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컵의 속도
컵의 물이 바닥에 닿기 전에
나는 시간을 떨구었다
유리 안의 투명한 빛들이
결정체처럼 흔들렸지
가장자리에서 속도가 멈추자
밀려온 바람이 모든 것을 덮었어
손등 위로 그림자가 맺혔을 땐
그건 햇빛보다 먼저 떠난다는 기척
너는 유리컵의 테두리를 손톱으로 두드렸는데
그 울림은 하루를 예고하는 소리 같았거든
나는 손끝에 닿은 차가움을 따라
흐르는 빛의 무게를 잴 뿐이야
무게는 가벼워서
지워지는 언어 같았지
말을 꺼내려다 삼키는 순간마다
컵 안의 물은 시간을 부수고
표면에는 우리가 하지 않은 말이 맺혔어
전등은 낮에도 켜져 있었고
텅 빈 의자들은 서로를 향해 등을 돌리더군
식탁 아래로 흘러든 햇살이 발끝을 비출 때
그건 마치 다음 장면이 오기 전
카메라가 잠시 머무는 구도처럼 평온했어
아직 그려지지 않은 선을 따라
멈춘 강물 위를 걷듯
투명한 빛을 벗어나는 속도
빛이 컵 안에서 다시 파문을 일으킬 때
나는 끝없이 반복되는 질문을 읽지
물이 바닥에 닿기 전에
마침내 물방울 하나가 미끄러지고
오늘의 균형이 기울었다는 걸 알았어
무엇도 잡히지 않는 속도
유리컵의 시간이었어
모던포엠 2026년 5월호
[출처] 뱀띠 사내의 수행법 외 1편 / 최형만 시인|작성자 이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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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 소개
유리컵의 속도/최형만
김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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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8.20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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