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분 기도 1225. 그날과 그 시각은 아무도 모른다
마르코 13. 24~32
그제(11월17일) 주일 복음과 강론의 요약과 제 생각입니다
두 가지의 죽음,
사심판(私審判)과 공심판(公審判)이 있다고 배웠습니다. 사심판은 내가 죽어 받는 심판이고 공심판은 세상의 종말이 와서 모두가 함께 받는 심판이라는 뜻이지요
위패를 쓸 때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배우는 학생으로 인생을 살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신령이시어 나타나서 자리에 임하소서)라고 씁니다. 벼슬을 했다면 학생을 빼고 직위를 쓰지만. 학생이라는 字를 쓰는 이유는 배워야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평생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생의 졸업은 생각하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여기며 현재를 보내고 있습니다.
종말, 개인의 종말이던 모두의 종말이던 나에게는 같은 의미입니다.
생의 공통된 과제는 누구나 살아있는 것은 누구나 죽음을 향해 간다는 것입니다. 삶은 죽음을 향해가는 공통의 과정이라는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이 진리의 의미를 모르면 생이 잘 살게 되지 못하게 됩니다
잘 산사람은 잘 죽게 됩니다. 죽음을 잘 준비하는 사람이 생을 잘 누리게 된다는 논리입니다
죽음의 순간은 아무도 모르기에 늘 준비하는 삶으로 산다면 매 순간 진실되게 살 것입니다.
죽음 앞에서 가장 후회하게 되는 것들이 권력이나 돈이나 위치가 아니라 더 사랑하지 못한 것, 더 용서하지 못한 것, 더 베풀지 못한 것들이라고 하지요.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살면 됩니다. 오늘을 사는 내 모습을 보면 나의 종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예측을 위한 가장 뛰어난 예언자는 바로 오늘인 것입니다.
위령성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죽음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