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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불빛 하나가 한 가정 전력 사용량
유미호 (기독교환경운동연대 정책실장)
깜깜한 밤이면 반짝이는 것들이 그립다. 밤하늘을 수놓는 고요한 별빛과 달빛이. 하지만 도시의 밤하늘은 온통 가로등과 간판의 불빛에 어지럽기만 하다. 도시 어디서도 어두울 권리를 제대로 누리는 밤하늘은 없다.
도시 밤하늘에선 교회들도 한몫한다. 붉은 십자가 불빛을 찾는 건 그다지 힘든 일도 아니다. 어둠 속에서 교회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오직 십자가 불빛뿐인 양 ‘더 크고 더 밝게’ 하기 바쁘다. 은은하면서도 품격 있는 불빛은 어디에도 없다.
교회 십자가가 소비하는 전기료가 얼마나 된다고 호들갑이냐고 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십자가가 소비하는 전력량이 만만치 않다. 2m 길이에 1.5m의 양 날개로 된 네온 십자가의 경우 시간당 평균 1.5kWh를 소비하니, 하루 8-10시간을 켜놓으면 12-15kWh요, 한 달이면 최소 300kWh(127kg의 CO2 배출)다.
이는 한 가정이 보통 한 달 동안 사용하는 전력량이다.
하지만, 전국의 교회 수는 약 6만 개나 되며, 거의 네온으로 십자가 불을 켜는데, 이로 인해 1년에 작게 잡아도 9만 톤(127kg/월*12개월*6만 곳 = 91,440,000kg)의 CO2가 나온다. 해마다 이만큼씩 우리는 생명의 주인이신 주님의 십자가를 부끄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우들이 지구 절멸의 위기를 외면한 채 여전히 자기 욕심에만 눈멀고 귀먹어 있어도 아랑곳없을 수밖에.
에너지 고갈과 기후 붕괴,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오염, 사막화와 종의 멸종 등으로, 창조의 동산 지구가 멸절의 위협 아래 놓여 있는 것을 생각한다면, ‘믿는 이는 물론이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 삶의 지표로 제시되는’ 십자가라고 해서 그냥 두고 볼 수만도 없는 일이다. 오히려 교회당 지붕 꼭대기 ‘첨탑 위에 있는 십자가’이니 더욱 우리의 부끄러움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할 일이다.
한국인 1인당 1년간 소비하는 전력량은 작년 기준으로 9,493kWh나 된다. 이미 5년 전에 일본, 독일, 영국 등의 선진국보다 많은 양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었는데, 그보다도 30%나 더 늘어났다. 그리고 욕심의 끝이 없다고 본 정부는 2030년이면 13,510kWh으로 늘 것이라며 원전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원전연료인 우라늄의 경우 2030년이면 2000년보다 20배나 가격이 뛰고 가채연한도 2040년부터 급강하하여 2070년이면 사라질 것이라는 추측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친환경 십자가’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최근 들어 교회들이 만물의 화해자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기후붕괴의 현실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켜려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와 더불어 예장(통합) 총회 환경보전위원회는 지난해 말부터 이 일에 관심을 두고 캠페인을 하고 있으며, 조만간 ‘친환경 십자가’ 워크숍도 열 계획이다.
‘친환경 십자가’를 세우는 꿈은 그다지 어려운 것도 아니다. 우선은 네온 십자가 대신 그의 10%도 안 되는 전력으로 불을 켜는 LED조명 십자가로 교체할 생각이다. 그리고 종탑 위 십자가 불을 밝히는 시스템을 한전 계통과 아예 분리해서 태양광전지판과 풍력터빈을 연결, 직접 생산한 전기로 불을 밝힐 생각이다. 낮 동안 하느님이 모든 생명에게 골고루 내려주시는 햇빛과 매순간 바람으로 생산한 전기로 밤하늘에 십자가 불빛을 밝혀야 하니 축전지와 인버터는 필수다.
그리고 하늘에서 오는 은혜의 빛에, 비록 적은 양일지라도 교우 한 사람 한 사람의 수고를 더한다는 차원에서 자전거발전기도 연결할 생각이다. 만약 자전거발전기에 계측기를 달 수 있다면, 개인 혹은 교우 전체가 발전한 양을 일러주는 방식으로 부추겨진 욕망을 살며시 내려놓고 하느님과 이웃, 신음하는 자연 앞에서 당당해지는 연습을 할 수 있게 도울 수도 있다.
이미 몇몇 교회들이 이러한 실천을 향한 걸음을 내딛고 있다. 그러기에 꿈을 꾼다. 우리가 자연에게 준 상처가 치유되는 꿈이다. 꿈꾸는 것보다 좋은 것은 꿈꾸는 대로 사는 것이라고 했으니, 밤하늘 십자가 불을 밝히려거든, 하늘의 은혜와 우리의 수고가 만나는 그런 십자가의 불을 밝히자고 청해본다.
그러면 줄어든 전력량만큼 온실가스는 물론 방사능의 위험도 줄 것이고, 위험을 부추기는 발전소도 추가로 짓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면 신음하는 피조물들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다.
하늘의 은혜와 우리의 수고가 만나서 밝히는 밤하늘 십자가. 이와 같은 불빛이라면, 우리의 교회가 기후 붕괴와 방사능의 위협에 크게 신음하고 있는 지구 앞에서 조금은 당당하게 설 수 있겠다. 아니 이 정도라야 작금의 풍요와 편리에 흠뻑 젖어있는 세상을 온전히 밝힐 수 있으리라.
밤하늘을 수놓는 수많은 십자가들이 크고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을 온전히 드러내는 우리의 진정한 자랑거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