활기(活氣)를 찾았다. 모든 생(生)을 바다에 걸었다. “나의 인생은 바다다” 라고 전 생애(生涯)를 바다에 의지(依支)했다. 그런 마음에 태어난 장보고이기에 그도 피를 못 속이고 ‘바다 인생(人生)’ 으로 살아갔다.
장보고는 바다에 살고, 바다에서 죽겠다고 하며, 바다를 통한 모든 일을 하려했다. 바다가 항상 출렁거리듯, 그도 항상 심장(心臟)을 뛰게 했다.
바다 사람 장보고, 그는 분명 바다를 통한 ‘확장(擴張), 보호(保護), 동고(東皐)’ 를 행하였다. 바다 영토, 바다 보호, 이를 통한 ‘농단(隴斷)’ 을 했다. 높은 곳에 올라가 시장(市場)을 살펴보고, 신라 물건을 팔기에 적당한 곳으로 가서, 시리(市利). 즉 이익(利益)을 독점(獨占)했다.
청해진은 우연(偶然)한 일이 아닌 의도(意圖)된 ‘계획적(計劃的)’ 인 일이었다. 궁복으로 태어났을 때부터 약탈(掠奪).폭동(暴動) 등을 진압(鎭壓)하고 물건(物件)을 둔 물류창고(物類倉庫)를 운영한 ‘진영(鎭營)’ 을 구상했다. 진영은 군사기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무역기지(貿易基地)’ 로도 사용하는 다목적성(多目的性)을 띠게 했다.
그런 생각을 가졌던 장보고이기에 그는 어린 나이에 신라에서 당나라로 가서 무력(武力)의 군사술(軍事術)을 연마(硏磨)했다. 축적(蓄積)된 경험(經驗)을 살려서 반드시 신라에 기여(寄與)하겠다는 신념(信念)을 갖고, 당 무령군(武寧軍)에서 24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청해진에서 신라 2무(武.貿)의 군사(軍事).무역(貿易)으로 신라(新羅)를 강하게 만들었다. 이런 사고로 그는 정치.경제.문화.사회 등 전반에 거쳐 영향을 미치며 자신의 입지(立志)를 키웠다. 여러 분야에서 영향력(影響力) 있는 장보고로 자신의 이미지를 심어줬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신라는 찬란한 나라다’ 라고들 한다. 금빛 찬란한 신라, 그 반짝임은 여러 사람들의 의해 빛날 수 있었다. 그런 사람 중에 한 사람, 장보고를 빼 놓을 수 없을 것 같다. 김유신(金庾信)이 삼국통일(三國統一)이라는 거룩한 역사(歷史)를 새로 탄생(誕生)시키는 것처럼, 장보고(張保皐)도 신라가 더 찬란하게 빛나도록, 그는 김유신이 육지(陸地)의 평정(平定)과 평화(平和)를 구현(具現)해 냈듯이, 바다의 질서(秩序)와 통행(通行)을 실현(實現)해 냈다.
이런 놀라운 공적(功績)을 우리는 ‘훌륭하다’ 라고 한다. 또 선암공(船岩功), 서주적(西周積), 완도과(莞島努)라고 본다. 궁복(弓福)을 태어나게 한 영암 선암의 공로(功勞)에 의해, 장보고(張保皐)를 군인(軍人)으로 안보(安保).질서(秩序).평화(平和)를 유지하게 한 당나라 서주의 공적(功績)에 의해, 군사기지(軍事基地)의 장수(將帥)와 무역기지(貿易基地)의 수장(首長)으로서 활동하게 한 완도 청해진의 공로(功勞)에 의해 신라는 〈찬란한 신라〉 로 오래도록 유지하게 했다.
대한민국 역사의 한 획(劃)을 그은 김유신, 장보고 같은 인물이 사라지고 없지만, 1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그들의 헌신(獻身) 이 또한 빛나고, 우리의 가슴에서 별처럼, 금빛이 되어 반짝거린다.
장보고는 9세기경 신라에 국제(國際) 규모의 군사(軍事).무역기지(貿易基地)의 ‘청해진(淸海鎭)’ 을 두었고, 이 기지가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신라 글로벌 시대를 열었다.
신라는 그동안 해외(海外) 진출(進出)을 해왔다. 하지만 국제적(國際的)인 규모로 확대(擴大)시키는 데는 부족함이 많았고, 한계성을 드러냈다. 정책(政策) 부재 및 미비, 물품(物品) 부족 및 품질 저하, 인력(人力) 부족 및 열약과 거래처(去來處) 확보(確保) 미흡 및 협소, 규제(規制) 논쟁 및 충돌, 기술(技術)의 부족 및 저조, 선박(船舶) 공급의 부족 및 소형 등의 구조적(構造的) 문제로 무역불균형(貿易不均衡)을 낳았다.
이런 상황에 처해있던 것을 당나라에 머물렀던 장보고가 신라에 들어와 이 문제들을 직시(直視).진단(診斷)하고, 해결에 나섰다. 장보고는 나라 간, 기관 간 협력 강화를 통해 통합 플랫폼 등으로 정보(情報) 공유를 실시간 화해(和解) 절차를 단순화(單純化)해 부족한 물품(物品)과 인력(人力)을 보완(補完)하고, 거래처를 확보하고 규제(規制)를 완화(緩和)시켜 국제무역수지불균형(國際貿易收支不均衡) 문제를 해결하거나, 수요(需要)와 공급(供給)을 해소했다.
장보고는 국제무역수지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고, 수급(需給)을 해소하기 위해 기술혁신(技術革新) 지원, 환율(換率) 안정화(安定化) 정책, 그리고 내수시장(內需市場) 활성화를 통해 균형 잡힌 무역환경(貿易環境)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또한 교육(敎育) 투자(投資)로 인재(人材) 양성(養成)과 생산성(生産性) 향상을 도모(圖謀)하는 것도 중요시 했다.
장보고는 국제 사회와의 협력(協力) 없이는 무역불균형(貿易不均衡) 문제를 근본적(根本的)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그는 지유무역협정(自由貿易協定) 체결(締結)이나, 다자간(多者間) 협상(協商) 등을 통해 공정(公正)한 교류(交流) 기반을 마련했다.
장보고는 무역 불균형의 원인들을 파악(把握)하고, 이 문제들을 바로잡고 제대로 추진하게 했다. 그는 ▲자원(資源)과 기술(技術)의 차이 ▲무역(貿易) 장벽(障壁)의 존재 ▲정치적(政治的) 요인 ▲경제(經濟) 구조의 차이 등을 해결했다.
장보고는국가 간의 무역 추진에 대해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농산, 공예품, 생필품 등 양국 교역(交易)을 확대하기로 협약(協約)에 노력했다.
양축이 기존 협성 성과를 계속 이행하고, 일부 무역 조치에 대해 긍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는 무역위원회(貿易委員會)와 투자위원회(投資委員會) 설립에 합의(合意)했다. 양측은 무역위원회를 통해 관련 품목의 관세 인하 등의 문제를 논의했으며, 서로 중요한 품목에 대해서는 관세를 인하하기로 원칙적(原則的)으로 합의해 교역(交易)을 활발히 하였다.
장보고는 농산물과 관련한 일부 비관세(非關稅) 장벽(障壁) 및 시장 접근 문제도 실질적(實質的)인 해결을 추진했다.
당나라는 농산품 등 당나라 지역의 상품(商品) 선택 등에서 당 측의 요구 사항을 해결하는 데 노력했다. 신라 측 역시 당나라 물품 등록, 일부 당나라의 농산물 신라 수출(輸出) 문제 등의 해결(解決)을 추진했다.
양측은 특정 범위(範圍) 제품에 대한 상호(相互) 관세(關稅) 인하 등을 통해 농산물을 포함한 양방향 무역(貿易) 확대(擴大)를 이뤄내기로 동의(同意)했다. 당나라의 신라 제품(製品) 구매(購買) 등과 관련한 사항에도 합의했다.
당.신라 양측이 상호 존중(尊重), 평등(平等), 상호 이익(利益)이라는 원칙(原則)을 고소(固守)하고 대화(對話)와 협력(協力)을 통해 해결책을 찾았다.
무역협상단(貿易協商團)은 양국 정상 간 합의(合意)에 따라 조속히 최종 결과를 확정(確定)하고, 이를 이행하면서 향후 당.신라 무역 협력(協力)으로 세계 경제(經濟)에 더 많은 확실성(確實性)과 안정성(安全性)을 불어넣었다.
장보고는 당.일본.동남아.중동 등의 경제.무역 관계의 본질은 상호이익(相互利益)이라고 강조했다. 양측은 어렵게 얻은 긍정적(肯定的)인 흐름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장보고는 자부심(自負心), 권력욕(權力慾), 명예욕(名譽慾)이 강했다. 자신의 이름에서 그런 마음을 살펴보게 한다. 그는 무언가를 해내려는 성격(性格) 소유자(所有者)였다. 집념이 매우 강한 장보고였다. 그는 자기나 자신에 관련된 일에 대하여 스스로 가치(價値) 능력(能力)을 믿고 자랑으로 여겼다. 그는 남을 지배(支配)하여 복종(服從)시키려는 힘의 권력(權力)에 대해서도 의욕(意慾)이 강했다. 그는 또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여기는 명예(名譽)를 얻으려는 의욕심(意慾心)도 강했다.
그는 무사(武士)가 되겠다고 마음먹고 자신의 이름을 ‘궁복(弓福)’ 이라고 지었다. 그는 또 확장하고 지키고 높이겠다는 마음으로 ‘장보고(張保皐)’ 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의 이름에서 꿈과 희망, 신념(信念)과 비전, 의욕(意慾)과 의지(意志)를 엿볼 수 있다.
장보고의 영문 이름, Chang Bo Go의 이니셜 C는 ‘Create-생성하다. 만들다. 창조하다.’ B는 ‘Big-다 많아지다. 성장하다. 크게 하다.’ G는 ‘Go round-널리 퍼지게 하다. 두루 미치다. 또는 Growth spurt-폭풍 성장하다. 올라서다. 일어서다’ 이런 의미로써의 영문 이니셜에서 유추(類推)해보게 한다.
장보고는 장(張)이라는 성을 둔 이유가 이름 이니셜 C에서 볼 수 있듯이 무언가를 생성하려는 만들어내고자 한 자신의 의욕(意慾)을 담았다. 이니셜 B에서 볼 수 있듯이 크게 하겠다는 더 많아지고 이로써 성장한 미래를 열겠다는 꿈과 희망(希望)을 담았다. 이니셜 G에서 볼 수 있듯이 폭풍 성장시켜 높은 단계로 올라서겠다는 의지(意志)를 담았다.
장보고가 무역(貿易)에 신경을 썼던 것은 ‘안보(安保)’ 였다. 그리고 ‘영토(領土) 확장(擴張)’ 이었다. 그는 국제무역(國際貿易)이라는 거창한 계획(計劃)을 세우고 추진(推進)했다. 일명 ‘그랜드플랜-Grand Plan’ 이다. 국제무역 추진은 신라의 안보전략(安保戰略)의 차원(次元)이었다. 타 나라들과의 무역(貿易)이라는 교역(交易)으로 나라간의 관계가 원만히 진행되게 하겠다는 ‘평화가래(平和去來)’ , ‘안전설정(安全設定)’ 이다.
나라간의 무역이 활발 헤질수록 그만큼 관계가 가까워지고 끈끈해진다는 안정(安定)과 평화(平和), 질서(秩序)와 회복(回復), 발전(發展)과 번영(繁榮)의 교두보(橋頭堡)를 둔 것이다.
무역은 나라간의 좋은 관계가 아닌 적대(敵對)의 대립(對立) 관계로서는 이루어지가 어렵다. ‘우호(友好).친밀(친밀).유대(紐帶)의 조화(調和)’ 관계가 좋고 상호(相互) 이해(理解)가 있는 상태로 나아가야 만이 무역(貿易)이 활발해진다.
장보고는 국제자유무역을 추진한 것은 관계 감정의 우호적(友好的)인 서로 사이가 좋고 협력 이해가 있는 상태가 되게 하고자 했다. 친밀감(親密感)과 유대감(紐帶感)의 가까운 관계와 신뢰(信賴)가 있는 상태로 나아가고자 했다.
적대감(敵對感) 보다 더 넓게, 개인 집단(集團) 국가 간의 관계가 안 좋고 대립하는 상태를 원하지 않았다. 대립(對立)으로 무역거레(貿易去來)마저 멈추게 한다는 것은 바른 행동이 아니라고 보고, 나라간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무역(貿易)이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무역이 국가 간의 사이를 좁히거나 하나로 만들었다. 이런 목적을 두고 그는 국제자유무역을 추진하고자 완도에 청해진(淸海鎭)을 둔 이유다. 청해진이 단순한 군사.무역기지를 넘어 세계평화(世界平和)라는 거창(巨創)한 일을 추진하는 데, 목적(目的)을 두었다.
나라간의 적대(敵對)를 무역(貿易)이라는 무기로 파괴(破壞)한 셈이다. 적대는 개인(個人)과 집단(集團) 및 나라까지 서로 사이가 안 좋은 상태(常態)를 의미한 일로써, 상대방(相對方)에게 직접적인 피해(被害)를 주는 행세를(行勢)를 한 일이다. 이로 인하여 특정 국가를 적대하며 싸우는 행위를 구사한다. 이런 적대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게 〈무역〉 을 추진하여 그런 대립 성향(性向)을 완화(緩和) 시켰다.
청해진의 군사기지는 무역(貿易)을 위한 ‘보조기구(補助機構)’ 다. 군사력(軍事力)를 키운 일에는 경제력(經濟力)을 크게 한 일이다. 경제력 없는 군사력은 없다. 경제가 튼튼해야 만이 군사력이 그만큼 커진다. 그래서 장보고는 청해진을 군사기지이면서 ‘무역기지(貿易基地)’ 로 삼은 것이다. 무역을 위해서는 군사력을 키웠고, 커진 막강한 군사력으로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에 진출(進出)할 수 있었다.
청해진의 군사.무역은 서로 모지란 부분을 보충(補充)해 함께 완성(完成)해가는 ‘상호보완적(相互補完的)-Complementary’ 인 관계(關係)와 서로에게 의지(依支)해 존재(存在)하는 ‘상호의존적(相互依存的)-Interdependence’ 인 관계로서의 서로가 함께 성장(成長).발전(發展)하며 상호 이익(利益)을 추구(追求)하는 상호상생적(相互相生的)-Mutual Prosperity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상호상생적은 단순히 서로 돕는 수준을 넘어 관계 속에서 서로가 함께 발전하고 윈윈하는 방향으로 개진(開進), 상호 의존(依存)과 결합(結合)해 함께 얻고, 함께 나누는 관점으로 관계를 설정(設定)하고 유지(維持)했다. 이것은 ‘상호 이익(利益)-Mutual Prosperity, 공동 번영(繁榮)-Common Prosperity, 조화로운 공존(共存)-Coexistence, 협력으로 더 큰 효과(效果)-Synergy’ 를 얻어내게 했었다.
혁신(革新)과 미래 투자(投資) 없으면 비극(悲劇)이 시작된다. 지금 이대로는 미래 성장 동력(動力)이 안 보인다, 국제(國際) 경쟁(競爭)에서 초격차(超隔差)를 내려면 새로운 제도(제도)와 인재(人才)가 필요하다. 그리고 신상품(新商品)도 내나야 하고 교역(交易)도 크게 늘려야한다.
신라 청해진을 진두지휘(陣頭指揮)하며 해상무역(海上貿易)의 신화(神話)를 이끄는 장보고 청해진 대사는 신라 경제(經濟) 현실(現實)을 이렇게 진단(診斷)했다.
그는 무역 확산으로 물품 수요(需要)가 폭발(爆發)하고, 당과 일본의 견제(牽制)로 신라 기업(企業)들이 기회(機會)를 얻었지만, 이를 잘 활용하지 못하면 호황(好況)이 지속(持續)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보고는 신라 일부 기업의 과점(寡占) 체제(體制)가 지속되면서 어느 정도 성쟁세(成長勢)는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이대로는 혁신(革新)하지 않는다면, 한 번 몰락(沒落)한 이 후 회복(回復)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단순히 열심히 해서는 더 세게 나가는 당.일본이라는 나라 때문에 힘들 것이다. 초격차(超格差)를 만들어낼 만한 ‘차세대(次世代) 동력(動力)’ 이 필요하다고 역설(逆說)했다.
장보고는 “10년, 20년. 50년 뒤 지금의 훌륭한 인물 같은 인재(人才)를 키우는 게 꿈이고 희망이다. 잠재력(潛在力) 있는 인재들이 많진 않아도 분명히 보인다. 문제는 신라 국가의 제도(制度)가 뒷받침을 못해 키우질 못한다. 이런 상황(狀況)이 계속되면 그런 인재들이 다 해외로 떠나거나, 꿈을 얻지 못하고 기회를 잃고 말 것이다” 라고 과거(過去)에 머물거나, 안주(安住)하거나, 방심(放心) 해서는 안 된다며, 안심(安心)하지 못했다. 멈 춤 없는 자기 혁신(革新), 나라 변혁(變革)을 바랐다.
장보고는 “과거의 성공 신화(神話)가 오히려 혁신(革新)을 막는 성공(成功)의 저주(詛呪)가 될 수 있다” 고 우려하며 “혁신만이 살 길이다. 무역교역이 군사(軍事).경제(經濟).안보(安保)를 튼튼히 한다” 라고 설파(說破)했다.
장보고만큼 선진문명(先進文明)을 배운 사람은 드물다. 고려(高麗)를 세운 태조 왕건(王建), 조선(朝鮮)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李成桂), 삼국통일(三國統一)을 시킨 김유신(金庾信), 그리고 산업화를 이끈 박정희(朴正熙) 등의 인물들이 제 아무리 대한민국(大韓民國)의 훌륭한 1등 공신(功臣)이리고 해도 장보고의 유학고(유학)과 해외(海外) 경험은 비교(比較)하거나 따를 수 없다. 그는 당나라에서 24년간이라는 장기간 동안 머무르며, 선진 정치.경제.문화.사회.예술.군사.무역.교육 등을 배웠고, 몸소 느꼈다.
특히 그는 ‘군사(軍事)와 무역(貿易)’ 에 연구(硏究)했다. 또한 당나라의 정치(政治)를 배웠다. 또 경제(經濟)에도 관심을 가졌다. 문화(文化)에도 정보(情報)와 지식(知識)을 쌓았다. 사회(社會) 질서(秩序)도 파악(把握)하며 자신의 본성(本性)과 정신(精神).자세(姿勢)을 더욱 바르게 세웠다.
그런 그이기에 신라는 역사적(歷史的)인 인물(人物)로 평가(評價)하며 큰 인재(人才)를 얻었다는 기쁨에 당나라에서 다시 신라로 귀국(歸國)한 장보고에게 대 환영하며 그에게 군사.무역 등을 담당하는 ‘청해진(淸海鎭) 대사(大使)’ 라는 막중한 직책(職責)을 부여(附與)했다.
장보고는 석학(碩學)이자, 군사.경제.문화의 신(神)이다.
그런 훌륭한 인물이 청해진에 있을 때, 견제(牽制)도 많이 받았다. 장보고가 막강한 군사력(軍事力)과 경제력(經濟力)을 갖추게 됨을 조정(朝廷)에서는 불안(不安)해했다. 대신(大臣)들은 그가 너무 커간다고 생각하고, 그를 경계(警戒)했다. 결국 장보고는 조정에서 보낸 염장(閻長)이라는 자객(刺客)에 의해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장보고가 군사.무역이 너무 방대(尨大)하게 규모적(規模的)으로 커지는 것은 물론, 정치(政治)와 왕권(王權)에도 너무 깊이 관여(關與)하고 있다고 보고, 귀족들은 세력(勢力)이 더 이상 커지기 전에 그를 가만 둬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내리쳤다.
장보고는 어느 장수(將帥)보다 ‘지(智)-지혜(智慧), 덕(德)-인의예지(仁義禮智), 용(勇)-용기(勇氣), 엄(嚴)-굳셈’ 의 유교적(儒敎的) 덕목(德目)을 갖춘 인물이지만, 그는 왕건.이성계.박정희 같은 쿠데타를 일으키지는 안했다. 만약 그들처럼 정권욕(政權慾)이 강했다면, 그는 청해진 대사직에서 뛰쳐나가 임금과 신하가 머문 조정(朝廷)을 장악(掌握)했을 것이다.
장보고는 청해진을 그런데 이용(利用)하려는 생각보다 오로지 신라의 군사와 무역을 위한 충성심(忠誠心)을 갖고 헌신적(獻身的)으로 주어진 임무(任務)를 착실히 수행(隨行)했다.
●확장하고 돌보는 비빌 언덕이 되겠다
장보고(張保皐)라는 이름, 여러 해석(解釋)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베풀 장(張)의 활궁(弓) 변과 지킬 보(保)의 사림(人) 변은 ‘활을 든 사람’ 이라는 뜻으로 풀어보게 된다. 장과 보에 부르는 소리 고(皐)가 들어갔으니 ‘활을 쏘는 사람을 불러 전쟁(戰爭)이나 방어(防禦)에 나서게 한다’ 는 뜻으로 풀어진다.
또 ‘크게 넓힌다’ 는 의미로써의 베풀 장(張)과 ‘지켜 보호(保護)한다’ 는 의미로써의 지킬 보(保)와 언덕이라는 ‘비빌 언덕이 되겠다’ 는 의미로써의 언덕 고(皐)로 해석된다.
언덕 고는 부르는 소리 고(皐)로 ‘지키고 보호하고 도우는 일을 널리 확장하겠다’ 는 의지가 담긴 구호(口號)이다. 장보고라는 이름은 선언(宣言)이자 표명(表明)이다.
장보고의 이름은 선전포고(宣戰布告)라고 할까? “세계에 내가 칠 것이다. 내가 바로잡을 것이다. 우가 해낼 것이다. 우리는 결국 터진다” 라고 전쟁(戰爭)의 선전포고가 아닌 질서.평화.안정과 무역교류의 선전포고다.
그는 장보고라고 구호와 함께 “우리는 결국 터질 신라다.”
군사.무역 등에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청해진 부진에 대한 우려를 정면 돌파(突破)하며 곧 폭발(爆發)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우리는 결국 칠 것” , “해낼 것” 이라며 자신감을 감추지 않고, “우리는 못 칠 것, 하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 우리는 훌륭한 군사(軍事)와 상인(商人)들이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며 살아나는 긴 시간이 문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다시 터지기 시작하면 정말 재미있을 거다. 훨씬 좋아질 것” 이라며 당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사실상 선전포고(宣戰布告)를 날렸다.
땅이 비탈지고 조금 높은 곳을 지칭하는 ‘언덕’ 은 보살펴 주고, 이끌어 주는 미더운 대상을 비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이다. 기댈 언덕처럼 의지(依支)하거나 기대할 수 있는 대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기댈 언덕,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사람, 재력, 제도 등)이나, 비빌 언덕, 문제를 해결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뒷배나 연줄 같은 의미로도 쓰인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언덕이 있어야 소도 가려운 곳을 비비거나, 언덕을 디뎌 볼 수 있다는 뜻으로, 누구나 의지할 곳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 시작하거나 이룰 수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장보고는 우리가 사는 곳, 입은 경제, 누리는 문화.사회 등을 확장하고 서로를 돌보며 존엄한 삶을 가꿀 “우리에겐 비빌 언덕이 필요해” 하며 그런 의미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자신의 이름은 그렇게 지었다. 그는 “낯선 곳에 비빌 언덕이 되어 드릴께요” 하며 어디든 간, 어떤 사람이든 의지(依支)가 되도록 해주겠다고 했다.
확장은 관계 시스템.사업(事業) 등을 ‘더 넓게 만들거나 늘리겠다’ 는 것이다. 지킴은 누군가를 보호(保護)하고 지지(支持)의 의미로 ‘비빌 언덕’ 의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장보고는 비빌 언덕을 더 넓게 만들겠다며, 비빌 언덕을 크게 하며 〈비빌 언덕, 기댈 언덕〉 이 되도록 지켜주었다.
비빌 언덕은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는 따뜻하고 믿음직한 존재(存在)를 가리킨다. 일상에서 언제든지 비빌 수 있는 언덕처럼 ‘위로(慰勞)와 지지(支持)’ 를 주는 관계를 형성했다.
비빌 언덕(皐)을 더 많이 만들고, 지지 기반(基盤)을 확장(擴張)하겠다는 뜻으로 장보고라는 이름을 짓게 된 이유다. 비빌 언덕이 되겠다는, 언제든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되겠다는 의미로써의 자신의 철학과 의지를 담은 이름이다.
장보고를 신뢰한 흥덕왕(興德王) 등 신라 왕(王)들은 그를 왜 신뢰(信賴)를 했는지, 장보고의 다테일 행정(行政)일까? 아니면 검증된 실력(實力)일까? 둘 다 갖춘 능력(能力)과 경험(經驗) 때문에 그를 좋아했고, 더 선호(選好)했다.
장보고의 이름의 뜻은 불교(佛敎)에서 말한 ‘자리이타(自利利他)’ 라고 볼 수 있다. 자리(自利)는 자기 자신의 수행(修行)과 성장(成長)을 통해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 것’ 이며. 이타(利他)는 ‘다른 이의 이익(利益)과 행복(幸福)’ 을 위해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이 둘을 분리(分離)하지 않고, 내가 바로 서는 과정이 곧 타인(他人)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연결(連結)하는 실천 원리(原理)다.
비빌 언덕을 더 많이 만들고, 자기 기반을 확장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장보고(張保皐)라는 이름도, 모든 관계는 서로 돕고 이익이 되는 상호 자리이타의 관계로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배움.성장이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도록 나누는 삶, 즉 봉사(奉仕), 기여(寄與), 협력(協力)으로 확장하는 것이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실천이다.
밝은 사회를 만드는 가치, 자리이타 정신 실천 덕목(德目)은 장보고의 신념(信念)이었다.
자리이타를 이루는 명품 인생, 자리이타는 ‘나를 이롭게 하는 일이 남에게도 이로운 일’ 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나만을 위한 행동 때문에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과 자신을 희생을 감수하면서 남만을 이롭게 하는 일이 아닌 것이다.
나를 위한 일이 타인과 사회를 잘 되게 하고, 타인을 위한 일 덕분에 내가 복 받는 일이 나의 일이라면, 최상의 명품(名品) 인생(人生)인 것이다.
사익(私益)이 공익(公益)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멋지고 행복한 일이다. 한 전략(戰略)가가 혼자 기뻐하기에는 아까운 소식이 있다.
당나라 산둥반도에 이미 신라인(新羅人)들이 거주(居住)하는 곳과 인연(因緣)이 불씨가 되어 24년간 군인(軍人)으로서 당과 우호적(友好的)인 관계를 맺어오며, 국제교역(國際交易)을 위해 안간 힘을 써 온 사람이 있다. 바로 완도에 위치한 장도(長島)에 〈청해진〉 을 설치해 이끈 장보고 대사(大使)다.
장보고는 신라 45대 흥덕왕에게 부탁해 전남 완도에 청해진을 설치하고, 신라 해안 질서를 어지럽히는 해적(海賊) 소탕(掃蕩)과 방어(防禦) 및 안보(安保)에 치중(置重)하거나, 제품(製品) 홍보(弘報)와 핀로(販路) 개척(開拓), 신라산 특산품 제조(製造) 및 유통(流通)을 위한 자유무역구내(自由貿易區內) 현지화(現地化)로 경쟁력(競爭力) 있는 구조(構造)를 만들어 사업력(事業力)을 확장(擴張)해 왔으며, 무령군(武寧軍) 같은 당나라의 우수한 군사교육기관(軍事敎育機關)에 연결하기도 해, 산둥성(山東省) 지역 발전에도 이바지한 신라의 군인(軍人)이요, 상인(商人)이다.
장보고는 정부(政府) 경제자문회의(經濟諮問會議), 산둥성(産東省) 산업진흥회의(産業振興會議), 다국적(多國籍) 기업홍보회의(企業弘報會議), 초청성(招請性) 심포지엄에서 일 년의 교류(交流) 및 홍보(弘報) 행사 외에도, 다국적 기업(企業) 및 당나라 테마 전시회(展示會)에서는 여러 개가 넘는 기업이 참가(參加)해 여러 종류의 제품을 전시(展示)했다.
새 시대 다국적 기업과 당(唐) 산업 간 협력(協力)에 초점(焦點)을 맞춘 행사로, 당나라 내 다국적 기업의 발전적(發展的) 성과(成果)와 첨단 기술(技術) 및 협력(協力)의 길을 제시(提示)했다.
장보고는 해외 기업가들을 신라에 초대해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고, 신라 역사를 문화(文化)로 숙성(熟成)시키는 신라 지역과 산둥성을 연결하게 했다. 이것은 장보고라는 이름과 자리이타 정신에 입각(立脚)해 추진했다.
장보고의 사업은 내 나라 신라(新羅)에도, 내가 경영한 회사(會社)에도 다 같이 좋아지는 기쁜 소식이 아닌가? 당나라 대륙(大陸)에 신라의 제품(製品)을 널리 알리고, 신라 산업(産業) 진출(進出)의 훈풍(薰風)을 일으키는 활약(活躍)을 기대하세 하는, 한 개인이 꿈같은 성취(成就) 과정이겠지만, ‘자리이타(自利利他)’ 를 이루는 〈명품 인생, 품격 인간〉 인 것이다.
장보고의 장(張)은 ‘크게 함’ 이다. 장의 궁(弓)은 ‘재주와 능력(能力)’ 이다. 장(長) ‘멀리 그리고 오랫동안 능력(能力)을 펼친다’ 는 의미이다.
그는 ‘궁복(弓福)’ 으로 태어난 사람이 아니던가? 재주와 능력을 갖춘 복덩이다. 그런 사람이 ‘장보고(張保皐)’ 로서 재주와 능력으로 멀리, 그리고 오랫동안 능력을 펼치겠다고, 그는 자리이타(自利利他) 정신으로 비빌 언덕(皐)을 더 많이 만들고, 지지 기반(基盤)을 확장(擴張)하였다.
장보고는 신라.당.일본 양국이 가깝고도 먼 이웃이 아니라, 신뢰(信賴)와 유대감(紐帶感)을 바탕으로 함께하는 가깝고도 가까운 사이가 되길 바라면서 양국이 우호(友好) 협력(協力) 관계로 발전되기를 바랐다. 신라.당 간 선린우호협력(善隣友好協力) 동반자(同伴者) 관계를 선언(宣言)하며, 양국 관계의 지속적9지속적) 발전(발전)을 위해 두 나라 관계를 선린우호협력 동반자 관계로 격상시켜 경제(經濟).무역(貿易) 통상(通商) 등 다방면(多方面)에서 협력(協力)을 활성화(活性化)해 나갔다.
Good Neighbourliness-좋은 이웃 관계, 선린우호관계를 맺으며 교역(交易).여행(旅行) 등을 지속(持續)하게 했다. 단순(單純) 수교(修交)에서 상호보완(相互補完), 선린우호관계(善隣友好關係)로, 다시 포괄적동반자관계(包括的同伴者關係)로 진척(進陟)되게 했다.
신라는 주변 국가와 〈선린우호+공동발전〉 을 원했다. 장보고는 신라가 주변 국가와의 선린우호관계를 매우 중요시하며, 이를 위해 친(親), 성(誠), 혜(惠), 용(容)의 외교 이념을 제시하고 공동(共同), 종합(綜合), 협력(協力), 지속가능(持續可能)한 아시아 안보관(安保觀)을 제창(提唱)하며, 선린우호관계 동반자로서의 공동발전(共同發展)을 기했다.
양국 간의 무역 협정(協定)은 신라.당.일본.동남아.아랍국이 서로 존중(尊重)하고 협력(協力)하며, 공통(共通)의 이익(利益)을 모색(摸索)했다. 이런 일은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 마음을 담은 협정이다.
장보고는 한 농가(農家)의 일화(逸話)에 대해 『수확한 복숭아는 품질(品質)이 뛰어나 어느 농가가 지은 복숭아보다 지역 농산물평가대회(農産物評價大會)에서 대상(大賞)을 수상(受賞)할 만큼, 우수한 농산물로서의 많은 수확을 올렸다. 이웃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했다.
그런데 그는 이웃 농부(農夫)들에게 자신이 가진 가장 좋은 모종(某種)을 나눠주었다. 그것도 공짜로, 놀란 이웃들이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다 나 잘되자고 하는 일이지요, 바람이 불면 꽃가루가 날리지 않습니까? 만약 이웃 들판에서 품질이 떨어지는 복숭아를 기른다면, 그 복숭아의 꽃가루가 날아와 내 농장에 자라는 복숭아의 품질까지 떨어뜨릴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이웃들도 최상의 복숭아를 기르는 것이 내게도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 자리이타는 자신을 이롭게 한다는 지리(自利)와 남을 이롭게 한다는 이타(利他)를 합한 낱말로 자기도 이롭고 남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장보고는 “남을 잘되게 도와줘라, 그것이 내가 잘되는 일이다.” 라고 자연도 인간 사회도 서로 연결되었음을 강조했다.
『공유가치(共有價値)는 경쟁(競爭)과 분열(分裂)이 아니라, 우애(友愛)와 신뢰(信賴)의 가치를, 오만(傲慢)이나 독점(獨占)이 아닌 배려(配慮)와 나눔의 가치(價値)를, 죽임과 파괴(破壞)가 아니라 생명(生命)과 공생(共生)의 가치로 사람과 지구(地球)를 살리는 첫 걸음이 되어 줄 것이다』 라고 장보고는 설교(說敎)했다.
장보고는 말했다. “하나라도 더 주려고 노력한 것이 우리의 성공비결(成功秘結)이다.”
그것이 이웃과 나라와 공유(共有)하며 힘 안 들고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장보고다. 그래서 그는 국제자유무역(國際自由貿易)의 기본 원칙(原則)으로 ‘자리이타(自利利他)’ 를 삼았다.
장보고는 국제자유무역을 단순히 국내에서 생산한 물품을 수출(輸出)하는데 목적만 두지 안했다. 내가 만든 물건을 팔되, 나만의 이익(利益)만 생각하지 않은 남도 이익이 되는 자리이타의 교역(交易)을 추진하였다.
장보고의 보(保)는 지킨다는 의미로써 ‘도움을 준다’ 는 의미로도 쓰인다.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保)다. 도움을 주는 일을 널리 확장(擴張)시켰다. 그래서 장보고의 장(張)은 범위.규모.세력 등을 ‘크게 늘려서 넓힌다’ 는 확장(擴張)의 의미를 담는다. 이것은 도움을 받을 사람에게 ‘비빌.기댈 언덕(皐)이 되어준 일’ 이다.
자리이타 정신이 들어간 〈장보고〉 라는 이름이다.
청해진은 단순히 해적(海賊) 소탕(掃蕩).퇴치(退治)에만 국한(局限)되지 않은 안보(安保)를 튼튼하게 하여, 모든 일들이 안정(安定) 속에 진행하게 도와줬다. 무역에 있어서도 안보를 유지하면서 안전(安全) 속에 활발한 교류(交流)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장보고+신라=자리(自利)는 곧 세계인+국제=이타(利他)이다.
청해진은 신라 해안(海岸) 방어(防禦)와 질서(秩序)를 책임(責任)지는 ‘해양안전(海洋安全) 보장(保障)과 해상질서(海上秩序) 유지(維持)’ 를 담당하는 해군(海軍)으로서 역할(役割)을 띠고 있으며, 청해진은 해양(海洋) 방어(防禦), 영해(領海).EEZ 수호(守護)와 함께 해적(海賊).침략(侵掠) 등 해양 범죄(犯罪) 및 침투(浸透)를 단속(團束).방어(防禦).소탕(掃蕩)해 해상 질서를 유지하는 임무(任務)를 띤다. 청해진은 해양 방어(防禦)는 물론 해상 질서(秩序), 그리고 항해(航海) 안내(案內), 사고(事故) 처리(處理) 등을 담당, 선박 운항(運航)에 안전하게 항해토록 해주었다.
청해진은 신라의 해양(海洋) 방위(防圍)를 책임지는 군사(軍事) 조직으로, 국가의 해상 안전(安全)을 보장(保藏)하고, 해외(海外) 작전(作戰) 및 국제적(國際的) 협력(協力) 활동에도 참여하는 중요한 군사력(軍事力)이었다.
청해진은 방위(防圍)외 질서(秩序)는 물론, 교역(交易)을 하는 선박(船舶) 항해(航海) 보호(保護), 안전(安全)에도 책임지었다. 청해진은 해상(海上)에서 선박의 안전향해(安全航海).호송(護送).구조(救助) 등 항해 관련, 책임을 수행(遂行)했다.
선박 안전항로(安全航路)를 제시한 청해진은 해상 위협(威脅) 상황에서 선박에 안전한 항로(航路)로 제시(提示)하고, 원활한 군사작전(軍事作戰) 전개(展開)를 돕는 역할을 띠었다.
청해진은 합동대응체계(合同對應體系)를 운영(運營), 선박 피해(被害) 상황을 접수(接受).전파(傳播)하고, 관계기관과 협업(協業)해 신속 대응체계를 점검(點檢)하는 합동훈련(合同訓鍊)을 하였다.
청해진은 항만(港灣) 출(出).입항(入港) 지원(支援)을 담당하는 등의 군함(軍艦)의 안전한 출.입항을 위해 도선사(導船士) 등 항해(航海)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敎育).훈련(訓練)이 운영됐다. 신라 선박이 당.일본.동남아 등의 해역(海域)을 통과해야 하기에 해상교통로(海上交通路) 보호(保護)는 국가적(國家的) 과제(課題)일 수밖에 없어, 민.관.군은 해상교통로 보호가 국가 생존성(生存性)과 직결된다는 것에 공감하고, 근무자(勤務者)들의 임무(任務) 수행능력(遂行能力) 향상과 선박 안정성(安定性) 선제적(先除的) 확보(確保)을 위해 훈련을 진행했다.
완도 청해진해상교통(淸海鎭海上交通) 센터에 선박 출입항(出入港)을 관리하는 선박통제소(船舶統制所)를 설치해, 상선(商船)과 어선(漁船)에 위험구역(危險區域), 선박 행동지침(行動指針) 등을 전파(傳播)하며 안전(安全)을 기했다.
해적(海賊)으로부터 안전(安全)한 항해(航海)를! 기치를 내걸고 신라 선박+정부+해군(청해진)이 하나로 뭉쳤다.
장보고는 ‘선장(船長)은 배와 운명(運命)을 함께한다’ 라는 기치를 내걸고, 선장은 해상 사고(事故) 시 죽음을 각오(覺悟)하고, 배를 끝까지 책임(責任)진다는 자세로 배를 이끌었다.
그는 선장은 화물(貨物)을 싣거나, 여객(旅客)이 타기 시작할 때부터 화물을 모두 부리거나, 여객이 다 내릴 때까지 선박(船舶)을 떠나서는 아닌 된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배를 지켰다.
장보고는 ‘선장은 배와 함께 죽는다.’ 죽음을 각오해서라도 선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했다.
●청해진 해외 진출 전 테스트 역할도
세계 각국에서 바다를 통한 해외(海外) 진출(進出)이 활발해지고 다양해지는 추세(趨勢)지만, 신라는 당시 외국의 1위 교역국(交易國)이다.
신라는 그동안 9세기 이전의 해외 진출이 그렇게 활발하지 못했다. 했더라도 국지적(局地的)일 뿐이었다.
그러던 것을 장보고가 등장하고, 그로 인하여 설치된 완도 청해진(淸海鎭) 무역기지(貿易基地)를 통해 거래 상대국을 더 넓히는 등의 확보(確保)하고, 교역(交易)이 더 활발해졌다. 다양한 물품을 취급(取扱)하는 무역(貿易)을 추진(推進)하였다.
신라에 외국 상인(商人)이나 관광객(觀光客)들이 잦아들어 신라의 제품(製品) 등 문화.사회.경제가 활기(活氣)를 띠었다.
업계에서는 신라가 단순히 국내에서 매출(賣出)을 올리는 것 외에도 해외(海外) 진출(進出) 전 일종의 시험(試驗) 또는 검사(檢査) 역할도 한다고 봤다. 상인.관광객 동선(動線)이나, 선호도(選好度) 같은 경험(經驗)을 모아, 해외 시장(市場) 확보(確保)와 제품 종류, 거래량을 파악(把握) 할 때 자료(資料) 및 정보(情報)로 활용(活用)했다.
해외 고객(顧客)의 국내 구매(購買) 성향(性向)을 분석(분석)해 해외 진출을 모색(摸索)했으며, 해외 진출의 제품 소비 시험은 현지 소비자 반응을 직접 확인해 제품 가격(價格).포장(包裝).전략(戰略)을 조정(調定)했다.
장보고는 현지 소비자 설문(設問) 조사(調査) 및 시식(試食).시험(試驗)을 통해 맛.가격.포장 선호, 구매 의향(意向) 등을 수치화(數値化)해 제품 개선 중점을 도출(導出)했다.
장보고는 당나라에 1호점을 개설(開設)해, 상권(商權)이 성숙(成熟)한 대표(代表) 도시(都市)에서 상품명(商品名) 노출(露出)을 높이고, 소비자 반응을 확인하는 등 시장 시험으로 활용했다. 입점(入店)은 자금(資金) 조달(調達)을 넘어 소비자(消費者) 반응(反應)을 바탕으로 제품 구매(購買)를 검증(檢證)하고, 유통망(流通網) 확장(擴張) 관문(關門)으로 활용했다.
당나라에서 1호점 경제(經濟)는 대표적 관광 도시 등에 최초 매장(每場)을 개설(開設)해 제품 노출(露出)을 높이고, 진입 장벽(障壁)을 낮추어 소비를 촉진(促進)하는 개념으로 시장(市場)을 확보하였다. 시제품(試製品)으로 자금(資金)을 모은 뒤 상품화(商品化)하는 방식으로 해외시장(海外市場) 시험 제품 인지도(認知度) 제고(提高), 유통(流通) 입점(入店) 관문(關門) 역할까지 할 수 있는 창구(窓口)로 활용했다.
당.일본은 권역별(勸域別) 언어.문화.소비문화가 상이(相異)해 단일 전략(戰略)보다 권역(勸域)과 품목(品目)을 선별(選別)한 맞춤형 접근(接近)이 필요했으며, 당나라는 초기 크기 확보(確保) 시장(市場) 시험, 일본은 고가(高價) 제품 시험, 동남아는 문화(文化) 진입(進入) 거점(據點)으로 거래(去來)했다.
거래 구조와 성공 사례를 학습한 뒤, 현지 소비(消費) 흐름에 맞춰 제품 경쟁력(競爭力)과 시장 적합성(適合性)을 검토(檢討)해 교역(交易)을 추진했다.
장보고는 ▲품목별 수출 전략 ▲권역별 진입 차별화 ▲유통 전송 및 운영 ▲진입 단계별 상품 전략이 함께 이루어지게 했다. 장보고는 신라 기업(企業)은 당.일본.동남아.아랍 등 시장을 ‘큰 시장’ 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품목(品目)과 지역(地域)에 따라 지역에 맞는 가격(價格).전송(轉送).기획(企劃).조사(調査).계획(計劃).판매(販賣) 전략으로 들어가는 정교(精巧)한 접근(接近)으로 무역(貿易)을 추진했다.
당,일본은 지속적(持續的)인 소득(所得) 증대(增大), 첨단(尖端) 결제(決濟).유통(流通).기반(基盤) 고도화(高度化), 권역별(勸域別)로 상이(相異)한 소비문화(消費文化)가 동시에 작동(作動)하는 거대(巨大) 소비시장(消費市場)으로, 신라 소비재(消費財) 기업의 전략적(戰略的) 진출 필요성이 높은 시장(市場)이었다. 당.일본은 단일 시장이 아니라, 지역별 언어(言語).종교(宗敎).식문화(食文化) 차이가 큰 복합시장(複合市場)인 만큼, 단일 전략(戰略)보다 권역과 품목(品目)을 선별한 맞춤형 접근으로 상대했다.
장보고 대서사시 6편
김대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