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굉일과 반굉일
어느 날 살레지오회 노숭피 신부님께서 “핵교와 학교가 어떻게 다르지요?”라고 물으셨는데 나는 충청도에서 살아서 ‘학교’를 사투리로 ‘핵교’라고 하는 것은 알았는데 어떻게 다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은 웃지도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핵교는 댕기고요, 학교는 다니지요.” 외국신부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어찌나 웃음이 나는지 우리 모두는 한바탕 웃었습니다. 신부님은 미국인이면서도 한국의 숭늉을 너무 좋아하셔서 당신이 좋아하시는 숭늉과 커피를 합하셔서 이름을 ‘숭피’로 지으신 신부님이시기도 합니다.
어려서 ‘굉일’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은 다시 ‘반굉일’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핵교와 같이 많이 들어본 말입니다. ‘굉일’은 ‘공일’의 사투리입니다. 그리고 ‘반굉일’은 ‘반공일’의 사투리이지요. 예전에 충청도 사람들은 일요일은 학교도 쉬고 직장도 쉰다고 해서 공일(空日)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토요일은 반만 쉰다고 해서 반공일(半空日)이라고 하였지요. 지금도 “오늘이 반굉일여서 핵교 갔다 일찍 왔구먼, 낼 읍내 승당 갈껀감?” 하시던 공소의 옛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그때만 해도 주일에 공소에서 공소예절을 하려면 공과책(지금의 가톨릭 기도서)을 틀리지 않고 읽을 중학생이 많이 대접받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들이 읍내 성당에 간다면 공소 노인들이 공과책을 읽으면서 더듬거렸기 때문에 성당에 가는지 묻는 말씀으로 그때는 공소에 젊은 사람들이 별로 없었던 것은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일은 평생을 농촌에서 일만 하시던 어른들이 쉬는 날을 가리켜 하시던 말씀입니다. 그 일요일을 교회에서는 ‘파공첨례(破公瞻禮 : 모든 공적 행동을 파하고 주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의 날’이라고 불렀고, 주일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학교에 가서야 ‘공일’이 아니라 ‘일요일’이라고 배웠고, 교회에서 ‘주일’(主日 : 주님의 날)로 다시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주일(週日)로 일요일을 말하는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이 한자로 멋지게 週日이라고 쓰면 “아하 저렇게 쓰는구나!”하고 감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어린 아이들도 주일이라고 말하고, '주님의 날'을 알아보며, 主日이라고 씁니다. 그것을 보면 정말 무식하게 교회를 다녔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안식일이라는 말도 어떻게 보내야 하는 날인지 지금은 아주 작은 어린아이들도 알아듣습니다.
안식일(安息日)이 편안히 쉬는 날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식일은 죽은 사람처럼 일도 하지 말고,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만 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면서 안식일이 ‘내가 편히 쉬는 날’로 알기도 하였습니다. 하루도 편히 쉬지 못하는 바쁜 일상이다 보니 매일 중에 주일만이라도 안식일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주일이 나에게 정말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안식일인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주일의 주인은 정말 누구인가?’ 주일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쉬고, 학교나 관청도 쉬니까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정말 공일이 되었고, 성당에 나가 미사에 참례하면 모든 일이 끝난 것 같이 내 시간을 마련합니다. 예식장에도 가고, 오랜 만에 등산도 하고, 집안일도 하고, 낮잠도 자고, 내 중심의 안식일이 되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주일은 나의 날인가? 주님의 날인가? 생각해보니 대부분 내 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2. 주일에 해야 할 일이 성당과 관련된 일을 하거나 교우들을 만나서 하루를 보내면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생각인지도 모릅니다. 사목임원들을 만나고, 교회 일을 상의하고, 빠짐없이 짜여진 본당 내 각 단체나 회합에 참여하고, 피정이나 연수회를 보내면 참 뜻있는 주일을 보냈다고 자위하고 기뻐합니다. 그러나 과연 주님의 날에 합당한 일인지를 생각하면 의례적이며 관습적인 신자생활이었습니다. 정말 만남을 필요로 하는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과의 만남보다는 나와 친하고 가까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주종을 이루고 있으니 말입니다.
3. 주일에 가족들이 오순도순 같이 모여 사랑을 더욱 깊게 하고, 사랑의 보금자리를 가꾸는 일에 나는 얼마나 열심히 참여하였는지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교회 일을 하느라고 거의 주일을 가족과 같이 보내지 못했습니다. 말로는 사랑의 성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으로 내 가정의 성화를 위해서는 별로 노력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4. 주님과 친해지기 위해서 나는 어떤 기도를 어떻게 바쳤는지 생각해 봅니다. 습관처럼 미사에 참례하고 정성 없이 미사를 후딱 해치워버린 듯한 마음으로 간직하고 바쳤던 기도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도를 대신 해주고, 미사를 대신 바쳐준 것처럼 신부님의 강론 말씀도 가슴에 오래 머무르지 않으며 기억에도 남지 않으며 복음이나, 신자들의 기도 또한 누굴 위해서 지향을 두었는지 조차 잊어버리고 그렇게 공일(空日)로 보낸 주일인 것만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