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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비판에 대한 변증(2) : 실학과 대대(對待)의 논리
글쓴이 박수밀 / 등록일 2024-09-06
‘실학이라는 말이 그 본의에서는 유학의 본령에 충실한 학풍’(천관우)이라는 언급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 후기의 실학이란 명칭은 유학에서의 실학 개념을 내포(內包)한 까닭에 실학을 학술 개념어로 쓰는 것이 정당한지에 대한 비판을 받아 왔다. 실학이 비판받은 또 하나의 지점은 실학의 근대적 성격과 관련되었다.
초기의 실학 연구자들은 실학에 근대와 민족을 투영함으로써, 실학에서 이전 전통과의 단절, 곧 탈 중세와 탈 성리학적 성격을 강조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서구의 근대성에 대한 반성 및 세계화의 분위기와 맞물려 실학의 근대 지향성은 비판을 받기 시작했으며 실학이 성리학의 자장 안에 있다는 견해에 더욱 힘이 실리면서 실학은 더욱 거센 논란을 겪게 되었다.
실학의 근대성을 곧바로 탈 중세와 반주자학적 성격으로 연결하거나 실학은 유교적 세계관을 넘어서지 못했으므로 근대성을 지니지 않았다고 여기는 태도엔 대립물을 이분법적 모순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전제되어 있다. 서로 대립하는 관계를 양립 불가능과 단절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동양 사상은 대대(對待)의 논리를 지향
하지만 실학과 성리학, 실학에서의 중세와 근대성 관계는 이분법적 모순이 아닌 동양의 대대(對待) 논리로 이해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최영진 선생은 『주역(周易)』에서 음(陰)과 양(陽)은 서로 대립하면서도 상호 의존하고 감응한다고 하면서 이 논리가 대대(對待)라고 말한다. 대대(對待)는 마주하며 기다린다는 뜻이다. 대(對)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대립물이 맞서고 있는 것이고 대(待)는 둘이 상보적 관계에 있는 것이다.
대대의 관계는 서로 반대되고 모순되는 것이 서로 의존하면서 함께 발전하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의 관계라 한다. 상반된 두 요소는 서로 대립하면서도 서로를 필요로 하며, 서로 부정하지 않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간다. 대대적 관계에서는 대립을 증오와 투쟁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조화로 해소한다. 대립물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상호 성취의 관계로 본다.
유교와 도교 사상 등 동양의 전통 사상은 대대(對待)의 논리를 지향했으며 선현들은 대대(對待)의 논리에서 변화와 발전을 도모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무왕(武王)‧태공(太公)과 백이‧숙제의 상반되는 처신을 둘러싸고 조선조 문인들이 내세운 상도(常道)와 권도(權道)에 대한 의론과 박제가 등의 양시론(兩是論), 연암 박지원의 법고창신(法古創新), 근대 철학자 전병훈(全秉薰)의 조제론(調劑論) 등은 모두 대대(對待)의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실학과 성리학과의 관계도 대대(對待)의 사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실학이 주자학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태도를 이분법적 대립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성리학을 포용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대대의 사유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실학자들이 유학의 실학(實學)을 품으면서 한편으로는 유학의 실학(實學)을 극복하려 했다는 점을 모순되게 바라볼 필요는 없다.
실학은 형해화(形骸化)된 현실의 주자 성리학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구상했는데 –필자는 성호, 연암, 다산 등은 주자는 존숭했지만, 현실의 주자학은 저항하고 뛰어넘으려는 의식을 일정 부분 지니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이는 주자학과의 단절이나 배척이 아니라 상반상성(相反相成)의 태도에 있었다. 상반상성은 대립물이 상호 보완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한다는 의미를 품고 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이 주자학의 병폐를 극복하고자 한 사유에는 이 같은 대대의 논리가 담겨 있다고 본다.
실학과 성리학의 관계도, 실학의 근대성도
실학의 근대성 논란도 대대(對待)의 사유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초기 실학 연구자들은 중세를 벗어나 단절하는 데서 실학의 근대성을 찾았지만, 대대의 사유에서는 근대는 중세를 단절시키지 않고 상대방을 비추면서 보완해간다. 곧 실학자의 개방과 개혁 의식은 기존 및 과거와의 단절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포용하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실학자의 근대 지향 의식을 중세와 탈 중세, 성리학과 탈 성리학이라는 이분법 모순율로 접근하지 말고 양쪽의 ‘사이’를 오가는 퍼지 논리의 맥락에서 이해하면 실학의 근대성과 관련해 새로운 전망을 이야기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맥락 아래 “다종(多種)의 근대(폴커 슈미트)” 또는 “차이의 근대(이도흠)”라는 관점에서 실학 정신을 새롭게 접근하면 실학이 근대 의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을 깨뜨릴 근거가 마련된다.
대대의 논리는 변증법이라든가 이분법적 모순의 논리에서는 불철저하고 답답해 보이나, 고전의 사유 방식에서는 자연스러운 태도라 하겠다.
■ 글쓴이 : 박 수 밀 (고전학자, 한양대학교 연구교수)
[주요 저서]
『연암 산문의 멋』, 『열하일기 첫걸음』, 『연암 박지원의 글짓는 법』, 『오우아』, 『고전 필사』, 『청춘보다 푸르게 삶보다 짙게』, 『탐독가들』, 『리더의 말공부』, 『알기 쉬운 한자 인문학』, 『18세기 지식인의 생각과 글쓰기 전략』 등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