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순세(順世)
남전(南泉)이 세상을 뜨려 하는데, 제 1좌(座)가 물었다.
“화상께서 별세하신 뒤에 어디로 가시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산 밑에 가서 한 마리 검은 암소[水牯牛]가 되리라.”
스님이 다시 물었다.
“저도 화상을 따라 갈 수 있겠습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그대가 나를 따라오려거든 한 줄기 풀을 물고 오라.”
금산원(金山元)이 송했다
행리가 원래부터 이류(異類) 속에 있었으니
머리의 뿔 누구와 같았던 줄 아는가?
물과 풀을 물고 와서 만나 본다면
꼬리 치고 머리 흔들 때, 사방의 바람 가벼우리.
장산천(蔣山泉)이 송했다.
이류 속에 오고 가기 자유로우니
콧구멍을 꿰어 끌기 대단히 어렵구나.
풀 가지 물고 와서 만나는 곳에
짙은 구름에 한가히 누워 백발(白髮)에 맡긴다.
설봉료(雪峯了)가 염하였다.
“머리를 고치고 낯을 바꾸어 이렇게 온 것이 바로 남전이 몸을 던져 남을 위한 곳이다. 이 한 줄기의 풀이 고금에 빛나거늘 이를 눈치 채어 알았다면 어찌하여 입을 대지 못하는고?”
說話
“세상을 뜨려 한다[順世]”함은 성인의 분상(分上)에는 본래 나고 죽음이 없지만 세간을 따르고 동화하기 때문이니, 실은 생사가 없다.
“산 밑에 가서……가 되리라[山下作]”함은 이류 속에서 행하는 것이요, “그대가 나를 따라오려거든[汝若隨我]……”이라 함은 고금을 빛내는 한 줄기풀[莖草]이다.
금산(金山)의 송은, 만일 진정 이류 속에서 행하려면 모름지기 한 줄기 풀을 물고 와야 한다는 뜻이다. 뒤에 장산(蔣山)의 송도 이런 내용이다.
설봉(雪峯)의 염은, 만일 한 줄기 풀이라면 모름지기 부리[觜]를 박을 수 없어야 하나니, 남전이 몸을 던져 사람을 위하는 시절을 알려면 모름지기 이런 소식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247. 공양(供養)
지주(池州) 삼산지견(杉山智堅) 선사가 울력을 하던 중 고사리를 다듬는데, 남전이 한 줄기를 들어 올리며 말하였다.
“이것으로 공양을 올리면 매우 좋겠구나.”
그러자 선사가 말하였다.
“그건 고사하고 설사 백미진수(百味珎羞)라도 그는 돌아보지 않을 것이오.”
남전이 말하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하나를 모두 맛봐야 되리라.”
현각(玄覺)이 말하였다.
“이것이 만나 본 이야기인가, 만나 보지 못한 이야기인가?”
취암지(翠嵓芝)가 말하였다.
“삼산이 그런 말이 면할 수 있겠는가? 만일 면한다면 안목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고 만일 면할 수 없다면 또 앞의 말과 어긋나느니라”
※ 삼산(杉山)의 말이 본분(본분)에 치우쳐 있다고 판단하고 하는 말이니, 그렇게 말하고서 어찌 본분에 치우친 허물을 면할 수 있겠는가 함이다.
說話
“이것으로 공양을 올리면 매우 좋겠구나[這箇大好供養]”라고 함은 이 한 줄기의 채소로 그 사람에게 공양하겠다는 뜻인가? 사람마다 그 한 줄기의 채소를 먹을 수 있어야 한다.
“그건 고사하고[非但這箇]……”라 한 것은 사람마다 모두 본래 배부르다는 뜻이다. “그렇다 하더라도[雖然如是]……”라고 함은 비록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나[本有] 반드시 신훈(新薰)을 빌려야 한다는 뜻이요, “하나하나[箇箇]”라고 함은 나물 하나하나를 말함인가? 사람 마다라는 뜻이다.
현각(玄覺)의 법어는 선 자리가 같지 않으니 만나지 못한 것이나 마침내 손을 잡고 높은 산에 올랐으니 그 어찌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함이다.
취암(翠巖)의 법어에서 “삼산의 그런 말이[杉山伊麽道]……”라고 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하나를 모두 맛봐야 되리라”는 뜻이니, 이것이 허물을 주는 말이기 때문에 면하는가, 면치 못하는가 하는 말이 나왔다.
“만일 면한다면[若免得去]……”이라 함은 만일 이 허물을 면할 수 있다면 본래의 눈은 어디에 있는가 함이요, “만일 면할 수 없다면[若免不得]……”이라 함은 금시(今時)이다. 그렇다면 지금과 본래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치우치고 말랐다 할 것이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