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역사는 곧 배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람은 강을 건너기 위해 통나무를 엮었고, 바다를
건너기 위해 돛을 달았다. 수천 년 동안 배는 사람의 꿈과 두려움, 생존과 모험을 함께 실어 나르며 문명의
길을 열어 왔다.
배가 물 위에 뜨기 위해서는 부력이 필요하다. 쉽게 말해 물보다 가벼워야 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자연
스럽게 나무로 배를 만들었다. 대부분의 나무는 물보다 비중이 낮아 스스로 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나무가 그런 것은 아니다. 나무 중에는 ‘싱커(sinker)’라 불리는 종류가 있다. 겉으로는 평범한 나무
처럼 보여도 물속으로 가라앉는다. 강이나 바다 속을 떠돌던 싱커는 때로 선박과 충돌하여 큰 사고를
일으키기도 한다. 떠 있어야 할 나무가 오히려 위험이 되는 것이다.
반대로 사람이나 물건이 물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력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 해녀와 잠수부는
깊은 바다에서 작업하기 위해 몸에 무거운 추를 단다. 낚시를 할 때도 미끼가 물 위에 떠 있으면 고기를
잡을 수 없기에 봉돌을 달아 물 아래로 가라앉힌다. 물 위에만 머무르는 것은 어쩌면 세상의 표면만 맴도
는 일과 비슷한지도 모른다. 깊은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을 눌러 줄 무게가 필요하다.
어릴 적 시골에서는 낚시 봉돌도 직접 만들곤 했다. 다 쓴 치약 튜브를 모아 깡통 속에 넣고 불 위에서
녹였다. 당시 치약 튜브는 납으로 만들어진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녹아내린 납을 작은 틀에 붓고 식힌
뒤 낚싯줄을 묶으면 제법 그럴듯한 봉돌이 완성되었다. 어린 마음에는 그것이 마치 작은 연금술처럼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다. 납은 무겁지만 동시에 사람을 병들게 하는 금속이다. 고대 로마인들이
납으로 만든 수도관을 사용하다 납중독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도 유명하다. 그 시절 아무런
보호 장비도 없이 납을 녹이며 놀았으니,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의 무지는 때로 순수함으로 포장되지만, 지나고 보면 삶은 늘 위험과 축복 사이를 가까스로 건너온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추는 단지 무겁기만 해서는 안 된다. 물속으로 가라앉는다고 해서 제자리를 지키는 것은 아니다. 강한
물살과 바람 앞에서는 무거운 배조차 떠밀려 간다. 그래서 배에는 닻이 필요하다. 닻은 바다 밑바닥을 움켜쥔
채 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 준다. 아무리 큰 배라도 닻이 없으면 방향을 잃고 떠내려가 버린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
말이 가볍고 행동이 경솔한 사람은 인간관계 속에서 쉽게 흔들린다. 처음에는 웃음과 재치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그 말의 무게를 재기 시작한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쌓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 묵묵히 보여 준 진심과 책임감이 켜켜이 쌓여야 비로소 한 사람의 무게가 된다. 그러나
그 신뢰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한 번의 거짓말, 한 번의 배신, 한 번의 가벼운 행동이 오랜 시간을
허물어뜨린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사람은 누구나 흔들린다. 바람 없는 바다가 없듯 시련 없는 삶도 없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려도 끝내 자신을 붙들 수 있는 닻을 갖는 일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 그 닻은 양심일 것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이나 책임감, 혹은 오래 지켜 온 신념일 것이다.
배는 물 위에 뜨기 위해 가벼워야 하지만, 삶은 오히려 너무 가벼워서는 안 된다. 때로는 자신을 깊게 가라앉혀
줄 무게가 필요하고, 떠내려가지 않도록 붙들어 줄 닻도 필요하다. 사람의 품격은 화려한 말보다 삶의 무게에서
드러난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결국 사람은 얼마나 높이 떠올랐는가보다 무엇으로 자신을 붙들고
살아왔는가에 의해 기억된다는 것을.