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딩드레스와 턱시도
임춘희
환하다. 짙은 구름 속에 가려 있다가 나온 보름달처럼 말이다.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결혼행진곡에 발을 맞추어 들어간다. 사뿐사뿐 걷는 걸음걸이에 이끌려 사람들의 눈길이 자석처럼 따라붙는다.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순간이다. 여자는, 아니 신부는 그 순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일까. 젊음이란 싱그러움과 새신랑 새신부란 대명사가 어우러져 눈이 부신다.
난 이상한 버릇이 있다. 결혼행진곡을 들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신랑 신부가 입장하는 모습을 축하해 주고 싶은데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다. 남의 좋은 일에 와서 무슨 주책맞은 행동일까 싶어서 마음을 가다듬어도 흐르는 눈물을 막을 길이 없다. 애써 마음 가라앉히고 나면 마스카라로 인해 눈 밑으로 얼룩이 져 광대처럼 변한 내 모습이 주변 사람들 보기가 민망하다.
지나온 내 삶이 투영되어서일까. 고생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저마다의 인생이 있을 텐데, 주제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생각처럼 마음이 따라주질 않는다. 되짚어 보면 결혼은 인생의 시작이다. 어쩌면 가슴이 벅차서일지도 모른다.
신랑 신부의 밝은 모습을 보다가 두 사람이 입고 있는 드레스와 턱시도에 눈길이 머문다. 이런 좋은 날, 무엇인들 의미 없는 것이 있을까마는 새신랑 새신부가 입고 있는 멋진 옷은 어떤 뜻을 품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려한 색 다 놔두고 하필 검은색과 흰색을 입는 이유는 무엇인지.
웨딩드레스는 아름답지만 불편하다. 다만 결혼식에 소요 되는 시간이 짧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드레스를 오랜 시간 입고 있어야 한다면 여간 곤욕스러운 게 아닐 것이다. 조심스럽게 걷는 걸음걸이는 새 삶을 정성스럽게 맞이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을 테지. 다른 옷보다 유난히 넓은 치마폭은 그것만큼이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족의 허물을 덮어주고 시댁과의 갈등이나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감싸주라는 의미이겠지. 또 한 깨끗한 치마폭에 미래의 그림을 하나하나 그려 넣어 훌륭한 인생을 만들어 내라는 것이리라.
턱시도 입은 신랑의 모습이 늠름하다. 단아한 신부의 모습도 귀하다. 드레스와 턱시도의 흑백의 강한 대비가 보인다. 마치 펭귄 같다. 턱시도는 왜 펭귄을 닮았을까. 펭귄 중에서도 황제펭귄 수컷은 삼월이 되면 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 암컷이 돌아올 때까지 사십일 이상 먹이를 먹지 않고 기다렸다가 짝을 짓는다고 한다. 암컷이 알을 낳으면 수컷은 그 알을 품은 채 두 달 이상 먹이를 먹지 않고 암컷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바다로 나간 암컷이 새끼가 부화할 때쯤 돌아와서 알을 품으면, 그다음은 수컷이 한 달가량 바다로 나간다. 사이좋게 서로 상부상조하는 펭귄의 습성을 은연중에 닮으라는 뜻은 아닐지.
검은색과 하얀색은 개별적으로 보면 도저히 섞일 수 없을 정도로 각자의 색이 확실하다. 하지만 두 색을 합치면 이것저것 다 수용할 수 있는 회색이 된다. 회색은 편안하다. 검은색은 흰색이 묻을까, 흰색은 검은색이 묻을까, 전전긍긍하던 모습에서 벗어난다. 어지간한 것은 싸안는다. 그리고 여유롭다. 검은색과 흰색처럼 각자 개성이 뚜렷한 남녀가 만나 회색이 되어 너 나 구분하지 않고 무엇이든 수용하며 잘 살라는 의미겠지.
생각의 세상을 따라가고 있는 사이 두 사람은 이제 부부가 되었다. 태어나기는 각자 다른 곳에서 태어났지만 사는 곳은 이제 한 곳이다. 두 사람은 회색이 되기 위해 많은 사람 앞에서 굳은 약속을 했다. 예식이 진행되는 순간은 햇볕 쨍쨍한 그들 앞에 펼쳐진 미래는 어느 날은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겠지. 또 어느 날은 강추위가 몰려와 그걸 이겨 내려고 이를 악물겠지. 시간이 지나면서 인내심과 고난이 따르겠지만 서로의 색을 버리고 동화될 것이다.
요즘 가정의 뿌리가 많이 흔들리고 있다는 보도를 자주 접한다. 더군다나 황혼 이혼이 부쩍 는다고 했다. 나름대로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혼이란 승자도 패자도 없는 행위임에 틀림이 없다. 둘 다 피해자일 뿐. 급변하며 돌아가는 세상살이가 각박해져 가면서 부부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흔들릴 때, 웨딩드레스와 턱시도의 뜻을 새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황혼의 부르스 / 이미자
황혼이 질 때면 생각나는 그 사람
가슴깊이 맺힌 슬픔 영원토록 잊을 길은 없는데
별처럼 아름답던 그 추억이 내마음을 울려주네
목이메여 불러보는 당신의 그 이름
황혼이 질 때면 보고싶은 그 얼굴
마음속에 아로새긴 당신모습 잊을 길은 없는데
꿈같이 행복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서 눈물지네
목이메여 불러보는 당신의 그 이름
정임표 회장님, 황혼의 부르스 노랫말이 애틋합니다.
제왜? 황혼의 부르스 노래가 생각났을까요?
@(혜원)임춘희 북은 자기 가슴을 쳐서 세상을 울리는 것인데, 자기 가슴이 울려고 하는 것을 애써 감춰버리고 교장 선생처럼 설교해 버린 때문에~
"지나온 내 삶이 투영되어서일까. 고생의 문턱에 발을 들여놓는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나온 내 삶을 돌아보는 것이 "황혼의 부르스"인데 그걸 감춰 버렸으니 감동이 사라져 버렸어요. 황혼의 부르스 열 번만 노래 불러 보시면~ . <나는 남자가 좋다> 는 작가가 자기 가슴을 울리고 있어요
저는 글이 안될 때는 옛날 대중가요를 혼자서 듣고 불러 봅니다. 그러면 글 정서가 살아 나요
나이 들어서과거 살아온 인생을 반추해 내며 글쓰는 모든 행위가 황혼의 부르스 입니다. 아름답고 우아하게 눈물과 감동의 부르스를 그려내시면 크게 성공 하실 것입니다. 남과 다른 특별한 경험은 글 소재가 풍부하고 강렬함으로 작가에게는 축복 받은 인생입니다.
@(혜원)임춘희 인간 임춘희의 인생을 시간대 별로 전부 다 새로 부활시켜 보시면 굉장히 의미가 있는 책이 될 것입니다.
임춘희가 아닌 임명희 작가가 쓴 <공장지대> 독후감을 올려 놓겠습니다.
저는 얼굴도 모르는 작가로 부터 이 책을 받고 감동을 받아서 독후감과 난 화분을 보냈어요. 아마 그 집에서 제가 보낸 난초가 잘 크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결혼이 마냥 핑크빛인줄 알고 있는지 모르지요. 때로 흙빛이었다 때로는 무지개색이었다가. 그래도 다 잘살아내지 않습니까. 굿
아마 그럴것이라 생각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똑똑해서 지혜로워서 잘 살아갈 것입니다. 조경숙 선생님 고맙습니다.
결혼식장에 들어서면 늘 눈물이 나곤 하였는데 임샘도 그러셨군요. 흑색과 백색이 융화되면 회색으로 편안한 색이 되는 것처럼 결혼생활이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가 참 그럴듯합니다. 아들이 결혼하니 삶의 무거움을 그래도 남자들이 많이 안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남편 입장도 이해가 되고요... 펭긴이야기가 재밌어요
예. 요즘은 결혼하면 남자들이 할 일 더 많더군요. 옛날 우리네 아버지의 기는 하늘을 찔렀는데 요즘 남자들 기는 땅에 딱 붙었습니다. 도다리처럼요. ㅎ~~
펭귄 이야기는 한 때 텔레비젼에서 "동물의 세계" 프로에 나왔어요. 저도 그때 펭귄에 대해 새로운 걸 알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