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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믿음
룻기 1장 1절-5절 & 1장 16절-18절 - 이 다니엘 선교사 2023년 5월 28일 성령 강림절 설교
할렐루야! 지난 한 주간도 은혜가운데 잘 보내셨습니까? 오늘은 성령강림절 입니다. 성령강림절의 의미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을 드리고 나서 제가 준비한 주제설교를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40일간 하나님의 나라의 일에 대해 제자들에게 가르치시고, 예수님이 승천하신지 10일이 지난 후, 곧 부활하신지 오순, 즉50일째 되는 날 약120명의 제자들이 모인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강림하셨습니다. 또 그날 3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초대교회가 시작되었으므로 성령강림절과 함께 교회가 시작된 날로도 기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맥추절, 장막절을 3대절기로 지키고 있는데요 성경적으로 맥추절과 오순절인 성령강림절은 같은 날입니다. 유대인들은 전통적으로 맥추절에 룻기를 읽습니다. 왜냐하면 룻과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시기가 보리추수기이고 하나님께서는 보아스를 도구로 삼으셔서 헤세드의 은혜를 룻과 나오미에게 부어주셔서 그들의 삶을 회복시키고 풍요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맥추절은 가난과 기근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과 친족을 돌보고 절기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여러분들도 가난하고 힘들고 지친 이웃을 돌아보시며// 성령강림절이기도한 오늘 성령님과 동행하시고 늘 성령충만하신 여러분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누군가의 인도하심으로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구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똑같이 오늘 복음을 들어도 들을 귀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다른 선택은 내일 우리의 삶을 빛 혹은 어둠으로/ 영원한 생명 혹은 영원한 사망으로// 갈라놓게 합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며 사는 인생이 진정 복된 인생아닐까요?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이렇게 귀한 생명의 복음을 오늘 우리의 이웃과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전하는 것이며 이것이 내일을 살아갈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가장 가치있는 유산이라고 믿습니다. 제 말씀에 동의하시고 그렇게 하시겠다 결단하신다면 아멘으로 화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네 할렐루야 아멘입니다.
오늘은 진정한 믿음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는 하나님 한분외에는 누구도 정의 내릴 수는 없습니다만 성경에서 알려주시는 믿음의 말씀들을 참고로해서 진정한 믿음의 길을 따라 오늘 저와 여러분이 함께 그 길을 걸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의 성경말씀은 룻기 전체를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내용을 잘 알고 계시므로 룻기1장1절에서 5절은 제가 읽고 16절-18절은 성도님들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모세의 설교를 기록한 신명기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을 기억하고 순종하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망각하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라고 요약할 수 있구요 오늘 설교 내용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모세가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우십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을 정복하고 이스라엘백성을 그 땅에 정착시키는 사명을 훌륭하게 마무리한 지도자였고 용감하고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서의 마지막장인 24장을 보시면 “여호와의 종 여호수아는 백십세에 죽고, 그가 사는 동안과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라는 말로 다가올 사사기 시대에 대한 다소 비관적 여운을 남기며 사사기 시대로 이어집니다. //룻기는 4장으로 되어있는 아주 짧은 책이지만 구약의 암흑기라고도 불리는 약350년에 걸친 사사기시대와 사울, 다윗, 솔로몬왕에 걸친 120년의 통일왕국시대를 연결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아주 귀한 책입니다.
룻기의 배경이 되는 사사기 시대를 한문장으로 요약하면 “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란 개념이 희미해지고 거룩에 대한 부담과 열심이 상실된 시기”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스라엘민족에게는 목축업이 중요한 생계수단이었고 가나안은 농경문화가 정착된 발전된 사회였습니다. 농사를 지을 줄 몰랐던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에 입성하자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의 앞선 농경기술과 문화, 풍습, 기후에 대한 지식에 의존하면서 그들의 타락되고 음란한 우상문화에 젖어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우려하셨던 일이 이스라엘백성의 우상숭배와 타락이었는데 그 우려가 현실이 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가나안족속들이 대대로 숭배했던 풍요의 신 바알과 다산의 신 아세라를 이스라엘 백성도 섬기기 시작하고 우상숭배가 주는 유익과 쾌락적 삶에 빠져들면서 죄책감도 없이 하나님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과 택한 백성의 순종의 믿음이 음란한 가나안 땅을 변화시킨 것이 아니라 반대로 가나안의 악한 영향력이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타락의 길로 이끌기 시작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이스라엘의 믿음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것이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살았던 사사기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시대를 조명해 보면서 진정한 믿음에 관해서 4가지 주제로 나눠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로 진정한 믿음은 고난중에 기도하며 인내하는 것입니다.
암울하고 소망이 없던 사사기 시대의 어느 무렵, 이스라엘 땅에 가뭄이 오고 흉년이 들었습니다. 1장1절에서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땅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두아들 말론과 기룐은 베들레헴 에브랏 사람들이더라.”라고 말합니다. 미가서에서 “ 베들레헴 에브라다여 너는 유다 족속중에 가장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라고 예언합니다. 에브랏은 다윗왕이 태어난 동네며 바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땅입니다. 베들레헴은 ‘떡집’, 에브랏은 ‘풍요로운 수확’이란 뜻인데 이름처럼 이 지역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풍요로운 땅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 땅에 흉년이 들게 하셨습니다. 신명기28장에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을 때 “땅을 놋과 같이 척박하게 할 것과 땅이 산물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은 어떤 고난이나 천재지변이 닥쳐올 때 정말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전지전능하심을 믿는다면 가장 먼저 두가지를 실행할 것같습니다. 먼저 하나님앞에 기도로 납작 엎드리는 것이고 두번째로 혹시 자신이나 공동체가 무슨 불순종이나 죄에 빠져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금식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그리고 두 아들은 흉년이 들자 모압으로 이주해서 살았다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런 부가적 설명이 없기에 행간을 추측해 보자면 믿음의 결단을 하고 금식을 선포하거나 기도하며 인내함을 선택하기보다는/ 재산을 정리해서 이주를 결정하고 자신의 조국과 하나님을 떠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가정의 하나님과 관계없는 간단명료한 결정을 바라보면서 저는 영적교만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영적교만은 “성공해도 내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무슨 어려움을 당하던지 스스로 극복할 수 있다고 여기며 하나님과 상관없이 결정하며 사는 태도를 말합니다. 2절에서도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아들만 남았더니..”라고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압이주 초기에 하나님은 나의 왕이시다란 이름 뜻을 가진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과부가 된 나오미는 모압여인들로 두아들의 아내를 삼았는데, 큰며느리가 룻, 둘째가 오르바입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나자, 두아들도 죽고 남편이 없는 세 과부만 모압땅에 남게 되었습니다. 모압은 베들레헴에서 100킬로 정도 떨어진 땅이니까 시드니시티에서 블루마운틴까지 가는 거리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그리고 인신제사로 맏아들을 바치는 그모스라는 우상을 숭배했을 뿐만 아니라 아주 음란한 땅이기도 했습니다. 민수기 25장 1-3절을 읽으시면 당시 모압의 형편을 아실 수 있는데요 이스라엘백성이 모압여인들과 음행한 사건과 바알브올을 숭배한 일로 이스라엘 백성 2만4천명이 역병으로 죽습니다. 아프고 비극적인 말씀을 드리려니 저도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만 후반부의 반전을 기대하시며 잠시만 인내해 주시기 바랍니다. ///
우리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흉년같은 천재지변이나 혹은 우리 인생에 주시는 고난은 하나님의 징계일 수도 있고 혹은 더 큰 축복을 예비하신 하나님의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잘못가고 있는 자녀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눅5:31) 그렇습니다. 중한 병을 치료받으려면 쓰디쓴 약과 고통스러운 수술, 그리고 혹독한 물리치료가 필요합니다. 혹 자신이 고난을 통한 하나님의 다루심가운데 있다면// 세상과 자신을 의지하는 영적교만을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을 길러야만 합니다. 엘리멜렉은 베들레헴을 떠나지 말고 자신과 가족의 /삶과 미래를 놓고/ 하나님앞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빌립보서4:6-7말씀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우리 인생에 고난과 시험이 닥칠 때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 가정의 비극적 가정사와 절망의 시간을 타산지석으로 삼으시고 가장 먼저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인내하시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회복의 시간을 기다리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2) 진정한 믿음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1장6절에서 22절까지 말씀을 읽다가 돌아가라, 돌아오다란 표현이 자주 나와서 한번 세어 보았습니다. 주로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모압으로 돌아가라는 말이 6회,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겠다란 말이 5회정도 나오더군요. 저주의 땅 모압으로 갈 것인지 회복의 땅 베들레헴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영적 싸움이 치열해 보입니다. 이제 최후의 선택을 하고// 함께 가든지 결별하던지를 결정해야할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믿음의 여인 맏며느리 룻은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으로 돌아오기로 결정하고// 중간 지대에서 망설이던 둘째며느리 오르바는 모압으로 돌아갑니다. 룻기의 결론은 룻과 나오미가 하나님의 땅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예비하신 축복을 받고 또 축복의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사람 다윗의 선조가 되고 보아스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오르는 생명의 회복자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과도 오래전 사별하고 이제 두 아들도 죽고 나오미와 룻만 남았습니다. 나오미가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결단한 이유가 단지 이스라엘에 보리농사 풍년의 소식이 들렸기 때문일까요? 그 소식은 고향으로 가려는 계기는 될 수 있었지만 근본적 이유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남편과 두아들의 죽음이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임을 깨달은 나오미가 더 이상 우상의 땅//저주의 땅에 머물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구하며//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는 것이 돌아가려는 이유의 본질인 것입니다. 나오미란 이름은 희락, 행복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1장13절은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가슴이 아프다.”라고 며느리들에게 말합니다. 1장20절은 룻과 나오미가 베들레헴에 이르자 두사람을 환대하는 고향사람들에게 나오미가 하는 말입니다. “나를 마라라 부르라. 이는 전능자가 나를 심히 괴롭게 하셨음이라.” 이어서 21절은 “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나를 어찌 나오미라고 부르느냐?” 이 3구절을 보면 나오미가 풍년이기 때문에 뭔가 살 방도를 찾아보려고 고향땅을 찾아 온 것 보다는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죄를 깨닫고 아픔과 고통을 치룬 후에야 회개하고 삶의 회복을 위해 하나님께 돌아온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회개란 ‘내가 하나님께 잘못한 죄에 대해서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7장10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여기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영어로 표현하자면 GODLY SORROW!입니다. “하나님께 지은 내 죄가 너무 커서 죄책감이 내 심령을 찔러 아프고 슬픕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나의 생각을 바꾸고 하나님의 방식으로 생각할 때 시작됩니다. 그리고 현재 내모습은 내 삶의 중요한 순간에 내가 선택한 것의 결과임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 비로소 나란 존재는 자신이 하나님께 지은 죄에 대해 책임지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더 이상 핑게하지 않겠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죄 때문입니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오미는 더 이상 나오미로 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나를 마라라고 불러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으며 나오미의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저도 죄에 빠져 방황할 때 죄를 변명하거나 합리화시키면서 하나님께 회개하는 것이 무서워서 도망다니다가 // 결국 저의 책임입니다라고 하나님께 있는 그대로 고백하고 나서야 비로소 죄의 무게로 부터 가벼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한일서1장9절의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나오미가 자신과 가족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그녀의 회복과 축복의 출발점 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심으로 회개드릴 때 우리 죄를 돌아보지 않으시며 회복시켜 주십니다. 역대하7장14절말씀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아멘!!
3)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2장1절은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유력한 자가 있으니 그의 이름은 보아스더라.” 이 유력한 자 보아스가 누구인지 다 아시죠? 마태복음1장5절의 말씀입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으니라.” 보아스는 여리고성에 살았던 기생 라합과 살몬사이에 태어난 아들입니다. 여러분의 기억을 도와드리기 위해 배경설명을 드리자면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정복하기 전에 2명의 정탐꾼을 여리고성에 보냅니다. 위험에 빠진 정탐꾼을 목숨을 걸고 구해준 라합의 공로로 여리고성이 정복되었을 때 자신 뿐만 아니라 모든 가족들의 생명을 구하고, 그후에 유다족속인 살몬과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보아스입니다. 보아스는 믿음의 여인 라합이 어머니요 //모압여인이었지만 하나님을 깊이 신뢰했던 룻을 아내로 맞이한 축복받은 남자입니다. 이방여인 룻의 인생을 역전시킨 것은 시어머니 나오미와의 만남으로 시작되었고 보아스와의 만남으로 열매를 맺습니다. 보아스가 룻을 만나서 아내로 삼았던 이유를 2장11-12절에서 말합니다, “너의 남편이 죽은 후로 네가 시어머니에게 행한 모든 것과 너의 부모와 고국을 떠나// 전에 알지 못하던 백성에게로 온 일이 내게 분명히 알려졌느니라.” 그리고 이렇게 룻을 축복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날개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너에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시어머니 나오미를 공경할 뿐 아니라 이방신을 버리고 하나님을 선택한 룻의 믿음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셨기에 보아스와의 만남을 예비하신 것입니다. 보아스는 천한 신분의 라합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보아스의 성품으로 미루어 볼 때,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했던 라합의 은혜가운데 자랐기 때문에 사람을 인종이나 배경으로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를 받아 본자 그리고 용서를 받아본 자만이 은혜와 진정한 용서를 나눌 줄 압니다. //기업무를 자로 번역된 고엘은 다시 찾아온다 라는 뜻입니다. 영어로 표현하자면 REDEEMER 즉 구원자란 의미입니다. 따라서 고엘제도는 인류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고자 십자가에 달라신 예수님의 대속사역을 예시하고 있으며, 보아스는 예수님의 모형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룻에게 보아스가 나타난 것은 룻 뿐만 아니라 나오미에게도 소망이요 구원자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상숭배와 불순종의 죄에 빠졌다가 회개하고 돌아온 나오미와 //믿음의 딸 룻을 위해 보아스를 예비해 놓으셨다는 사실을 믿으십니까? 시편37편3-4절은 다윗의 시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 거리로 삼을지어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너에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아멘!! 든든하고 배려심깊은 남자요/ 유력한 부자였던 보아스는 자신의 유력함으로 나오미와 룻을 힘이 자라는데 까지 도와주었습니다. 이렇게 선한 하나님의 사람 보아스가 자신의 이름의 뜻처럼 유력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4) 마지막 주제로 “진정한 믿음은 진정한 순종입니다.”
룻기4장13절입니다.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나은지라.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 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너에게 기업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룻이 보아스에게서 낳은 아이의 이름은 오벳입니다. 바로 다윗왕의 할아버지며 이새의 아버지입니다. 보아스의 어머니 라합과 아내인 모압여인 룻// 이 두 여인은 살아가며 자로 잰듯 손익계산을 따져 본다든지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삶을 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하나로 인생의 변곡점에서 하나님을 선택했던 믿음의 여인들이었습니다. 믿음은 선택이며 결단입니다. 룻의 믿음과 결단이 참 귀하고 본이 되는 것을 알 수 있는 성경구절을 나누고자 합니다. 1장16-17절 말씀입니다.”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눈에 보이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선택한 룻에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루어가시는 방법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합니다. 세상사람들은 명문집안에 잘 배우고 잘 살고 인물좋은 며느리를 얻으면 온 동네에 자랑하며 다닙니다.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지식이나 판단기준으로는 측량이 안되는 분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아스가 기업무를 자가 된 것은 구속자가 되는 것이고 나오미와 룻 두여인의 남은 인생을 책임질 뿐만 아니라 그들의 모든 빚은 내가 다 탕감해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엘리멜렉과 말론으로 대물림되는 빚투성이의 재산을 빚없이 온전하게 해서 아들 오벳의 이름으로 물려주는 것을 내가 책임지겠다는 약속입니다. 바로 대속자로 이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이 기업무를 자의 사역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믿음이라고 설교제목을 정하다 보니 보통 믿음보다 훨씬 뜨거운 믿음을 갖는 방법을 기대하신 분이 계시다면 그 기대를 내려 놓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길을 인도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구요 우리가 할 일은 결단하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가 보니 나의 이기심이었고 정작 하나님께서는 믿음안에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는지요? 오직 자신만을 바라보며 나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으로 믿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으로 포장된 이기심입니다.
내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이루실 약속을 믿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우리는 성경책을 종류별로 가지고 있고 통독도 여러번 했기에 전개되는 성경의 기승전결을 잘 알고 있지만 당시를 살았던 성경의 모든 인물들은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현실을 겪을 때 얼마나 두렵고 답답했겠습니까? 살면서 두렵고 암담한 것은 우리의 미래의 삶이 불확실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아브라함은 현재로 치면 은퇴하고도 남을 나이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셨을 때,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히브리서11장8절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 엘리멜렉이 나오미와 두 아들을 데리고 떠났을 때는 풍족한 재산을 소유했고, 모압에 대한 충분한 사전 정보,베들레헴에서 불과 100K떨어진 거리등 그다지 두려워할 조건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차이가 있다면 엘리멜렉에게는 하나님은 없었고 오직 자신만 있었으며, 아브라함에게는 자기는 없고 오직 하나님만 계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구체적으로 목적지가 어디며,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 등 보장된 확실한 약속을 주지도 않으셨습니다. 오로지 순종하는 믿음 하나만 가지고 미래의 불확실성을 극복하며 나갔다는 것입니다. 순종에는 두가지 종류의 순종이 있습니다. 나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숨겨진 이기적 순종과 아브라함과 같은 진정한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군사로, 선교사로 직임자로 부르실 때// 부르심에 순종하면 땅, 재산, 명예, 권력을 주시겠다고 조건을 걸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서 가난, 저주, 절망, 질병등으로 부터 우리를 완전히 해방하셨기에 가장 좋은 것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실 모든 준비가 다 되어 있으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예비하신 풍성한 축복을 누리기 위해선 단 한가지가 충족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믿음의 중심 즉 순종의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축복의 통로가 되길 원하느냐고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축복의 소나기를 맞는게 축복이 아니구요 여러분이 축복의 통로가 되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순종하고 난 뒤에 주어지는 대가가 비록 아무 것도 없을 지라도 순종하는 순종이 진정한 순종임을 말씀드립니다.
진정한 믿음에 관해 제가 정리해 드린 4주제를 다시한번 요약하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진정한 믿음은(첫째)고난 중에 기도하며 인내하는 것입니다.(둘째)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세째)하나님을 신뢰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네째) 진정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은혜로 비록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은 불확실한 현실이지만 늘 주님과 동행하시며 승리의 길을 걸어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축원드리며 오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