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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당 주인(時計堂主人)
주 요 섭
돌날 아침 때때저고리를 입히울 때, 아기는 『때때, 때때!』 중얼거리며 만족했었다. 그러나 그뒤 얼마 안되어 오줌에 젖은 바짓가랑이가 척척해 죽겠는데 기저귀 갈아채워 주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화가 치민 아기는 으아아 하고 악을 쓰며 자빠졌다.
그랬더니 누군가가 살그머니 안아 일으켜 주는데 무엇인지 산뜻한 것이 귓바퀴에 와 닿으면서, 곧 이어 짹깍짹깍 하는 이상스런 벌레 소리가 들려 왔다.
놀라기도 하고 무서워지기도 한 아이는 울음을 뚝 그치고 눈을 떴다. 누님이 안고, 웃으면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귓가에 쉬지 않고 들리는 짹깍 소리에 귀가 솔가운 그는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러자 누님은 그 차갑고 매끈매끈한 물건을 얼른 쳐들어 아기 눈앞에 뱅글뱅글 돌렸다. 방향이 달라진 짹깍 소리가 그 반들거리는 동그란 물건에서 나오는 것이 분명했다. 포동포동한 손을 내미는 아기는 그 짹깍거리는 동그란 물체를 붙잡으려고 했다.
잡히기만 하면 으레 입으로 가져 갈 것이다.
누님은 반들거리는 동그란 물건을 감췄다. 발버둥치기 시작하는 애기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언뜻 무엇이 손에 와 닿는다. 매끈매끈하다. 창선이는 그걸 입으로 가져갔다. 아직 이가 돋아나지 않은 윗잇몸이 딱딱하고 매끄러운 감촉을 감각했다. 숨어 내다보니 아랫니 한 개 뾰족한 끝에서는 대가닥 하는 소리가 났다. 입안에서도 짹깍 소리를 계속내는 그 물체가 그의 혀를 간지럽게 해주는 것이었다. 좋아하는 창선이는 『아아아』 하면서 몸을 흔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장난이야?"
하는 아버지의 성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는 동시에 손등에 털이 유달리 많이 돋은 커다란 손이 내려와 창선이에게서 시계를 빼앗았다.
창선이는 또 울기 시작했다.
"아니, 원, 장난감이 없어서 하필 시계를 준담."
하고 중얼거리는 아버지는 창선이를 안고 가겟방으로 나갔다. 창선이는 그냥 울고 있었다.
"오, 오, 우리 아기, 착한 아기…… 자, 시계 실컷 구경해라."
벽에 걸린 커단 괘종 앞에서 아버지는 창선이의 두 발을 모아쥐고 높이 치켜들었다.
희고, 넓적하고, 둥그런 판 위에 큰 거미발처럼 시껌한 두 개의 시계바늘이 방향을 달리해 벋어 있고, 그 아래 유리알 댄 어둑신한 가슴 속에서는 금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동그란 추가 쉴새없이 왔다갔다 움직이고 있었다. 그 가슴 속에 자기 얼굴이 어렁귀하게 반사되는 것을 창선이는 봤다. 그 속에 동무 하나가 나타난줄로 생각하는 그는― 두 팔을 허위적 거리면서 『따따따따』 부르면서 마주 바라다봤다.
아기를 안은 아버지는 가게 안을 한 바퀴 돌았다.
유리창문들과 출입문을 단 앞면만 제외하고 나머지 사면 벽에 빈틈없이 괘종들이 걸려 있었다. 크고 작은 갖가지 괘종, 여러 모양의 괘종들이 크고 작은 갖가지 추들이 제각기 흐느적흐느적, 하느적 하느적, 홀래흘래 분주히들 움직 이고 있었다.
가게 앞면에는 전체 유리로 짠 진열함이 있고 그 속에 조그만 회중시계와 손목시계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선반 위에도 여러 모양 작은 시계들, 금속 시계줄, 그리고 시계끈들이 규칙적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유리함 안에 놓여 있는 여러 모양의 시계들을 만져 보고 싶은 창선이는 손을 내밀었지만, 손은 매끈매끈하는 유리판 감촉을 느낄 뿐 시계가 잡히지 않았다. 『배배배배』 하면서 그는 유리판을 자꾸 쓸었다.
사방에서 여러 음계와 속도의 혼잡된 박자 합창이 들려 왔다. 덱걱덱걱, 사릉사릉, 잭깍잭깍, 털털털털, 찌릉찌릉―여러 가지 벌레들의 합창 소리처럼 들렸다.
『데에엥』하고 제일 큰 괘종이 점잖고 느리게 시간을 치기 시작하자 이 소리에 놀란 창선이는 아버지의 품에 머리를 박고 바르르 떨었다.
『스르릉 뗑, 스르릉 뗑』하고 천천히 치는 소리 속에 염치없고 방정맞게 『땡 땡 땡 땡』 급속도로 쳐버리고 마는 시계도 있었다.
이 숱한 시계들의 여러 음계의 조화와 대위와 혼란스런 헌화 속에 젖먹이 시절부터 자라온 창선이는 시계들과 친밀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밤에 잠들었다가 우연히 밤중에 깨어, 아까 낮에 복남이와 더불어 놀다가 그리 대수롭지도 않은 일로 싸우고는 서로 비쭉해서 종일 말도 않고 지내온 것이 싱거웠다고 생각될 때, 문득 옆방에서 부시럭거리는 시계 소리, 쉴새없이 소리 내는 시계 소리에 정신이 집중되곤 했다. 듣고 있노라면 시계 소리는 자꾸자꾸 자라온, 집안을 채워 버리는 것같이 생각되기도 했다. 덱걱덱걱 굵고 느린 놈, 재깍재깍 빠르고 또렷한 놈――오래오래 들으며 누워 있으면 그 소리들은 언뜻 수다한 종류의 곤충들, 즉 모기·파리·빈대·벼룩·바퀴·설설이·지네·개미·나비·메뚜기·벌―이런 여러 벌레들이 다 모여, 얼기설기 몰려 돌아가는 시계 치륜들 틈에 숨어 군악을 연주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하는 것이었다.
한 달에 시계 한 개씩 바꾸어 차고 다니는 특권을 혼자 향락하는 유창선이는 고등보통학교 동창들의 흠모와 질시를 받으면서 중둥교육을 마쳤다.
졸업과 동시 아버지를 도와 시계 수선공이 되었던 그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곧 시계당 주인이 되었다.
이래 이십 년을 하루같이 그는 시계와 함께 살아 왔다.
철없을 시절에는 시계라는 물건은 하나의 신비스런 장난감, 동무들에게의 자랑감밖에 별것 아니었으나, 시계당 주인이 된 날부터 그에게는 시계 수선과 매매가 그의 생계를 잇는 직업이 된 것이었다. 그는 자기 직업에 충실했을 뿐 아니라 취미까지 느꼈다. 시계들과 함께 먹고, 시계와 함께 자고, 시계를 사랑했다. 그 기기묘묘한 기계의 구조를 해부하고 연구하는 데 호기심도 느꼈고, 또 일종의 기술적인 자만심과 명예도 느끼게 되었다. 시계를 수선하고 애무하고, 깨끗이 닦아 주고, 언제나 잘 돌아가도록 손질해주고, 시계마다 제각기 시간을 꼭 맞추어 돌도록 조절해 주는 데 행복을 느껴 온 그였다. 이미 수만 개의 시계를 수선한 그였다.
소위 『대동아전쟁』이 거의 끝날 무렵 거의 날마다 날아오는 B29에 공포를 느껴 직장을 버리고 안전한 시골로 피해 가는 사람들이 꽤 많았으나, 창선이만은 부모가 물려준 유업인 동시에 자기가 사랑하는 시계들과 목숨을 같이할 결심으로 움쩍 않고 시계방을 지켜 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도 아끼고 자랑삼아 오던 시계들이 청천벽력을 맞는 운명이 놓이리라고는 꿈도 못 꾸며 사는 그였었다.
20세기 문명시대에 시계 구경을 못한 외국 군대가 있었던 것이다. 조선을 해방시켜 준 은인아라고 조선 사람 전체가 눈물 홀리며 환영해 준 외국 군대가 창선이의 시계방을 하루아침에 쑥밭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가 삼십여 년 가꾸어 온 시계방을 한 시간에 망쳐 놓은 것이었다.
시계방을 발견한 소련 군인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약탈하는 것이었다. 군인 하나하나가 손목시계 열 개씩을 두 팔에 차고 너무 만족하여 개선장군들처럼 거리를 활보하며, 가끔 시계를 귀에 대보고는 히죽버죽하고, 짹깍 소리를 멈춘 시계를 발견할 때에는 태엽 감아 줄 줄은 모르고, 길에 던지고 발로 밟아 으깨
버리는 것이었다.
길에 버림받고 외국 군인의 무지스런 군화에 밟혀 산산조각 난 시계들을 쓸어 모으는 창선이는 엉엉 울었다.
생옥수수를 속째 우적우적 씹어먹고, 날생선을 뜯어먹고, 호박을 생째로 먹으면서 시계를 밟으며 껙껙 소리 지르는 그들, 털이 부르르하고 우둔하게 생 긴 소련 군인들이 징그럽고 더럽고 밉고 무서웠다.
B29가 매일 오던 당시에도 이렇듯이 무섭지는 않았었다. 장기간 주둔할 목적으로 진주한 군대가 아니라 단순히 일본 군대 무장 해제를 목적으로 들어온 군대인만큼 설사 한 달밖에 더 머물을까? 하고 평양 시민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군 무장 해제가 끝이 났는지 아니 났는지 알 수 없고, 곧 철수하리라고 믿었던 소련군이 부지하세월 그냥 머물면서 갖은 악행을 다 감행하는 것이었다. 미친 듯이 목이 쉬도록 만세 불러 환영했었고, 조선인 전체가 몇 해 동안 입에 대보지 못한 쇠고기와 닭과 술을 실컷 대접 했는데도 거기 대한 감사는커녕 도리어 강도질로 보답하다니. 강도질은 또 약과―그저께 밤에는 아무개 네 갓 시집온 색시를¸ 어젯밤에는 꽃같은 처녀를 겁탈하지 않았는가. 또 소위 유지라는 인사가 소련군 장교들 특별 환영연을 한다고 집으로 초대했는데 술 치는 여자로 기생올 고용했더라면 좀 덜 봉변을 할 것을, 자기 귀여운 딸을 시켜 술을 치게 하다가, 바로 그녀의 부모 눈앞에서 딸이 강간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아니 이 육십 넘은 할머니들까지 강간올 당했다.
참다못한 주민은 자위책으로 골목마다 나무판자로 담을 높이 쌓고, 밤마다 골목길 문 쇠를 잠가 아무도 얼씬하지 못하도록 해 놨건만, 둔하기 곰 같은 러스케 군인들이 색시 사냥에 나설 때에는 그 높은 담을 원승이 재주 이상 재주로 훌훌 넘어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래 다음에는 집집마다 잠자리 머리맡에 놋대야와 망치를 놓고 자다가 한 골목 안에 러스케가 침입하면 서로 놋대야를 두드려 여자들을 피신시켰다.
거의 빈 시계가게는 덧문까지 닫아 폐문해 버리고 안방에 들어 앉아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창선이는 어느 날 저녁 거리에 나섰다. 아랫 거리에 시계 점포를 가진 장씨를 만나보고 싶어서였다. 장씨 역시 가게 폐점해 버리고 뒷문으로 통하는 것이었다.
"참 잘 왔소. 심란해서 혼자 한잔하던 참인데 ―자 한잔 듭시다."
하며 반갑게 맞아주는 것이었다.
그들 둘이서는 설왕설래, 과부 설움 과부가 안다고, 신세타령 주고받으며 취토록 마셨다.
밤이 꽤 늦었다. 밖에 나서니 몸이 오싹했다. 밤이 늦으면 남자에게도 통행이 위험했다. 소련 군인들 대부분이 무장 강도들이기 때문이었다. 간이 콩알만해 가지고 뛰다시피 걸었다. 자기 집 뒷문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섰다.
꼭 닫혀 있어야 할 쪽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놀랐다. 머리끝이 쭈뼛 하고 전신에 소름이 끼쳤다.
허둥지둥 좁은 뜰안에 들어섰다. 전등이 환하게 켜진 안방 안에서 연출되고 있는 악몽 같은 광경! 『헉!』 소리를 지르고 그는 뜰에 펄썩 주저앉았다. 안방 안의 전개되고 있는 광경의 인식도가 너무 높아졌는지, 인식의 한계를 넘어섰는지 악몽을 꾸는 것 같기도 하고, 추악한 조각(彫刻)의 파편들이 머리에 남아
있을 뿐―전율, 증오, 구역질 ―산산이 풀어헤친 아내의 머리털, 멧돼지보다도 더 육중해 보이는 군복 입은 사나이의 몸부림치는 광경, 기절했는지 혹은 아주 죽어 버렸는지 미동도 않는 아내의 몸, 괴성을 연발하던 러시아 군인도 복상사를 했는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온 몸이 노곤해진 창선이도 움직이지 못하고 멍하니 마당에 앉아 있었다.
얼마 뒤 긴 한숨을 쉬면서 일어난 소련 군인은 흥흥거리면서 뜰 아래로 내려섰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창선이는 땅에 납작 엎드렸다. 뚜벅뚜벅 군화 소리가 차차 멀어지는 것을 인식하면서 그는 그냥 엎드려 있었다. 군화 소리가 안 들리게 되자 자기 가슴의 맥박이 땅 위에 팔락팔락 뛰노는 것을 느꼈다.
그는 가만히 일어섰다.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쪽대문께까지 겨우 걸어가 쪽대문을 붙드니 팔이 와들와들 떨렸다. 겨우 쪽대문을 닫았으나 돌쩌귀가 부서졌는지 바로 서질 못했다.
방문까지 왔다.
짜개진 옷장문.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옷가지들. 검은 머리 흐트리고, 적삼이 찢기고 아랫도리 내놓은 채 그린 듯이 누워있는 아내의 모습. 기절 했는지 죽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거듭 생각하면서도 차마 방안으로 들어설 수가 없었다. 멍하니 서 있는 그의 마음에는 뒤늦게나마 분노와 적개심과 연민의 정이 솟아올랐다. 그 순간 그의 머리에는 아내와 처음 만나던 날의 회상, 이십여 년 같이 살아오는 동안 겪어 온 행복과 불행, 파란곡절, 그리고 일본이 망하기 일 년 전에 일본 군대에게 끌려간 뒤 여태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을 모르는 외아들 등의 얼굴이 환둥처럼 지나갔다. 이런 생각에 잠긴 그는 눈을 감고 서 있는 것이었다.
입을 틀어막고 흐느껴 우는 아내의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그는 눈을 떴다. 몸을 도사리고, 치맛자락으로 입을 막고, 어깨를 들먹거리는 아내의 모습. 언뜻 그의 눈에서도 뜨거운 눈물이 샘솟았다.
아 ! 연약한 조선의 아내여, 딸이여, 어머니여, 할머니여! 아, 비겁한 조선의 남편이여, 아들이여, 아버지여, 할아버지여!
울 줄밖에 모르는 이 민족.
후닥닥 일어선 아내는 샛문을 통해 부엌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와들와들 떨리는 두 다리를 가까스로 달래면서 부엌문까지 간 창선이는 문을 잡아당겼다. 안으로 고리가 잠겼는지 문이 열리지 않았다.
"여보."
그는 아내를 부르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황급히 문을 몇 차례 낚아채 봤지만 열리지 않는 것이었다. 겁을 집어먹은 그는 안방으로 들어가 샛문을 밀어 보았다. 열리지 않았다. 발길로 차서 겨우 열었다.
아내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것이었다. 부엌 대들보에 줄을 걸고 목을 맨 것이었다.
"헉, 헉, 헉." 하며 급히 부엌으로 뛰어내려간 그는 아내의 몸을 어깨에 메고 목 맨 줄을 풀었다.
아내의 머리를 깎아 주고는, 징용 나가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아직 돌아오지 않는 아들의 옷을 입은 창선이는 고향을 등지고 남쪽을 향해 길을 떠났다. 목적지는 서울 ― 서울에는 여러 해 전부터 외삼촌이 살고 있는 것이었다.
낮에는 숨고 밤에만 걸어 보름 만에 서울에 도착한 그가 서울시내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서울 지리에 익숙지 못한 그였다. 몇 해 전까지는 시계 도매상한테 시계 사가려고 몇 차례 서울에 와 본 일이 있었을 뿐 그것은 지나간 사 년,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는 시계 사가는 고객수가 대폭 줄었기 때문에 서울까지 올 필요가 없게 되었었다. 그런데다 몇 해 전부터 미국 공군 폭격 대비책 이라는 명목으로 군데군데 주택들을 강제로 많이 헐어버렸기 때문에 삼촌댁 찾는 데 무척 애를 썼다. 찾아다니며 살펴보니, 비맞아 추하게 된 현수막들과 솔잎이 노랗게 마른 아치들이 거리거리에 그냥 있고 미국 군대 진주를 환영 경축하는 기분이 남아 있는 것을 역력히 볼 수 있었다. 38선 이남 미군 진주가 이북 소련군 진주보다 한 달이나 늦어진 탓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가끔 보이는 미국 군인들은 모두 너무나 깨끗하여 더러운 소련군과는 비교도 안 될 뿐 아니라 거리에서 노략질하는 꼴도 눈에 안 띄고 더구나 시계방들이 버젓이 문 열고 영업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을 비비고 자세히 살펴보니 노략질당한 흔적이 없고 진열이 잘 되어있었으며 어느새 영문으로 쓴 간판이 다 달려 있는 것이었다.
『그럼 미군은 시계를 돈 주고 사 가지는 모양이로구먼.』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몰려다니는 군인떼를 유심히 봐도 시계 열 개씩 팔에 차고 다니는 자는 하나도 없고, 대다수가 카메라 한 개씩을 메고 다니는 것이었다.
『아하, 카메라 장사들 전부 망했겠군.』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그르다는 걸 곧 발견했다. 미군이 메고 다니는 카메라는 그들이 가지고 온 것이라는 설명을 들은 것이었다.
『아하, 카메라 메고 전쟁터에 나가는 미국 군인. ―그래도 승전을 했으니.』
그는 머리를 저었다.
서울서 삼촌 댁에 기숙하며 며칠간 무위도식하며 거리만 쏘다녔다. 거리 거리에서 이북 사투리를 많이 들었다. 자유 찾아 월남한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 매일 수백 수천 명씩 계속 38선을 넘어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서울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이북 사람들뿐도 아니었다. 각 지방에서 자칭 애국자들이 꾸역꾸역 서울로 모여들고 있다는 소문을 그는 들었다.
"왜, 그 한때 계룡산, 정읍, 아니 신도안에 상투쟁이들 모여들었던 것처럼 벼슬 탐내는 놈들이 올라오고 있다더라."
하고 삼촌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좌익측에서는 어느새 『인민공화국 정부』를 조직해 놨는데, 우익측에서는 『건국 준비위원회』 만 만들어 놓고는 밤낮 몰려다니면서 만세나 부르고 시속 40마일 달리는 트력에서 거리를 향해 뿌리는 선전 삐라가 공중에 나부끼는 것이었다. 이 민족 유사 이래 최대 경사인만큼 흥분이 쉬 가라앉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흥분만으로는 독립 국가가 세워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시계 수리공인 창선이에게도 엄습해 오는 것이었다.
객지에 와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으니 본의는 아니지만 번둥번둥 놀 수밖에 없었다. 놀 바에는 애국단체 회합에 참석해 보라는 삼촌의 지시에 따라 몇 군데 가 보았으나 모두가 다 조리에 맞지 않는 공담 공론만으로 핏대를 올리는데, 독립 국가건설 운동인지, 아이들 장난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아이들 장난으로 끝나도 오히려 좋겠는데, 날이 갈수록 공담 공론이 욕설, 비방, 모략중상으로 타락되었다. 『죽일놈』 이라는 낱말이 일상 용어가 되었고, 두 사람이 모여도 정당, 세 사람이 모여도 정당, 정당들 사태가 일어났다. 한데 정당이면 정강 정책이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건 제정할 생각도 않고, 남들을 가리켜 『민족반역자』니, 『반동분자』 니, 『친일파』 니, 『친미파』니, 서로 욕지거리만 퍼붓는 것이었다.
삼촌이 관계하고 있는 정당엘 몇 차례 따라가 봤다. 당원이라고는 불과 수백 명인데, 절반 이상이 모두 크고 작은 감투를 이미 쓰고 있는데두 불구하고, 정당 활동보다도 감투 쟁탈전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무실 이 모퉁이 저 모퉁이에서 쑥덕공론하고 있는 축들 꼴을 눈여겨보면 시골서 논밭 판 돈푼이나 가지고, 감투 사러 올라온 자들…… 대원군과 민비가 재생 하여 정당을 차려놨는지…….
이 정당에서 상당히 높은 감투를 쓰고, 말도 제일 많이 하고, 분주하기도 제일 분주해 보이고, 남들로부터 절도 제일 많이 받는 영감들…… 그들은 거의 다 해방 전에는 남들보다 앞장서서 열렬한 『황국 신민』이 되었고, 학병 권유 연설을 하며 전국을 돌아다니던 자들이 아니면, 부의원 선거 때마다 격에 맞지 않는 서양식 대례복을 입고 입후보했노라고 떠들고 다니며, 당선만 시켜 주면 『황국에 진충 보국』 하겠노라고 맹서한 자들이었다.
그리고 또 재정 위원장——1919년 3월 1일 독립 만세 운동 직후부터 전 조선반도를 편람하면서 부인들 또는 기생들의 금은 비녀, 가락지 등을 거두고, 부자들의 돈을 강탈해 가지고는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는 근처에도 안 가고 압록강 건너 안동현 근처에 수년간 숨어 있다가 강을 도로 건너와서 토지를 사 벼락 대지주가 된 작자들이었다.
창선이는 우울했다. 비관이었다.
일본이 항복하기 몇 달 전 일본 정부가 강제로 집들을 헐어버린 빈터에는 넝마전이 벌어졌다. 모든 물자가 통제되어 배급품으로만 목숨을 이어야 했고, 소위 『암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다가 경제경찰에게 들키면 형벌을 받는 전쟁 때 일본인들이 몰래 감추어 두었던 물자들이었다. 8월 15일 오후부터 일본인들이 재산 약탈은 약과요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게 되자, 싼값에 내다팔고는 집을 비우고 집단수용소로 들어가 살게 되어 그 숱한 물자가 거리거리 노점에 진열되게 된 것이었다.
어깨를 서로 비킬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들끓으면서 눈이 벌개 돌아가는 것이었다. 창선이가 볼 때 몸서리 쳐질 정도로 사람사람들 눈에는 탐욕과 사향과 교활이 넘쳐 흐르고 있었다.
좀더 명랑하고 희망이 보이는 광경을 발견하고 싶은 창선이는 온 장안 거리거리 다 헤매 봤으나 발만 부르틀 따름 어디서고 광명을 볼 수는 없었다.
"요오, 야나기무라상."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렇다. 유창선이의 창씨 개명이 야나기무라였던만큼 그의 호적에 아직 그 이름대로 남아 있는 것이었다.』
"야, 나까야마상. 웬일이오? 언제 월남했소?"
"바루 메칠 전에……. 노형이 갑자기 피양서 자취를 감춘 뒤 대강 소문은 들었지만…… 아, 그거 참 뭐라구……."
"무어라니요…… 그저 미친개한테 물렸거니 하구 체녕념고 있디오."
"그런데 이남 땅에 진주한 미군은 유부녀 겁탈은 아니한 모양이드군요."
"암, 그렇다뿐이요, 노략질두 안해요. 아니 도리어 저희들이 가지고 온 물자를 어찌두 해피 쓰구 내버리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지, 미군 부대 쓰레기통 뒤지는데 권리금이 다 붙었다오…… 그런데 왜 월남했소, 당신은?"
"왜 월남하다니! 그 러스케놈들이 눈이 비뚤어데서 내가 가진 시계포만 못 보구 지나갔간쉔가? 이젠 괜찮겠디 하구 문을 열문 여는 대로 손해란 말요. 그런데 풍문에 들으니 서울은 자유 텐디요, 미군은 노략질 않는다구 하길래 얼마 남지 않은 물건 싸가지구 올라왔디요. 와보니 참말 던국이구료. 허어, 그런데 참 잘 만났소. 당신과 나와 던생 연분이 있나 부웨다."
그들 둘은 냉면 집으로 들어가 마주앉았다.
그들보다 먼저 와 앉아 있는 두 청년은 혀가 돌도록 취해 있었다 ― 점심 시간 조금 지난 오후 두 시인데. 대낮에도, 그것도 몇 잔이고 맘대로 자유로 마실 수 있는 시절이 온 것은 유쾌한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대낮에 대취한 두 청년은 방약무인의 태도로 횡설수설 지껄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구말구요. 기분 운동만으로는 안 되지요. 소위 지도자라는 자들도 이미 지도자 자격을 잃었지요."
"동감입니다, 동감. 절대적 동감. 과거엔 어찌 되었건 늙은이들은 다들 물러나고 우리 청년들이 지도권을 쥐어야만 되지요."
"그렇구말구. 우리 청년들의 어깨가 무거워졌어요. 그 후루쿠사이 (늙어 냄새나는) 한 노인들 전적으로 다메데스요(글러먹 었어요)."
술을 잔으로 마시는 것이 아니라 컵으로 들이켜는 청년들이었다. 한 청년의 얼굴은 점점 더 빨개가고 다른 한 청년의 얼굴은 점점 더 창백해지는 것이었다.
"우리 청년들의 활약 시대가 왔지요. 자 보셔요, 우리 둘의 예로만 보드라도 오늘 첨 만났지만 이렇게 동지가 된 기분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렇구말구, 동지, 자 악수!"
"무엇보다도 우선 농촌으로 가야지요. 농민 계몽이 시급한 문제니까요…… 아직 우리 나라 민도가 너무 낮아 놔서……."
"그건 우리 청년들 손에 달렸지요."
"그러믄요. 그리구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되지요, 안 돼."
"옳은 말씀. 하, 그런데 일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돈…… 운동 자금이 마련돼 야지요. "
"그렇지요. 동감입니다. 돈 없이는 아무 일도 안 되니까요."
"그렇구말구. 그러니까 돈 벌기 위해서는 아무런 짓을 해도 괜찮지. 돈을 벌어 놓고야 건국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 왜놈들이 손 번쩍 들고 모두 다 제 나라로 쫓겨갈 판이니 돈 벌 기회는 얼마든지 있지."
"암, 천재일우의 기회지. 그저 닥치는 대로 아무런 짓이라도 해서 돈을 벌 어야지."
"참, 훌륭한 말씀…… 우리 의기가 상통하는구료. 그런데 이 일은 서로 비밀을 지키기로 맹세해야 돼."
냉면을 단숨에 먹어 버린 창선이는 같이 간 친구를 독촉하여 자리를 차고 일어나 나왔다. 더 앉아 있다가는 그 청년들을 향해 싸움을 걸게 될지도 모르는 자기의 울분을 억누르면서.
냉면집을 나온 그들 둘은 다방으로 들어갔다…… 해방 직후부터 비온 뒤 대순 돋아나오듯 번성하는 다방으로.
한 시간 뒤 박배양이와 작별하고 집으로 돌아온 유창선이는 저녁밥이 맛이 있는지 없는지 인식 못하도록 깊은 생각에 잠겨먹고, 그날 밤새도록 잠을 못 잤다. 냉면집에서 엿들은 두 청년의 대화와 다방에서 들은 박배양의 은근한 목소리가 그의 기억에서 사라지길 거절하기 때문이었다. 그들 세 사람의 목소리가 유성기 소리판에 녹음되어 축음기 위에서 밤새도록 돌고 또 도는 듯이 같은 말을 되풀이해 오고 있는 것이었다.
"왜놈들이 손 번쩍 들고 모두 제 나라로 쫓겨갈 판이니 돈 벌 기회는 얼마든지 있지…… 그저 닥치는 대로 아무런 짓이라도 해서 돈은 벌어야지……."
그리고 다방에서 머리 맞대고 속삭이던 배양이의 은근한 계획!
서울로 올라오는 즉시 배양이는 단골 거래해 오던 일본인 시계포 주인 야마다를 찾아가 봤노라는 얘기였다. 그랬더니 야마다가 분에 넘치도록 무척 반가워하면서 당장 요리집으로 끌고 가서 술을 사주며 어떤 제안을 하더라는 것 이었다.
배양이가 한 시간 동안 얘기한 골자는 이러했다.
야마다의 시계포가 미군의 약탈을 받은 일은 한번도 없었지만, 조선 사람 강도가 너무 많아져서 발을 펴고 잘 수가 없는데 며칠 전에 시계보다도 현금 만 원을 강도한테 강탈당했다고. 그래 그 점포 위층에서는 하루도 더 살기 싫고, 서울 치안이 확보될 때까지는 고향인 일본으로 가 살다가 질서가 바로잡히면 도로 오겠는데, 그 정돈기가 일 년이 걸릴지 이태가 걸릴지 모르는 만큼 그동안 위탁받아 점포를 지켜 주면 고맙겠다는 요청이더라고.
"그래 내가 사방 알아봤더니 눈치 빠르고 돈냥이나 가진 일본인들은 상덤과 주택을 우리 되선인에게 임시 빌려 준다는 임대차 계약을 맺고는 당분간 일본인 집단 수용소에 들어가 살며 미군 군정청에 귀국 신청을 낸대요. 그래 귀국할 차례가 오면 웃옷에 개패같은 번호표를 달고 집단으로 용산역까지 걸어가 미군이 제공하는 무료 특별 열차 타고 부산으로 간다고 말들을 합디다. 그래 야마다를 다시 만났드니 그의 조건이 지금 당장 수용소에서 기거할 비용과 일본땅에 내려서 고향까지 갈 노비조로 현금 이만원 만 돌려주면 나머지 홍정은 일 년이나 이태 후 다시 와서 끝맺자는 거거덩요. 조건이 우리에게 이롭지 않쉔까? 터놓구 니야기하자문 나 홈차 그 가겔 차지하겠지만 내겐 지금 돈이 만 원밖에 없어요. 그래서……."
"가겔 송두리 채 맬기구 간다는 수작인가요?"
"그러믄요. 그자식 수작이 세상에 믿을 사람 없구 나만 신용하구 상덥을 맬길 수 있다는 거야요. 우선 이만 원만 선금을 받고 후사는 두 나라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자기가 도루 올 때까지 보류해 두자는 거예요."
창선이는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었다.
며칠 뒤. 먹물도 채 안 마른 『박배양』, 『유창선』 두 사람의 문패가 커단 시계포 문설주에 나란히 걸렸다. 곱게 뜯어 낸 『야마다』 의 문패는 배양과 창선 둘이 함께 가지고 일본인 합숙소로 가서 야마다에게 주었다.
그로부터 두 주일 뒤 야마다의 가족은 각기 가슴에 명찰을 달고, 륙색·손가방 등 조그만 휴대품만 가지고 용산역까지 걸어갔다. 그의 가족을 역까지 배웅하고 돌아온 유창선, 박배양 두 사람은 즉시 시계방 정리에 착수했다.
해방이란 참 좋은 것이었다. 어깨춤이 저절로 나는 것이었다. 이런 횡재…….
시계포 재고품 정리를 끝내고 보니 두 주일 전 야마다 입회 아래 꾸민 인보이스에 나타난 개수보다 실제 재고품은 상당히 축나는 것이었다. 계약 체결한 후 그날 밤 야마다가 상당량의 시계를 꺼내 어디 딴 데 맡겼던지 감췄던지 한 게 분명 했다.
"역시 섬 놈 근성을 발휘했구먼."
하고 둘은 욕했다.
그때로부터 일 년 뒤 미군 분정 청 물자영단에서는 참대 고리짝 수만 개를 팔았다. 물건이 가득 든 고리짝인데 그 물건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그냥 한 개 오백 원 균일로 선착순으로 내파는 것이었다. 휴대품만 가지고 귀국한 일본인들이 미군 군정청에 맡기고 떠나간 재물이었다.
커다란 고리짝들까지 실어 보낼 차량이 없으니 맡기고 가면 창고에 보관해 두었다가 기회 보아 이 다음에 고향 주소로 우송해 주겠노라는 군정청 포고를 믿고 맡기고 간 물건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서울 현지에서 싸구려로 팔아 버리는 것이었다.
속에 무엇 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무턱 대고 도박하는 기분으로 고리짝 한 개 오백 원씩 주고 사다가, 결박지은 노끈 자르고 뚜껑 열어 보다가 너무 좋아서 춤추는 사람들이 많았고 기대에 어긋나 얼굴을 찡그리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오백 원짜리 고리짝 속 이불 갈피에 싸인 지폐 십만 원이 튀어나오거나 혹은 수백 개의 시계가 나와서 기절할 뻔한 행운아들도 더러 있어서 장사꾼들은 너도나도 고리짝 불하 맡는 일에 머리 싸매고 덤벼들었다. 그 통에 그 불하권을 맡은 미군 장교들은 공술도 참 많이 마셨고, 조선 갈보의 몸맛도 실컷 맛보았다.
유창선 박배양 둘이서 시계 점포 정리를 끝내자 사방 벽에 걸린 괘종들이 열 시를 치기 시작했다. 의자등에 등을 기대로 편히 앉아 『럭키스트라이크』라는 미국 담배 한 꼬치를 피워물고 피로를 푸는 창선이의 가슴에 행복감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렸을 적부터 옆방에는 밤새 벌레 합창대가 모여 합창하고 있거니 하고 생각하면서 각종 시계 돌아가는 소리에 황홀하고 했었던 행복감을 새삼 다시 느끼는 그는 만족의 웃음을 지었다. 『럭키스트라이크』 담배를 계속 피우면서 그는 지나간 한 달 동안 자기에게 생긴 이상스런 곡절을 되새기고 있었다. 건국 운동이라는 아름다운 방패를 내걸고, 협잡과 중상모략, 암살, 주먹다짐, 욕지거리만이 횡행하는 이 사회에서 자기만은 그래도 정직하게 (고지식하다는 평을 받을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평생 가지고 있었던 직업에 다시 안착되어 안도감을 느낄 수 있게 된데 기쁨과 자긍을 느끼는 것이었다.
담배 꽁초를 재떨이에 비벼 끈 그는 일어섰다. 시렁에 세워둔 일기책을 집어 내리어 책상 위에 펴놓고 만년필을 손에 들었다. 그는 쓰기 시 작했다.
〈아버지의 유업이었고 내 평생 직업이었던 시계당을 약탈당하고 아내는 씻을 수 없는 굴욕을 당하게 만들어 놓고 난 나는 한 달 동안 낙망했었다. 그러나 오늘 다시 이 점포 안에 앉아 생각에 잠겨 봤다. 시국의 추이는 인간의 힘으론 좌우할 수 없고 오직 운명이 세상 만사를 지배한다는 신념이 생긴다. 내 평생 내 손으로 수리한 시계가 무려 수만 개에 달하려니와 이렇게 오늘 밤 이 시계점을 둘러보니 시계라는 기계는 우주의 법칙을 상징하는 정묘 기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시계가 잠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규칙적으로 이어나가는 시간은 일정한 궤도가 있어 거기에는 곁길이 없고 지름길도 없이, 오직 한 초 한 초 정확하게 꼬박 꼬박 차서대로 해결지어 나가는 것처럼 우주의 모든 문제도 시계와 같은 방법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닐까? 휴식이 있을 수 없고, 길고 짧음도 없이, 불규칙이 없고 탈선도 없는 절대적인 앞으로 앞으로 전진 !
시계가 가진 치륜에 정확하게 콕콕 박히는 한 초 한 초가 우주의 진보적 역사 노선에 한 점 한 점 진척을 그어나가는 것이다.
시계의 참가치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정확성을 지리적 조건과 현실에 충실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일정한 위도선과 경도선의 일정한 고정된 노선을 밟아 나가는 시계라야 시계다운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정확한 노선올 밟고 있는 것을 푼수없이 뻐기거나 그 반대로 각박한 현실을 초월한답시는 로맨티시즘에 흐를 때 혹은 지정된 노선으로부터 탈선할 때 그 시계는 쓸모없는 폐물이 된다는 진리를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깨달았다.
괘종이건, 회중시계건, 좌종이건, 손목시계건, 크건, 작건, 둥글건, 네모났건, 금을 입혔건, 은을 입혔건, 니켈을 입혔건 불관하고 시계란 각자가 맡은 노선에서 한 치도 한 초라도 벗어나면 그 순간 그 시계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금속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각자에게 주어지고 한정돼 있는 노선을 거부하거나 딴 방향 혹은 딴 속력으로 달리는 시계, 즉 시간 못 지키는 시계는 한 개의 장식품이 될는지는 모르나 자기 사명을 수행하는 서계는 아니다. 외양이 제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고 내부 장치가 제 아무리 정묘한 시계라 할지라도 자기에게 지정된 시간 노선을 똑바로 맞추지 못할 때 시계로서의 가치는 소멸되는 것이다.
지정되어 있는 선로 위에서 남보다 앞서 가도 소용없고, 남보다 뒤서 가도 소용없는 것이 시계다. 독자적인 독립성, 자발적인 자유 행동은 용인받지 못하는 것이 시계다. 지정된 지리적 위도선 위에서 영원토록 정확한 시간을 지키는 것이 시계의 임무다.
나의 결론은 이렇다. 조선 땅 서울에서 시간이 바른 시계 옳은 시계, 유용한 시계 노릇을 하려면 워싱턴 시간에 맞추어 놔도 잘못이요, 모스크바 시간에 맞추어 놔도 잘못이다.
서울 시간은 오랜간만에 본 노선에 올라섰다. 앞으로 서울의 시계는 영원토록 서울 시간에 지켜나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다. 서울 시각 외딴 곳 시계를 발맞추어 보려고 하는 시계는 시계의 반역자다. 소용없는 존재다.
지금 서울 시간은 밤 열 한 시 사십 칠 분 칠 초이다.〉
〈1947년 7〉
2016년 11월 22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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