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안의 남대지를 준설할 때의 고유문〔延安南大池疏濬告由文〕
신령이 사는 곳이여 푸른 연못과 맑은 호수요, 신령이 노니는 곳이여 흰 부평초와 푸른 부들이 있습니다. 연잎으로 만든 옷을 입고 향초로 만든 띠를 두르며, 바람을 수레로 삼고 구름을 일산으로 삼습니다.
꽃 피는 아침과 달 뜨는 밤에 구불구불 오르내리며 꿈틀거릴 땐 백로와 해오리를 빈객으로 삼고 물고기와 자라를 신하로 삼으며, 메벼와 찰벼를 양식으로 삼고 마름과 가시연을 양식으로 삼습니다.
한 도를 적셔 줌이 전당강(錢塘江)과 백중(伯仲)이 됩니다. 하지만 어찌하겠습니까. 세월이 점차 오래되어 진흙과 모래가 쌓이고 비탈과 언덕이 무너져 갈대만 눈에 가득해 소와 양을 몰아 꼴을 먹이게 되고 말았습니다. 신령께서 그 집을 편히 여기지 못하시니 잘못은 실로 이 땅을 맡은 자에게 있습니다.
성상의 탄식이 지도를 살피는 일에서 나와관찰사에게 명해 가서 살피게 하니, 여러 군을 감독하여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수령들의 깃발이 나부끼고 인끈이 즐비하며 땅을 구획하여 일을 나누어 주기 위해 세세히 쪼갰으니, 수많은 삽을 일제히 들어 쌓고 파낼 것입니다.
날을 택하여 목욕재계하고서 엄숙히 밝은 신령을 기쁘게 하고자 맑은 물결에 술을 따르고 깊은 못에 희생을 던져 바치옵니다. 백성의 소원이니 신령께서 반드시 따라 주실 것이며 왕이 내린 명을 신령께서 감히 어기시겠습니까. 바람을 질타하고 비를 꾸짖어서 재앙을 물리쳐 주소서.
둑이 막힌 채로 있는 것은 신령의 부끄러움이요 공이 이루어지는 것은 신령의 복이오니, 신령께서는 성대히 임하여 우리를 돌아보시고 천추만세토록 편안하고 즐겁게 노니소서.
延安南大池疏濬告由文
靈之居兮。碧湫淸湖。靈之遊兮。白蘋靑蒲。荷衣兮蕙帶。風爲車兮雲爲蓋。花之朝兮月之夜。連蜷夭矯乎上下。鷗鷺爲賓兮魚鼈爲臣。粳稻爲糈兮菱芡爲粻。涵潤一方兮伯仲錢塘。何日月之浸遠兮。泥沙塡閼兮陂岸崩覆。萑葦滿目兮牛羊來牧。神不安其宅兮。咎實在於守土。九重咨嗟兮按圖之故。命岳牧使往度兮。董列郡而趍事。節旄翩翩兮印綬纍纍。畫地課功兮分瓜裂幅。萬鍤齊作兮爰築爰鑿。卜日致戒兮。穆將愉兮明神。灌酒乎淸波兮。沉牲于深淵。民之願兮神必從。王有命兮神敢違。呵風叱雨兮屛除眚菑。隄廢兮神之羞。功成兮神之休。神洋洋兮顧我。千秋萬歲兮以安以敖。
[주-D001] 연안(延安)의 …… 고유문:
이계의 나이 47세 때인 1770년(영조46) 7월에 황해도 관찰사로서 연안의 남대지(南大池)를 준설하면서, 남대지에 사는 용신(龍神)에게 올린 고유문이다. 《이계집》 권14에 실린 〈연안남대지소준기(延安南大池疏濬記)〉에 남대지를 준설한 시말이 자세히 실려 있는데, 7월 7월에 연안(延安)ㆍ배천(白川)ㆍ해주(海州)ㆍ평산(平山)ㆍ금천(金川)의 수령을 남대지에 불러 모아 준설할 영역을 나누어 배당하고, 7월 15일에 남대지의 신령에게 희생을 바치고 공사가 시작됨을 고하였다고 한다. 또 《영조실록》 46년 7월 15일 기사에, 홍양호가 남대지를 준설하고 장계를 올려 계문하자 전교를 내려 포장하고 가상하게 여겼다는 내용이 보인다. 이계는 1770년 2월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되었다. 남대지는 와룡지(臥龍池)의 속명으로 연안도호부 남쪽 3리에 있었으며 주위가 20리 102보이다. 매년 겨울철에 이 못의 얼음이 가로 또는 세로로 갈라지는 것을 사람들이 ‘용갈이[龍耕]’라고 여겼으며, 갈라지는 방향을 보고 이듬해의 풍흉을 점쳤다고 한다. 《新增東國輿地勝覽 黃海道 延安都護府》
[주-D002] 성상의 …… 나와:
《이계집》 권14 〈연안남대지소준기(延安南大池疏濬記)〉에, 영조가 지리지를 고찰하며 편수할 때 남대지가 막혔다는 전임 안찰사의 대답을 듣고서 이계를 황해도 관찰사에 임명하여 남대지를 준설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내용이 보인다.
ⓒ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 이성민 (역) |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